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빈민 30년 사랑·교육 사역 최원금 이현주 선교사 이야기
녹화 후, 담당 PD가 직접 인도네시아 현장에 다녀왔습니다!ㅣ최원금 이현주 선교사ㅣ새롭게하소서
## 서론: 30년 헌신, 인도네시아 도시 빈민을 위한 사랑의 발자취
오늘 우리는 3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인도네시아에서 도시 빈민들을 위해 헌신하신 최원금, 이현주 선교사님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함께 나누어 보려 합니다. 이 두 분은 단순한 봉사를 넘어, 삶의 뿌리를 인도네시아 땅에 내리고, 가난과 소외 속에 놓인 이웃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때로는 건강을 잃고, 가족의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묵묵히 사역의 길을 걸어오신 선교사님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함께 진정한 섬김의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그 헌신과 사랑, 그리고 놀라운 30년 사역의 여정을 지금부터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 도시 빈민 사역의 시작: 폐쇄된 기차역에서 움튼 사랑
최원금 선교사님은 목회자로서 안정적인 삶을 내려놓고, 낯선 땅 인도네시아, 그중에서도 도시 빈민 사역에 뛰어들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폐쇄된 기차역에서 마주한 300명 노숙자들의 충격적인 현실이었는데요. 10년 동안 기차가 멈춘 폐쇄된 공간, 그곳은 인간다운 삶과는 거리가 먼 절망적인 공간이었습니다. 철로 위에 널빤지를 얹어 만든 방, 박스 종이로 만든 옷장, 최선교사님은 그 열악한 환경 속에서 희망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깊은 슬픔과 함께, 외면할 수 없는 부르심을 느꼈다고 회고합니다.
본래 한인 교회 목회를 하던 최선교사님은, 지인의 요청으로 폐쇄된 기차역에서 예배를 인도하게 되면서 빈민 사역과의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현지인 교회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노숙자들을 위해, 그리고 사례비 부담 없이 예배를 드리고 싶어 하는 그들을 위해 시작된 예배는, 최선교사님의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주중에는 한인 교회 목회, 저녁에는 기차역 노숙자들을 위한 예배와 급식 봉사를 병행하며 4년을 보낸 최선교사님은, 결국 도시 빈민 사역에 전념하기 위해 안정적인 목회자Life를 내려놓는 결단을 내리게 됩니다. 그 배경에는 눈앞의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소외된 이웃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좁은 길을 택하겠다는 굳은 믿음이 있었습니다.
## 무료 급식 사역의 확장과 어려움 극복: 넉넉한 밥상, 기적의 손길
본격적으로 무료 급식 사역을 시작하면서, 최선교사님 부부는 현실적인 어려움에 직면하게 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재정'과 '장소' 였는데요. 당장 밥을 지을 공간도, 식자재를 구입할 자금도 넉넉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무작정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초창기에는 밥을 사서 나누어 주었지만, 도시락의 질이 떨어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직접 밥을 짓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100인분이 넘는 밥을 지을 주방 시설은 물론, 냉장고조차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사역은 시작되었습니다.
기적은 예기치 못한 순간에 찾아왔습니다. 우연히 만난 현지 목사님이 건축 중인 교회 공간을 흔쾌히 빌려주기로 하면서, 급식 사역의 발판이 마련된 것입니다. 8개월이라는 제한적인 시간이었지만, 그 공간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 사역을 이어갈 수 있는 소중한 '처소'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8개월 후, 다시 '장소'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게 되었고, 기차역 주변의 높은 임대료와 위험한 치안은 또 다른 난관이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또 다른 방법으로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교통과 안전, 그리고 경제적인 여건까지 고려했을 때, 기적적으로 현재의 '해피 센터' 자리를 찾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해피 센터'를 마련했다 하더라도, 렌트비와 운영 자금 마련이라는 또 다른 현실적인 벽에 부딪혔습니다. 그때, 익명의 독지가가 2년간 렌트비를 지원하겠다는 놀라운 제안을 해왔습니다. 마치 조지 뮬러의 5만 번 기도 응답과 같은, 현실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기적이 눈앞에서 펼쳐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또 다른 후원자는 남편의 생일마다 쌀 5포대를 10년 넘게 꾸준히 보내주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잇따른 기적적인 도움들은, 마치 하나님께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33) 라는 약속을 현실에서 직접 보여주시는 듯 했습니다.
물론, 무료 급식 사역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특히, 뜨거운 날씨 속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밥을 짓고 도시락을 준비하는 과정은 육체적으로 매우 힘든 일이었습니다. 사모님은 50도가 넘는 주방에서 탈수 증상을 겪으면서도, 소금을 먹어가며 밥을 지었다고 합니다. 뜨거운 밥을 식히기 위해, 햇볕이 내리쬐는 밖으로 밥통을 들고 나와 밥을 펴는 과정에서 손등에 검버섯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모님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태복음 25:40) 라는 말씀을 묵상하며, 이 모든 과정을 '예수님을 대접하는 마음'으로 감당했다고 고백합니다. 고된 육체 노동 속에서도, 예수님을 섬기는 기쁨과 보람은 힘든 과정을 잊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초창기에는 100인분으로 시작했던 급식은, 현재 700인분, 주 3회로 확대되었습니다. 매주 2,100인분의 밥상을 준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필요한 순간마다 정확하게 필요한 만큼의 후원이 채워진다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해 놓으신 것처럼, 부족함 없이 밥상을 차릴 수 있도록 채워주시는 경험은, 최선교사님 부부에게 굳건한 믿음을 심어주었습니다. 이제는 시장에서 식자재를 구매할 때, '혹시 밥을 못 주게 되면 어떡하지?' 라는 불안감 대신,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이다' 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급식 메뉴는 주로 닭튀김과 밥, 오이, 칠리소스 단촐하지만, 빈민들에게는 '최고의 만찬' 입니다. 특히 닭튀김은,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귀한 음식이기에, 급식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아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밥을 받으면 그 자리에서 먹거나, 친구들과 함께 먹기 위해 기다리기도 합니다. 더운 날씨에 음식이 상하는 것을 방지하고, 봉사자들의 손길을 돕기 위해 메뉴를 단순화했지만, 영양과 위생, 그리고 맛까지 고려한 최선의 선택입니다. 이렇게 정성껏 준비된 도시락은, 8개 빈민 지역 학교를 통해 아이들에게 전달되고, 먼 거리는 직접 차량을 이용하여 배달하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무료 급식이 '게으름'을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30년 사역을 통해, 최선교사님은 오히려 무료 급식이 빈민들의 삶에 '활력'과 '동기 부여'를 제공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하루 한 끼를 굶는 것이 일상인 극빈층에게, 무료 급식은 단순한 '식사'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생존을 위한 '생명줄'이자, 더 나은 삶을 향한 '희망'의 씨앗이 되는 것입니다. 일단 배고픔을 해결하고, 건강을 유지해야, 다른 일도 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남편 최선교사님이 사역 초기에 중금속 중독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열악한 환경과 과로,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인도네시아에서는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교사님은 사역을 멈추는 대신, 식단과 환경 개선 등, 할 수 있는 노력을 통해 건강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사모님 역시 최근 건강 검진에서 종양이 발견되었지만, 사역을 중단할 수 없다는 생각에, 한국에 장기간 머물며 치료받는 대신, 현지에서 가능한 치료를 받으며 사역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두 분 모두 자신의 건강보다, 인도네시아 빈민들을 향한 '사랑'과 '헌신'을 우선순위에 두고 묵묵히 사역의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선교사님 부부를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인도네시아 전통 인사법으로 맞이합니다. 얼굴에 손을 대는 인사는, 단순한 예의를 넘어, 존경과 숭배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순수한 존경과 사랑은, 힘든 사역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큰 '동기 부여'가 됩니다. 과거, 이름 모를 후원자의 작은 도움으로 꿈을 키웠던 최선교사님처럼, 이 아이들 역시 미래에 인도네시아 사회를 변화시키는 '리더'로 성장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사역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 교육 사역으로의 전환: 빈곤의 대물림을 끊는 희망의 학교
무료 급식 사역을 통해 빈민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개선할 수 있었지만, 최선교사님 부부는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단순히 배고픔을 채워주는 것만으로는, 가난의 악순환을 끊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바로 '교육 사역', 즉 학교 설립입니다. 가난의 대물림을 끊고, 아이들에게 '미래'를 선물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학교를 설립했지만,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직면했습니다. 바로 '저조한 출석률' 이었습니다. 학비는 무료였지만, 교복, 체육복 등 부대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교복이 없어 학교에 가지 못하고,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뉜 수업 때문에 학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현실을 보면서, 최선교사님은 다시 한번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섰습니다. 후원을 통해 교복을 지원하고, 교실을 늘려 오전, 오후반 운영 문제를 해결하고, '출석 우수상' 제도를 도입하여 등교를 독려했습니다. 출석만 잘해도 현금을 지급하는 파격적인 제도는, 아이들의 등교율을 눈에 띄게 높이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작은 관심과 지원이, 아이들의 삶을 얼마나 크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해피 센터 학교는 단순한 교육 기관을 넘어, '전인격적인 성장'을 목표로 합니다. 특히 '영적인 성장'을 강조하며, '말씀 암송'을 중요한 교육 과정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24-25절 말씀을 강조하며,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라는 말씀을 아이들의 삶의 지표로 삼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말씀 암송에 어려움을 느꼈던 아이들도, 칭찬과 격려, 다양한 동기 부여 프로그램을 통해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면서, 자신감을 얻고 학업 성취도도 향상되는 긍정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육 사역 역시, 예상치 못한 어려움과 마주할 때가 많습니다. 특히 빈민 가정 아이들의 경우, 가정 환경 문제로 인해 학업을 중단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갑작스러운 야반도주, 부모의 질병, 경제적인 어려움 등, 예측 불가능한 변수들이 아이들의 학업을 가로막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안타까움과 무력감을 느끼지만,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아이들을 위한 교육의 끈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 사역은 놀라운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누르마라는 학생은 빈민촌 출신으로 해피 센터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 한국 교환 학생, 그리고 인도네시아 대기업 취업까지 성공하는 놀라운 스토리를 써내려갔습니다. 누르마의 성공 스토리는, 다른 학생들에게도 큰 '동기 부여'가 되어, 학업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고 미래를 꿈꾸도록 격려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성공이, 공동체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선순환' 효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최선교사님은 9살 때 아버지Most lost father in early age, and 어머니 was 39세. Through 형님 형수님, he could study 대학원. He felt indebted for 5불 후원, leading him to 빈민 사역. 어린 시절, 이름 모를 후원자의 작은 도움으로 꿈을 키울 수 있었던 경험은, 빈민 사역, 특히 교육 사역에 헌신하는 중요한 동기가 되었습니다. 자신이 받은 사랑을, 더 어려운 이웃들에게 되돌려주겠다는 '빚진 마음'으로 사역에 임하고 있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과거 5달러 후원이 씨앗이 되어, 현재 수많은 아이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기적'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모든 아이들이 누르마처럼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빈민 가정 아이들의 경우, 정서적인 어려움, 결손 가정, 부모의 무관심 등, 다양한 문제에 직면하며, 때로는 마음 아픈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특히 사춘기 시절, 상대적 박탈감,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으로 힘든 시기를 겪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최선교사님 부부는, 사랑과 인내로 아이들을 품고, 끊임없이 격려하며,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실망스러운 결과를 마주하기도 하지만, '너도 내 속을 썩였다' 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떠올리며, 인내심을 갖고 아이들을 기다리고, 사랑으로 품어야 함을 되새깁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인내를 본받아,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섬기는 것이 선교사님의 사명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눈물의 기도와 헌신으로 세운 해피 센터 학교는, 현재 7개 지역, 430명의 학생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말씀 암송, 전인격적인 성장, 그리고 미래 인도네시아를 이끌어갈 리더 양성을 목표로, 오늘도 희망의 씨앗을 심고 있습니다. 30년 헌신은, 인도네시아의 미래를 밝히는 등불이 되어, 더욱 밝게 빛나고 있습니다.
## 30년 사역의 열매와 교훈: 하나님의 은혜, 자녀들의 성장
선교사님 부부는 지난 30년간 단 한 번의 안식년도 제대로 갖지 못했다고 합니다. 선교부에서 강제적으로 안식월을 부여했지만, 2-3개월의 짧은 시간으로는 쉼을 얻기 어려웠습니다. 사역 현장을 떠날 수 없는 현실적인 이유들, 자원봉사자 관리, 급식 운영, 그리고 무엇보다 사역에 대한 뜨거운 열정 때문이었습니다. 건강이 악화되고, 연로하신 부모님에 대한 걱정이 끊이지 않지만, 인도네시아를 '제2의 고향'처럼 여기며, 그 땅을 떠날 수 없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입니다. 인도네시아에 대한 깊은 애정과, 도시 빈민들을 향한 헌신은, 30년 세월 동안 변함없이 이어져 왔습니다.
60세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사역 현장을 지키며 헌신하는 선교사님 부부에게, 지난 30년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최선교사님은 '돌아보면 감사뿐' 이라고 고백합니다. 때로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한숨 쉬어야 할 때도 있었지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시편 23:4) 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느끼며, 믿음이 성장하는 30년이었다고 회고합니다. 특히 묵묵히 곁에서 힘이 되어준 사모님께 깊은 감사를 전하며, 앞으로도 믿음 안에서 함께 사역의 길을 걸어갈 것을 다짐했습니다.
사모님 역시, 30년 사역을 '기쁨과 감사'로 정의합니다. 육체적으로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며, 의미 있고 보람된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합니다. 특히 어려운 순간마다 격려와 힘이 되어준 남편에게 감사를 표하며, 앞으로도 인도네시아 빈민들을 위한 사역에 헌신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선교사님 부부에게는 두 아들이 있습니다. 선교 사역에 헌신하느라 자녀 양육에 소홀했던 것은 아닌지, 늘 마음 한 켠에 죄송함이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두 아들은, 부모님의 헌신적인 모습을 보며, 건강하게, 그리고 바르게 성장했습니다. 큰 아들은 대한항공 조종사 훈련 과정에 합격하여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고, 둘째 아들은 군 복무 후 로스쿨 진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두 아들 모두 특별한 사교육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꿈을 이루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33) 라는 약속을 자녀들의 삶 속에서 직접 이루어주시는 듯 합니다. 자녀들의 건강한 성장은, 선교사님 부부에게 큰 '위로'와 '기쁨'이 되고 있습니다.
선교사님 부부는, 자녀 양육에 대한 질문에, '하나님의 은혜' 라는 한 마디로 모든 것을 설명합니다. 부모로서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친히 인도하시고, 좋은 길로 이끌어주셨다는 믿음입니다. 오히려 자녀들은, 부모님의 헌신적인 삶을 통해, 더욱 성숙하고 독립적인 사람으로 성장했습니다. 이는 물질적인 풍요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자녀 양육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 교육에 대한 고민과 염려를 안고 살아가지만, 자녀의 미래를 하나님께 맡기고, 믿음으로 양육하는 것이, 최고의 교육임을 강조합니다. 두 아들의 성공적인 성장은, 30년 헌신의 또 다른 '결실'이자,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 결론 및 기도 요청: 해피 센터를 지켜주세요
30년 헌신, 인도네시아 도시 빈민들을 위한 사랑의 발자취는, 단순한 봉사 활동을 넘어, 한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키고, 더 나아가 사회 전체를 변화시키는 놀라운 힘을 보여주었습니다. 폐쇄된 기차역에서 시작된 작은 급식 봉사는, 현재 7개 지역 학교, 430명 학생들에게 희망을 선사하는 교육 사역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수많은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사역의 길을 걸어온 최원금, 이현주 선교사님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함께, 진정한 섬김의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선교사님 부부는 간절한 '기도 요청'을 전했습니다. 바로 '해피 센터' 를 지켜달라는 기도입니다. 17년간 사역의 중심지였던 해피 센터 건물이 매물로 나오면서, 사역 지속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4억원이라는 거액의 매입 자금을 마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지만, 해피 센터는 단순한 건물을 넘어, 무료 급식, 교육 사역, 교사 훈련 등, 다양한 사역을 위한 '핵심 공간' 입니다. 해피 센터를 잃는 것은, 30년 사역의 기반을 잃는 것과 같습니다.
선교사님 부부는, 지난 30년간 기적처럼 채워주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한번 경험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해피 센터 매입, 또는 다른 방법으로 사역 공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그리고 무엇보다 이 사역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의 따뜻한 기도와 관심은, 인도네시아 빈민들에게 '희망'의 빛을, 최선교사님 부부에게는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 줄 것입니다. 함께 기도하며, 해피 센터를 지켜나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