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자 임성일 교수의 신앙 간증과 변화 이야기
물리학에서 신앙으로: 임성일 교수의 드라마틱한 변화
확고한 물리학자가 철저한 크리스천이 되기까지의 이야기: 임성일 교수 간증 상세 정리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지만, 때로는 극적인 변화를 겪는 인물들이 존재합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이야기는 바로 그러한 변화의 주인공, 연세대학교 물리학과 임성일 교수님의 간증입니다. 그는 과학적 사고가 투철한 물리학자였지만, 깊은 의심과 회의를 거쳐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변화했습니다. 과연 그에게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요? 지금부터 임성일 교수님의 파란만장한 신앙 여정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임성일 교수님은 연세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이자 신하교회의 다민 목회자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놀랍게도 신학을 전공하지 않고 목회자의 길을 걷고 계신데요, 이 독특한 이력 뒤에는 특별한 사연이 숨겨져 있습니다. 미국 유학 시절, 그는 우연한 계기로 교회를 다니게 되었고, 목사님의 권유로 전도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당시 목사님은 임 교수님에게 풀타임 목회 대신 평신도 목회를 권유하며, 직업을 유지하면서 목회 활동을 병행할 것을 조언했습니다. 이후 LA에서 교회를 개척하며 목회자의 길에 발을 들였고,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자연스럽게 목회 활동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독특한 배경을 가진 임성일 교수님의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본래 임 교수님은 교회를 다닌 적이 없는, 세상적인 성공을 추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소위 ‘입신양명’의 욕망에 이끌려 29세에 미국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유학 전, 그를 꾸준히 전도했던 분의 영향으로 미국에서 교회를 찾게 되었습니다. 1989년 당시, 미국에서 정착하기 위해서는 교회가 필수적인 존재였다고 회상합니다. 교회는 유학생들에게 김치와 비빔밥을 제공하며, 정착에 필요한 다양한 도움을 주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비빔밥 때문에 교회에 나갔다고 고백할 정도로 인간적인 동기가 컸습니다. 하지만 점차 목사님의 설교가 마음에 와 닿기 시작했고, 특히 ‘예수 믿는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메시지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교회를 다닌 지 4주쯤 되었을 때, 임 교수님은 설교가 들리기 시작했고, 2달 후 찬양을 듣다가 눈물을 흘리는 경험을 합니다. 특히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라는 찬양 가사가 깊은 슬픔으로 다가왔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졸업 이후 눈물을 흘린 적이 없던 그에게, 찬양 중 흘린 눈물은 매우 충격적인 경험이었습니다. 이후 목사님의 심방을 받게 되었고, 전도 폭발 훈련을 통해 영접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큰 감동이 없었지만, 아내의 권유와 분위기에 휩쓸려 영접을 하게 되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이어서 침례를 받게 되었는데, 그는 침례를 받으면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를 했습니다.
침례 후, 임 교수님에게는 두 가지 걱정이 생겼습니다. 첫 번째는 11년간 끊지 못했던 담배 문제였고, 두 번째는 교회에 대한 헌신 문제였습니다. 교회 내 유학생 중 유일한 흡연자였던 그는, 6개월 후 미국 생활이 안정되자 교회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졌습니다. 정착을 위해 교회를 이용했다는 생각과 헌금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믿지도 않으면서 교회를 계속 다녀야 하나?’라는 고민에 휩싸였지만, 동시에 예수님의 매력에 끌리는 마음 또한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십자가는 믿겠으나 부활은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그는, 부활에 대한 의문을 해소해야만 신앙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임 교수님은 예수 부활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UC 버클리 도서관에서 관련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신약 성경을 이미 완독한 그는, 부활이 거짓이라면 이를 증명하려는 시도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도서관에서 관련 서적들을 탐색하던 중, 프랭크 모리슨의 "Who Moved the Stone?"이라는 책을 발견합니다. 저널리스트 출신인 모리슨은 예수 부활을 의심하며 취재를 시작했지만, 결국 예수의 행적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부활의 진실을 인정하게 되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임 교수님은 예수 부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되었고, 빌라도 보고서와 같은 역사적 자료들을 추가적으로 탐구하며 부활의 가능성을 열어두기 시작했습니다. 예수의 부활과 그로 인해 변화된 제자들의 삶, 순교, 야고보의 회심 등 역사적 증거들을 접하며, 그는 점점 부활의 진실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부활의 증거들을 통해 코너에 몰린 임 교수님은, 오히려 ‘진짜 믿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와의 부부 싸움 후 감정적으로 격앙된 상태에서 담배를 다시 피우게 됩니다. 일주일 동안 금연했던 그는, 담배를 피우자 격렬한 현기증과 함께 ‘나는 이 여자를 용서할 수 없어’라는 강한 분노를 느꼈다고 합니다. 분노에 휩싸여 캠퍼스 언덕에 올라가 새벽 7시에 성경책을 펼쳤을 때, 그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성경을 읽는 순간, 뒤에서 ‘너의 실체를 알았느냐’라는 음성이 들리는 듯했습니다. 예수 부활을 더 이상 부인할 수 없었던 그는, 격한 감정 속에서 ‘어차피 나는 지옥에 갈 거야’라고 절규했습니다. 그 순간, ‘그러니까 너는 내가 필요하다’라는 음성이 마음속에 강하게 울려 퍼졌고, 그는 그 자리에서 무너져 엉엉 울었습니다.
이후 임 교수님은 아내에게 용서를 구하는 편지를 썼고, 그날 이후 담배를 완전히 끊게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아내에게 용서를 구하고 화해한 밸런타인데이, 2월 14일 이후부터 전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공계 출신이라 믿으려면 확실히 믿어야 한다. 하나님이 진짜 계셔야 한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증거를 중요시하는 이공계적 사고방식으로 인해 더욱 철저하게 신앙을 탐구했고, 결국 예수님의 부활과 살아계심을 과학적으로도 부인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이후 그는 열정적으로 전도 활동에 매진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과학자들은 논리적, 이론적으로 설명되지 않으면 믿기 어렵다는 통념과는 달리, 임 교수님은 오히려 과학적 탐구를 통해 신앙을 더욱 굳건하게 다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과학이라는 것은 지극히 작은 지식이며, 과학적 잣대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재단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단언합니다. 현재도 많은 과학자들이 신앙을 갖고 있으며, 믿으려면 화끈하게 믿고, 아니면 아닌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입니다. 임 교수님의 전도 대상은 주로 이공계 후배 학생들이었는데, 교수님의 변화된 모습과 논리적인 증거 제시를 통해 많은 학생들이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특히 친한 형이자 존경하는 교수님의 간증은 후배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5년쯤 지나자 15명 정도의 학생들을 전도했고, 셀 그룹이 성장하면서 목사님으로부터 전도사 제안을 받게 되었습니다.
간증 중간중간 죄송한 마음을 표현하며 겸손한 태도를 보이는 임 교수님은, 과거 하나님께 모교 교수가 된다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기도했던 사실을 털어놓습니다. 신앙을 갖게 된 후, 그는 세상적인 욕망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을 위해 살겠다는 서원을 했습니다. “성경책 하나면 모든 것이 끝난다. 성경 뒤에 모든 지식이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고, 예수님을 처음 만난 순간 자신도 모르게 모교에서 복음을 전하겠다는 서원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8년 후, 실제로 연세대학교 교수가 되었고, 과거의 서원을 떠올리며 캠퍼스 복음화를 위해 헌신하기로 결심합니다. 1997년 연세대학교에 부임한 그는, 어느 봄날 안개비 내리는 캠퍼스를 걷다가 과거의 서원을 기억하고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이제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구나. 약속을 지켜야지’라는 생각으로 2000년 신촌 채플, 즉 신촌하나교회를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교회 개척 초기, 열정만으로 시작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에 직면하기도 했습니다. 전도자의 사명감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목회의 무게를 느끼며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일반적인 목회자들과 달리, 아버지로부터 목회를 물려받은 것도 아니고 신학교를 졸업한 것도 아니었기에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만 되면 된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무대포 정신으로 시작했다고 회상합니다. 하지만 곧 현실은 녹록치 않았고, 프로세스나 시스템 없이 열정만으로는 목회를 지속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생업인 교수직과 목회를 병행하는 것은 더욱 힘든 일이었습니다. 교수직은 생계를 유지해야 하므로 포기할 수 없었지만, 개척 교회 목회는 언제든 놓을 수 있다는 생각에 유혹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두 번 정도 목회를 포기하고 싶을 만큼 어려운 시기를 겪었습니다.
특히 조교수 시절, 불안정한 신분과 목회의 어려움이 겹쳐 더욱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조교수는 테뉴어(정년 보장)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언제든 해고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목회는 계속해서 헌신해야 하는 장기적인 사역이었기에, 임 교수님은 목회가 본업이고 교수직이 부업이라고 생각하며 목회에 헌신했습니다. 하지만 교수직도, 목회도 모두 쉽지 않았고, 특히 목회는 상상 이상으로 어려웠습니다. 개척 3년 차, 가장 힘들었던 점은 교인들을 상대하는 것이었습니다.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어려움이었습니다. 조교수로서 연구 펀드 확보, 학회 활동, 교류 등에도 힘써야 했지만, 목회에 집중하느라 시간적 여유가 부족했습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싸고 좋은 연구”를 구했고,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연구비를 채워주셨다고 간증합니다. 연세대학교 부임 후 6, 7년 동안 연구가 순조롭게 진행되었지만, 목회는 여전히 어려운 과제였습니다.
심적으로 지쳐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임 교수님에게 위로와 회복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6개월 동안 기도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던 중, 주님께서 “네가 10년 동안 너의 목회를 했다. 이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물러서라. 내가 나의 목회를 하겠다”라는 말씀을 주시는 듯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임 교수님은 큰 위로를 받고 부담감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하십시오. 저는 그저 기도하겠습니다’라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기로 했습니다. 이후 하나님께서는 후배 목회자들을 만나게 해주셨고, 세 명의 목회자가 연합하여 8년간 아름다운 동역을 이어갔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는 말씀의 의미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고, 이후 목회는 10년의 고생 끝에 점차 풀려가는 듯했습니다.
교수로서, 목회자로서 바쁜 일상을 보내는 임 교수님은, 학교와 교회 사역의 균형을 잡는 어려움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이야기합니다. 학교에서 수학 문제, 물리 문제를 풀다가 기도회 시간이 되면 급히 기도회에 참석해야 했습니다. 기도회 중에도 머릿속에는 풀리지 않던 문제들이 계속 떠올랐고, 주보를 가져와 문제를 풀기도 했습니다. 기도회 인도 직전까지 문제에 매달리다 제대로 기도회를 인도하지 못하는 날도 있었습니다. 죄책감에 휩싸여 침체에 빠져 있을 때, 주님께서는 “모르면 나에게 물어봐라. 나는 모든 분야의 하나님이다”라는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그 순간, 임 교수님은 하나님께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기도했고, 놀랍게도 문제가 풀리는 경험을 합니다. 이후 그는 기도 시간에는 온전히 기도에 집중하고, 문제 해결은 하나님께 맡기는 지혜를 얻게 되었습니다. “네가 머리가 좋아서 교수 된 것이 아니라, 내가 시켜서 된 것 아니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교만함을 버리고 겸손하게 주님을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임 교수님은 제자 중 한 명의 간증을 소개하며, 하나님께서는 각자의 언어로 말씀하신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경쟁 관계에 있던 두 제자 중, 순복음교회 어머니를 둔 제자는 승승장구했지만, 교회에 다니지 않던 제자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임 교수님은 후배 제자를 안타깝게 여겨 과외 공부를 시켜주기도 했지만, 전도는 쉽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네가 안 되는 것은 예수를 안 믿어서 그래”라고 무심코 던진 말에 제자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시에는 학교에서 자유롭게 전도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제자는 임 교수님을 따라 얼떨결에 예수님을 영접했지만, 논문 심사에서 탈락하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논문이 부활하여 통과되었고, 이를 계기로 제자는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이후 어머니 교회 목사님의 딸과 결혼하며 신앙 안에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현재 연남동에 위치한 신촌하나교회는 다음세대 선교와 사역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시대 변화에 발맞춰 홈스쿨링, 세계관 교육, 문화 사역 등 다양한 방식으로 다음세대를 양육하고 있습니다. 교회 홈스쿨링은 학원비 부담을 줄이고, 부모와 자녀가 함께 신앙 안에서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교회 내 전문가들의 재능을 활용하여 양질의 교육 콘텐츠를 제공하고, 퀄리티 타임과 놀이 시간을 병행하며 아이들의 전인적인 성장을 돕고 있습니다. 특히 자기 주도 학습 능력을 키우는 데 집중하며, 중학교까지 자기 주도 학습 습관을 형성하면 고등학교 이후에는 스스로 학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세계관 교육은 세상 교육과 달리 영혼육의 균형 잡힌 교육을 지향합니다. 세상 교육은 영적인 부분을 간과하고 혼과 육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지만, 신앙 교육은 영성만 강조하여 현실적인 삶을 등한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임 교수님은 영혼육의 밸런스를 강조하며, 균형 잡힌 교육을 통해 다음세대가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신촌하나교회는 문화 사역의 일환으로 무브먼트 극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협동 목사님과 교인들의 재능을 활용하여 연극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문화를 혁신하는 사역을 펼치고 있습니다. 초창기 춘향전을 공연했을 때, 관객들은 춘향의 정절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신앙의 순결성을 묵상하는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설교보다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연극의 힘을 확인한 후, 본격적으로 극단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평양대부흥 100주년 기념 뮤지컬 ‘평양의 그날’은 당시 시대적 배경과 고증을 바탕으로 제작되어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연극과 뮤지컬을 통해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교인들에게 새로운 문화 경험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임 교수님은 다음세대를 이끄는 리더로서, 그리고 교육 현장과 교회 현장을 모두 경험한 목회자로서 다음세대를 향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불안감을 느끼는 다음세대와 부모세대에게, 그는 “혼과 육의 세계는 변하지만, 영의 세계는 변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강조합니다. 영의 세계, 즉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서면 혼과 육도 질서를 잡게 된다고 말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변하지 않는 영원한 진리,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영성 교육에 힘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합니다. 영성이 바로 서면 혼과 육도 자연스럽게 조화롭게 성장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능력으로 세상 속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격려합니다. 자기 주도적인 삶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어릴 때부터 자기 주도 학습 습관을 형성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훈련을 통해 다음세대가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리더로 성장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교회가 다음세대에게 즐거움을 주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재미있는 교회, 즐거운 목회를 통해 다음세대를 교회로 이끌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마지막으로, 아들 세대와의 소통을 통해 문화 사역의 중요성을 깨달았으며, 문화 콘텐츠를 활용한 선교 전략이 필요함을 역설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