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표 육아의 함정, 신앙으로 완벽주의 육아 극복하는 법
엄마표 육아의 덫: 완벽주의 엄마의 눈물과 십자가 양육
“신앙이 있어도 내 아이를 하나님께 맡기는 게 왜 이리 힘들까요?” 최경희 교사의 솔직한 고백과 양육 노하우
아이를 키우는 것, 정말 쉽지 않죠? 특히 신앙까지 있는데도 왜 이렇게 내 아이를 하나님께 맡기기가 힘든 걸까요? 혹시 여러분도 저와 같은 고민을 하고 계시나요? 23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수많은 아이들과 학부모를 만나온 최경희 교사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이 질문에 대한 솔직한 답을 제시합니다. EBS ‘새롭게 하소서’ 에 출연하여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준 최경희 교사의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신앙 안에서 자녀를 양육하는 지혜와 노하우를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1. 엘리트 코스를 밟았던 모범생, 시험 공포증으로 무너지다
최경희 교사는 학창 시절 소위 ‘엄친딸’ 이었습니다. “막내딸에, 애교도 많고, 공부도 곧잘 했던” 그녀는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반장을 도맡아 할 정도로 모범생이었는데요. “하면 열심히 하는” 성격 덕분에 주변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고등학교 3학년 때 예상치 못한 시련을 겪게 됩니다. 바로 ‘시험 공포증’ 이었습니다.
“시험지만 보면 백지처럼 하얗게 변하고, 이름조차 쓸 수 없을 정도로 얼어붙는” 증상에 최경희 교사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졌습니다. “성적이 10등 이상 뚝뚝 떨어지면서” 걷잡을 수 없이 심해진 시험 공포증은,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던 그녀에게 큰 좌절감을 안겨주었습니다. “선생님들도 시험 공포증을 이해하지 못했고, 저 또한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수년간 그녀를 짓눌렀던 시험 공포증은, 신앙을 통해 극복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2. 절망의 순간, 엄마의 간증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다
“교회는 친구 만나러, 좋아하는 오빠 따라다니러 다녔을 뿐” 이었던 최경희 교사는, 고등학교 3학년 무렵 ‘나는 누구이며, 왜 살아야 하는가’ 라는 본질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고, 하나님은 진짜 계실까?” 라는 궁금증을 품게 된 그녀는, 처음으로 예배에 진지하게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어머니로부터 놀라운 간증을 듣게 됩니다. “어머니께서 밤낮으로 마귀에 시달리셨고, 새벽마다 기도하며 마귀를 쫓아내셨다” 는 충격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최경희 교사는 “전혀 몰랐던 어머니의 고통” 에 큰 충격을 받았고, “기도 중에 성부, 성자, 성령의 빛을 보았다” 는 어머니의 간증은 마음 깊은 곳에 강렬한 울림을 주었습니다. “회개하라는 음성과, 너를 사랑한다는 메시지” 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게 된 어머니는, 그 후 변화된 삶을 살기 시작했고, 최경희 교사에게 “하나님이 살아계시다” 라고 간증했습니다.
“엄마의 간증을 듣는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격에 휩싸였다” 고 회상하는 최경희 교사는, “그때 처음으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 고 고백합니다. “아침 콩나물 시루 같은 버스 안에서, 2-3일 동안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는 그녀는, “그 눈물은 회개의 눈물이었고, 하나님을 만난 기쁨의 눈물이었으며,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감정들이 뒤섞인 눈물이었다” 고 설명합니다. 절망의 끝에서 만난 하나님은, 최경희 교사의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3. 재수 생활, 뜨거운 신앙의 공동체를 만나다
재수를 결심한 최경희 교사는, “자신과 같은 뜨거운 신앙을 가진 친구들” 을 만나 새로운 활력을 얻습니다.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감옥 같은 재수 생활” 이었지만, “밤마다 친구들과 함께 전도하고 찬양하며, 너무나 행복한 시간” 을 보냈다고 합니다. “힘든 줄도 모르고, 매일매일이 즐거웠다” 는 그녀는, “그때의 친구들은 평생 함께 우정을 나눌 소중한 동역자들” 이라고 말합니다. “교회 친구들과의 끈끈한 유대감은, 하나님과의 관계만큼이나 소중한 신앙의 버팀목이 되었고, 재수 생활은 최경희 교사에게 ‘첫사랑’ 과 같은 뜨거운 신앙을 경험하는 축복의 시간이었습니다. “함께 기도하고, 전도하고, 찬양했던 친구들” 과의 소중한 추억은,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그녀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4. 교사의 길, 거룩한 사명을 품다
어머니의 권유로 교대에 진학한 최경희 교사는, “교사가 아이 키우기 좋은 직업” 이라는 생각으로 교사의 길을 걷게 됩니다. “교대에 가면 서울 남자를 만날 수 있다” 는 풋풋한 꿈도 있었지만, 교사로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점차 ‘거룩한 사명’ 을 품게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전도단 활동을 하면서 선교에 대한 열정을 키웠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기쁨으로 사역했던 경험은, 힘든 아이들을 향한 관심으로 이어졌습니다. “가정이 어려워 단칸방에서 살았지만, 대학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 고 회상하는 최경희 교사는, “물질적인 풍요보다, 신앙 공동체 안에서 함께 교류하고 훈련받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다” 고 말합니다. 교사로서 아이들을 섬기며,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 이것이 최경희 교사가 발견한 ‘거룩한 사명’ 이었습니다.
5. 첫째 아이의 고난, 십자가의 아픔을 경험하다
최경희 교사에게 첫째 아이는 ‘십자가’ 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34주 만에 1.85kg 미숙아로 태어난 첫째는,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 신세를 져야 했습니다. “17일 동안 기계 호흡에 의존했고, 온 몸에 바늘 자국 투성이” 였던 아픈 아이를 보며, 최경희 교사 부부는 “가슴에 꽂힌 칼 과 같은 고통” 을 느꼈습니다. “밤마다 아이가 아플까 노심초사 했고, 명절에도 응급실에 실려 가기 일쑤” 였습니다. 천식으로 “환절기마다, 바람만 불어도 감기에 걸리는” 약한 아이를 키우면서, 최경희 교사는 “늘 불안하고 긴장된 시간” 을 보냈습니다. “첫째 아이는, 기쁨과 동시에 끊임없는 걱정을 안겨주는 존재였고, 최경희 교사는 ‘부모로서 감당해야 할 십자가’ 의 무게를 실감했습니다.
6. “하나님, 제가 한번 키워볼게요!” 교만한 육아의 시작
“첫째 아이 때문에 둘째를 낳았다” 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최경희 교사는, 첫째에게 쏟았던 지나친 열정을 후회합니다. “둘째를 낳고 1년 만에 5년 휴직을 하고, ‘엄마표’ 육아에 올인했다” 는 그녀는, “교사 경력을 바탕으로 최고의 육아를 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고 합니다. “’하나님, 제가 한번 키워볼게요!’ 라고 호언장담하며, 아이를 완벽하게 키우려는 교만에 빠졌습니다.” 5살부터 7살까지 3년 동안, 최경희 교사는 “24시간 아이에게만 매달려, 맞춤형 커리큘럼’ 을 짰다” 고 합니다. “하루 일과를 분 단위로 쪼개 촘촘하게 계획” 했고, “남편과의 외식조차 아이 공부 시간 때문에 취소하기 일쑤” 였습니다. “’공부하는 습관’ 을 만들어주는 것에 모든 초점을 맞춘 극성 엄마였던 자신의 모습을 최경희 교사는 씁쓸하게 회상합니다.
7. 숨 막히는 ‘엄마표’ 육아, 부부 갈등을 심화시키다
최경희 교사의 숨 막히는 ‘엄마표’ 육아는, 가족 모두를 지치게 만들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영어 파닉스’ 를 시키고,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놀이터 대신 ‘영어 비디오 흘려듣기’, ‘영어 테이프 집중 듣기’ 를 강요했다” 는 그녀는, “밥 먹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 외에는 온통 영어 공부에만 매달렸다” 고 합니다. “부산에서 미국인을 키우는 것 같았다” 는 자조적인 농담을 할 정도로, 영어 교육에 집착했습니다. “푸름이 닷컴’, ‘잠수네 영어 공부법’ 등 당시 유행했던 육아 정보들을 섭렵하며, 아이 교육에 매달렸지만, 결과는 기대와 달랐습니다. 남편은 “숨 막히는 육아 방식에 반발했고, 부부 싸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남편에게 의자를 던질 정도로 격렬하게 싸웠다” 는 최경희 교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표’ 교육을 포기할 수 없었다” 고 합니다. “남들보다 뒤쳐지는 아이로 키울 수 없다는 불안감” 과, “교사로서 능력을 인정받고 싶은 욕심” 이, ‘엄마표’ 육아를 고집하게 만들었습니다.
8. 기대와 달랐던 현실, 교실에서 문제아로 낙인찍히다
맹렬했던 ‘엄마표’ 육아에도 불구하고, 첫째 아이는 학교에서 ‘문제아’ 취급을 받았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선생님이 만들어오라는 가면’ 대신 ‘호랑이 등’ 을 만들어 엉뚱함을 드러냈고, 수업 시간에는 교과서 대신 종이와 테이프로 만들기만 했다” 고 합니다. “멍 때리는 시간이 많고, 산만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는 최경희 교사는, “교사로서 내 아이가 교실에서 어떤 존재로 비춰질지 너무나 잘 알기에, 더욱 마음이 아팠다” 고 고백합니다. “혹시 선생님이 내 아이를 미워하지 않을까, 차별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에 시달렸고,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동료 교사에게 서운한 감정” 을 느끼기도 했다” 고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결국 최경희 교사는 “교사 생활을 계속할 수 없을 지경” 에 이르렀고, “아이와 분리시키기 위해 다른 학교로 전근” 을 결심합니다.
9. 사직서까지 고민했던 절망, 6학년 담임의 고충
봉천동으로 전근 후에도 최경희 교사의 고난은 계속되었습니다. 6학년 담임을 계속 맡으면서, “도벽, 가출, 흡연” 등 심각한 문제 행동을 보이는 학생들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습니다. “키 180cm, 몸무게 100kg” 이 넘는 거구의 학생이 “씻지 않아 냄새” 를 풍기는가 하면, “격투기를 배워 힘이 센 학생은 친구를 폭행하여 이를 부러뜨리기도 했다” 고 합니다. “수학여행 중 패싸움이 벌어지고, 편의점 주인이 수업 중에 교실로 쫓아와 담배를 찾는 사건” 까지 벌어지는 혼란 속에서, 최경희 교사는 “사직서를 써야 하나” 라는 극단적인 생각” 까지 하게 됩니다. “아이들을 집에 데려와 밥을 먹이고, 목욕을 시키는 등 애썼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고 합니다. “6학년 아이들에게 일어나는 문제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수준” 이었고, 최경희 교사는 “완전히 우울증에 빠졌다” 고 고백합니다. 자신의 아이 문제뿐만 아니라, 가르치는 학생들 문제까지 겹치면서, 교사로서, 엄마로서 모두 감당하기 힘든 벅찬 현실” 이었습니다.
10. 인도 선교, 다시 타오른 사명의 불꽃
절망의 늪에서 허덕이던 최경희 교사에게, 인도 선교는 ‘
11. 정신과 상담, “원인은 조산에 있습니다”
5학년이 되어서도 여전히 또래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첫째 아이를 보며, 최경희 교사는 정신과 상담” 을 결심합니다. “ADHD 나 틱 장애 같은 특정 진단” 을 기대했지만, 의사는 “조산의 영향일 수 있다” 는 뜻밖의 진단” 을 내렸습니다.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 애매한 진단” 이었지만, 최경희 교사는 “100만원이 넘는 진단비가 아깝지 않을 만큼 속 시원한 해방감” 을 느꼈다” 고 합니다. “아이 문제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조산에 있다는 사실” 을 깨닫는 순간, 자신의 지나친 죄책감과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고 합니다.**
더욱이 “러시아 검사’ 라는 무의식 검사 결과, 첫째 아이가 “스스로 무능한 아이’ 라고 생각한다” 는 사실” 을 알게 된 최경희 교사 부부는 “충격” 에 휩싸였다” 고 합니다. “100년 동안 시행된 정확한 검사” 라는 의사의 말에, 최경희 교사 부부는 “눈물” 을 펑펑 쏟았다” 고 합니다. “내가 잘못 키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가 자존감이 낮다고 생각한다는 사실” 을 깨닫는 순간,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구나’ 라는 절망감과 함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