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소년 서상복 목사 감동 실화, 선미의 스승 인생 이야기
늑대소년 서상복 목사, 웃음과 눈물의 감동 인생
웃음과 눈물, 감동으로 가슴을 적시는 이야기: 가수 선미의 스승, 서상복 목사의 인생 여정
이번 글에서는 가수 선미 씨의 선생님이자, 많은 이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선사하는 서상복 목사님의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를 상세히 정리하고, 그 속에 담긴 삶의 지혜와 노하우를 깊이 있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서상복 목사님은 해피가정사역연구소 소장으로, 새롭게하소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여 늑대소년과 같은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초등학교 교사, 상담 목회자로 살아온 감동적인 삶의 궤적을 진솔하게 풀어내셨는데요, 그의 이야기는 단순한 개인사를 넘어, 우리 모두에게 깊은 울림과 교훈을 전달합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서상복 목사님의 삶 속으로 함께 떠나보시죠.
늑대와 함께 자란 소년, 서상복
서상복 목사님은 어린 시절 늑대와 함께 4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주영훈 님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6학년까지 깊은 산 속에서 늑대들과 함께 지낸 특별한 경험을 털어놓았는데요, 보통 사람이라면 늑대를 무서워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어린 서상복 목사에게 늑대는 친구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는 늑대가 무섭지 않았냐는 질문에 "무서웠죠. 그런데 저는 그게 늑대인 줄 몰랐어요. 더 중요한 것은 늑대도 제가 사람인 줄 몰랐어요." 라고 답하며 당시 상황을 회상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늑대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순수한 시절, 그는 늑대들과 교감하며 외로움을 달랬습니다.
그가 늑대와 함께 지내게 된 배경에는 안타까운 가족사가 있었습니다. 서상복 목사님의 할아버지는 한센병을 앓고 계셨고, 아버지는 일찍 가출하셨다고 합니다. 깊은 산골, 첫 이웃집이 88km나 떨어져 있는 외딴 곳에서, 그는 한센병을 앓는 할아버지와 함께 격리된 듯한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찾아 집을 자주 비우셨고, 누나들은 일찍이 남의 집 식모살이를 떠났기에, 그는 사실상 혼자 외롭게 지내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이러한 외로운 환경 속에서 늑대는 그의 유일한 말벗이자 친구가 되어주었던 것이죠.
흥미로운 점은 늑대들도 서상복 목사를 사람으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늑대 역시 사람을 처음 보았기에 서로의 정체를 몰랐던 것입니다. 버려졌다는 공통점을 가진 소년과 늑대는 서로에게 의지하며 산 속에서 특별한 우정을 쌓아갔습니다. 마치 영화 <늑대소년>의 현실판과 같은 이야기는 듣는 이들에게 깊은 감동과 놀라움을 선사합니다.
학교 대신 늑대와, 학교 대신 농사와
깊은 산골에서 늑대와 함께 자란 서상복 목사님에게 학교는 먼 세상 이야기였습니다. 학교는 산을 두 개나 넘어야 도착할 수 있는 먼 곳이었고, 한 달에 한두 번 학교에 가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가정 환경과 어려운 형편은 그에게 학교 대신 농사일을 강요했습니다. 할아버지는 몸이 불편하셨기에,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서상복 목사는 농사일을 도맡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학교에 대한 열망은 컸습니다. 초등학교 입학 통지서도 받지 못했지만, 스스로 학교를 찾아갔을 정도였는데요, 하지만 학교 선생님은 그에게 "말을 할 줄 모르네. 1년 있다가 다시 학교 와" 라고 말하며 입학을 거부했습니다. 결국 그는 2학년이 되어서야 제대로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학교에 가는 날보다 산에서 늑대와 함께, 밭에서 농사를 짓는 날이 더 많았지만, 학교에 대한 그의 열정은 식지 않았습니다.
학교 선생님들의 따뜻한 배려도 있었습니다. 학교에 자주 나오지 못하는 그를 위해 결석 처리를 하지 않고, 한 달에 한 번씩 건빵 한 가마니를 지게에 지고 산 속 집까지 찾아와 전달해주었던 것이죠. 선생님들의 이러한 따뜻한 마음은 어린 서상복 목사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건빵을 너무 많이 먹어 배탈이 나 뒹굴었던 에피소드는 당시의 순수했던 시절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외로움 속에서 피어난 우정, 그리고 꿈
외딴 산골,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는 환경 속에서도 서상복 목사님은 친구를 사귀고 싶어 했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은 마음은 당연한 것이었는데요, 그는 9km나 떨어진 마을까지 일주일에 한두 번씩 '출장'을 갔습니다. 마을 아이들과 놀기 위해서였죠. 놀랍게도 그는 마을 아이들 사이에서 '골목대장'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운동도 잘하고 덩치도 컸던 그는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습니다. 외로움 속에서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잃지 않았던 그의 성격이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산에서는 늑대와 친구가 되어주고, 마을에서는 골목대장이 되었던 서상복 목사님. 그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나무를 베어 밭을 일구는 등, 어른도 하기 힘든 일을 해냈다는 사실은 그의 강인한 정신력을 보여줍니다. 아이들과 신나게 뛰어놀고, 저녁 늦게 홀로 산길을 돌아 집으로 향하는 그의 모습은 외로워 보이지만, 그 속에서 그는 자신만의 꿈을 키워나가고 있었습니다.
따뜻한 할아버지의 사랑, 그리고 천자문 교육
서상복 목사님에게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할아버지가 계셨습니다. 한센병으로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였지만, 그는 손자에게 끊임없는 사랑과 지지를 보내주셨습니다. 평생 단 한 번도 잔소리를 하지 않으셨다는 점에서 할아버지의 인품을 짐작할 수 있는데요, 서상복 목사님은 할아버지의 따뜻함을 자신의 성품이 할아버지를 닮은 것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천자문을 가르쳐주시기도 했습니다. 한글을 배우기도 전에 천자문을 먼저 뗐다는 사실은 그의 뛰어난 학습 능력을 보여줍니다. 할아버지의 교육 덕분에 그는 똑똑하게 자랄 수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단순한 교육뿐만 아니라, 삶의 지혜와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손자에게 심어주셨습니다. "상보가, 이 할아버지 냄새나고 더럽지 않냐?"는 질문에 "더럽지 않았어요" 라고 답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은 할아버지와의 깊은 유대감을 보여줍니다.
할아버지와의 이별은 갑작스럽게 찾아왔습니다.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아버지가 나타나 그를 데리고 탄광촌으로 향하게 되면서 할아버지와 헤어지게 된 것입니다. 안동 성장원으로 할아버지를 보내고 한 달에 한 번씩 찾아뵈었지만, 예전처럼 함께 살 수 없다는 사실은 그에게 큰 슬픔을 안겨주었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오히려 손자를 격려하며 "상보가, 할아버지 걱정하지 마. 할아버지 외롭지 않아. 네가 전한 예수를 믿고 새벽 기도를 4시간씩 한다. 새벽 기도 끝나면 정신 먹어. 새벽 기도 4시간 중에 거의 3시간은 너를 위해 기도해." 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손자를 향한 할아버지의 깊은 사랑과 믿음은 감동적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용돈을 모아줬다는 것입니다. 나라에서 나오는 돈과 손자가 신문 배달로 번 돈을 모아 손자에게 학용품과 참고서를 사주라고 했던 것이죠. 할아버지의 헌신적인 사랑 덕분에 서상복 목사는 학업에 집중할 수 있었고, 더 나아가 꿈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할아버지가 자신을 돌본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할아버지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그는 고백합니다. 할아버지의 사랑은 서상복 목사님의 삶의 원동력이 되었으며, 그를 따뜻하고 긍정적인 사람으로 성장시키는 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라면땅과 초가 교회, 그리고 새벽기도
서상복 목사님이 신앙을 갖게 된 계기는 라면땅과 초가 교회였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마을에 '출장' 갔다가 동네 할머니에게 라면땅을 얻어먹고 초가 교회에 발을 들인 것이죠. 라면땅에 이끌려 간 초가 교회에서 그는 은퇴한 전도사님을 만나게 되었고, 처음으로 찬송가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찬송가는 바로 "울어도 못하네" 였습니다.
"울어도 못하네" 찬송을 듣는 순간, 그는 눈물을 쏟으며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산과 밭, 별을 보며 신의 존재를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지만, 찬송가를 통해 비로소 그 신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자신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동받아, 그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영접했습니다.
신앙을 갖게 된 후, 그는 매주 교회에 나갔고, 집에 돌아와서는 할아버지에게 설교를 해주었습니다. "할아버지, 앉아보세요." 라고 말하며 교회에서 들은 말씀을 할아버지에게 전했던 것이죠. 구주 예수 의지를 찬양하고, 복음을 전하는 손자의 모습에 할아버지도 감동을 받았을 것입니다. 손자의 설교를 통해 할아버지 역시 신앙이 깊어졌고, 새벽기도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손자가 전해준 복음으로 할아버지 역시 하나님을 영접하게 된 것입니다. 산골 오두막에서 손자와 할아버지가 함께 예배를 드리는 모습은 그 어떤 예배보다 값진 풍경이었을 것입니다.
중학교 시절, 탄광촌으로 이사 간 후에도 그의 새벽기도는 계속되었습니다. 매일 새벽, 교회로 달려가 기도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게 만들어갔습니다. 새벽기도를 통해 그는 큰 위로와 힘을 얻었고,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거의 매일 새벽기도에 참석했다는 사실은 그의 굳건한 믿음을 보여줍니다. 새벽기도는 그의 삶의 중심이었고, 그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탄광촌 막장 인생, 그리고 아버지의 폭력
중학교 시절, 서상복 목사님은 아버지와 함께 탄광촌으로 이사를 가게 됩니다. 아버지는 탄광에서 일하며 학비를 벌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탄광촌의 삶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탄광은 위험하고 고된 노동 환경이었고, 술과 폭력이 만연한 곳이었습니다. 막장 인생이라는 말이 탄광에서 유래되었다는 사실은 당시 탄광 노동자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짐작하게 합니다.
아버지 역시 술에 의존하며 폭력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술에 취하면 아들을 폭행하는 일이 잦았고, 심지어 칼로 찌르기까지 했습니다. 교회에 다닌다는 이유로, 새벽기도를 다녀왔다는 이유로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를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칼에 찔려 손목에 상처가 남고, 머리에 식칼이 꽂히는 끔찍한 경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병원에서는 "오늘 밤을 넘기기 힘들다"는 진단까지 받았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났습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아버지의 폭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아버지를 불쌍히 여기고, 사랑으로 감싸 안았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아버지의 영혼이 불쌍히 여겨지고, 네 살 아이처럼 느껴졌다고 그는 고백합니다. 아버지의 폭력 속에서도 긍정적인 마음을 잃지 않았고, 오히려 아버지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성령의 힘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어머니 역시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렸습니다. 아버지의 폭력은 어머니에게 향하기도 했고, 심지어 쥐약을 먹이는 극단적인 행동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폭력에 맞서 싸우기도 했지만, 결국 집을 나가게 됩니다. 어머니가 집을 나간 후, 서상복 목사는 더욱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홀로 남겨진 그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폭력은 대물림되는 아픔입니다. 아버지는 나병 환자인 아버지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자랐고, 그 상처를 고스란히 아들에게 되물림했습니다. 폭력의 악순환 속에서 서상복 목사는 고통받았지만, 그는 폭력을 용서와 사랑으로 끊어냈습니다. 아버지의 폭력적인 모습 뒤에 숨겨진 아픔을 이해하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용서와 사랑, 그리고 상담가의 길
아버지의 폭력과 끔찍한 경험 속에서도 서상복 목사님은 용서와 사랑을 선택했습니다. 칼에 찔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 돌아온 날 밤, 그는 아버지 옆에서 잠든 아버지를 안고 기도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아버지를 용서하고, 사랑하겠다는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중학생의 나이에, 자신을 폭행한 아버지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그는 용서와 사랑을 통해 상처를 극복하고,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을 돕는 상담가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는 아버지에게 용서와 사랑을 실천했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에게도 헌신적인 아들이었습니다. 폭력적인 아버지로부터 어머니를 보호하려 애썼고, 어머니가 집을 나간 후에도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어머니의 빈자리를 채우려 노력했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그의 사랑은 깊고 헌신적이었습니다. 어머니 역시 아들을 믿고 의지하며 힘든 시간을 견뎌냈습니다. "상보가, 내 너 믿고 산다. 너는 가출하면 안 돼. 너 아니면 애시당초 나랑 여기 살 줄 몰랐어." 라는 어머니의 말은 아들에 대한 깊은 신뢰와 사랑을 보여줍니다.
그는 상담가가 된 이유를 아버지에게서 찾습니다. 정신 질환과 알코올 중독으로 고통받는 아버지, 폭력적인 아버지였지만, 그는 아버지의 아픔을 이해하고, 아버지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아버지와 같은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상담가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아픈 경험을 통해 다른 사람의 아픔을 공감하고, 위로와 희망을 전달하는 상담가가 된 것은 아이러니하면서도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그의 상담은 단순한 기술적인 상담을 넘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공감과 사랑을 바탕으로 하기에 더욱 효과적일 것입니다.
초등학교 교사, 건빵 대신 짜장면
상담가 이전, 서상복 목사님은 초등학교 교사로 28년간 재직했습니다. 어린 시절 자신에게 따뜻한 도움을 주었던 선생님들의 모습에 감명받아 교사의 꿈을 키웠고, 대구교육대학교를 졸업 후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습니다. 교사가 된 후, 그는 자신이 받았던 사랑을 제자들에게 되돌려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어린 시절 건빵 한 가마니를 받았던 것처럼, 제자들에게 짜장면을 대접하며 따뜻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제자들을 집으로 초대해 짜장면을 함께 먹으며, 학교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추억을 선물했습니다. 한 번에 60명이나 되는 제자들을 집으로 초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는 기꺼이 감당했습니다. 제자들은 짜장면을 먹으며 즐거워했고, 선생님과의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했습니다. 짜장면은 단순한 음식을 넘어, 선생님과 제자 사이를 이어주는 사랑의 매개체가 되었습니다.
그는 문제아, ADHD 학생들에게도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쏟았습니다. 다른 선생님들이 꺼려하는 문제 학생들을 맡아, 그들의 마음을 열고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ADHD 학생에게 똥침을 당하고도 웃으며 칭찬해주는 그의 모습은 제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학생들은 그의 사랑에 감동받아 스스로 변화하기 시작했고, 학교 생활에 적응하며 밝게 성장해나갔습니다. 그의 교실은 단순한 교실이 아닌, 사랑과 웃음이 넘치는 천국과 같은 공간이었습니다.
그는 목욕탕에도 제자들을 데려갔습니다. 학교 부적응 학생, 마음의 상처를 가진 학생들을 목욕탕에 데려가 함께 씻고 찜질하며,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떡볶이를 함께 먹으며, 선생님과 제자는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목욕탕은 단순히 몸을 씻는 공간이 아닌, 마음을 치유하고 서로에게 옹기를 전하는 특별한 공간이 되었습니다. 목욕탕에서 등 밀어주는 사이가 되면서, 제자들은 선생님을 더욱 신뢰하고 따르게 되었고,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원더걸스 선미, 그리고 천국의 아이들
서상복 목사님의 제자 중에는 유명 가수 선미 씨도 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을 맡았던 선미 씨는 당시 어려운 가정 환경 속에서도 밝고 긍정적인 아이였다고 합니다. 정교회장 선거에서 노래와 춤으로 선거 운동을 하도록 지도해주었고, 선미 씨는 정교회장에 당선되어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이후 박진영 회사에 들어가 원더걸스 멤버로 데뷔하게 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선미 씨는 서상복 목사님에게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가정 환경이 어려운 소녀가 꿈을 이루고 성공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큰 보람과 기쁨을 느꼈습니다. 선미 씨 역시 선생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았고, 원더걸스 데뷔 후 메일을 보내 감사를 표하기도 했습니다. 메일 제목은 "아빠" 였습니다. 선생님을 아빠처럼 따랐던 제자의 마음이 느껴지는 감동적인 제목입니다.
그는 제자들과 함께 만든 문집 제목을 "천국의 아이들" 이라고 지었습니다. 제자들이 자신들의 교실을 천국이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 문집 제목을 그렇게 정한 것입니다. 그의 교실은 세상의 어려움과 고통이 없는, 오직 사랑과 행복만이 존재하는 천국과 같았습니다. 그는 제자들에게 사랑과 희망을 심어주었고, 제자들은 그의 사랑 속에서 천국을 경험하며 성장했습니다. "천국의 아이들" 문집은 그의 교사 생활의 가장 빛나는 기록이며, 그의 교육 철학을 담고 있는 소중한 유산입니다.
이혼 상담과 자살 예방, 그리고 사랑의 메시지
교사 생활을 마감하고, 현재 서상복 목사님은 풀타임 상담 목회자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그는 이혼 상담, 자살 예방 상담 등, 다양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상담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인 이혼 문제에 대해 그는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혼 상담을 하면서 느끼는 점은 대부분의 이혼 원인이 남편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여성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총각 때부터 시원찮은 남편을 선택하는 여성의 잘못, 남편과 자녀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여성의 문제를 꼬집습니다.
그는 여성들에게 배우자를 선택할 때 두 가지 기준을 제시합니다. 첫째, 부모를 사랑하는 남자. 둘째, 삶을 의미 있게 살며 존경받는 남자. 이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남자는 인격적으로 훌륭한 남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인격은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에, 배우자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는 또 남자들에게 배우자를 선택할 때 밝은 여자를 선택하라고 조언합니다. 밝은 여자는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고, 남편에게 힘이 되어주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살 문제에 대해서도 깊이 우려하고 있습니다. 자살 상담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살 예방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남성의 자살 원인 1위는 부도, 여성의 자살 원인 1위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는 것이라는 통계는 남녀의 심리적 차이를 보여줍니다. 그는 자살 위기에 놓인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삶의 의미를 찾도록 돕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우리 모두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할아버지의 사랑, 선생님들의 사랑, 제자들의 사랑,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며 살아온 그는 사랑이야말로 모든 문제의 해답이라고 믿습니다. 그의 인생 이야기는 사랑의 힘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드라마입니다. 그는 앞으로도 가정 사역과 상담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전하고, 희망을 심어주는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서상복 목사님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교훈을 줍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긍정적인 마음을 잃지 않고, 사랑과 용서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그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됩니다. 그의 삶은 한 편의 드라마와 같지만, 그 드라마 속에는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할 삶의 지혜와 노하우가 담겨 있습니다. 서상복 목사님의 이야기가 여러분에게도 따뜻한 위로와 용기를 주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