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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덕만 교수의 신앙과 삶 이야기: 요트보다 친구의 지혜

요약

인생의 지혜: 요트 대신 친구를, 배덕만 교수의 삶

요트를 사지 말고 요트 가진 친구를 사귀어라: 배덕만 교수님의 삶과 신앙 이야기

오늘 우리는 느헤미야 기독연구원의 배덕만 교수님을 모시고, 그의 파란만장했던 삶과 깊이 있는 신앙 여정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배 교수님은 23년간 교회사를 강의하며 미래의 목회자들을 양성해 오셨지만, 정작 본인은 목회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며 삶이라는 바다를 항해해 온 분인데요. 강단에서 가르치는 것과 실제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 사이의 간극, 그리고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한 치열한 고민과 경험들을 오늘 낱낱이 파헤쳐 보겠습니다. 마치 요트를 소유하는 것보다 요트를 가진 친구를 사귀는 것이 더 현명할 수 있다는 역설처럼, 배 교수님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통찰과 지혜를 선사해 줄 것입니다.

배 교수님은 미래 목회자들에게 강단에서 설교를 하시면서, 정작 본인은 개척 교회를 통해 목회의 길을 걸으셨다고 합니다. 이러한 경험은 교수님의 가르침과 실제 목회 현장 사이의 괴리를 직접적으로 느끼게 해 준 중요한 계기가 되었는데요. 교회 개척 전에는 규모 있는 교회에 편안하게 출석했지만, 개척 후 지하 공간에서 아무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면서 완전히 다른 세상, 즉 현실 목회의 냉혹함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마치 따뜻한 물에서 살다가 갑자기 얼음물에 뛰어든 것과 같은 충격이었을 텐데요. 지하 벙커 같은 공간에 모인 교인들은 기존 교회에서 만나보기 힘들었던, 삶의 무게에 짓눌린 다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배 교수님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교회와 신앙에 대한 환상을 깨뜨리고, 진정한 목회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순간이었습니다.

배 교수님의 신앙 여정은 어린 시절, 가난했던 가정 환경 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경기도 고양군에서 살 때, 집안 형편이 어려워 친척들의 발길마저 끊길 정도였는데요. 어느 날, 주일학교 학생이었던 전도사님이 심방을 오셨고, 공장에서 일하던 어머니는 반차까지 내고 예배를 준비했습니다. 어머니와 배 교수님, 그리고 전도사님, 단 세 명이서 드린 예배였지만, 그날 전도사님의 따뜻한 위로와 기도 속에서 어머니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가난하고 연약한 자신들을 찾아와 준 전도사님의 모습은 어린 배 교수님에게 예수님의 따뜻한 이미지로 각인되었고, 이후 교회를 열심히 다니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예배 후 어머니가 장롱 밑에서 성경책과 찬송가를 찾아 읽으시던 모습은, 배 교수님에게 교회와 신앙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 준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배 교수님은 학창 시절,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공부에 매진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술을 많이 드시고 어머니가 쉴 틈 없이 일하시던 어려운 가정 환경 속에서, 성적표를 받아들고 웃으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공부를 결심하게 된 것인데요. 놀고 싶었지만 어머니를 생각하며 책상에 앉았고, 꾸준한 노력으로 성적이 향상되었습니다. 하지만 가정 형편상 대학 진학은 어려운 꿈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러던 중, 초등학교 시절부터 롤모델이었던 멋진 목사님을 보며 목회자의 꿈을 키우게 되었고, 어머니께 말씀드렸더니 씁쓸하지만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마침 인천에 새로 생긴 고등학교에서 장학생을 모집했고, 담임 선생님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입학하게 되면서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배 교수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 진학을 꿈꿨지만, 학교 방침에 따라 서울대학교 종교학과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당시 배 교수님에게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을 안겨주었지만, 전도사님의 조언과 인도하심으로 종교학과에서 신학 공부를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결국 서울대학교에 진학하면서 학비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었고, 과외 아르바이트를 통해 경제적인 어려움까지 해결할 수 있었으니, 이 모든 과정은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고백합니다.

서울대학교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예일대학교 신학대학원과 드루 대학교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으신 배 교수님은, 처음에는 목사가 아닌 신학자의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시작된 신앙적 질문들은 대학 시절, 비교종교학 및 종교 다원주의를 접하면서 더욱 심화되었고, 결국 신앙의 근본적인 회의로 이어졌습니다. 88학번으로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당시 사회 분위기와 마르크스주의, 그리고 종교 다원주의는 배 교수님의 신앙적 기반을 흔들었고, 강단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설교할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대학교 3학년 때 극적인 회심을 경험하면서 다시 신앙을 회복하게 되었고 신학대학원에 진학했지만, 여전히 사람보다는 공부에 더 큰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 부족과 혼자만의 시간을 선호하는 성향은 목회보다는 학자의 길에 더 적합하다고 판단하게 만들었고, 결국 신학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습니다. 도서관에서 책 읽는 것을 가장 행복하게 느끼는 배 교수님에게, 신학자의 길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신학자의 길을 걷던 배 교수님은, 박사 학위 취득 후 대전의 한 신학대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하면서 한국 교회와 사회에 대한 고민을 더욱 깊이 하게 되었습니다. 80년대 후반,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국 교회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고, 신대원에서 한국 교회의 현실을 더욱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소명은 눈에 밟히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배 교수님에게, 한국 교회와 한국 사회의 문제점들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한국 교회 개혁에 대한 열정을 품게 되었습니다. 청년 단체에서 한국 교회 문제점을 지적하는 논문을 발표했을 때, 한 목사님으로부터 “교회 현실을 너무 모른다, 목회를 안 해봐서 함부로 말한다”는 비판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 비판은 배 교수님에게 큰 충격과 고민을 안겨주었습니다. 자신은 40년 넘게 교회를 다녔지만, 정작 목회 현장에 대한 경험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제자들은 어렵게 개척 목회를 시작하는데, 자신은 단 한 번도 개척을 경험해보지 않았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마치 군대도 안 간 육군사관학교 교관이 학생들을 사지로 내모는 것과 같다는 생각에 괴로워하며, 목회 경험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한국 교회를 향한 비판과 개혁을 외치려면, 먼저 목회 현장을 경험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그를 짓눌렀습니다.

목회 경험의 필요성을 절감한 배 교수님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폐쇄 직전의 작은 교회를 맡아 목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교수직 신분으로는 목회가 금지되어 있었지만, 담임 목사님과의 상담과 기도 끝에 대전의 한 폐쇄 직전 교회에 부임하게 된 것입니다. 월세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사례도 받지 않고 설교만 하는 목사로 자원했지만, 막상 도착해보니 교인은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텅 빈 지하 예배당, ‘주사랑 교회’라는 아름다운 이름만이 덩그러니 남아있었지만, 오히려 그 모습에 마음이 끌려 목회를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2년 정도 영성 훈련을 할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 자리를 지키게 되었습니다. 목회를 시작하면서 배 교수님은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한국 교회의 어두운 현실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편안한 교회만 다녔던 과거와 달리, 개척 교회에서 만난 교인들은 우울증, 경제적 어려움, 가정 문제 등 다양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18년 동안 19번이나 교회를 옮긴 우울증 환자, 반지하에서 브루스타로 겨울을 나는 교인, 자녀를 안고 2층에서 뛰어내리려던 어머니 등, 이전에는 만날 수 없었던 고통받는 이웃들의 삶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배 교수님은 자신이 가진 신학적 지식이 얼마나 무력한 것인지 절감하며, 진정한 목회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기복 신앙을 경멸했던 과거를 반성하며, 새벽마다 “장풍이라도 쏘게 해달라, 로또라도 당첨되게 해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기도 응답은 더디기만 했고, 무력감과 좌절감 속에서 목회의 어려움을 뼈저리게 느껴야 했습니다. 결국 2년만 목회하고 학교로 돌아가려던 계획은 틀어지고, 8년 동안 고통받는 이웃들과 함께하며 진정한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8년간의 개척 교회 목회는 배 교수님에게 끊임없는 어려움과 좌절감을 안겨주었습니다. 교인들의 잇따른 이탈,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무능력함에 대한 자책감은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습니다. 특히 3년 차, 헌신적으로 교회를 돕던 청년의 갑작스러운 이탈은 교회를 다시 원점으로 되돌리는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습니다. 그 청년과 함께 교회를 찾았던 교인들까지 떠나가면서, 배 교수님은 깊은 영적 침체와 우울증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읽어도 설교 준비는커녕 떠나간 교인들에 대한 원망과 자책감만 밀려왔고, 심지어 하나님께 욕설을 퍼붓고 성경책을 집어던지는 극단적인 행동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목회를 포기하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찬 채 잠자리에 들었지만, 밤새도록 잠 못 이루고 괴로워했습니다. 다음 날 새벽, 설교 준비도 못한 채 스타벅스에 들어가 성경을 펼쳤을 때, 우연히 눈에 들어온 여호수아 1장의 말씀은 그의 마음을 강렬하게 흔들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마치 귓가에 울리는 듯했습니다. 그 순간, 배 교수님은 왈칵 눈물을 쏟으며 회개하고, 다시 목회에 전념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그 후 8년간, 그는 그 자리를 묵묵히 지켜냈습니다.

8년간의 목회를 마치고, 배 교수님은 복음신학대학원대학교(현 건신대학원대학교)에서 느헤미야 기독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느헤미야 기독연구원은 평신도들을 대상으로 신학 기초 교육을 제공하는 야학으로, 신학대학교 교수들의 재능 기부로 운영되는 곳입니다. 목회자 훈련 프로그램 개설을 준비하면서 전임 교수진이 필요했고, 동료 교수의 권유로 배 교수님은 느헤미야 연구원으로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정규 대학교 교수직을 내려놓고 비인가 신학교 연구원으로 옮기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주변의 만류와 경제적인 어려움에 대한 걱정도 있었지만, 배 교수님은 과거에도 수없이 경험했던 하나님의 은혜를 믿고 용기를 냈습니다. 교인들의 따뜻한 격려와 지지 속에 서울로 올라왔지만, 막상 서울살이는 쉽지 않았습니다. 월세 жилище 구하기도 어려웠지만, 장인, 장모님의 도움으로 거처를 마련할 수 있었고, 세 자녀의 학비 문제도 하나님의 은혜로 해결되었습니다. 큰 딸은 국가 장학금과 교회 지원을 받았고, 둘째 딸은 일본 국비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받게 되었으며, 막내딸은 다둥이 장학금으로 대학교 학비를 면제받게 된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배 교수님은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말씀의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요트를 소유하려 하기보다 요트를 가진 친구를 사귀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는 비유처럼, 배 교수님은 하나님과의 깊은 신뢰 관계 속에서 삶의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습니다.

느헤미야 연구원으로 옮긴 후, 배 교수님에게는 원형 탈모라는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스트레스와 목회에 대한 고민이 겹치면서 원형 탈모가 시작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이 또한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받아들이고, 다시 한번 십자가를 지는 심정으로 사역에 매진했습니다. 백향목 교회 목회를 병행하면서 느헤미야 연구원 사역에 집중했지만, 교회 내 갈등 문제가 불거지면서 또 다시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지만, 문제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결국 2년 만에 교회는 다시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배 교수님은 자신의 무능력함에 좌절하고 목회를 포기하고 싶었지만, 다시 한번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떠올리며 십자가를 질 것을 결단했습니다. 백향목 교회 목회는 배 교수님에게 ‘알바’와 같은 파트타임 잡이 아니라, 짊어져야 할 십자가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는 두 대학의 강사 자리를 내려놓고 느헤미야 연구원과 백향목 교회 목회에 전념하기로 결심했고, 놀랍게도 교회는 다시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례비도 인상되었고, 원형 탈모도 자연스럽게 치유되었습니다. 배 교수님은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내려놓음의 축복과 순종의 가치를 깨달았다고 고백합니다.

오늘 배덕만 교수님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진정한 신앙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삶의 어려움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갈 수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끊임없는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며 살아온 배 교수님의 삶은, 우리에게 큰 감동과 도전을 줍니다. 요트를 소유하는 것보다 요트를 가진 친구를 사귀는 지혜처럼, 우리 또한 눈앞의 욕심을 좇기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며 살아갈 때, 진정한 풍요로움과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배 교수님의 삶은 바로 그 증거입니다.

유튜브 썸네일 이미지 제안:

요트 그림과 함께 배덕만 교수님의 웃는 얼굴 사진을 넣고, 썸네일 제목은 "요트를 사지 말고, 요트 가진 친구를 사귀세요! - 배덕만 교수 인생 이야기" 와 같이 흥미를 유발하는 문구로 작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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