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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의 상처, 치유와 회복 이야기: 최윤희 목사 간증

요약

아버지의 침묵, 딸의 눈물: 상처와 치유의 여정

아버지와의 상처, 죄책감, 그리고 치유: 최윤희 목사의 이야기

이번 글에서는 최윤희 목사님의 간증을 바탕으로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겪었던 상처와 죄책감, 그리고 궁극적인 치유 과정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최윤희 목사님은 계간지 '치유'의 발행인이시며, 아버지와의 이별을 통해 진정한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셨다고 합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잡지 '치유'를 발행하며 다른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계신데요, 과연 목사님은 어떤 아픔을 겪었으며, 어떻게 치유받고 '치유'라는 매개체를 통해 세상을 향해 나아가게 되었는지 함께 살펴보시죠.

아버지와의 관계: 무관심과 무능력으로 인한 깊은 상처

최윤희 목사님은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고 고백하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2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여전히 아버지께 잘해드리지 못한 죄책감과 상처가 남아있다고 하시는데요, 과연 아버지께서는 어떤 분이셨을까요?

목사님의 아버지는 말수가 극히 적으신 분이셨다고 합니다. 하루 종일 몇 마디 나누지 않을 정도로 과묵하셨고, 식사 시간에도 가족들과 대화 없이 혼자 식사에만 집중하셨다고 하는데요, 심지어 식사도 매우 느리게 하셔서 가족들은 먼저 식사를 마치고 아버지는 혼자 남아서 식사를 하시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더욱 답답했던 점은 아버지께서 질문에 대한 대답조차 제대로 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목사님께서 무엇을 물어봐도 아버지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셨고, 이러한 무반응은 가족들에게 큰 답답함과 좌절감을 안겨주었습니다. 이는 아버지가 가족들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원래 말씀이 없으신 성격 때문이었지만, 소통을 갈망하는 가족들에게는 큰 상처가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활발하고 적극적인 성격 탓에, 말없이 느릿한 아버지를 더욱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본인은 말도 빠르고 행동도 빠른데, 아버지는 정반대의 모습이었으니 답답함을 넘어 혐오감까지 느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으셨는데요, 이러한 감정은 어머니의 투병 생활을 계기로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신장암으로 투병하시던 중, 아버지는 속회 모임에서 "이 사람이 암이래요"라고 무심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의 암 투병 소식을 마치 남의 일처럼 건조하게 전달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목사님은 큰 충격을 받았고,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분노는 극에 달했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애정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아버지의 모습에 실망감을 금할 수 없었던 것이죠.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무능력함에 대한 실망감도 컸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잦은 실직으로 가족들을 경제적으로 힘들게 했고, 월세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했습니다. 대학교 졸업에 기자, 교사, 군 장교(중위) 경력까지 있으셨던 아버지가 무능력하게 느껴지는 현실에 목사님은 더욱 좌절했습니다. 학력과 경력은 화려했지만, 사회생활 능력과 대인관계 능력이 부족했던 아버지의 모습은 목사님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주었습니다.

목사님은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느꼈던 답답함, 무관심, 무능력함에 대한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아버지께 직접적으로 표출하기도 했습니다. 눈으로 욕을 하거나, 대화 시도에도 아버지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자 더욱 답답함을 느껴 아버지와의 관계는 점점 악화되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아버지와의 관계는 회복되지 못했고, 오히려 갈등만 깊어져 갔습니다.

연예부 기자에서 목회자의 길로: 예상치 못한 전환

원래 아나운서를 꿈꿨던 최윤희 목사님은 KBS 아나운서 시험에서 탈락 후, 우연히 연예부 기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아나운서 시험 1차에서 심사위원들의 긍정적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탈락했던 경험은 큰 좌절감을 안겨주었지만, 오히려 이 경험이 연예부 기자라는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연예부 기자 생활은 화려하고 즐거웠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H.O.T., S.E.S., 핑클 등 당대 최고의 스타들을 만나 인터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10년 후 잡지사 편집장 제의를 받으면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하지만 편집장으로서의 삶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경영난으로 인해 잡지사는 어려움을 겪었고, 심지어 직원들의 월급을 주기 위해 택시 운전을 해야 할 정도로 힘든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결국 잡지사는 폐간되었고, 목사님은 힘든 시기를 보내던 중 기도원에서 신학 공부를 권유받게 됩니다.

세 번이나 잇따라 신학 공부를 권유받은 목사님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느끼고 신학대학원에 진학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목회자의 길을 망설였지만, 3일 금식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고 목회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합니다. 어머니는 목사님의 결정을 지지했지만, 아버지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목사님은 광림교회에서 전도사로 사역하며 목회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이후 미자립교회를 개척하여 10년간 목회를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미자립교회 목회는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웠고, 목사님은 두 번이나 목회를 포기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힘든 목회 생활 속에서도 목사님은 인내하며 10년을 버텼고, 이는 훗날 '치유' 잡지 발행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아버지와의 불편한 동거, 그리고 폭발

목사님은 전라도 영암의 한 깡촌에서 미자립교회를 개척하면서 아버지와의 불편한 동거를 시작하게 됩니다. 외딴 시골 교회 사택에서 혼자 지내는 것이 무서웠던 목사님은 아버지께 1년간 함께 지내줄 것을 부탁했고, 아버지는 흔쾌히 승낙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와의 동거는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좁은 공간에서 24시간 아버지를 마주해야 했고, 아버지의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습니다. 식사 습관, 청소 방식, 심지어 숨소리까지 모든 것이 불만스러웠고, 아버지에 대한 혐오감은 극에 달했습니다.

결국 목사님은 미국에 있는 언니에게 전화하여 고통을 호소했고, 언니의 조언에 따라 아버지께 남동생 집으로 가실 것을 권유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순순히 짐을 싸셨지만, 목사님의 마음은 편치 않았습니다. 아버지를 쫓아내는 것 같은 죄책감에 괴로웠지만, 아버지와의 불편한 동거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광주 터미널에서 아버지를 배웅하며 목사님은 죄책감과 슬픔에 휩싸였습니다. 원망하는 눈빛 대신 평소처럼 담담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모습에 죄송함과 안타까움이 밀려왔고, 터미널 화장실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고, 아버지와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후였습니다.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뒤늦은 후회와 죄책감

남동생 집에서 8년간 지내시던 아버지는 치매 증상을 보이셨고, 결국 요양원에 모셔지게 되었습니다. 요양원에 계시던 중 찹쌀떡이 목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셨고, 간수치가 4000을 넘는 심각한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입원 2주 만에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고, 목사님은 임종을 지키며 뒤늦은 후회와 죄책감에 몸부림쳤습니다.

임종 직전, 초점을 잃어가는 아버지께 "윤이야, 윤이 왔어요"라고 외쳤지만, 아버지는 끝내 딸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천장을 바라보며 숨을 거두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목사님은 "안돼요, 가지 마세요.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라고 울부짖었지만, 아버지의 귀에는 닿지 않았습니다. 그제야 아버지께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못 했던 지난날들을 후회하며 깊은 슬픔에 잠겼습니다.

치유상담대학원에서의 경험, 그리고 아버지의 음성

아버지의 죽음 이후, 목사님은 깊은 슬픔과 죄책감에 시달렸고, 건강까지 악화되었습니다. 기아 난민 수준으로 몸 상태가 나빠졌다는 진단을 받을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3개월 후 치유상담대학원에 들어가면서 치유의 과정을 밟기 시작했습니다.

치유상담대학원 영성수련 프로그램에서 목사님은 아버지에 대한 상처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조별 모임에서 다른 조원들이 부모님과의 상처를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며 자신도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날, 불안과 초조함 속에서 용기를 내어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놓았습니다.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목사님은 울음을 터뜨렸고, 어깨를 들썩이며 오열했습니다. 창피함에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깨물며 울음을 참았지만, 조원들은 묵묵히 기다려주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마음속에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윤이야, 아빠가 미안해."

아버지의 음성은 마치 실제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생생하게 들렸습니다. 그 순간 목사님은 아버지의 무뚝뚝함과 무관심 뒤에 숨겨진 미안함과 안타까움을 깨달았습니다. 대답하지 못했던 것도, 도움을 주지 못했던 것도, 행복하게 해주지 못했던 것도 모두 미안했던 아버지의 진심을 비로소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의 음성을 듣고 목사님은 그동안 굳게 닫혀있던 마음의 문을 열고 아버지의 상처를 받아들이고 용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치유상담대학원에 오게 된 이유, 그리고 치유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목사님은 '치유' 잡지를 발행하며 다른 이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사역을 시작하게 됩니다.

'치유' 잡지 발행, 그리고 아버지의 선물

목사님은 10년간의 미자립교회 목회를 실패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께서는 10년간의 인내를 통해 성령의 열매 중 하나인 인내를 맺게 하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 속에서 '치유' 잡지 발행이라는 귀한 선물을 받게 되었습니다.

'치유' 잡지는 목사님 자신의 상처 치유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의 상처받은 영혼들을 위로하고 치유하기 위해 발행하는 잡지입니다. 세상에서는 상처를 약점으로 여기지만, 목사님은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고 극복하는 스토리를 공유함으로써 오히려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목사님은 '치유' 잡지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상처를 직면하고 하나님 안에서 치유받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아버지와의 관계를 통해 깨달은 봉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동네 노인에게 친절했던 마음으로 부모님께 봉사해야 함을 역설합니다. 내 아버지라는 생각 때문에 오히려 화가 나고 불만이 생길 수 있지만, 불쌍하고 외로운 존재로 여기고 봉사하는 마음으로 부모님을 섬길 때 더욱 편안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부모님을 대할 수 있다고 조언합니다.

마지막으로 목사님은 '치유' 잡지를 통해 슬픔과 아픔을 겪는 많은 사람들에게 치유와 회복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는 소망을 밝히며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 아버지와의 непростые 관계를 통해 얻은 깨달음과 치유의 경험은 '치유' 잡지를 통해 세상에 널리 퍼져나가고 있으며,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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