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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덕만 교수의 내려놓음과 가치 있는 신앙 인생 스토리

요약

요트 대신 친구: 배덕만 교수의 가치 있는 삶, 내려놓음의 축복

"요트를 사지 말고 요트 가진 친구를 사귀어라!" 배덕만 교수님의 삶을 통해 배우는 본질적인 가치

오늘 우리는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이야기, 바로 느헤미야 기독연구원의 배덕만 교수님의 인생 여정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배 교수님은 23년간 교회사를 강의하며 한국 교회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전달해 오셨는데요, 놀랍게도 오늘 이 자리에서는 교수님의 개인적인 간증을 처음 접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라고 합니다.

본 강연에서 배 교수님은 마치 삶이라는 바다를 항해하는 목회자와 같다고 자신을 비유하며, 흥미롭게도 책에서 배운 신앙과 목회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며 체득한 생생한 경험들을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특히, 미래 목회자들을 강단에서 가르치는 교수님으로서, 직접 교회를 개척하여 목회 현장의 Real리티를 몸소 경험했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인데요.

교수님께서는 미래 목회자들에게 열정적으로 가르치는 내용과, 실제로 목회 현장에서 피부로 느끼는 현실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존재한다고 단언합니다. 더욱이, 교수님은 규모 있는 교회만 경험하다가, 직접 개척하여 지하 공간에서 아무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했을 때, 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전혀 다른 세상, 땅 위에 번듯한 교회와는 극명히 다른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고 생생하게 증언합니다.

교수님은 지하 벙커와 같은 공간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비로소 기존 교회 시스템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던, 다양하고 예상치 못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자신이 오랫동안 꿈꿔왔던, 환상 속의 기독교와는 현실 교회가 매우 다르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고 고백합니다. 결국, 이러한 경험은 교수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삶을 이끌어가는 놀라운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교수님은 어떻게 이러한 극적인 상황들을 헤쳐나가며 신앙 여정을 이어오셨을까요? 지금부터 교수님의 솔직하고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 그 해답을 함께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가난 속에서 피어난 신앙의 싹

교수님은 어린 시절, 경기도 고양군에서 힘든 가정 환경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당시 집안 형편이 어려워 친척들의 발길도 끊기는 상황이었지만, 놀랍게도 그 어려움 속에서 신앙의 빛을 발견하게 됩니다. 잊을 수 없는 어느 날, 교회 주일학교 학생이자 전도사님이 직접 교수님 가정을 심방하러 오셨습니다.

당시 교수님의 어머니는 공장에서 일하셨는데, 감사하게도 전도사님의 심방 소식에 반차까지 내고 집으로 달려와 예배를 준비하셨다고 합니다. 그날, 단 세 명, 어머니와 교수님, 그리고 전도사님만이 작고 초라한 방에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놀랍게도, 전도사님의 말씀을 듣던 어머니는 하염없이 눈물을 쏟기 시작하셨습니다.

어린 교수님의 눈에 비친 전도사님은, 마치 아무도 돌보지 않는 가난하고 약한 가정에 찾아와 따뜻하게 위로하고 기도해주는 천사와 같았습니다. 이 강렬한 경험은 초등학교 1, 2학년이었던 교수님에게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남아있다고 합니다. 예배 후, 어머니는 놀랍게도 장롱 밑에서 오래된 성경책과 찬송가를 꺼내 읽으셨고, 그날 이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성경을 읽는 어머니의 모습은 교수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교수님에게 그 여자 전도사님은, 고통과 슬픔 속에 있던 자신과 어머니를 따뜻하게 안아준 예수님의 현실적인 이미지로 각인되었습니다. 따뜻한 사랑의 경험계속 간직하고 싶었던 어린 교수님은, 자연스럽게 교회를 열심히 다니게 되었다고 회상합니다. 그렇게 교수님의 신앙 여정가난했지만 따뜻했던 어린 시절의 소중한 경험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어머니의 미소, 학업의 원동력

놀랍게도 교수님은 어린 시절부터 학업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습니다. 명문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세계적인 예일대학교 신학대학원과 드루대학교에서 신학 박사 학위까지 받으셨으니, 그야말로 엘리트 코스를 밟아오신 셈입니다. 하지만 교수님은 자신을 천재라고 칭하는 것을 극구 부인하며, 겸손하게 어머니의 사랑이 학업의 원동력이 되었음을 밝힙니다.

교수님은 어머니가 아버지의 잦은 술 주정과 고된 노동으로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며 자랐습니다. 어머니는 일요일에도 쉬지 않고 공장에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셨습니다. 그런 어머니에게 유일한 낙은, 놀랍게도 아들의 성적표였습니다. 교수님은 성적표를 받아들고 좋아하는 어머니의 환한 미소를 보며, 가슴속 깊이 강렬한 동기 부여를 받았다고 합니다.

중학교 시절, 교수님은 '내가 어머니께 해드릴 수 있는 것은 공부밖에 없다'는 생각에, 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학업에 매진했습니다. 어머니가 퇴근할 시간에 맞춰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척을 하기도 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 덕분에 성적은 계속 향상되었고, 마침내 놀라운 학업 성취를 이루어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교수님의 가정 형편은 여전히 어려웠고, 대학 진학쉽지 않은 꿈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러던 중, 초등학교 시절부터 다녔던 교회 목사님의 영향으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교회 목사님의 강단에서 열정적으로 설교하는 모습은, 어린 교수님에게 영웅처럼 비춰졌습니다.

어느 날, 교수님은 어머니와의 식사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목회자의 꿈을 이야기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엉뚱한 꿈씁쓸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뻐하는 모습을 보이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하나님의 은혜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교수님에게 찾아왔습니다.

기적적인 고등학교 진학, 서울대 합격까지

교수님은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상업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빨리 돈을 벌어 어머니를 돕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기적처럼, 인천에 새로 설립되는 고등학교에서 장학생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놀랍게도, 일정 성적 이상이면 3년 동안 학비 면제라는 파격적인 조건이었습니다.

교수님의 담임 선생님은 이 소식을 듣고, 마감일 직전에 교수님을 극적으로 설득하여 서인천고등학교에 지원하게 했습니다. 사실, 선생님은 교수님을 인문계 고등학교에 보내고 싶어 어머니를 설득했지만, 아버지의 반대무산될 위기에 처했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끈질긴 노력 덕분에, 기적적으로 서인천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서인천고등학교에서 교수님은 학비 걱정 없이 마음껏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학교 측은 우수한 학생들을 위해 특별반을 운영하며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당시 교수님의 성결교 교단에서 운영하는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에 진학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학교 측은 2회 졸업생들에게 학교가 정한 대학에 진학해야 한다는 방침을 통보했습니다.

고3이 되면서 교수님은 SKY 진학반 후보에 오르게 되었고, 선생님들은 교수님을 설득하여 서울대학교 진학을 강력하게 권유했습니다. 하지만 교수님은 하나님과의 약속 때문에 서울신학대학교에 가야 한다고 고집했습니다. 그러자 전도사님은 서울대학교 종교학과신학과 유사한 학문이며, 오히려 더욱 깊이 있는 신학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결국, 교수님은 전도사님의 설득선생님들의 권유서울대학교 종교학과에 지원하게 되었고, 놀랍게도 합격이라는 기적을 이루어냈습니다. 교수님은 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세상에서 제일 쉬운 게 서울대 가기"였다고 농담 섞인 어조로 말합니다. 하지만 이는 겸손함의 표현이며, 실제로는 하나님의 은혜주변 사람들의 도움, 그리고 교수님 자신의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였습니다.

서울대학교 진학은 교수님에게 또 다른 기회를 열어주었습니다. 저렴한 학비 덕분에 경제적인 부담을 덜 수 있었고, 과외 아르바이트를 통해 생활비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교수님은 서울대학교 진학을 "하나님의 한 수"였다고 고백하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강조합니다.

신학자의 길, 새로운 소명을 발견하다

서울대학교라는 명문에 진학했지만, 교수님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목회자의 꿈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시골 교회 목사가 되는 것이 소박하지만 궁극적인 목표였습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대학교 2학년 말부터 신앙적인 질문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이해되지 않는 부분, 동의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성경 공부 시간질문을 쏟아내도 선생님들은 명쾌한 답을 주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교수님에게 '사람들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구심을 품게 만들었습니다. 대학교에 진학해서는 88학번으로 민주화 운동열기 속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접하고, 비교종교학종교 다원주의를 공부하면서 신앙적인 혼란은 더욱 커져갔습니다.

결국, 교수님의 신앙뿌리째 흔들리기 시작했고, 교회는 여전히 좋았지만, 강단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확신 있게 설교할 자신을 잃어버렸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대학교 3학년 때 극적인 회심을 경험하며 신앙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후 신학대학원에 진학했지만, 자신이 사람보다 공부를 더 좋아하고, 하나님은 사랑하지만 타인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교수님은 공감 능력이 부족하고, 혼자 책 읽고 공부하는 것가장 좋아하며, 사람들과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힘들어했습니다. 반면, 신학교 동기들은 사람에 대한 관심, 교회에 대한 열정, 복음에 대한 뜨거움으로 가득했습니다. 자신과 동기들의 극명한 차이를 느끼면서, 교수님은 목회자의 길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주변 사람들도 교수님에게 "목회자보다는 신학자가 더 어울린다"조언했고, 교수님 스스로도 도서관에서 읽고 공부할 때 가장 행복하고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결국, 교수님은 목회자의 꿈접고, 신학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약속교회에 대한 애정여전히 교수님 마음속에 깊이 남아있었습니다.

연예부 기자 꿈꾸던 신학 교수, 목회의 길로

신학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지만, 교수님의 세상에 대한 무관심여전했습니다. 놀랍게도 교수님은 목회자가 되지 않았다면 연예부 기자가 되고 싶었다고 고백합니다. 딱딱한 정치, 경제 뉴스보다는 흥미진진한 연예계 이야기에 더 큰 관심을 느꼈던 것입니다. 하지만 80년대 후반, 대학교를 다니면서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싹트기 시작했고, 신학자들의 글을 읽으며 한국 교회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학대학원에 진학하면서 한국 사회한국 교회의 현실교수님의 눈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소명이라는 것은 눈에 밟히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교수님에게, 장애인이나 해외 미전도 종족 대신 한국 교회와 한국 사회마음깊이 새겨졌습니다. 이후 교수님은 한국 교회 개혁관심을 갖게 되었고, 관련 글을 쓰고 강연집회를 통해 자신의 생각적극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수님은 청년 단체에서 한국 교회 문제지적하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강의를 듣던 전라도의 한 목사님이 교수님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목사님은 교수님의 논리적인 주장에는 동의했지만, "교수님은 한국 교회를 너무 모르는 것 같다. 목회를 안 해봐서 함부로 말하는 것 같다"직설적으로 비판했습니다.

처음에는 불쾌감을 느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목사님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교수님은 대전의 한 신학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었는데, 소규모 학교 특성상 나이 많은 학생들이 많았고, 졸업 후 어렵게 개척하는 제자들을 보면서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나는 한 번도 개척을 안 해봤는데, 제자들에게 고생길강요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교수님은 학자적 양심에 따라 한국 교회를 비판하고 개혁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목회 경험없다는 사실'자격증 없는 의사'와 같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한국 교회를 향한 진정한 소통공감, 제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목회 현장직접 경험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결국, 목회를 통해 교회를 성장시키거나 성공하려는 욕심이 아닌, 한국 교회고민함께 나누고, 학생들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 목회결심하게 되었습니다.

폐쇄 직전의 교회, 새로운 시작을 알리다

목회결심했지만, 교수님은 교단법 때문에 쉽게 목회를 시작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조교수 신분이었던 교수님은 이중직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교수님에게 을 열어주었습니다. 교수님이 담임 목사님에게 목회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자, 목사님은 기도해보자고 제안했고, 두 달 만에 기적적인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대전의 한 교회가 목회자 부재신자 감소폐쇄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교회 측은 교수님에게 폐쇄 직전의 교회맡아달라는 제의를 해왔습니다. 당시 교회에는 13명의 신자만이 남아있었고, 재정적으로도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교수님은 사례받지 않고 설교만 하는 목사로 가겠다고 자원했고, 다음 날 교회를 방문했을 때 놀랍게도 신자들이 모두 떠나고 텅 비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하 예배당그대로 남아있었고, 교회 이름'주사랑 교회'라는 아름다운 이름이었습니다. 교수님은 '주사랑 교회'문 닫는 것안타깝게 생각하며, 자신이라도 교회를 지키고 싶다는 마음목회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2년 정도 영성 훈련을 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주사랑 교회헌신적으로 섬기게 됩니다. 교수님은 아무도 없는 교회다섯 식구가 함께 들어가 예배를 드리면서 새로운 목회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밑바닥 인생들의 교회, 현실 목회의 고뇌

평탄한 교회만 다녔던 교수님은 개척전혀 다른 교회 현실충격을 받았습니다. 한국 교회에도 메이저 리그마이너 리그, 트리플 A 리그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소위 '땅 위에 번듯한 교회'에 다닐 수 있는 것은 '팔자'가 좋아야 한다는 씁쓸한 현실목격했습니다. 주사랑 교회에는 기존 교회에서 소외되었던, 다양한 상처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우울증 환자로 18년 동안 19번이나 교회를 옮긴 사람, 반지하에서 브루스타로 밥을 해 먹으며 겨울을 나는 사람, 아이를 안고 2층에서 뛰어내리려다 교회 주보를 밟고 기도를 요청한 사람 등, 교수님은 이전에 만나본 적 없던 밑바닥 인생들의 고통스러운 현실직접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20명도 안 되는 작은 교회우울증 환자가 세 명이나 되는 놀라운 현실 앞에서, 교수님은 자신이 그동안 공부했던 신학과연 무슨 소용인지 회의감을 느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수님에게 "이 교회는 교수님에게 맞지 않다. 대덕 연구 단지에 가는 것이 낫다"조언했지만, 교수님은 매주 강단에 서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기복 신앙조롱하며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뜻을 강조했던 자신이, 정작 눈앞의 고통에 신음하는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신방상담을 통해 만난 사람들은 다음 달 월세 걱정, 아이들 학원비 걱정, 먹을 것 걱정신용불량자까지, 교수님은 처음으로 새벽 기도 시간에 하나님"장풍이라도 쏘게 해달라", "병이라도 고치게 해달라", "로또라도 당첨되게 해달라"절박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기도많이 했지만, 감기 하나 낫게 하지 못하는 무력감절망했습니다. '하나님,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는 절규와 함께, 교수님은 현실 목회무거운 짐발목이 잡혀 2년만 목회하고 학교로 돌아가려던 계획수정하고, 결국 8년 동안 주사랑 교회지키며 고군분투하게 됩니다.

교회를 떠나고 싶었던 수천 번의 유혹, 영적 침체

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어려운 목회를 이어오면서, 교수님은 수없이 교회를 떠나고 싶다는 유혹에 시달렸습니다. 하루에도 천 번 이상 '교회를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그러던 중, 교회젊은 청년이 찾아왔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헌신적으로 교회를 섬기는 영특하고 신령한 친구였습니다. 청년새벽 예배함께 드리고, 전도교회 궂은 일도맡아 하면서 교수님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교수님은 청년매우 아끼고 사랑했지만, 안타깝게도 교회 일논의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생겨 청년이 교회를 떠나게 됩니다. 청년이 떠나자 놀랍게도, 청년전도해왔던 교인들도 하나둘씩 교회를 떠나 교회다시 예전의 어려운 상태로 돌아갔습니다. 3년 동안 애써 키워왔던 교회가 순식간에 무너지는 허망함에 교수님은 큰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처음에는 '네가 나간다고 내가 흔들릴 줄 아느냐'강한 척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교인들이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3년이나 목회했는데 교인이 늘어나기는커녕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현실 앞에서, 교수님은 다시 시작할 용기를 잃고 영적 침체에 빠졌습니다. 성경을 읽어도 설교 준비를 해도, 떠나간 사람들계속 떠오르고 자신에 대한 원망실망감만 커져갔습니다.

결국, 교수님은 영적 우울증을 겪게 되었고, 하나님을 향해 욕설을 퍼붓고 성경책벽에 던지는 극단적인 행동까지 하게 됩니다. '하나님, 내가 무슨 죄가 있어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합니까?'라며 울부짖고, 아내에게 목회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평소 잘 자던 교수님이 그날 밤은 밤새도록 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마음속가득 찬 분노혼란 때문이었습니다.

스타벅스에서 만난 하나님의 음성, 재기의 눈물

다음 날, 주일 아침 7시, 교수님은 설교 준비하지 못한 채 억지로 교회로 향했습니다. 답답한 마음아파트 단지일곱 바퀴 돌며 '하나님, 말씀을 주시옵소서' 기도했지만, 두 바퀴째 너무 추워서 근처 스타벅스피신했습니다. 따뜻한 커피를 시켜놓고 성경책을 펼쳤지만, 분노원망으로 가득 찬 마음으로는 성경 말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때 문득 여호수아 1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성경 구절은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로 시작했지만, 교수님의 눈에는 '모 집사가 나간 후에'잘못 보였습니다. 스스로도 황당했지만, 계속 여호수아 1장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놀랍게도, 여호수아 1장에는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구절반복해서 등장했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의 음성교수님의 귓가울려 퍼지는 듯했습니다. '덕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한다.'

떠나간 사람들 때문에 낙심하고 좌절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쫄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한다'따뜻한 위로격려를 보내주셨습니다. 교수님은 그 자리에서 눈물펑펑 쏟았습니다. 카페 안에는 교수님 혼자였고, 아르바이트 만이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교수님은 마음속으로 하나님회개하며 다시는 목회를 그만두겠다는 말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리고 교회로 돌아가 교인들 앞에서 회개하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겠다'선언했습니다. 이후, 교수님은 8년 동안 주사랑 교회굳건히 지켰습니다.

느헤미야로의 부르심, 내려놓음축복

주사랑 교회 목회를 8년 동안 헌신적으로 섬긴 후, 교수님은 새로운 부르심을 받게 됩니다. 당시 교수님은 대전 복음신학대학원대학교 (현 건신대학원대학교)에 재직하고 있었는데, 평신도 대상 신학 기초 교육을 하는 느헤미야 기독연구원으로부터 전임 교수 제의를 받았습니다. 느헤미야신학대학교 교수들이 재능 기부로 설립한 야학이었고, 당시 목회자 훈련 과정 프로그램을 새롭게 만들 계획을 하고 있었습니다.

느헤미야교수진절실히 필요했고, 교수님의 동료 교수먼저 느헤미야합류한 후, 교수님에게 두 번째 제의가 들어온 것입니다. 교수님은 고민고민을 거듭했습니다. 대전에서 정규 대학교 교수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느헤미야로 가면 월급절반으로 줄어드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오랜 고민 끝에 하나님의 부르심순종하기로 결정하고, 느헤미야 전임 교수합류하게 됩니다.

교수님이 교회사임 의사를 밝히고 서울떠난다고 하자, 교인들은 교수님기쁜 마음으로 보내주었습니다. 느헤미야에서 더 큰 일을 하기를 응원해준 것입니다. 정규 대학교 교수직포기하고 비인가 신학교로 가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교수님은 하나님의 부르심확신했기에 기꺼이 내려놓음선택했습니다. 사회적으로 명함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현실에서, 정규 대학교 교수라는 안정적인 직위포기하는 것은 큰 희생이었지만, 교수님은 더 큰 가치좇아 과감하게 결단했습니다.

물론 교수님에게도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교수로서 더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 명문 대학교 교수가 되어 스승들에게 자신의 성공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교수님에게 "너도 똑같네"라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강단에서는 십자가 지고 좁은 길을 가라고 설교하면서, 정작 자신좋은 것좇고 넓은 길을 가려고 하는 이기적인 모습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교수님은 하나님항의했지만, 결국 자신의 욕심인정하고 하나님의 뜻순종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하나님, 제 마음을 결정해주시면 순종하겠습니다'라고 기도하자, 마음속평안이 찾아왔습니다. 느헤미야향하는 길하나님의 뜻임을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사모님헌신, 자녀들의 축복, 요트 비유

교수님의 결정 뒤에는 사모님헌신적인 지지가 있었습니다. 당시 자녀들아직 대학생이 아니었기 때문에, 앞으로 들어갈 돈많았고 경제적인 부담도 컸습니다. 하지만 사모님은 교수님의 결정을 묵묵히 지지하며 가정든든하게 지켜주었습니다. 교수님은 사모님헌신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교수님은 어린 시절부터 대학교유학 생활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하나님의 채우심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수없이 많은 하나님의 은혜경험했지만, 문제직면할 때마다 다시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자신의 모습솔직하게 드러냅니다. 하지만 매번 하나님께서는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채워주시고 인도해주셨습니다.

과거 교회에서 만났던 제자이자 목사님은, 믿음 없는 모습을 보이는 교수님에게 "목사님이 헌신했는데 하나님께서 아이들을 버리시겠냐"격려했습니다. 이후 기도를 통해 확신을 얻고 서울올라왔지만, 당장 살 집없었습니다. 대전에서 월세로 살던 형편에 서울에서 월세 을 구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때 장인, 장모님께서 자신들이 살던 집내어주셔서 어려움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자녀들 또한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첫째 국가 장학금교회 장학금으로 학비 걱정 없이 대학교를 졸업했고, 둘째 아들일본 국비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학비생활비를 지원받으며 영상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셋째 다둥이 장학금으로 대학교 등록금 전액 면제 혜택을 받았습니다. 교수님은 세 자녀 모두 하나님께서 직접 대학교 공부를 시켜주셨다고 감격하며 간증합니다.

교수님은 '요트를 사려고 하지 말고 요트 가진 친구를 사귀어라'라는 비유를 통해 자신의 삶설명합니다. 쫓아 요트소유하려고 애쓰는 대신, 요트가진 친구사귀면 요트소유하지 않아도 요트마음껏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수님 자신포기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으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넘치도록 채워주셨습니다. 교수님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나머지 모든 것하나님께서 채워주신다는 성경 말씀진실임을 자신의 삶을 통해 증명했습니다.

원형 탈모번아웃, 다시 시작하는

서울이사 온 후, 교수님은 원형 탈모를 겪을 정도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느헤미야온 것정말 잘한 선택이었다고 고백합니다. 교수님은 살면서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고 말합니다. 갈등고민끊임없이 찾아오지만, 하나님의 뜻명확해지면 순종하는 것이 목회자의 삶이라고 담담하게 이야기합니다.

느헤미야에서 좋은 공동체를 만나 행복한 목회를 하는 듯했지만, 2년교회 안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문제해결하려고 애썼지만, 문제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발생했습니다. 교수님은 목회를 하면 모든 것이 순탄할 줄 알았지만, 자신의 무능함뼈저리게 느끼는 시간이었다고 고백합니다. 빙판길에서 핸들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처럼, 교회 문제해결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서울에 와서 2년 동안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 원형 탈모가 생겼고, 결국 교회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갔습니다. 대전에서 겪었던 어려움서울에서 재현한 것입니다. 다시 목회를 그만둬야 하나 고민했지만, 하나님과의 씨름 끝에 다시 예수님의 골고다 언덕떠올리며 재기결심합니다. '내가 먼저 갔으니, 나를 따라오려면 너도 십자가를 져야 한다'음성이 들리는 듯했습니다.

교수님은 다시 눈물기도하고 '다시 해보겠다'다짐했습니다. 다행히 교회에는 여전히 남아있는 교인들이 있었고, 교수님은 새로운 마음으로 목회전념하기로 결심합니다. 당시 느헤미야 교수오는 것주된 목표였기 때문에, 백향목 교회 목회는 '아르바이트'처럼 여겨졌던 자신의 잘못깨닫고 회개했습니다. 백향목 교회 목회는 더 이상 파트타임 잡이 아니라, 자신이 져야 할 십자가임을 인정하고 책임감을 갖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이후 두 대학교에서 강사 자리제의받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마저 내려놓으라고 요구하셨습니다. 월급줄어드는 어려움감수하고 두 대학교 강사직내려놓고, 느헤미야백향목 교회올인하기로 결단했습니다. 놀랍게도, 내려놓음 이후 하나님께서는 교회성장시키시고, 내려놓았던 월급만큼 사례비채워주셨습니다. 교수님은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다시 잘 먹고 잘 살게 되었다유머러스하게 마무리합니다. 원형 탈모다시 나고, 건강회복되었다고 합니다.

내려놓음가치, 순종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

강의를 들은 정수영 씨는 '목사님은 목회를 안 해본 것 같다'비판깊이 공감하며, 교수님의 삶말씀과 삶일치하는 진정한 목회자의 모습임을 느꼈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신정수 씨 또한 포기하는 대신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신다는 교수님의 간증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교수님은,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에게 내려놓음요구하시지만, 내려놓음손해가 아니라 생각지도 못한 축복으로 돌아오는 하나님의 사랑임을 강조했습니다. 순종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경험하게 되었다는 교수님의 간증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도전을 주었습니다. 오늘 배덕만 교수님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신앙의 가치삶의 방향에 대해 깊이 묵상해보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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