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혁 목사 인생 역전 스토리: 아버지 상처 극복과 목회자 소명
아버지 향한 원망, 십자가 사랑으로 승화시킨 김진혁 목사의 감동 스토리
아버지의 상처를 넘어 목회자의 길로: 김진혁 목사의 파란만장 인생 이야기
오늘 우리는 깊은 상처를 딛고 일어선 한 남자의 감동적인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볼까 합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김진혁 목사님인데요, 그는 관리 집사였던 아버지로부터 받은 깊은 상처를 극복하고, 오히려 그 상처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새롭게하소서에 출연하신 김진혁 목사님의 간증을 통해, 그의 파란만장했던 삶과 놀라운 변화, 그리고 우리에게 던지는 깊은 메시지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김진혁 목사님은 다소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계신데요, 흔히 생각하는 목사님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첫인상입니다. 주영훈 님은 김 목사님을 처음 뵙고 "성악가나 강력반 형사"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만큼 김 목사님에게는 강렬하고 남성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는 것이겠죠. 하지만 이러한 외모 뒤에는 깊은 상처와 아픔을 겪었던, 그리고 그것을 극복한 인간적인 이야기가 숨겨져 있습니다. 이정수 님 역시 "목사님도 사람을 때리냐"는 다소 직설적인 질문을 던지며 그의 강인한 인상에 대한 궁금증을 표현했습니다. 이러한 질문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김 목사님께 대해 품을 수 있는 솔직한 궁금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김 목사님은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책을 출간하셨는데요, 이는 유명 영화 대사를 패러디한 것으로, 아버지에 대한 그의 복잡하고 непростые 감정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책 제목에 얽힌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보면, 그가 페이스북에 써왔던 글들이 좋은 반응을 얻었고, 주변 권유로 책을 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제목은 이진나 전도사님의 센스 덕분이었다고 하는데요, 신학교 시절 방장이었던 최병락 목사님이 던진 "너거 아버지 뭐하시노?" 라는 질문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질문은 단순히 직업을 묻는 것이 아닌, 김 목사님의 숨겨진 상처를 드러내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신학교 기숙사에서 처음 만난 룸메이트들은 김 목사님에게 예상치 못한 솔직함으로 다가왔습니다. 보통 목사님 아들이나 장로님 아들들은 좋은 이야기만 할 것 같다는 선입견과는 달리, 그들은 자신의 어두운 가정사를 거리낌 없이 털어놓았습니다. "나는 아버지가 없다", "우리 아버지는 노름꾼에 술주정뱅이였다", "우리 아버지는 바람둥이였다" 와 같은 충격적인 고백들은 김 목사님에게 큰 위로와 공감을 주었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숨기고 싶었던 아버지에 대한 상처를 처음으로 털어놓을 수 있었고, 비로소 진정한 소통의 물꼬를 트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은 김 목사님이 자신의 상처를 직면하고 치유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김 목사님의 아버지는 교회 관리 집사였습니다. 교회가 집이었던 그는 자연스럽게 교회 문화 속에서 성장했지만, 관리 집사 아들로서 겪어야 했던 고충 또한 적지 않았습니다. 특히, 어린 시절부터 청소는 그에게 가장 힘들고 지긋지긋한 일이었습니다. 교회 행사 후 늦은 밤까지 청소를 해야 했고, 심지어 군 휴가를 나와서도, 결혼식 날에도 청소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청소는 마치 굴레처럼 그를 옭아매었고, 교회에 대한 반감을 키우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아버지의 직업에 대한 교회 어른들의 그릇된 인식과 태도였습니다. 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 권사님, 장로님들은 관리 집사를 '종' 취급하며 하대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한 장로님은 새 차를 뽑자마자 김 집사(김 목사님 아버지)에게 차를 지키라고 시키는가 하면, 담임 목사는 심지어 지팡이로 아버지를 때리거나 '기사'라고 칭하며 무시했습니다. 충격적이게도, 이러한 모멸감은 어린 김 목사님에게 깊은 상처로 남았고, 교회와 신앙에 대한 반항심을 키우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는 더욱 심각했습니다. 월남전 참전 후유증으로 인해 아버지의 성격은 폭력적으로 변했고, 어린 김 목사님은 일상적인 폭력에 노출되어 자랐습니다.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끔찍했던 폭력의 순간들을 묘사하며, 그는 아령으로 맞았던 고통스러운 기억을 털어놓았습니다. 심지어,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폭행당하는 끔찍한 장면을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원망은 그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렸고, 청소년 시절 방황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었습니다.
학교 생활 역시 순탄치 않았습니다. 관리 집사 아들이라는 편견과 가난한 가정 환경은 그를 더욱 힘들게 했습니다. 중학교 시절, 폐품 값 1200원을 내라는 학교의 요구에 반발하여 친구와 함께 학교 운영 비리를 폭로하는 공문서를 작성, 배포하는 대담한 행동을 감행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칭찬이 아닌 체벌과 냉대였습니다. 더욱이, 소풍 때 준비해 간 사이다를 멸시당하는 사건을 겪으면서 학교에 대한 실망감은 극에 달했고, 결국 고등학교를 자퇴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됩니다.
고등학교 자퇴 후, 김 목사님은 전주에서 방황하는 생활을 시작합니다. 3만 원짜리 연탄 창고 자취방에서 비행 청소년들과 어울리며 절도와 폭력을 일삼았습니다. 충격적이게도, 그는 고등학생들을 상대로 '삥'을 뜯고, 고속버스 동전통을 털어 생활비를 마련하는 위험한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절망적인 방황 속에서도 예상치 못한 사건이 그의 삶을 뒤흔듭니다. 가장 친했던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그에게 큰 충격과 두려움을 안겨주었고, 삶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김 목사님은 다시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새로운 삶을 모색합니다. 하지만 문제아였던 과거는 쉽게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학교 폭력에 휘말리고, 끊임없는 싸움에 연루되는 등 여전히 불안한 학교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심지어, 에버랜드에서 벌어진 집단 패싸움에 휘말리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속에는 미래에 대한 갈망이 조금씩 싹트고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김 목사님에게는 세 번의 파격적인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옵니다. 첫 번째는 조폭 스카우트 제의, 두 번째는 나이트클럽 스카우트 제의, 세 번째는 집창촌 스카우트 제의였습니다. 상상조차 하기 힘든 유혹적인 제안들 앞에서 그는 단호하게 "신학교에 가겠다"고 선언합니다. 도대체 무엇이 그를 극적인 변화로 이끌었을까요?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놀랍게도, 김 목사님을 신학교로 이끈 것은 또 다른 친구, 영수와의 특별한 인연이었습니다. 방황하던 시절, 그에게 '최악의 문제아'였던 영수가 성악가의 꿈을 꾸게 되면서 김 목사님은 큰 충격을 받습니다.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던 친구에게 꿈이 생겼다는 사실은 그에게 깊은 자괴감과 새로운 방향에 대한 갈망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고민 끝에, 그는 청소년 사역에 대한 비전을 품게 되고, 청소년들을 가장 잘 다루는 사람이 교회 전도사라는 생각에 신학교 진학을 결심하게 된 것입니다. 정말 놀라운 반전이지 않습니까?
신학교에 입학했지만, 그의 과거는 여전히 그를 따라다녔습니다. 불량 청소년 교화 캠프에 참여하며 열정을 쏟았지만, 근본적인 변화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최병락 목사님과 김관성 목사님으로부터 "하나님의 열심" 이라는 책을 선물받고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박영선 목사의 설교집인 "하나님의 열심"을 통해, 그는 인간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주도적인 역사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특히,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인내와 사랑을 깊이 묵상하며 큰 감동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열심"을 통해 김 목사님은 비로소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고 예배의 기쁨을 알아갑니다. 예배 시간이 기다려지고, 말씀을 통해 깊은 은혜를 받는 놀라운 변화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 결과, 그는 말씀으로 변화되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고, 말씀을 통해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목회자가 되겠다는 새로운 비전을 품게 됩니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와 교회에서의 아픔은 오히려 그를 하나님께 더 가까이 이끄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물론, 상처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예배를 통해 그는 상처를 극복하고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예배 시간에 눈물을 흘리는 경이로운 경험을 처음 하게 되면서,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만져주시고 계심을 확신하게 됩니다. 오랜 시간 동안 그를 짓눌렀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분노는 점차 희미해져 갔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인생의 драматический 반전은 어머니의 간 이식 수술을 통해 극적으로 드러납니다. 추석 날, 갑자기 쓰러지신 어머니는 간 이식을 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독한 상황이었습니다. 놀랍게도, 과거 아버지에게 상처를 주었던 교회들이 어머니의 수술을 위해 헌금을 보내주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상처를 주었던 곳에서 사랑이 흘러나온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김 목사님은 아버지와 교회에 대한 묵은 감정을 해소하고 진정한 화해**를 이루게 됩니다.
하지만,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2014년, 사랑하는 동생 진규가 이집트 성지 순례 중 테러로 사망하는 끔찍한 비극이 발생합니다. 믿을 수 없는 현실 앞에서 가족들은 큰 슬픔에 잠겼고, 특히 아버지는 극심한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놀랍게도, 아버지는 동생의 죽음을 직감하고 있었고, 뉴스 속보를 보자마자 통곡하며 슬퍼했습니다. 동생의 죽음은 김 목사님 가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지만, 역설적으로 아버지의 숨겨진 사랑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아버지는 예상 밖의 고백을 합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왜 그렇게 맞고 싶다는 것 못하게 했을까?" "삼형제 모두 목사가 된 것이 자랑스러웠는데, 하나님이 한 명을 데려가셨나?" 평생 강압적이고 엄격했던 아버지가 후회와 자책 섞인 진심을 털어놓은 것입니다. 더욱 감동적인 장면은 수목장 때 연출되었습니다. 동생의 유골을 묻으며 아버지는 무릎 꿇고 "목사님 안녕히 가십시오" 라고 작별 인사를 건넨 것입니다. 평생 목사님만 섬기며 살았던 아버지의 애틋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뭉클한 순간이었습니다.
동생의 죽음 이후, 아버지는 놀라운 변화를 보여줍니다. 교회를 떠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아버지는 다시 관리 집사로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밝힙니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슬픔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고 오히려 헌신을 택한 것입니다. 이러한 아버지의 모습은 김 목사님에게 큰 감동과 도전을 주었고, 목회자로서의 사명감을 더욱 굳건히 다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아버지의 헌신적인 모습에 감명받아 개척을 결심하고 목회자의 길로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김 목사님은 아버지의 삶을 통해 진정한 목회자의 자세를 배우고 깨달았습니다. 월남전 참전 중 자신이 쏜 총에 맞아 죽은 베트콩들을 위해 기도했다는 아버지의 고백은 그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요한삼서 1장 2절 말씀처럼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되기를 간구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진정한 영혼 사랑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는 귀한 본보기였습니다. 개척 후, 담임 목사가 된 김 목사님은 비로소 아버지의 기도의 의미를 진정으로 깨닫게 됩니다.
물론, 목회의 길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성도들과의 갈등, 예상치 못한 어려움 속에서 좌절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다단계 회사에 다니던 한 성도와의 갈등은 그에게 큰 시련을 안겨주었습니다. 비난과 오해 속에서 그는 분노와 억울함을 느꼈지만, 영혼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 성도는 교회를 떠났지만, 김 목사님은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가슴 깊이 새길 수 있었습니다.
현재 김 목사님은 아산 뿌리교회를 담임하고 계십니다. "야곱의 뿌리" 라는 성경 구절에서 영감을 얻어 교회 이름을 지었고, 예수 그리스도만을 전하는 교회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특이하게도, 그는 붕어빵을 구워 상가 사장님들에게 나눠주며 관계를 맺고 전도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진심은 통하는 법일까요? 꾸준한 노력 끝에 상가 사장님들이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교회는 점차 성장해 나가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김 목사님은 앞으로 어떤 목회자로 인정받고 싶냐는 질문에 "성도들과 함께 성장하는 목회자, 하나님께 칭찬받는 목회자" 가 되고 싶다고 겸손하게 답했습니다. 파란만장했던 인생 여정 속에서 숱한 상처와 고난을 겪었지만,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 극복하고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된 김진혁 목사님. 그의 진솔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도전을 주며, 진정한 믿음과 사랑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앞으로 아산 뿌리교회가 김 목사님의 기도처럼 아산 지역에 뿌리내리고 성장하는 아름다운 교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