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장애 교사 이희진의 희망과 사랑, 신앙으로 극복한 이야기
어둠 속에서 찾은 빛: 이희진 교사의 희망과 사랑 이야기
그럼에도 저는 하나님과 뚜벅뚜벅 함께 갑니다: 이희진 교사의 희망과 용기
삶을 살아가다 보면, 예상치 못한 어려움과 마주하는 순간들이 찾아오곤 합니다. "대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라는 질문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누구든 한번쯤 던져보게 되는 보편적인 물음일 것입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찾기 어려울 때, 우리는 때로는 깊은 답답함과 무력감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답답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에게 희망의 빛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오늘 소개해 드릴 이희진 선생님의 이야기인데요, 이 분은 예상치 못한 시련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긍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이희진 선생님은 현재 고등학교 특수학급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특수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특수교사는 장애 학생들의 학교생활을 돕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데요, 지적 장애, 발달 장애, 감각 장애 등을 가진 학생들이 학교에서 학습 및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이 선생님은 원래 선천적인 장애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고, 후천적인 사고로 시력을 잃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눈이 좋지 않았던 것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성인이 되어서 녹내장이라는 질환을 진단받게 되었고, 꾸준히 관리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2017년, 이희진 선생님은 녹내장 관리를 위해 시술을 받던 중 예기치 못한 의료 사고로 시력을 잃게 되었습니다. 당시 상황은 정말 충격적이었을 텐데요, 횟수로 7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고통과 어려움을 겪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힘든 시간 속에서 하나님은 이희진 선생님에게 끊임없는 사랑과 위로를 베풀어 주셨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선생님은 어떻게 이러한 시련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을까요? 그녀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지금부터 함께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이희진 선생님이 처음 교회를 다니게 된 계기는 조금 특별합니다. 바로 '교회 오빠' 때문이었다고 하는데요.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된 이 선생님은, 교회 오빠의 온유하고 친절한 모습에 호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오빠가 속한 동아리가 기독교 동아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동아리 활동을 시작하며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선생님이 호감을 느꼈던 오빠에게 용기를 내어 고백했지만, 안타깝게도 '좋은 선후배로 지내자'라는 답변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 계기로 기독교 동아리와 교회를 경험하게 되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면서도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오빠에게 차인 후, 이희진 선생님은 기독교 동아리에 반감을 느끼고 한동안 교회를 멀리하기도 했습니다. "이곳은 더 이상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며, 심지어 사찰 동아리에 가볼까 고민하기도 했다고 하니, 당시 실망감이 얼마나 컸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절망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이 선생님에게는 좋은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이화여대 특수교육과에 다니는 친구는 겨울 수련회에 함께 가자는 제안을 하면서, 이 선생님이 수련회에 가야 하는 이유를 손글씨로 정성껏 써서 전달해 주었습니다. 친구의 진심 어린 설득과 주변 사람들의 기도 덕분에, 이 선생님은 결국 겨울 수련회에 참여하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겨울 수련회에서 이희진 선생님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깊이 경험하고 인격적인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수련회에서 들었던 말씀들이 처음에는 다소 어렵게 느껴졌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과,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마음 깊이 와닿았다고 합니다. 특히, 20대 초반의 어린 학생들이 서로를 섬기고 헌신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성적인 친구의 "하나님이 안 계신다면 우리가 왜 이렇게 헛된 일을 하겠냐"는 질문은, 하나님 존재에 대한 확신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교회 오빠를 통해 시작된 인연이었지만, 결국 수련회를 통해 진정한 믿음을 찾게 된 것입니다.
놀랍게도, 이희진 선생님의 남편 또한 교회를 통해 만나게 된 '교회 남사친'이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같은 캠퍼스 내 동아리는 아니었지만, 연합 동아리 모임에서 처음 만나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2년간의 장거리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고, 살면 살수록 하나님께서 왜 이 남자를 자신에게 붙여주셨는지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결혼 후 행복한 신혼 생활을 보내던 중, 이희진 선생님은 갑작스러운 시력 상실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됩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녹내장 수술 후 의료 사고로 인해 시력을 잃게 된 것인데요, 당시 상황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절망적이었을 것입니다.
2017년 1월, 이희진 선생님은 녹내장 수술 후 갑작스러운 안압 하강으로 망막 박리가 발생하여 시신경 손상을 입고 시력을 잃게 되었습니다. 수술 전에는 남편과 함께 맛있는 파스타를 먹으러 갈 계획을 세울 정도로 가벼운 마음으로 수술에 임했지만, 수술 후 눈을 떴을 때 캄캄한 어둠만이 느껴지는 현실은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망막 박리 응급 수술을 받았지만, 이미 시신경이 손상된 후였기 때문에 시력 회복은 불가능했습니다. 당시 심정을 묻는 질문에, 이 선생님은 처음에는 현실감이 없었고, 회복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다고 합니다.
망막 재수술 후, 이희진 선생님은 엎드린 자세로 오랫동안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막막을 붙이는 수술 후 자세 유지가 매우 중요했기 때문인데요, 밥을 먹을 때나 화장실을 갈 때조차 고개를 숙이고 엎드려 있어야 하는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고통에 더해, 꼼짝없이 엎드려 있어야 하는 상황은 이 선생님을 더욱 힘들게 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위로와 격려도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부모님은 딸을 위해 눈이라도 주고 싶어 할 정도로 안타까워했습니다. 남편은 한 손으로 캐리어를 끌고, 다른 한 손으로 이 선생님을 부축하며 병원을 나서는 길, 쏟아지는 눈발과 차가운 바닥의 감촉은 절망감을 더욱 깊게 만들었습니다.
시력을 잃은 후, 이희진 선생님은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아름다운 세상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에 큰 슬픔을 느꼈습니다. 특히, 붉게 물든 노을, 푸른 하늘, 초록빛 나뭇잎 등 평범했던 일상을 더 이상 누릴 수 없다는 점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의 얼굴조차 7년 전 모습으로 멈춰버린 현실은 더욱 마음 아프게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 선생님은 하나님께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하나님, 수술실에서, 그 고통스러운 순간에, 도대체 어디에 계셨나요?" 의료 사고에 대한 원망과 함께,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이희진 선생님은 좌절하지 않고 재활 훈련에 매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학교 복직을 위해 2년간 휴직을 신청했고, 가족들과 함께 재활 계획을 세웠습니다. 특히, 동생은 집에만 있으면 우울증에 걸릴 것이라며 적극적으로 재활을 권유했고, 남편 또한 이 선생님의 복직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했습니다. 가족들의 헌신적인 도움 덕분에, 이 선생님은 중도 시각 장애인을 위한 직업 재활 프로그램에 등록하고 본격적인 재활 훈련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재활센터에서 만난 사람들은 사고 후 2~3년 만에 재활을 시작하는 이 선생님을 보고 놀라워하며 격려했습니다. 하지만 이 선생님은 스스로 원해서 재활을 시작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남편의 끊임없는 격려와 지지 덕분에 힘든 재활 과정을 버틸 수 있었습니다.
재활 훈련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이희진 선생님은 복직을 위해 점자, 보행 훈련, 컴퓨터 활용 등 다양한 기술을 익히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특히, 컴퓨터 화면 낭독 프로그램은 시각 장애인이 컴퓨터를 활용하여 문서 작성, 정보 검색 등 다양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기술이었습니다. 이러한 재활 훈련을 통해, 이 선생님은 다시 교단에 설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속에는 "하나님, 왜 저를 이곳으로 이끄셨나요?" 라는 질문이 맴돌았습니다. 복직을 앞두고, 시각 장애인 교사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함과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2018년, 이희진 선생님은 전국 기독교사대회에 참석하여, 자신의 삶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는 귀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교사대회에서 들었던 폴 투르니에의 저서 "고통보다 깊은"에 대한 강연은, 이 선생님에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강사는 고난 자체가 사람을 성숙시키는 것이 아니라, 고난에 대한 반응과 해석, 그리고 곁에 있는 사람과 지지하는 존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 변함없이 사랑을 약속하는 하나님, 이 모든 존재가 이 선생님 곁에 있다는 사실은 큰 위로와 용기가 되었습니다. 로마서 8장 35절에서 39절 말씀을 묵상하며, 어둠이 세상을 단절시킬 수는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그 무엇도 끊을 수 없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습니다. 비로소 이 선생님은 하나님께서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고 계심을 깨닫고, 인격적인 하나님을 깊이 경험하게 됩니다.
시각 장애를 갖게 된 후, 이희진 선생님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감각에 맞춰 사랑을 표현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은 형상이 아닌 따뜻한 음성과 촉감으로 다가오셨습니다.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에게는 시각적인 형태로, 다리가 불편한 사람에게는 곁에 함께 앉아주는 방식으로, 각자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사랑을 전달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사대회는 이희진 선생님에게 하나님께서 왜 자신을 그곳으로 이끄셨는지에 대한 답을 깨닫게 해주는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이후, 이 선생님의 삶에는 긍정적인 변화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지만, 이희진 선생님에게도 여전히 감정의 기복은 존재했습니다. 용기가 솟아오르는 날도 있었지만, 때로는 한없이 우울하고 슬퍼지는 날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선생님은 부정적인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 이미 누리고 있는 것에 집중하며 감사하는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마른 수건을 쥐어짜듯 감사 제목을 찾아 11가지 감사 목록을 작성했습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산책할 수 있음, 맛있는 디저트를 먹을 수 있음 등, 소소하지만 감사한 일상들을 발견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키워나갔습니다.
시각 장애를 갖게 된 후, 이희진 선생님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대인기피증을 겪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의 위로가 와닿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힘들었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온라인 예배를 드리면서 교회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도 했었지만, 남편의 권유로 김관선 목사님이 개척한 낮은 담 교회에 출석하게 되면서 다시 신앙생활을 회복하게 됩니다. 낮은 담 교회에서 가난하고 연약한 사람들도 편안하게 예배드릴 수 있는 공동체의 모습을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고, 교회 공동체 안에서 다시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낮은 담 교회에서 전도서 강의를 들으면서, 이희진 선생님은 고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20대 때와는 달리, 인생의 풍파를 겪은 후 듣는 전도서는 더욱 깊은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순탄한 길을 걷는 사람도 있지만, 자신처럼 갑작스러운 어려움을 겪는 사람도 있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지만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불평과 원망 대신, 함께하는 사람들과 노래하며 걷는 삶을 살아가기로 다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이희진 선생님에게 주신 응답이었을 것입니다.
마음이 변화하자, 이희진 선생님의 삶은 긍정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시각 장애인이 된 후 가장 힘들었던 것은 '도움받는 인생'을 살게 되었다는 점이었는데요,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을 통해 존재 가치를 느꼈던 이 선생님에게, 도움을 받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과 사랑을 통해, 도움을 받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사랑이 이웃들의 섬김을 통해 흘러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히, 2년간 금요일마다 빵을 문 앞에 걸어두었던 베이커리 집사님의 섬김은, 이 선생님에게 깊은 감동과 위로를 주었습니다. 집사님은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빵 만들기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이웃들의 사랑을 통해, 이희진 선생님은 다시 힘을 내어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곁에서 지켜본 남편 또한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묵묵히 아내 곁을 지키며 헌신적으로 support했습니다. 겉으로는 담담했지만, 속으로는 누구보다 아팠을 남편은, 아내 앞에서 힘든 내색 없이 세심하게 배려하고 위로했습니다. 집안 곳곳에 안전 매트를 설치하고, 늘 곁에서 아내의 눈과 발이 되어준 남편 덕분에, 이희진 선생님은 재활 훈련과 복직 준비를 잘 해나갈 수 있었습니다. 남편의 헌신적인 사랑은, 이희진 선생님에게 큰 힘과 용기가 되었고, 이 길을 혼자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남편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당신께
우리가 두 손을 마주 잡고 부부의 서약을 한 지 벌써 1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더 이상 호전이 안 된다"는 의사의 말과 함께 나섰던 병원, 세상은 온통 낯설고, 바람은 차갑고, 발밑에 밟히는 눈의 촉감은 거칠었습니다. 나는 아직 잊지 못합니다. 7년 전, 시력 교정을 위해 수술실로 향하던 나에게 "아무 걱정 말라"고, "수술 잘 받고 맛있는 것 먹으러 가자"며 환하게 웃어주던 당신의 얼굴을. 그때가 당신을 볼 수 있는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조금 더 따뜻하게, 조금 더 길게 눈 마주쳐 줄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옵니다. 마취에서 깨어나 병실에서 눈을 떴을 때만 해도 미처 몰랐습니다. "왜 벌써 밤이 되었느냐"는 나의 질문에, 그렇게 많은 의료진들이 달려오게 될 줄은, 당신이 그토록 오열하게 될 줄은, 그 후로 다시는 나에게 밝은 아침이 오지 않게 될 줄은. 말로만 듣던 의료 사고로 실명하게 된 후, 매일 울고 슬퍼하던 나에게 곁에서 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준 당신. 믿어지지 않아 울었고, 막막해서 울었고, 미안해서 울었고, 더 이상 자신이 없어서 울었던 그 끔찍한 시간을 고스란히 나와 함께 해 준 당신이 있었기에, 재활에 대한 불씨가 되살아났고, 세상 밖으로 나올 용기가 생겼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는 성경 구절처럼, 그대가 보여준 사랑, 있는 모습 그대로 용납하고 이해하고, 나의 발걸음에 발을 맞추어 걷고, 나의 눈이 되어 세상을 읽어주는 그대 덕분에, 나는 오늘도 즐거이, 기꺼이 이 하루를 살아갑니다. 우리가 걷는 그 길이 꽃들 만발한 꽃길이 아니더라도, 완만한 평탄 길이 아니더라도, 바람 솔솔 산책길이 아니더라도, 우리에게 주어진 이 삶을 완주하는 그때까지, 악을 쓰고 참고 견디며 마지못해 걸음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이 땅에서의 역할을 넉넉히 감당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두 손 꼭 잡고 걸어가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도저히 해석되고 이해되지 않는 하루하루라도, 그 언젠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모든 것이 회복될 그 날을 기대하며, 지금의 여정을 그대와 함께 끝까지, 묵묵히 걸어가겠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최고의 선물, 나의 가장 좋은 것, 곁에 있어 줘서 소중한 당신, 고맙고 사랑합니다. 그대를 통해 비상하는 희진 드림.
이 편지는 이희진 선생님이 남편에게 보내는 진심 어린 마음을 담은 편지입니다. 시력을 잃은 후 겪었던 고통과 절망, 그리고 남편의 헌신적인 사랑에 대한 감사, 앞으로 함께 걸어갈 미래에 대한 소망이 진솔하게 담겨 있습니다. 편지를 낭독하는 동안, 듣는 이들의 마음까지 뭉클하게 만드는 감동적인 순간이었습니다.
복직 후, 이희진 선생님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교사로서의 삶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점자 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실제 학교 현장에서 점자를 활용하는 것은 쉽지 않았고, 좌절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선생님은 안 되는 이유를 찾기보다,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장애인 교원 업무 지원 제도를 교육청에 제안하여, 울산 지역에 처음으로 이 제도를 마련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업무 지원인 제도는 시각 장애 교사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업무를 수행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돕는 제도입니다. 업무 지원 선생님의 도움 덕분에, 이희진 선생님은 다시 교단에 성공적으로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복직 당시 교장, 교감 선생님의 적극적인 지지와 격려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학교는 이 선생님의 능력을 믿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복직 후, 이희진 선생님은 교사로서의 가치관에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과거에는 장애를 극복의 대상으로 생각했지만, 시각 장애를 경험한 후 장애에 대한 관점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장애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다양한 어려움 중 하나이며, 적절한 지원과 환경이 제공된다면 장애는 더 이상 불편함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학생들에게 장애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가르치고, 장애 인식 개선 교육에 힘쓰고 있습니다. 장애를 극복한 영웅담이 아니라, 장애를 가진 사람도 비장애인과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존중받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마지막으로, 이희진 선생님은 앞으로의 삶에 대한 소망과 기도 제목을 이야기했습니다. 지금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잊지 않고, 남편과 함께 주어진 몫을 묵묵히 감당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용기를 붙들고 완주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긍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희진 선생님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과 용기를 선사합니다. 우리 또한 이 선생님처럼, 어떤 어려움과 마주하더라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뚜벅뚜벅 함께 걸어가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간증을 통해, 우리는 공동체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완벽하게 창조하지 않으셨고, 서로의 연약함을 보듬으며 살아가는 공동체 안에서 천국을 경험하도록 하셨습니다. 금요일마다 빵을 나누었던 집사님의 섬김처럼,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주고, 사랑을 나누는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더욱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희진 선생님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사랑과 희망, 용기를 주는 값진 메시지를 전달해 주었습니다. 오늘 귀한 간증을 들려주신 이희진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