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테말라 유한나 선교사의 감동 실화: 고통 속 하나님의 사랑과 기적
이겼다!: 고통을 넘어선 하나님의 사랑
고통 속에서 찾은 빛, 그리고 승리의 속삭임: 과테말라 유한나 선교사의 간증
안녕하세요, 새롭게 하소서 시청자 여러분, 주영훈입니다. 오늘 함께할 이야기는 평범한 듯 보이지만, 그 안에서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한 한 선교사님의 고백입니다. 현실의 벽 앞에서 좌절할 때,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초대 손님은 바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삶으로 보여주신 분입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며, 선교지를 향한 하나님의 깊고 뜨거운 사랑을 깨달은 유한나 선교사님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시길 바랍니다.
과테말라에서 사역하시는 유한나 선교사님,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멀리 과테말라에서 오셨네요. 남편 선교사님과 세 자녀분들도 함께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자녀분들 이름이 독특하네요. "다" 자 돌림이라고요?
네, 큰 딸은 다해, 둘째 아들은 다윗, 막내는 다니엘입니다. 아이들 이름에는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다해는 '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고백을 담아 지은 이름입니다. 임신했을 때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를 아이들의 이름에 새기고 싶었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이름들이네요. 이번 한국 방문은 어떤 이유로 오셨나요?
첫째 다해와 둘째 다윗이가 매년 정기 검진을 받아야 합니다. 한국 병원에서 검사도 받고, 약물 치료에 대한 의사 선생님과 상담도 할 겸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자녀들의 건강 문제로 한국에 오셨군요. 자세한 이야기는 차차 들어보겠지만, 과테말라에서의 선교 사역은 어떻게 진행하고 계신가요?
저희가 사역하는 곳은 과테말라 산타마리아 까께라는 인디오 마을입니다. 폐쇄적인 분위기가 강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많습니다. 특히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많아서, 기아대책 결연 아동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방과후 교실 운영, 예배, 가정 방문, 재난 구호 활동 등 다양한 사역을 펼치고 있습니다.
250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돌보고 계신다고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과테말라에는 언제 처음 가게 되셨나요?
2015년에 처음 과테말라 땅을 밟았습니다.
많은 나라 중에 과테말라를 선택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나요?
어머니와 새아버지가 과테말라에서 선교사로 사역하고 계셨습니다. 과테말라라는 이름은 익숙했지만, 당시에는 특별한 마음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남편과 저는 북아프리카나 이슬람권 선교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슬람권 선교사님들과 교류도 많았고, 이사야서를 읽던 중 아Assyria와 애굽Egypt이 세계의 복이 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당시 이집트와 아시리아는 기독교를 박해하는 국가였기에, 하나님께서 반전 드라마를 쓰시겠다는 의미로 해석했습니다. 그 역사에 쓰임 받고 싶다는 열망이 컸습니다. 하지만 이슬람 국가 선교에 대한 응답은 쉽게 오지 않았습니다. 선교사 파송을 위한 서류를 준비하던 중, 남편은 선교사 합숙 훈련에 들어갔고 저는 집에서 기도했습니다. 어느 날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너는 어디든 간다고 하면서 왜 과테말라는 빼놓고 기도하니?"라고 물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부모님이 계시고, 선교 센터도 이미 잘 갖춰진 과테말라는 넓은 길처럼 느껴졌습니다. 굳이 가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네가 보기에는 어떠하든, 예수 이름이 필요한 곳이 선교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과테말라로 가라는 부르심을 느꼈습니다. 남편 또한 선배 선교사님들과 상담하며, 부모님이 계신 곳이 부르심의 자리일 수 있다는 조언을 듣고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그렇게 저희 부부는 과테말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여행 유튜브 영상에서 아름다운 여행지를 보며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선교사님들이 향하는 곳은 치안이 불안하고 위험한 곳이 많습니다. 과테말라도 치안이 위험한 나라로 알고 있는데, 그런 곳에 비전을 품고 행복해하시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부모님도 계시고 현지 상황을 잘 아실 텐데, 위험성을 알면서도 어떻게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었나요?
겉으로 보기에는 위험하고 어려운 곳이지만, 하나님께서 어떻게 변화시키실지에 대한 기대와 소망이 큽니다. 원석을 발견하는 기쁨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본래의 아름다움을 회복시키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여행지를 보며 사진 찍고 자랑하고 싶어 하지만, 선교사님들은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어떻게 변화시키실지 기대하는 관점이 다르네요.
정확히 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나라에 세우실 복음의 역사를 기대하며 나아갑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텐데, 세 아이를 데리고 위험한 곳에 가는 것에 대한 걱정은 없으셨나요?
큰 딸은 만 4살, 둘째 아들은 만 2살, 막내는 10개월 때였습니다. 아이들 걱정이 컸지만, 막연하게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갔던 것 같습니다. 그곳에도 사람 사는 곳이고, 아이들도 자라니까 한국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선교 열정에 사로잡혀 현실적인 걱정은 뒤로 밀어두었던 것 같습니다.
스페인어를 전혀 못 배우고 가셨다고요? 준비성이 철저하신 완벽주의자라고 들었는데, 어떻게 무모하게 떠나셨나요?
원래 저는 30분 단위로 생활 계획표를 짤 정도로 완벽주의 성향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제 성격을 완전히 바꾸셨습니다. 과테말라에 도착하자마자 스페인어를 못하는데도 글 없는 전도지 스페인어 버전을 달달 외워서 골목골목을 다니며 전도했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학교 앞에서 전도하기도 했습니다.
말도 안 통하는데 전도를 하셨다고요?
아이들이 질문하면 "질문하지 마!"라고 하고, 외운 내용만 읊었습니다. 못 알아들으니 그냥 제 할 말만 계속했습니다. 어느 날, 센터에 자주 오던 아이가 보이지 않아 집을 찾아갔습니다. 엄마 혼자 아이를 키우는데, 늦게까지 일을 나가시는 듯했습니다. 엄마에게 화가 났지만, 스페인어를 못해서 싸우지도 못하고 그냥 나왔습니다. 마을을 돌며 하나님께 아이를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거짓말처럼 아이를 만났습니다. "너 어디 사냐?" 물으니, 남자 친구와 산다고 했습니다. 15살 어린 나이에. "왜 남자 친구와 사귀냐?" 물으니, "다 좋다"고 새침하게 대답했습니다. 성령님께서 아이의 외로움을 느끼게 하셔서 "너 그동안 많이 외로웠니?"라고 물었더니, 아이가 갑자기 펑펑 울기 시작했습니다. 엄마는 새벽 6시에 나가 밤 8시에 퇴근하고, 아이는 어린 동생을 돌봐야 했습니다. 외로움과 고립감에 지쳐 있었던 겁니다. 남자 친구와의 관계는 성적 쾌락이 아닌,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탈출구였던 것입니다. 아이를 집으로 돌려보내지 못하고 기도하며 헤어졌습니다. 집에 돌아오면서 '나는 지금까지 뭐 한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프로젝트만 열심히 기획하고 결과에만 집중했지, 진정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살피지 못했습니다. 저는 선교사가 아니라 프로젝트 기획자일 뿐이라는 엉터리 선교사라는 자각에 괴로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열정에 찬물을 끼얹으신 사건이었습니다. 이후 아이들의 아픔을 겪으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깨닫고, 엉터리 선교사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가진 선교사로 변화되어 갔습니다.
어린 나이의 성 문제는 심각한 문제죠.
네, 15세 미만 미성년자 임신 출산이 매우 심각합니다. 폐쇄적인 인디오 마을 특성상, 근친상간도 많습니다. 삼촌과 결혼하거나, 새아버지의 아이를 갖는 미성년자 소녀들이 많습니다.
정말 어려운 상황이네요. 성 문제 관련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정신적, 심리적 치유가 필요한 아이들이 많을 텐데, 정말 많은 일이 필요하겠네요. 선교사님 이야기를 들으면 늘 축복받는 이야기만 듣고 싶지만, 어려운 이야기들을 들을 때 마음이 무겁습니다. 오늘은 건강하게 자녀분들과 함께 오셨지만, 자녀분들에게 아픔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자녀분들의 이야기부터 시작해 볼까요?
큰 딸 다해는 과테말라에 간 지 3-4개월 만에 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둘째 다윗이는 집에서만 지내다 한국에서 어린이집을 좋아했던 기억에 유치원에 보내기로 했습니다. 스페인어를 못해도 아이가 잘 지내는지 궁금해서 유치원 선생님께 물어봤지만, 매번 "잘 지낸다, 잘 적응한다"는 대답만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이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콧물이 얼굴에 범벅이 되어 집에 오고, 기저귀도 젖은 채로 돌아왔습니다. 한국 유치원과는 다른 개념인가 생각했습니다. 계속 괜찮다고 했지만, 아이는 점점 현지인들과 소통을 거부하고, 스페인어만 들으면 짜증을 내고, 단기 선교팀에게도 반응하지 않고 투명인간처럼 지냈습니다. 다윗에게 자폐가 있나 싶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해져서, 2018년 한국에 와서 검사를 받았습니다.
검사 결과는 어떠했나요?
상담 선생님께서 다윗이 과테말라에서 왔다고 하니 스페인어로 인사를 건넸는데, 다윗이가 입을 막고 귀를 막으며 극도로 거부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검사 결과, 뇌전증과 지적 장애 진단을 받았습니다. 당시 만 4세였는데, 지능 수준은 IQ 48-50 정도였습니다. 배변 훈련도 안 되어 있었고, 숟가락질도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병원에서는 더 이상 발달은 어려울 것이고, 퇴행만 막는 것이 치료 목표라고 했습니다. 소아 신경과에서는 발작을 통제할 약을 빨리 찾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정도 상황이면, 선교를 접고 한국으로 돌아와 치료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한국에 돌아오고 싶었습니다. 남편에게 상황을 설명했고, 남편은 과테말라에서 정리하고 한 달 후에 한국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과테말라를 정리할 마음으로 돌아갔지만, 남편 마음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다윗의 상황을 몰랐지만, 하나님은 이미 알고 계셨음에도 우리를 보내셨다. 다윗을 위해 모든 것을 예비하셨을 것이다. 이곳에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남편분께서 설교를 하셨군요.
네,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나는 다윗을 위해 한국에 가겠다. 당신 혼자 사역하라"고 했습니다. 남편도 지쳤는지 "그럼 아이 데리고 2년만 한국에 가 있어라. 나는 혼자 사역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기도해보니 그것도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냥 그렇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과테말라 유치원에서도 다윗의 상황을 몰랐던 건가요?
병원에 다녀온 후, 유치원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다윗이 장애 진단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전했더니, "아, 그래서 그랬구나"라고 하시는 겁니다. 다윗이 유치원에서 자기 반에 들어간 적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7시 반부터 12시 반까지 유치원에 있었지만, 늘 놀이터나 밖에서 혼자 방치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콧물이 범벅이 되고 기저귀가 젖은 채로 돌아온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왜 나에게 한마디도 말해주지 않았을까, 왜 상황을 알려주지 않았을까 원망스러웠습니다. 과테말라의 모든 것이 싫어졌습니다.
마음이 무너지는 심정이었겠네요.
네, 모든 것이 싫어졌습니다.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은 계속 과테말라에 있겠다고 하고, 매일 싸웠습니다. 집안에서 세계 3차 대전이 벌어졌습니다.
결국 어떻게 결론이 났나요?
남편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가라고 해야 움직일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매일 기도하며 "과테말라에 있는 것이 믿음인가, 한국에 가는 것이 믿음인가" 철없는 질문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신명기 1장 33절 말씀을 주셨습니다. "너희보다 먼저 가시며 장마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의 행할 길을 지시하신 자시니라" 먼저 가시며 길을 인도하신다는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다시 하나님께 여쭤봤습니다. "먼저 가시는 건 알겠는데, 어디로 가시나요? 한국인가요, 과테말라인가요? 불과 구름 기둥은 무엇인가요?" 기도 중에 '불과 구름 기둥은 남편'이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순간 어금니를 깨물었습니다. "알겠습니다"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하나님과 남편의 말씀에 순종하여 과테말라에 남기로 했습니다.
기도 응답이 결국 순종으로 이어진 것이군요. 편안한 길을 택하고 싶을 텐데, 순종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요. 감사함으로 순종이 되셨나요?
마침 하나님께서 감사 기도를 시키셨습니다. "내 아이가 평생 고치지 못하는 장애를 가지고, 하루에도 수십 번 발작하는 아이 앞에서 내가 뭘 감사해야 하나?"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순종해야 하니, 억지로 감사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주어진 상황에 대한 감사를 했습니다. "지금이라도 병을 발견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중보 기도자들을 붙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발작에도 뇌 손상 없이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억지 감사였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과테말라에 남기로 결정하셨네요. 전문가가 든든한 지원군이 필요하다고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어떻게 현실적인 어려움을 극복해나가셨나요?
예전에 사역에만 몰두했던 제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다윗뿐 아니라, 다해와 다니엘도 엄마의 손길이 필요했습니다. 다윗처럼 아픔과 상처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아이들에게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간식을 챙겨주고, 공놀이, 그림 그리기, 만들기, 배드민턴 등 아이들과 촘촘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이들이 잠들고 나면 매일 눈물이 났습니다. '아이들이 엄마를 필요로 할 때 함께 있어주지 못해서 다윗이가 아프게 된 건 아닐까'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2-3년만이라도 아이들에게 집중했더라면 다윗이가 아프지 않았을 거라는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아이가 아프면 부모는 죄책감에 무너지기 쉽습니다.
맞습니다. 죄책감은 더 큰 고통으로 다가옵니다.
어느 날 밤, 가슴이 짓눌리고 숨쉬기조차 힘들어 밖으로 나갔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가로등 불빛만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주님, 포기하고 싶어요. 더 이상 못하겠어요. 주님 품에 안겨 쉬고 싶어요." 펑펑 울었습니다. 하지만 어둠에 잠식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심호흡을 하고 가로등 불빛을 바라봤습니다. "하나님, 저 밝은 가로등 불빛만큼이라도 제게 비춰주세요." 빛을 간절히 갈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때 이사야 53장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받았도다." 예수님께서 징계를 받으신 이유가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기 위함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말씀이 임하는 순간, 제 안에 빛이 들어오는 듯 평안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저의 아픔과 슬픔, 고통을 아시고 십자가를 지셨다는 사실이 가슴 깊이 와 닿았습니다. 고난 주간 직전이었는데, 십자가의 은혜가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느껴졌습니다. 주님 안에서 큰 위로와 안식을 누렸습니다.
정말 힘든 시간들을 보내셨네요. 수년간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셨는지, 다윗을 어떻게 사용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변화가 일어났나요?
단기 선교팀이 저희 사역지를 방문했습니다. 다윗의 이야기를 듣고 미국에서 다시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습니다. 이전에도 비슷한 제안을 많이 받았기에 흘려들었지만, 그분은 미국으로 돌아가셔서 직접 병원을 컨택해주셨습니다. 병원에서 한국 검사 결과와 소견서를 영문으로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모든 서류를 준비해서 보냈더니, 병원 의료팀에서 회의 후 재검사를 제안했습니다. 필요한 검사 항목과 함께 검사비 5만 달러를 알려왔습니다. 5만 달러라는 거액에 막막했습니다. "하나님, 5만 달러라니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제 욕심으로 다윗을 검사받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이라면, 저희 생활비는 단 1달러도 쓰지 않고 검사 여정을 감당할 수 있게 해주세요."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병원 매니저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왜 답변이 없냐고 묻길래, 솔직하게 사정을 이야기했습니다. 매니저가 병원 재정 지원 프로젝트를 소개해줬습니다. 서류를 준비해서 지원했지만, 선교사인 저희는 100% 서류를 충족할 수 없었습니다. 기대 없이 서류를 보냈습니다. 미국 의사들은 한인 의사들에게 저희 기도 제목을 듣고 "재정 지원 프로젝트는 시민권자, 영주권자가 1순위이고, 3순위가 제3국 가난한 사람인데, 선교사님 차례까지는 거의 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방법을 찾아보라고 했습니다. 포기하려던 찰나, 병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다윗에게 6개월 동안 필요한 모든 의료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겠다는 놀라운 제안이었습니다.
정말 기적적인 일이네요!
네, 하나님께서 일하신 겁니다! '생활비는 1달러도 쓰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병원을 연결해준 전도사님께서 지인들에게 소식을 전해서 미국 체류 동안 호텔, 식비, 교통비까지 모두 후원받았습니다. 정말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미국에 갈 수 있었습니다.
미국 어느 지역이었나요?
텍사스였습니다. 검사를 마치고 결과를 기다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치료 방법이 있어서 미국으로 보내셨을 거라 기대했지만, 검사 결과는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의사 선생님 상담도 한국보다 만족스럽지 못했고, 기존 약을 계속 복용하라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실망스러웠지만, 의사 선생님이 유전자 검사를 권유했습니다. 유전자 담당 교수님을 만나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기로 하고 과테말라로 돌아왔습니다. '왜 미국에 보내신 거지? 왜?' 답답했습니다. 며칠 후, 병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유전자 검사 결과, CHD2 유전자 결핍으로 뇌전증과 지적 장애가 발병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날 밤, 다윗을 재우려고 성경을 읽어주는데, 요한복음 9장 말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말씀을 읽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이전에도 하나님께서는 계속 "네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지만, 저는 하나님의 음성이 아닌 제 합리화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말씀을 통해 다시 한번 명확하게 "네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모든 죄책감이 사라지고, 비로소 감사 고백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다윗의 아픔은 내가 뭘 잘못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시기 위함이구나. 하나님 영광을 드러내시기 위해 유전자 하나 빼고 창조하셨구나.' 다윗뿐 아니라, 다윗을 키우는 저 또한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죄책감에 사역도 못하고 아이들에게 집착하며 불안에 떨던 저를 살리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그 모든 기적을 일으키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정말 놀라운 기적입니다. 병원 측에서 거액의 검사비를 무상으로 제공한 것도 기적이고요. 죄책감에서 해방되신 후, 하나님께서는 또 어떻게 역사하셨나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하나님께서 다윗을 직접 치료하셨습니다. 병원 검사 후, 집 근처 기독교 학교 유치원에 다윗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학교에서 매일 전화가 왔습니다. "다윗이 운동장에서 안 들어와요. 교실 바닥에 누워 있어요. 친구 팔을 물었어요. 의자를 던졌어요. 영어 시간에 쫓겨났어요." 매일 죄인이 되는 기분이었습니다. 학교에 가서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어느 날, 너무 죄송해서 학교에 못 보내겠다고 학교에 갔더니, 선생님께서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 아니시냐.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다윗을 포기하지 말라"고 격려해주셨습니다. 그 선생님은 정말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실한 분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귀한 선생님을 붙여주신 것입니다. 선생님의 사랑 덕분에 유치원에서 받은 상처가 치유되고, 사람들과 소통하고 세상 밖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받은 상처를 사람을 통해 치유해주신 것입니다. 병원에서는 다윗의 발달이 멈출 것이라고 했지만, 이제는 잘 걷고, 서 있고, 자전거도 탑니다. 몸의 균형 감각이 부족해서 비틀거렸고, 손발이 굳어갔었는데, 이제는 건강하게 뛰어다닙니다. 어느 날, 방에 갔더니 다윗이가 잠옷으로 갈아입고 있었습니다. 깜짝 놀라서 "다윗아, 혼자 옷 갈아입었어? 누가 도와줬어?" 물으니, "다니엘이 도와줬어"라고 했습니다. 혼자 했다는 말에 단추를 다시 풀어보라고 시켰습니다. 제 눈앞에서 단추를 풀고 다시 잠그는 것을 보고, 영상을 찍어 남편에게 보여줬습니다. 남편과 함께 그날 밤, 하나님께서 하시니 된다는 사실에 감격하며 울었습니다. 또, 코로나로 아이들이 집에만 있을 때, 아이들끼리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는 것을 봤습니다. 다해는 다윗에게 "다윗아, 같이 타자"고 했고, 다윗은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몸의 균형 감각에 문제가 있어서 못 탈 거라고 생각했는데, 해내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역사를 다시 한번 경험했습니다. 다윗의 삶을 주관하시고 치료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깨달았습니다.
정말 놀라운 변화네요. 다해 양에게도 어려운 일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2년 전, 제가 다윗 검사 때문에 한국에 와 있을 때, 과테말라에서 남편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다해가 쓰러졌다. 의식이 없다." 몸이 강직되고, 눈이 돌아간 채 쓰러졌다는 것입니다. 병원에 데려가 검사를 받으라고 했지만, 다해는 의식을 잃은 후부터 계속 제게 전화를 했습니다. 30분 간격으로 영상 통화를 걸어 "엄마, 엄마" 하며 울었습니다. 쓰러지면서 안경이 깨지고 얼굴에 멍이 들고 눈 초점도 흐릿했습니다. 안심시키고 기도했습니다. 그때도 하나님께서 마다의 찬양 가사를 떠오르게 하셨습니다. "다 이해할 수 없을 때라도 감사하며..." 하나님께서 다시 감사를 요구하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나님, 선하십니다. 감사합니다. 다해를 사랑하십니다. 감사합니다." 계속 감사 기도를 했습니다. 그때 다니엘이 큐티 책을 들고 와서 "엄마, 오늘 큐티 안 했는데, 큐티해요"라고 했습니다. 다니엘서 말씀을 묵상하는데, 왕들을 높이기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고, 모든 것을 주기도 하시고 거두어 가시기도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묵상 후, 다윗을 안고 기도하며 "다윗의 삶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했는데, "내가 다윗의 삶에만 주관자가 되겠느냐?"라고 물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아니요, 하나님은 다해의 삶에도 주관자가 되십니다"라고 고백하는 순간, 드라마처럼 '이겼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과거 교통사고와 감전 사고에서도 다해를 지켜주셨던 하나님께서 이번에도 살리실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지만, 이 일조차도 하나님의 선하심 안에 있겠구나' 믿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다해가 아프든 안 아프든, 약을 먹든 안 먹든, 과테말라에 살든 어디에 살든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을 더 잘 알 수 있는 곳이면 됩니다." 믿음으로 기도했더니, 제 안에 '이겼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 주에 다해가 한국에 와서 검사를 받았는데, 뇌전증 진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주님 안에서 모든 것을 이긴 상태였기에,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다해에게 "감기 걸려 약 먹는 것과 똑같다. 뇌전증 때문에 너를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이상한 거다. 네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다해를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었습니다. 이후 잘 지내다가 작년 11월, 다윗이가 차 안에서 거품을 물고 쓰러진 적이 있습니다. 그때 다해가 펑펑 울었습니다. 다윗 걱정도 되었겠지만, 자신이 쓰러질 때 모습이 떠올랐던 것 같습니다. 부모로서 마음은 아팠지만, 감정에 동요되지 않았습니다. 다해를 위로하며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우리에게 있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고 안심시키고 재웠습니다. 그날 밤 기도하며 묵상하는데, '내가 믿음이 좋아서 믿음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믿음의 길로 이끄시니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해가는구나' 깨달았습니다. 다윗 문제로 힘들 때마다 파도처럼 감정이 요동쳤지만, 이제는 하나님께서 저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가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야기 들으면서, 옆에 계신 따님 다해 씨도 계속 눈물을 흘리시네요. 당시 기억이 떠올라서겠죠.
네, 계속 눈물이 나네요.
과거의 힘든 일들을 추억처럼 이야기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얼마나 마음 졸이며 하루하루를 보내셨을까요.
정말 외로웠습니다.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상담할 곳도 없었습니다. '내 아이만 이런가' 생각하며 괴로웠습니다. 어디에도 털어놓을 곳이 없다는 것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남편 선교사님도 힘드셨겠죠. 두 아이가 아프니…
남편은 힘든 내색을 안 했지만, 엄청난 고민을 했을 겁니다. 제작년 선교 보고 때, "세 아이 중 둘이 아프니, 더 좋은 의료 환경에서 치료받게 하고 싶은 아버지 마음과, 부르심에 순종하고 싶은 사명자 소명이 충돌한다"고 고백했습니다. 매일 밤 갈등하며 괴로워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로마서 11장 29절 말씀,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묵상하며, '왜 후회하지 않으실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온전하시고 전지전능하시기에 후회하지 않으신다는 묵상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우리를 부르셨으니, 이 모든 과정 또한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다. 지금 과테말라에 보내신 것을 후회하지 않으실 것이다' 믿음이 생겼습니다. 선택의 기로에서 갈등했지만, 하나님의 성품을 묵상하며 답을 찾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후회하지 않으시니, 우리도 후회하지 말고 과테말라로 돌아가자" 결론 내리고, 선교 보고를 했습니다.
정말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저희 사역지가 시골이라, 아이들 학교까지 차로 40분-2시간 반 걸립니다. 학교 버스에 에어컨도 안 나와서 더운 날에는 아이들이 지쳐서 내립니다. 다윗이가 아프다고 할 때면, 학교 근처에 집을 얻어서 생활할까 고민도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250명 결연 아동과 가정을 돌보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학교 근처로 가면 프로젝트는 진행할 수 있겠지만, 아이들과의 정서적 거리감은 멀어질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 제가 주님 마음에 순종하여 이곳에 있겠습니다. 아이들 책임져주세요' 기도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9년 차 선교사역, 쉽지 않은 길을 걷고 계시네요. 기아대책 결연 아동 돌봄 외에 현지에서 하시는 일들을 소개해 주세요.
250명 결연 아동 방과후 교실, 주 1회 예배와 성경 공부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예배 후 아이들에게 기도 제목을 받는데, 3분의 1 이상이 가정 폭력 관련 기도 제목을 냈습니다. "하나님, 제가 착한 아이가 되어서 아빠가 때리지 않게 해주세요" 기도하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폭력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잘못해서 맞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알코올 중독 문제도 심각하고, 알코올 중독과 폭력은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들 기도 제목을 보며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아이들은 전쟁 같은 삶을 살고 있는데, 나는 집에서 편안하게 기도만 하고 있구나'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그날부터 아침마다 학교에 가서 아이들을 축복해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기도해주고 학교에 보냅니다. 학교 가기 전, 축복과 사랑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중고등부 아이들은 가난 때문에 일을 많이 합니다. 주중에 일하고 주말에 학교에 가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매일 만날 수 없기에, 주 1회 예배와 컴퓨터, 영어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 상황을 점검하고, 가정 심방과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전화 심방, 가정 심방도 진행합니다. 얼마 전, 한 아이가 수술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방문했습니다. 가난한 지역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아야 합니다. 아버지만 계신 가정이었는데, 아이 수술과 간호 때문에 아버지가 2주 동안 일을 못 하게 되면서 수입이 끊겼습니다. 수도 병원에 가려면 하루 종일 걸리고, 치료비도 부담이었습니다. 가정을 방문해보니 현실적인 어려움을 더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자녀가 아플 때, 다른 자녀들을 집에 두고 가야 하는 부모 마음도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큰 도움을 줄 수는 없지만, 병원 가는 시간이라도 단축시켜주고 싶어서, 지역 보건소에서 해결 안 되는 문제는 저희가 직접 병원에 데려다주고, 의료비도 지원하고 있습니다.
정말 많은 도움을 주고 계시네요. 재정적인 어려움도 많을 텐데, 어떻게 운영하고 계신가요?
대부분 기아대책 후원으로 사역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 하나님께서 다른 방법으로 채워주실 때도 있습니다. 결연 아동 가정에 아기가 태어났다고 해서 축하 방문을 갔는데, 엄마 표정이 어두웠습니다. 자궁 적출 수술을 해야 하고, 아기는 7개월 만에 태어나 모유 수유도 못하고, 분유 살 돈도 부족해서 아이가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출생신고조차 못 하고 있다는 말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센터 예산을 살펴봤지만, 100% 지원은 어려웠습니다. 막막한 마음으로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SNS에 글을 올려보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SNS에 글을 올렸더니, DM이 쏟아졌습니다. "분유 값 얼마예요? 제가 한 통 후원할게요. 세 통, 열 통, 다섯 통…." 얼굴도 모르는 분들이 분유와 기저귀 값을 후원해주셨습니다. 8개월 동안 먹을 분유와 기저귀 값이 순식간에 마련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이를 살리신 것입니다. 내년에 초등학교 입학하는 아이입니다. 1년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은 조건 없이 사랑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전에는 어려움이 닥치면 '내가 부족해서, 죄를 지어서 그런가' 자책했지만, 하나님은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입니다. SNS 후원 사건 이후, 비자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는데, SNS 후원자 중 한 분이 저희 기도 제목을 보시고 비자 발급 비용을 헌금해주셨습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통해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선교지에 있지만, 최고 수혜자는 저인 것 같습니다. 매일 각 가정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며,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구나' 깨닫고, 그 하나님께서 저희 가정에도 동일하게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선교지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해외 결연 아동 후원 때문에 감동받은 적도 있으시다고요?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 세계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후원자님들이 후원을 중단하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생필품을 전달하려고 가정들을 초대했는데, 한 아버지와 아들이 명단에 없는데 찾아왔습니다. 후원 중단 사실을 말씀드리니, 아버지가 스페인어로 뭐라고 하시다가, 지역 언어로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지역 언어를 이해하는 아들에게 물어보니, "10년 동안 후원 덕분에 학교에 다닐 수 있었고, 생필품도 받으며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후원이 끊겨서 후원자님이 어려워졌다는 소식을 들으니 마음이 아프다. 후원자님은 가족과 같다. 후원이 끊겼지만, 평생 후원자님을 위해 기도하겠다. 감사하다고 꼭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정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결연 아동 가정이 후원자를 돈을 주는 사람이 아닌, 가족처럼 생각한다는 사실에 감사했습니다.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네요. 후원자님들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이 정말 귀합니다.
저 또한 후원 아동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편지를 주고받는데, 늘 후원자 가정을 위해 기도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지구 반대편 아이들이 나를 위해 기도해준다는 것은 정말 큰 축복입니다. 저희 부부가 결혼 후 4년 동안 아이가 없었는데, 후원 아동들이 사진 속 아이가 왜 없냐고 물었습니다. 아이가 없다고 했더니,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기도해주었고, 4년 후 첫째 다해가 생겼습니다. 아이들이 기도 덕분에 아이를 갖게 되었다고 기뻐했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을 서로 주고받는 관계, 그것이 후원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정말 아름다운 관계네요.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현지에서 장애 아동을 위한 사역도 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코로나 시기, 장애 아동 가정에 생필품을 지원하려고 학교에 문의했더니, 장애 아동이 두 가정뿐이라고 했습니다. 과테말라에서는 아직 눈에 보이는 장애만 장애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윗처럼 겉으로 멀쩡하면 장애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집중 못하고, 공부 못 따라가는 아이들도 포함해달라' 부탁했더니, 열 가정을 소개해주셨습니다. 가정 방문을 해보니, 다윗이 학교에서 겪었던 어려움과 똑같은 문제들을 겪고 있었습니다. 부모님들은 학교에 죄인처럼 드나들고, 아이들을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몰라 힘들어했습니다. 다윗을 키우면서 장애 아동 가정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장애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고백하면, 부모님들은 눈빛이 달라지고 울면서 마음을 열었습니다. 부모님들의 어려움을 공감하고, 함께 기도했습니다. 특수 학교, 장애 아동 예배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예배 시간에 통제가 어려워지고, 부모님들은 교회 가기를 힘들어했습니다. 유기성 목사님 설교를 듣던 중, '실패할 거면 시작도 안 할 거냐'는 질문이 마음을 울렸습니다. '스페인어도 부족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어떻게 시작하지?' 망설였지만, '아이들은 계속 자라난다'는 말씀에 용기를 냈습니다. 평소 교류하던 다운증후군 아이가 있는 교회 목사님, 사모님께 함께 사역하자고 제안했더니 흔쾌히 동참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준비해놓으시고, 제가 순종하기만을 기다리셨던 것 같습니다. 다섯 명 아이들과 장애 아동 예배를 시작했습니다. '장애 아동 예배'라고 하면 부모님들이 거부감을 느낄까 봐 '주일학교 예배'로 오픈했더니, 오히려 지적 장애 아동들이 더 많이 왔습니다. 다윗을 키우면서 지적 장애 아동 특징을 알게 되니, 아이들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습니다. 결연 아동 중에도 지적 장애 아동들이 있었지만, 부모님들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말 안 듣는 아이, 공부 못하는 아이' 부정적인 시선으로 아이들을 대했습니다. 부모님들께 조심스럽게 검사를 권유했고, 병원에서 발달 장애 진단을 받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장애 아동 가정을 돌보고, 아이들과 예배를 드리면서 다윗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항상 장애 아동들을 함께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그 아이들과 가정을 위해 기도하라는 마음을 부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를 통해 부모 마음을 이해하게 하시고, 더 큰 사역으로 이끄시는 것 같습니다. 힘든 시간들을 보내셨지만, 주님께서 함께 하시니 앞으로도 잘 감당하시리라 믿습니다. 계속해서 과테말라에서 사역하실 건가요?
주님께서 "같이 하자" 하시면 해야죠. 인간적으로는 그만하고 한국에 돌아오고 싶지만, 제가 결정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시청자분들에게 기도 제목을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
저희 지적 장애 아동들이 다윗 또래입니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ABC, 123 가르치는 것보다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직업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직업 재활 훈련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필요한 공부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직업을 갖고 자립할 수 있도록 훈련 여건이 마련되도록 기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오늘 유한나 선교사님 간증을 들으면서, 많은 분들이 도전을 받고 위로를 받으셨을 것입니다. 자매님도 오늘 눈물을 많이 흘리셨는데, 소감이 어떠신가요?
선교사님께서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저는 반대로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것을 후회하시면 어떡하지?' 생각했던 적이 많았습니다. 저는 연약하고 부족한데,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것을 후회하실까 봐 불안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간증을 들으면서, 하나님께서는 연약하고 부족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리를 부르셔서, 우리가 할 수 없는 일들을 하게 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셨다면 장애 아동들을 위한 사역을 시작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니, 순종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큰 계획을 가지신 하나님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하나님과 가까이하는 자는 매일매일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귀한 깨달음 감사합니다. 균형진 형제는 어떠셨나요?
사모님 이야기를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면, 저렇게 평안한 얼굴을 하실 수 없을 텐데, 이야기하시는 내내 평안하고 웃으시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주님께서 하시는구나' 느꼈습니다.
오늘 유한나 선교사님과 귀한 시간 함께했습니다. 선교사님 간증처럼, 우리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며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오직 주님께 찬양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