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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위한 무료 식당, 김보민 이사와 헝겊 원숭이 운동본부 이야기

요약

아이들의 희망, 기적의 밥상

내 인생을 바꾼 세 명의 아이들: 김보민 이사의 헝겊 원숭이 운동본부 이야기

안녕하세요, 오늘 여러분께서는 단순한 봉사활동을 넘어,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변화시킨 감동적인 이야기를 접하게 되실 겁니다. 바로 헝겊 원숭이 운동본부를 운영하시는 김보민 이사님의 이야기인데요, 이 분은 세 명의 특별한 아이들을 만나면서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셨다고 합니다. 단순히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는 일을 넘어서, 그들의 삶 속 깊숙이 들어가 희망과 사랑을 심어주는 김보민 이사님의 이야기는, 듣는 이로 하여금 깊은 감동과 함께 '나눔'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자, 그럼 지금부터 김보민 이사님의 놀라운 여정을 함께 따라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김보민 이사님은 현재 동네에서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을 제공하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식당 운영은 물론, 반찬 배달과 도시락 나눔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아이들의 든든한 저녁 식사를 책임지고 계신데요, 주로 부모님의 퇴근이 늦어 저녁 식사를 제대로 챙겨 먹기 힘든 아이들이 주 고객이라고 합니다. 학교 급식이 끝난 후, 학원과 학원을 전전하며 배고픔을 느끼는 아이들에게 김 이사님의 식당은 마치 오아시스 같은 공간인 것이죠. 놀랍게도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하루 평균 70여 명의 아이들이 식당을 찾고 있으며, 도시락 배달은 100개, 반찬 배달은 30개나 된다고 하니, 그 규모가 짐작이 가시나요?

놀랍게도 김보민 이사님은 유명 작곡가 김도훈 씨의 친누나라고 합니다. 주영훈 씨조차 김도훈 작곡가의 엄청난 히트곡들을 줄줄 읊을 정도인데요,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 아이유의 '좋은 날', 이승기의 '되돌리다' 등, 대한민국 대표 가수들과 수많은 작업을 함께 한 김도훈 작곡가의 누나라는 사실이 더욱 놀랍습니다. 어머니께서 항상 성가를 틀어 놓으셨고, 집에 있던 기타로 코드를 알려준 것이 음악가의 길로 이끈 계기가 되었다고 하니, 숨겨진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로운 것 같습니다.

김 이사님은 원래 공부방을 운영하며 아이들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습니다. 35세, 늦은 나이에 공부방을 시작했지만, 찾아오는 아이들 대부분이 어려운 환경에 놓여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밥을 챙겨주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방식으로 운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의 지역아동센터와 비슷한 개념으로 운영하며, 점점 더 많은 아이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게 된 것인데요, 바로 이 시기에 김 이사님의 인생을 바꾼 세 명의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첫 번째 아이는 교회 집사님의 아들이었습니다. 공부방 초창기, 5학년이었던 이 아이는 김 이사님을 몹시 따랐다고 합니다. 아침 출근길, 저녁 예배, 언제 어디서든 김 이사님 곁을 맴돌며, 마치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처럼 졸졸 따라다녔다고 하는데요, 어느 날, 함께 뒷산에 오르던 길에 아이는 조심스럽게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고 합니다. 자신이 어릴 적 부모님에 의해 할머니 댁에 맡겨졌던 슬픈 기억을 털어놓으며, 당시 느꼈던 깊은 슬픔과 외로움을 고백했는데요, 사업 실패로 인해 형만 데려가고 어린 자신을 할머니 댁에 보낼 수밖에 없었던 부모님의 안타까운 사정을 뒤늦게 알게 되었지만, 어린 아이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상처였을 것입니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이 아이가 함구증을 앓았었다는 것입니다. 다섯 살 때까지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자신을 향한 부모님의 사랑이 부족하다고 느꼈던 어린 아이는, 세상과의 소통을 스스로 단절해 버렸던 것입니다. 하지만 김 이사님의 따뜻한 보살핌과 사랑 속에서 아이는 점차 마음의 문을 열고,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는 김 이사님에게 "선생님은 착한 것 같다"는 말을 건넸고, "동네 슈퍼 아줌마도 착하다"며, 슈퍼 아줌마가 자신에게 베풀었던 작은 친절들을 이야기했습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도움이나 물질적인 지원이 아닌,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마음을 알아주는 따뜻한 어른의 관심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고 김 이사님은 회상합니다.

두 번째 아이는 전도사님의 소개로 만난 검정고시 준비생이었습니다. 아빠와 형과 함께 살던 16살 소년은, 어느 날 갑자기 아빠가 사라지면서 고모 댁에 맡겨졌지만, 고모 역시 어려운 형편이라 월셋방 하나만 겨우 얻어주고 떠나버렸다고 합니다. 설상가상으로 20살 형마저 집을 나가면서, 소년은 16살 어린 나이에 홀로 남겨지게 된 것입니다. 학교마저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중학교 유예 상태였던 소년을 위해 김 이사님은 검정고시 공부를 가르치기 시작했지만, 소년의 상황은 상상 이상으로 심각했습니다.

월세마저 밀려 당장이라도 쫓겨날 위기에 처한 소년을 보면서 김 이사님은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밤낮으로 걱정하던 김 이사님은, 결국 소년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9개월 동안 함께 살기로 결심합니다.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소년을 외면할 수 없었던 따뜻한 마음이 용기를 낸 것입니다. 하지만 소년은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고, 반항적인 태도를 보이며 김 이사님을 힘들게 했습니다. 청소년 반항을 처음 겪어보는 김 이사님은 속앓이를 해야 했고, 심지어 소년은 집에서 불을 낼 뻔한 사고까지 일으켰습니다. 결국 남편의 반대로 소년을 다시 시설로 보내야 할 상황에 놓였지만, 20년 만에 연락이 닿은 언니의 도움으로 그룹홈에 연결되어 소년을 안전하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세 번째 아이들은 복지 공무원을 통해 만난 남매였습니다. 엄마는 17살에 집을 나갔고, 알코올 중독이었던 아빠는 돌아가시고, 할머니와 단둘이 살아가던 남매는 가정 환경이 매우 불안정했습니다. 학교마저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학교 폭력에 연루되는 등, 위기에 놓인 남매를 할머니 혼자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입니다. 김 이사님은 경찰서와 학교를 오가며 탄원서를 쓰고, 아이들을 돕기 위해 동분서주했습니다. 알고 보니 남매는 선배들에게 돈을 갈취당하고 있었고, 집에 들어가기 싫어 거리를 배회하거나 조건만남까지 시도하는 위태로운 상황이었습니다.

갈 곳 없는 아이들에게 김 이사님은 언제든 자신의 집으로 오라고 했고, 아이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김 이사님의 집으로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떠보니 다섯 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집에 와 있었고, 심지어 친구를 데려오기까지 했습니다. 화장품도 제대로 없을 만큼 넉넉지 못한 형편이었지만, 아이들은 김 이사님의 화장대에서 화장을 하고, 옷을 갈아입으며 자유분방하게 자신을 꾸미고 나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조건만남을 하려는 듯, 성인 남성들이 차를 몰고 김 이사님의 집 앞에 나타났습니다. 10대 청소년들에게 나쁜 짓을 하려는 어른들의 모습에 분노한 김 이사님은 본네트를 두드리며 소리를 질렀고, 남편은 그런 아내의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고 합니다.

세 명의 아이들을 만나면서 김 이사님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아이들을 돕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섰고, 헝겊 원숭이 운동본부를 설립하여 본격적으로 아이들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세 아이들은 현재 훌륭하게 성장하여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하는데요, 특히 학교 폭력에 시달리던 여학생은 지금은 어엿한 엄마가 되었다고 하니, 놀라운 변화입니다. 김 이사님은 세 아이들을 통해 "내가 할 수 있으니까 도와줘야겠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가족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요? 남편과 세 자녀, 특히 딸이 있었기에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요, 김 이사님의 딸들은 집에 온 언니들을 따뜻하게 맞아주며 함께 어울렸다고 합니다. "누가 괴롭히면 말해, 우리가 혼내줄게"라며 언니들을 챙기는 든든한 모습까지 보여주었다고 하니, 오히려 가족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입니다. 놀랍게도 막내아들은 5학년 때 엄마에게 쓴 편지에서 "엄마가 나에게 해준 건 별로 없지만 그래도 사랑한다"는 솔직하고 귀여운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편지에는 엄마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존경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을 것입니다.

김 이사님이 특별히 '밥' 제공에 집중하게 된 계기가 있었을까요? 물론 밥의 중요성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직접 밥집을 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합니다. 계기는 헝겊 원숭이 운동본부 활동 중 중학교 선생님의 도움 요청이었습니다. 방학 때 급식을 먹지 못하는 아이들이 하루 종일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김 이사님은 푸드박스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햇반, 라면 등 인스턴트 식품을 박스에 담아 아이들 가정에 전달하는 방식이었는데요, 하지만 인스턴트 식품만 제공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따끈따끈한 밥을 해주면 좋을 텐데…" 라는 작은 이야기가 씨앗이 되어, 김 이사님은 푸드트럭 사업을 제안하게 되었고, 놀랍게도 3년간 4억 5천만 원을 지원받는 대규모 사업에 선정되면서 본격적으로 아이들에게 밥을 제공하는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2019년 사업 선정 후, 반찬 배달과 푸드트럭 운영을 시작했지만,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하면서 상황은 급변했습니다. 학교와 복지관이 문을 닫으면서, 아이들에게 밥을 제공할 수 있는 곳은 헝겊 원숭이 운동본부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요청이 쇄도했고, 김 이사님은 화요일 푸드트럭, 금요일 반찬 배달, 토요일 도시락 배달까지, 주 3회 밥차를 운영하며 아이들의 밥을 책임졌습니다. 2020년 한 해 동안 무려 9만 명에게 식사를 제공했다고 하니, 정말 엄청난 규모입니다. 2021년 지원이 끊기면서 다른 기관들은 사업을 포기했지만, 김 이사님은 아이들 밥 먹이는 일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결국 사비를 털어 식당을 열기로 결심했고, 현재까지 식당 운영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식당 개업 자금 마련 과정에도 놀라운 이야기가 숨어있습니다. 식당 보증금이 필요했지만, 마땅한 자금이 없었던 김 이사님에게 친동생 김도훈 씨가 보증금을 지원해 준 것입니다. 평소 돈 이야기를 꺼리는 동생이지만, 누나의 어려운 사정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헝겊 원숭이 운동본부 사단법인 설립 당시에도 5천만 원이라는 거액을 쾌척했다고 합니다. 김 이사님은 동생의 도움에 깊이 감사하며, "하나님께서 동생을 통해 축복을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노래방에서 김도훈 작곡가의 노래를 부를 때마다, 그 수익금이 좋은 일에 쓰인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식당 운영에는 나름의 규칙이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무료로 밥을 제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학교와 지역 사회의 추천을 받아 정말 필요한 아이들에게 반찬 배달, 먹거리 꾸러미 등을 제공하고, 식당은 화요일, 금요일 주 2회 운영하며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식당 위치는 부산시 남구 분포 1동이라고 합니다.

놀랍게도 김보민 이사님은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가진 전문가는 아닙니다. 하지만 서울신학대학교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사회복지학 전공자입니다. 전문가 못지않은 헌신과 열정으로 아이들을 돌보는 모습은 감동을 자아냅니다. 이 모든 것이 계획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이루어진 일이라고 김 이사님은 강조합니다. 특히 식당 개업 과정에서 기적적인 자금 마련 경험은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확신하게 만들었습니다. 주방 공사, 기자재 구입 등에 1,500만 원이 필요했지만, 교회 오빠였던 효산의료재단 샘병원 이사장님의 1천만 원 지원, 지인의 500만 원 지원으로 기적처럼 자금이 마련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튜버, 국회의원 등 각계각층에서 후원이 이어지면서 식당은 예상보다 훨씬 훌륭하게 갖춰지게 되었습니다.

푸드트럭 운영에도 기적 같은 일들이 많았습니다. 야외에서 진행되는 푸드트럭과 반찬 배달은 날씨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데요, 궂은 날씨에도 단 한 번도 비가 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신기하게도 푸드트럭 운영 시간만 되면 비가 멈추고, 하늘이 맑게 갰다고 합니다. 심지어 아침에 비가 와도 "걱정 마세요, 그때 되면 비 안 올 거예요" 라는 김 이사님의 말은 "날씨 요정"이라는 별명까지 만들어냈습니다. 32년간 교회를 떠났던 교인이 이 일들을 계기로 다시 교회로 돌아오고, 총 5명의 새로운 교인이 생겨났다고 하니, 놀라운 전도의 결과입니다. 김 이사님은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아이들을 사랑하신다는 증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반찬 배달을 중단하려던 순간에도 기적은 일어났습니다. 3년간 힘들게 반찬 배달을 해왔기에 이제 그만하고 싶었지만, 배달 중단 의사를 밝히기가 무섭게 30명의 새로운 신청자가 나타났습니다. 결국 배달을 포기할 수 없었던 김 이사님에게 라이더 유니온(배달 노조)에서 자원봉사를 제안해 왔습니다. 오토바이 배달원들이 피크 타임이 아닌 시간에 자원봉사로 반찬 배달을 도와주면서 힘든 반찬 배달을 지속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라이더 유니온은 2년 넘게 꾸준히 자원봉사를 이어오고 있으며, 홍보까지 자처하고 있다고 하니,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군포 1동에서 활동하는 김 이사님은 금정역 인근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삼봉감리교회 교육관에서 도시락을 나눠주고 있습니다. 길에서 도시락을 나눠주던 김 이사님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교단도 다른 교회의 교육관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것입니다. 현재 50명의 아이들이 삼봉감리교회에서 도시락을 받고 있으며, 크리스마스에는 교회에서 선물까지 준비해준다고 하니, 따뜻한 사랑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식당 운영비는 한 달에 700만 원이나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무모하다고 걱정했지만, 지금까지 3년 넘게 식당 문을 닫지 않고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이 기적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직접 체험하고 있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닐 정도입니다. 식자재 가격 폭등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채워주시고 계십니다. 가장 최근에는 김장을 앞두고 500kg 배추가 필요했는데, 지원 사업 대상에서 탈락되어 실망했던 김 이사님에게 노인복지관에서 절임 배추 500kg을 기증하겠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올해는 1톤의 김장을 했는데, 필요한 배추가 기적처럼 채워지는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 이 모든 것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라고 김 이사님은 강조합니다. "중독"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만큼, 하나님의 일하심에 깊이 매료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아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그 사랑을 전하는 일에 헌신하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라고 말합니다.

헝겊 원숭이 운동본부 활동을 하면서 가장 보람 있고 행복한 순간은 언제일까요? 중학교 2학년 여학생과 깊은 대화를 나누며 마음속 고민을 털어놓을 때, 아이들과 진심으로 소통하고 교감할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고 합니다. 푸드트럭 운영 당시, 새로운 친구를 데려온 아이가 "선생님은 도대체 뭐가 남아요?"라고 질문했을 때, "마음을 받잖아"라고 대답했던 중학교 3학년 남학생의 이야기는 깊은 울림을 줍니다. 아이들의 마음을 받는 것, 그것이 가장 소중하고 행복한 일이라고 김 이사님은 말합니다. 봉사자, 조리사, 배달원 모두 "중독"된 것처럼 기쁜 마음으로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오랫동안 함께 하는 모습이 가장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합니다.

김 이사님 자신에게도 변화가 있었을까요? 주변 사람들은 "예전에는 날카롭고 웃음이 없었는데, 지금은 따뜻하고 잘 웃는 사람으로 변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어릴 적 사진 속 굳은 표정과 달리, 지금은 환한 미소를 잃지 않는 모습입니다. 찬양 대회 연습 중 "김보민 집사님처럼 웃어보세요"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잘 웃는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따뜻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는 김 이사님은 "완전히 탈바꿈"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변화되었습니다. 또 다른 변화는 "손이 커졌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짠순이"였지만, 지금은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어하는 큰 손"이 되었습니다. 크리스마스 메뉴를 치킨, 스파게티에서 등갈비로 바꾸고, 장학금을 줄 때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물건을 사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생겼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부자"이시기에, "하나님의 마음으로 나눠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넉넉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쌓을 곳이 없도록 보내주셔도 다 나눠줄 수 있다"는 기도처럼, 넘치도록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쓰고 나눌수록 더 많이 채워진다""마르지 않는 곳간"의 기적을 체험하며 "마음 부자"가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지금까지 인도해주신 하나님의 은혜 중 가장 감사한 것은 무엇일까요? 일상의 모든 순간이 감사하지만, 가장 감사한 것은 "평안함"이라고 합니다. "평안함은 주님 안에 있는 것"이라고 믿으며, 순간순간 평안함을 느낄 때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늘 평안하면 가장 좋은 것"이라고 말하는 김 이사님은 감사일기를 쓰면서 "훨씬 더 감사하고 평안해졌다"고 합니다. 시편 23편 말씀을 가장 좋아하며,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고백처럼, "하나님께서 나의 목자"가 되시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새벽마다 큐티를 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고, 묵상과 찬양을 통해 "가장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고 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평안함"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깊이 감격하며, 앞으로도 "사역을 잘 이어가겠다"는 다짐을 전했습니다.

주영훈 님은 마무리 발언에서 우리나라 교육 현실을 지적하며, 김 이사님의 삶이 진정한 교육의 방향을 제시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맹목적인 경쟁 교육, 입시 위주 교육에서 벗어나,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목표와 비전"을 심어주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역설합니다. 김 이사님의 헌신적인 삶"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따라 "사회적 약자를 돌보고, 사랑을 나누는 것""진정으로 잘 사는 것"임을 보여주는 "교육적 모델"이라고 칭찬했습니다. 특히 외로운 아이들이 겪는 고통"사망 선고에 비견될 만큼 심각하다"며,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돌볼 것인가"에 대한 "진정한 교육적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헝겊 원숭이 운동본부를 통해 "많은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사랑으로 돌보는 손길"이 이어지기를 응원하며 마무리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김보민 이사님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나눔의 가치와 삶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세 명의 아이들을 만나 인생이 바뀐 김보민 이사님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사랑과 헌신"의 참된 의미를 일깨워줍니다. 작은 관심과 사랑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김 이사님의 앞으로의 활동을 진심으로 응원하며, 오늘 이야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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