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 교수 임성일, 의심에서 신앙으로 삶이 바뀐 간증 이야기
물리학 교수의 180도 인생 역전: 의심에서 믿음으로, 세상을 향한 복음 전파 여정
물리학자의 깊은 의심, 그리고 확고한 믿음으로의 변화: 임성일 교수 이야기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지만, 때로는 극적인 변화를 겪는 인물들이 존재합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이야기는 바로 그러한 변화를 몸소 체험한 임성일 교수님의 간증입니다. 연세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이자 신하교회의 다민 목회자이신 임성일 교수님은, 한때 교회를 다니면서도 비과학적인 믿음에 대한 강한 의구심을 품었던 분이라고 합니다. 스스로를 물리학과 교수라고 소개하며 비과학적인 것을 믿으라고 강요하는 듯한 교회 분위기에 저항감을 느꼈다고 하는데요, 과연 그 의심 많던 물리학 교수는 어떻게 확고한 크리스천으로 변화하게 되었을까요? 지금부터 임성일 교수님의 파란만장한 신앙 여정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임성일 교수님은 80년대 대학에 입학하며 세상의 입신양명을 꿈꾸던 평범한 청년이었다고 합니다. 교회와는 전혀 인연이 없던 그는, 29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미국 유학길에 오르게 되는데요. 유학 전 그를 전도하려 했던 한 지인의 끈질긴 노력은, 훗날 그의 인생을 뒤바꿀 씨앗이 되었습니다. 1989년, UC 버클리라는 명문 대학에 국비 유학생 신분으로 발을 디딘 임 교수님은, 갓 돌이 지난 아기와 아내와 함께 낯선 땅에서 정착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당시 미국 사회는, 특히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교회가 새로운 이민자들의 정착을 돕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는데요. 교회는 김치, 비빔밥과 같은 한국 음식을 제공하며 향수병을 달래주고, 생활 정보를 공유하며 정착 과정을 지원하는 커뮤니티 센터와 같은 기능을 했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임 교수님은, 정착을 위해 교회 문턱을 넘게 됩니다. 점심으로 제공되는 비빔밥의 매력에 이끌려, 그리고 로드십에 대한 목사님의 설교에 공감하며 교회에 발길을 이어갔다고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처음에는 설교보다 비빔밥이 더 좋았다는 솔직한 고백은,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인데요. 하지만 4주, 8주 시간이 흐르면서 설교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찬양을 부르는 중에는 눈물까지 흘리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초등학교 졸업 이후 단 한 번도 울어본 적이 없던 그에게, 찬양 중 흘린 눈물은 자신의 내면에 변화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였습니다.
이후 목사님의 심방을 받게 된 임 교수님은, 전도 폭발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영접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큰 감동은 없었다고 합니다. 침례를 받으면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감으로 침례를 받았지만, 여전히 담배를 끊지 못하는 자신과 교회를 그만 다녀도 되지 않을까 하는 세속적인 생각이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교회를 '이용'했다는 죄책감과 신앙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시작된 것입니다. 특히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의구심은, 물리학 교수로서 그가 넘어야 할 가장 큰 산과 같았습니다. 공개적으로 부활을 믿을 수 없다고 선언하며, 부활에 대한 명확한 증거를 찾기 전에는 교회를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예수의 부활에 대한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임 교수님은 UC 버클리 도서관에서 관련 서적을 탐독하기 시작합니다. 수많은 책들을 뒤진 끝에, 그는 프랭크 모리슨의 'Who Moved the Stone?' 이라는 책을 발견하게 되는데요. 저널리스트 출신인 모리슨은, 예수의 부활을 의심하며 객관적인 증거를 찾기 위해 예수님의 행적을 추적했지만, 결국 부활의 진실을 부인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빌라도 보고서와 같은 역사적 자료들을 통해, 임 교수님은 예수의 부활이 단순한 믿음의 영역이 아닌,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의 부활을 믿고 변화된 12 제자들의 삶, 그리고 순교와 예수의 동생 야고보의 회심과 같은 증거들은, 그의 의심을 점점 옅어지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부활을 믿게 되면서, 오히려 '진짜 믿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새로운 고민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와의 부부싸움 후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게 되면서, 그는 자신의 실체를 직면하게 됩니다. 캠퍼스 언덕에서 성경을 읽던 중, '너의 실체를 알았느냐' 라는 내면의 음성을 듣게 되고, 자신의 이기적인 모습과 죄인됨을 깨닫고 깊은 회개를 경험하게 됩니다. '어차피 지옥에 갈 것' 이라고 체념하려는 순간, '네가 나를 필요로 한다' 는 절박한 음성은, 그의 마음을 완전히 무너뜨렸습니다. 그 자리에서 엉엉 울며 회개하고, 아내에게 용서를 구하는 편지를 쓴 후, 11년간 피워왔던 담배를 기적적으로 끊게 됩니다. 1990년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 초콜릿과 함께 아내에게 용서를 구하고 화해한 후, 그는 다음날부터 전도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공계 특유의 논리적인 사고방식으로 무장한 임 교수님은, 하나님을 믿으려면 제대로 믿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증거를 중시하는 과학자로서, 그는 하나님의 존재와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하게 되었고, 이후 전도와 성경 공부에 매진하며 신앙생활을 이어갔습니다. 5년 후에는 15명의 학생을 전도하는 열매를 맺었고, 셀 그룹이 성장하면서 전도사 안수를 받게 됩니다. 과거 하나님께 '모교 교수가 된다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 고 기도했던 서원처럼, 그는 교수가 된 후에도 캠퍼스 복음화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1997년 연세대학교 교수로 부임한 후, 임 교수님은 오래 잊고 있었던 서원을 기억하게 됩니다. 캠퍼스에 안개비가 내리는 어느 봄날, 그는 '이제 약속을 지켜야 할 때가 왔구나' 라는 마음의 소리를 듣고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2000년, 그는 신촌 Chapel 이라는 이름으로 교회를 개척하게 됩니다. 하지만 목회는 전도와는 차원이 다른 어려움이었습니다. 목회 경험 부재, 재정적인 어려움, 교인들과의 관계 등 수많은 난관에 부딪히면서, 그는 두 번이나 목회를 포기할까 고민했다고 합니다. 특히 조교수 시절, 교수직과 목회를 병행하는 것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벅찬 일이었습니다. 목회가 본업, 교수직이 부업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목회의 어려움은 교인 관계에서 더욱 두드러졌습니다. 평신도 목회를 하라는 과거 목사님의 조언과 후배들의 현실적인 조언 사이에서 갈등하며, 정체성 혼란을 겪기도 했습니다. 2003년-2004년, 교인들이 대거 교회를 떠나면서 심각한 침체기를 맞이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 이제 그만 둘까요?' 라는 절박한 기도에도 응답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오랜 기도 끝에, 하나님께서는 '네가 10년간 너의 목회를 했다. 이제는 물러서라. 내가 나의 목회를 하겠다' 라는 음성을 들려주셨다고 합니다. 이 음성을 통해 짐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자, 놀랍게도 상황은 반전되기 시작했습니다. 후배 목사, 동역자들이 함께 사역하면서, 교회는 다시 활기를 되찾았고 8년간의 아름다운 동역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는 성경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교수직 또한 끊임없는 도전의 연속이었습니다. 수학, 물리 문제에 몰두하다 기도회 시간을 잊는가 하면, 기도회 중에도 문제 풀이 생각에 집중하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주보에 문제를 풀다가 기도회 인도를 엉망으로 만들었던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침체에 빠져 있던 어느 날, '모르면 나에게 물어봐' 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수학 문제를 하나님께 여쭤보라는 것이었는데요. 반신반의하며 기도했더니, 놀랍게도 문제가 풀리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내가 하나님이다. 나는 모든 분야의 하나님이다' 라는 깨달음과 함께, 그는 기도를 통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습니다.
교수로서 학생들을 지도하며, 예수님을 믿게 된 학생도 있었다고 합니다. 경쟁 관계에 있던 두 학생 중, 한 학생이 예수님을 영접한 후 놀라운 변화를 겪게 된 것인데요. 논문 심사에서 탈락 위기에 놓였던 학생의 논문이 기적적으로 통과되고, 이후 신앙 안에서 가정을 이루는 모습은, 하나님의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간증입니다. '네가 안 되는 것은 예수를 안 믿어서 그래' 라는 직설적인 전도 방식은, 당시에는 통했지만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화인데요. 이공계 학생들에게 논리적인 증거와 함께 진솔한 간증은, 강력한 복음 전파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현재 연남동에 위치한 신하교회는, 다음 세대 선교와 양육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시대 변화에 발맞춰 교회 홈스쿨링을 대안 교육 모델로 제시하고 있는데요. 고액 학원비 부담, 치솟는 집값 등으로 교육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시대에, 교회가 중심이 되어 가정과 연계한 홈스쿨링은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교회 내 고학력 젊은 부부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학원 중심 교육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자기 주도 학습 능력을 키우는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시간만 때우는 교육이 아닌, 퀄리티 타임을 통해 아이들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놀이와 학습의 균형을 추구하는 교육 철학을 강조합니다.
세계관 교육 또한 교회 교육의 중요한 축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영혼육을 가진 인간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세상 교육이 간과하는 영적인 측면을 강화하는 교육을 지향합니다. 영성만 강조하는 교육의 편향성을 경계하며, 균형 잡힌 교육을 통해 영과 혼과 육의 조화로운 성장을 추구합니다. 창세기에 나타난 창조 질서를 바탕으로, 자연과학적 지식과 영성의 균형을 강조하는 교육 모델은, 다음 세대를 건강하게 세우는 밑거름이 될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전문 인력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문화, 예술, 학문 등 다양한 분야에서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 콘텐츠를 개발하고 제공하는 교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문화 사역의 중요성 또한 강조하며, 무브먼트 극단을 통해 연극 사역을 펼치고 있다고 합니다. 경희대 국문과 희곡 전공 부목사님과 한동대 연극 연출 부전공 리더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춘향전과 같은 고전을 기독교적 메시지로 재해석하는 시도는 새로운 문화 사역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평양의 그날' 과 같은 뮤지컬 공연은, 교인들에게 깊은 감동과 울림을 선사하며, 설교 이상의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합니다. 연극이라는 문화 콘텐츠를 통해, 복음을 전하고, 교인들의 신앙을 성장시키는 문화 선교의 힘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예배 음악을 넘어, 연극과 같은 다양한 문화 예술을 통해 젊은 세대에게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교회의 매력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합니다.
마지막으로 임 교수님은, 다음 세대를 이끄는 리더로서 불안해하는 부모 세대와 다음 세대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가치관이 혼란스러운 시대일수록, 변하지 않는 영원한 가치, 즉 영의 세계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혼과 육의 세계는 변하지만, 영의 세계, 즉 하나님과의 관계는 불변한다는 진리를 제시하며, 영성이 바로 설 때 혼과 육도 질서를 잡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세상 변화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 성령을 붙잡고 나아갈 때, 다음 세대는 혼란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다고 격려합니다.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지 못했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라 진단하며, 어릴 때부터 자기 주도 학습 능력을 키우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훈련을 통해 진정한Potential을 발휘할 수 있다고 조언합니다. 교회가 즐거운 공간이 되어야 하며, 재미있는 목회를 통해 다음 세대를 교회로 이끌어야 한다는 제안은, 한국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듯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