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은미 전도사 간증: 두 다리 절단 극복과 믿음의 삶 이야기
두 다리를 잃고 얻은 믿음: 주은미 전도사의 감동 스토리
불같은 연단을 통해 정금같은 믿음을 주신 제 간증, 들어보실래요? - 주은미 전도사의 파란만장 인생 이야기
삶의 굽이마다 찾아오는 예상치 못한 고난, 과연 우리는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요? 오늘, 새롭게하소서에 출연하신 주은미 전도사님의 이야기는 바로 이 질문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용기를 선사합니다. 한국 교통 장애인 협회 교통사고 예방 상담 센터장이자 해명 교회 전도사로 활동하시는 주은미 전도사님은, 20세 꽃다운 나이에 겪은 기차 사고로 양쪽 다리를 잃는 절망적인 고난 속에서, 오히려 더욱 단단한 믿음을 발견하고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가셨습니다. 그녀의 파란만장했던 인생 여정을 통해, 고난을 극복하고 더욱 성숙한 믿음으로 나아가는 놀라운 이야기를 함께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모델, 전도사, 그리고 상담센터장: 다채로운 삶을 살아가는 주은미 전도사
주은미 전도사님은 현재 한국 교통 장애인 협회 교통사고 예방 상담 센터장과 해명 교회 전도사라는 두 가지 역할을 수행하고 계십니다. 뿐만 아니라, 과거에는 장애인 모델로도 활동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다채로운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모습은, 그녀가 고난을 딛고 얼마나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줍니다.
모델 활동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주 전도사님은 쑥스러운 듯 웃으시며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장애인 모델 협회의 개회를 기념하는 뜻깊은 자리에서, 다른 장애 유형을 가진 모델들과 함께 의족을 드러낸 채 런웨이를 걸었던 경험은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고 합니다. 세상의 편견과 시선에 맞서, 당당하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용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특히, 양쪽 의족을 착용한 채 짧은 스커트를 입고 워킹하는 모습은 큰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모델 활동은 단순히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장애 인식 개선에 대한 주 전도사님의 깊은 고민과 적극적인 실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평소 긴 치마를 즐겨 입던 그녀가, 일부러 의족을 드러내는 도전을 감행한 것은, 장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깨고, 더 많은 사람들이 장애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의미있는 시도였습니다. 주 전도사님은 모델 활동을 통해, 장애를 숨기기보다는 드러내는 것이, 오히려 사회적 편견을 극복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여전히 많은 어려움을 동반합니다. 주 전도사님은 일상생활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시선에 대한 솔직한 경험을 털어놓았습니다. 아이들은 무서워 울고, 어르신들은 신기하게 쳐다보는 시선은, 장애인들에게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의족을 인공 피부로 감싸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노력하는 것 또한, 이러한 시선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고자 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반영합니다. 하지만, 주 전도사님은 이러한 시선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더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며, 사회적 인식 개선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주 전도사님의 삶은 20세를 기점으로 극명하게 나뉩니다. 20세 이전의 삶은 꿈과 희망으로 가득 찬 평범한 학생의 삶이었지만, 기차 사고 이후 그녀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게 됩니다. 사고 당시, 대학교 합격이라는 기쁨에 들떠 새 구두를 신고 고향으로 향하던 길이, 예상치 못한 비극으로 이어질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기차 사고로 양쪽 다리 절단이라는 심각한 장애와 함께 척수 손상이라는 추가적인 고통까지 겪게 됩니다. 20세라는 젊은 나이에 겪은 끔찍한 사고는 그녀의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듯 했습니다.
1991년 1월 6일: 운명의 날, 기차 사고
1991년 1월 6일, 주은미 전도사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운명의 날입니다. 대학교 합격이라는 기쁜 소식을 안고, 예쁜 새 구두를 선물 받아 설레는 마음으로 고향으로 향하던 그녀는, 야간 열차 안에서 끔찍한 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영등포역에 도착하기 직전, 기차가 완전히 멈추기 전에 문이 열리는 안전 불감증과 눈으로 덮인 미끄러운 계단, 그리고 새 구두까지, 불행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겹쳐서 찾아왔습니다.
열차에서 내리려던 순간, 미끄러운 계단에 발을 헛디뎌 기차와 승강장 사이의 좁은 틈으로 떨어지고 만 것입니다. 순식간에 벌어진 사고에 미처 대응할 틈도 없이, 그녀는 기차 바퀴에 다리가 끼인 채 80미터나 끌려가는 끔찍한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머리를 난간에 부딪히는 충격으로 의식을 잃었고, 깨어났을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있었습니다. 예쁜 구두는 비극의 씨앗이 되어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습니다.
사고 직후, 신고를 받고 출동한 역무원은 움직이는 물체를 발견하고 기차를 멈춰 주 전도사님을 구조했습니다. 하지만, 사고 현장은 참혹했습니다.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오른손은 으스러져 있었으며, 온몸은 피투성이였습니다. 역무원은 그녀를 시신으로 오인했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그녀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이름, 전화번호, 주소를 읊조렸고, 기적적으로 가족에게 연락이 닿게 되었습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그녀의 이야기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사고 소식을 접한 가족들은 청천벽력같은 소식에 넋을 잃었습니다. 첫 주일 예배를 준비해야 했던 목사였던 아버지는, 설교를 위해 교회로 향하고, 어머니는 피투성이가 된 딸을 병원에서 지켜야 했습니다. 7시간에 걸친 머리와 다리 수술은 긴박하게 진행되었고, 어머니는 초조함과 절망감 속에서 수술 결과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주일 설교를 마친 후, 교인들에게 딸의 사고 소식을 전하며 기도를 부탁했고, 온 교인들은 눈물로 함께 기도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가족과 교인들의 간절한 기도는 주 전도사님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병원에 도착했을 당시, 주 전도사님은 의식 불명 상태였습니다. 두개골 골절로 인한 뇌손상은 심각했으며, 생명을 장담할 수 없는 위중한 상태였습니다. 의료진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양쪽 다리는 이미 기차 바퀴에 으스러져 절단이 불가피했습니다. 절단 수술은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선택이었지만, 20세 젊은 여성에게 양쪽 다리 절단은 상상하기 힘든 절망과 고통을 의미했습니다. 주 전도사님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운명에 의해 양쪽 다리를 잃게 되었습니다.
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난 주 전도사님은 자신의 몸에 일어난 변화를 직감했습니다. 온몸에 붕대가 감겨 있었고, 손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다리가 절단되었다는 사실은 애써 부정했습니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과 아버지로부터 양쪽 다리 절단 사실을 전해 들었을 때, 그녀는 비로소 현실을 직시해야 했습니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지만, 멍한 상태로 현실을 회피하고 부정하고 싶었습니다. 20년 인생이 송두리째 무너져내리는 듯한 절망감에 휩싸였습니다.
절망에 빠져있던 그녀에게 한 줄기 희망이 되어준 것은 아버지의 따뜻한 격려였습니다. 대학교 합격 여부를 묻는 딸에게, 아버지는 "의족을 착용하면 대학에 갈 수 있다"는 희망적인 말을 건넸습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아버지의 말은 그녀에게 삶의 의미를 다시 찾게 해 주었고, 견딜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용기를 주었습니다. 아버지의 격려는 절망의 늪에서 헤어나올 수 있도록 인도하는 빛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끝나지 않는 고통: 환상통과 욕창
양쪽 다리 절단이라는 육체적 고통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사고 후 1년 가까이 하반신 마비가 지속되었고, 신경이 회복되면서 극심한 통증이 시작되었습니다. 일주일 내내 잠을 설칠 정도의 고통은 마약성 진통제로도 제어되지 않았습니다. 환상통은 실제 존재하지 않는 다리에서 느껴지는 고통으로, 절단 장애인들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고통입니다. 진통제 없이는 단 5분도 잠들 수 없는 고통의 나날은 주 전도사님을 점점 지쳐 가게 했습니다.
통증과 함께 주 전도사님을 괴롭힌 것은 하반신 마비로 인한 수치심과 비참함이었습니다. 대소변 기능을 상실하여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야 했고, 남자 의료진에게 수치스러운 모습을 보여야 하는 현실은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무력감은 그녀를 더욱 절망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이런 모습으로 평생 살아야 하는 것일까?" 라는 두려움은 그녀를 괴롭혔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욕창까지 발생했습니다. 욕창은 장기간 와상 상태에 있는 환자에게 흔히 발생하는 질환으로, 피부와 조직이 괴사하는 무서운 합병증입니다. 엉덩이에 생긴 욕창은 점점 심해져 뼈가 드러날 정도였고, 고열과 염증을 동반하며 극심한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여름 장마철, 악화되는 욕창은 그녀를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모두 지치게 만들었습니다. 40일 동안 엎드려 지내야 하는 고통스러운 치료 과정은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절망감 속에서 주 전도사님은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절규를 쏟아냈습니다. "왜 나를 살려주셨나요?" 라는 원망은 매일 밤 그녀의 입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절박한 심정은 그녀를 괴로움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기도조차 나오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그녀는 신앙마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모태신앙으로 자라왔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마음 속에서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욥의 고백과 예레미야의 약속: 절망 속에서 찾은 희망
신앙적 회의감에 휩싸였던 주 전도사님에게 새로운 전환점이 찾아온 것은 성경 말씀을 통해서였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성경을 통독하며 말씀의 은혜를 경험했던 그녀는, 고난 속에서 다시 성경을 붙잡았습니다. 예레미야 29장 11절,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노니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는 말씀은 그녀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재앙 같았던 현실 속에서 소망을 이야기하는 말씀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말씀 뒤에 이어지는 구절,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는 약속은 그녀의 마음에 작은 불씨를 지폈습니다.
절망 속에서 하나님을 찾아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장로교 기도 방식과는 다르게, 고통 속에서 절박하게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하나님,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세요!" 라는 간절한 기도는 매일 밤 이어졌습니다. 고통은 여전히 계속되었지만, 기도를 통해 마음 속에 작은 평안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예레미야의 약속은 그녀에게 미래에 대한 소망을 품게 했고, 고통 속에서도 살아갈 힘을 주었습니다. "내가 더 살아가면 미래에 무언가 있을 것이다." 라는 희망은 그녀를 절망에서 건져 올리는 동아줄과 같았습니다.
욥기 말씀 또한 그녀에게 큰 위로와 도전을 주었습니다. 욥의 고난은 그녀의 고통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지만, 욥은 원망하거나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라는 욥의 고백은 주 전도사님에게 큰 충격과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건강한 다리를 주신 분도 하나님, 그것을 거두어 가신 분도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자, 마음 속에 놀라운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욥기 23장 10절,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는 말씀은 그녀에게 고난 속에서 연단되어 더욱 성숙한 믿음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었습니다.
예레미야의 약속과 욥의 고백을 통해 주 전도사님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새로운 삶을 향한 용기를 얻었습니다. 고통은 여전히 계속되었지만, 더 이상 죽음을 갈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살려주신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그녀를 붙들어주었습니다. 고난은 끝이 아니라, 더 큰 축복으로 나아가는 연단의 과정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절망은 희망으로, 원망은 감사로, 고통은 성장의 밑거름으로 변화되는 놀라운 역전이 일어났습니다.
새로운 시작: 복학과 든든한 동역자, 남동생
신경이 조금씩 회복되면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반신 마비로 걸을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기도의 힘과 재활 치료를 통해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허벅지 앞쪽에 감각이 돌아오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생기면서, 의족을 착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의족을 착용하고 처음 발을 내딛는 순간, 그녀는 세상을 다 얻은 듯한 기쁨을 느꼈습니다. 걷는 것은 단순한 행동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향한 도전이자 희망의 상징이었습니다.
복학 또한 기적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두개골 골절로 학업을 계속할 수 있을지 불확실했지만, 놀랍게도 학업에 지장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신학 공부는 그녀에게 큰 기쁨과 즐거움을 선사했습니다. 대학교 생활은 힘들었지만, 새로운 친구들과 교수님들의 따뜻한 격려와 응원 속에서 즐겁게 학교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특히, 신학과 동기들은 그녀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고, 함께 신앙을 나누고 교제하며 힘든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남동생의 헌신 또한 그녀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사고 당시, 죽어가는 누나를 보며 신학을 결심한 남동생은, 주 전도사님의 든든한 동역자가 되어주었습니다. 대학교와 대학원을 함께 다니며, 힘든 학교생활을 함께 이겨내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남매의 끈끈한 우애는 주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남동생을 통해 주 전도사님의 학교생활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습니다.
대학교 생활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5kg 나무 의족과 목발에 의지하여 학교를 다니는 것은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었고,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했던 당시 교통 수단과 시설 부족은 더욱 어려움을 가중시켰습니다. 택시 승차 거부, 엘리베이터 없는 5층 예배당은 일상적인 고통이었습니다. 하지만, 주 전도사님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신앙과 학업에 매진하며 결국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까지 진학하는 놀라운 성취를 이루어냈습니다. 총장상을 수상하며 졸업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고난은 그녀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고, 새로운 삶을 향한 의지를 불태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랑과 헌신: 캠퍼스 커플에서 행복한 부부로
대학원 진학은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대학원 동기이자 캠퍼스 커플이었던 남편과의 만남은 주 전도사님의 삶에 또 다른 행복을 선물했습니다. 남편은 신앙심 깊고 헌신적인 사람으로, 주 전도사님의 장애에도 불구하고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껴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외모나 성격 면에서 이상형은 아니었지만,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교제하면서 서로에게 깊이 끌렸습니다. 특히, 남편의 헌신적인 모습은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청소년 사역에 헌신하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은 그녀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결혼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시아버지의 반대는 극심했습니다. 막내아들에 대한 기대가 컸던 시어머니는 장애가 있는 며느리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했습니다. 2년 동안 결혼 반대는 계속되었고, 심지어 "내가 죽기 전에는 절대로 허락할 수 없다"는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에 휩싸였습니다. 하지만, 남편의 사랑과 헌신은 그녀를 포기하지 않게 했습니다.
남편은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주 전도사님과의 결혼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엄마 허락 없이 도망가서 같이 살자" 는 파격적인 프로포즈는 그녀를 당황하게 했지만, 진심이 담긴 프로포즈에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가족의 축복 없는 결혼은 원하지 않았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어머니의 마음이 변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결심했습니다. 결혼은 늦어질 수 있지만, 사랑은 변치 않을 것이라는 믿음은 그녀에게 인내할 힘을 주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시어머니의 마음에도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아들의 진심과 헌신적인 사랑에 감동받고, 주 전도사님의 진면목을 확인하면서 점점 마음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며느리 면접이라는 어색한 만남 자리에서, 시어머니는 주 전도사님을 껴안고 눈물을 쏟았습니다. 오랜 반대 끝에 마음을 열고 결혼을 허락한 것입니다. 결혼식 사진 속 시어머니의 굳은 표정은 여전히 어색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고부 관계는 회복되었고, 지금은 서로에게 든든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결혼 후, 두 사람은 두 아이를 낳아 행복한 가정을 꾸렸습니다. 예상치 못한 임신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처럼 소중한 두 아이는 가정에 큰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장애를 가진 엄마였지만, 아이들은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고, 오히려 엄마에게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두 아이는 주 전도사님에게 삶의 의미와 행복을 선사하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장애, 고통, 그리고 사명: 더 큰 그림을 그리다
두 아이를 키우며 사회복지사로 활동하면서, 주 전도사님은 장애인 사역에 헌신하게 됩니다. 장애인 직업학교에서 장애인 동료들을 만나면서, 장애인들이 겪는 어려움과 고통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장애인들의 자립과 권익 옹호를 위해 헌신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장애인 동료 상담 활동, 장애인 인식 개선 교육, 장애인 활동 지원사 양성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장애인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교통사고 예방 상담 센터장으로서, 교통사고로 장애를 입은 사람들을 상담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자신 또한 교통사고 장애인으로서, 상담 대상자들과 깊이 공감하고 소통하며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같은 고통을 겪은 사람으로서, 진심 어린 위로와 격려는 상담 대상자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장애인 당사자만이 할 수 있는 동료 상담은 주 전도사님에게 주어진 특별한 사명입니다.
장애인 사역을 통해, 주 전도사님은 자신의 고난이 단순히 개인적인 불행이 아니라, 더 큰 의미와 목적을 가진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고난을 통해 얻은 연단과 믿음은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고 돕는 귀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장애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전달하고, 사회적 편견과 차별에 맞서 싸우는 것은 그녀에게 주어진 소중한 사명입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그녀를 단련시키시고, 더욱 귀하게 사용하고 계십니다.
강단에서 예레미야 애가를 읊조리며 괴로워했던 과거를 회상하며, 주 전도사님은 지금의 자신을 돌아보며 감격에 젖었습니다. 고통 속에서 절규했던 시간은 이제 추억이 되었고, 그 고통 덕분에 더욱 성숙한 믿음과 사랑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고난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오히려 고난은 삶의 깊이와 풍요로움을 더해주는 귀한 선물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그녀를 정금 같이 만드셨고, 앞으로도 더욱 귀하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주은미 전도사님의 간증은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도전을 선사합니다. 예상치 못한 고난 속에서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굳건한 믿음으로 일어선 그녀의 삶은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줍니다. 고난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며,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그녀는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주은미 전도사님의 앞으로의 사역과 삶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오늘 방송을 통해 주은미 전도사님의 감동적인 간증을 전해주신 새롭게하소서 팀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주 전도사님의 이야기는 좌절과 절망 속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될 것입니다. 앞으로도 새롭게하소서는 다양한 분야에서 고난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가는 분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전해주기를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