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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최형만 목사의 인생 역전 이야기와 신앙 고백

요약

웃음과 눈물, 최형만의 파란만장 인생 드라마

개그는 목사가 되기 위한 훈련: 개그맨 최형만 목사의 인생 이야기

오늘 우리는 특별한 분을 모시고 인생 이야기를 깊이 나누어 볼 예정입니다. 바로 개그맨에서 목회자로 삶의 궤적을 완전히 바꾼 최형만 목사님인데요. 과거 돌 김영옥 성대모사로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던 그가 이제는 강대상에서 진솔한 설교로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궁금했던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 여정과, 개그와 목회라는 극과 극의 삶을 살게 된 배경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듣보잡 개그맨에서 목회자로: 최형만 목사의 변신

최형만 목사님은 2020년 4월에 안수를 받고 목회자의 길을 걷기 시작하여, 벌써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최근 방송을 통해 목사로서의 삶이 공개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는데요. 과거 화려했던 개그 무대를 떠나, 어떻게 하나님의 무대에 서게 되었는지 그의 인생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집니다. 과거 성대모사 달인이자 모창의 달인이었던 개그맨 최형만의 모습은 이제 뒤로하고, 목사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겠습니다.

새롭게하소서에 출연한 최 목사는, 과거 개그를 잠시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BC와 AD를 코미디에 접목시켜, "Before Comedian"과 "After Duloulos(종)"라는 언어유희를 통해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또한 출연진들의 이름을 이용한 즉흥적인 설교 개그를 선보이며, 녹슬지 않은 개그 감각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처럼 뛰어난 개그 감각을 가진 그가, 왜 목회자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을까요? 그 배경에는 그의 특별한 가정 환경과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가 숨겨져 있습니다.

목회자 아버지의 아들, 숨기고 싶었던 과거

최형만 목사는 사실 목회자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놀랍게도 정범균 씨와 주영훈 씨 또한 목회자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하는데요. 하지만 최 목사는 과거 아버지의 직업을 숨기고 싶어 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 이유는 아버지와의 특별한 관계 때문이었는데요. 그의 아버지는 이북에서 홀로 내려와 목사가 된 분으로,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 힘겹게 목회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최 목사는 어린 시절 아버지에 대한 깊은 기억이 없다고 말하며, 그 이유가 아버지의 특별한 상황 때문이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최 목사의 아버지는 전쟁통에 가족을 두고 월남하여, 44세라는 늦은 나이에 결혼하여 최 목사를 낳았습니다. 당시 17, 18세가 결혼 적령기였던 시대에, 그의 아버지는 할아버지뻘 나이에 결혼한 셈입니다. 목회자 자녀로서 겪는 고충에 대해 최 목사는, 아버지의 나이가 많다는 사실 때문에 학교에서 창피했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친구들은 아버지를 할아버지라고 놀렸고, 그는 아버지의 직업 때문에 남모를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목회자 자녀로서, 그리고 나이 많은 아버지의 아들로서, 최 목사는 어린 시절부터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민 사기와 길거리 노숙, 9살에 겪은 고난

9살 때, 최 목사 가정은 이민 사기를 당하며 길거리에 나앉게 되는 더욱 큰 고난을 겪습니다. 가족은 이민을 계획하며 전 재산을 투자했지만, 사기를 당해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집과 교회, 아버지의 모든 것을 잃고 길거리에 내몰린 것입니다. 9살 어린 나이에 겪은 이 사건은, 최 목사에게 깊은 결핍과 상처를 남겼습니다. 가난으로 인해 1년에 한 번씩 이사를 다녀야 했고, 학교에 전학 갈 때마다 자신을 소개하는 것이 너무나 싫었다고 합니다.

초등학교를 6군데나 다녔다는 최 목사는, 전학 갈 때마다 겪어야 하는 소개 시간이 끔찍했습니다. 선생님은 늘 "착하고 공부 잘하는 학생"이라고 소개했지만, 현실은 정반대였습니다. 교장실에서는 아버지에게 "공부도 못하고 적응도 못하는 학생"이라는 질책이 쏟아졌습니다. 어린 최 목사는 아버지 때문에 욕먹는 상황에 큰 상처를 받았고, 그때부터 '아들이 제대로 못하면 아버지가 욕먹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잦은 이사와 가난, 학교에서의 어려움은 어린 최 목사에게 깊은 상처와 결핍을 남겼습니다.

짝꿍에게 거절당했던 어린 시절의 상처 또한, 최 목사에게 깊은 트라우마로 남았습니다. 선생님이 짝을 지어줬지만, 다음 날 짝이 바뀌어 있었던 것입니다. 짝꿍이었던 여자아이가 선생님께 짝을 바꿔달라고 요청했던 것입니다. 어린 나이에 겪은 거절감은, 성인이 된 후에도 방송국 PD에게 아이디어를 거절당할 때마다 극심한 좌절감을 느끼게 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야, 이게 뭐야, 따위를 가져와"라는 PD의 냉정한 평가에, 그는 어린 시절 짝꿍에게 거절당했던 상처를 다시 떠올리며 괴로워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가정환경 조사 시간 또한, 최 목사에게는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아버지 직업을 거수하여 발표하도록 했지만, 그는 목회자라는 아버지의 직업을 당당하게 밝힐 수 없었습니다. 목회자는 당시 사회에서 흔한 직업이 아니었고, 선생님조차 목회자를 '기타' 항목으로 분류하는 현실 속에서, 어린 최 목사는 아버지의 직업에 대한 수치심을 느껴야 했습니다. 교회 이름이 뭐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그는 대답하지 못하고 정지 화면처럼 굳어버렸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교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친구들은 "너희 아버지는 교회도 없는 가짜 목사"라며 놀렸고, 어린 최 목사는 깊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최 목사는 아버지의 슬픈 모습을 목격하고 돈을 벌어야겠다고 결심합니다. 창문 너머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사람들을 부럽게 바라보는 아버지의 모습에, 그는 아버지에게 교회를 세워드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지키지 못했습니다. 교회를 세우는 것이 돈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목회자 자녀로서, 그리고 가난한 환경 속에서 자라면서 겪었던 상처들은, 최 목사에게 깊은 아픔으로 남아있습니다. 훗날 개그맨이 되어서도 "요즘 어디 방송에 나오세요?"라는 질문에 상처받았던 그는, 어린 시절부터 겪어온 상처들이 쉽게 아물지 않았음을 고백했습니다. 가난한 친구들에게 빵과 우유를 선별적으로 나눠주는 학교의 잔인한 방식 또한, 어린 최 목사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너 빵하고 우유 당첨됐다"는 선생님의 말은, 가난하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수치스러운 경험이었고, 그는 빵과 우유를 집어 던지며 울분을 토했습니다. "왜 우리 이렇게 거지처럼 살아야 하냐"는 그의 절규는, 가난으로 인한 어린 시절의 깊은 상처를 보여줍니다.

죽음의 문턱까지 넘나들었던 어린 시절의 고비들

최 목사는 어린 시절, 죽음의 고비를 여러 번 넘나들었다고 고백했습니다. 4살 때, 옆집 개에게 얼굴을 물려 죽을 뻔한 사고를 당했습니다. 개가 밥 먹는 중에 꼬리를 잡아당겼다가, 얼굴을 물려 심각한 부상을 입은 것입니다. 마취도 없이 생살을 꿰매는 고통 속에서, 그는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트라우마를 겪었습니다. 이 사건은 그의 내면에 깊은 분노를 심었고, 훗날 분노 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개에게 물린 상처는, 그에게 평생 지워지지 않는 컴플렉스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개 물린 놈"이라고 수군거렸고, 그는 자신의 상처를 숨기며 살아야 했습니다.

9살 때는 동생을 심하게 때린 후, 시골 할머니 댁에 맡겨졌다가 버려졌다는 생각에 자살 시도를 했습니다. 겨울 날씨에 집을 나가 방황하던 중, 저체온증으로 죽을 뻔했습니다. 겨울 똥통에 빠지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할머니가 구해줘서 목숨을 건졌지만, 어린 나이에 겪은 죽음의 경험은 그에게 큰 트라우마로 남았습니다. 똥통에 빠졌던 수치스러운 경험은, 훗날 출애굽기 만나를 '똥떡'으로 해석하는 독특한 성경 해석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만나를 똥떡으로 해석하며, 그는 애굽에서의 수치스러웠던 과거를 하늘의 떡으로 덮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습니다.

거절감과 열등감, 낮은 자존감으로 얼룩진 사춘기

어린 시절 겪었던 거절감, 상처, 분노는 사춘기 시절에도 이어져, 그의 삶을 더욱 힘들게 했습니다. 늘 거절에 대한 두려움과 열등감, 낮은 자존감에 시달렸고, 자신을 내세울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결핍감과 낮은 자존감은 그를 '까부는' 아이로 만들었습니다. 코미디언 흉내를 내고, 소풍 가면 인기를 얻었지만, 내면은 늘 외롭고 쓸쓸했습니다. 개그맨이 된 후에도, 아이디어를 거절당하거나 선배들에게 비호감이라는 평가를 들을 때마다, 어린 시절의 상처가 되살아나 극심한 고통을 느꼈습니다. "넌 안 돼, 비호감이야"라는 선배의 말은, 그를 절망의 늪으로 빠뜨렸습니다. 그는 밤새도록 길거리를 헤매며 괴로워했고, 개그맨으로서의 삶을 포기해야겠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카메라 울렁증 또한, 그의 개그맨 생활을 더욱 힘들게 했습니다. 카메라 밖에서는 웃기지만, 카메라만 켜지면 긴장해서 제대로 실력 발휘를 못하는 울렁증 환자였던 것입니다. 술을 마시고 녹화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결국 편집되는 굴욕을 겪어야 했습니다. "쟤는 기회를 줘도 안 뜨는 개그맨"이라는 선배들의 평가는, 그의 자존감을 더욱 깎아내렸습니다. 맥주 호프집에서 선배에게 "넌 안 돼, 비호감이야"라는 말을 들었던 날, 그는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감을 느꼈습니다. 그날 밤, 그는 아홉 살 때 죽으러 갔던 심정으로 밤새도록 길거리를 헤매며 괴로워했습니다.

개그맨 은퇴와 우울증, 술로 얼룩진 방황

결국 최 목사는 방송을 그만두기로 결심하고 유학을 준비했습니다. 개그맨으로서의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출연했던 프로그램은 '폭소클럽'이었고, 여기서 돌+아이 김영옥 성대모사로 마지막 불꽃을 태웠습니다. 하지만 개그맨으로서의 삶을 마감하는 순간, 그는 깊은 비참함을 느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일을 내려놓는 고통은 상상 이상이었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렸던 그는, 술에 의존하며 더욱 깊은 방황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매일 새벽 4시가 취침 시간이었고, 잠이 오지 않아 벽을 주먹으로 치기도 했습니다.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조차 두려워했던 그는, 술로 고통을 잊으려 했습니다.

술은 그의 고통을 잠시 잊게 해주는 듯했지만,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술에 취해 아버지에게 "하나님이 있다면 왜 집에 계시냐"며 막말을 퍼붓기도 했습니다. 개그맨 은퇴 후 책을 쓰기 시작했지만, 후배 개그맨의 건물주 성공 소식을 접하고 깊은 박탈감을 느꼈습니다. "나는 책을 써서 뭘 하겠다는 거지?" 자괴감에 빠진 그는, 또 다시 술을 찾았습니다. 새벽 2시, 술에 취해 해장국집에서 밥을 먹던 중, 옆 테이블 취객으로부터 "똑바로 살아, 이 새끼야!"라는 뜬금없는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술 취한 남자의 꾸지람은 그에게 하나님의 음성처럼 들렸습니다. 좌절과 절망에 빠져 있던 그에게, "똑바로 살라"는 외침은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메시지였습니다. 그는 술 취한 남자의 입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특별한 경험을 했습니다.

이혼 위기와 아내의 기도, 그리고 목회자의 길

사기, 사업 실패, 경제적 어려움은 가정 불화로 이어졌고, 결국 이혼 위기까지 겪게 됩니다. 아내는 "당신과 살아도 희망이 없다"며 이혼을 요구했고, 최 목사 또한 아내를 놔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변호사를 만나 이혼 서류를 작성했지만, 마지막 순간 인감도장 때문에 이혼은 무산되었습니다. 인감도장을 찾으러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부부는 웃음이 터지며 화해했고, 이혼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이후 아내는 기도에 매달렸고, 갑상선 저하증이 기도 중에 치유되는 놀라운 경험을 합니다. 아내의 치유 경험은 최 목사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아내는 투자 사기로 빚을 지고 극심한 고통을 겪었지만, 기도를 통해 삶의 의미를 되찾았습니다. 창문 틈 사이로 들어온 빛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고,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리게 된 것입니다.

최 목사 또한 아내의 변화를 지켜보며 신앙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목회자 아들로서 살아왔지만, 진정한 신앙인이 되지 못했던 자신을 돌아보며, 존경하는 이재철 목사님의 교회로 옮겨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재철 목사님과의 면담을 통해, 동양 철학 대신 신학을 공부하라는 권유를 받고 신학대학원에 진학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목회자가 될 생각은 없었지만, 신학 공부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경험하고, 목회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신학대학원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간증을 들으며, 자신의 삶이 얼마나 부족하고 연약한지 깨닫고 회개했습니다. 수면제 수십 알을 먹고 자살 시도했던 전도사, 백혈병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난 전도사들의 이야기는, 그의 마음을 깊이 울렸습니다. 그는 신학대학원에서 진정한 목회자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고, 빚진 자의 심정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했습니다.

뇌종양 수술과 죽음의 경험, 그리고 깨달음

목회자의 길을 걷던 중, 최 목사는 뇌종양 진단을 받고 죽음의 문턱까지 가는 고비를 넘깁니다. 이석증인 줄 알았던 어지럼증의 원인이 뇌종양이었던 것입니다. 3.8cm 크기의 뇌종양은 20년 동안 자라온 것으로 추정되었고, 그는 긴급하게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18시간에 걸친 대수술 후, 8일 만에 퇴원했지만, 고열과 세균 감염으로 다시 14시간의 재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40도까지 치솟는 고열 속에서, 그는 요한계시록 환상을 보고 죽음을 경험했습니다. 어둠 속에서 아버지 찾는 환상 속에서, 그는 진짜 아버지를 만나야 영원한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뇌종양 수술과 죽음의 경험은, 그의 신앙을 더욱 깊어지게 만들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면서, 그는 다윗이 경험했던 고난의 의미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에게 뇌종양은, 환경적인 고난이 아닌 보이지 않는 영적인 골짜기였던 것입니다. 수술 후유증으로 왼쪽 귀는 들리지 않게 되었지만, 그는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고, 징계의 참 의미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징계는 벌이 아니라, 강제 학습을 통해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최 목사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삶 자체가 아니라, 삶을 해석하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성경적인 관점으로 고난을 해석할 때, 비로소 고난은 축복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뇌종양 투병 경험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해석하며, 그 속에서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경험했다고 고백합니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깊이 신뢰하게 되었고,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현재 어둠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성도들에게, 하나님께 솔직하게 나아가라고 권면합니다. 잘났든 못났든, 죄인이든 의인이든,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늘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는 삶을 통해,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최형만 목사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유튜브 채널 '최영만 기상 나팔'을 소개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습니다. 그는 매일 아침 1분짜리 짧은 메시지를 통해, 잠든 영혼을 깨우는 '기상 나팔'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과거 개그를 통해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었던 그는,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사람들에게 영원한 기쁨과 소망을 전하는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과 도전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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