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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생에서 척수 손상 환자 희망 전하는 비뇨기과 의사 김아람

요약

뜻밖의 의대 여정: 척수 손상 환자에 희망을 전하는 의사

[수어통역] 극적인 인생 반전, 누가 예상했을까?ㅣ건국대 의대 비뇨의학과 김아람 교수ㅣ김현숙 수어통역사ㅣ새롭게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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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대로 되지 않았던, 하나님의 은혜

안녕하세요, 새롭게 하소서의 주용훈입니다. 안녕하세요, 이정수입니다. 오늘 모신 특별한 손님은 간증에 딱 맞는 찬양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자매의 찬양으로 시작하며 가사를 음미해 보겠습니다. "나의 길 오직 그가 아시나니 나를 단련하신 후에 내가 정금 같이..." 정말 감동적입니다. 찬양처럼, 자신보다 자신을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삶을 이끄셨다고 고백하는 분, 바로 건국대학교 비뇨의학과 김아람 교수님이십니다. 어서 오십시오. "안녕하세요." 정금같이 나오셨네요. 반갑습니다.

교수님께서는 2021년 시사저널에서 차세대 리더 100인에 선정되셨고, 의사 과학자로서 발명품도 있으시다고 들었습니다. 의사로서 환자를 진료하고 수술하는 일 외에도, 난치성 방광 질환 환자들을 돕기 위해 연구도 하신다고요. 줄기세포 치료나 척수 손상 환자들의 방광 문제 해결을 위한 방광 모니터링 패치 개발도 진행 중이신데요, 방광 모니터링 패치는 어떻게 사용하는 건가요?

척수 손상 환자들은 소변이 마려운 느낌을 못 받고, 소변을 제대로 배출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환자들을 위해 방광 모니터링 패치를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패치를 몸에 부착하면 소변이 찰 때 핸드폰으로 알림이 울리는 방식입니다. 아직 개발 단계이지만, 환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교수님은 원래 의대를 목표하지 않으셨는데, 어떻게 의사 과학자의 길을 걷게 되셨을까요? 찬양 가사처럼, 오직 주님께서 이끄셨다는 고백, 오늘 그 이야기를 자세히 나눠보겠습니다.

오늘 간증은 세 가지 주제로 나눠 준비했습니다. 첫째, 계획대로 되지 않았던 일들이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 둘째, 하나님의 정확한 타이밍, 그리고 셋째, 하나님께서 주신 만남입니다. 먼저, 계획대로 되지 않았던 일들이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간증부터 시작해 볼까요? 사실 계획대로 되지 않은 일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인생이 계획대로 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며 처음으로 실패를 경험했던 건 재수였습니다.

재수를 결심하고 서울에 올라와 혼자 공부하면서, 처음으로 '실패'라는 것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집은 청주였기에 서울에서 혼자 생활하며 공부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친구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는 낯선 환경에서 오직 공부, 학원, 교회만 반복하는 생활이었죠.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고독한 시간 속에서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찬양을 듣는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속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모태신앙이었지만, 그때 처음으로 성경 말씀과 찬양이 개인적인 메시지로 다가왔습니다. 특히 "나의 길 오직 그가 아시나니 나를 단련하신 후에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라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를 단련시키고 계시며, 결국에는 정금같이 만들어 주실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서, 이전보다 더 열심히 공부에 매진할 수 있었습니다. 재수 생활은 쉽지 않았지만,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통해 성장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으니, 당연히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재수 시험 결과는 또다시 계획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기대했던 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았고, 두 번째 실패를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첫 번째 실패와는 또 다른 절망감이 밀려왔습니다. 재수하는 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을 의지했다고 생각했는데, 또다시 실패를 맛보니 하나님께 섭섭한 마음마저 들었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이렇게 하실 거라고 약속하셨는데, 왜 또 실패인가요?" 실망감과 섭섭함에 마음이 방황하던 시기, 부모님께서 기도회에 함께 가자고 권유하셨습니다. 기도회에서 김영애 권사님의 간증을 듣게 되었는데, 그분의 이야기가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김영애 권사님은 한동대학교 초대 총장이신 김영길 총장님의 사모님이셨습니다. 간증 제목은 "광야는 축복입니다"였습니다. 당시 저 또한 광야를 걷는 듯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한동대학교 역시 광야와 같은 개척 시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광야는 축복입니다"라는 제목처럼, 역설적인 메시지였지만, 권사님의 간증은 제 마음속에 깊은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내가 가야 할 곳은 바로 여기, 한동대학교구나'라는 강렬한 확신이 들었습니다. 부모님, 특히 어머니께서는 자식 사랑하는 마음에 성적에 맞춰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기를 바라셨지만, 저는 한동대학교에 가야겠다는 마음이 너무나 강했습니다.

제 안에는 순종이나 거룩한 헌신과는 거리가 먼, 오히려 '하나님이 인도하신다니 한번 두고 보자'는 오기 같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당시 성적으로는 서울의 웬만한 대학에도 갈 수 있었지만, 마음은 이미 한동대학교로 향해 있었습니다. 결국, 저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한동대학교에 진학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의대를 포기하고,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한동대학교에 입학했지만, 자포자기 심정으로 방황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뚜렷한 목표 없이, 그저 되는 대로 시간을 보내다 보니 학점은 1점대까지 떨어졌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찾지 못하니,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신다는데, 한번 두고 보자'는 심정이었지만, 그런 방황도 결국에는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결국 군대에 도피하듯 입대했습니다. 원래 공군 관제 특기를 지원했지만, 헌병 특기를 받게 되었습니다. 헌병대는 군기가 매우 세고, 3교대 근무 특성상 교회에 가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엄격한 군기, 3교대 근무, 교회에 갈 수 없는 환경 등 모든 것이 힘들었습니다. 마치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작대기 하나로는 도저히 해결될 수 없는 상황, 그때 다시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혹독한 환경 속에서 다시 하나님을 찾게 된 것입니다. 교회에 갈 수도, 기도할 수도 없는 상황, 저는 화장실에서 몰래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냄새나는 화장실은 그 누구도 찾지 않는 은밀한 공간이었기에, 오히려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화장실에 숨어서 주머니 속 작은 성경책을 꺼내 읽고, 기도하며 울었습니다. '내 인생은 왜 이 모양일까, 실패와 방황 끝에 군대까지 와서 이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하는 걸까' 끊임없이 자문하며 절망했습니다. 하지만 절망의 끝에서, 오히려 하나님을 더욱 간절히 찾게 되었습니다.

계속해서 바닥으로,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가는 느낌, 어쩌면 그 바닥 어딘가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을까 하는 희미한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화장실에서 성경을 읽고, 취침 시간에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성경을 통독했습니다. 신앙 서적들도 몰래 읽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갈망했습니다. 교회에 갈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오히려 그곳에서 예배를 드려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내무반에서 예배를 드려야겠다는 마음, 처음에는 혼자 시작했지만, 점차 동참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간부 중에 교회 다니는 분이 없었는데, 제가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것을 알고는 쾌히 예배를 위한 공간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병사들은 간부의 배려 덕분에 편안하게 예배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예배를 인도해야 했기에, 자연스럽게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설교 말씀을 요약하고, 신앙 서적을 참고하여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군대 시절은 말씀을 더욱 깊이 묵상하고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하는 시간이었습니다. 20대 초반의 청년들에게 '청년아 울더라도 뿌려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청년 시절에 하나님을 만나고 눈물로 씨앗을 뿌려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당시 25살이었던 저 자신에게도, 그 말씀은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제대할 때쯤에는 헌병대 내에 작은 교회 공동체가 형성되었습니다.

헌병대는 특성상 다른 부서와 고립되어 있었지만, 오히려 그 고립된 환경 속에서 더욱 끈끈한 공동체가 될 수 있었습니다. 제대를 앞두고 헌병대 교회 특송을 계획했을 때, 군종 목사님께서 헌병대가 교회에 온다는 사실에 놀라셨습니다. 헌병대원들이 강단을 가득 채워 찬양하는 모습은 감격적이었습니다. 저는 찬양을 제대로 부르지도 못하고, 감격에 휩싸였던 기억이 납니다.

제대 후, 25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복학했지만, 마음은 뜨거웠습니다. 2년 넘는 군 복무 기간 동안 공부와는 담을 쌓았기에, 머리는 하얗게 비어있는 듯했지만, 하나님을 만났다는 확신과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으로 가슴은 뜨거웠습니다. '이제부터 내 인생을 새롭게 시작해보자, 무엇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님과 함께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제대 후, 저는 생명과학, 생물학을 전공하며 학업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정확한 타이밍, 하나님의 예비하심

25살, 늦깎이 대학생으로 다시 시작한 공부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재미를 주었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체의 신비는 저에게 큰 흥미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이전에는 공부가 지루하고 힘들게만 느껴졌지만, 새롭게 시작한 공부는 재미있었고, 알아가는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내 인생을 걸고,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까?' 진지하게 고민하며, 더 큰 무대에서 경험해보고 싶다는 갈망이 생겼습니다.

미국,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였지만, 도전해보고 싶었습니다. 마침, 한동대학교 교수님께서 안식년 연구로 하버드대학교에 가게 되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저는 무모하게도 교수님께 함께 하버드에 가서 연구할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안 되면 할 수 없고, 되는 데까지 해보자'는 심정으로, 교수님께 제 의사를 전달했고, 교수님의 도움으로 하버드대학교에서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하버드대학교, 꿈도 꾸지 못했던 곳에서 연구를 하게 되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버드대학교 연구실에서 연구원들과 함께 실험하고 연구에 참여하며, 꿈같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버드대학교 아이디 카드를 받고, 연구실에 출입하며 실험하는 모든 과정이 신기하고 설렜습니다. 주변에는 하버드대학교, MIT 등 명문대 출신 연구자들이 가득했습니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그들과 비교하면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6년간 방황했던 시간들이 오히려 저에게는 특별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늦게 시작했지만, 재미를 느끼며 공부하고,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연구에 몰두하다 보니, 실력이 점차 향상되었습니다. 재미있는 일을 하니, 힘들다는 생각도 잊은 채 연구에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좋아서 하는 공부였기에 지치지 않았습니다.

하버드대학교에서 연구하던 중, 제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놓은 중요한 만남이 있었습니다. 바로 의사 과학자였습니다. 연구실에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의사가 있었는데, 그는 연구실에서 개발하는 백신을 환자들에게 적용하는 임상 연구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환자를 진료하면서, 동시에 과학자로서 연구 활동도 병행하는 의사 과학자의 삶은 제게 큰 충격과 영감을 주었습니다.

의사 과학자의 삶을 보면서, 20살 때 품었던 의사의 꿈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잊고 지냈던, 어쩌면 실패와 좌절로 인해 마음속 깊이 묻어두었던 꿈이 6년 만에 다시 깨어난 것입니다. 26살, 의사가 되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였고, 미국에서 의대에 진학하는 것은 막막하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그때, 한국에서 의학전문대학원 제도가 도입된다는 뉴스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의학전문대학원, 의대 졸업생이 아니어도 학사 학위만 있으면 의학 공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제도였습니다. 뉴스를 보는 순간, 가슴이 뛰었습니다. '바로 이거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이거였어!' 마치 하나님께서 저를 위해 의학전문대학원 제도를 준비해 놓으신 것 같다는 강렬한 확신이 들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 의학전문대학원 입학을 준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하버드대학교에서 세계적인 연구자들과 교류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매주 열리는 세미나에는 노벨상 수상자들을 포함한 세계적인 석학들이 초청되었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세미나 내용보다는 공짜로 제공되는 피자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피자를 먹기 위해 세미나에 참석하고, 남들이 웃을 때 함께 웃어주는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매주 세미나에 참석하다 보니, 점차 석학들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석학들의 강연에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성공 뒤에 숨겨진 수많은 실패와 좌절의 경험담이었습니다. 그들은 수많은 실험 실패, 연구 과정의 어려움, 실험실에서 울고 웃었던 시간들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성공은 결코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재미있는 일을 즐기면서, 꾸준히 노력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재미있는 연구에 몰두하다 보니, 힘들지도 않았고, 열심히 연구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하버드대학교에서 보낸 시간들이 쌓이면서, 점차 실력이 향상되었고, 좋은 결과들도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20대 초반 방황하던 시절에는 상상도 못 했던 변화였습니다.

돌이켜보면, 머리 좋은 사람, 공부 잘하는 사람보다,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하는 사람이 결국에는 더 뛰어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억지로 하는 공부는 오래 지속하기 어렵지만, 재미있는 공부는 지치지 않고 오래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의학 연구가 재미있었고, 지금도 그 즐거움으로 연구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일을 하니, 더욱 열심히 하게 되고, 열심히 하다 보니, 더 잘하게 되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은혜까지 더해지는 선순환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만남의 축복, 사명을 발견하다

하버드에서의 경험을 통해 의사의 꿈을 다시 꾸게 되었고, 한국으로 돌아와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여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산병원에서 전문의 과정을 마치고, 건국대학교 병원에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건국대학교 병원 부임 초기, 조교수로서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어떤 분야에 헌신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의사의 길을 걸어오면서, 새로운 방향을 설정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고민하던 시기에, 병원에서 열린 특별한 세미나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 세미나는 척수 손상 환자분이 자신의 삶을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신경인성 방광, 척수 손상 환자들을 진료해 왔지만, 환자들의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세미나에 강사로 초청된 분은 척수 손상으로 휠체어 생활을 하는 아름다운 여성이었습니다.

척수 손상 환자들은 대부분 사고로 인해 갑작스럽게 장애를 얻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젊은 나이에 척수 손상을 입고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는 현실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강사로 오신 분은 발레리나를 꿈꾸던 분이었는데, 사고로 인해 척수 손상을 입고 더 이상 발레를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비뇨기과 의사는 세미나에 참석한 의사 중 저 혼자였습니다.

강사분은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이어가며, 마지막에 조용히 소원을 이야기했습니다. "제 소원이 뭔지 아세요?" 강사분의 소원을 묻는 질문에, 참석자들은 '다시 일어서서 걷고 싶다'는 소원을 예상했을 것입니다. 저 또한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강사분의 입에서 나온 소원은 전혀 예상 밖의 것이었습니다. "제 소원은, 지금 당장 해결되지 않는 소변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소변 문제, 척수 손상 환자에게 소변 문제는 단순한 불편함 이상의 심각한 문제입니다. 척수 손상으로 인해 방광 기능에 장애가 생기면, 소변을 제대로 배출하지 못하고, 요실금, 방광염, 심하면 콩팥 기능 손상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여성 강사분은 아름다운 외모와 달리, 소변 문제로 인해 냄새가 날까 봐 사람들을 만나는 것조차 꺼리게 된다고 했습니다. 하루에 6~8번 স্বাভাবিক하게 배출했던 소변을 못 보게 되는 고통, 상상조차 하기 힘든 어려움일 것입니다.

척수 손상 환자들은 척추 재활에는 집중하지만, 방광 기능 재활에는 소홀한 경우가 많습니다. 소변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거나,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강사분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15년 전 하버드에서 의사 과학자를 만났을 때 느꼈던 설렘과 열정이 다시 되살아나는 듯했습니다.

'그래,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으로 부르신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구나! 척수 손상 환자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그들의 삶에 희망을 주는 것, 이것이 바로 내가 해야 할 일, 나의 사명이구나!' 15년 전 의사의 꿈을 꾸었던 20살 청년에게, 하나님께서는 척수 손상 환자들을 향한 긍휼의 마음을 심어주셨습니다. 저는 그 순간, 비뇨기과 의사로서 척수 손상 환자들을 위해 헌신해야겠다는 사명감을 강렬하게 느꼈습니다.

신경인성 방광, 척수 손상 환자들에게 꼭 필요한 치료이지만,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습니다. 환자들은 어디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 어떤 치료를 받을 수 있는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척수 손상 환자들을 위한 전문 클리닉을 개설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비뇨기과 의사로서, 화려하고 멋있어 보이는 암 수술, 로봇 수술보다, 척수 손상 환자들을 위한 신경인성 방광 클리닉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고 싶었습니다.

신경인성 방광 클리닉 개설을 결심하고, 병원 측에 제안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신경인성 방광 질환은 수익성이 낮은 분야였고, 치료 과정도 복잡하고 어려웠습니다. 개인 병원에서는 수익성을 이유로, 대학 병원에서는 환자 진료 시스템 문제로 척수 손상 환자들을 위한 전문적인 치료를 제공하기 어려웠습니다. 휠체어를 탄 환자들이 편안하게 진료받을 수 있는 환경,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환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줄 의료진,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병원 측에 열정 페이로 신경인성 방광 클리닉을 운영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대신, 환자 한 명당 30분 진료 시간을 보장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병원 측에서는 손해 볼 것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제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게, 국내 최초로 대학 병원 내 신경인성 방광 클리닉이 개설되었습니다.

클리닉 개설 초기, 환자는 거의 없었습니다. 홍보도 부족했고, 환자들은 신경인성 방광 클리닉이라는 전문 클리닉이 있는지조차 몰랐습니다. 의욕만 앞섰지만,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위해 시작한 일인데, 왜 이렇게 어려울까?' 실망감과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클리닉을 운영하며, 환자들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 법무팀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환자에게 고소를 당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신경인성 방광 클리닉을 개설하고, 몇 안 되는 환자를 진료하기 시작했을 때였습니다. 신경인성 방광 질환은 치료가 매우 어렵고, 환자들의 불만도 많았습니다. 특히 척수 손상 환자들은 오랫동안 소변 문제로 고통받아 왔기에, 치료에 대한 기대가 컸지만, 현실적인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고소한 환자는 소변을 전혀 못 보는 환자였습니다. 힘을 주면 10cc 정도 소변이 나오기는 했지만, 늘 소변이 찔끔찔끔 새는 요실금 증상으로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저는 환자에게 방광을 안정시키고, 자가 도뇨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환자는 자가 도뇨를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이** 교수에게 치료받고 오히려 소변을 더 못 보게 되었다'며, 저를 고소한 것입니다.

경찰서에 출석해야 한다는 사실에 막막했습니다. 환자를 돕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오히려 고소를 당하다니, 억울하고 답답했습니다. 신경인성 방광 질환은 전공의들에게 강의해도 어려워하는 분야인데, 환자에게 쉽게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것은 더욱 어려웠습니다. 고소 사건에 대한 조서를 준비하는 데만 4~5시간이 걸렸고, 경찰 조사 과정도 힘들었습니다. '이 일을 계속해야 할까, 그냥 포기해야 할까?' 갈등했습니다.

환자도 오지 않고, 고소까지 당하는 힘든 상황 속에서, 신경인성 방광 연구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환자들을 직접 치료하는 것보다, 연구를 통해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하는 것이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신경인성 방광 모니터링 패치에 대한 아이디어를 주셨습니다. 환자는 없었지만, 연구 아이디어를 얻게 된 역설적인 상황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위기의 순간마다, 절망 속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고, 오히려 기회를 발견했던 것 같습니다. 고소 사건, 환자 부족 등 어려움 속에서 신경인성 방광 모니터링 패치라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얻게 된 것처럼 말입니다. 힘들고 어려웠지만,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길을 걸어왔기에, 지금의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교수님의 인생은 위기의 순간들이 오히려 변곡점이 되어, 새로운 기회로 전환되는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앞으로 어떤 비전을 가지고 계신가요? 저는 난치성 방광 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하나님의 치유를 전하고, 그들의 인생에 극적인 반전이 일어나는 것을 돕는 치료자로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또한, 한동대학교 후배들과 함께 북한 의과대학 설립, 열방의 선교사님들을 섬기는 의료 선교의 꿈도 가지고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으로 목적지를 설정할 때, 대부분 최소 시간 경로를 선택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내비게이션은 최장 시간 경로, 가장 오래 걸리는 길을 안내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 길은 때로는 험난하고, 돌아가는 길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그 과정 속에서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수많은 실패를 통해 배우고 성장하며, 결국에는 목적지에 도달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학점 1점대, 꿈도 없었던 방황하던 학생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의사, 의사 과학자의 길을 걷게 된 것은 기적과 같습니다. 목표 없이 방황하던 청년이, 정확한 비전을 찾고, 그 비전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공부의 재미를 느끼고, 끊임없이 성장하는 모습은 진정한 교육의 의미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많은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무조건 의대, 무조건 좋은 대학, 무조건 좋은 직장을 강요하지만, 왜 그 길을 가야 하는지, 어떤 목표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없이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것은 진정한 교육이 아닐 것입니다.

목표를 먼저 설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스스로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고, 재미를 찾고, 다양한 방법을 통해 목표를 달성해 나가는 것이 올바른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교수님의 간증은 많은 학생들과 부모님들에게 깊은 울림과 도전을 주었을 것입니다. 방광 질환으로 고통받는 분들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는데, 오늘 이 시간을 통해 방광 질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방광 패치가 환자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저희도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귀한 간증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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