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민하 전도사 간증: 눈물과 기쁨, 신앙의 인생 이야기
눈물과 기쁨의 인생: 하민하 전도사 간증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라: 하민하 전도사의 파란만장 인생 이야기
오늘 우리는 눈물과 헌신으로 씨를 뿌려 기쁨의 단을 거둔 하민하 전도사님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함께 나누어보려 합니다. 하민하 전도사님은 WELOVE 메신저이자,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설교자로 알려져 있는데요. 새롭게하소서에 출연하신 하민하 전도사님과 김현숙 수어통역사님의 영상을 통해, 그의 삶 속에 녹아 있는 진솔한 신앙과 묵직한 메시지를 텍스트로 상세히 정리하여 전달해 드리고자 합니다. 단순히 내용을 요약하는 것을 넘어, 그의 인생 여정과 신앙적 깊이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풀어낼 것입니다. 마치 한 편의 감동적인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깊이와 여운을 느끼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작성하였으니, 함께 하민하 전도사님의 이야기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보시죠.
하민하 전도사님은 어린 시절, 목회자였던 아버지를 따라 태국으로 건너가 국제적인 경험을 하며 성장했다고 합니다. 부산에서 태어났지만, 선교를 위해 태국으로 떠난 아버지 덕분에 태국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신학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향하게 되었는데요. 이러한 글로벌한 성장 과정 속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도 했지만, 결국 자신을 '땅에서 나그네로 살아가는 존재' 이며, '천국 시민권자'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 혼란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나그네 의식을 일깨워주시고, 천국 시민권을 항상 기억하게 하셨다는 깊은 신앙적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이러한 정체성 고민은 그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겪는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천국 소망을 잃지 않는 힘이 되었다고 하는데요. 나그네 의식을 통해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천국을 향한 소망을 키워나가는 그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묵상을 제공합니다.
하민하 전도사님의 아버지, 즉 그의 아버님 목사님은 매우 힘든 목회 여정을 걸으셨다고 합니다. 울산의 노인 성도들이 대부분인 작은 교회에서 목회를 하시며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으셨고, 심지어 택시 운전을 병행해야 할 정도로 힘겨운 시간들을 보내셨다고 하는데요. 하민하 전도사님은 어린 시절, 밤마다 골방에서 기도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처음에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께서 택시 운전을 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비로소 아버지의 기도가 단순한 기도가 아닌, 고통과 눈물이 깃든 절규였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택시 운전 중 겪었던 승객과의 갈등 등 힘든 상황들을 묵묵히 견뎌내시며 기도로 승화시키셨던 아버지의 모습은 하민하 전도사님에게 깊은 감동과 교훈을 주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어머니 또한 생계를 위해 학습지 교사로 일하시며 가정 경제에 보탬이 되셨다고 하는데요. 부모님의 헌신적인 삶은 하민하 전도사님에게 단순히 힘든 목회자의 삶이 아니라, 가장 위대한 삶의 본보기로 각인되었다고 합니다. 블랙박스도 없던 시절,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하소연 할 곳 없이 묵묵히 감내해야 했던 아버지의 고통은 상상 하기 힘들 정도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잃지 않고 선행을 베푸셨던 아버지의 이야기는 깊은 울림을 줍니다.
하민하 전도사님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선행 때문에 싫었던 경험이 있다고 솔직하게 고백했습니다. 동네를 배회하던 또래 친구를 집으로 데려와 씻기고 먹이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공간이 침범당하는 느낌과 아버지의 사랑을 빼앗긴다는 생각에 불편함을 느꼈다고 합니다. 사택 생활이었기에 집은 늘 개방되어 있었고, 모두에게 친절한 아버지의 모습은 어린 하민하 전도사님에게 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었던 것입니다. 특히 아버지가 다른 아이들을 씻기는 모습은 자신을 씻어주던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며 묘한 질투심을 느끼게 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이러한 경험은 훗날 하민하 전도사님이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면서 타인을 향한 사랑과 헌신을 이해하는 밑거름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이해하기 힘들었던 아버지의 행동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그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하민하 전도사님 또한 어린 시절의 경험을 통해 목사의 삶이 단순히 명예로운 직업이 아니라, 헌신과 희생을 요구하는 소명임을 점차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그는 목사라는 직업에 대한 반감을 가지게 되었고, "나는 절대 목사는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 합니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존경도 못 받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던 것인데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결국 아버지의 길을 따라 목회자의 삶을 선택하게 됩니다. 이는 인간의 계획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민하 전도사님은 목사가 되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지만, 결국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된 자신의 선택에 대해 "약속을 깬 것"이라고 표현하며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했던 다짐을 깨고 목사가 된 자신을 스스로 "약속 어긴 사람"이라고 칭하며 웃음을 자아냈는데요. 하지만 이러한 솔직함 속에서 자신의 선택이 결코 가볍지 않았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울산에서의 목회 이후, 하민하 전도사님의 가족은 태국으로 선교를 떠나게 됩니다. 낯선 땅에서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교회를 개척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을 텐데요. 언어도 문화도 다른 환경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상상 이상의 어려움이 따랐을 것입니다. 태국에 도착 후 드린 첫 예배는 하민하 전도사님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있다고 합니다. 현지 성도 없이 가족과 단기 선교팀 몇 명만이 모여 한국어로 예배를 드리는 낯선 풍경이었는데요. 이때 아버지는 본문으로 시편 126편 말씀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를 선포하셨다고 합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하민하 전도사님은 가족과 교회의 상황이 마치 씨를 뿌리는 시기와 같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고 합니다. 태국 말도 못하는 상황에서 길거리 전도를 시작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맨땅에 헤딩하는 듯한 아버지의 돌격형 정신은 훗날 하민하 전도사님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하민하 전도사님은 아버지의 돌격형 정신을 "은사"라고 표현하며 높이 평가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외국에서 어떻게 개척 교회를 세울 수 있는지 궁금해하지만, 그는 "맨땅에 헤딩하면 된다"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토요일 길거리에서 아이들에게 간식을 나눠주며 율동과 찬양을 가르치고, 교회로 초대하는 방식으로 전도를 했다고 하는데요. 아이들이 친구들을 데려오고, 부모들이 따라오면서 자연스럽게 교회가 성장하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태국 전역에 8개 이상의 교회가 세워졌다고 하니, 그 열매가 얼마나 풍성한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접근 방식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믿음과 헌신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이루어낸 것입니다. 하민하 전도사님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하민하 전도사님은 어린 시절부터 쭉 신앙 생활을 잘 했을까요? 의외로 그는 어린 시절 죽음에 대한 깊은 묵상과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죽음에 대한 묵상을 시작했다는 사실은 놀라운데요. 보통 아이들은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민하 전도사님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죽음에 대한 묵상을 시작했다고 고백하며, 당시 썼던 일기 내용을 공개했습니다. 일기 제목은 "죽음 날씨 맑음"이었고, 내용은 "죽음은 무엇인가? 죽음 뒤에는 뭔가 있는 것일까? 죽음이 끝일까? 죽으면 알게 되겠지"와 같이 죽음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을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죽음에 대한 호기심은 공포로 변해갔다고 합니다. 자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점점 커져갔고, 초등학교 4학년 때는 죽음의 공포 때문에 비명을 지르며 방안을 뛰쳐나갈 정도였다고 합니다. 중학생 때는 죽음의 공포가 극에 달해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하는데요. 죽음의 공포는 그에게 실존적인 고뇌를 안겨주었고, 그 고뇌는 결국 하나님을 찾는 계기가 됩니다. 그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고 합니다. 천국과 영원에 대한 복음을 들었지만 믿어지지 않았고, 하나님을 만나고 싶었지만 어떻게 만나야 할지 몰랐던 그는 솔직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습니다. "하나님, 당신만이 죽음에 대한 답인데, 당신이 있으면 좋겠는데 안 믿겨요. 계시면 오늘 밤 안에 만나주세요" 라는 절박한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죽음의 공포에 짓눌린 한 소년의 절규는 과연 응답받을 수 있을까요?
하민하 전도사님의 절박한 기도에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방법으로 응답하셨습니다. 갑자기 마음속에 "전도서 3장"이라는 음성이 들려왔다고 합니다. 성경책을 펼쳐 전도서 3장을 찾아 읽기 시작했지만, 처음에는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도서 3장 마지막 절 "사람의 영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영은 아래로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라는 구절을 읽는 순간, 성경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듯한 생생한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는 자신에게 "사람의 영은 죽어도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성경이 직접 말해주는 듯한 느낌을 받은 것입니다. 그 순간 하민하 전도사님은 자신에게 전도서 3장을 읽으라고 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확신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 만난 하나님은 그에게 영원한 생명의 소망을 선물해주셨고, 그 이후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만난 감격에 벅차 혼자 방에서 방언으로 기도하고 찬양하며 기쁨의 시간을 보냈다고 하는데요. 특히 "눈에 아무 증거 안 보여도"라는 찬양 가사를 되뇌이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만지고 보고 듣는 것만 믿으려 했던 의심 많던 소년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이는 하민하 전도사님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기적이자, 신앙의 터닝포인트가 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답을 얻은 후, 하민하 전도사님의 삶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더 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게 되자, 영원한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열정이 솟아오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후 가장 먼저 시작한 기도는 "하나님,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할까요? 죽기라도 할게요"였다고 합니다. 중학생 나이에 "죽기라도 할 수 있다"는 헌신적인 기도를 드릴 수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인데요. 그는 새벽 기도, 주일 예배, 철야 기도 등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께 헌신을 다짐하는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2~3년 동안 하나님의 응답은 침묵으로 일관되었습니다. 오랜 침묵 속에서 하민하 전도사님은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자신에게 자유의지를 발휘하라고 하시는 것인지 고민했다고 합니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힘 빠진 목소리로 "주님, 무엇을 할까요?"라고 다시 한번 여쭈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친절하게 부산 사투리로 "미나야, 목사 해라"라고 명확하게 응답해주셨다고 합니다. 죽기보다 싫었던 목사의 길을 하나님의 명령 앞에 순종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순간 놀랍게도 행복감을 느꼈다고 하는데요. 이는 자신의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사실에 대한 감격 때문이었습니다. 목사라는 직업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신다는 사실이 그에게 큰 기쁨과 감동을 준 것입니다. 결국 하민하 전도사님은 죽기보다 싫었던 목사의 길을 기쁨으로 선택하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인생의 방향을 전환하는 경험은 그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하나님의 명확한 음성을 듣고 목회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하민하 전도사님은 미국으로 건너가 신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확증해주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미국 유학길에 오르게 된 것인데요. 하지만 미국 생활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낯선 문화와 언어, 경제적인 어려움 등 많은 challenges 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민하 전도사님은 거리로 나가 노숙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등 적극적인 전도 활동을 펼쳤다고 합니다. 시카고는 대도시라 사람들이 매우 차가웠지만, 노숙자들은 유일하게 자신의 말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과 대화하며 복음을 전하고, 때로는 치킨을 사주며 마음을 열기 위해 노력했다고 합니다. 노숙자 전도를 통해 일주일에 한 번 같은 장소에서 기도하며 관계를 맺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고, 이러한 경험은 훗날 난민 촌에서 사역하는 데 밑거름이 됩니다. 일주일에 한 번 공원에서 만나게 된 독일 출신 은퇴 노인을 통해 관계 전도의 힘을 실감하게 된 것인데요. 외로움을 느끼는 노인에게 말동무가 되어주고 복음을 전하면서 깊은 유대감을 형성했고, 이를 통해 믿지 않는 사람들과 살을 비비며 관계를 맺는 것이 전도의 중요한 기회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그를 난민 사역으로 이끄는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하민하 전도사님은 신학교 친구들과 함께 시카고 난민촌에 들어가 살면서 본격적인 난민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난민과 이민자들이 많이 사는 알바니 파크라는 지역에 직접 방을 구해 살면서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전도를 목적으로 시작한 난민 사역 과정에서 다양하고 흥미로운 일들을 겪었다고 합니다. 특히 축구장에서 있었던 일화는 매우 인상적인데요. 남미 출신 아이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라 아이들과 축구를 하며 친해지기 위해 노력했다고 합니다. 페이스북 친구도 맺고 가까워질 무렵, 축구 중에 조폭 트럭이 들이닥치는 위험한 상황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알고 보니 자신과 축구하던 아이들이 조폭 rival 조직과 연루되어 있었고, 조폭 간의 세력 다툼에 휘말릴 뻔한 것입니다. 경찰이 출동하고 아이들이 수갑을 차고 연행되는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하면서 두려움을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는 안도감도 느꼈다고 합니다. 이 사건 이후 오히려 난민 친구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자랑처럼 이야기하며 더욱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1년 동안 열심히 사역했지만, 놀랍게도 단 한 명도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복음을 전해도 "좋은 이야기" 정도의 반응만 보일 뿐, 실질적인 믿음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1년 동안의 수고가 헛된 것은 아닐까 후회하기도 했지만, 지역 교회에서 헌신하며 섬기는 가운데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난민 사역 현장에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듯했지만, 하민하 전도사님은 실망하지 않고 지역 교회를 섬기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이집트 출신 담임 목사님이 시무하는 교회에서 의자를 나르고, 영아부 아이들을 돌보고,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며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담임 목사님은 하민하 전도사님의 열정을 눈여겨보고 주일 예배 설교 기회를 제공해주었습니다. 두 번의 설교 기회 동안 하민하 전도사님은 열심히 복음을 전했지만, 무슬림 교도들이 설교 중 나가버리는 등 여전히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설교를 마친 후 허탈감과 실패감을 느끼며 "내가 1년을 낭비했나"라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두 달 뒤 한국에 방문했다가 미국으로 돌아온 후, 교회 백인 집사님으로부터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됩니다. 자신이 설교했던 주일 예배에 교회 에 처음 나온 친구를 데려왔는데, 그 친구가 하민하 전도사님의 설교를 듣고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교회에 잘 출석하고 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들은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듣는 순간 하민하 전도사님은 마음의 문이 열리는 듯한 경험을 했으며, 하나님께서 자신을 격려해주시는 듯한 따뜻한 위로를 받았다고 합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수고했다, 내 아들아"라고 말씀하시는 듯한 느낌을 받은 것입니다. 이 경험을 통해 난민 사역 기간 동안 기도했던 내용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2년 동안 사역하면서 단 한 명이라도 예수님을 만난다면 성공한 2년"이라고 기도했던 것인데요. 놀랍게도 그 기도가 응답된 것입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씨를 뿌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라는 성경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민하 전도사님은 미국 유학 생활 동안 경제적인 어려움 또한 겪었다고 합니다. 학부 시절에는 학교 장학금 혜택으로 생활비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었지만, 대학원 진학 후 장학금이 끊기면서 생활고에 시달리게 된 것입니다. 밤 11시부터 새벽 2시까지 학교 카페테리아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고, 1600명 규모의 학생 식당에서 접시 닦는 일을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고 합니다.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었지만, 오히려 이러한 노동을 통해 미국 유학 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기적 같은 날들이 계속되자 교만함이 싹트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여 학점도 잘 받고, 가난한 목회자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대학원 진학까지 하게 되자 자신감이 넘쳐났던 것입니다. 대학원 진학 시 장학금을 충분히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다른 학교에는 원서도 내지 않았지만, 현실은 장학금 2% 만 지급되는 예상 밖의 결과였습니다. 100% 장학금을 기대했던 그에게 2% 장학금은 사실상 없느니만 못한 금액이었고, 경제적인 어려움에 직면하게 됩니다. 대학원 생활 동안 아르바이트를 구하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점점 생존 모드로 돌입하게 됩니다. 친구들과 밥 먹을 돈도 없고, 커피 한 잔 마실 여유도 없이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봉사 단체에서 나눠주는 식료품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라면 하나를 며칠에 걸쳐 나눠 먹는 짠 생활을 이어갔다고 하는데요. 몸은 건강했지만 일할 곳은 없고, 가진 것 하나 없이 외로운 시간들을 보내면서 매일 밤 2시간 넘게 길을 걸으며 푸념 섞인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 하민하 전도사님은 매일 밤 2시간 넘게 길을 걸으며 하나님께 푸념 섞인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하나님, 저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시는 건가요? 미국까지 오게 하신 이유가 뭔가요?"와 같이 답답하고 힘든 마음을 쏟아냈다고 합니다. 미국은 다행히 교회 문이 열려 있어 힘들 때마다 교회에 들어가 기도하며 위로를 받았다고 합니다. 기도 제목도 떨어지고 한숨만 나오는 시간이었지만, 초등학생 시절 가족과 함께 태국에서 드렸던 예배, 특히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라는 말씀이 떠올라 힘든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눈물로 씨를 뿌리는 시간이며, 인내하며 견디면 반드시 기쁨으로 단을 거둘 날이 올 것이라는 소망을 품고 어려움을 이겨냈다고 합니다. 기도와 시련 속에서 하나님과 더욱 친밀해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고, 어느 날 하나님께서 시편 27편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라는 말씀으로 응답해주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 배고픔에 지쳐있던 하민하 전도사님은 "얼굴 찾으라니, 얼굴이 밥 먹여주나"라며 짜증을 내기도 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말 하나님의 얼굴을 찾게 되는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할 일 없이 하나님만 바라보는 시간 속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가는 가운데, 미군 모집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미군은 외국인에게도 입대 기회를 제공하고 학비 지원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요. 웹사이트를 통해 미군 모집 정보를 확인한 다음 날, 놀랍게도 미군 모집관이 직접 하민하 전도사님을 찾아왔다고 합니다. "인생을 바꾸고 싶냐?"는 모집관의 질문에 하민하 전도사님은 망설임 없이 "네"라고 대답했고, 미군 입대를 결심하게 됩니다. 최소 4년 복무라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신학 공부를 계속하고 가족을 도울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미군 입대를 선택한 것입니다.
미군 입대 후 4년 동안 복무하면서 하민하 전도사님은 한국으로 돌아오는 뜻밖의 경험을 하게 됩니다. 한국에 돌아올 마음이 전혀 없었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전혀 다르게 펼쳐졌습니다. 미군 복무 기간 중 2년은 미국에서, 나머지 2년은 해외 기지에서 복무해야 했는데, 하민하 전도사님은 선택권 없이 한국으로 발령받게 된 것입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이 싫었지만,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한국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한국에서 군 생활을 하던 중 운명처럼 WELOVE 팀을 만나게 됩니다. 미국에서 함께 지내던 '박은총' 형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WELOVE 사역에 합류하게 된 것입니다. 박은총 형은 미국에서 경험했던 예배 문화를 한국 교회 다음세대에 전달하고, 짧은 설교 메시지를 통해 교회 진입 장벽을 낮추는 사역을 제안했습니다. 하민하 전도사님은 이 제안에 흔쾌히 동참했고, WELOVE 팀은 10대 20대 젊은이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급성장하게 됩니다. WELOVE 집회는 티켓 오픈 1분 만에 매진될 정도로 인기를 얻었고, 많은 젊은이들이 WELOVE 사역을 통해 예배를 갈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하민하 전도사님은 "니가 계속 살아가야 할 이유"라는 짧은 설교 메시지를 유튜브에 올렸는데, 많은 사람들이 메시지를 듣고 삶의 의미를 찾고 용기를 얻었다는 댓글을 남겼습니다. 이러한 반응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한국으로 보내신 이유가 WELOVE 사역을 통해 다음세대를 세우기 위함임을 깨닫게 됩니다. 상상 하지 못했던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지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사역에 임하고 있다고 합니다.
WELOVE 사역 만큼 하민하 전도사님의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아내와의 만남입니다. 미군 때문에 한국에 오게 된 것, WELOVE 팀을 만난 것 만큼이나 아내와의 만남은 운명적인 사건이었는데요. 교회 사역 중 아내가 간증하는 모습을 보고 첫눈에 반했다고 합니다. "저런 여자가 다 있나"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에 매료되었다고 하는데요. 하민하 전도사님은 아내를 "세계 최고로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극찬하며 애정을 표현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민하 전도사님이 꿈꾸는 가장 위대한 삶은 무엇일까요? 그는 가장 위대한 삶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예전에는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 인도하고, 큰 사역을 이루는 것이 위대한 삶이라고 생각했지만, 성경 말씀을 통해 가장 위대한 계명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라는 것임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가장 위대한 것 중 가장 위대한 것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죽을 때까지 가장 위대한 삶,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고백했습니다. 미군 복무는 만료되었고, 현재는 WELOVE 사역에 전념하고 있으며, 코로나 팬데믹 상황 속에서 온라인으로 신학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태국에 계신 아버지는 여전히 선교 사역에 헌신하고 계시며,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할 정도로 선교에 대한 열정이 넘치신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기도와 헌신은 하민하 전도사님과 가족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다음세대를 이끄는 훌륭한 리더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오늘 하민하 전도사님의 간증을 들으며 요한복음 15장 16절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세우셨다는 사실 자체가 큰 은혜이며, 하민하 전도사님의 삶 또한 하나님의 택하심과 인도하심 속에서 빚어진 결과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목사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그를 택하여 목회자의 길로 인도하시고, 죽음의 공포 속에서 만나주시고, 미국 유학 생활 가운데 수많은 시련과 역경을 통과하게 하시면서 결국 다음세대를 이끄는 리더로 세우신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하민하 전도사님의 삶은 하나님을 온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 사랑하는 것이 가장 위대한 삶임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입니다. 새롭게하소서 진행자는 하민하 전도사님의 간증을 통해 다음세대에 대한 걱정이 사라지는 듯하고, 한국 교회의 미래에 대한 소망을 보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학교를 다니는 이유를 단순히 공부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싫어하는 친구와 함께 지내고,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는 학교 생활 속에서 인생의 수업을 배우는 것처럼, 하민하 전도사님 또한 미국 생활 동안 겪었던 고난과 역경을 통해 진정한 인생 수업을 받았다고 평가했습니다. 먹을 것 없어 라면을 먹고, 외로운 밤 눈물로 기도했던 시간들이 훗날 다음세대와 공감하고 그들을 이끄는 리더십의 자양분이 된 것입니다. 결국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하민하 전도사님의 간증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WELOVE 사역을 통해 다음세대를 향한 귀한 사역을 계속 이어가시기를 응원하며, 오늘 귀한 간증 나눠주신 하민하 전도사님과 김현숙 수어통역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