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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진 바이올리니스트 감동 이야기: 장애 극복과 음악 인생

요약

역경을 넘어선 아름다운 선율, 한수진 바이올리니스트의 감동 고백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의 감동적인 고백: 역경을 딛고 일어선 음악 인생과 숭고한 믿음

오늘, 우리는 특별한 감동과 깊은 울림을 선사할 한 편의 이야기를 여러분께 소개하고자 합니다. 바로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 씨의 진솔한 고백인데요. 그녀는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 씨와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씨로부터 극찬을 받은 명실상부한 아티스트입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남모르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바로 왼쪽 귀가 들리지 않는 장애를 안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수진 씨는 좌절하지 않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늘 감사하며 살아가는 '긍정의 아이콘'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바이올린 연주를 통해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전달하고, 심지어 생명을 살리는 놀라운 일들을 해내기도 했습니다.

15세라는 어린 나이에 세계적인 권위의 '드니 아프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이름을 알린 한수진 씨. 그녀는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바이올리니스트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녀를 모시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눠보고, 아름다운 연주를 직접 감상하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뜨거운 박수 부탁드립니다.

음악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다: 한수진의 음악 인생

최근, 한수진 씨가 음악을 가르치는 영상이 온라인에서 엄청난 화제가 되었는데요. 저 역시 그 영상을 보면서 깊은 감동을 받았었습니다. 더욱이, 댓글을 통해 많은 분들이 위로와 힘을 얻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이것이 단순한 영상 플랫폼을 넘어 귀한 소통의 장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처럼 음악은 사람들에게 깊은 위로와 공감을 선사하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음악 시작]

방금 전, 한수진 씨의 아름다운 연주를 감상하셨습니다. 클래식 음악에 문외한인 저조차도, 그녀의 연주를 듣는 순간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놀라웠습니다. 그녀의 연주는 단순히 악기를 연주하는 것을 넘어, 영혼을 울리는 깊은 감동을 선사합니다.

오늘 오프닝에서 간략하게 소개해 드렸습니다만, 사실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 씨는 왼쪽 귀가 들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생각할 때부터 아예 들리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이는 선천적인 유전 질환이라고 합니다. 놀랍게도, 어머니 역시 같은 질환을 겪고 계시다고 합니다. 더욱이, 일반적으로 이 질환은 한 세대씩 걸러서 유전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즉, 어머니의 할아버지께서 이 질환을 겪으셨던 것인데요. 어머니께서는 당연히 자신에게는, 그리고 딸인 한수진 씨에게는 유전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마치 돌연변이처럼 한수진 씨에게 바로 유전된 것이라고 합니다.

한수진 씨는 4살 때까지 자신의 장애를 인지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영국 섬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그녀는, 4살 때 학교에 입학하면서 비로소 자신의 불편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당시 교실에서 선생님의 말씀이 잘 들리지 않는 자리에 앉게 되면서, 선생님은 그녀의 어머니에게 병원에 데려가 볼 것을 권유했습니다. 그리고 병원에서 검사를 받은 결과, 왼쪽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바이올린 연주자에게 청력은 매우 중요한 감각입니다. 특히 바이올린은 왼쪽 어깨에 대고 연주하기 때문에, 연주 중에는 왼쪽 귀가 악기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게 됩니다. 하지만 한수진 씨는 왼쪽 귀가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오른쪽 귀로만 소리를 듣고 연주해야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스테레오로 소리를 듣지만, 그녀는 모노로 세상을 듣고 있었던 셈입니다.

그녀는 항상 스테레오로 세상을 듣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불편함은 오히려 그녀에게 특별한 음악적 재능을 선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소리를 듣는 경험은, 그녀만의 독특한 음색과 음악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데 기여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녀의 음악에서 특별함과 독창성을 느꼈고, 이는 그녀에게 큰 장점이 되었습니다. 특히 음악계에서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목소리를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어쩌면 그녀의 장애는 숨겨진 축복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장애를 알게 되었을 때, 그녀는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어머니는 항상 어떤 힘든 일이 생겨도 불평하지 말라고 가르치셨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결국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모든 상황을 통해 선을 이루신다"는 믿음을 삶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이러한 어머니의 가르침은 한수진 씨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그녀는 어머니를 삶의 롤 모델로 삼게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한수진 씨의 어머니 역시 음악가, 그것도 바이올리니스트라고 합니다. 어머니로부터 음악적 재능을 물려받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녀는 어머니로부터 바이올린 소리를 듣고 연주하는 섬세한 감각을 물려받았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녀가 3살 때 했던 특별한 기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3살 때, 그녀는 어떤 기도를 했을까요?

3살 때, 그녀는 부모님과 함께 조부모님께 보낼 비디오테이프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테이프에는 그녀의 노래와 춤추는 모습 등이 담길 예정이었는데, 부모님은 그녀에게 기도하는 모습도 함께 담아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습니다. 평소 부모님께서 읽어주시는 성경 이야기를 가장 좋아했던 그녀는, 하나님은 항상 좋은 분이고 자신의 아버지인데 왜 볼 수 없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 하나님을 너무나 보고 싶었고, "하나님, 제발 저에게 모습을 보여주세요!"라고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물론, 3살 아이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직접 눈 앞에 나타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후 수많은 사건들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끊임없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녀의 삶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당신의 존재를 드러내셨고, 그녀는 15살이 되던 해 새벽기도를 하던 중 문득 3살 때의 기도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하나님께서 자신의 어린 시절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고 계셨음을 깨닫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린아이의 순수한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정말 놀랍지 않으신가요?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을 찾았던 그녀에게, 구원의 확신은 언제 찾아왔을까요? 그녀는 6살 때 다니던 작은 한인교회에서 특별한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 당시 교회에서는 집사님들이 각 가정을 방문하며 예배를 드리는 '가정 예배'를 드렸는데, 한 번은 예배를 그녀의 집에서 드리게 되었습니다. 집사님들이 예배 준비로 분주한 사이, 그녀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담은 비디오테이프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봤던 비디오테이프는 예수님의 생애를 담은 '라이프 오브 지저스'였는데, 특이하게도 히브리어로 제작된 영상이었다고 합니다. 영상을 보던 중,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그 장면을 본 그녀는 예수님이 얼마나 아프셨을까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그녀의 아버지가 다가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은 수진이 너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녀의 죄 때문에 고통을 받으셨고, 그녀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설명을 들은 6살 어린 소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고통이 자신 때문이라는 사실에 죄송함과 감사함이 동시에 느껴졌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 죄 사함을 받았고, 하나님의 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그녀는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고, 더욱 굳건한 믿음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6살 어린 나이에 구원의 확신을 얻었다니, 정말 놀라운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음악과 과학의 조화: 예술적 감각은 어디에서 왔을까?

한수진 씨의 부모님은 모두 예술과는 거리가 먼 분야에 종사하셨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과학자, 어머니는 평범한 회사원이셨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녀의 친할아버지께서는 우리나라 1세대 산업 디자이너셨다고 합니다. 독립기념관 '겨레의 탑', 88올림픽 '한빛탑', 김포공항, 서울 지하철 1호선부터 7호선까지의 색깔을 디자인하신 분이 바로 그녀의 할아버지셨습니다. 예술적인 재능은 외할머니로부터도 물려받았습니다. 외할머니께서도 젊은 시절 바이올린을 전공하셨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과학자인 아버지에게도 예술가적인 면모가 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예술가인 어머니는 과학적인 면을 가지고 계시다고 합니다. 두 분의 이러한 조화로운 모습은, 한수진 씨에게 다채로운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녀의 음악적 감수성은 서울에서 자란 환경과도 관련이 있을까요?

한수진 씨는 자신이 자란 환경이 음악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그녀는 바다를 사랑했는데, 놀랍게도 한 평론가는 그녀의 연주를 듣고 바다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그녀가 어렸을 때 바다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생각하면, 음악 평론가의 이야기는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부산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말한 단어가 '바다'였을 정도로 바다를 좋아했습니다. 1살 때 서울로 이사 왔지만, 2살 때 다시 아일랜드와 리버풀 사이에 있는 '아이 러브 메니'라는 섬으로 이주하면서, 그녀는 다시 바다를 마음껏 접할 수 있었습니다.

섬에서 살면서 그녀는 매일 바다를 보고, 바다에서 뛰어놀았습니다. 아버지께서 채집을 하러 가실 때면 항상 그녀를 데려가셨고, 그녀는 바닷가에서 하루 종일 바다 식물을 관찰하며 놀았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바다 식물의 이름은 물론, 비너스 이름까지 가르쳐 주셨고, 그녀는 바다의 다채로운 색깔과 생명력 넘치는 움직임에 매료되었습니다. 이러한 어린 시절의 경험은 그녀의 음악 세계에 큰 영향을 주었고, 그녀의 음악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바다는 그녀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영감을 주는 원천이었던 것입니다.

IMF, 어머니의 희생, 그리고 꿈

한수진 씨의 어머니는 원래 바이올리니스트셨지만, IMF 외환위기 때 어려움을 겪으면서 바이올린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딸의 음악 교육을 위해 자신의 꿈을 접고 헌신하셨습니다. 어머니의 희생에 대해 그녀는 항상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녀의 꿈 중 하나는 어머니와 함께 무대에 서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바흐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을 어머니와 함께 연주하는 것이 꿈이었지만, 아직 그 꿈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 딸을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딸의 재능을 꽃피우기 위해 헌신하는 것을 가장 큰 행복으로 여기셨습니다. 한수진 씨는 아빠와도 매일 1시간씩 통화하며 지냈습니다. 통화 내용은 주로 아버지께서 읽으신 책 이야기나 신앙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신앙 서적을 많이 보내주셨고, 그녀는 책을 읽고 아버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위로를 받았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하나님과 가까이 있을 때도 있지만, 때로는 하나님을 잊고 방황할 때도 있습니다. 그녀 역시 그런 경험을 하면서 불안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잊고 살 때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섭섭해하시고 멀리 계신 것은 아닐까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런 그녀에게 "하나님과 우리는 손목을 잡고 있는 관계와 같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놓아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놓지 않으신다는 아버지의 말씀은 그녀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

어머니 역시 늘 신앙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부모님께서 딸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은 신앙밖에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훌륭한 음악가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늘 강조하셨습니다. 부모님의 헌신과 사랑 덕분에 그녀는 훌륭한 음악가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부모님 밑에서 태어난 것을 진심으로 감사하며, 부모님의 가르침을 따라 앞으로도 좋은 음악가,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녀의 멋진 연주를 다시 한번 감상해 볼까요? 이번에는 어떤 곡을 연주해 주실 건가요?

[음악 시작: '사랑해요 목소리 높여', '살아요']

[연주 후 박수갈채]

정말 놀라운 연주였습니다! 토크를 할 때와 연주할 때의 모습이 완전히 딴판인 것 같습니다. 카리스마라는 단어로는 부족할 정도로, 영혼을 사로잡는 강렬한 연주였습니다. 본인은 연주할 때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한수진 씨는 연주할 때 특별히 의식하는 것은 없고, 단지 음악에 완전히 몰입할 뿐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연주를 들은 사람들은, 그녀가 연주할 때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변한다고 말합니다. 그녀조차도 자신의 연주에 놀랄 때가 있다고 하니, 정말 신기합니다. 영상을 보면 아시겠지만, 연주할 때 그녀의 표정은 매우 풍부합니다. 억지로 표정을 지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에 몰입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표정이라고 합니다. 때로는 과한 표정이 아닌가 생각하지만, 그것 또한 그녀의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6년의 공백, 턱관절 장애를 극복하고 다시 무대로

놀랍게도, 한수진 씨는 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공백기를 가졌었다고 합니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에게 6년의 공백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닌데요.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그녀는 턱관절 장애로 인해 6년 동안 연주 활동을 중단해야 했습니다. 턱관절 장애는 바이올리니스트에게 흔히 나타나는 직업병과 같은 질환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턱관절 장애는 단순한 직업병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그녀는 어렸을 때 머리에 심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그 사실을 잊고 지냈습니다. 턱관절 통증이 점점 심해져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은 결과, 어린 시절 머리에 받은 충격이 턱관절 장애의 원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담당 교수님은 어머니에게 "혹시 어렸을 때 아이를 떨어뜨린 적이 있냐"고 물으셨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그런 적이 없다고 했지만, 교수님은 단호하게 "분명히 떨어뜨린 적이 있을 겁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검사 결과, 그녀의 턱관절은 유아 수준으로 매우 약했고, 관절과 뼈가 심하게 틀어져 있었습니다. 교수님은 뺨을 살짝만 맞아도 턱이 부서질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한 상태라고 경고했습니다. 어머니는 친정 어머니에게 혹시 어렸을 때 수진이를 떨어뜨린 적이 있는지 여쭤봤고, 그때 이모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졸업 연주 준비로 서울에 계실 때, 이모가 그녀를 업고 가다가 넘어져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뜨렸다는 것입니다. 그 사고 이후, 그녀는 밤새도록 울었고, 소아과에 갔지만 다행히 저녁 무렵 울음을 멈췄다고 합니다.

사고 이후 별다른 이상 증상이 없었고, 학교 성적도 우수했던 터라, 부모님은 그 사고가 별문제 없이 잘 넘어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20여 년이 지난 후, 어린 시절의 사고가 턱관절 장애라는 심각한 후유증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모는 오랫동안 죄책감에 시달리며 괴로워했다고 합니다. 치료 기간은 1년 반 정도로 예상되었고, 그녀는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턱관절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고, 의사는 염증이 너무 심해 당분간 악기를 연주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권했습니다.

그녀는 턱관절 치료를 받는 동안, 아버지의 환경 관련 일을 돕고, 송도 소래습지생태공원 활성화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했습니다. 세계적인 컨설팅 업체와 함께 일하면서 통역도 하고, 자료 조사도 하면서 바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양한 분야에 호기심이 많았던 그녀는, 새로운 일들을 경험하면서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음악가로서 무대에 설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아쉬움과 갈증은 점점 더 커져갔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음악적 재능이 얼마나 소중하고 축복받은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첫 번째 수술은 결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최선을 다해 수술했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소위 'VIP 증후군'이라고 불리는 상황이었는데, 너무 잘하려고 욕심을 내다 오히려 수술이 잘못된 케이스였습니다. 첫 번째 수술 후, 그녀는 다시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겠다는 불길한 예감을 느꼈습니다. 수술 과정은 매우 힘들었고, 수술 후에는 조직 손상으로 인해 숨쉬기조차 어려웠습니다. 한 달 동안 죽만 먹어야 했고, 통증 또한 심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통증 자체가 아니라, 언제 다시 연주할 수 있을지 모르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었습니다.

사실 그녀는 수술 자체를 극도로 두려워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바늘을 무서워했고, 주사 맞는 것을 너무 싫어했습니다. 수술을 피하기 위해 여러 병원을 찾아다니며 수술 없이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지만, 모든 의사들은 수술 외에는 턱관절 장애를 치료할 방법이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수술을 하지 않으면 평생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말은, 수술에 대한 두려움보다 더 큰 공포로 다가왔습니다. 오랜 기다림에 지쳐갈 무렵, 팬들은 언제 다시 그녀의 연주를 들을 수 있을지 궁금해했고, 뮤지션으로서 무대에 서야 하는 그녀는 점점 더 불안해져 갔습니다. 그녀는 과연 이 긴 터널을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언젠가 다시 무대에 설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시간이 하나님께서 주신 '숙성의 시간'이라고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한 시기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다시 연주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물론, 인간적인 불안감과 초조함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녀는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하며, 다시 연주할 날을 기다렸습니다. 그녀는 6년의 공백 기간 동안 어떤 말씀을 붙잡고 있었을까요?

그녀가 6년의 공백 기간 동안 붙잡았던 말씀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 말씀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녀는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감사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수술 직후에는 숨쉬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평소에는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숨쉬는 것, 자유롭게 밥을 먹고, 걸어 다니고, 움직이는 모든 것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달았습니다. 전신마취 후유증으로 인해 한동안 어지럼증과 빈혈에 시달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6년의 공백은 그녀에게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는 시간이었습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그녀에게 감사를 통해 더욱 성숙해지는 시간을 선물하신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녀는 6년의 공백 기간을 통해 인생의 템포를 조절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합니다. 남들보다 6년이나 앞서 달려왔던 그녀에게, 하나님께서는 6년의 시간을 주시면서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재정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6년의 공백은 잃어버린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녀를 더욱 특별하게 사랑하시고, 더욱 성숙한 음악가로 만들어가기 위한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6년 만에 다시 무대에 섰을 때, 그녀의 기분은 어떠했을까요?

6년 만에 다시 무대에 섰을 때, 그녀는 벅찬 감격과 뜨거운 열정을 느꼈습니다. 오랜 공백 기간 동안 쌓였던 간절함은, 마치 터져 버릴 듯한 댐처럼 쏟아져 나왔습니다. 누군가는 그녀의 연주를 듣고 '간절함이 비브라토에 묻어난다'고 표현했는데, 정말 적절한 표현인 것 같습니다. 6년의 공백은 그녀의 음악을 더욱 깊고 풍부하게 만들었고, 감정 표현은 더욱 섬세하고 강렬해졌습니다. 재기에 성공한 그녀에게, 다시 무대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최근에는 할머니와 함께 무대에 서는 감동적인 무대도 가졌습니다. 할머니는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그녀는 솔로이스트로 함께 연주했습니다. 놀랍게도, 그 무대는 할머니의 마지막 연주 무대가 되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무대에 서는 꿈은 아직 이루지 못했지만, 할머니와 함께 무대에 설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고 든든했습니다. 할머니는 어린 시절부터 그녀를 물심양면으로 지지해주신 든든한 후원자이자, 힘든 시기에 햇살처럼 따뜻한 위로를 건네주신 분입니다. 할머니와 함께 무대에 서는 순간, 그녀는 긴 터널을 빠져나와 밝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어머니는 6년의 공백 기간을 '하나님께서 딸에게 주신 숙성의 시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고난과 역경을 통해 더욱 깊어진 그녀의 음악 세계는, 이제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위로를 선사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이 자리에서 희망과 용기를 주는 찬양 한 곡을 더 듣고 싶습니다. 어떤 곡을 연주해 주시겠습니까?

[음악 시작: '주께 가오니']

[연주 후 박수갈채]

정말 훌륭한 연주였습니다! 이제는 바이올린 하나로 전 세계를 누비는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었는데요.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 순간이 있으신가요?

한수진 씨는 자신의 연주를 통해 사람들이 위로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특히,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이브리 기틀리스와의 만남은 그녀에게 잊을 수 없는 감동과 깊은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이브리 기틀리스는 20세기 '골든 에이지' 시대를 대표하는 거장 바이올리니스트입니다. 그녀는 17살 때 처음 이브리 기틀리스 앞에서 연주할 기회를 얻었고, 그 후에도 여러 차례 그를 만났습니다. 슬럼프에 빠져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그녀는 이브리 기틀리스에게 마스터 클래스를 받게 되었습니다. 슬럼프에서 벗어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그녀는 용기를 내어 그 앞에서 연주했습니다.

연주가 끝나자, 이브리 기틀리스는 아무 말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감동적인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최근 삶에 대한 미련이 없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그녀의 연주를 듣고 삶의 희망을 다시 찾았다는 것입니다. 그녀의 연주가 삶의 의미를 다시 찾게 해주었고, 앞으로도 계속 음악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고 말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독실한 유대교 신자인 이브리 기틀리스가 그녀에게 "당신은 하나님의 메신저가 되어 세상을 구원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녀의 연주가 종교와 인종을 초월하여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과 위로를 선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일화입니다. 이 일화를 통해 그녀는 슬럼프에서 벗어나 다시 힘차게 음악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화려한 무대 위에서, 음악만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삶. 때로는 외롭지는 않으신가요?

한수진 씨는 부모님과 워낙 가깝게 지내고, 소통도 많이 하기 때문에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다고 합니다. 오히려 부모님께서 이제는 배우자를 찾아 가정을 이루기를 바라신다고 합니다. 그녀는 배우자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짝을 맺어주시겠지'라는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배우자를 찾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주변에서는 구체적인 이상형을 정하고 기도해야 한다고 조언했지만, 그녀는 막연하게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을 뿐입니다. 그녀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그녀는 '믿음', '소통', '이해심' 이 세 가지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고, 자신과 소통이 잘 되고, 자신의 특수한 직업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합니다. 오늘 방송을 통해 그녀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그녀를 응원하는 좋은 분이 나타나기를 기대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어떤 음악가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그녀는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청중과 세상 사람들에게 주시고 싶으신 메시지를 순수하게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하고 싶다고 합니다. 그것이 그녀의 가장 큰 바람입니다. 하지만 욕심과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음악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기도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앞으로도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재능을 통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음악가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녀의 겸손함과 감사하는 마음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한수진 씨는 어린 시절 바다를 보며 자란 경험이 음악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녀의 음악에서 바다가 느껴진다는 평론가의 말처럼, 그녀의 삶은 하나님을 향한 깊은 신앙과 감사가 녹아져 있습니다. 그녀의 음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느끼고, 삶의 희망과 용기를 얻기를 소망합니다. 저 역시 오늘 그녀와의 만남을 통해 제 삶의 영역에서 희망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오늘 한수진 씨와의 만남을 통해 무엇을 느끼셨나요?

목사님께서는 오늘 연주를 들으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할 때, 가장 아름다운 하나님의 작품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인생의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방송을 보시는 모든 분들도, 하나님 안에서 아름다운 인생을 연주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목사님께서 한 말씀 더 해주시겠습니까?

목사님께서는 오늘 한수진 씨를 보면서, 모든 음악과 영감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고 합니다. 한때는 음악적 재능을 자신의 것으로 생각했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임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템포조차 조절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속도 경쟁에 매몰되어 앞만 보고 달려가지만, 때로는 멈춰 서서 하나님의 섭리를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인생의 템포를 조절하시는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진정한 성공과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한수진 씨의 아름다운 연주와 감동적인 이야기가, 많은 분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선사하리라 믿습니다. 오늘 귀한 간증과 연주, 정말 감사드립니다.

[음악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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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고고학적 증거

12. 성경의 고고학적 증거들

13. 성경의 예언 성취

14. 성경에 기록된 현재와 미래의 예언

15. 성경에 기록된 인류의 종말

16. 우주의 기원이 증명하는 창조의 증거

17. 창조론 vs 진화론, 무엇이 진실인가?

18. 체험적인 증거들

19.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모순

20. 결정하셨습니까?

21. 구원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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