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 목사 설교 핵심 요약: 신앙 고민 해답과 하나님의 열심
신앙 고민 종결: 삶의 답ㅣ박영선 목사의 명쾌한 유튜브 설교 핵심 요약 (새롭게하소서)
"신앙이 있는데도 내 삶은 왜 이러지?" 숨통 트이는 명쾌한 해답: 박영선 원로목사의 깊이 있는 메시지 상세 정리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우리는 새롭게하소서 프로그램에 출연하셔서 깊은 감동과 깨달음을 선사해주신 박영선 원로목사님의 귀한 말씀을 낱낱이 파헤쳐 보겠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는 단순한 위로를 넘어, 삶의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며, 우리의 신앙 여정에 등불과 같은 역할을 해주는데요. 특히, 많은 목회자님들이 목사님의 설교와 저서를 통해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고백할 정도로, 그 영향력은 실로 엄청납니다. 오늘 이 글을 통해 목사님의 깊고 넓은 통찰을 자세히 알아보고, 우리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지혜를 얻어가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잠시 박영선 목사님에 대해 소개해 드릴게요. 목사님은 남포교회의 원로목사님이시며, 깊이 있는 설교와 명쾌한 메시지로 널리 존경받는 분이십니다. 특히, <하나님의 열심> 이라는 저서는 출간 이후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으며, 기독교 서적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출간된 지 오래된 책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도서관에서 대출 경쟁이 치열할 정도라고 하니,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겠죠? 저 또한 목사님의 설교를 직접 들을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 설레고 기대가 됩니다. 자,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목사님의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숨겨진 보석들을 하나하나 발견해 볼까요?
1. "목사님, 평신도 설교는 처음이시죠?" - 솔직하고 진솔한 이야기의 시작
새롭게하소서 진행자의 질문으로 설교가 시작됩니다. "목사님, 평신도 설교는 처음이시죠?" 라는 질문에, 목사님은 "제 말이 너무 많았어요. 굉장히 기네요." 라고 솔직하게 답하십니다. 이 답변에서부터 목사님의 겸손함과 진솔함이 느껴지는데요. 이어지는 진행자의 칭찬에, 목사님은 "이름을 댈 수 없는 분이, 고집으로 저를 이겼습니다." 라며 재치 있는 입담을 과시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유머는 설교를 더욱 친근하게 만들어주고, 청중과의 거리감을 좁히는 역할을 합니다. 사실, 목사님은 방송 출연을 자주 하지 않으시는 분이라고 알려져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롭게하소서에 출연하신 것은, 분명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오늘 녹화에 원래 다른 분이 출연 예정이었으나, 박원 목사님께서 박영선 목사님을 뵙고 싶어 순서를 바꾸셨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녹화 전에 눈물을 계속 흘리셨다는 박원 목사님의 이야기는, 박영선 목사님의 설교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입니다. 특히, 힘든 시간을 겪었을 때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큰 위로와 깨달음을 얻었다는 박원 목사님의 간증은, 목사님의 말씀이 단순한 설교를 넘어,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과 같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목사님의 설교는 어떤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을까요? 이제부터 목사님의 메시지를 자세히 살펴보면서, 그 깊이를 함께 탐험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2. "하나님의 열심" - 도서관 대출 전쟁까지 일으킨 명저의 탄생 비화
진행자는 목사님께 <하나님의 열심> 이라는 책에 대해 소개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 책은 많은 목회자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목회자의 길을 결심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는 간증이 끊이지 않는 명저인데요. 목사님은 <하나님의 열심> 을 쓰게 된 배경을 자신의 성장 과정과 함께 자세히 설명해주십니다. 목사님은 3대째 예수를 믿는 모태신앙으로, 재건파 교회에 속한 가정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재건파는 고신파보다 더 격렬한 배타적 신앙관을 가지고 있으며, 율법적 책임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목사님은 "비난과 정죄만 있는 게 기독교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청소년기와 대학교를 거치면서, 기독교의 본질과 주인되시는 하나님이 무엇을 하시는지, 그리고 인간의 책임은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시작하게 된 것이죠.
목사님은 "내 운명을 하나님이 결정하시는가, 내가 결정하는가?" 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졌다고 합니다. 오랜 고민과 성경 연구 끝에, 하나님이 운명을 결정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 깊은 질문으로 나아갑니다. 바로, "기독교의 시작과 결론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입니다. 목사님은 대부분의 종교는 신에 대한 이해 부족과 신자들의 맹목적인 헌신으로 유지된다고 지적합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다" 라는 속담처럼, 신자가 신에게 정성을 다해 자신의 필요를 보상받으려는 종교관을 갖게 된다는 것이죠. 하지만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강조합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자기 정체성을 선언하시고, 설명하시고, 경험하게 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구약성경을 예시로 들어 설명합니다. 구약을 읽다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그렇게 끊임없이 우상 숭배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목사님은 이러한 현상이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들의 무지 때문이 아니라, "종교관에 대한 이해 부족" 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합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몰라서 우상을 만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하나님이 주시지 않기 때문에, 다른 신에게 눈을 돌렸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원했던 것은 형통, 즉 생각 없이 편안하게 사는 것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들과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 "하나님의 영광의 꽃" 을 만들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3절에서 6절 말씀을 인용하며, 하나님의 계획을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창세 전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예정하시고, 자녀 삼으시기로 계획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도적인 의지와 계획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단순히 복을 받고 영광스러운 결론에 이르는 운명론적인 관점에 머무른다고 지적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열심> 은 이러한 문제 의식에서 출발하여, 기독교 신앙의 본질과 하나님의 주도적인 계획을 명확하게 제시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쓰여진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목사님은 <하나님의 열심> 을 통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전달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다음 챕터에서 더욱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3. "우리가 믿는 신은 목적을 갖고 과정을 가지십니다" - 역사적 신앙관의 중요성
목사님은 "우리가 믿는 신은 목적을 갖고 있고, 그것을 만들기 위해서 과정을 가지십니다." 라고 단언합니다. 이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꿰뚫는 중요한 통찰인데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소원 성취 자판기" 처럼 생각하고, 자신의 필요를 채워주는 존재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목사님은 이러한 종교관을 강력하게 비판하며, 하나님은 단순히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뚜렷한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고 강조합니다. 그 목적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 "하나님의 영광의 꽃" 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일하시고, 우리를 훈련시키시며, 성장시켜 나가십니다.
빌립보서 2장 5절 이하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대표적인 예로 제시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셨고, 그 결과 하나님은 예수님을 지극히 높여 모든 무릎을 꿇게 하시고,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영광은 단순히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과정과 결과를 통해 드러나는 실체라는 것을 설명합니다. 우리는 종종 "얼마나 더 빌어야 하나님이 내 말을 들어주실까?" 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철야 기도, 금식 기도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정성을 다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정성에 감동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계획에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물론,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기도 하지만, 그것은 단지 우리를 훈련시키고 만들어 가시기 위한 과정일 뿐입니다.
목사님은 "은혜를 입었다", "믿음을 가졌다" 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새롭게 정의합니다. 일반적으로 은혜는 "공짜로 주시는 것", 믿음은 "보상" 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목사님은 은혜는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계획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것", 믿음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어떤 법칙이나 보상으로 얽힌 것이 아닌, 가족과 같은 관계" 라고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로 삼으시고, 사랑과 믿음의 관계를 맺기를 원하십니다. 이러한 관계는 자발성을 전제하며, 이해관계나 권력으로 얽힌 관계와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우리는 흔히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고 천국에 간다" 라는 단편적인 구원관에 머무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목사님은 구원은 단순히 천국행 티켓을 얻는 것이 아니라, "출생에서부터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라는 자리까지의 긴 과정" 이라고 강조합니다.
목사님은 "역사적 신앙관" 의 중요성을 역설합니다. 실존적 신앙관은 단지 "예수를 믿고 구원받았다" 라는 출생에 머무르는 신앙인 반면, 역사적 신앙관은 인생과 역사 속에서 반복되는 일상이 우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임을 인식하는 신앙입니다. 매일의 일상은 우리에게 도전을 주고, 시험을 하며, 우리를 성장시키는 하나님의 끊임없는 작업입니다. 이러한 큰 그림을 이해해야 자신이 어디쯤 와 있는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방향은 단순히 길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길을 따라가는 과정 속에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우회전하면 목표에서 벗어난 것 같고, 좌회전하면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 같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길을 따라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우리를 깨우시고 도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한계에 부딪혀 "이게 뭐야? 나는 어떻게 되는 거야?" 라는 질문을 던지지만, 하나님은 정답을 주시는 대신 침묵하십니다. 하지만 낙심하지 않고 눈물을 닦고 다음 날을 맞이하며 나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산등성이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며 자신이 걸어온 길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때 비로소 자신이 등반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신앙은 하나씩 확인해 나가는 여정입니다. 하나님은 늘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침묵 속에서 우리를 훈련시키시고 성장시켜 나가십니다. 그렇다면, 목사님은 어떤 청년 시절을 보내셨을까요? 다음 챕터에서 목사님의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더욱 깊이 들어가 보겠습니다.
4. "저는 절망하고 비명 지르는 청년기를 보냈죠" - 고난과 절망 속에서 피어난 믿음
진행자는 목사님께 청년 시절에 대해 질문합니다. 목사님은 "저는 절망하고 비명 지르는 청년기를 보냈죠." 라고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신앙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청년 시절에는 갖고 있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을 분노하게 했던 것은 "윤리와 도덕을 강조하면서, 왜 굳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했는가?" 라는 의문이었습니다. 맹자와 공자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기독교 신앙이 모든 근심 걱정을 없애준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은 "당신만 하나님께 선택받고 나는 버림받았는가?" 라는 격렬한 질문을 던졌다고 합니다.
목사님은 평양 출신으로, 일사후퇴 때 어머니 등에 엎혀 남한으로 피난 왔다고 합니다. 부유한 가정이었지만, 피난민 생활은 어려움의 연속이었습니다. 50년대 초등학교와 60년대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당시 예수를 믿는 것 외에는 다른 희망이 없었지만, 윤리 도덕적으로 잘 사는 것도, 공부를 잘 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결정적으로, 고등학교 1학년 때 당구를 배우면서 새로운 재능을 발견합니다. 이상하게도 당구를 매우 잘 치게 되었고, 금방 300점을 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왜 이것은 이렇게 잘하게 해 주시고, 원래 묻는 질문에는 답을 안 하시는가?" 라는 의문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목사님은 어떻게 목회를 결심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이상해요. 모든 문이 다쳐요. 그래서 쓸려 내려가게 돼요." 라고 답합니다. 목회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다른 길이 보이지 않아 자연스럽게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신학교에 가서도 분노와 질문은 계속되었습니다. 3시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기도했지만, 기도는 늘 하나님에 대한 분노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목사님은 "하나님이 우리를 뭘 만들고 싶어 하시는가?" 라는 질문에 계속 매달렸습니다. 이 질문은 목사님의 신앙 여정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질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무엇을 만들고 싶어 하시는 걸까요? 다음 챕터에서 목사님의 깊이 있는 답변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5. "하나님은 우리를 조작할 마음이 없어요" - 사랑과 믿음의 대등한 관계
진행자는 기독교를 대표하는 단어로 구원, 영생, 사랑, 순종, 믿음 등을 언급하며, 이 단어들의 의미를 질문합니다. 목사님은 "이거 다 기독교 안에 있는 건데, 그게 뭔지 아무도 몰라요." 라고 도발적인 답변을 던집니다. 이어서 "하나님은 우리를 조작할 마음이 없어요." 라고 강조하며,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명쾌하게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사랑을 하자, 믿음을 가지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사랑과 믿음이 대등한 지위를 가져야만 관계가 성립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상대로 여기시고, 대등한 관계를 맺기를 원하십니다. 그 관계가 바로 사랑과 믿음입니다. 사랑과 믿음은 자발성을 필수적으로 요구하며, 이해관계나 권력으로 얽힌 관계와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상대역으로 만들기 위해 자녀를 기르듯이 우리를 양육하십니다. 아담에게 선악과를 따먹을 권리, 즉 자유의지를 주신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허용하신 것입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탕자가 아버지에게 재산을 요구하고 집을 나가는 것은,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하나님을 떠나는 모습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탕자는 아버지 없는 삶의 허무함을 깨닫고 돌아옵니다. 돌아온 탕자를 기쁘게 맞이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하지만 큰 아들은 탕자의 귀환을 시기하며 불평합니다. 큰 아들은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큰 아들은 단순히 아버지의 종으로 살아왔을 뿐, 아버지를 닮아가는 과정을 거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큰 아들처럼 종이 아니라, 아버지를 닮아가는 자녀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야곱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를 만들어 가시는 과정을 더욱 자세히 설명합니다. 야곱은 태어날 때부터 형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고, 약삭빠르고 꾀가 많은 인물이었습니다. 어머니 리브가와 공모하여 형의 장자권과 아버지 이삭의 축복을 가로채지만, 형의 분노를 사 도망자 신세가 됩니다. 베델에서 하나님을 만나 약속을 받지만, 20년 동안 하나님 없이 자신의 꾀로 악착같이 살아가죠. 결국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의 사자와 밤새 씨름하며 항복합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라고 물으시고, 야곱은 "야곱입니다." 라고 답합니다. "야곱" 은 "약탈자" 라는 뜻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인정하는 야곱에게, 하나님은 새로운 이름 "이스라엘" 을 주십니다. "이스라엘" 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 라는 뜻입니다. 이는 야곱이 더 이상 고아처럼 남에게서 뺏어 살 필요가 없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당하게 살아가라는 선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스라엘" 로 만들고자 하십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자신이 하고 싶고, 필요하다고 느끼는 가치와 소원들을 겪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진정한 답이 아님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과정이 우리에게는 고난으로 느껴집니다. 억울함, 원망, 절망과 자폭까지 경험하게 되지만,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훈련 과정입니다. 우리는 종종 "요것만 해주시면 다시는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착하게 살 테니까 놔둬주세요." 라고 기도하지만, 이것은 우상 숭배와 다름이 없습니다. 우상은 자신의 필요를 채워주는 신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서에서 하나님은 우상을 만드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조롱하십니다. 나무를 잘라 절반은 밥을 해 먹고, 나머지 절반은 깎아 눈과 입을 그려놓고 신이라고 숭배하는 행위를 비판하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소원을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공부 잘하게 해주세요, 건강하게 해주세요 등 자신의 필요를 구하는 기도가 주를 이루고,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기도하기 때문에, 신앙의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순교에 대한 목사님의 생각은 어떠할까요? 다음 챕터에서 순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알아보겠습니다.
6. "죽는 것은 그다음이 없잖아요" - 순교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삶의 중요성
진행자는 목사님이 순교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으신다는 이야기를 꺼냅니다. 목사님은 "죽는다는 것은 굉장한 신앙의 증거가 됩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건 목숨보다 크구나 라는 거지만, 죽는 것은 그다음이 없잖아요." 라고 답변합니다. 순교는 분명 숭고한 희생이지만, 죽음은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살아있어서 그다음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죽음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으며, 순교로 지켜진 신앙은 그다음을 살아내야 진정한 의미를 갖습니다. 죽음은 하나의 씨앗과 같습니다. 씨앗이 땅에 떨어져 썩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듯이, 순교는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과정일 수 있지만, 삶을 통해 그 열매를 맺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라는 말로 유명한 에스더를 예시로 듭니다. 에스더는 죽음을 각오하고 왕에게 나아가 민족을 구원했지만, 만약 순교했다면 그다음은 없었을 것입니다. 살아있었기 때문에 민족을 구원하고 역사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살아서 배신과 수치와 못난 것 속에서 하나님이 뭘 만들어가는가를 따라가라는 게 믿음이죠." 라고 강조합니다. 삶 속에서 겪는 고난과 실패는 단순히 부정적인 경험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만들어 가시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종종 모든 문제가 없어지고, 마음의 평화가 오는 것을 바라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조차 "아버지여, 하실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물리쳐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셨지만, 십자가의 고난을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는 절규 속에서 부활의 소망을 품으셨습니다. 우리도 부족해 보이고 지는 것 같은 삶 속에서 하나님이 준비하신 부활을 기대해야 합니다.
목사님은 "우리는 늘 그 모든 문제가 없어지는 상태, 그런 모든 자책이 없는 존재가 되려고 하는 바람에 올챙이가 매기만큼 커져 가지고 눈바닥에 누워 있고 개구리가 안 되는 거와 같다." 라는 비유를 통해 우리의 잘못된 신앙관을 지적합니다.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고 완전무결한 존재가 되려고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개구리로 만드시기 위해 훈련시키십니다. 순교가 싫어진 이유는, 순교가 순교로 지켜진 신앙 다음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순교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으며, 순교로 증명한 복음은 무엇을 만들려고 한 것이었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열매가 되어 꽃을 피워야 하지만, 죽는 일에만 집착하는 잘못을 범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순교자 이야기가 설교의 주된 내용이었지만, 성경 본문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단순히 순교를 강조하는 것은 잘못된 설교라고 비판합니다. 순교자들은 그 시대의 증인이지만, 우리는 그들의 희생을 딛고 그다음을 살아내야 합니다.
한국교회에 부흥이 왔지만, 그 부흥은 우리가 원했던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조용기 목사님은 부흥을 달라고 기도하지 않고, 병 낫게 해 주시고 굶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을 뿐인데, 부흥이 왔습니다. 하지만 부흥 이후, "기도를 굶지 않고 병 낫게 해주세요를 해도 이만큼 됐으면, 비전을 가지고 크게 기도를 하면 몇백 배나 되겠느냐?" 라는 잘못된 공식이 생겨났습니다. 다행히 그 공식은 실패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기도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의 꽃" 을 만들고자 하시며, 각 개인의 지위와 신분, 결론에서 하나님의 상대역을 만들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은 우리의 기대와는 너무 달라서, "그것까지 안 해주셔도 좋으니까, 그저 오늘 생각 없이 살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바벨론에 넘기셔서 권력의 끝, 승리의 끝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셨습니다. 바벨론에는 정신적, 영혼에 관한 내용이 전혀 없고, 폭력만 가득했습니다. 바벨론 포로는 단순한 형벌이 아니라, 우리의 소원의 끝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그렇다면, 구원 이후의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다음 챕터에서 구원 이후의 삶에 대한 목사님의 통찰을 살펴보겠습니다.
7. "구원 그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 존재와 지위의 변화, 그리고 성화의 여정
진행자는 구원 이후의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구원은 신분의 변화, 운명의 변화, 하나님과의 관계 변화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구원을 죄사함받고 천국 가는 것으로만 단편적으로 이해합니다. 목사님은 구원은 단순히 천국행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 믿음의 대상으로 요구해서 에베소서 1장 3절에서 6절 같이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것과 우리를 그 자녀로 삼는 거져 주시는 이 은혜의 영광의 자리에 가자는 싸움을 살아야 되는 것" 이라고 정의합니다. 구원은 목적지가 아니라, 여정입니다. 죄사함받는 것은 구원의 시작일 뿐이며, 그다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가 더욱 중요합니다. 단순히 착하게 사는 것이나 기능적인 역할을 하는 것보다, 존재와 지위, 신분에 있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디까지 요구하고 계시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어디로 인도되고 있는지 아는 차원에 가야 하나님과 대화하고 동행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 그 이후" 의 삶입니다.
진행자는 잘잘법에서 고난 이야기에 은혜를 받았다는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힘겨운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성장합니다. 목사님은 고난을 "자신의 실력을 알아야 하는 과정" 이라고 설명합니다. 축구 경기에서 슈팅 찬스가 왔는데 엉뚱한 곳으로 공이 날아갔다면, 좌절하고 울고 있을 것이 아니라, 연습을 해야 합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연습해야 실력이 향상됩니다. 성화는 도덕적으로 흠이 없는 완전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라나고 성장하는 과정입니다. 회개만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딛고 일어서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의 인격체로 키우시기 위해 이 모든 세상을 아직 기다려 주시는 것입니다. 실패는 실패가 아니라, 연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유능하게 쓰이는 것을 바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만들어 가시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가 괜찮아지면 데려가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만들어 가시는 과정 자체가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진행자는 역대하 16장 9절 말씀을 인용하며,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라는 말씀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고 고백합니다. 목사님처럼 전심으로 하나님을 향할 때, 하나님께서 무한한 능력을 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중간이 없고, 끊임없이 하나님께 질문하고 구하고 찾고 두드리고, 넘어지고 실패하고 무너져 봐야, 하나님 앞에 어떻게 해야 영광의 꽃이 될 수 있는지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호세아 말씀을 인용하며, 하나님은 번제와 제사보다 하나님 아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말씀을 통해, 날마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진행자는 "나이에 맞는 사람이 되고 싶다." 라는 소망을 밝히며, 평신도 설교를 통해 큰 은혜를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또 다른 진행자는 목사님 설교와 저서를 통해 은혜를 받았지만, 항상 전체를 다 읽으려는 신앙의 근육을 키워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한 부분만 가지고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잘못된 신앙생활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열심히 일하실 수 있도록 자신의 힘을 빼야 한다는 말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아무 노력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것은 잘못된 태도입니다. 목사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와 주권을 붙잡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까지 가고자 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진행자는 목사님의 건강을 기원하며, 오래오래 한국교회 미래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많은 책을 써주시기를 부탁합니다. 목사님은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며, 건강하게 오래오래 활동하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대화들과 이런 주제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정말 복됩니다. 저는 이걸 할 수가 없었어요. 대화가 아예 되지 않았어요." 라는 말을 통해, 오늘 새롭게하소서 프로그램 출연에 대한 감사와 기쁨**을 표현하며 설교를 마무리합니다.
오늘 우리는 박영선 원로목사님의 귀한 말씀을 통해 신앙의 깊이를 더하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는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삶의 지혜와 방향을 제시하며,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는 힘이 있습니다. 오늘 이 글을 통해 목사님의 메시지를 다시 한번 되새기고,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며, 더욱 성숙한 신앙인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