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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성 목사 간증: 상처를 사명으로 바꾼 극적인 인생 역전 이야기

요약

드라마보다 극적인 인생 역전

상처는 사명이다: 김보성 목사 간증 상세 정리

오늘 우리는 깊은 감동과 울림을 주는 이야기를 함께 나눌 텐데요, 바로 김보성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이 간증은 단순한 개인의 역경 극복 스토리를 넘어, 우리 삶 속에서 만나는 상처가 어떻게 사명으로 변화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귀한 여정입니다. 김보성 목사님은 '새롭게하소서' 방송에 출연하여 자신의 파란만장했던 과거와 그 가운데 역사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진솔하게 나누어주셨습니다. 지금부터 그 감동적인 이야기를 상세하게 정리하여, 우리 모두에게 깊은 깨달음과 도전을 주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방송은 사회자와 김보성 목사님의 밝은 인사로 시작되었는데요, 특히 사회자는 프리뷰 담당 스태프들의 감동적인 피드백을 언급하며 방송의 의미를 더했습니다. 무신론자였던 스태프 두 분이 김 목사님의 간증과 이유나 찬양사역자 편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아 메시지를 보내왔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에게까지 깊은 울림을 주는 방송의 힘은 놀라운데요, 사회자는 이러한 간증을 통해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만져주시고 계심을 강조했습니다. 오늘 출연자인 김보성 목사님 역시, 하나님의 도우심과 적절한 시기에 만난 귀한 손길들을 통해 멜로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신앙 스토리를 써내려갈 수 있었다고 소개하며 기대감을 높였습니다.

김보성 목사님은 울산 신정교회 담임목사로 청빙 받아 사역하고 계신데요, 밝고 행복한 모습으로 등장하여 현재의 благословенный 목회 생활에 대한 만족감을 표현했습니다. 울산이라는 도시와 새로운 교회에서의 사역이 큰 기쁨이며, 특히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성도들과의 만남을 통해 목회의 행복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방송 초반, 사회자는 김 목사님을 소개하며 "아버지께서 ‘블랙리스트’라고 부를 정도로 문제아였다"는 다소 충격적인 멘트를 언급했는데요, 이에 김 목사님은 솔직하고 담담하게 자신의 어두웠던 과거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김 목사님은 아버지의 강한 기대와 높은 교육열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큰 압박감을 느꼈다고 고백했습니다. 초등학생 시절,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고 학교를 대표하는 학생이었던 김 목사님은 아버지의 자랑이자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존재였습니다. 아버지는 “내 아들은 백발목사, 미래에는 대통령이 될 것”이라며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다닐 정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과도한 기대는 오히려 김 목사님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했고, 초등학교 입학 후 첫 시험에서 12등을 하면서 성적이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중학생이 되면서는 반에서 꼴찌 수준의 성적을 받게 되었고, 아버지의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성적 하락의 원인에 대해 김 목사님은 환경적인 요인과 친구 관계, 그리고 자기 주도 학습 능력 부족을 꼽았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어머니가 모든 것을 챙겨주고 가르쳐주었지만,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스스로 공부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자 어려움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또한, 좋지 않은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학업보다는 노는 것에 더 집중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성적은 더욱 떨어졌습니다. 김 목사님은 당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소위 '신세계'를 경험했다고 표현했는데요, 그 '신세계'는 다름 아닌 오락실이었습니다.

초등학생 때는 오락실 근처에도 가본 적 없던 김 목사님은 중학생이 되면서 오락실에 '출근'하다시피 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학교 가기 전 오락실에 들러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문이 열리자마자 오락을 즐겼습니다. 심지어 오전 수업을 빼먹고 오락실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으며, 학교가 끝나면 곧바로 오락실로 향하는 생활이 반복되었습니다. 밤늦게까지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가 집에 들어가기 일쑤였고, 이러한 생활이 1년 정도 지속되면서 학업은 뒷전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게임 중독뿐만 아니라 도벽까지 생겼다는 것입니다.

오락실과 친구들과의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처음에는 용돈을 사용했지만, 용돈이 부족해지자 아버지 지갑에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천 원짜리 한두 장에서 시작된 도벽은 점점 액수가 커져 만 원짜리, 심지어 5만 원짜리까지 훔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김 목사님은 당시 “만 원짜리를 훔치면 5만 원짜리도 훔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고 회상하며,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갔던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안타까워했습니다. 결국 아버지에게 도벽 사실이 발각되었고, 술에 취한 아버지는 새벽에 김 목사님을 깨워 충격적인 말을 쏟아냈습니다.

새벽에 술 취한 아버지는 김 목사님을 깨워 “네 방에 쓰레기밖에 없다”며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있어야지 왜 방에 있느냐”고 호통쳤습니다. 이 말은 어린 김 목사님에게 큰 상처가 되었지만, 돌이켜보면 아버지에게 더 큰 상처와 실망감을 안겨드린 사람은 바로 자신이었다고 김 목사님은 고백했습니다. 10대 시절의 방황은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큰 상처를 남겼지만, 바로 그 시기에 교회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문제아였던 김보성 학생이 교회에 출석하게 된 계기는 더욱 극적인데요, 아버지의 강압적인 결정 때문이었습니다.

김 목사님은 문제아 아들을 교회에 보내 인간이라도 되게 하려는 아버지의 강압에 의해 처음으로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술에 취해 “교회라도 가서 인간 좀 되라”며 등 떠밀 듯 교회에 보낸 아버지의 행동은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김 목사님의 가정은 대대로 귀신을 섬기는 집안이었고, 아버지 역시 교회를 다니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아들을 교회에 보낸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었으며, 김 목사님은 “마치 물이 포도주로 변한 것보다 더 큰 기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을 택하시고 부르셨음을 깨달았다고 간증하며, 성경 구절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를 인용했습니다.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지만, 김 목사님의 학창 시절은 여전히 순탄치 않았습니다. 소위 '불량 청소년'으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싸움과 같은 문제 행동을 일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김 목사님은 싸움을 주도하기보다는 오히려 약자였으며,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대상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내성적인 성격에 뚱뚱한 체격, 싸움도 못하고 공부도 못하는 김 목사님은 친구들에게 돈을 빼앗기거나 심부름을 당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심지어 점심시간에 학교 운동장 화장실로 끌려가 끔찍한 일을 겪기도 했습니다.

점심시간, 친구들에게 학교 운동장 화장실로 끌려간 김 목사님은 담배로 손등을 지지는 끔찍한 학교 폭력을 경험했습니다. 망을 보는 친구, 입을 막는 친구, 그리고 손등에 담뱃불을 지지는 친구까지, 끔찍한 폭력은 김 목사님에게 깊은 트라우마로 남았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의 상처가 잔상처럼 남아있다고 고백하며, 어두운 운동장 뒤편에서 괴롭힘 당하는 학생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고통스러운 경험은 훗날 김 목사님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고, 약자를 향한 깊은 공감과 사랑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폭력 사건 이후, 김 목사님은 운동을 시작하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고, 훗날 가해 학생들에게 “왜 그랬냐”고 물었을 때 “그냥”이라는 무책임한 대답을 들으며 더욱 마음 아파했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은 김 목사님을 더욱 성숙하게 만들었고, 상처 입은 영혼들을 품는 목회자의 길을 걷게 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김보성 목사님의 학창 시절에는 어두운 기억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힘든 시기 속에서도 김 목사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은인이 있었는데요, 바로 김제하 선생님이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담임이었던 김제하 선생님은 학교에서 가장 무서운 선생님으로 소문나 있었지만, 김 목사님에게는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어준 특별한 분이었습니다. 김제하 선생님은 야구방망이를 들고 다니며 학생들을 엄하게 지도했지만, 그 속에는 진심으로 제자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성적이 떨어진 학생들에게는 체벌을 가했지만, 그것은 단순한 벌이 아니라 제자들이 올바른 길로 나아가도록 돕기 위한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김제하 선생님의 엄격함 속에는 따뜻한 인간미가 숨겨져 있었고, 김 목사님은 선생님과의 만남을 통해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2학년 담임이었던 김제하 선생님과의 만남은 김 목사님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결벽증처럼 깔끔하신 성격의 김제하 선생님은 무섭기로 소문났지만, 제자들을 향한 깊은 애정을 가진 분이셨습니다. 시험 성적이 나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야구방망이(속칭 ‘빠따’)를 들고 교실에 들어와 학생들을 긴장시키곤 했지만, 체벌은 단순한 벌이 아니라 학생들을 바로잡기 위한 교육 방식이었습니다. 매를 맞으면서 선생님이 싫기도 했지만, 2학년이 끝나고 김제하 선생님으로부터 벗어났다고 생각했던 것도 잠시, 선생님은 졸업을 앞둔 김 목사님을 다시 찾아왔습니다. 어느 날 집으로 걸려온 전화, 수화기 너머 들려온 김제하 선생님의 목소리는 김 목사님을 다시 긴장하게 만들었습니다. “내일 아침 9시까지 마산역 광장으로 40리터 짐을 싸서 나오라”는 선생님의 갑작스러운 호출은 당황스러웠지만, 다음 날 아침 약속 장소에 나가보니 선생님은 단짝 친구 3명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산역 광장에서 김제하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난 김 목사님은 영문도 모른 채 거제도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거제도가 어디인지, 왜 가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불안감과 기대감이 뒤섞인 채 버스에 올랐습니다. 거제도에 도착해서 선생님이 데려간 곳은 포로수용소가 아닌 해금강이라는 아름다운 관광지였습니다. 유람선을 타고 해금강을 둘러보며 선생님은 “너희들이 푸른 청소년인데, 맨날 오락실 화면이나 만화책만 보지 말고 자연도 봐야 하지 않겠냐”며 훈계하듯 말씀하셨습니다. 유람선 관광 후에는 횟집으로 데려가 비싼 회를 마음껏 먹게 하시고, 숙소까지 마련해주시는 등 상상도 못했던 호사를 누리게 했습니다. 4일 동안 거제도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마산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김제하 선생님은 제자들에게 진심 어린 조언과 격려를 건넸습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김제하 선생님은 4명의 제자들에게 인생을 바꾸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선생님은 제자들의 지난 2년간의 형편없는 학업 성적을 언급하며, 부모님뿐만 아니라 학교 선생님들조차 제자들을 포기했을 것이라고 직설적으로 말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나는 너희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며 “지금부터라도 마음을 다잡고 공부하면 고등학교, 대학교도 갈 수 있고 꿈을 이룰 수 있다”고 격려했습니다. 그러면서 1년만 자신을 믿고 공부해보자는 제안을 했지만, 당시 200점 만점에 100점 수준이었던 김 목사님을 비롯한 제자들은 쉽게 마음을 열지 못했습니다. 마산 지역 명문고등학교의 커트라인은 180점 이상이었기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도전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김제하 선생님의 진심은 제자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4명 모두 기적을 향한 도전을 시작하게 됩니다.

김제하 선생님의 격려와 헌신적인 지도 아래, 김 목사님과 친구들은 기적을 만들어냈습니다. 선생님은 일주일에 세 번씩 김 목사님의 집에 방문하여 밤늦도록 공부를 가르쳤고, 합숙 훈련까지 감행하며 제자들을 헌신적으로 지도했습니다. 그 결과, 12월 연합고사에서 김 목사님은 200점 만점에 185점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다른 친구들도 모두 놀라운 성적 향상을 이루어 명문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만약 김제하 선생님과 같은 은인이 없었다면, 김 목사님은 고등학교는 물론, 대학 진학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입니다. 선생님의 헌신적인 사랑과 격려는 김 목사님의 인생을 180도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김 목사님은 김제하 선생님을 “인생 최고의 만남”이었다고 회상하며, 깊은 존경과 감사를 표했습니다.

학교 선생님 외에도 김 목사님에게는 교회에서 만난 또 다른 스승이 있었습니다. 중학생 때부터 교회에 출석했지만, 억지로 끌려 다니는 수준이었던 김 목사님은 고등학생이 되면서야 교회에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야간 자율 학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갑자기 쏟아진 비를 피하지 못하고 당황하고 있을 때, 교회에서 만난 문혜원 집사님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우산 없이 비를 맞고 있는 김 목사님과 친구를 발견한 문혜원 집사님은 자신의 차에 태워 교회 기도실로 데려갔습니다. 기도실에 앉혀놓고 기도해주신 후, 배고플 것을 염려하여 분식집에서 라면, 김밥, 떡볶이, 순대 등 푸짐한 간식을 사주시고 집까지 데려다주셨습니다. 문혜원 집사님의 따뜻한 사랑과 섬김은 김 목사님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고, 교회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주었습니다.

문혜원 집사님의 감동적인 섬김은 김 목사님에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학교까지 찾아와 간식을 사주고, 기도해주고, 집까지 데려다주는 문 집사님의 따뜻함에 감동한 김 목사님은 감사 인사를 기대했지만, 문 집사님은 칭찬 대신 따뜻한 격려 한마디를 건넸습니다. “보성아, 진우가 보고 싶었는데 얼굴 봐서 너무 좋았다”는 짧은 말이었지만, 그 진심 어린 격려는 김 목사님과 친구 진우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문혜원 집사님의 사랑과 섬김을 경험하면서, 김 목사님과 진우는 훗날 자신들도 문 집사님처럼 중고등부 교사가 되어 후배들을 섬기기로 다짐했습니다. 2년 후, 스무 살이 된 김 목사님과 진우는 실제로 문혜원 집사님 반의 보조 교사로 봉사하며 청소년 사역을 시작했고, 김 목사님은 그 후 25년간 청소년 사역에 헌신하게 됩니다. 문혜원 집사님의 사랑은 김 목사님에게 사역의 비전을 심어준 소중한 씨앗이 되었습니다.

김보성 목사님은 학교 선생님과 교회 선생님들의 사랑과 헌신 덕분에 비뚤어졌던 학창 시절을 극복하고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김제하 선생님의 격려와 지도, 문혜원 집사님의 따뜻한 섬김은 김 목사님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긍정적인 자아상을 형성하고 미래를 향한 꿈을 꾸도록 이끌었습니다. 김 목사님은 “만약 이분들과 같은 어른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감사를 표했습니다. 특히 문혜원 집사님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교회 와라’ ‘예배 참석해라’ 강요하지 않으시고, 늘 찾아와 밥을 사주시고, 여행을 함께 가주시면서 나를 존재 자체로 대해주셨다”며, 그 사랑이 평생 목회자의 길을 걷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강요나 훈계가 아닌, 조건 없는 관심과 따뜻한 마음임을 문혜원 집사님의 섬김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훌륭한 스승들의 영향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했지만, 김 목사님이 곧바로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아닙니다. 고등학교 시절, 중고등부 설교 대회에 참가했던 경험은 목회자의 꿈을 꾸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웅변 학원 경험을 살려 열정적으로 설교했지만, 청중들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비웃음 섞인 반응에 실망하고 좌절했지만, 중고등부 담당 목사였던 박정훈 목사님은 김 목사님을 격려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오늘 설교에 은혜를 받았고, 첫사랑을 회복해야겠다는 도전을 받았다”며 “지금부터 준비하면 훌륭한 목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박 목사님의 칭찬은 김 목사님에게 큰 용기와 희망을 주었습니다. 박정훈 목사님의 격려는 김 목사님 안에 숨겨져 있던 목회자의 꿈을 싹틔우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박정훈 목사님의 격려는 김 목사님에게 목회자의 꿈을 심어주었고, 이후 헌신적인 멘토링을 통해 꿈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박 목사님은 고등학생 시절 3년 동안 김 목사님을 친 아들처럼 아끼고 사랑하며 지도했습니다. 도서관에 데려가 공부를 가르치고, 밤늦도록 상담하며 마음을 보듬어주었습니다. 신앙생활에 게을러질 때면 따끔하게 혼내기도 하고, 고3 때는 매주 토요일 밤마다 무학산으로 데려가 기도 훈련을 시키는 등 학업과 신앙을 함께 성장시켜나갈 수 있도록 헌신적으로 도왔습니다. 박정훈 목사님의 사랑과 헌신은 김 목사님이 목회자의 길을 걷도록 이끈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목회자의 꿈을 꾸게 되었지만, 김 목사님이 곧바로 신학대학에 진학한 것은 아닙니다. 고등학교 시절 수련회에서 뜨거운 성령 체험을 한 것이 목회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수련회 첫날 밤, 기도 시간에 강렬한 성령의 불을 경험하고 3박 4일 동안 깊은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특히 자신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예수님의 사랑과 헌신에 감동받아 헌신을 결심하게 됩니다. 수련회 마지막 날 밤, 강사 목사님의 목회자 소명에 대한 설교를 듣고, 주체할 수 없는 감동과 함께 목회자의 길을 걷기로 서원했습니다. 수련회에서의 성령 체험은 김 목사님에게 목회자로서의 정체성을 확립시켜준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수련회에서 목회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지만, 아버지의 반대는 넘어야 할 큰 산이었습니다. 불신자였던 아버지는 아들이 목사가 되는 것을 극렬히 반대하며 “머리 깎고 절에 들어가라”는 극단적인 말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 목사가 되는 것을 결사반대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김 목사님은 갈등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아버지를 설득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는 “네가 성공하기 바라는 것이 아니라 평범하게 사는 것을 바란다”며 눈물을 글썽이셨습니다. 자신의 반대가 아들에게 상처가 될까 염려하면서도, 목사의 길이 얼마나 고생스러운 길인지 알기에 아들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진심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눈물은 김 목사님의 마음을 흔들었지만, 목회자의 길을 포기할 수 없다는 확신은 더욱 굳건해졌습니다.

아버지의 눈물에 흔들리기도 했지만, 김 목사님은 목회자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에게 “단 1분만 허락해달라”며 읍소했고,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신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진학했습니다. 신학과 대신 영어영문학과를 선택한 것은 아버지와의 타협이었지만, 김 목사님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목회자의 꿈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결국 아버지도 아들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묵묵히 응원하게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완강하게 반대했던 아버지는 현재 김 목사님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휴대폰에는 김 목사님의 이름이 “행복”이라는 두 글자로 저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과거 ‘블랙리스트’라 불렀던 아들을 ‘행복’이라 부르는 아버지의 변화는 김 목사님의 삶 속에서 일어난 놀라운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25년간 청소년 사역에 헌신했던 김 목사님은 울산 신정교회 담임목사로 청빙 받아 새로운 목회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청소년 사역과는 전혀 다른 작년(成年) 목회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담임목사직을 수락했습니다. 교회 부임 전, 장로님들과의 만남에서 “작년 목회 경험이 없어 부족하고 서툴지만, 최선을 다해 배우고 노력하겠다”고 겸손하게 말했습니다. 장로님들은 오히려 “목사님이 계신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며 따뜻하게 격려해주었고, 성도들의 따뜻한 환대와 격려 속에서 행복하게 목회하고 있다고 합니다. 새로운 사역지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기대와 설렘을 안고,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김 목사님의 모습은 감동적입니다.

김 목사님은 청소년 사역과 작년 목회의 차이점을 느끼면서도, 변함없이 행복하게 목회하고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25년간 청소년들과 함께하며 젊음을 바쳤지만, 이제는 작년들을 섬기는 목회를 통해 또 다른 기쁨과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과거 이문세 씨가 라디오 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에’ DJ를 그만둔 이유에 공감하며, 변화된 환경 속에서 새로운 역할을 감당해야 할 때임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청소년 사역을 내려놓는 것이 아쉽기도 했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울산 신정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한 것은 가장 지혜로운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변화된 환경 속에서도 긍정적인 마음으로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이고,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에 순종하는 김 목사님의 모습은 귀감이 됩니다.

김 목사님의 간증을 들으면서,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거제도로 향했던 4명의 학생들의 모습이 떠올랐다는 사회자의 말은 깊은 공감을 자아냅니다. 문제아 취급받던 학생들이 김제하 선생님의 사랑과 격려를 통해 변화되는 모습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극적이고 감동적입니다. 사회자는 “울퉁불퉁하고 못난 감자 같았던 학생들이 하나님의 손길을 통해 귀하게 쓰임 받는 모습”에 감탄하며, “학생들을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김 목사님 역시 “하나님께서는 부족하고 연약한 자들을 들어 들어 존귀하게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 주었습니다. 김 목사님의 간증은 우리에게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믿으며 나아갈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김보성 목사님은 자신의 인생 고백이 담긴 찬양 ‘아버지 사랑 내가 노래해’를 спойте 함께 불렀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하는 찬양 가사처럼, 김 목사님의 삶은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은혜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어두웠던 과거를 딛고 일어서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목회자로 쓰임 받는 김 목사님의 간증은 우리 모두에게 깊은 감동과 도전을 선사합니다. 우리의 상처를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이루어가시는, 김보성 목사님의 삶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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