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도가니 실화 고아원 생존자 조윤환 대표 충격 고발
'도가니'는 실화였다: 고아원 생존자 절규
영화 '도가니'를 떠올리게 하는 고아원의 충격적인 현실: 고아권익연대 조윤환 대표 간증 상세 정리
오늘 우리는 충격적인 영화 '도가니'를 떠올리게 하는 고아원의 현실과, 그 속에서 희망을 외치는 고아권익연대 조윤환 대표님의 이야기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영화 '도가니'는 장애 학생 성폭력이라는 끔찍한 현실을 모티브로 제작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슬픔과 분노를 안겨주었는데요, 안타깝게도 영화 속 이야기가 현실에서도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더욱 마음 아프게 합니다.
오늘 만나볼 조윤환 대표님은 고아원에서 성장하며 겪었던 수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딛고, 현재는 고아원 후배들을 위해 헌신하는 분이라고 합니다. 그의 간증을 통해 우리는 영화 '도가니'를 떠올릴 만큼 충격적인 고아원의 현실을 마주하게 될 것이며, 동시에 그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의 메시지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자, 그럼 고아권익연대 조윤환 대표님의 이야기를 통해 어둡고 슬픈 현실 속 한줄기 빛을 함께 찾아보는 시간을 가져볼까요?
고아권익연대, 잃어버린 뿌리를 찾는 여정에서 시작된 단체
조윤환 대표님은 자신을 "뿌리를 찾기 위해 떠난 여정 속에 단체를 만든 사람"이라고 소개하며, 고아권익연대의 시작을 설명했습니다. 일반적인 단체들이 아이들을 돕고 케어하는 데 집중하는 반면, 고아권익연대는 잃어버린 뿌리, 즉 고아들의 정체성을 찾아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데요, 이는 대표님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깊은 통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표님은 "다른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가진 것을 주려고만 했지만, 저는 아이들이 잃어버린 것을 찾아주고 싶었다"라고 강조하며, 단체의 설립 취지를 분명히 했습니다. 6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부모에게 버려진 아픔을 겪은 그는, 잃어버린 부모와 가족, 그리고 자신의 뿌리에 대한 갈망이 얼마나 큰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터미널에 버려진 여섯 살 아이, 잊을 수 없는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
조윤환 대표님은 6살 때 서울의 한 터미널에서 어머니에게 버려졌다고 고백하며, 가슴 아픈 과거를 회상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만나고 오겠다며 대표님에게 야구복을 사주고 좋은 옷을 입혔다고 하는데요, 당시 야구복을 사주는 어머니의 모습에 기뻐했던 어린아이에게 닥칠 슬픔을 우리는 감히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어머니가 곧 돌아오실 줄 알고 터미널에서 계속 기다렸지만, 해가 져도 어머니는 오지 않으셨습니다." 대표님의 담담한 고백은 듣는 이들의 마음을 더욱 먹먹하게 만듭니다. 해가 지도록 터미널에서 홀로 어머니를 기다렸을 어린아이의 외로움과 두려움은 얼마나 컸을까요?
어두워질 무렵, 경찰관이 다가와 대표님을 아동복지시설로 데려갔다고 합니다. 경찰관과 함께 어머니를 찾아 터미널 주변을 둘러보던 중, 분홍색 원피스를 입은 뒷모습을 보고 어머니인 줄 알고 달려갔지만, 낯선 사람이었다는 가슴 아픈 기억을 털어놓았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버려졌다는 현실이 뒤섞여 어린아이에게 얼마나 큰 상처로 남았을지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경찰서에서 잠든 밤, 꿈속에 나타난 어머니는 귀신처럼 변해 사라졌다고 합니다. 꿈에서 깨어난 후 아동복지시설로 가게 되었다는 대표님의 이야기는, 어린 시절 겪었던 충격과 상처가 얼마나 깊었는지 짐작하게 합니다.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아동복지시설, 6살 아이의 생존 투쟁
대표님이 처음 발을 들인 아동복지시설은, "시체가 날마다 나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끔찍한 곳이었다고 합니다. 시설에 도착하자마자 엎드려뻗쳐 빠따를 맞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6살 어린아이에게 공포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여기서는 나쁜 짓을 하면 죽는 곳이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생존 본능을 느껴야 했다는 대표님의 이야기는 충격적입니다.
어머니의 동전을 훔치던 어린 시절의 잘못된 습관조차, 그곳에서는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을 직감했다고 합니다. 폭력과 공포가 지배하는 시설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린아이는 스스로를 억압하고 통제하는 법을 배워야 했던 것입니다.
아버지의 부재와 어머니의 재혼, 버려진 아이들의 슬픈 운명
어머니가 아버지를 찾아 터미널에 갔다고 했지만, 사실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고 합니다. 카센터를 운영하던 아버지는 어머니와 결혼 전부터 외할머니의 반대에 부딪혔다고 하는데요, 어려운 환경 속에서 가정을 꾸려나갔지만,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지고 도박에 빠지면서 가정은 더욱 불안정해졌습니다.
교통사고로 6개월간 병원에 입원한 아버지 대신, 외할머니는 6개월 가출 신고를 통해 강제로 이혼 절차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새아버지와 재혼을 계획했지만, 새아버지 쪽에서 아들이 있다는 이유로 대표님을 탐탁지 않아 했다고 합니다. 결국 대표님은 어머니에게 버려지고, 누나는 이미 몇 달 전에 시설에 맡겨진 상황이었다고 하는데요, 어린 시절 겪었던 가족 해체의 아픔은 그의 삶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지만, 시설 아이들의 부모님들에게 대부분 특별한 이유나 명분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표님의 말은 시설에 버려지는 아이들의 현실이 얼마나 비극적인지 보여줍니다. 가난 때문에, 혹은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아이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는 변명조차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86년도의 아동 유기 실태, 경찰과 시설의 무관심 속에 방치된 아이들
86년도 당시, 아이들이 버려지는 것은 흔한 일이었고, 경찰은 부모를 찾아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이를 시설에 넣는 것이 당연한 수순처럼 여겨졌고, 국가 시스템 또한 이러한 현실을 방치했다고 비판했습니다. 경찰은 대표님을 고아원보다 더 심각한 집합소, 즉 아동일시보호소에 보냈다고 합니다.
아동일시보호소는 아이들을 '생산'하는 곳과 같았다고 표현하며, 시설의 어두운 면을 폭로했습니다. 원장들은 아이들을 '노예 시장'에서 고르듯이 데려갔고, 아이들은 시설 운영을 위한 '소모품'처럼 취급되었다고 비판했습니다. 86년도라는 비교적 최근의 시기에, 대한민국에서 이런 끔찍한 현실이 벌어졌다는 사실은 충격적입니다.
6개월에서 1년 후, 대표님은 충남 부여의 한 고아원으로 옮겨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12명의 아이들과 함께 봉고차에 실려 고아원으로 향하는 길, '좋은 곳에 간다'는 말과는 달리,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폭력과 학대, 그리고 억압적인 시설 생활뿐이었습니다.
고아원의 폭력과 억압, 파리대왕을 떠올리게 하는 잔혹한 현실
고아원에서의 폭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선배들은 '파리대왕' 영화처럼 아이들끼리 질서를 잡았고, 폭력은 일상적인 풍경이었다고 합니다. 울음소리를 없애기 위해 입에 재갈을 물리고 구타하는 것은 예삿일이었고, '눈치'가 없으면 더욱 심한 폭력에 시달려야 했다고 합니다.
"저는 눈치가 빨라서 덜 맞았지만, 그래도 많이 맞았습니다." 대표님의 말은 고아원 내 폭력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짐작하게 합니다. 어린아이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정서적, 신체적으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됩니다.
선생님들은 폭력을 막지 못하고 방관했다고 합니다. 20대 초반의 젊은 여성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폭력 앞에서 무력했고, 오히려 폭력을 부추기는 선배들의 눈치를 봐야 했다고 합니다. 폭력적인 환경 속에서 아이들을 보호해야 할 어른들의 부재는 더욱 안타깝습니다.
'소풍'이라는 이름으로 산에 끌려가 집단 구타를 당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선생님들은 '신호'를 보내는 아이들을 돕기 위해 소풍을 갔지만, 소풍은 오히려 더 심한 폭력에 노출되는 장소였다고 합니다. 좁은 공간에 갇힌 아이들은 폭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쳇바퀴를 맴돌았습니다.
밥벌레 나오는 밥, 선착순 도시락, 1년에 500원 용돈, 열악한 시설 환경
고아원의 식사는 밥벌레가 나오는 밥, 김치, 무국 등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고 합니다. 계란 후라이는 꿈도 꿀 수 없었고, 도시락은 선착순으로 지급되어 80명 중 40~50명만 겨우 먹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1년에 용돈은 단 500원에 불과했고, 명절이나 연말에 후원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혼인 이불 덮고 잘 살고 있다'는 거짓말로 후원금을 갈취했다고 폭로했습니다.
원장의 횡령과 비리는 당연한 일처럼 여겨졌고, 아이들의 기본적인 권리는 무시되었다고 합니다. 시설의 부정부패는 아이들의 삶을 더욱 갉아먹는 암적인 존재였습니다. 학교는 의무적으로 보냈지만, 도시락조차 제대로 챙겨주지 않아 아이들은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학교는 오히려 폭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천국'과 같았다고 합니다. 학교에서는 또래들과 주먹다짐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고, 고아원에서 겪는 폭력에 비하면 학교 폭력은 오히려 '애교'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학교 친구들은 도시락 반찬을 나눠주기도 했고, 학교는 고아원 아이들에게 유일한 '쉼터'였습니다.
입양은 '시설의 수익 사업'?, 아이들의 입양을 막는 시설의 이기심
고아원에서는 아이들의 입양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시설은 아이들을 '수익'으로 생각했고, 입양은 시설의 '수익'을 감소시키는 행위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입양을 보내는 대신, 시설은 새로운 아이들을 '채워 넣어' 정원을 유지하는 데 급급했습니다.
입양을 원하는 사람들조차 어린아이, 특히 '학생'을 선호했기 때문에, 대표님처럼 나이가 있는 아이들은 입양 대상에서 제외되었다고 합니다. 시설과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고아원 아이들은 '시설'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습니다.
이름 없는 할머니 선교사, 닫힌 마음을 열다
어두웠던 시설 생활 중에도 한 줄기 빛이 있었으니, 바로 '이름 없는 할머니 선교사'였다고 합니다. 매주 일요일, 아이들이 가장 신나게 뛰어놀 시간, 할머니는 어김없이 고아원을 방문했습니다. 아이들은 할머니를 싫어했지만, 대표님은 왠지 모르게 할머니에게 마음이 끌렸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아이들에게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할머니를 사랑하고, 너희들도 사랑한다고 말씀하셨다는 할머니의 이야기는 어린아이들의 마음속에 작은 씨앗을 심었습니다. 할머니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아이들은 할머니의 죽음을 슬퍼했습니다.
할머니의 추도식에서, 대표님은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과 할머니가 자신을 내려다보는 환상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때 처음으로 '하늘나라'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게 되었고, 하나님에 대한 궁금증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장전도사님의 기도, 성경 말씀으로 시작된 변화
할머니 선교사님 이후, 장전도사님이 고아원을 방문하여 아이들에게 성경 말씀을 전했다고 합니다. 하루에 성경 한 장씩 읽는 아이에게 '기도 응답의 축복'을 약속했고, 대표님은 호기심에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매일 성경을 읽으며 대표님은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알라딘의 요술램프 지니처럼, 하나님은 저의 모든 기도에 응답해주셨습니다." 대표님의 간증은 성경 말씀을 통해 삶의 변화를 경험한 사람의 진솔한 고백입니다. 싸움에서 지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 운동을 잘하게 해달라는 기도, 솔로몬과 같은 지혜를 달라는 기도 등, 어린 시절의 간절한 기도에 하나님은 응답해주셨습니다.
특히 '솔로몬의 지혜'를 구하는 기도는 학업 성적 향상이라는 놀라운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중학교 2학년 2학기, 갑자기 공부에 재미를 느끼고 방학 동안 밀린 공부를 시작했고, 학기말 시험에서 전교 8등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시설에서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대표님은 'VIP' 대접을 받으며 시설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11조 헌금과 도둑질 중단, 말씀대로 살아가려는 노력
하나님을 믿게 된 후, 대표님은 11조 헌금을 시작하고, 친구와 함께 했던 도둑질을 그만두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1000원 용돈에서 100원을 떼어 11조 헌금을 하고, 친구에게 도둑질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했지만, 친구의 충격에 6개월만 더 함께 도둑질을 해주기로 했다는 에피소드는 웃음을 자아냅니다.
하나님을 믿고 말씀을 지키려는 노력은, 폭력과 거짓이 난무하는 고아원 생활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는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하지만 시설 내 서열이 높아지면서, 과거 선배들의 폭력적인 모습을 답습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을까요?
교만과 방황, 그리고 다시 하나님께로
중학교 시절, 싸움과 공부 모두 '1등'을 놓치지 않으면서 대표님은 점점 교만해졌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잊고,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고 착각하게 된 것입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폭력을 휘두르고, 공부는 뒷전으로 미루는 등 방황하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대표님을 '광야'로 내모셨다고 표현하며, 다시 훈련시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기초적인 것, 즉 공부를 막아버리자 대표님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졌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고, 미래에 대한 희망조차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절망적인 순간, 대표님은 다시 성경을 펼쳐들고 하나님께 매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창세기부터 다시 성경을 읽고, 전도 활동을 시작하면서 대표님은 서서히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다시 '지혜'를 허락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고아원 폐쇄, 새로운 시작과 시련
고등학교 2학년 때, 대표님이 다니던 고아원이 비리 문제로 폐쇄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시설 아이들을 '괴물' 취급하며 경계하는 시선 속에서, 18명의 아이들은 다른 시설로 뿔뿔이 흩어지게 됩니다. 대표님은 경기도 양평의 한 시설로 옮겨지게 되었는데, 그곳은 이전 시설과는 전혀 다른 '천국'과 같은 곳이었다고 합니다.
종합고등학교였던 양평의 시설은 다양한 활동과 행사가 많았고, 특히 '찬양 모임'은 대표님에게 큰 충격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공부만 강요했던 이전 시설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고, 비로소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자유'를 경험하게 됩니다.
찬양 모임 리더를 맡으면서, 대표님은 다시 학업에 집중할 수 있었고, 전교 13등이라는 우수한 성적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사회복지학과 신학을 공부하면서 대표님은 사회복지사의 꿈을 키워나갔습니다.
사회복지사의 길, 그러나 채워지지 않는 갈증
대학 졸업 후, 사회복지관에서 일하게 되었지만, 대표님은 여전히 갈증을 느꼈다고 합니다. 회의만 반복되는 형식적인 업무, 탁상공론만 일삼는 사회복지사들의 모습에 실망감을 느꼈고, 자신이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됩니다.
시설 아이들을 '기압' 잡는 데는 능숙했지만, 사회 부적응 청소년들을 '훈육'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습니다. 시설과 사회는 전혀 다른 시스템으로 움직였고, 시설에서 통용되던 방식은 사회에서는 오히려 '문제'를 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결국 사회복지사 일을 그만두고 택시 운전을 시작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고 합니다. 택시 운전은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 다양한 인생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였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남아있었습니다.
아내와의 만남, 그리고 새로운 시작
신학대학원에서 만난 아내는, 대표님의 삶에 큰 전환점을 가져다준 존재라고 합니다. 기독교 상담학과를 졸업한 아내는 따뜻하고 이해심 많은 사람이었고, 대표님의 아픔을 감싸주고 사랑으로 채워주었습니다. 하지만 결혼까지 가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장인어른의 반대는 예상보다 거셌습니다. '고아' 출신이라는 편견, 빚 때문에 불안정한 경제 상황 등, 장인어른은 결혼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과거 여자친구 아버지였던 목사님에게도 거절당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대표님은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아내를 향한 사랑과 믿음은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3년 후에 다시 결혼을 생각해보자는 장인어른에게, 대표님은 3년 안에 빚을 모두 갚고,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다시 찾아뵙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진심을 담아 설득했고, 결국 장인어른은 결혼을 허락했습니다.
결혼 후, 1700만원의 빚, 300만원의 예금, 처남 집에 얹혀사는 셋방살이 등, 현실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내와 함께 어려움을 헤쳐나가면서, 대표님은 비로소 '가정'의 소중함을 깨닫게 됩니다.
고아 출신이라는 꼬리표, 결혼의 현실적인 어려움
고아원 출신이라는 꼬리표는 결혼이라는 현실 앞에서 더욱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사회적인 편견, 경제적인 어려움, 문화적인 차이 등, 고아 출신은 결혼 시장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표님 역시 장인어른의 반대를 겪으면서, 고아 출신들이 겪는 결혼의 어려움을 뼈저리게 실감했습니다.
어머니는 고아 출신 아버지를 둔 탓에 딸들에게 '고아는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고 합니다.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은 사랑을 줄 줄 모른다는 어머니의 편견은, 고아 출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내 딸이 고아와 결혼한다면, 저 역시 반대할 것입니다." 대표님의 솔직한 고백은, 고아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얼마나 냉담한지 보여줍니다. 고아 문제는 단순히 '불쌍한 아이들'을 돕는 차원을 넘어, 사회 전체의 인식 변화와 제도 개선이 필요한 심각한 문제인 것입니다.
자녀 양육,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깊은 이해
자녀를 키우면서, 대표님은 비로소 어머니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고아원에서 자란 자신과는 달리, 자녀들에게는 따뜻한 보살핌과 사랑을 듬뿍 주면서, 어머니의 선택이 얼마나 가슴 아픈 것이었는지 깨닫게 된 것입니다.
고아원을 크게 지어 좋은 시설을 만들겠다는 꿈은,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키우면서 '가정 중심'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시설이 아닌 가정에서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도록 돕는 것이, 고아 문제 해결의 근본적인 해법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최근, 과거 자신을 예뻐했던 고아원 원장님과 통화하면서, 시설 시스템의 문제점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고 합니다. 원장님은 자신의 자녀는 시설에 하루도 맡기지 못하면서, 아이들에게는 '좋은 시설'에서 자라라고 강요하는 모순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법적으로 시설 원장은 아이들의 '계부', '계모'일 뿐, 진정한 '부모'가 될 수 없다는 현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고아 문제 해결의 해법, '가정'으로 돌아가는 것
고아 문제 해결의 근본적인 해법은, 고아를 '가정'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가정 위탁, 입양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시설이 아닌 가정에서 아이들이 자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며, 무엇보다 '고아가 생기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합니다.
"강아지도 함부로 버리지 못하는 시대, DNA 검사를 통해 완전 범죄가 불가능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대표님은 DNA 검사를 통해 친부모를 찾을 수 있게 되면서, 아이를 버리는 부모들의 책임감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별 노래 버스킹, 고아의 아픔을 알리다
고아 문제 해결을 위해 문화적인 접근도 시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별 노래 버스킹을 통해 고아들이 겪는 '이별의 아픔'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별 노래 속에 담긴 슬픔은, 고아들이 겪는 아픔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는 것을 강조하며, 사회적인 관심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아이의 최상의 환경은 당신, 부모 자신입니다." 어떤 시설도, 어떤 제도도 부모의 사랑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며, 부모의 책임을 강조합니다. 고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의 인식 변화와 함께, '가정'의 중요성을 되새기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합니다.
잃어버린 권리 찾기, 잠자고 있는 권리를 깨우다
고아들에게 잃어버린 권리를 찾아주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고 합니다. 시설에서 받아야 할 '자립정착금'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사회에 내몰리는 고아들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권리 찾기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과거 시설에서 받지 못했던 자립정착금을 소송을 통해 받아내고, 고아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시설은 아이들에게 부모이자 세상의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시설은 아이들의 권리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대표님은 시설의 폐쇄적인 문화, 권리 의식 부재 등을 지적하며, 고아들이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알고 행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자립정착금 미지급 문제 해결, 제도 개선을 이끌어내다
고아권익연대의 노력으로, 자립정착금 미지급 문제를 해결하고 제도 개선을 이끌어내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과거 받지 못했던 자립정착금을 뒤늦게 지급받도록 돕고, 제도 개선을 통해 앞으로 고아들이 정당한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시설 아동 협회가 '원장님들의 모임'이었지만, 이제는 '아이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단체로 변화해야 합니다." 대표님은 시설 운영자 중심의 협회에서 벗어나, 아이들의 권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단체로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사야 1장 27절 말씀, '고아의 한을 풀어주라'
고아권익연대의 활동은 이사야 1장 27절 말씀, "너는 정의로 시온을 구속하며, 의로 그에게 돌아오는 자들을 구속하리라"는 말씀에 근거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고아들에게 주신 사명은 단순히 '돌보는 것'을 넘어, '한을 풀어주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고아들의 억울함과 슬픔을 풀어주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고아권익연대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 용기를 내어 세상 밖으로 나오세요
마지막으로, 대표님은 시설에서 자란 선배, 후배, 동료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었습니다. "이제 사회도 고아들을 받아줄 준비가 되어 있고, 고아권익연대와 사회가 함께 아픔을 나누고 위로해줄 수 있으니, 더 이상 혼자 고통스러워하지 말고 세상 밖으로 나오세요."라고 따뜻하게 격려했습니다.
"혼자 끙끙 앓다 세상을 떠나지 마시고, 아픔과 한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우리 단체와 사회가 있으니, 언제든 찾아와 위로받으세요." 대표님의 진심 어린 외침은, 고아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연대를 촉구하는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모든 아이들이 시설이 아닌 가정에서 자랄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고 노력합시다." 고아 문제 해결을 위한 기도와 실천을 강조하며, 긴 인터뷰를 마무리했습니다. 조윤환 대표님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에 깊은 울림을 주며, 고아 문제 해결을 위한 뜨거운 열정과 희망을 불어넣어주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