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아에서 청소년 희망 목사로 김형민 목사 인생 간증
문제아에서 희망의 목사로: 김형민 목사 간증
모두가 두려워했던 문제아, 청소년들을 살리는 목사가 되기까지: 김형민 목사의 파란만장 인생 스토리
오늘 여러분에게 들려드릴 이야기는 단순한 성공담이 아닙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놀라운 변화, 그리고 그 변화를 통해 수많은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김형민 목사님의 감동적인 이야기인데요. 새롭게하소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신 아둘람교회 김형민 목사님은, 과거 어머니의 도박 중독과 가정 불화 속에서 방황했던 자신의 청소년 시절을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모두가 두려워했던 문제아에서, 이제는 청소년들을 품고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목사가 되기까지, 김형민 목사님의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를 함께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야구소년의 꿈, 어머니의 도박으로 무너지다
김형민 목사님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야구선수의 꿈을 키웠습니다. 뛰어난 신체 조건과 재능으로 장래가 촉망되는 포수였는데요. 하지만 그의 꿈은 어머니의 도박 중독이라는 예상치 못한 암초에 부딪히게 됩니다. 어머니는 "보드 게임" 이라는 포장 아래 "하투" 도박에 깊이 빠지셨고, 가정 경제는 점점 어려워졌습니다. "빨간 하트 맞추기 그림 장 맞추기" 와 같은 노름에 심취하여 가산을 탕진하는 어머니 때문에, 김 목사님의 야구 선수의 꿈은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혀 좌절되고 맙니다.
운동에 전념하고 싶었지만, 가정 형편 때문에 야구를 포기해야 했던 김 목사님의 좌절감은 상상 이상이었을 것입니다. "운동만 하던 아이가 갑자기 공부를 하려니 너무 힘들었다" 고 회상하며, 그는 수업에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인정받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랐다" 라는 그의 고백은, 당시 그가 느꼈던 절망감과 분노를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꿈을 잃은 야구소년은, 점점 어둠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분노와 일탈, 문제아로 낙인찍히다
꿈이 좌절된 김형민 목사님은,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좌절감에 휩싸였습니다. 그는 인정받기 위해, 그리고 억눌린 분노를 해소하기 위해 일탈을 선택했습니다. "기본적인 일탈" 이라는 표현으로 순화했지만, 그의 일탈은 흡연, 음주, 오토바이 절도, 싸움 등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어른 흉내 내기" 와 "권위자에 대한 반항" 은 그의 일탈을 더욱 부채질했습니다. 중학생 시절부터 "학교 짱" 으로 군림하며, 본격적인 문제아의 길을 걷게 된 것입니다.
"분노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다" 는 김 목사님의 고백은, 청소년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짚어줍니다. 부모님의 불화와 어머니의 도박 중독 속에서, 김 목사님은 사랑과 안정감을 느끼지 못했고, 분노는 삐뚤어진 방식으로 표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심지어 어머니의 도박 현장을 직접 찾아가 "다 죽여 버리겠다" 고 협박했을 정도로, 그의 분노는 극에 달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가정 문제와 좌절감은, 그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었던 것입니다.
교회 누나, 그리고 6개월간의 떡볶이: 삶의 전환점을 맞이하다
문제아로 낙인찍혔던 김형민 목사님에게도, 한 줄기 빛이 찾아왔습니다. 그것은 바로 친구의 전도였습니다. "교회에 예쁜 누나들이 많다" 는 솔직하고 발칙한 전도에, 김 목사님은 솔깃했습니다. "성령 충만" 이 아닌 "성충" 상태로 교회를 찾았지만, 그곳에서 그의 인생을 바꿀 결정적인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찬양 인도하는 예쁜 누나에게 호감을 느꼈지만, 아쉽게도 짝사랑으로 끝났습니다. 하지만, 이 짝사랑의 실패는 오히려 그를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뜻밖의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짝사랑 실패 후, 김 목사님은 담당 교사였던 노천영 선생님을 만나게 됩니다. 노처녀였던 노 선생님은, 헌신적으로 김 목사님을 비롯한 문제 학생들을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날마다 분식점으로 인도" 하며, 두 줄 메뉴판을 전부 먹여주는 정성을 쏟았습니다. 기도하자, 성경 공부하자 강요하지 않고, 오직 사랑과 관심으로 다가갔습니다. 노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과 진심은, 닫혀있던 김 목사님의 마음의 문을 서서히 열기 시작했습니다. 6개월 동안 떡볶이, 라면, 쫄면 등 분식을 함께 먹으며, 선생님은 끊임없이 사랑과 격려를 쏟아주었고, 김 목사님은 난생 처음 "인정받는 느낌" 을 받았습니다.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을 영접하다
6개월간의 헌신적인 사랑과 돌봄 끝에, 노천영 선생님은 김형민 목사님에게 조심스럽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CCC 출신이었던 선생님은, "사영리" 를 통해 복음을 명확하고 체계적으로 설명해주었습니다. 오랜 기도와 준비 끝에 전한 복음은, 김 목사님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을 몰랐던 것이 죄였고,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다" 는 복음의 메시지는, 그에게 충격과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예수님이 너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는 것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 는 선생님의 말에, 김 목사님은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오랜 방황과 고통 끝에, 드디어 삶의 해답을 찾은 순간이었습니다. "마음이 가난했고, 의지할 곳 없었던" 김 목사님에게, 복음은 삶의 새로운 지표이자 희망이 되었습니다. 사람의 메시지는 7%밖에 전달되지 않지만, 태도, 눈빛, 행동을 통해 사랑을 느꼈고, 교회 공동체의 따뜻함 속에서 하나님 사랑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는 그의 고백은, 진정한 전도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흡연과 알코올, 자연스럽게 멀어지다: 새로운 삶의 시작
예수님을 영접한 후, 김형민 목사님의 삶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7년 동안 지속되었던 흡연과 알코올 중독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억지로 끊으려고 노력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기쁨과 새로운 삶에 대한 열정이, 일탈 행위를 저절로 멀어지게 만들었습니다. 친구 관계도 변화되었습니다. 교회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건전하고 긍정적인 관계를 맺기 시작했습니다. 롤러스케이트 대신, 교회 활동과 찬양, 봉사에 집중하며,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했습니다.
교회에서 "은사" 를 발견하고, 찬양 인도와 학생회장 등의 역할을 맡게 되면서, 난생 처음 "인정" 이라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학교 짱으로서의 인정이 아닌, 하나님 안에서 귀한 존재로서 인정받는 경험은, 그에게 큰 기쁨과 만족감을 주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1년간 체계적인 양육을 받고, 큐티를 통해 말씀을 묵상하면서, 신앙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복음을 전하고 싶은 뜨거운 열정이 마음속에 솟아올랐습니다.
사영리 300권, 거지 전도 여행을 떠나다: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다
복음을 향한 뜨거운 열정에 사로잡힌 김형민 목사님은, 여름 수련회에서 "예수" 티셔츠를 입고, "사영리" 300권을 구입하여 무작정 "거지 전도 여행" 을 떠납니다. 무전으로 떠난 전도 여행은, 그에게 잊을 수 없는 경험과 값진 깨달음을 안겨주었습니다. 용산 터미널에서 무작정 버스를 타고 도착한 부여에서부터 시작된 전도 여행은, 전국 각지를 누비며 복음을 전하는 여정으로 이어졌습니다. 저녁이 되면 십자가만 보고 교회를 찾아가 하룻밤 잠자리를 부탁했고, 신기하게도 가는 곳마다 따뜻한 환대와 식사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부여의 한 교회에서는 짜장면을 함께 먹으며 복음을 전했고, 낙화암에서는 외국인에게 서툰 영어로 복음을 전하다 "영어 방언" 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기차를 타고 전국을 순회하며 복음을 전하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예수님께로 인도했습니다. 특히, 강릉행 기차에서 만난 자살하려던 사업 실패자를 전도한 이야기는, 깊은 감동을 줍니다. 옆자리에 앉았던 목사님의 도움으로, 사업 실패자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복음은 능력이 있다" 는 것을, 몸소 체험한 김 목사님은,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헌신합니다. 힘든 아이들을 살리는 청소년 사역자가 되겠다는 꿈을 품게 된 것입니다.
등록금 없는 신학생, 십자가의 무게를 지다: 고난 속에서 성장하다
청소년 사역자의 꿈을 품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불신 가정이었던 부모님은 신학 대학 진학을 반대했고, 등록금을 마련할 길이 막막했습니다. "돈 벌어서 성공하라" 는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나를 부르셨다면, 등록금을 주실 것" 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기도했습니다. 등록 마감 전날, 교회 목사님으로부터 "어떤 분이 헌금하셨다" 는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됩니다. 소명에 대한 확신을 "돈" 으로 확인받는 특별한 경험을 한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돈" 으로 응답해주시지는 않았습니다. 택시 기사, 출판사 아르바이트 등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벌어야 했습니다. 특히, 이사 가는 출판사에서 책을 지게로 나르는 아르바이트는, 그에게 육체적인 고통과 함께 깊은 영적인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이렇게 무거웠을까" 묵상하며, 고난 속에서 더욱 성숙해져 갔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과 육체적인 고생 속에서도, 매 학기 간증이 넘쳤고, 고난은 오히려 그를 단련시키는 귀한 훈련이 되었습니다. 삶의 무게 속에서 얻은 지혜와 영감은, 훗날 청소년 사역에 귀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역경을 딛고, 아둘람 교회를 개척하다: 상처 입은 영혼들의 안식처
신학 대학 졸업 후, 김형민 목사님은 "아둘람 교회" 를 개척합니다. "아둘람" 이라는 이름은, 빚지고 환난 당하고 원통한 사람들이 모였던 아둘람 굴에서 따온 것입니다. 자신처럼 상처 입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아둘람 교회에서 위로받고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은 이름입니다. 개척 초기,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직면했지만, 힘든 성도들을 상담하고 돕는 사역에 집중했습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도박, 가정 불화, 자녀 문제 등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진심으로 공감하고 위로했습니다.
놀랍게도, 교회 개척 후 어머니의 도박 문제가 해결되는 놀라운 응답을 경험합니다. 어머니는 여전히 도박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예배에 참석하고 교인들과 교류하며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의 변화는, 김 목사님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 개척 4년 만에, 단독 건물 성전과 비전센터를 마련하고, 목사 위임과 권사, 안수집사 임직을 하며, 교회는 자립하게 되었습니다. 작은 교회이지만, 지역 사회에 꼭 필요한 교회, 상처 입은 영혼들의 안식처가 되는 교회를 꿈꾸며, 오늘도 묵묵히 사역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저 같은 사람도 쓰임 받습니다": 좌절하지 말고, 공동체 안으로 나아오세요
김형민 목사님의 이야기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드라마입니다. 문제아, 실패자라고 낙인찍혔던 그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목사가 되기까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섭리가 함께했습니다. 어머니의 도박 중독과 가정 불화, 꿈의 좌절, 일탈과 방황, 경제적인 어려움 등,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딛고 일어선 김 목사님의 삶은, 힘든 시기를 보내는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전해줍니다.
"저 같은 사람도 목사가 되고, 사역할 수 있다" 는 김 목사님의 외침은, 큰 울림을 줍니다. 좌절과 절망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포기하지 말고 공동체 안으로 나아오라고 따뜻하게 손 내밉니다. "좋은 공동체를 만나면 변화될 수 있다" 고 강조하며, 교회와 돕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용기를 내라고 격려합니다. 자신을 변화시킨 노천영 선생님처럼, 방글라데시에서 가출 청소년 사역을 하는 선교사님을 후원하며, 사랑의 나눔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김형민 목사님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동시에,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살아가도록 도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