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장로 간증: 하나님의 은혜와 찬양 사역, 생명의 기적
박종호 장로, 죽음에서 삶으로: '하나님의 은혜' 신앙 고백
박종호 장로, 복음성가 사역의 시작과 예수전도단과의 인연
오늘날 한국 CCM계의 거목이자, 수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과 은혜를 선사하는 찬양 사역자 박종호 장로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그는 어떻게 찬양 사역자의 길을 걷게 되었을까요? 그 시작점에는 바로 예수전도단(YWAM)과의 운명적인 만남이 있었습니다. 대학교 4학년,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 예수님을 깊이 만나면서 그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게 됩니다. "예수가 진짜였다"라는 강렬한 깨달음은 그를 새로운 삶으로 인도했고, 예수전도단 구세군에서의 예배 경험은 그의 신앙 여정에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됩니다.
당시 예배는 그가 익숙했던 교회 예배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기타 연주와 함께 자유롭게 찬양하고, 뜨겁게 기도하는 모습은 그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라"는 말씀처럼, 6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예배드리는 모습은 그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그는 예수전도단과 인연을 맺게 되었고, 조성환 목사와의 만남은 찬양 사역의 문을 열어주는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조 목사의 제안으로 예수전도단 앨범에 참여하게 되면서, 박종호 장로는 찬양 사역자로서의 첫 발을 내딛게 된 것입니다.
복음성가 경연대회 참가와 찬양 사역의 길
예수전도단에서의 만남은 박종호 장로의 인생을 찬양 사역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예배의 기쁨에 푹 빠져 살아가던 그는 복음성가 경연대회에 참가하게 되는데, 이는 그의 찬양 사역에 또 다른 전환점이 됩니다. 사실 그는 원래 오페라 가수를 꿈꾸던 성악가였습니다. 복음성가 경연대회는 그에게는 전혀 예상치 못한 무대였던 것입니다. 경연대회 당시, 전국에서 모인 수많은 중고등학생들 앞에서 그는 당황스러움을 느꼈다고 합니다. "내가 나갈 자리가 아닌 것 같은데..." 라는 생각도 잠시 스쳤지만, 이미 무대에 오른 이상 피할 수 없었습니다.
최덕신 작곡가의 곡으로 경연에 참가한 그는, 특유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찬양을 불렀습니다. 놀랍게도,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이 뜻밖의 수상은 그에게 깊은 고민을 안겨주었습니다. "나, 하나님만 노래하고 싶다..." 그는 세상적인 성공과 안락함 대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찬양 사역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합니다. 물론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그의 아내는 그의 결정을 지지해주었고, 이후 "박종호 1집 - 살아계신 하나님" 앨범을 발매하며 본격적인 찬양 사역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 앨범에는 "살아계신 하나님", "여호와 우리 주여" 등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는 주옥같은 찬양들이 담겨 있습니다.
사역의 어려움과 미국 유학길, 그리고 뇌졸중 발병
찬양 사역의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은 물론, 사람들의 비판과 오해에 부딪히기도 했습니다. "교만하다", "비싸다" 라는 비난은 그를 힘들게 했고, 큰 공연 위주로 활동하다 보니 재정적인 어려움은 더욱 가중되었습니다. 심지어 그는 교회에서 찬양 요청이 와도 거절했던 적이 있다고 합니다. 세상적인 명예와 성공에 대한 유혹도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습니다. 이러한 갈등 속에서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고, "나는 복음성가 가수로서만 있어야 되나?"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곤 했습니다.
결국 그는 1999년 세종문화회관 고별 콘서트를 통해 새로운 도전을 결심합니다. 더욱 발전된 음악적 역량을 쌓기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오르기로 한 것입니다. 늦은 나이에, 가족과 함께 미국 뉴욕으로 떠난 그는 오페라 가수의 꿈을 다시 한번 펼쳐보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앞길에는 또 다른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미국 유학 생활 중 갑작스럽게 뇌졸중으로 쓰러진 것입니다. 영하 7도의 추운 날씨 속에서, 그는 극심한 고통과 죽음의 공포를 느껴야 했습니다. 뇌출혈로 2년 6개월 동안 투병하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그는 절망감에 휩싸였습니다. "나, 여기서 이렇게 끝나는 건가..."
죽음의 문턱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은혜' 탄생 비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순간, 박종호 장로는 깊은 절망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갈구했습니다. 놀랍게도, 뇌졸중은 뇌출혈이 아닌 일시적인 혈관 막힘으로 밝혀졌고, 그는 기적적으로 의식을 회복하게 됩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살아난 그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깊은 회개를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껄떡대고 까불었다..." 세상적인 욕심과 교만함으로 가득했던 자신을 뉘우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습니다. 이때, 중앙아시아 선교사로 파송된 조은아 선교사와의 만남은 그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되었습니다.
조 선교사와의 대화를 통해 그는 자신의 고난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 만남은, 오늘날 수많은 교회에서 불려지는 찬양 "하나님의 은혜" 탄생의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조은아 선교사가 가사를 쓰고, 故 신상우 씨가 곡을 붙인 "하나님의 은혜"는, 박종호 장로의 간증과 함께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과 은혜를 선사하고 있습니다. 이 찬양은 그의 삶의 고백이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증거하는 살아있는 메시지가 되었습니다. 그는 뇌졸중을 통해 죽음의 문턱까지 경험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살아났고, 더욱 깊어진 믿음과 찬양으로 사역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됩니다.
간암 발병과 두 딸의 헌신적인 간 이식, 그리고 새로운 삶
뇌졸중을 극복하고 다시 찬양 사역을 이어가던 박종호 장로에게 또 다시 예상치 못한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2017년, 건강검진에서 간암 진단을 받은 것입니다. 이미 간경화로 간이 심각하게 손상된 상태였고, 간암 수술조차 불가능했습니다. 유일한 희망은 간 이식뿐이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습니다. 뚱뚱한 체격 때문에 일반적인 간 이식 수술로는 생존 가능성이 희박했던 것입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그는 다시 한번 죽음의 그림자를 느껴야 했습니다. "또 다시 죽음인가..."
하지만 기적은 다시 한번 일어났습니다. 전 세계에 단 한 명뿐인, 2대1 생체 간 이식 수술의 권위자 이승규 박사와의 만남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두 딸 지온, 주원 자매가 아버지에게 간을 이식해주기로 헌신한 것입니다. 두 딸은 각각 간의 일부를 떼어 아버지에게 이식하는, 생명을 건 헌신을 보여주었습니다. 14시간에 걸친 대수술 끝에, 박종호 장로는 기적적으로 간 이식 수술에 성공하고 새로운 삶을 얻게 됩니다. 두 딸의 헌신적인 사랑은, 그의 생명을 살렸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깊은 감동과 감사, 그리고 새로운 사명을 안겨주었습니다.
수술 후 무균실에서 깨어난 그는, 어릴 적 불렀던 찬양 "주는 평화"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 그를 위로하고 평안을 주었던 찬양, "주는 평화 막힌 담을 모두 헐었네..." 그는 다시 한번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깊이 체험하며,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로 다짐합니다. 두 딸의 사랑과 헌신, 그리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는, 그에게 '제 2의 인생'을 선물한 것입니다.
선교 후원 사역과 '하나님의 광대'로서의 사명
간 이식 수술 후 건강을 회복한 박종호 장로는, 이전보다 더욱 활발하게 찬양 사역과 선교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특히 그는 과거 미국에서 경험했던 선교 후원 사역을 더욱 확장하여,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선교사들을 돕는 일에 힘쓰고 있습니다. 미국 시골 마을을 순회하며 집회를 통해 모은 헌금을, 전 세계 선교지에 보내는 사역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역을 '하나님의 광대'라고 표현합니다. 기쁨과 슬픔, 웃음과 눈물이 공존하는 인생, 그는 찬양과 간증을 통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고,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광대'의 역할을 자처합니다.
그는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선교 후원 사역을 시작하여, 수십억 원에 달하는 후원금을 전 세계 선교지에 전달했습니다. 특히 아프리카 에이즈 고아들을 위한 고아원 설립, 병원 건립 등을 지원하며, 실질적인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에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가 이렇게 많은 돈을 선교지에 보내면서도, 정작 자신은 간암 수술비를 마련하기 어려웠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굳건한 믿음으로 사역에 매진했습니다.
그의 간암 투병 소식이 알려지자, 전국에서 따뜻한 손길이 이어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금 운동에 참여하여 그의 수술비를 마련해주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그는, 자신이 결코 혼자가 아니며,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기도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는 앞으로도 '하나님의 광대'로서, 세상 곳곳을 누비며 찬양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전하는 사명을 감당할 것입니다.
결론: 깊은 신앙 고백과 앞으로의 사역
박종호 장로님의 삶은, 한 편의 드라마와 같습니다. 파란만장한 인생 여정 속에서 그는 수많은 시련과 고난을 겪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건한 믿음과 긍정적인 자세를 잃지 않았습니다. 두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그는 더욱 깊어진 신앙과 성숙한 인격을 갖게 되었고, 찬양 사역자로서, 그리고 '하나님의 광대'로서, 더욱 귀한 열매를 맺어가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간증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며,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면, 반드시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또한 두 딸의 헌신적인 사랑은, 가족의 소중함과 사랑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줍니다. 앞으로도 박종호 장로님은, 찬양과 간증을 통해 수많은 영혼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전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귀한 사역을 감당할 것입니다. 그의 삶은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도전을 주며, 진정한 믿음의 길을 걷도록 이끌어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