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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하 대표 간증: 하나님 안에서 존재의 가치와 사회적기업 '보라' 이야기

요약

역경을 넘어, 하나님 안에서 ‘나’를 찾다

쎄도 너무 쎈 언니의 솔직한 간증, 하나님 안에서 '나'는 존재만으로 귀해요: 사회적기업 '보라' 조은하 대표ㅣ새롭게하소서 - 텍스트 내용 상세 정리 및 노하우 소개

여러분 안녕하세요! 새롭게하소서의 주영훈입니다. 오늘, 우리는 '나'라는 존재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들이 생각하는 '나', 이 사이에서 우리는 얼마나 괴로워하고 힘들어하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나',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하는 점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신 특별한 분은 바로 이 하나님 안에서의 존재 가치를 깨닫고 엄청난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고 계신다고 합니다.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저 역시 하나님께서 저를 어떻게 바라보실지 매우 궁금한데요, 바로 사회적기업 '보라'의 조은하 대표님을 모시고 그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겠습니다. 대표님,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긴장되시나요? 네, 너무 긴장됩니다. 방송 전에 대표님께서 굉장히 내성적인 성격이라 많이 떨린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조금 편안해지셨는지요? 노력해 보겠습니다. 오늘, 회사 기업체의 아이덴티티를 딱 입고 오셨네요. 그런데 작가님의 제보에 따르면 어제 1분도 못 주무시고 밤을 꼬박 새셨다고 합니다. 정말인가요? 네, 원래 밤을 잘 새는 편이긴 한데요, 오늘은 긴장이 되니까 잠이 더 안 오더라고요. 방송 전에 혼자 누워서 시뮬레이션을 그리다 보면, 혹시 말실수라도 할까 봐 걱정되기도 하죠? 맞습니다. 긴장하면 말이 빨라지는 경향이 있어서, 항상 말이 빠릅니다.

대표님의 이력을 보니, 성인이 된 이후에 부모님께서 세 자녀를 입양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누구, 누구, 누구인가요? 제가 대학교 1학년, 스무 살 때, 사례로 기억하는데 100일, 50일, 60일 정도 된 아기들을 차례로 입양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결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입양 후, 주변에서 "동생들이 정말 예쁘다, 질투 나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고, 입양 사실을 알면서도 "무슨 관계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심지어 대표님을 동생들의 엄마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네, 애매한 관계로 보였겠죠. 언니라고 하기엔 나이가 많고, 엄마라고 하기엔 어려 보이니까요. 오빠는 저와 같이 다니지 않았습니다. 신혼부부로 오해받아 부부의 아이로 여겨질까 봐 그랬던 것 같아요. 남자친구와 함께 다니면 "아빠냐, 엄마냐, 삼촌이냐"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습니다. 정말 황당한 질문들이 쏟아졌겠네요.

동생들이 입양되면서, 가족 모두 돌림자를 사용해 이름을 바꾸었다고 들었습니다. 대표님도 바꾸셨나요? 네, 저도 바꿨습니다. 저는 '은하', 동생들은 '은비', '은별', '은샘'으로 지었습니다. '은예'라는 이름도 생각했었는데, '에스더의 별'이라는 의미였죠. '은샘'은 '마르지 않는 샘'이라는 뜻입니다. 이름에 담긴 의미가 참 아름답습니다. 제가 우스갯소리로 이름을 잘못 지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아직 이름값을 못 한다는 거죠. 은비는 '음비'라 좀 비관적이고, 은별이는 '별'나고, 은하는 '샘'이 많다고요. 물론 농담이시겠죠? 동생들과는 매우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고, 서로 "언니처럼 못 살겠다"고 하기도 하고, 자매처럼 많이 싸울 때는 "누가 키워달랬냐", "우리 엄마 찾아갈 거야" 같은 격한 말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국 "넌 언니뿐이야"라며 서로를 챙기는 훈훈한 자매입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도 자매는 자매인가 봅니다. 저희 나이가 비슷하면 많이 티격태격하는데, 엄마뻘 되는 나이 차이에도 똑같다는 게 신기합니다.

성인이 된 자녀가 있는 상황에서 입양을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부모님의 동의를 구했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엄마는 어렸을 때부터 입양에 대한 생각을 말씀하셨습니다. 엄마는 어렵게 사셨지만, 사랑이 넘치셨고 아이들을 키우고 돌보는 것에 관심이 많으셨습니다.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데 마음이 있으셨다는 점이 존경스럽습니다. 할머니의 반대로 어렸을 때는 입양을 미루셨지만, 할머니 돌아가신 후 입양을 진행하셨습니다. 제가 성인이 될 때까지 시간이 걸렸지만, 워낙 어렸을 때부터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자라서, 입양은 저에게 큰 이벤트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일이었고, 좋았습니다. 정말 긍정적인 마음으로 받아들이셨군요. 동생들이 너무 예뻐서, 제가 꿈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다 포기할 정도로 괜찮았습니다. 사람들은 그걸 신기하게 생각했지만, 그냥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라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애 좋아하는 사람은 남의 집 애도 예뻐 보인다지만, 대표님의 경우는 정말 특별한 사랑인 것 같습니다. 저는 애 욕심이 많습니다. 원래 애를 원체 좋아합니다.

사회적 기업 '보라'를 운영하게 된 계기가 동생들의 영향이 컸다고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이유였나요? 동생들이 어릴 때부터 자라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저희 가정이 넉넉하지 못해 동생들의 꿈을 든든하게 서포트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습니다. 현실적인 어려움에 직면하셨군요. 재정적인 문제도 있었고, 세 명이나 되다 보니 쉽지 않았습니다. 동생들에게 "꿈이 뭐냐, 비전이 뭐냐" 물어보면, 뚜렷하게 대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청소년, 청년 시기에 자립 준비 청년에 대한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겼습니다. 당시 제가 가드닝 관련 개인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클래스 수강생 중 사회적 기업에 대해 소개해주는 분이 있었습니다. 사회적 기업이라는 개념이 생소하게 느껴지셨을 텐데요. 사회적 기업에 대해 전혀 몰랐습니다. 동생들 키우느라 정신없이 일만 했으니까요. 사회적 기업을 통해 삶으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도전을 받았고, 막연하게 꿈꿔왔던 선교사의 삶을 사회적 기업을 통해 실질적으로 필드에서 살아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회적 기업 설립을 신청하게 되었고, 이전에 '새롭게 하소서'에 출연하셨던 도현명 대표님의 센터 펠로우로 뽑히면서, 자립 준비 청년들과 관련된 일들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동생들의 어려움이 사회적 기업 설립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군요.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정말 많은 친구들이 꿈이 없다고 대답합니다.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고요.

사회적 기업 '보라'는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기업인가요? 사회적 기업을 시작하기 전부터 가드닝, 플랜테리어 관련 사업을 운영하며 농장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플랜테리어 사업과 사회적 기업을 결합하신 거군요. 이 사업에 자립 준비 청년들과 함께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목표를 더했습니다. 제가 여성이고, 동생들도 다 여성이다 보니, 주변에 여성 청년들이 많았습니다. 자립 준비 청년, 입양 청년, 미혼모, 한부모 가정, 취약 계층 여성 청년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친구들과 함께 식물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여성들의 섬세함과 식물 사업의 조화가 기대됩니다. 지난번에 '새롭게 하소서'에 출연하셨던 김성민 대표님의 '브라더스키퍼'처럼, '보라'라는 이름도 성경적인 의미가 담겨 있나요? 네, 맞습니다. '보라'는 환경적인 의미도 있고, 'Behold,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라는 성경 구절의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성경적인 의미와 함께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하지만 사실 사람들은 그런 의미보다 제가 보라색을 너무 좋아해서 '보라'라고 기억하는 것 같아요. 오히려 제 이름은 잊어버리고 "걔 보라" 이렇게 부르는 거죠. 심지어 제 이름이 보라인 줄 아는 사람도 많습니다. 보라색에 대한 대표님의 애정이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보라색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갑니다. 옷, 양말, 심지어 반지까지 보라색이라고 들었는데요. 네, 맞습니다. 양말도 보라색이고요, 단지 안에 있는 내용물도 보라색입니다. 정말 '보라' 그 자체시네요. 앙드레김 선생님처럼 흰색만 고집하는 분들도 계신데, 대표님은 보라색을 쫙! 어렸을 때 보라색에 얽힌 에피소드가 하나 있습니다. 대학생 때 지하철을 탔는데, 사람들이 자꾸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습니다. 혹시 올 보라색 패션이었나요? 네, 맞습니다. 머리에는 보라색 비니, 보라색 떡볶이 코트, 보라색 골덴 바지, 보라색 운동화, 심지어 가방까지 보라색이었어요. 정말 '보라 인간'이셨군요. 그때 사람들이 쳐다보는 게 창피해서 떡볶이 코트를 열었는데, 안에 입은 니트도 보라색이었어요. 정말 온통 보라색으로 가득 찬 모습이었겠네요. 그 이후로 보라색을 조금 자제하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보라색 원피스에 보라색 스타킹, 보라색 구두까지 신었었습니다. 친구 이름이 '보라'인 줄 아는 사람들도 많았죠. 심지어 제 이름을 '보라'로 바꾸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본인 이름까지 보라색으로 바꾸려고 하셨다니, 정말 보라색을 진심으로 사랑하시는군요. '조보라'라는 이름도 예쁘지 않나요? 보보, 라라, 뭔가 운율도 맞고. 하지만 나이가 있어서 바꿀 게 너무 많아 포기했습니다. 이름까지 바꾸는 건 쉽지 않죠.

신혼여행도 보라카이로 다녀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이름 때문에 보라카이를 선택하신 건가요? 이름도 좋았고, 보라카이라는 글자도 좋았습니다. 사실 보라카이에 대한 로망이 있었는데, 마침 이름도 '보라'니까 보라카이로 신혼여행지를 정했습니다. 보라카이는 정말 아름다운 곳이죠. 결혼반지도 자수정으로 하셨다고요? 네, 맞습니다. 예물 하시는 분이 이런 사람은 처음 봤다고, 후회하지 않겠냐고 물어보셨지만, 저는 괜찮다고 했습니다. 정말 확고한 보라색 사랑이 느껴집니다. 청첩장도 보라색으로 했는데, 뭔가 2% 부족한 느낌이 들어서 남편과 함께 큐빅 보라색을 400장 넘게 하나하나 직접 붙였습니다. 핸드메이드 청첩장이라니, 정성이 대단합니다. 남편분이 정말 대단하시네요. 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결혼하셨나요? 네, 애프터 드레스는 보라색으로 입었습니다. 신혼집도 온통 보라색으로 꾸미고, 휴지도 보라색을 썼는데, 단종될 때 너무 슬펐습니다. 생활 곳곳에서 보라색 사랑이 느껴지네요. 가드닝 사업을 하시면서도 보라색 꽃을 은연중에 많이 선택하시나요? 네, 아무래도 보라색 꽃에 눈길이 더 가는 것 같아요. 화려한 색깔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보라색은 대표님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색깔인 것 같습니다.

보라색 쇼츠도 가지고 계신다고요? 네, 보라색 쇼츠도 있습니다. 가끔 교회 갈 때 입기도 합니다. 이상준 목사님도 보라색을 좋아하셔서, 보라색 셔츠를 즐겨 입으신다고 들었습니다. 목사님도 보라색을 좋아하시다니, 신기하네요. 제가 보라색 옷을 입고 방송에 출연한다고 하니, 지인들이 "너도 '새롭게 하소서' 나가야 될 것 같다"고 DM을 보냈습니다. 보라색 마니아들 사이에서 유명인사가 되실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보라'라고 부르니까, 이제는 '보라' 이미지가 제 대표 이미지가 된 것 같습니다. 보라색을 좋아하면 약간 특이하다는 인식이 있지 않나요? 네, 보라색을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이미지가 좀 있죠. 보라색을 좋아하면 '또라이 아니면 천재' 라는 이야기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사람들은 저에게 어디에 속하냐고 묻곤 합니다. 대부분 '또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요. 너무 보라색만 좋아하면 '또라이'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니,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왜 보라색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는데, 그냥 예뻐서 좋습니다. 솔직하고 명쾌한 답변이네요. 보라색은 제 삶의 일부가 된 것 같아요. 기업 이름도 '보라'로 짓게 되었고, 성경적으로도 보라색은 하나님, 자연, 왕을 상징하는 의미가 있다고 하니, 저에게는 좋은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보라색에 대한 대표님의 깊은 애정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성경에서 보라색은 왕족의 색깔이라고 하니, 대표님과 정말 잘 어울립니다. 감사합니다. 칭찬 감사합니다.

긴장된다고 하시더니, 보라색 이야기만 나오면 아주 신이 나셨네요. 역시 보라색 이야기가 나오니 긴장이 풀리시는 것 같습니다. 남편분 의상도 보라색으로 맞춰 입으시나요? 신혼 초에는 많이 맞춰 입었는데, 지금은 좀 내려놨습니다. 이제 보라색 집착에서 벗어나신 건가요? 아니요, 아직도 보라색은 너무 좋습니다. 이제 대표님의 살아온 이야기를 좀 더 나눠보겠습니다. 동생들 이야기가 빠질 수 없는데요, 성인이 된 나이에 세 명의 동생들이 한꺼번에 가족이 되면서, 힘든 일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힘든 일이 없었다고 말하면 거짓말일 겁니다. 20대, 30대 삶이 동생들과 관련된 일들로 가득했으니까요. 좋았던 점도 많았지만, 힘들었던 점을 꼽자면 둘째 동생과의 관계가 어려웠습니다. 둘째 동생에게 특별한 어려움이 있었나요? 예전에는 '느린 학습자'라는 개념이 없을 때라, 둘째 동생을 보면서 '특이하다, 별나다'고 생각했습니다. 첫째 동생은 순한 편이었는데, 둘째는 달래도 울음을 멈추지 않고, 잘해줘도 반응이 없고, 정말 어려웠습니다.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당황하셨겠네요. 오빠의 아내, 즉 새언니가 언어 치료사인데, 둘째 동생이 '느린 학습자'일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보니, 실제로 '느린 학습자' 판정을 받았습니다. 전문가의 도움이 없었다면, 어려움을 겪었을 수도 있겠네요. 만약 새언니가 아니었다면, 그냥 몰랐을 것 같아요. 둘째 동생과의 소통 방식이 너무 달라서 힘들었습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실생활에 적용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동생들이 많으니, 다 같이 외출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텐데요. 동생들과 함께 다니기 어려워서, 첫째 동생, 둘째 동생, 셋째 동생과 번갈아 가며 일대일 데이트를 했습니다. 첫째, 셋째 동생과의 데이트는 항상 즐겁게 끝났지만, 둘째 동생과는 항상 끝이 좋지 않았습니다. 둘째 동생과의 데이트는 왜 힘들었나요? 둘째 동생은 "나 안 가, 나 안 먹어, 울고"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받아주면 좋겠지만, 저도 성격이 있어서 화가 나기도 하고 괴롭기도 했습니다. 쉽지 않은 시간들을 보내셨네요. 하지만 감사하게도, 동생 덕분에 지금은 웬만한 청년들을 만나도 다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동생을 통해 20년 가까이 훈련을 받은 셈이죠. 예전에는 둘째 동생에게 "너는 진짜 나랑 안 맞는다"고 생각했지만, 그룹홈에 방문했을 때 원장님이 힘들어하는 친구 이야기를 듣고 보니, 제 동생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친구였습니다. 동생을 통해 타인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신 거군요. 공감하고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는 원장님 말씀에, '언제까지 이럴까요?' 라고 물으니, 원장님이 웃으시면서 '계속 그럴 거예요' 라고 답하셨습니다. 쉽지 않은 문제이지만, 자립 준비 청년들이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동생과의 경험이 자립 준비 청년들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네요. 화가 날 수 있지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큰 변화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을 늘 느끼면서 살고 있습니다. 요즘은 둘째 동생이 귀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오늘도 동생과 싸웠다고 들었는데, 방송에서 동생 이야기를 해도 괜찮은지 양해를 구했나요? 네, 동생에게 양해를 구했습니다. 제가 듣기 불편할까 봐 걱정했는데, 동생은 괜찮다고 했습니다. 쿨한 동생분이시네요. 얼마 전에도 동생과 삶의 방향에 대해 토론하다가, 결국 안 좋게 끝났습니다. "너 때문에 너무 빡치는데, '새롭게 하소서' 가서 네 얘기해도 되냐"고 물었더니,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오늘 같이 온 겁니다. 방송에서 동생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해 흔쾌히 허락해주시다니, 동생분도 대단하십니다. 된다고 했지만, 막상 이렇게 대놓고 이야기하면 기분이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지금 심정이 어떠신가요? (동생분) 괜찮아요. 관심받는 거 좋아해요. 역시 관종의 DNA가 있으시군요. 20살 차이 나는 언니와 20년 넘게 함께 살았으니, 서로 맞춰가면서 살았겠지만, 여전히 어려운 점도 있을 것 같습니다. 동생분께 마이크를 넘겨서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동생분) 굳이? (대표님) 강제로 앉힐까요?

어머니를 모시고 이야기를 들을 수 없지만, 어머니께서는 어떻게 세 명이나 입양을 결심하셨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자식들을 다 키워놓고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을 텐데, 다시 어린아이들을 입양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요. 엄마에게 왜 입양을 결심했는지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엄마는 어렸을 때부터 어려운 삶을 사셨고, 시집살이도 혹독하게 하셨습니다. 어머니의 삶이 쉽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아버지를 잘 내조하시고, 작은 아빠는 목사님까지 되셨습니다. 엄마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힘든 마음을 교회에서 위로받고, 하나님을 통해 사랑을 알게 되셨다고 합니다. 어머니께서 신앙 안에서 큰 위로와 사랑을 받으셨군요. 한 번 사는 인생, 고아와 과부를 돌보며 생명을 지키는 일이 너무 소중하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엄마는 사랑이 많으셨고,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은 다양했지만, 사랑이 넘치는 분이셨습니다. 신기하게도 오빠와 아빠, 저희 집 남자들은 입양을 딱히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가족 모두 따뜻한 마음으로 입양을 받아들였군요. 무심한 듯 시크하지만, 동생들을 잘 챙겨줬습니다. 아버지도 표현은 서툴지만, 마음은 따뜻한 분이셨습니다. 좋으면 싫다고 말하는 스타일이셨죠. 츤데레 아버지시군요.

아기 한 명 키우는 데도 돈이 많이 드는데, 세 명이나 입양하려면 경제적으로 부담이 컸을 것 같습니다. 입양할 당시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요. 입양했다고 하면, 부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희 집은 늘 어려웠습니다. 아빠가 사업하다 망하기도 하고, 돈을 못 받아오시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 세 아이를 키우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고등학교 때 잠깐 괜찮았던 적 빼고는, 입양 후에도 계속 어려웠습니다. 어렸을 때 쭈쭈바를 반으로 잘라 오빠와 나눠 먹으라는 엄마 말씀에, 가다가 너무 맛있어서 다 먹어버린 적이 있습니다. 그날 엄마에게 엄청 혼났습니다. 엄마의 사랑은 컸지만, 엄격한 면도 있으셨군요. 엄마는 사랑도 많으셨지만, 화도 많으셨습니다. 잘못하면 혼을 내시지만, 잘못 안 하면 혼내지 않으셨습니다. 그 정도로 어려웠고, 아빠가 공사 대금을 못 받아서 집이 넘어가는 일도 있었습니다. 정말 힘든 시기를 겪으셨네요. 동생들이 세 명이나 있었기 때문에, 어디 가서 살아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수중에 500만 원밖에 남지 않았을 때,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데, 당장 살 집이 없습니다. 집을 주세요" 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기도에 응답이 있었나요? 정말 감사하게도, 잠시 다른 곳에 살다가, 집이 경매로 넘어갔는데, 낙찰받으신 분이 외국에 사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분이 집 수리를 저희 아빠에게 맡기셨고, 두 달 동안 수리하는 동안 저희 가족은 다시 그 집에 들어가 살게 되었습니다. 정말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네요. 굳이 수리할 필요 없는 집인데, 집주인이 굳이 수리를 맡기고, 저희 가족에게 다시 살게 해주신 겁니다. 보증금도 거의 안 받으셨습니다. 팔린 집에 다시 들어가 오랫동안 살 수 있었습니다. 정말 영화 같은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셨다는 말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네요.

당시 어려움 속에서 대표님은 이미 성인이었으니, 가정에 도움을 주기 위해 일을 많이 하셨을 것 같습니다. 네, 정말 끊임없이 일했습니다. 젊었을 때 일했던 기억밖에 없습니다. 친한 언니가 "너는 왜 이렇게 직업을 자주 바꾸냐, 끈기가 없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힘든 상황 속에서 직업을 자주 바꿀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을 텐데요. 유학도 가고 싶었고, 공부도 많이 하고 싶었지만, 끊임없이 일을 해야 했습니다. 당시 시골에 살아서, 월급을 가장 많이 주는 곳으로 직장을 옮겨 다녔습니다. 주일 성수를 못 하게 되면 퇴사하기도 하고, 여러 번 직업을 바꾸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가정 형편 때문에 꿈을 포기하고, 현실적인 어려움에 맞서 싸우셨군요. 부모님 원망은 하지 않았나요? 능력이 안 되는데 왜 동생들을 데려왔을까 하는 생각은 안 해봤는지 궁금합니다. 거짓말 아니고, 능력이 안 되는데 왜 데려왔을까 하는 생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불만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부모님께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성격은 아니었습니다. 가끔 제가 큰 선택을 할 때, 부모님과 의논하고 결정했으면 좋겠고, 인생의 길잡이가 되어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부모님께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던 거군요. 외로웠습니다. 일만 하고, 모든 것을 혼자 개척해나가야 하는 삶, 모두가 저를 의지하는 삶이 버겁게 느껴졌습니다. 부모님도 부모님의 부모님께 사랑받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표현하는 방법을 모르셨던 것 같습니다. 사랑받는 법을 모르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면서, 외로움을 느끼셨군요. 제가 기대하는 만큼의 것을 줄 수 없는 상황에 부모님도 속상해하셨습니다. 하나님, 우리 엄마 아빠는 언제까지 힘들어야 합니까,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힘들게 사셔서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돈이 많으면 편하겠지만, 없으면 불편하죠. 하지만 주어진 삶 속에서 오늘을 살아가야 하니까, 그렇게 적용하며 살았습니다. 주어진 현실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긍정적으로 살아오신 대표님의 모습이 감동적입니다.

오늘 이야기가, 제가 늘 강조하는 메시지와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자녀를 낳을 때 경제적인 이유로 망설이는 젊은 부부들에게, 하나님께서 키우신다는 믿음을 가지면 내 연봉에 좌우되지 않고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습니다. 대표님의 삶 자체가 그 메시지를 증명하는 것 같습니다. 직접 경험하셨으니 더 와닿는 이야기입니다. 사라지는 것 같지만, 결국 살아지더라고요. 정말 공감되는 말씀입니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거죠. 그래서 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죽을 것 같지만, 죽지 않더라고요. 하나님이 부르셔야 죽는 거지, 쉽게 죽지 않습니다. 강한 확신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항상 주변 사람들에게 "죽지 말고 살아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동생들을 정말 진심으로 사랑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제 남편 만난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남편분 이야기는 쑥스러우신가요? 앞에 동생분도 계시니, 조금 곤란하신가요? 괜찮습니다. 편하게 이야기해주세요.

남편분과는 어떻게 만나게 되었나요? 남편은 예전에 다니던 교회 오빠였습니다. 8년 정도 교회 오빠 동생 사이로 지냈습니다. 특별한 관심은 없었습니다. 그냥 교회 오빠니까. 교회 오빠에게는 특별한 매력을 느끼지 못하셨나 봅니다. 제 바운더리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관심이 있었고, 외부 사람에게는 별로 궁금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교회 사람이구나'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결혼은 타이밍이라고 하잖아요. 젊은 친구들에게 결혼은 꼭 엄청난 사랑 때문에 하는 게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결혼은 사랑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현실적인 조언이네요. 제가 몇 가지 후회하는 일 중 하나가, 당시 교회 사람들에게 "이 세상 남자가 다 남자라도, 이 오빠는 남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정말 단호하게 말씀하셨네요. 너무 큰 말실수였죠. 제 발등을 제가 찍은 셈입니다. 당시 제가 주위에 "조은하 결혼한대, 누구랑? 임이랑!" 이런 소문이 쫙 퍼졌습니다.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렸군요. 정말 미친 거 아니냐는 반응도 있었죠. 제가 한 말을 주워 담을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결혼하게 된 건 아니고요. 남편에게 나중에 사과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말했었다고,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미안하다고. 솔직하게 사과하신 모습이 멋지십니다. 왜 마음이 흔들렸냐고요? 제가 집이 넘어가고 힘들 때, 남편이 옆에서 많이 도와줬습니다. 힘든 시기에 곁을 지켜준 든든한 존재였군요.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줬습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도 있었고, 같은 교회를 다니고 있었던 점도 작용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서로 기도해보자고 했습니다. 진지하게 결혼을 고민하기 시작한 거군요. 기간을 정해서 기도해보고, 서로 마음이 맞으면 사귀고, 아니면 말자고 했습니다. 솔직히 이미 마음은 기울어져 있었죠. 기도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썸 기간을 두 달 정도 보냈고, 결국 사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6개월 만에 결혼했습니다. 정말 초고속 결혼이네요. 1월 1일 사귀어서 7월 6일 결혼했습니다.

이성적으로 '이 세상 모든 남자가 남자라도, 이 사람은 남자 아니다' 라고 생각했던 남자가, 남자로 바뀌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을까요? 잘해준 것 말고, 외적인 매력도 있었나요? 외적인 것은... 방송에서 말하기 좀 힘든가요? 솔직하게 말씀해주셔도 괜찮습니다. 제가 감정적으로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고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여자와 남자가 바뀐 케이스처럼, 저는 좀 딱 떨어지는 성격이고, 남편은 오히려 애교가 많습니다. 서로 상반된 매력에 끌리셨군요. 남편이 동생들을 잘 챙겨주는 모습에, 여성들은 모성애를 느끼잖아요. 남편의 그런 모습이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 남편은 제가 공주처럼 살 줄 알았다고 합니다. 자기가 잘해주니까, 제가 힘들었던 과거를 보상받으면서 공주처럼 살 줄 알았는데, 결혼했더니 제가 무수리가 되었고, 남편은 리더십 있는 여자를 좋아했는데, 결혼해보니 너무 센 여자였다는 거죠. 결혼은 현실이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남편은 아프면 "아이고, 어떡해, 약 먹어야지" 하는 스타일인데, 저는 아파도 병원 안 가는 스타일입니다. 너무 반대 성향인 거죠. 그래서 대환장 파티였습니다. 정반대 성격이라, 결혼 생활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후회는 안 하셨나요? 남편분은 후회했을 수도 있겠네요. 남편분이 더 힘들었을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저는 제 교만이 아직 살아 있어서, '나는 후회할 수 있지만, 너는 뭔데 후회해? 내가 결혼해줬는데'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솔직한 심정이시네요. 하지만 남편분도 좋은 분 같습니다. 언제 결혼하신 건가요? 2013년 결혼해서, 지금 12년 차입니다.

남편분에게 사고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2019년 남편이 큰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소식이네요. 예상치 못한 사고라, 모두 당황했습니다. 목뼈가 부러져서 하반신 마비가 올 수도 있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차는 폐차되고, 남편은 머리도 찢어져서 뇌 검사도 받고, 응급실에 실려 가는 상황이었습니다. 정말 끔찍한 순간이었을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가장 큰 시련 중 하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도 하나님이 다루시는 과정, 부부가 연합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당시 제가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면역력이 떨어지고, 온몸에 피부병이 생겼습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모두 힘든 시간이었겠네요. 신기하게도 얼굴과 목에는 피부병이 안 생겼습니다. 몸에만 전신 피부병이 왔는데, 대상포진, 습진, 온갖 피부병이 다 왔습니다. 너무 간지럽고 아픈데, 약도 없었습니다. 병원에서는 무조건 쉬라고 했지만, 사업 때문에 쉴 수 없었습니다. 사업을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었군요. 당시 사업적으로 부채 상환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매달 수천만 원씩 갚아야 했습니다. 가드닝 일이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막노동입니다. 남자도 힘든 일을, 체력도 안 좋은 제가 깡으로 버텼습니다. 밤에 6시간, 8시간씩 제 살을 찌르고 피를 뽑으면서 부황을 뜨고, 다음 날 또 일하러 갔습니다. 정말 처절하게 힘든 시간을 보내셨네요. 1년 가까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정말 힘들고 외로웠지만,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고난과 축복을 함께 주시는 것 같습니다. 그때 하나님을 정말 친밀하게 만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더욱 깊이 만나는 경험을 하셨군요.

남편분은 계속 병원에 입원해 계셨나요? 남편은 초반에 몇 달 입원했는데, 그때 힘들었던 점 중 하나가 남편에게서 직접 듣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통해 남편 이야기가 들려왔다는 것입니다. 남편분이 서운함을 표현했나 봅니다. "남편 병원에 안 간다며?" 라는 말을 듣고, 무슨 말이냐고 물어보니, 남편이 제가 병원에 안 와서 섭섭해했다는 겁니다. 당시에는 저도 너무 힘들어서, 차라리 눕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본인도 힘든 상황이라, 남편을 챙길 여력이 없었던 거군요. 서로에게 서운했던 거죠. 지금은 이해가 갑니다. 만약 제가 남편 입장이라도 섭섭했을 것 같아요. 남편분은 병원에서 주로 뭘 하셨나요? 안 오시면 기다리셨을 텐데요. 남편분은 병원에서 외로움을 어떻게 달래셨을까요? 게임을 많이 하셨더라고요. 아, 게임으로 외로움을 달래셨군요. 마음이 허하니까, 게임에 몰두하신 것 같습니다. NC 게임을 하셨나? 요즘 게임은 현질을 해야 잘 된다고 하던데요. 혹시 남편분이 현질을 하셨을지도 모르겠네요. 게임에 대해서 전혀 몰랐고, 오빠가 게임을 너무 좋아해서 저는 게임을 싫어했습니다. 제 인생에서 절대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게임이었는데, 남편이 게임을 하고 있었다니,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남편분의 게임 사실을 알고, 실망감이 컸을 것 같습니다. 그걸 1년 지나서 알게 된 거예요. 부인은 힘들어서 찔러가면서 부황 뜨면서 일하는데, 남편은 게임 현질이라니. 정말 속상하셨겠네요. 나중에 노트북이 바뀐 것을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커플 노트북이 있었는데, 어느 날 보니 더 커진 노트북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게임하기 더 좋은 노트북으로 바꾸신 거죠. 남편분의 게임 사랑이 노트북 업그레이드로 이어진 거군요. 일도 하면서 게임도 할 수 있는 노트북으로 바꾸신 것 같습니다. 정말 배신감이 컸습니다. 만 원도 없어서 밥을 못 먹던 시절이었는데, 남편은 게임 노트북을 사고 있었다니.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남편분의 행동이 더 서운하게 느껴졌을 것 같습니다.

그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지금 잘 지내시는 걸 보면, 극복하신 것 같은데요. 하나님이 주신 마음 중 하나가, 남편이든 가족이든 누구든 원망하지 않는 마음이었습니다. 당시에도 "하나님, 저한테 왜 이러세요?" 라고 원망하기보다, "하나님은 감당할 수 있는 시련만 주신다고 했는데, 너무 괴롭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주세요" 라고 기도했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셨군요. 슬펐지만, 하나님께 선택을 구했습니다. 당시 셀 공동체 식구들이 많은 도움을 주셨고, 남편과 함께 이 어려움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고민했습니다. 혼자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을 공동체와 함께 나누셨군요. 이 과정이 너무 어렵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돌이킬 기회를 주신다고 생각했습니다. 파탄 나는 가정이 많은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회복할 기회를 주셨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군요.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 안에 교만이 있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남편은 모든 것을 공유하고 함께하는 것을 좋아하는 가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저에게 관심이 많아서 "밥 먹었냐"는 질문을 자주 했는데, 저는 그런 질문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의 관심이 부담스러웠던 적도 있었나 봅니다. 점심 메뉴가 궁금한 게 아니라, 그냥 안부를 묻는 건데, 저는 "왜 밥 메뉴가 궁금해?" 이렇게 반응했습니다. 서로 언어가 달랐던 거죠. 저는 진지하고 건설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고, 남편은 추억을 공유하고 과거를 회상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서로 다른 성향 때문에 소통에 어려움이 있었군요. 서로 안 맞는 부분이 많았지만, 다행히 신앙, 정치관, 세계관은 맞았습니다. 핵심 가치관이 일치했다는 점이 다행입니다.

대표님은 T, 남편분은 F 성향이신가요? 저는 T, 남편은 F입니다. 극과 극이죠. 모든 부부가 극과 극인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서로에게 매력을 느끼지만, 살다 보면 안 맞는 부분 때문에 부딪히는 거죠. 서로 다른 점이 매력이 될 수도 있지만,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남편이 시댁 사업을 돕다가, 저를 만나 이사하면서 직업을 바꾸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사람들이 남편에게 "와이프 뭐 해? 사업 잘 된다며? 좋겠다"고 물어봤나 봅니다. 주변의 시선이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겠네요. 저는 말을 안 하고 도망 다니는데, 남편에게 자꾸 물어보니까, 남편이 힘들어하더라고요. 어느 날 저를 불러서 사람들이 와이프 이야기를 하는데, 마냥 좋지만은 않다고 했습니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너는 쉬워 보이는데, 나는 왜 이렇게 어렵냐"고 하소연하더라고요. 남편분도 나름대로 고충이 있었군요. 남편에게 뭐라고 해줘야 할지 고민하다가, "하나님이 너를 더 사랑하시는 것 같아" 라고 말했습니다. 왜냐고 묻길래, "많은 사람들이 '좋겠다, 부럽다' 하는 나라는 존재를 네가 가졌잖아. 그리고 힘들 때 옆에서 묵묵히 지켜주는 네 아내 덕분에 힘든 시기를 잘 헤쳐나갈 수 있었잖아. 네가 진정한 승리자야" 라고 말했습니다. 정말 멋진 위로네요. 남편분이 감동받으셨을 것 같습니다. 남편이 그 말을 듣고 좋아하더라고요.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다고. 남편은 마리아, 저는 마르다 같은 스타일인 것 같습니다. 저는 마리아처럼 살고 싶었는데, 현실은 마르다처럼 끊임없이 일해야 하는 삶이었습니다. 현실과 이상은 다른 경우가 많죠. 그래도 그런 어려움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맞춰가려고 노력하신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빚 때문에 사업 운영이 더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남편분은 빚 때문에 대표님을 원망하지 않았나요? 남편은 안정적인 것을 좋아해서,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남편 사고 직전에, 제가 잘 되던 가드닝 스튜디오를 더 확장하려고 대출을 받아서 모든 재정을 쏟아부었습니다. 사업 확장이 오히려 어려움을 가중시킨 셈이 되었네요. 확장한 지 얼마 안 돼서 남편 사고가 나고, 코로나까지 터지면서, 정말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빨리 사업을 접어야 했는데, 포기가 안 되어서 빚이 6억까지 늘어났습니다. 감당하기 힘든 빚 때문에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셨겠네요. 매달 5~6천만 원씩 빚을 갚아야 했는데, 정말 막막했습니다. 남편은 원하지 않았던 사업 확장 때문에 빚이 늘어난 상황이라, 남편이 원망할 수도 있었겠죠. 제 변명은, "당신이 나를 편하게 살게 해줬으면, 내가 이렇게 무리하게 사업 확장을 했겠냐"는 것이었습니다. 힘든 상황에서 서로에게 책임을 돌리게 되는 경우가 많죠. 마음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습니다. 남편은 늘 한 발짝 물러서 있는 스타일이라, 탓하기보다는 그냥 힘들어했습니다. 모든 남자들이 빚 문제만 생기면 저에게 화살을 돌렸습니다. 이미 벌어진 일인데, 원망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힘든 상황에서 가족들의 지지와 위로가 부족해서 더 외로우셨을 것 같습니다. 정말 의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남자들끼리의 의리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부부간의 의리는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힘들 때 서로 지지하고 격려하는 끈끈한 의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잘 됐을 때는 좋아하더니, 힘들어지니 외면하는 모습에 실망했습니다. 힘든 시기에 진정한 인간관계를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죠.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슬프거나 눈물 나지는 않지만, 힘들었던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대표님은 강해 보이시지만, 말씀을 듣다 보니 여린 마음도 있으신 것 같습니다. 말씀하시면서 눈시울이 붉어지시는 모습에 마음이 찡했습니다. 사람들이 "너도 우냐?"고 자주 물어봅니다. 제가 좀 세게 생겨서 그런가 봅니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죠. 힘든 시기에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에베소서를 묵상하면서 절절하게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예전에는 에베소서를 쪼개서 읽었는데, 남편 사고 이후 에베소서 전체를 묵상하면서, 말씀대로 살고 싶지만, 그렇게 살지 못하는 제 모습에 괴로워했습니다. 말씀과 현실의 괴리 때문에 힘들어하셨군요. 말씀대로 살고 싶은데, 그렇게 못 살아서 하나님께 죄송했습니다. "하나님, 한 번 사는 인생, 하나님 안에서 사는 것이 갑진 인생이라고 하셨는데, 제 삶을 보고 누가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 할까요? 제 삶이 과연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까요? 저도 이렇게 힘든데..." 라는 생각에 괴로웠습니다. 스스로 자책도 많이 하셨겠네요. "네가 그렇지 뭐" 라는 자책감이 계속 들었습니다. 지금도 그런 마음이 들 때가 있지만,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고 성장하려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어릴 때부터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리셨다고 들었습니다. 옛날에 못생겼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으셨다고요? 네, 어렸을 때 사진 보면 정말 못생겼습니다. 과거 사진을 공개해주실 수 있나요? 자료 화면으로 잠깐 보여드려도 괜찮을까요? 어렸을 때 사진 보면, 지금과는 완전히 딴판입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은 성형수술했냐고 물어볼 정도입니다. 옛날에는 까맣고 털도 많고, 원숭이 같아서 아빠가 저를 안 쳐다봤다고 합니다. 외모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으셨군요. 엄마는 힘들 때 "너를 낙태하고 싶었는데 못 했다"고 말하기도 하고, 고모는 저를 "못난이"라고 불렀습니다. 사람들은 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소극적이고, 남들 눈치를 많이 봤습니다. 어린 시절의 상처가 마음속에 깊이 남아있었군요. 기본적으로 제 안에 거절감이 깔려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날 좋아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늘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한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날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살았습니다. 낮은 자존감 때문에 힘들었던 시간들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 거절감이 오히려 저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습니다. 더 잘해야겠다는 강박감이 있었죠. 그러다 보니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관심이나 있을까? 내가 이렇게 부족한데...'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도 멀게 느껴졌던 거군요. 어려웠던 시간에 하나님은 멀리 계신 것이 아니라, 제가 울고 있을 때 제 옆에서 함께 울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 곁에 함께 하신다는 것을 깨달으셨군요. 그걸 깨달았을 때, 다시 살게 되었습니다. 영적으로, 정서적으로, 사업적으로도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 깨달음이 큰 힘이 됩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제 삶 속에서 "나는 너로 인해 기뻐한다. 네가 뭘 그렇게 많이 해야 하고 증명해야 하는 삶이 아니라, 너 자체로 내가 기뻐한다"고 말씀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고, 존재 자체로 사랑받는 존재임을 깨달으셨군요.

어두운 터널을 지나면서, 진정한 깨달음을 얻으셨네요. 그렇게 깨달음을 얻게 되셨나요? 네, 어두운 터널을 지나면서 진실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고난은 때로는 우리를 성장시키는 귀한 경험이 되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잘 되면 하나님 덕분, 안 되면 하나님이 막으셨다"는 표현을 많이 쓰잖아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자기 마음의 동기, 마음의 중심인 것 같습니다. 열심히 성실하게 일했는데 안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크리스천이라고 하면서 일을 대충 해놓고 "하나님이 막으셨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책임 회피는 옳지 않다는 말씀이네요.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점검해야 합니다. 예전에는 성과 지향적인 사람이어서, 모든 것을 혼자 하려고 했지만, 지금은 하나님 앞에서 성과를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기대합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겸손하게 나아가려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힘들지만, 재미있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회적 기업 운영은 일반 기업보다 더 힘든 점이 많을 것 같습니다. 사회적 기업 운영의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동생들을 많이 키웠지만, 사회적 기업 운영은 또 다른 차원의 어려움입니다. 새로운 어려움에 직면하고 계시군요. 모르면 용감하다고, 몰랐기에 사회적 기업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 친구들은 "이걸요? 제가요? 왜요?" 라는 질문을 많이 합니다. MZ세대의 특징을 반영한 질문이네요. 본인들을 이해시켜달라는 거죠. 저희 때는 그냥 시키면 시키는 대로 했는데, 요즘 친구들은 다릅니다. 이해시키는 과정이 쉽지 않습니다. 저희 회사는 주식회사라서 매출을 내야 합니다. 사회적 기업도 기업이기 때문에, 수익 창출이 중요하죠. 매출을 내고 회사가 살아남아야, 직원들과 함께 성장할 수 있습니다. 저희는 비영리 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성과도 보여줘야 합니다. 일은 도구일 뿐, 삶의 전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 자체보다, 그 안에 복음이 있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과 신앙의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군요. 회사 가족 공동체 안에서 여러 가지 목표를 이루어야 하니, 쉽지 않은 영역들이 많습니다. 자립 준비 청년들은 출퇴근 시간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립 준비 청년들의 어려움이 사회적 기업 운영의 어려움으로 이어지는군요. 단기 아르바이트 형태의 일자리가 많고, 6개월 이상 지속하지 못하는 친구들도 많습니다. 도움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그런 친구들의 문제를 조금이라도 해결해주고 싶습니다.

기업들은 구인난, 청년들은 구직난이라고 하는데, 아이러니한 현실입니다. 어떻게 된 걸까요? 내가 원하는 직업이 없거나, 내가 원하는 직장이 없다는 뜻 아닐까요? 직업을 찾는 곳은 많지만, 내가 선택하고 싶은 직업은 없다는 거죠. 일자리는 많지만, 원하는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네요. 지금 우리 사회의 큰 문제인데, 대표님께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얻은 메시지를 청년들에게 전달해줄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대표님의 경험이 청년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을까요? 자립 준비 청년, 동생들, 주변 젊은 친구들을 만나면서,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하는 친구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틀에 맞춰 살려고 하는 친구들도 많습니다. 저는 그런 친구들에게 "아무도 너한테 관심 없어, 너나 잘해" 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냉정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현실적인 조언이네요. 사실 남들은 타인에게 크게 관심 없습니다. 가족이라도 나만큼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남들은 그냥 '그 사람이 그렇구나' 정도로 생각하지, 깊이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관심 없으니, 너나 잘하고, 나나 잘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습니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오늘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입니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를 소중히 여기라는 메시지네요.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오늘 하루가 간절할 수도 있습니다. 미래만 꿈꾸면 오늘을 감사하며 살 수 없습니다. 미래만 쫓아가다 보면, 현실을 놓치게 되죠. 너무 앞서가지 말고, 오늘을 충실히 살아야 합니다. 작은 일부터 성실하게 해나가야 큰일을 할 수 있습니다. 작은 일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말씀이네요. 우리가 무엇을 하든, 오늘은 하나님 안에서 자유하며 예배하는 예배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하루를 예배처럼 살아가라는 메시지가 와닿습니다. 젊은 친구들이 이런 이야기를 싫어할 것 같지만, 오히려 좋아합니다. 진심으로 자기를 생각해주는 말은 좋아합니다. 진심은 통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나대는 말만 아니면, 다 좋아합니다.

대표님은 스스로 '센 캐릭터'라고 말씀하셨는데, 남들이 보는 대표님 모습과 하나님이 보시는 대표님 모습은 다를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대표님을 어떤 모습으로 바라보실까요? 대표님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실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도 궁금합니다. 나중에 하나님을 직접 뵙게 되면 꼭 여쭤보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대표님을 어떻게 생각하실지 곰곰이 생각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그냥 제 모습 그대로 봐주실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부터 저를 선택하시고 예비하셨다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대표님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신다는 믿음이 느껴집니다. 삶이 힘들든, 덜 힘들든, 바쁘든, 덜 바쁘든, 하나님 안에 있다면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할 수 있는 영역들을 감당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요즘 세대는 '나를 위한 삶'을 살라고 부추기지만, 하나님 안에서는 그것이 죄의 영역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가치관과 하나님의 가치관은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씀이네요. 여전히 부족하지만, 하나님께서 항상 인도해주실 것이라고 믿고, 끝까지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가끔 하나님께 "저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요?" 라고 여쭤보지만, 딱히 음성은 들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힘들 때 "은혜야, 너로 인해 기뻐해" 라는 마음을 주시는 것을 느낍니다. 하나님께서는 침묵 속에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볼 거야" 라고 말씀하시면, 제가 더 이상 할 말이 없겠죠.

대표님의 동생들도 언니의 신앙을 많이 배웠을 것 같습니다. 동생들에게 신앙적인 영향력을 많이 주셨나요? 제가 에피소드처럼 이야기했지만, 사실 둘째 동생이 어렸을 때부터 신앙이 가장 좋았습니다. 정말 의외네요. 겉으로 보기에는 대표님이 신앙심이 더 깊어 보이는데, 둘째 동생분이 신앙심이 더 깊다니. 신기하죠. 세상의 기준과 하나님 나라의 기준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첫째, 셋째 동생은 하나님 때문에 우는 것을 본 적이 없지만, 둘째 동생은 간절히 기도하고, 하나님 안에서 비전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친구입니다. 겉모습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 각 개인을 어떻게 인도하실지 기대됩니다. 아직 어린 청년들이지만, 미래가 기대됩니다.

오늘 둘째 동생분만 함께 오셨네요. 첫째, 셋째 동생분은 왜 안 오셨나요? 셋째는 밖에 있습니다. 부끄러워서 안 들어오려고 합니다. 쑥스러움이 많으신가 봅니다. 밖에 계신 분들이 많네요. 마지막으로 기업 대표로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 비전을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기업의 계획도 하나님께 맡기셨겠지만, 어떤 비전을 품고 계신가요? 첫째, 저희 회사가 자립 준비 청년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자립 준비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는 기업이 되기를 소망하시는군요. 아직 부족하지만, 힘든 과정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겠습니다. 불안함을 안고 살아왔던 친구들이 저희 회사에서는 불안함 없이, 안정감을 느끼면서 일했으면 좋겠습니다. 제 멘토 목사님께서 "보라에 가면 사라지더라, 살아내라" 라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정말 공감되었습니다. '보라'가 자립 준비 청년들에게 삶의 터전이 되기를 바라시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자립 준비 청년 자립, 자립하는데, 진짜 자립이 뭘까요? 200만 원 벌면 자립일까요? 300만 원 벌면 자립일까요? 저는 하나님 안에서 자기 인생을 책임지고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자립이라고 생각합니다. 물질적인 자립뿐만 아니라, 영적인 자립, 정서적인 자립까지 포함하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힘든 과거를 인정하고, 하나님을 믿고 나아가는 것이 자립입니다. 제가 없어도 굴러가는 회사를 만들고 싶습니다. 종착역이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주님 안에서 믿음으로 나아가겠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여정을 걷고 싶다는 말씀이 감동적입니다. 둘째, 제가 무엇을 하든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습니다. 예전에는 막연하게 "언제 아프리카 선교사로 살 수 있을까, 내 삶은 왜 이렇게 힘들까" 자책하며, 찬양만 들어도 눈물이 났습니다. 힘든 현실 속에서 사역자의 삶을 동경하셨군요. 다른 사람들은 "너는 왜 그렇게 힘들게 살아?" 라고 묻지만, 제가 겪는 고통을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모를 겁니다. 하지만 이제는 지금 이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부르셨다면, 지금 이 순간 하나님께 응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을 살겠다는 다짐이 느껴집니다. 물론 실수도 많이 하고, 부족한 점도 많습니다. 저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솔직하게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모습이 진솔하게 느껴집니다. 이 자리를 빌려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하나님 안에서 잘 빚어져 가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을 살고, 내일을 살다가, 하나님을 다시 만날 때 "잘하였다, 충성된 종아" 라는 칭찬을 듣고 싶습니다. 마지막 소망이 감동적이네요. 저희 가정이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생명 살리는 일에 끝까지 쓰임 받기를 소망합니다. 귀한 비전을 품고 나아가는 대표님을 응원합니다. 꼭 그 소망을 이루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오늘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오늘 어떠셨나요?

오늘 방송 어떠셨나요? 주영훈 씨, 안수지 씨, 정범균 씨의 소감도 궁금합니다. (주영훈) 사실 굉장히 멋지십니다. 여자들이 진짜 좋아하는 스타일입니다. 걸크러쉬하면서도, 가드닝 사업을 하시는 섬세함, 그 안에 한 떨기 코스모스 같은 여린 마음이 공존하는 매력이 느껴집니다. 빨간색과 파란색이 섞인 보라색을 좋아하시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보라색 옷이 너무 잘 어울리십니다. 앞으로 응원하겠습니다. 보라색처럼 다채로운 매력을 지닌 대표님을 응원하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안수지) 하나님의 계획은 정말 오차도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요즘 친구들에게 가장 필요한 '가드'가 되어주시는 것 같습니다. 요즘 친구들은 직접적인 사랑 표현보다 무심한 듯 챙겨주는 '가드닝' 스타일의 사랑을 더 좋아하는데, 대표님께서 딱 그런 '가드' 역할을 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보라'라는 이름처럼, 하나님께서 보라고 하신 그곳을 잘 가꾸어주시길 응원하겠습니다. 대표님의 섬세한 리더십을 칭찬하며, '보라'의 번창을 기원하는 따뜻한 응원의 메시지입니다. (정범균) 세련된 이미지 뒤에 감춰진 여린 마음이 느껴집니다. 깨지기 쉬운 물건을 가장 단단한 박스에 포장하는 것처럼, 강해 보이는 사람일수록 여린 마음을 감추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대표님의 삶 자체가 감동적인 드라마 같습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해야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잠자는 모습, 설거지하는 모습, 걸레질하는 모습, 그 모든 일상 속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는 메시지가 와닿습니다. 오늘 아무 일 없이 천장만 바라보고 있는 시간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회적 시선 때문에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께 미래를 맡기면 두려울 것이 없다는 메시지가 큰 위로가 됩니다. 보라색처럼 아름다운 대표님이 앞으로 '보라'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기업으로 성장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대표님의 진솔한 이야기에 감동받았다는 소감과 함께, '보라'의 성공을 기원하는 진심 어린 응원의 메시지입니다. 예쁜 보라색처럼, 본인이 원하시는 비전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시길 응원하며, 저희도 열심히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귀한 간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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