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면가왕 가면 제작 비화와 김유안 디렉터의 믿음·인생 이야기
복면가왕 가면 탄생 비화: 믿음과 헌신으로 빚은 인생 역경 극복기
복면가왕 가면 제작 비화: 김유안 스타일 디렉터의 믿음과 헌신, 그리고 삶의 이야기
오늘 우리는 특별한 분을 모시고 그의 놀라운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바로 유한컴퍼니의 김유안 스타일 디렉터이신데요. 그는 스타일 디렉터로서 방송계, 연예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특히 우리에게 친숙한 '복면가왕' 가면을 최초로 제작하신 분입니다. 이 놀라운 업적 뒤에는 단순한 디자인 영감 이상의 깊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고 하는데요. 오늘 김유안 디렉터님을 모시고 복면가왕 가면 제작 비화와 함께 그의 삶과 신앙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스타일 디렉터라는 직업은 대중에게 다소 생소할 수 있습니다. 방송인, 연예인들의 스타일링을 담당하는 전문가라고 보시면 되는데요. 예를 들어, 방송에서 캐릭터가 중요한 연예인들의 장점을 부각시키고 개성을 살리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과거 '싼티' 콘셉트로 유명했던 방송인 유세윤 씨의 경우, MC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김유안 디렉터의 스타일링 도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강심장 출연 당시, 세련된 수트 스타일링을 통해 MC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변신시켰고, 이후 MC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게 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처럼 스타일 디렉터는 단순히 옷을 입히는 것을 넘어, 이미지 메이킹을 통해 개인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그런 그가 복면가왕의 상징, 가면을 만들게 된 계기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지금부터 그 비하인드 스토리를 자세히 들어보시죠. 때는 바야흐로, 김유안 디렉터가 아내와 부산 출장 중 주일 예배를 드리기 위해 수영로교회를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예배 시작 전, 아내에게 "예배 끝날 때까지 디자인 영감이 떠오르지 않으면 사고 쳐야겠다"는 농담 섞인 말을 건넸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배가 시작되자마자 네오플랜 소재와 최초의 가면 디자인 형틀이 머릿속에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고 합니다. 마치 신의 계시처럼 말이죠.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영감이 떠오른 소재, 네오플랜이었다는 점입니다. 네오플랜은 잠수복이나 스포츠 의류에 주로 사용되는 소재로, 평소 가면 제작에 사용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순간, 네오플랜 소재를 겹쳐 찍찍이(벨크로)로 고정하면 가면이 되겠다는 아이디어가 섬광처럼 떠올랐고, 그는 교회 주보에 즉석에서 디자인 스케치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아내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이루어졌다고 하니, 정말 기적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김유안 디렉터는 이 순간을 회상하며 "하나님이 하셨다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 평소 예배 중에 영감을 받는 스타일도 아니었기에 더욱 놀라운 경험이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탄생한 가면 디자인 초안을 들고 MBC '복면가왕' 팀과의 첫 미팅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디자인은 아직 구체화되지 않은, 검은색 네오플랜을 재단하여 투구 모양으로 만든 형태였다고 합니다. 지금 보면 다소 기괴하게 느껴질 수 있는 모습이었지만, 가면의 기본 틀을 제시한 것이었죠. 가면 디자인 초안을 본 MBC 관계자들은 일제히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정적에 휩싸였다고 합니다. "이런 가면은 처음 본다"는 반응과 함께, "대박", "너무 잘 만들었다"는 극찬이 쏟아졌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서 가면 디자인은 강렬한 꿀벌, 뱀파이어, 붉은 악마 등 다양한 콘셉트로 구체화되었고, 복면가왕은 마침내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순탄대로만 흘러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복면가왕이 방송되던 어느 날, 현장 디자이너로부터 "가면 디자인을 강렬하게 바꿔달라"는 요청을 받게 됩니다. 기존의 부드러운 이미지에서 벗어나 뱀파이어, 붉은 악마와 같은 강렬하고 자극적인 디자인을 원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김유안 디렉터는 이러한 요구가 회사의 이미지와 맞지 않다고 판단했고, "못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MBC 측과의 갈등이 심화되었고, 신앙적인 고민까지 더해져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에게 있어 복면가왕 가면은 단순한 사업 아이템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가면 디자인을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했고, 그 선물에 자신의 욕심이나 세상적인 타협으로 '먹칠'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그는 이 문제에 대해 깊이 기도했지만, 어떠한 응답도, 감동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만둬라", "계속 진행해라" 와 같은 명확한 메시지를 기대했지만, 침묵만이 감돌았다고 합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판단에 따라 "못하겠다"는 결론을 내렸고, MBC에 통보했습니다. 당시 복면가왕 가면을 대체할 업체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기에, MBC 측에서도 당황했지만, 어쩔 수 없이 그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 며칠 뒤, MBC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많이 힘드시죠?" 라는 PD의 질문에 김유안 디렉터는 "힘들다"고 솔직하게 답했고, PD는 "그렇다면 디자인을 반반씩 나누어 다른 디자이너와 함께 작업하는 것은 어떻겠냐"고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김유안 디렉터는 "한 화면에 두 명의 디자인이 나오는 것은 맞지 않다"며 "그만두겠다"는 뜻을 다시 한번 밝혔습니다. 그러자 PD는 기다렸다는 듯이 "알겠다"고 답했고, 곧바로 다른 디자이너로 대체되었습니다. 김유안 디렉터는 PD에게 "가면 디자인은 나의 선물과 같은 것이니, 다른 디자이너는 다른 디자인으로 새롭게 시작해달라"고 부탁했고, PD는 흔쾌히 동의했다고 합니다.
이 모든 과정이 끝난 후, 김유안 디렉터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고 합니다. 자신이 만든 가면이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섭섭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홀가분함과 후련함을 느꼈다고 합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니라면서도 왜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라는 생각과 함께, 스스로에 대한 웃음과 안도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이 경험을 통해 그는 신앙적인 양심을 지키기 위해 세상적인 이익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아가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김유안 디렉터는 이전부터 확고한 믿음 생활을 해왔던 것일까요? 이에 대한 그의 답변은 다소 의외였습니다. 그는 자신을 '포도밭 두 아들 비유'에 나오는 둘째 아들과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싫다"고 대답했지만 결국 포도밭에 가서 일한 둘째 아들처럼, 자신 또한 하나님의 일을 억지로, 마지못해 하는 경향이 있다고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을 기쁨으로, 즐겁게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그는 솔직히 공감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자신은 경건한 사람도 아니고, 하고 싶은 일도 많고, 쉬고 싶기도 한 평범한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삶 속에서 끊임없이 신앙적인 도전을 받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의 인생 여정은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특히 장모님의 의료사고는 그의 신앙관에 큰 영향을 미친 사건 중 하나입니다. 건강하셨던 장모님이 두통으로 검진을 받던 중 뇌동맥류를 발견하게 되었고, 간단한 수술로 제거할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합니다. 2시간이면 끝나는 간단한 수술이었기에 가족들은 안심하고 수술을 기다렸지만, 10시간이 넘도록 수술은 끝나지 않았고, 결국 의료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수술 중 뇌동맥류가 터져 장모님은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당시 김유안 디렉터는 큰 충격과 분노에 휩싸였습니다. 멀쩡하게 수술실에 들어가신 장모님이 의식불명 상태로 나오셨으니, 그 심정을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특히 의료진은 "자신들의 과실은 없다, 수술은 잘 되었지만 사고는 불가항력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이에 김유안 디렉터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병원 전체를 뒤집어엎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고 합니다. "간호사들을 때려 부수고, 병원을 원상 복귀시키라"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다고 하니, 당시 그의 분노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노에 휩싸여 병원을 찾은 그는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장모님이 계신 처치실로 향한 그는 장모님의 손을 잡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제발 이 상황을 부끄럽게 만들지 말아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며, 크리스천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상황을 지혜롭게 헤쳐나가게 해달라고 간구했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기도하는 동안 분노와 격정을 억누르고 평정심을 되찾았고, 그 어떤 의료진에게도 항의하거나 소리치지 않았습니다. 오직 장모님의 손을 잡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했을 뿐입니다.
다음 날 아침,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소식을 듣고 올라온 장인어른에게 병원장이 무릎을 꿇고 사과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입니다. 병원장은 장모님 앞에서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치료가 완료될 때까지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김유안 디렉터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합니다. "어떤 힘 있는 사람이 뒤를 봐준다고 해도 병원장이 환자 앞에서 무릎 꿇고 사과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며, 눈물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푸셨다고 확신합니다. 당시 장인어른을 비롯한 처가 식구들은 언론에 알리고 법적 대응을 하려 했지만, 김유안 디렉터는 "기도하자"며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자고 설득했습니다. 병원 로비에서 휘발유를 뿌려 분신하는 사건도 종종 발생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세상적인 방법이 아닌, 오직 기도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물론 기도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기도했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변화는 없었고, 오히려 상황은 더욱 악화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믿음이 흔들리고 불안감이 엄습해왔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새벽마다 교회를 찾아 기도했습니다. 아내와의 갈등도 있었지만, 그는 묵묵히 인내하며 기도했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장모님은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하셨고,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호전되셨습니다.
하지만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장모님 의료사고 이후, 장인어른에게 췌장암이 발병한 것입니다. 잇따른 고난에 김유안 디렉터는 절망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나는 걸까?" 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되뇌며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특히 외동딸인 아내를 생각하며 더욱 마음이 무거웠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장인어른을 위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주말마다 창원에 내려가 장인어른을 위로하고 예배를 함께 드렸습니다.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서울역으로 향하고, 기차를 타고 창원까지 내려가는 고된 여정이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매주 창원을 방문했습니다.
그의 헌신적인 모습은 창원 상남교회 교인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교회는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장인어른을 위한 기도와 심방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결국 장인어른은 상남교회에서 영접기도를 드리고 하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병세는 악화되었고, 의사로부터 "3주밖에 남지 않았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됩니다. 호전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기에, 갑작스러운 사망宣告는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왜 희망고문을 했냐"며 의사에게 원망하기도 했지만, 곧 현실을 받아들이고 마지막 순간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가장 큰 걱정은 장인어른이 하나님을 부정할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동안 쏟았던 노력과 시간이 헛되이 될까 봐, 마지막 순간에 믿음을 잃어버릴까 봐 노심초사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용기를 내어 장인어른에게 "하나님이 아버지를 많이 사랑하셔서 빨리 보고 싶어 하시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장인어른은 "네가 그랬잖아. 하나님이 내 목숨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 것이라고"라며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 순간, 김유안 디렉터는 그동안의 기도가 헛되지 않았음을, 장인어른의 믿음이 굳건하게 자리 잡았음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병간호로 지쳐있거나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마음에 즐거움과 기쁨이 없을 수 있지만,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며, 자신 또한 힘든 시간들을 겪었지만, 하나님께서 그 모든 과정 속에서 함께 하셨다고 간증했습니다. 장인어른은 의사의 3주 시한부宣告 후 정확히 3주 뒤에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임종 직전에는 상남교회 이민석 부목사님의 기도를 받으며 평안하게 눈을 감으셨다고 합니다. 돌아가신 후 모습은 평온했고, 마치 축복받은 사람처럼 평안한 모습이었다고 김유안 디렉터는 회상합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부족하고 연약한 자신을 통해 장인어른을 만나주셨고, 구원의 통로로 사용하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고난은 크리스천에게 축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왜 고난이 닥쳐왔는지 'Why'를 묻고 자책하며 괴로워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안수집사이고 열심히 신앙생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김유안 디렉터에게도 끊임없는 고난과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그는 고난 속에서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했고, 믿음으로 이겨내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병원은 여전히 보기 싫고, 떠올리기조차 싫다고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그런 그가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모든 것을 그만두고 싶고, 하나님을 팽개치고 싶을 만큼 힘든 상황이었지만, 그는 주토코(주님을 토크하는 코이노니아)라는 봉사단체를 조직하여 청소년 쉼터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나사로"라는 청소년 쉼터에서 프로듀서 지인의 권유로 봉사를 시작하게 되었고, 봉사팀 모집 글을 올리자 2~3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 의사를 밝혔습니다. 봉사 내용은 아이들이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을 준비해주고, CCM 가수를 섭외하여 찬양을 들려주고, 일대일로 아이들과 소통하며 노래를 불러주는 것이었습니다. 쉼터 내에서는 직접적인 복음 전파가 금지되어 있었지만, 외부 봉사자로서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쉼터 아이들은 대부분 상처 입고 소외된 아이들이었습니다. 계부에게 학대당해 이가 부러진 채 도망쳐 온 아이, 문신을 하고 거리를 방황하던 문제아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김유안 디렉터와 봉사팀은 따뜻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했고, 진심으로 소통하며 사랑을 전했습니다. 특히 노래에 재능 있는 한 아이를 발견하고 교회 강성훈 집사님(해바라기)에게 보컬 트레이닝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왔고, 그 아이는 CCM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봉사활동을 통해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되찾았습니다. 복면가왕을 그만둔 것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이 남아있었지만, 봉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일하고 계심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회사로 빵이 배달되었는데, 발신인은 자신이 과거 간증했던 방송을 보고 동성애 관련 포스터 제작을 거부하고 회사에 사표를 제출하려던 웹디자이너 자매였습니다. 자신의 간증이 한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고 용기를 주었다는 사실에 큰 위로와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나의 작은 영향력으로 한 사람이라도 변화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봉사활동을 통해 삶의 방향을 다시 설정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김유안 디렉터에게 앞으로의 비전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과거에는 비전에 대한 확고한 계획이 있었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다고 솔직하게 답했습니다. "계획대로 되는 것이 인생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앞으로의 삶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보다는 "직업과 상관없이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습니다. "준비하고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싫지만 해야 할 일, 불편하지만 감당해야 할 일들을 묵묵히 해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온 것 또한, 망설였지만 결국 순종하여 나온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는 겸손하게 자신을 '잘난 척하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사람'이라고 소개했지만, 그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과 울림을 주었습니다. 솔직하고 담백한 그의 이야기는 가식 없이 진솔한 크리스천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삶 속에서 겪는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삶의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라"는 성경 말씀처럼, 김유안 디렉터는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순종하며 진정한 구원의 기쁨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황교정 님은 김유안 디렉터의 이야기를 들으며 '숫자 1'과 연관이 많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1%의 확률을 뚫고 의료사고에서 회복된 장모님, 한 명의 청소년을 변화시킨 봉사활동, 한 명의 웹디자이너에게 용기를 준 간증 등, 그의 삶은 '한 명'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듯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황교정 님은 "앞으로도 한 명을 살리는 일에 앞장서 주시길 부탁드린다"며 김유안 디렉터를 응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김유안 디렉터는 찬양 '주가 일하시네'를 언급하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했습니다.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끊임없이 일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만사형통이 고난 이후에 주어지는 축복임을 강조했습니다. 고난이 없었다면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몰랐을 것이고, 주님이 일하시는 것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고백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쉬지 않고 일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내키지는 않지만 하나님이 보내신 곳에서 쓰임 받는 삶을 살겠다는 다짐과 함께 인터뷰를 마무리했습니다. 오늘 김유안 디렉터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큰 울림과 도전을 주었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그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