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형 작가 조현병 극복기와 된장찌개 치유 감동 이야기
따뜻한 된장찌개, 절망을 녹인 사랑의 맛
## 따뜻한 된장찌개🍲로 배운 사랑: 이관형 작가의 치유와 회복 이야기
이번 글에서는 유튜브 채널 '새롭게하소서'에 출연한 이관형 작가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상세히 정리하고, 그의 경험에서 얻을 수 있는 삶의 지혜와 노하우를 깊이 있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본 영상은 이관형 작가가 조현병을 극복하고 세상에 희망을 전하기까지의 과정을 진솔하게 담아내고 있는데요, 김현숙 수어통역사의 따뜻한 수어 통역과 함께 그의 이야기는 더욱 깊은 울림을 선사합니다. 우리는 이 글을 통해 이관형 작가의 고백을 통해 조현병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해소하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더불어, 그의 이야기가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더욱 성숙한 인간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이관형 작가는 자신을 '조현병 환자'라고 세상에 당당하게 고백하며, 자신의 질병을 사도 바울의 '가시'와 같은 존재로 비유했습니다. 그는 저서 "바울의 가시"를 통해 자신의 조현병 경험을 상세히 묘사하고, 그 과정에서 겪었던 고통과 아픔, 그리고 극복의 과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현재도 꾸준히 약물 치료와 상담을 병행하고 있다는 그의 고백은, 조현병이 결코 숨겨야 할 질병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리와 노력을 통해 극복 가능한 질병임을 시사합니다. 이러한 그의 용기 있는 고백은 사회적으로 조현병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하고, 환자들에게 희망을 전달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관형 작가는 조현병 증상으로 인해 과거의 상처와 아픔이 지속적으로 떠오르는 고통을 겪었다고 합니다. 그는 이러한 증상이 망상이나 환청으로 이어질 수 있었지만, 다행히 하나님을 만나면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그의 이야기는 종교가 정신 질환 극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인데요, 특히 그가 과거의 아픔을 망상으로 발전시키지 않고 자아 성찰의 계기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은, 종교적 믿음이 제공하는 안정감과 긍정적인 세계관 덕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관형 작가의 어린 시절은 아버지의 폭력적인 성향으로 인해 깊은 상처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로부터 언어적, 신체적 폭력을 지속적으로 경험했으며, 이는 그의 자존감 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밥을 먹다가 소리를 내거나, 화장실에서 물건을 떨어뜨리는 사소한 행동에도 아버지의 폭력적인 반응이 뒤따랐다고 합니다. 심지어 아버지의 화가 풀리지 않으면 새벽에 술에 취해 돌아와 자고 있는 이관형 작가를 깨워 폭행하기도 했다고 하는데요, 이러한 가정 환경은 그의 어린 시절을 불안과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아버지의 폭력적인 성향은 이관형 작가에게 극심한 위축감과 자신감 결여를 가져왔습니다. 학교에서 발표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어려움을 겪는 등, 그의 사회생활 전반에 걸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폭력적인 아이들을 자주 만났지만, 그는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고 맞기만 했다고 합니다. 덩치가 큰 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과 위축감은 그를 무력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그가 학창 시절 내내 괴롭힘에 시달리는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짝꿍으로부터 시작된 학교 폭력은 이관형 작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처음에는 가벼운 괴롭힘으로 시작되었지만, 점차 집단적인 폭력과 언어폭력, 심지어 성적인 모욕까지 이어졌습니다. 짝꿍은 복도에서 다른 학생들을 잡아와 이관형 작가 앞에서 벌을 세우고 폭행했으며, 급식에 쓰레기를 넣어 먹지 못하게 하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괴롭힘을 자행했습니다. 분필을 던지는 짝꿍에게 처음으로 반항했을 때, 그는 일시적인 해방감을 느꼈지만, 이는 더욱 심각한 폭력으로 이어지는 불행의 시작이었습니다.
집단 괴롭힘은 이관형 작가를 극심한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고, 심지어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습니다. 매일 학교에 가는 것이 끔찍했고, 괴롭힘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지 못해 절망했습니다. 한때는 죽기 전에 자신을 괴롭힌 학생들의 이름을 칠판에 적고 자살하는 상상까지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용기가 부족하여 실행에 옮기지 못했고, 그의 마음속에는 분노와 좌절감만이 쌓여갔습니다. 이러한 학창 시절의 경험은 그의 정신 건강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쳤으며, 훗날 조현병 발병의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학교 폭력에 대한 분노를 해소하지 못했던 이관형 작가는 '성공'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품게 됩니다. 중학교 2학년 무렵, 그는 학교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성공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는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좋은 직장을 얻고, 돈을 많이 벌면 더 이상 누구도 자신을 괴롭히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그의 학업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졌고, 극단적인 방법으로 공부에 매달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는 복수심과 성공에 대한 갈망을 동력 삼아,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학업 성취를 이루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이관형 작가는 중학교 2학년 때 20점대였던 학업 성적을 극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맹렬히 공부에 매달렸습니다. 그는 자신보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을 경쟁 상대로 삼아 끊임없이 질투하고 미워하며, 오직 성적 향상에만 몰두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전교 2등까지 성적을 올리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지만, 이는 극단적인 자기 학대와 희생을 통해 얻어진 결과였습니다. 머리를 삭발하고, 잠을 줄이기 위해 컴퍼스로 허벅지를 찌르는 등, 비정상적인 방법까지 동원하며 공부에만 매달렸습니다. 이러한 그의 광적인 노력은 일시적인 학업 성취를 가져왔지만, 건강과 정신 건강을 심각하게 훼손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맹렬한 학업 열정은 오히려 학교 친구들로부터 이관형 작가를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눈에 독기가 가득하고, 머리를 삭발한 채 공부에만 몰두하는 그의 모습은 친구들에게 공포감을 주었고, 그들은 그를 피하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괴롭힘을 당하지 않게 된 것은 긍정적인 측면이었지만, 그는 진정한 친구 관계를 맺지 못하고 외톨이처럼 지내야 했습니다. 성공에 대한 집착이 오히려 인간관계 단절이라는 또 다른 고통을 가져온 것입니다.
고등학교 3학년, 운명의 장난처럼 이관형 작가는 자신을 괴롭혔던 짝꿍과 다시 같은 반이 됩니다. 그는 짝꿍에게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더욱더 공부에 매달렸지만,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그의 정신 건강은 더욱 악화되기 시작합니다. 짝꿍은 그의 이름과 '참을 인'자를 노트에 적으며 주문을 거는 듯한 행동을 했고, 이는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켰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는 극심한 스트레스와 압박감에 시달리며 정신적으로 점점 더 피폐해져 갔습니다.
선생님의 지시로 책가방을 들고 다녀야 했던 이관형 작가는 학교 쓰레기장에 책과 노트를 숨기는 위험한 선택을 합니다. 무거운 책가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책을 놓고 다니려 했지만, 선생님에게 발각될 것을 두려워하여 쓰레기장에 책을 숨기는 방법을 택한 것입니다. 하지만 비가 오는 날, 쓰레기장에 숨겨둔 책과 노트가 모두 젖어버리는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합니다. 그는 망가진 책과 노트를 보며 절망감에 휩싸였고, 불안과 초조함은 극에 달했습니다. 이 사건은 그의 정신 건강을 더욱 악화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연이은 불행 속에서 이관형 작가는 잠을 자지 않고 공부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감행합니다. TV에서 잠을 자지 않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접한 후, 그는 자신도 잠을 자지 않고 공부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학교 수업 후에는 독서실과 공원을 전전하며 밤샘 공부를 강행했고, 5일 동안 120시간 동안 단 한숨도 자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무리한 시도는 결국 그의 몸과 마음을 망가뜨리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극심한 피로와 졸음 속에서 그는 환각과 환청을 경험하기 시작했고, 정신적으로 붕괴되기 직전까지 내몰렸습니다.
120시간 동안의 강행군 끝에 이관형 작가는 결국 기절하고 맙니다. 집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으려던 순간, 그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고, 15시간 동안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기절 후 그는 자신의 한계를 절감하고 좌절했으며, 극심한 무력감과 절망감에 휩싸였습니다. 수능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그는 더 이상 정상적인 학업 생활을 이어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그의 정신 질환 발병을 더욱 촉진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결국 이관형 작가는 고등학교 3학년 1학기 기말고사를 망치고 재수를 결심합니다. 더 이상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그는 선생님에게 기숙학원에 들어가겠다고 통보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집에서도 편안하게 지낼 수 없었던 그는 공원에서 노숙 생활을 시작했고, 극심한 불안과 우울증, 불면증에 시달렸습니다.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상황에서도 그는 대학 진학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이 시기의 노숙 생활은 그의 정신 건강을 더욱 악화시켰으며, 조현병 증상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공원 노숙 생활 중에도 이관형 작가는 어머니에게 연락하여 용돈을 받아 생활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걱정하며 학교 앞에서 기다리기도 했지만, 그는 어머니의 도움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방황했습니다. 마지막 모의고사에서 그는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인해 시험을 제대로 치르지 못했고, 반에서 꼴등을 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결국 수능 시험에서도 실패하며 재수마저 실패로 끝났습니다. 이러한 연이은 실패와 좌절은 그를 더욱 깊은 절망의 늪으로 빠뜨렸습니다.
수능 실패 후 이관형 작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기숙학원에 들어갔지만, 조현병 증상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외지에서 혼자 지내면서 그는 아이들이 자신을 왕따시키고 괴롭힌다는 망상에 사로잡혔습니다. 작업 중 옆자리 학생들의 소곤거림을 자신을 욕하는 소리로 착각하고 책상을 치는 등, 불안정한 행동을 보였습니다. 결국 학원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5개월 만에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기숙학원에서의 실패는 그에게 또 다른 좌절감을 안겨주었고, 조현병 증상은 더욱 악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습니다.
서울로 돌아온 이관형 작가는 재수학원에 등록했지만, 아무와도 말을 섞지 않고 오직 공부에만 매달렸습니다. 다시 상처받을까 두려워 사람들과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지냈습니다. 5개월 동안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공부에만 매달린 결과, 그는 대학에 합격했지만, 이미 그의 정신은 심각하게 병들어 있었습니다. 대학 합격은 그에게 일시적인 안도감을 주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었습니다.
대학 합격 후 이관형 작가는 뒤늦게 정신과를 찾아 조현병 진단을 받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겪어왔던 고통의 원인을 알게 되었지만, 충격보다는 오히려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에 휩싸였습니다. 그는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과거의 상처와 아픔이 영화처럼 되살아나는 고통스러운 증상에 시달렸습니다. 환청과 망상, 불면증, 우울증 등 다양한 증상들이 그의 일상을 짓눌렀고,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했습니다. 조현병 진단은 그에게 절망감과 함께,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안겨주었습니다.
조현병 진단 후 이관형 작가는 증상 완화를 위해 많은 양의 약을 복용해야 했습니다. 하루에 10알에서 12알에 달하는 약을 복용하면서 그는 하루 12시간 이상 잠을 자는 등, 약물 부작용에 시달렸습니다. 20대 시절을 약물에 취해 잠만 자면서 보내야 했던 그는 젊은 시절을 헛되이 보냈다는 후회감에 휩싸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절망하지 않고, 새로운 희망을 찾아나서기 시작했습니다. 그에게 희망의 빛을 비춰준 것은 바로 '교회'였습니다.
교회와의 만남은 이관형 작가에게 새로운 삶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대학 합격 후에도 여전히 고통스러운 증상에 시달리던 그는 우연히 기독교 동아리 선배의 권유로 동아리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어려움을 겪던 그에게 동아리 선배들은 따뜻하게 다가와 밥을 함께 먹고 이야기를 들어주었습니다. 처음으로 타인에게 마음을 열고 교류하기 시작하면서 그는 서서히 마음의 안정을 찾아갔습니다. 교회 공동체는 그에게 따뜻한 보금자리가 되어주었고, 상처 입은 마음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교회 동아리 형들과의 따뜻한 관계 속에서 이관형 작가는 처음으로 타인을 '신뢰'하고 '믿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밤마다 밀려오는 고통스러운 생각에 잠 못 이루던 그는 새벽에 형들이 있는 기숙사를 찾아가 잠을 청했습니다. 누군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큰 위안을 얻었고, 형들이 끓여주는 따뜻한 된장찌개를 통해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된장찌개는 단순한 음식을 넘어, 그에게 '사랑'과 '신뢰'라는 따뜻한 감정을 가르쳐준 특별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교회 공동체의 사랑과 관심은 그에게 잃어버렸던 인간관계에 대한 희망을 되찾아주었습니다.
교회 동아리 활동을 통해 이관형 작가는 상처받은 마음을 점차 회복하고 자존감을 되찾았습니다. 매주 성경 공부와 토론, 간증 발표 시간을 통해 그는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아픔을 이야기하며,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동아리 발표 시간에 자신의 상처와 아픔을 고백했을 때, 선배들은 그를 비난하거나 평가하지 않고 따뜻하게 격려하고 지지해주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그는 세상에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타인과의 연대 속에서 치유와 회복의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케냐 단기 선교 활동은 이관형 작가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케냐의 빈민가 아이들을 보면서 그는 과거 노숙 생활을 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길거리 아이들이 서로를 의지하며 밝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모습은 그에게 큰 감동을 주었고, 특히 한 어린아이가 다가와 안겼을 때, 그는 마치 하나님이 자신을 안아주는 듯한 따뜻함을 느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그는 어린 시절 상처 입은 자신을 위로받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관형 작가는 자신의 조현병 경험을 세상에 드러내는 용기를 냈습니다. 과거에는 숨기고 싶었던 자신의 질병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그는 이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대학 시절, 조교 교수님에게 자신의 어려움을 털어놓았을 때, 교수님은 그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경청하고 위로해주었습니다. 교수님의 따뜻한 격려는 그에게 큰 힘이 되었고, 세상에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을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조현병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해소하고, 환자들에게 희망을 전달하는 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이관형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세상에 3명 이상의 진정한 친구가 있다면 행복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힘든 시기에 그의 곁을 지켜준 친구들과 선배들의 존재는 그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새벽에 전화해도 받아주는 친구, 힘든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 함께 기도해주는 친구들이 있었기에 그는 조현병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진정한 인간관계의 소중함을 깨달았고, 타인과의 연대와 지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합니다.
이관형 작가는 사회적으로 조현병 환자에 대한 편견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지적합니다. 일부 언론 보도에서 조현병 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묘사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는 극히 일부 사례일 뿐이며, 대부분의 환자들은 약물 치료를 통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사회적 편견 때문에 환자들이 자신의 질병을 숨기려 하고,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는 조현병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고, 환자들이 편견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이관형 작가는 조현병을 앓게 된 것이 오히려 자신에게 '은혜'이자 '기적'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조현병이 없었다면 하나님을 믿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고, 여전히 경쟁과 성공에만 매달리는 외로운 삶을 살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조현병을 통해 그는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깨닫고, 하나님을 만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는 조현병을 '바울의 가시'와 같은 존재로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더욱 겸손하고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그에게 조현병은 고통스러운 질병이었지만, 동시에 삶의 방향을 바꾸고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해준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관형 작가는 다시 태어나도 조현병 환자로 태어나고 싶다고 고백하며 깊은 감동을 선사합니다. 그는 건강했을지라도 하나님 없이 방황하며 살았던 과거의 삶보다, 조현병을 앓지만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살아가는 현재의 삶이 더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낮은 자로서 낮은 곳을 향하며,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살아가는 삶이 진정으로 가치 있는 삶이라고 믿는다는 그의 고백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전달합니다. 그의 이야기는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사례입니다.
이관형 작가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에 깊은 메시지를 던져줍니다. 조현병 환자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그들을 따뜻하게 품어안아야 한다는 메시지, 그리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진정한 위로와 사랑을 전해야 한다는 메시지입니다. 그의 경험은 우리에게 인간적인 연대와 공감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줍니다. 우리는 그의 이야기를 통해 더욱 성숙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를 보듬으며 함께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관형 작가의 용기와 희망의 메시지가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어, 더욱 따뜻하고 성숙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