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리 30년 약사 이미선의 헌신과 희망, 사회복지 이야기
미아리 30년, 빚, 화재... 고난 속에서 피어난 희망: 약사 이미선의 헌신
고난의 시간을 견뎌낸 이야기: 미아리에서 희망을 심는 이미선 약사의 삶
오늘 우리는 특별한 분의 이야기를 통해 깊은 감동과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바로 건강한 약국을 운영하며, 동시에 소외된 이웃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고 있는 이미선 약사님의 이야기인데요. 이미선 약사님은 단순히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가 아니라,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분입니다. 특히 그녀가 오랜 시간 봉사해 온 곳은 다름 아닌 성북구 하월곡동, 과거 미아리 텍사스라 불렸던 성매매 집결지 인근입니다. 이 지역은 재개발을 앞두고 저소득층, 노인, 외국인 노동자들이 거주하는 곳과 성매매 집결지가 공존하는, 다소 특별한 공간인데요.
약사님은 이곳에서 30년 넘게 약국을 운영하며, 다양한 어려움과 마주해 왔습니다. 종종 발생하는 취객들의 소란, 처방전 없이 비아그라를 요구하는 황당한 손님들, 심지어 폭력적인 상황까지 겪으면서도 꿋꿋이 약국을 지켜왔습니다. 그녀는 이러한 경험들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면서도, 그 속에서 겪었던 고충과 위험했던 순간들을 솔직하게 이야기합니다. 특히 잦은 112 신고 출동은 그녀의 약국이 겪는 일상적인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인데요. 이러한 에피소드들을 통해 우리는 약사님이 얼마나 험난한 환경 속에서 약국을 운영해 왔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약사님이 이토록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약국을 떠나지 못했던 이유는 단순히 경제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이혼 후 빚더미에 시달리며 힘겹게 서울 생활을 시작했고, 친정인 하월곡동으로 돌아와 약국을 개업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건물주였던 친구 어머니의 도움으로 월세 부담 없이 약국을 시작할 수 있었지만, 빚을 갚고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약국을 찾는 사람들, 특히 성매매 여성들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삶의 방향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특히 1990년대 후반, 약국을 찾았던 어린 성매매 여성과의 만남은 약사님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피임약 복용법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던 어린 소녀의 순수함과 안타까움은 그녀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당시 청소년 휴대폰 요금 폭탄 문제로 빚 때문에 집을 나와 성매매를 시작하게 된 소녀의 이야기는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었는데요. 약사님은 소녀에게 따뜻한 위로와 함께 현실적인 조언을 건네며, 그녀가 이 험난한 곳에서 벗어나도록 진심으로 돕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늪과 같은 현실은 소녀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약사님은 10년이 넘는 빚과의 싸움 속에서도 꾸준히 교회에 다니며 신앙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던 중 외국인 노동자 상담 센터를 운영하는 선배의 부탁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미얀마 노동자들을 돕게 되면서, 나눔의 기쁨을 처음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자신도 힘든 상황 속에서도 타인을 돕는 과정에서 오히려 큰 위로와 행복을 얻게 된 것인데요. 특히 미얀마 노동자들이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갓 블레스 유"를 외치는 모습은 그녀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이 경험은 이후 그녀가 본격적으로 사회복지 분야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5년 약국 앞에서 발생한 성매매 업소 화재 사건은 약사님에게 또 다른 충격과 슬픔을 안겨주었습니다. 화재로 다섯 명의 여성이 목숨을 잃었고, 그 중에는 약사님과 친분이 있던 젊은 여성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고아로 자라 남편의 폭력과 가난 때문에 성매매를 시작했지만, 딸을 위해 1억 원을 모으려 했던 그녀의 안타까운 사연은 약사님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약사님은 성매매 여성들의 현실을 세상에 알리고, 그들을 돕기 위한 적극적인 활동을 결심하게 됩니다.
이후 약사님은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본격적으로 상담과 사회복지 활동에 뛰어들었습니다. 50이 넘는 나이에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녀는 굳은 의지로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사회복지사가 된 이후 그녀는 성매매 여성들을 직접 찾아가 그들의 어려움을 듣고, 필요한 사회복지 서비스와 연결해 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암에 걸렸지만 수급자 혜택을 몰라 받지 못하는 여성, 노부모를 부양하며 힘겹게 살아가는 여성 등 다양한 어려움에 처한 여성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약사님은 약보다 사회복지사로서의 역할에 더 큰 보람과 행복을 느끼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약사님은 성매매 여성들이 쉽게 세상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깊이 고민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왜 성매매 여성들이 다른 일을 하지 않고 그곳에 머무르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오랜 기간 성매매 업소에서 생활한 여성들은 세상과의 단절, 낮은 학력, 사회적 편견 등으로 인해 사회생활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조차 두려워하는 여성들에게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약사님은 이러한 여성들에게 단순한 경제적 지원뿐만 아니라, 사회 적응을 위한 교육과 심리적 지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약사님의 궁극적인 소망은 성매매 여성들을 위한 쉼터와 교육 공간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녀는 약국 운영 외에도 예배, 교육, 직업 훈련 등을 제공할 수 있는 공간을 꿈꾸고 있습니다. 특히 미용, 애견 미용, 바리스타 등 여성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직업 훈련을 통해 자립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 합니다. 약사님은 자신이 이러한 공간에서 매니저 역할을 하며, 여성들의 새로운 시작을 돕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녀는 이미 미용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사회로 나간 여성, 착한 남편을 만나 결혼한 여성 등 긍정적인 사례들을 제시하며,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약사님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다양한 봉사 활동과 후원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나바 하우스 밥집이라는 노숙인 재활 센터에 정기적으로 밥을 지원하고, 파스와 쌍화탕 등 필요한 물품을 기증하고 있습니다. 특히 파스를 나눠주는 급식소는 전국에서 바나바 하우스 밥집이 유일하다고 하는데요. 또한 미혼모 가정을 후원하고, 푸른고래 리커버리 센터라는 은둔형 외톨이 청소년들을 위한 기관에서 이사장직을 맡아 활동하고 있습니다. 푸른고래라는 이름은 아픈 새끼 고래를 위해 헌신하는 어미 고래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합니다. 약사님은 힘들고 지친 이들을 서로 지지하고 격려하며 함께 나아가는 공동체를 꿈꾸고 있습니다.
약사님은 자신의 삶을 "십자가에 죽고, 주님의 보혈로 다시 태어난 삶"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녀에게 있어 신앙은 삶의 원동력이며,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보네훼퍼 목사의 "선한 능력으로" 라는 찬송가를 언급하며,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도 희망을 노래했던 그의 정신을 본받고 싶다고 말합니다. 약사님은 자신을 훈련시키기 위해 빚이라는 고난을 허락하셨다고 믿으며, 앞으로도 주어진 사명을 묵묵히 감당해 나갈 것을 다짐합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교회가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의 편에 서야 한다고 강조하며,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지속적인 관심과 도움을 호소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미선 약사님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봉사와 헌신의 의미를 되새겨 보았습니다. 택시비가 없어서 출연료 대신 택시비를 요청했다는 에피소드는 그녀의 소박함과 진솔함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시인데요. 약사라는 직업을 통해 얻는 경제적 이익보다는,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사역에 헌신하는 그녀의 모습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약사님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 가려진 이웃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고, 함께 희망을 만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줍니다. 앞으로도 많은 교회와 사회 구성원들이 약사님의 사역에 동참하고, 우리 사회의 소외된 이웃들에게 희망의 빛을 비춰주기를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