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최형만 목사의 인생 역전 감동스토리와 신앙 간증
웃음과 눈물의 인생 역전: 개그맨에서 목사로
웃음 뒤에 감춰진 깊은 고뇌: 개그맨 최형만 목사의 파란만장 인생 역정
이번 글에서는 웃음을 선사하는 개그맨에서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로 삶의 궤적을 완전히 바꾼 최형만 목사의 진솔한 인생 이야기를 심층적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최형만 목사는 최근 '새롭게하소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여 파란만장했던 과거와 현재 목회자로서의 삶, 그리고 앞으로의 비전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는데요, 그의 이야기는 단순한 성공담을 넘어, 고난과 역경 속에서 피어난 한 인간의 숭고한 영혼을 보여줍니다. 본문은 2만 자 내외의 상세 정리글로, 최형만 목사의 인터뷰 내용을 텍스트 형태로 재구성하여 독자들에게 더욱 깊은 감동과 깨달음을 선사하고자 합니다.
# 끝나지 않는 고난의 시작: 어린 시절의 아픔
최형만 목사는 목회자였던 아버지 밑에서 자랐지만, 어린 시절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에 대한 깊은 속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아버지의 특별한 배경 때문이었습니다. 최 목사의 아버지는 한국 전쟁 당시 월남하여 혈혈단신으로 남한에 정착해야 했으며, 가족과의 생이별이라는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셨습니다. 가족을 다시 만나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굳게 믿고 남쪽으로 왔지만,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면서 아버지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최 목사의 아버지는 44세라는 늦은 나이에 결혼하여 최 목사를 낳았습니다. 당시 사회 통념과는 다소 거리가 먼 늦둥이 아들이었던 최 목사는, 나이 많은 아버지를 둔 탓에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기도 했습니다. "할아버지 아니냐"는 친구들의 짓궂은 질문은 어린 최 목사에게 깊은 상처로 남았습니다. 가정 형편 또한 넉넉지 못했습니다. 최 목사가 9살 되던 해, 이민 사기를 당하면서 집안은 순식간에 몰락했고, 길거리에 나앉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가세가 기울면서 최 목사는 초등학교를 6번이나 전학해야 했고, 새로운 학교에 전학 갈 때마다 자신을 소개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나 싫었습니다. "착하고 공부 잘하는 학생"이라는 뻔한 소개 멘트가 듣기 싫었던 그는, 교장실에서 교장 선생님에게 혼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더욱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어린 시절, 최 목사는 친구들로부터 심한 거절감을 느껴야 했습니다. 짝꿍으로 앉았던 여자아이가 다음 날 선생님께 짝꿍을 바꿔달라고 요청하는가 하면, 가정환경조사 시간에 아버지 직업을 떳떳하게 이야기하지 못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당시에는 목회자라는 직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지금과는 달랐습니다. 선생님조차 목회자를 '기타' 항목으로 분류하는 현실 속에서, 최 목사는 아버지의 직업을 밝히는 것조차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너희 아버지는 교회도 없으면서 무슨 목사냐"는 친구들의 놀림은 어린 마음에 깊은 상처가 되었고,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최 목사는 죽음의 문턱까지 넘나드는 사고를 겪기도 했습니다. 4살 때 옆집 개에게 얼굴을 물리는 사고로 얼굴 피부가 뜯겨나가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마취도 없이 생살을 꿰매는 고통스러운 치료 과정은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트라우마로 남았습니다. 9살 때는 동생을 심하게 때린 후 어머니에게 야단을 맞고 시골 할머니 댁에 맡겨졌는데, 버려졌다는 생각에 극심한 절망감을 느껴 겨울 날씨에 집을 뛰쳐나가기도 했습니다. 죽고 싶다는 생각으로 길을 걷다 변기통에 빠지는 아찔한 사고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겨울철 재래식 변기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어린 최 목사를 할머니가 간신히 구해냈지만, 죽음의 공포는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 개그, 도피처이자 희망의 빛
어린 시절의 잇따른 불행은 최형만 목사에게 깊은 상처와 결핍을 남겼습니다. 거절에 대한 두려움, 열등감, 낮은 자존감은 늘 그를 따라다니는 그림자였습니다. 자신을 드러낼 만한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던 그는, 오히려 튀는 행동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 했습니다. 코미디언 흉내를 내고, 소풍 가면 어떻게든 웃기려고 애썼지만, 내면은 늘 외롭고 공허했습니다.
개그는 최 목사에게 도피처이자 동시에 희망의 빛이었습니다. 사람들을 웃기는 재능은 그에게 인기를 가져다주었지만, 카메라 울렁증은 극복해야 할 숙제였습니다. 카메라 앞에만 서면 긴장하고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탓에, "기회를 줘도 안 뜨는 개그맨"이라는 낙인이 찍히기도 했습니다. 선배 개그맨으로부터 "넌 비호감이야"라는 모진 평가를 듣고 큰 상처를 받기도 했습니다. 방송국 PD에게 아이디어를 거절당할 때면,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좌절감을 느끼며 밤거리를 헤매기도 했습니다. 끊임없는 좌절 속에서 최 목사는 방송계를 떠나 유학을 결심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출연했던 프로그램은 '폭소클럽'이었는데, 당시 탈모가 시작되면서 머리를 밀고 성대모사 개그를 선보여 인기를 얻었습니다. 도울 김용옥 성대모사는 그의 대표적인 개그 레퍼토리였지만, 코미디언으로서의 삶은 점점 막다른 길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절망감은 그를 깊은 우울증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렸던 그는, 매일 새벽 4시가 넘어서야 잠들 수 있었고,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 벽을 주먹으로 치기도 했습니다. 힘든 현실을 잊기 위해 술에 의존하는 날이 많아졌지만, 술은 오히려 그의 고통을 더욱 심화시킬 뿐이었습니다.
# 절망의 늪에서 만난 하나님의 음성
방송 활동이 뜸해지면서 최형만 목사는 책 집필에 몰두하기 시작했습니다. 책에 몰입하는 시간은 잠시나마 현실의 고통을 잊게 해주는 도피처였지만, 문득 찾아오는 불안감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새벽 2시까지 책을 쓰다 잠시 인터넷 기사를 검색하던 중, 후배 개그맨이 건물주가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순간, 극심한 박탈감에 휩싸였습니다. "나는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이렇게 책을 써서 뭘 할 수 있다는 거야?" 좌절감과 함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그를 짓눌렀습니다.
죽고 싶다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떠올랐지만, 배고픔은 그를 이 세상에 붙잡아 두었습니다. 새벽 시간, 뼈해장국집을 찾았지만, 술에 취한 손님들로 가득했습니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뼈해장국을 먹고 있는데, 옆 테이블 취객이 그를 알아보고 "똑바로 살라 이 새끼야!"라고 고함을 칩니다. 황당한 상황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취객의 고함이 최 목사에게 하나님의 음성처럼 들려왔습니다. 절망과 무기력감에 휩싸여 있던 그에게, "똑바로 살라"는 외침은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메시지였습니다. 술 취한 사람의 입술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신 놀라운 경험은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분노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희미해졌습니다. 아버지 나이가 되면서 비로소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게 되었고, 사기를 당하는 고통을 직접 겪으면서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아버지가 교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집에서 무력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며 실망했지만, 방송 활동을 중단하고 무대를 잃은 고통을 겪으면서 아버지의 심정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픈 일은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이며,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어도 보여줄 수 없는 것 또한 큰 고통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아버지의 시신을 보며 그는 깊은 슬픔과 함께 알 수 없는 미소를 느꼈습니다. 고난으로 점철된 아버지의 삶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아버지의 웃는 얼굴에서 삶의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은 술과 타락으로 이어졌지만, 어머니의 새벽 기도는 그의 마음을 끊임없이 두드렸습니다. 새벽 4시 반, 술에 취해 귀가하는 아들을 따뜻하게 맞이하며 "잘 갔다 와"라고 말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냉랭했던 그의 마음에 작은 균열을 일으켰습니다. 어머니의 변함없는 사랑은 그를 절망의 늪에서 건져내는 끈이었습니다.
# 운명적인 만남, 그리고 새로운 시작
최형만 목사는 아내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통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결혼식장에서 우연히 만난 아내에게 첫눈에 반했지만, 아내는 그를 남자로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까칠한 인상에 머리숱 없는 최 목사는 아내의 이상형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아내는 강남에서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운영했는데, 최 목사는 매일같이 레스토랑을 찾아 식사를 하고 손님을 끌어모으는 등 헌신적인 구애 작전을 펼쳤습니다. 영업부장을 자처하며 아내 곁을 맴돌았지만, 아내의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았습니다. 결혼 계획까지 미뤄둔 채 독신으로 살겠다는 아내의 단호한 태도에 좌절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구애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에게 갑상선저하증이 발병합니다. 만사가 귀찮아지고 의욕을 잃은 아내는, 지칠 줄 모르고 구애하는 최 목사에게 결국 마음을 열게 됩니다. 얼떨결에 시작된 결혼이었지만, 신혼여행에서 아내는 문득 "내가 원했던 결혼은 이게 아니었는데..."라는 후회와 실망감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아내는 최 목사와의 결혼 생활을 통해 진정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최 목사는 신학대학원에 진학했고, 부업으로 시작한 스크린골프장 사업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아내는 남편 때문에 사기를 당해 큰 빚을 지게 되었고, 가정 경제는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빚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내던 아내는, 기도원을 다니며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기도했지만, 문제는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삶의 끈을 놓고 싶을 만큼 힘든 시간을 보내던 아내는, 차 안에서 잠시 쉬던 중 창문 틈 사이로 강렬한 빛이 쏟아지는 환상을 경험합니다. 3초라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천국을 경험하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환상을 경험한 후, 아내는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께 온전히 의지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합니다.
최 목사 부부는 연이어 사기를 당하는 불운을 겪기도 했습니다. 스크린골프장 사기에 이어 아내는 아파트 경매 투자 사기를 당해 큰 빚을 졌고, 최 목사 또한 주식 투자 사기를 당하는 등 끊임없는 금전적 어려움에 시달렸습니다. 잇따른 불행은 부부 관계를 위기로 몰아넣었습니다. "당신하고 살 희망이 없다"는 아내의 절망적인 말에 최 목사는 이혼을 결심하고 법원을 찾았습니다. 변호사와 이혼 상담을 받고 이혼 서류를 작성했지만, 도장을 찍는 마지막 순간에 웃음이 터져 나오면서 이혼은 해프닝으로 끝났습니다. 이혼 위기를 극복한 후, 부부는 더욱 굳건한 믿음 안에서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갑상선저하증을 기도로 치유받는 기적을 체험하기도 했습니다.
# 목회자의 길, 사명과 소명 사이에서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겪으면서 최형만 목사는 사람에 대한 깊은 불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대인기피증까지 생길 정도로 사람 만나는 것을 꺼리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목회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합니다. 목회자 아들로 살면서 겪었던 갈등과 방황은, 오히려 그를 진정한 목회자의 길로 인도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겉과 속이 다른 자신의 모습에 환멸을 느끼고 목회를 포기하려던 순간, 뇌종양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습니다. 뇌종양 수술은 18시간에 걸친 대수술이었고, 수술 후 고열과 세균 감염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넘나드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사경을 헤매는 동안 요한계시록의 환상을 보고, 어둠 속에서 진정한 아버지를 찾는 간절함을 느끼게 됩니다.
뇌종양 수술 후유증으로 왼쪽 귀는 영구적으로 들리지 않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목회자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신학대학원에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간증을 들으며 큰 은혜를 받았고, 진정한 목회자의 삶에 대한 소명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 단련된 믿음은, 그를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목회자로 성장시켰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삶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해석이 중요하다"고. 자신에게 닥친 고난을 징계가 아닌 강제 학습의 기회로 받아들이고, 고난을 통해 더욱 성숙한 믿음으로 나아가는 긍정적인 자세를 보여줍니다.
최형만 목사는 과거 화려한 스탠드업 코미디 무대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했지만, 이제는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진정한 기쁨을 선사하는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말합니다. 여전히 갈등하고 불평하며 더 잘되고 싶은 욕망과 싸우지만, 매 순간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어가겠다는 의지를 다집니다. 그는 성도들에게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성경 말씀을 전하며,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 것을 격려합니다. 유튜브 채널 '최형만 기상나팔'을 통해 매일 아침 짧지만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며, 잠든 영혼을 깨우는 나팔수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말미에 최형만 목사는 "교회가 기뻤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피력했습니다. 눈물과 슬픔만이 가득한 교회가 아니라, 웃음과 기쁨이 넘쳐나는 교회, 진정한 복음의 기쁨을 나누는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전했습니다. 스탠드업 코미디를 통해 단련된 유머 감각과 뛰어난 언변은,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강점이 되고 있습니다. 최형만 목사는 앞으로도 특유의 유머와 진솔한 간증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전하는 목회자로 기억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