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둥 목사 어린이 콘텐츠 재능기부와 감동 간증 이야기
아이들을 위해 MC들 재능기부 약속! 이기둥 목사 감동 간증
모두가 재능 기부를 약속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기둥 목사님의 감동적인 이야기
새롭게하소서 진행자 주영훈입니다. 송진은입니다. 정복입니다. 반갑습니다. 요즘 유튜브에는 좋은 말씀 영상들이 참 많죠. 하지만 교회학교 콘텐츠는 여전히 예전 모습 그대로 멈춰있는 듯해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오늘 귀한 손님을 모셨는데요, 교회학교 아이들을 위해 훌륭한 콘텐츠를 무료로 제작, 제공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놀랍게도 목사님은 원래 목사가 될 생각도, 아이들 사역은 더더욱 생각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아이들에게 큰 관심조차 없으셨다니 더욱 궁금해지는데요, 과연 어떤 분일까요? 중심교회 목사이시자 키즈워십 대표이신 이기둥 목사님을 모셨습니다. 목사님,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 정말 반갑습니다, 목사님! 기둥이라는 성함이 특이한데, 이름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을까요? 어릴 적 친구 중에 '기둥서방'이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가 꼭 있었다는 이야기에 웃음이 터져 나오는데요, 목사님께서는 키즈 워십 대표로 어린이 콘텐츠 제작에 힘쓰고 계시죠. 그런데 왜 아이들을 위한 양질의 콘텐츠가 부족한 걸까요? 저 역시 궁금증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저도 어린이 사역을 시작하면서 좋은 자료를 찾아 미국 교회를 방문하고, 컨퍼런스에도 참여했습니다. 놀랍게도 미국 교회들의 자료는 퀄리티가 엄청났습니다. 디즈니 출신 전문가가 만든 어린이 찬양, 한국 프로그램보다 훨씬 뛰어난 영상 퀄리티에 감탄했죠. 컨퍼런스에서 만난 관계자에게 한국 보급 방법을 문의했더니, "출판사와, 변호사와 이야기해 봐야 한다"는 복잡한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알고 보니 저작권 문제였습니다. 한국 교회는 대형 회사가 아니기에, 저작권 문제 해결이 쉽지 않았던 거죠.
고민 끝에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습니다. 첫째, 몰래 자료를 사용하는 것. 둘째, 직접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 결국 후자를 택했고, 이 선택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직접 제작에 나선 것이 바로 그때부터였죠. 우리나라 CCM 곡이나 찬양도 무단 사용하는 경우가 많고, 저 역시 외국 CCM 곡 번안에 6개월이나 걸렸습니다. 음악 출판사들이 가사, 음정 하나하나 꼬투리를 잡고 늘어져서, 녹음은 마쳤지만 발표를 못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나님 찬양을 무단 사용하는 것은 죄인데, 기독교 콘텐츠 저작권 문제가 너무 복잡합니다. 널리 배포해야 할 콘텐츠인데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저 역시 어린이 사역 자료를 만들면, 교회들이 하나만 사서 복사해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새로운 콘텐츠 제작 동력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죠. 불법 복제가 양심에 걸리지만, 그렇다고 세상 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의 일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모든 것을 직접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시간은 오래 걸리겠지만 말입니다. 크리스마스 캐럴이 사라진 것도 저작권 때문이죠. 거리에서 마음대로 캐럴을 틀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저희는 모든 것을 자체 제작합니다. 노래도 여러 나라 언어로 직접 만들고 있습니다. 손이 엄청나게 많이 가지만, 많은 분들의 도움 덕분에 가능합니다.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죠. 37개 언어로 제작되고 있는데, 유튜브 채널에 들어가 보시면 전 세계 언어를 지원합니다. 정말 희귀한 언어까지 번역되어 있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번역 작업이 쉽지 않은데,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처음부터 계획했던 건 아니었지만, 하나씩 시작했더니 자원하는 분들이 나타나 "목사님, 좋은 그림 있는데 재능 기부해도 될까요?" 하며 돕기 시작했습니다. 하나의 콘텐츠 세트가 완성되면, 통째로 여러 언어로 번역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졌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 이렇게 커져 버렸습니다. 자막뿐만 아니라 더빙까지 제공하고 있습니다. 자막은 자동 번역이 되지만, 더빙은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죠. 귀한 일을 묵묵히 해내시는 목사님을 오늘 특별히 모셨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어린 시절부터 목사는 절대 안 되겠다고 굳게 다짐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목사가 되기로 결심하신 건가요? 누나 두 분과 함께 자라면서 아버지의 고단한 목회를 지켜봤습니다. 목사님은 좋은 직업이 아니라고 생각했죠. 누나들과 "우리는 절대 목사, 목사 부인은 되지 말자"고 굳게 다짐하기도 했습니다. 목사는 너무 힘들고 피곤한 직업이라고 생각했죠. 목사가 된다면 아버지처럼 헌신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습니다. 마음속으로 목사를 멀리했기에, 목사가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독일어과에 진학 후, 프랑스 파리에서 그림으로 유명한 친척 어른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방학마다 파리에 가서 미술관 일도 돕고, 프랑스어도 배우면서 다양한 경험을 했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친척 어른께서 "미술관 뮤즈에서 일해 볼 생각 있느냐, 제대로 미술 공부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셨습니다. 솔깃한 제안이었지만, 목사님 아들이라 기도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프랑스 남부 수도원에 기도하러 갔습니다. 일주일 기도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하루 세 번 기도했습니다. 월요일, 화요일, 금요일까지 결정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금요일 마지막 기도 시간,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3천 명 청년들이 모인 수도원 기도회는 마지막 사람이 기도 마칠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세 시간 기도했지만 아무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너무 행복했습니다. 찬양하고 기도하는 시간이 영혼을 벅차게 했습니다. 응답은 없었지만, 하나님과 함께하는 행복 자체가 응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일어나 보니, 세 시간 동안 제 오른쪽 뒤에 앉아 있던 청년도 함께 일어났습니다. 수많은 사람 중에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묘했습니다.
청년에게 말을 걸어 봤습니다. 이탈리아 사람이냐고 영어로 물었더니, 독일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독일어로 대화가 시작됐습니다. 자기도 결단을 하러 왔다고 했습니다. 뮌헨 BMW에서 일하는 전기공학 엔지니어였습니다. 최고 직장에 꿈을 이룬 것처럼 보였지만, 행복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내가 아무리 좋은 자동차를 만들어도, 30년 후에는 고철이 될 텐데, 내 인생을 고철 만드는 데 쓰는 것 같아 괴롭다"고 했습니다. 저에게는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본인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어 기도했고, 전기공학 기술로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어 했습니다. 고철이 되더라도 사람을 살리는 고철을 만들고 싶다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의료기기 회사 설립을 결심하고, 야간 대학에서 응급 치료사 자격증을 따고, 회사를 설립하기 직전에 기도하러 온 것이었습니다. 저와는 차원이 다른 고민이었죠. 기도해 달라는 부탁에, 오히려 제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살도록 노력하라"는 하나님의 응답처럼 느껴졌습니다. 미술은 아닌 것 같고, 어릴 적부터 봐왔던 아버지의 목회를 통해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독일 친구를 통해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것입니다.
아버지께 신학 대학원에 가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처음에는 "네가 진짜냐"며 믿지 않으셨습니다. 신대원 입학에 필요한 가족 동의서에 도장을 받아야 했습니다. 미루고 미루다 도장을 찍어 달라고 재촉했더니, "약속할 수 있겠냐"고 물으셨습니다. 아버지는 새벽 기도 때마다 하나님과 일대일로 대면하는 장면을 떠올리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큰 목회를 못 했느냐"고는 묻지 않으실 것 같지만, "네게 맡긴 양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느냐"는 꼭 물으실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새벽 기도 때마다 그 음성이 들리는 듯해서, 하루하루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저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저는 급한 마음에 "아멘!" 하고 도장을 받았지만, 아버지의 말씀은 마음에 깊이 남았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허락을 받았죠. 허락은 받았지만, 양들을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을지 자신은 없었습니다. 시간 관계상 여기서 마무리해야 할 것 같네요.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신대원에는 어떻게 들어가셨나요?
신대원에 갔지만, 어린이 사역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교회에서 부르심을 받아 교회에 가게 되었는데, 아버지께서 "목회는 일반 목회가 꽃이다. 아동부, 중고등부, 청년부, 교구, 선교 등 다 잘하는 목사가 좋은 목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단계를 밟아 차근차근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주어진 일에 열심히 임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말씀을 잘못 해석했습니다. 모든 일에 마음을 다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어차피 지나갈 과정"이라고 건성으로 임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후회하지만, 당시에는 잘 몰랐습니다. 아동부를 맡았는데, 주일학교뿐 아니라 토요일 부서에서도 사역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이동 전도사에게 토요 부서까지 맡을 수 있겠냐고 물으셔서, "아멘!" 하고 수락했습니다. 토요일에만 사역하는 부서에서 인생을 바꿀 만한 사건을 만났습니다. 열심히 사역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지나갈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름도 제대로 외우지 않고, 마음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토요 부서 담당 전도사님이 "여기 아이들은 교회를 안 다니는 아이들이 많다. 가족이 교회를 안 다니고 혼자 오는 아이들도 많으니, 매주 매주가 마지막 주일일 수 있다. 구원의 확신에 관한 설교를 한 달 동안 집중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때부터 설교를 나눠서 하게 되었습니다. 구원의 확신에 대한 설교를 준비하면서, 어릴 적부터 교회에서 자란 저는 여름만 되면 "하늘나라 간다"는 우스갯소리를 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손 들고 "아멘!" 하면 천국 간다는 식의 설교 말입니다. "그건 너무 아니지 않나" 생각했지만, 막상 설교를 준비하려니 다른 시나리오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결국 똑같이 "여름성경학교" 스타일로 설교했습니다. 연기만 열심히 한 셈이죠. "아동부 사역은 나와 맞지 않아" 생각하고 그만두려 했습니다. 화요일 새벽 2시쯤, 갑자기 전화가 왔습니다. "아무개 아시느냐"는 다짜고짜 질문에, 솔직히 이름을 몰랐습니다. 아는 척 연기를 하며 "걔, 걔 알죠"라고 답변했습니다. 그 아이가 세상을 떠났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였습니다. 자초지종을 물으니, 교회 바로 앞 아파트에 살던 아이였습니다. 명원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였는데, 토요 부서에서 전도를 했던 아이였습니다. 집에서는 교회를 전혀 다니지 않았고, 부모님은 "교회에 가면 큰일 난다"고 가르쳤다고 합니다. 주일에는 어디도 못 가게 했지만, 친구들이 "토요일에도 교회에 갈 수 있다"고 꼬드겨 교회에 오게 된 것입니다.
몇 번 교회에 나온 후, 학교에 갔는데 몸이 안 좋았던 모양입니다. "선생님, 몸이 이상해요" "선생님, 열이 많이 나요" 선생님이 보건실에 갈지, 집에 갈지 물으니 집에 가겠다고 했습니다. 집에 혼자 들어가 쓰러져 잠들었습니다. 엄마가 장을 보고 돌아와 신발 소리를 듣고 "일찍 왔나 보다" 생각하고 요리를 했습니다. 그런데 느낌이 이상해서 깨워보니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앰뷸런스를 불렀지만 병원으로 이송 중 세상을 떠났습니다. 뇌수막염이었습니다. 예방 접종도 다 맞았는데 이런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엄마는 넋이 나갔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을 잃었으니 오죽했을까요. 아파트 주민들에게 소문이 퍼지고, 학교에 아이 자리에 꽃이 놓였다는 이야기를 집사님들이 듣게 되었습니다. "우리 아들이 전도했던 아이인데, 교회에 왔었다"는 이야기를 엄마에게 전화해서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는 전도사님이 신방을 가자"고 제의했습니다. 부모님은 교회를 다녀본 적도 없었지만, 아이 마지막 모습을 알고 싶은 마음에 신방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저에게는 인생 첫 신방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의자에 앉아 몸만 뒤척거리고, 옆에서 집사님들이 찬양하며 "기운 내세요" 위로했지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엄마는 한 문장만 되풀이했습니다. 질문인지 울부짖음인지 모를 말을 계속 되뇌었습니다. "지금 아무개 좋은 데 있죠?" "좋은 데 있다고 말해 줘요" 저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예배를 제대로 마쳤는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사무실로 돌아와 출석부를 확인해 보니, 아이가 마지막으로 출석한 날이 제가 얼렁뚱땅 설교했던 날이었습니다. 정말 마지막 예배였던 겁니다. 저는 그저 연기만 했을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시간을 통해 아이를 만나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도 일하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옆에 앉았던 아이를 찾아 "그때 아무개가 '아멘' 했니?" 물었지만,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만 아시는 일이지만, 모든 과정과 관계를 통해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계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어린이 사역에 헌신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어린이 사역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어린이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오늘 드리는 예배가 마지막일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몽골에도 사역을 다녀오셨다고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어린이 사역이 안정기에 접어들 무렵, 몽골에서 선교사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몽골에 선교의 문이 열린 지 20년이 되었고, 이제는 다음 세대를 위한 어린이 사역을 시작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교회 전도사님을 몽골에 보내달라고 요청하셨습니다. 담임 목사님 허락을 받고 몽골에 가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가기 싫었습니다.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다시 고생길이 열릴 까 걱정됐습니다. 준비도 제대로 안 하고, 한국에서 쓰던 자료 몇 개만 번역해서 갔는데, 몽골 교사 300명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298명은 열정적으로 참여했지만, 두 명이 계속 신경 쓰였습니다. 강단 밑에서 저를 쏘아보는 듯한 여성과 몽골 전통 의상을 입고 계속 소리치는 할아버지였습니다. 통역에게 두 사람에 대해 물어보니, 할아버지는 71세에 예수님을 믿으셨고, 70년 동안 하나님을 위해 한 일이 없다는 자책감에 어린이 사역이라도 배우려고 17시간 기차를 타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귀가 잘 안 들려서 소리를 지르셨던 겁니다. 여성에게 다가가 부드럽게 물으니, 20살 여성은 암 말기 선고를 받고 두 달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남은 시간을 의미 있게 쓰고 싶어, 어린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왔다는 것입니다. 그 순간, 하나님께서 몽골 선교를 어떻게 바라보시는지 깨달았습니다. 제 눈과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역해야 함을 느꼈습니다. 몽골 사역 자료 제작을 시작했고, 해외 사역의 첫걸음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몽골 사역을 다녀온 후, 어린이 키즈 워십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되셨다고 봐도 될까요? 몽골 사역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원래 다니던 교회에서는 자료 활용이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감사하게도 키즈 워십 사역을 허락하는 교회로 옮겨,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청년부도 함께 맡아, 키즈 워십 자료를 활용하여 4년 동안 몽골 교회에 1년 치 커리큘럼을 제공했습니다. DVD 시대라 주일 예배 DVD 52장을 제작했습니다. 몽골 유학생들의 도움을 받아 몽골어 더빙도 완료했습니다. 몽골인 학교 어린이들의 목소리로 찬양 더빙도 했습니다. 4년 동안 52주 커리큘럼을 만들어 몽골 교회에 선물했습니다. 몽골 사역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중국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몽골보다 500배 큰 나라였습니다. 중국 사역 후에는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요청이 쇄도했습니다. 점점 사역이 확대되었습니다. 키즈 워십 영상 사역을 처음 시작할 때, 막막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주변 사람들이 가장 걱정했던 것은 재정 문제였습니다. "돈은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습니다. 돌아보니 기적과 같은 일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첫째, 사역자들이 2중, 3중 직업을 가지고 열정 페이로 헌신했습니다. 배우자들도 함께 일하며 재정적 어려움을 극복했습니다. 둘째, 후원자들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습니다. 셋째, 선교사들이 직접 번역, 녹음 등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선교 현장에서 필요를 느끼고, 직접 팔을 걷어붙인 것입니다. 선교사님들이 번역을 해주시면, 저희가 녹음을 하러 가는 식으로 협력했습니다. 이렇게 서로 돕고 협력하는 가운데 사역이 확대될 수 있었습니다. 선교사님들도 현지 언어에 능통하지만, 성경 이야기 번역은 또 다른 영역입니다. 어린이들에게 맞는 언어와 표현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 신경 써야 합니다. 목사님께서 제작하신 영상 더빙 퀄리티가 굉장히 높던데, 비결이 있나요?
언어별로 다양한 스토리가 있습니다. 최근 태국에 더빙 작업을 하러 갔습니다. 재정 상황이 넉넉하지 않기에, 선교사 컨퍼런스 강사로 초청받아 태국에 가게 되었습니다. 오전부터 오후까지 강의 일정을 소화하고, 저녁 시간을 활용하여 더빙 작업을 할 계획이었습니다. 태국 선교사님께 연락을 드렸더니, 5편이나 번역을 해 놓으셨다고 했습니다. 언젠가 저희가 올 줄 알고 미리 준비하고 계셨던 겁니다. 감수도 세 명에게 마쳤다고 했습니다. 방콕에서 녹음 장소를 찾아야 했는데, 다행히 녹음실을 운영하는 선교사님을 소개받았습니다. 녹음실 사용료도 무료로 제공해 주셨습니다. 태국 더빙 배우 섭외가 문제였습니다. 페이스북에 더빙 배우 추천 글을 올렸지만, 여자 배우만 많이 지원하고 남자 배우는 전혀 없었습니다. 스튜디오 선교사님이 태국 중부 선교사회 카톡방에 글을 올렸는데, 단 한 명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 분은 태국 디즈니 더빙 전문 성우였습니다. 니모를 찾아서 태국 더빙 주인공 니모 목소리 연기를 하셨던 분입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 찰리 목소리 연기도 하셨다고 합니다. 프로 중의 프로 성우를 만난 것입니다. 남자 성우가 부족했는데, 친구 성우들을 소개해 주셔서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성우님은 기독교 국제학교 선생님으로, 목소리 재능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고 싶다고 기도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완벽한 타이밍에 기도 응답을 받은 것입니다. 태국어 더빙 52편 작업을 마쳤고, 최근 1편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습니다. 올해 안에 52편 모두 공개할 예정입니다. 한국어 더빙은 어떻게 했냐구요? 크리스천 개그맨들이 재능 기부로 참여해 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크리스천 개그맨 대표 정종철 집사님을 비롯해, 많은 개그맨들이 흔쾌히 참여해 주셨습니다. 개그맨들의 다양한 캐릭터와 연기력이 더해져 더욱 풍성한 콘텐츠가 탄생했습니다. 오늘 녹화에 참여하신 개그맨 분들도 앞으로 키즈 워십 사역에 함께 해 주시길 기대합니다. 정말 재능 있는 분들이 많으시네요! 저 역시 미력하나마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카메라라도 들어드릴까요? 오늘 녹화는 저를 위한 자리였네요! 녹화 후 연락처를 드릴 테니,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기도만 하는 것보다 실질적인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주변에 재능 기부를 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를 하나님을 위해 사용할 때 가장 행복합니다. 시간과 재능을 기꺼이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저 역시 언제든 필요하면 돕겠습니다! 함께 사역하게 되어 기쁩니다.
목사님 영상을 보니, 등장인물들의 피부톤이 다양하더군요. 섬세한 배려에 감동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셨나요? 처음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입니다. 아프리카 아이들은 성경 인물들이 너무 하얗게 나오는 것에 대해 의아해했습니다. 한국 사람 피부톤으로만 그려지는 것에 대한 문제 의식을 갖게 된 것입니다. 동남아시아에서도 "한국 사람 피부여야 하나님을 믿나" 생각하는 아이들이 있다고 합니다. 피부톤을 다양하게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미술 학원을 운영하는 집사님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집사님은 교회 그림들이 마음에 안 드셨다고 합니다. 성경 이야기 52개를 가지고 미술 수업을 하려고 52명의 삽화가를 섭외했습니다. 신앙 고백문, 저작권 포기 각서까지 받고, 비용도 개인 부담하셨습니다. A3 크기 손그림 52개 세트를 저희에게 기증해 주셨습니다. 저희는 그 그림들을 스캔해서 영상으로 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전 세계 언어로 번역할 수 있는 플랫폼이 구축되었습니다. 피부톤을 다양하게 하니, 아이들이 "나와 비슷한 피부색을 가진 사람도 성경 인물이 될 수 있구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다양한 문화권의 아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의미 있는 결과물을 얻게 되었습니다.
어린이 콘텐츠 사역이 어린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엄청날 것 같습니다. 가장 반응이 좋은 곳은 필리핀입니다. 필리핀 따갈로그어 콘텐츠를 만들었는데, 안내도 안 했는데 조회수가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알고 보니, 필리핀은 자연재해 시 대피소에 아이들을 모아놓는데, 선교사님들이 그곳에서 저희 영상을 틀어주셨다고 합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전체 이야기를 담은 52편 영상을 아이들이 몇 시간씩 집중해서 봤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집에 돌아가서 엄마에게 "저 영상 어디서 볼 수 있어?" 물었고, 엄마들이 서로 연결해 주면서 입소문이 났다고 합니다. 전도 목적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성경 말씀을 접하고 배우게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세미나도 개최하고, 교회들이 콘텐츠를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비일비재하게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신대원에 간다고 했을 때, 아버지께서 "양들을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겠냐"고 물으셨는데, 지금 돌아보면 어떻게 답변하시겠습니까?
감히 "최선을 다했다"고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애쓰고 있다"고는 답변드릴 수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께 "무엇을 하든 끈기 있게 해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돌아보면 저는 무엇 하나 제대로 끝까지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동료 목사님들이 저를 보고 "끈기 있는 사람"이라고 칭찬하더군요. 아무도 어린이 사역을 하려고 하지 않는데, 저는 여전히 어린이 사역을 하고 있으니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끈기 있게 사역할 수 있었을까요?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저에게 복을 많이 주셨습니다. 힘들 때마다 사건을 통해 감동을 주시고, 선교사님들과 교류하며 현장을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오직 복음에 헌신하는 선교사님들을 보면서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그 부끄러움이 저를 계속 사역하게 하는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최선을 다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부끄럽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부끄럽지 않습니다"고 당당히 말씀드릴 수 있도록 열심히 사역하겠습니다. 오늘 귀한 이야기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사님의 사역을 통해 한국 교회에 희망을 보았습니다. 저 역시 큰 희망을 얻고 갑니다. 오늘 출연 하시길 잘 하셨죠? 정말 많은 것을 얻어갑니다. 간증은 어떠셨나요?
목사님 말씀을 들으면서, 크리스천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봤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목숨을 내어주신 것처럼, 우리 역시 삶의 열매를 많은 사람들이 값없이 누리도록 해야 합니다. 세상은 당연히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돈을 주고 고용해야 하지만, 하나님의 일은 자진해서 재능 기부하고, 무료로 배포하며 수많은 영혼을 살리는 일입니다. 이야기만 들어도 행복한데,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앞으로 목사님 사역에 돕는 손길이 더욱 풍성해지기를 기도하며, 저 역시 열심을 다해 돕겠습니다. 응원하겠습니다. 개그맨 대표로 부담이 많으시겠네요? 요즘 아이들이 교회에 잘 안 가려고 합니다. 재미없어해서 저희 아이들도 교회를 힘들어합니다. 아이들이 무너지면 한국 교회 미래는 없습니다. 한국 교회뿐 아니라, 전 세계 아이들이 주님 앞에서 예배드릴 수 있도록 기둥 역할을 해주시는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지치지 않으시고 끝까지 건강한 기둥으로 함께 해주시길 응원하며, 저희도 기둥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겠습니다. 기둥 목사님, 오늘 정말 감사합니다. 제 이름이 본명 이기둥입니다. 한글 이름입니다.
주변 친구나 지인들에게 물어보면,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교회에 안 가봤다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어릴 적 한 번쯤은 성경학교나, 빵, 계란 때문에라도 교회를 다녀본 경험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대부분 교회를 떠납니다. 중고등부, 성인이 되면서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재미도 없고, 세상은 급변하는데 교회는 예전 모습 그대로 멈춰있기 때문입니다. 주일학교인지 노인 학교인지 구별이 안 가는 교회 현실 속에서, 많은 생명들을 세상에 빼앗기고 있습니다. 어린이 예배는 전도사에게, 중고등부는 목사님에게 맡겨놓고 소홀히 여겼던 사각지대를 목사님께서 기둥처럼 든든하게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키즈 워십 콘텐츠 사역을 응원하며, 저희도 힘을 보태겠습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 저희도 열심히 힘쓰겠습니다. 오늘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목사님, 정말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