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최형만 목사, 웃음 뒤 눈물과 신앙 인생 역전 스토리
웃음 뒤 감춰진 눈물, 개그맨 최형만 목사의 인생 역전
웃음 뒤에 감춰진 깊은 고뇌: 개그맨 최형만 목사의 파란만장 인생과 신앙 여정
오늘 우리는 웃음과 감동, 그리고 깊은 성찰이 가득한 특별한 이야기를 함께 나눌 텐데요, 바로 개그맨에서 목회자로 인생의 궤적을 바꾼 최형만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파란만장했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 걸어갈 목회자의 길에 대한 진솔한 고백을 통해, 우리는 삶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돌 김영옥 선생님의 성대모사로 웃음을 선사했던 개그맨 최형만은 이제 강대상에서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가 되었는데요, 과연 그에게는 어떤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요? 지금부터 그의 인생 이야기를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최형만 목사는 2020년 4월에 목사 안수를 받고 4년 차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는데요, 개그맨이라는 익숙했던 타이틀 대신 목사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아직은 어색하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최근 방송을 통해 목사로서의 삶이 공개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는데, 오늘 이 자리에서 그의 인생 여정과 신앙 간증을 통해 그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랜만에 카메라 앞에 선 최형만 목사는 과거 성대모사 개그를 선보이며 여전한 유머 감각을 뽐내기도 했는데요, "인생은 편집"이라는 재치 있는 입담으로 웃음을 자아내며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습니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최형만 목사는 자신의 대표 개그였던 '사루키' 콩트를 짧게 선보여 좌중을 폭소케 했는데요, "예수 그리스도가 BC를 AD로 바꿨다"는 기발한 발상으로 시작된 그의 개그는 'B.C. (Before Comedian)'이었던 자신이 'A.D. (After the Lord)', 즉 'After Doulos (종)'가 되었다는 신앙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정범균, 주영훈, 연예인 세 사람의 이름을 활용한 즉흥적인 이름풀이 개그는 그의 뛰어난 순발력과 재치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는데요, 주영훈에게는 '주 예수 그리스도, 영, 스피릿, 훈'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며 목사가 되기에는 '훈 (가르침 훈)' 자가 부족하다는 유머를 선사했습니다. 연예인에게는 '말씀을 연히 (끊임없이) 전하는 사람'이라는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며 재치와 신앙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개그를 선보였습니다.
찰리 채플린의 명언을 인용하며 인생을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본질은 잔혹극이라고 정의한 최형만 목사는, 인생의 잔혹극을 막기 위해 하나님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는 복음의 핵심 메시지를 간결하고 명쾌하게 전달했습니다. 자신의 개그를 "짧은 설교 말씀"이라고 칭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그는, "하루에 30개도 만들 수 있다"는 개그 창작 능력이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임을 고백하며, 앞으로 강단에서 새로운 설교 패턴을 통해 가슴에 와닿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는 목회 비전을 밝혔습니다. 개그 무대 대신 하나님의 무대에 서게 된 계기를 묻는 질문에 최형만 목사는 목회자였던 아버지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며 가슴 아픈 가족사를 고백하기 시작했습니다.
최형만 목사는 목회자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숨기고 싶었던 과거를 솔직하게 고백하며, 아버지는 함경북도 출신으로 전쟁 통에 남한으로 피난 오셨다고 밝혔습니다. "금방 가족을 데려오겠다"고 약속했지만 휴전선 때문에 영영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아버지는, 혈혈단신 남한 땅에서 극심한 고독과 가난 속에 병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병원 대신 기도원을 찾았던 아버지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셨다고 하는데요, 17~18세가 결혼 적령기였던 시대에 44세라는 늦은 나이에 결혼하여 최형만 목사를 낳으셨다고 합니다. 목회자 자녀로서 겪었던 고충에 대한 질문에 최형만 목사는 나이 많은 아버지 때문에 학교에서 느꼈던 창피함을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늘 할아버지 같았다"는 친구들의 놀림과 가난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나이 때문에 느꼈던 열등감은 어린 시절 그의 마음속에 깊은 상처로 남았습니다. 아홉살 때 겪었던 이민 사기 사건은 그의 가정을 길거리로 내쫓는 듯한 고통을 안겨주었는데요, "집과 교회, 모든 것을 잃고 길거리에 나앉게 되었다"고 회상하며 당시 극심했던 경제적 어려움을 짐작하게 했습니다. 아홉살 어린 나이에 겪었던 가정 파탄은 결핍으로 이어져, 그는 초등학교를 여섯 번이나 전학 다녀야 했다고 합니다. 새 학교 강단 위에서 새 학생 소개 시간은 그에게 가장 끔찍한 경험이었는데요, "착하고 공부 잘하는 학생"이라는 선생님의 칭찬 멘트와 달리, 교장실에서 "공부도 못하고 문제아 같은 학생"이라는 아버지 욕설을 듣게 되면서 그는 큰 상처를 받았다고 합니다.
"아들이 제대로 못하면 아버지가 욕먹는구나"라는 생각은 어린 최형만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되었고, 새 학교에서 새 친구를 사귀는 것조차 버거운 일이었습니다. 짝꿍 여자 아이에게 거절당했던 어린 시절의 상처는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거절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고 고백했는데요, 방송국 PD에게 아이디어 거절당할 때마다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시절 가정환경조사 시간에 목회자 아버지 직업을 밝히는 것조차 두려움의 대상이었는데요, "기타" 항목에 목사라고 적어야 했던 현실과 교회 이름을 묻는 선생님과 학생들의 시선은 그에게 "지옥" 같은 경험이었다고 합니다. 교회가 없었던 아버지 때문에 "거짓말쟁이", "노는 아버지"라는 오해를 받았던 어린 시절의 상처는 그의 마음속에 깊고 깊게 뿌리내렸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창문 너머 교회를 예배드리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던 그는, "돈을 벌어 아버지께 교회를 세워드리겠다"고 약속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을 깨닫고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고 합니다. 목회자 자녀로서 "어느 교회 다니세요?"라는 질문에 상처받았던 경험은, 개그맨 시절 "요즘 어디 나오세요?"라는 질문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사람이 싫어졌다"고 고백할 정도로 대인기피증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는 그는, "TV도 안 보면서 묻는 질문"에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고 합니다. 가난한 친구들에게 빵과 우유를 선별 지급했던 학교 급식 제도는 어린 시절 그에게 또 다른 상처를 안겨주었는데요, "가난의 기준이 뭔지도 모른 채, 가난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빵과 우유를 받는 현실"에 수치심과 분노를 느꼈다고 합니다.
"거지냐?"라고 울부짖으며 빵과 우유를 집어 던졌던 어린 최형만은, 가난한 현실과 부모에 대한 원망으로 힘겨운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죽음의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는 충격적인 고백은 그의 파란만장했던 인생 여정을 짐작하게 했는데요, 네 살 때 옆집 개에게 얼굴을 물려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끔찍한 사고를 회상하며, 당시 마취 없이 생살 꿰매는 고통과 트라우마가 내면에 깊은 분노를 심어주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개에게 물린 상처"는 컴플렉스가 되어, "오버하거나 지나친 행동을 하면 '개 물린 놈' 취급받을까"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아홉살 때 동생을 때려 분리 조치되었던 사건은 그에게 또 다른 죽음의 고비를 안겨주었는데요, "엄마에게 버림받았다"는 절망감에 겨울 길거리를 헤매다 죽음을 각오했다고 합니다.
"죽고 싶다"는 절규와 함께 두 시간 넘게 길을 걷던 어린 최형만은, 문득 떠오른 한센병 환자 촌 이야기에 공포심을 느끼고 본능적으로 집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부엌에서 고구마를 허겁지겁 먹다 탈이 났고, 겨울 재래식 화장실에 빠지는 황당한 사고까지 겪었다고 하는데요, 6~7m 깊이의 변기에 빠져 "살려달라"고 절규했지만, 기적적으로 할머니에게 구조되어 목숨을 건졌다고 합니다. "만약 한여름이었다면..."이라며 아찔했던 순간을 회상한 그는, "적당한 때 하나님이 머리숱을 주셨다"는 유머로 죽음의 고비를 넘긴 기적을 간증했습니다. 변기 사고 후 동네 사람들에게 "똥떡"을 돌렸던 웃픈 사연은, 출애굽기 만나 이야기와 연결시켜 자신만의 특별한 신앙 해석을 덧붙였습니다.
"만나는 똥떡이다"라는 파격적인 해석은, 애굽 배설물 같은 세상의 수치를 만나 (하늘의 떡)를 통해 극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학급 친구들과 부모로부터 받았던 거절감과 상처는 사춘기와 성인 시절까지 이어져 만성적인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거절에 대한 두려움과 열등감, 낮은 자존감은 그의 내면 깊숙이 자리 잡아, "나를 내세울 수 있는 것이 없어 까부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코미디언 흉내를 내고 소풍 때 인기를 얻었지만, 내면은 늘 외롭고 쓸쓸했다는 그는, "선배 개그맨들도 아이디어 거절을 당한다"는 위로에도 쉽게 상처받는 여린 감수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기회를 줘도 안 뜨는 개그맨"이라는 선배의 냉혹한 평가에 깊은 좌절감을 느꼈다는 그는, "화살을 정통으로 맞은 듯한 고통"을 겪었다고 합니다.
"화살을 뺄 때 더 아프다"는 비유는, 상처의 깊이와 치유의 어려움을 실감하게 했는데요, "세상이 뒤집어지는 듯한" 절망감에 밤새도록 길거리를 헤매기도 했다고 합니다. PD의 무심한 말 한마디에도 "갈기갈기 찢어지는" 상처를 받았다는 그는, "방송을 그만둬야겠다"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다고 합니다. 유학을 준비하며 코미디언 생활 정리를 고민하던 시점에, 마지막 방송 프로그램이었던 '폭소클럽'에서 탈모 때문에 머리를 밀고 '도울 김용옥' 성대모사 개그를 선보이며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고 합니다. "더 이상 코미디언이 아니다"라고 결심하는 순간 극심한 비참함을 느꼈다는 그는, "가장 좋아하는 일을 내려놓는 고통"은 상상 이상이라고 토로했습니다. 개그 외길 인생을 걸어왔던 그에게 개그는 "가장 좋아하는 일"이자 "가장 행복한 일"이었지만, 영원히 할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닫고 좌절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왜 연단의 도구로 개그를 사용하셨는지 깨달았다"는 그는, 앵커 역할, 성대모사 등 혼자 하는 개그를 주로 했던 자신의 개그 스타일이 목회 강단에 최적화된 훈련 과정이었음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강단 목회는 "원맨쇼"와 같다는 비유는, 그의 개그 경험이 목회 사역에 큰 자산이 되었음을 시사합니다. 정범균과 자신의 개그 스타일을 비교하며 "폭죽처럼 터지는" 단발성 개그와 "곰처럼 묵직하게 끌고 가는" 지속적인 개그를 대조한 그는, 자신의 개그 스타일이 강단 설교에 더 적합하다고 자평했습니다. 코미디언 은퇴 후 오랜 시간 동안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는 그는, 젊은 시절부터 우울증과 불면증을 만성적으로 앓아왔다고 합니다. "새벽 4시가 취침 시간"일 정도로 불면증이 심각했던 그는, "벽을 주먹으로 치며 잠들기도 했다"고 고백하며 당시 심각했던 분노와 고통을 짐작하게 했습니다.
신경정신과 진료 기록에 대한 사회적 편견 때문에 병원 치료 조차 망설였던 그는, "약주 (술)를 많이 마셨다"고 고백하며 알코올 의존 경향이 있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술은 좌절감을 잊기 위한 도피처였지만, 상처 받은 마음에 불을 지르는 기폭제가 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술에 얽힌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며, 방송 활동 중단 후 책 집필에 몰두했던 시절 경험을 털어놓았는데요, 새벽 2시까지 책 집필 작업에 몰두하다 잠시 인터넷 기사를 보다 후배 개그맨의 건물주 등극 기사를 접하고 극심한 박탈감에 휩싸였다고 합니다. "책 쓰는 일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는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가능성도 희박하다"는 자괴감에 좌절했다고 합니다. "마귀가 틈타는 순간"이라고 표현하며, "죽고 싶다"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다고 합니다.
"내 인생은 안 되는 게 더 많다", "하나님도 나를 버리셨다"는 절망감에 휩싸였던 그는, 유명 목사와 건물주 개그맨을 비교하며 자신의 초라한 현실에 더욱 깊은 절망을 느꼈다고 합니다. "인간의 본성은 배고픔"이라며, 죽고 싶은 와중에도 배가 고파 밥을 먹으러 나섰던 웃픈 상황을 묘사했습니다. 목동 해장국집에서 술 취한 손님에게 "똑바로 살아, 이 새끼야!"라는 황당한 욕설을 들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욕설이 하나님의 음성처럼 들렸다고 합니다. "좌절하고 의욕을 잃었던 자신에게 '똑바로 살라'는 외침이 큰 울림을 주었다"고 고백하며, 술 취한 사람의 입을 통해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성경 속 당나귀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힘들 때마다 해장국집을 찾는다는 그는, "어떤 놈이 또 나타나 설교하라고 욕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유머러스하게 상황을 묘사했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받았던 상처와 분노는 이제 많이 사라졌다고 털어놓으며, 아버지 나이가 되어보니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기를 당해보니 아버지 마음을 알게 되었다"는 고백은, 이민 사기로 가정 파탄을 겪었던 아버지에 대한 이해와 연민을 느끼게 합니다. 성경 지식과 기도 능력이 뛰어났던 아버지가 "집에서 노는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던 과거 자신을 반성하며, "술 취해 아버지께 '하나님이 있냐'고 항의했던 불효 자식이었음을 고백했습니다. 방송 활동 중단 후 자신 또한 무대 없이 방황하는 시간을 보내보니,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고통을 절실히 느꼈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아픈 일"이라며, 무대 없이 고통받는 목회자들의 현실에 공감했습니다. "자녀들은 아버지가 골방에서 성경만 읽는 모습을 보며 '하나님은 있냐'고 묻는다"는 현실적인 고민은, 많은 목회자 가정이 겪는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고난의 강도를 함부로 알 수 없다"는 말은, 개인의 고통에 대한 섣부른 판단을 경계하는 겸손한 자세를 드러냅니다. "말씀에 공감하는 목회자들이 많을 것"이라며, 자신 또한 목회자 자녀로서 겪었던 고충을 털어놓았습니다. 하숙집 생활 등 가난한 환경 속에서 점점 찌들어가는 아버지의 모습은, 어린 최형만에게 "예수를 믿는데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나"라는 의문을 품게 했습니다. 아버지 임종 시 "웃고 계시는" 시신 모습은 그에게 더욱 큰 혼란을 안겨주었는데요, "하나님의 삶이 왜 이래야 하나"라는 근본적인 질문과 함께 아버지 삶에 대한 깊은 반항심을 느꼈다고 합니다.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은 술과 타락으로 이어져,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위기 상황까지 겪었다고 합니다. 새벽 4시 반 술 취해 귀가하는 아들에게 "잘 갔다 와요"라고 인사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그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습니다.
"기도해도 소용없다"며 어머니의 신앙을 비난했던 과거를 후회하며, 당시 "못된 놈"이었음을 자책했습니다. 우울 속에 빠져 살던 그에게 아내는 구원과 같았습니다. 아내와의 만남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오늘이 교회 저녁 예배에서 아내를 처음 만났다고 밝혔습니다. 결혼식장, 장례식장 등에서 예쁜 아내 모습을 눈여겨봤지만, 아내는 자신 같은 스타일을 싫어했다고 합니다. 주영훈, 정범균 스타일을 좋아하고 "머리 없고 말 많은 남자"를 싫어했다는 아내 이상형 고백은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KBS 개그맨 후배였던 아내는, 개그 활동 당시 최형만을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강남 이태리 식당을 운영했던 아내 식당에 매일 출근하며 "영업부장" 노릇을 했지만, 아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내가 갑상선 저하증으로 힘들어할 때, 끈질긴 구애 끝에 결혼에 골인했지만, 신혼여행 첫날밤 아내는 "내가 원했던 결혼이 아니었다"며 후회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기도 응답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천벌"이라는 자조적인 농담은 씁쓸한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아내는 결혼 후 "진짜 하나님을 만났다"고 고백하며, 그것이 결혼 생활 유일한 장점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신대원 진학, 부업 실패, 아내 사기 피해 등 연이은 고난 속에서 아내는 기도원에 매달리며 신앙에 의지했다고 합니다. 아파트 한 채 값에 달하는 사기 피해 금액은 가정 경제를 파탄 직전까지 몰고 갔지만, 아내는 기도 중에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며 절망 속에서 희망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삶의 의미를 잃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었던 아내"는, 차 창문 틈 사이로 들어온 빛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환상 가운데 경험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여기를 어떻게 가면 갈 수 있나요?"라는 아내의 간절한 기도는, 이후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내는 돈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짧게 이야기했지만,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하기 어렵다"는 진행자의 말처럼, 빚, 사기, 질병 등 끊임없이 닥쳐오는 고난은 보통 사람이라면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골프장 운영 사기 피해, 주식 투자 사기 피해 등 1년에 한 번씩 사기를 당했다는 웃픈 고백은, 그의 파란만장했던 인생 굴곡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가수 매니저 형에게 사기 당했던 황당한 사건을 털어놓으며, "좋은 투자 기회"를 미끼로 접근하는 사기꾼들의 전형적인 수법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었습니다. "좋은 걸 왜 남에게 권하겠냐?"는 일침은, 투자 사기에 대한 경계심을 강조하는 뼈 있는 조언이었습니다.
"전도를 하지 말고, 내 안에 진짜를 가지라"는 역설적인 메시지는, 삶으로 보여주는 진정한 전도의 의미를 강조합니다. 사기, 빚, 질병 등 끊임없는 고난 속에서 부부 모두 사기를 당하고 빚까지 지게 되는 상황은, 일반적인 가정이라면 상상하기 힘든 극심한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사람에 대한 대인기피증이 생겼다"는 고백은, 인간관계에 대한 깊은 불신과 상처를 짐작하게 합니다. "법원에 갔을 것 같다"는 진행자의 질문에, 실제로 이혼 변호사를 만났던 사실을 고백하며 충격을 주었습니다. "당신하고 살아도 희망이 없다"는 아내의 절망적인 말에 이혼을 결심했지만, 이혼 서류에 도장 찍기 직전 뜻밖의 해프닝으로 이혼 위기를 극복했다고 합니다. 이혼 서류에 필요한 인감도장을 찾다 웃음이 터지며 화해했다는 이야기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최형만 목사의 긍정적인 성격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이별 인감"이라는 말장난 유머는, 무거운 분위기를 환기시키며 좌중을 웃음 바다로 만들었습니다. 이혼 위기 후 아내는 기도에 더욱 매달리게 되었고, 갑상선 저하증 치유 기적을 체험했다고 합니다. 기도 중 "뜨거운 물이 온몸을 덮는 듯한 환상"을 경험한 후, 갑상선 저하증이 완치되었다는 기적 간증은 놀라움을 자아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네"라는 의사의 고백은, 기적 치유의 극적인 효과를 더욱 강조합니다. "빚진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깨달았다"는 그는, 최근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지인들 이야기를 꺼내며 빚 문제의 심각성을 경고했습니다. "극단적인 선택의 이유는 100% 빚 때문"이라는 단정적인 말은, 현실 경제 고통의 무게를 실감하게 합니다. "빚지고 죄짓고 죽음을 부르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는 메시지는, 현대 사회 경제 문제에 대한 묵직한 경고로 다가옵니다.
"빚질 일도 없고, 돈 빌려줄 일도 없다"는 단호한 태도는, 경제적 고난을 통해 얻은 삶의 교훈을 보여줍니다. 목회자가 된 계기를 묻는 질문에 최형만 목사는, "목회자 아들로서 살면서 겪었던 인지 부조화"를 언급하며 솔직한 심경을 고백했습니다. "겉으로는 웃지만, 내면에는 늑대의 본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자기 고백은, 그의 내면 갈등과 고뇌를 엿볼 수 있게 합니다. 존경하는 이재철 목사 교회로 옮겨 신앙생활을 하며 기독교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다는 그는, '폭소클럽' 종영 후 40대 초반 진로 고민 끝에 동양철학 대학원에 진학했다고 합니다. "철학 강의하며 인생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어머니 임종 후 이재철 목사와의 면담을 통해 신학 대학원 진학을 권유받았다고 합니다.
"목사 안 한다"고 initially 거부했지만, 이재철 목사의 강력한 권유에 신학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고민하면 신학대학원 못 간다, 단순해야 간다"는 농담 섞인 말은, 그의 솔직하고 쿨한 성격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신학 대학원에서 "엄청난 은혜"를 받았다는 그는, "자신의 삶이 얼마나 쓰레기 같았는지 깨달았다"고 강도 높게 자기 비판했습니다. 신학 대학원 동기들의 헌신적인 삶을 보며 깊은 감동과 회개를 경험했다는 그는, 밥 굶는 전도사, 사법고시 수석 출신 전도사, 백혈병 투병 전도사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동료 목회자 지망생들의 간증을 소개하며 감동을 더했습니다. 수면제 자살 기도 중 하나님 음성을 듣고 신학교에 온 전도사 이야기는, 극적인 감동과 울림을 선사했습니다.
"나는 너무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다"는 고백은, 타인의 고난 앞에 느끼는 죄책감과 겸손함을 보여줍니다. "삶의 의미를 잃은 사람들에게 신대원 방문을 추천한다"는 말은, 신앙 공동체 안에서 위로와 회복을 경험할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백혈병 투병 중 죽음 문턱에서 하나님 만난 전도사 이야기는, 죽음 앞에서 인간의 나약함과 신앙의 절실함을 깨닫게 합니다. "죽음 앞에서 돈, 인기 다 소용없다"는 일침은, 삶의 진정한 가치에 대한 성찰을 요구합니다. "잔 다르크, 배삼룡 선생님 요양원 영상을 보고 펑펑 울었다"는 고백은, 인생의 무상함과 덧없음에 대한 깊은 애 환을 느끼게 합니다. "죽음을 맞보고 다시 산다면 절대 이렇게 살 수 없다"는 다짐은, 삶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는 강렬한 메시지입니다. 신학 대학원 시절 수많은 간증을 들으며 회개했다는 그는, "나는 아버지 덕분에 신학교에 왔다"는 단순한 고백 외에는 내세울 것이 없었다"고 겸손하게 말했습니다.
"경북 안동에서 이름도 없이 빚도 없이 눈물 흘리며 목회하는 아버지" 이야기는, 이름 없이 빛도 없이 헌신하는 수많은 목회자들의 그늘진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목사님들을 함부로 비난하지 말라"는 당부는, 목회자 직업에 대한 존중과 이해를 요구합니다. 신학 대학원에서 진정한 목회자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는 그는, "지금도 목회자가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겸손하게 말했습니다. "목적은 목회자가 아니라, 오늘도 빚져 가신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이라며, 목회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줍니다. "오늘도 갈등하고 불평하는 부족한 모습이지만, 하나님이 주신 길을 묵묵히 걸어가겠다"는 고백은, 그의 진솔하고 겸손한 목회 자세를 엿볼 수 있게 합니다. 신학 대학원에서 하나님께 바짝 엎드리게 되었다는 그는, 기도 생활에 힘썼던 경험을 소개하며 기도 중 체험했던 다양한 에피소드를 털어놓았습니다.
기도 제목 대부분이 결혼 문제였다는 유머는, 신학생들의 현실적인 고민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전도사들이 장가를 못 간다"는 웃픈 현실은, 사역 현장의 어려움을 간접적으로 드러냅니다. 아픈 사람들을 위한 기도 제목이 많았다는 그는, 동생 사업 실패 후 고통 받는 모습을 보며 눈물 기도를 했던 가슴 아픈 사연을 고백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원망과 불평을 회개하며 눈물 흘렸던 기도 경험은, 그의 진솔한 회개 심정을 전달합니다. "신대원 내내 울다가 졸업했다"는 고백은, 그의 진정성 있는 신앙 여정을 보여줍니다. 학점 C 학점 고백 유머는, 진솔함 속에 위트를 잃지 않는 그의 성격을 보여줍니다. "기도를 소리 지르며 하다가 침묵 기도를 시작했다"는 그는, 내면 직면의 중요성을 깨닫고 침묵 기도 시간을 가졌다고 합니다.
침묵 기도 중 성경 말씀을 통해 깊은 영적 체험을 했다는 그는,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 환상을 보았던 놀라운 경험을 간증했습니다. 예수를 돌로 치는 사람들 속에 자신 모습을 발견하고 충격 받았다는 그는, "예수가 원하는 것을 주지 않으면 돌 던질 인간"임을 깨닫고 통곡했다고 합니다. "성경 속 역사가 바로 자신이었다"는 깨달음은, 성경 말씀의 현실 적용과 내면 변화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최근 방송에서 공개되었던 투병 이야기를 꺼내며, 뇌종양 투병 사실을 솔직하게 고백했습니다. "스트레스인 줄 알았던 이석증이 뇌종양 때문이었다"는 뜻밖의 진단 결과는, 충격과 안타까움을 자아냅니다. 3년 전부터 목회를 그만두고 싶었다는 그는, "겉과 속이 다른 자신의 모습에 혐오감을 느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힘내세요, 응원하세요"라는 겉 모습과 달리 "나는 죽겠다"고 외치는 내면 괴리감은, 그의 진솔한 고뇌를 보여줍니다.
목회 중단 고민 중 쓰러져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는 그는, "이석증인 줄 알았는데 뇌종양이었다"는 반전 스토리를 전했습니다. 얼굴 마비, 미각 상실, 시력 저하 등 뇌종양 증상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수술 결정 과정을 소개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18시간 대수술을 받았다는 그는, "죽다 살아났다"는 표현으로 당시 생사를 넘나들었던 고통스러운 경험을 간접적으로 전달했습니다. 수술 후 8일 만에 퇴원했지만, 40도 고열에 시달리는 고통을 겪었다고 합니다. 고열 속 요한계시록 환상을 경험했다는 그는, "죽음을 경험했다"는 충격적인 고백을 했습니다. "두려운 어둠, 말로 상상할 수 없는 공포"를 경험하며 지옥 같은 환상을 보았다는 그는, "진짜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면 어둠 속에 갇힌다"는 환상 의미를 해석했습니다. "진짜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는 간절함"은, 그의 신앙 심경을 대변합니다. 40도 고열 속 환상 경험 후 세균 감염 합병증으로 또 다시 수술대에 올라야 했던 고통스러운 투병 과정을 회상했습니다.
"천 명 중 한 명 걸릴까 말까 한 세균 감염"이라는 의사 말은, 그의 고난 강도가 얼마나 극심했는지 짐작하게 합니다. 세 번의 수술 후 부종 때문에 머리에 나사를 박는 고통까지 겪었다는 그는, 고난 속에서 신앙 의미를 찾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뇌종양 투병 과정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였음을 고백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병원 생활의 고통스러움을 회상하며, 당시 환자와 가족들이 겪었던 어려움에 공감했습니다. 응급실 24시간 금식 중 만났던 할머니 이야기를 소개하며,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 죄"라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잘못한 것 없이 고통받는 할머니 모습"은, 하나님 부재 상태의 고통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신대원, 개그맨 생활 열심히 했는데 왜 이런 고난을 주시냐"는 원망 섞인 질문은, 인간적인 고뇌를 드러냅니다. "삶보다 해석이 중요하다"는 깨달음은, 고난 속에서 신앙 의미를 찾는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인생 실패 인생"으로 규정될 수 있었던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성경으로 해석하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이라고 단언했습니다. "주영훈, 정범균 길은 남의 길, 내 길을 찾아야 한다"는 고백은, 개인의 고유한 소명과 길을 찾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가장 안전한 길을 주셨다"는 신앙 고백은,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는 긍정적인 태도를 보여줍니다. "결혼은 죽어가는 것"이라는 파격적인 정의는, 자기 희생적인 사랑의 본질을 강조합니다. "힘들고 안 맞는 결혼 생활이지만, 마지막에 하나님께 칭찬받는 삶을 살고 싶다"는 소망은, 그의 신앙 목표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죽음 앞에 모든 것은 부패하고 썩는다"는 인생무상 깨달음은,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는 삶의 중요성을 일깨워줍니다. "즐거움 주는 개그맨에서 기쁨 메신저 목회자로 변신했다"는 진행자의 말에, "아직도 부족하다"며 겸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