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유가족 곽경희 인터뷰, 슬픔 극복과 치유 이야기
남편의 자살, 슬픔을 넘어 용기와 치유를 이야기하다
자살 유가족으로 산다는 것: 곽경희 작가의 용기와 치유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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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가슴 아픈 이야기를 용기 내어 세상에 꺼내어 주신 곽경희 작가님과 함께 자살 유가족의 삶에 대해 깊이 있게 알아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곽경희 작가님은 '남편이 자살했다'라는 책을 통해 자신의 ব্যক্তিগত적인 경험을 솔직하게 공유하며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과 위로를 전달하고 계신데요, 오늘 인터뷰를 통해 작가님의 생생한 이야기를 더욱 자세히 들어보고, 자살 유가족들이 겪는 어려움과 이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 그리고 우리 사회가 이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작가님의 책 제목이 '남편이 자살했다'인데요,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는 강렬함에 많은 분들이 놀라셨을 것 같습니다. 소설이나 드라마 같은 이야기가 아닌, 작가님의 실제 경험을 담은 책이라고 들었는데요, 2015년 12월 7일, 작가님에게는 잊을 수 없는 날이라고 합니다. 당시 상황이 어떠했는지, 그리고 그날 이후 작가님의 삶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좀 더 자세히 들어볼 수 있을까요?
2015년 12월 7일은 저에게 정말 끔찍하고 절망적인 날이었습니다. 그날은 바로 제 생일이었는데요, 아이러니하게도 그 전날 남편은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저희 부부는 결혼 생활 동안 갈등이 끊이지 않았고, 저는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한 상황이었어요. 남편은 과거에도 술 문제와 사업 실패 등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었고, 저는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혼을 결심한 저에게 남편은 극단적인 선택이라는 마지막 선택을 한 것이죠. 생일날 남편의 사망 소식을 접하게 된 그 날의 충격과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작가님께서는 남편분과 대학 동아리 선후배 사이로 만나 결혼까지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 남편분은 어떤 분이셨나요? 두 분의 인연의 시작과 결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한데요, 특히 남편분의 지병을 알고도 결혼을 감행하신 이유가 인상적입니다. 어머니와의 불화가 결혼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하셨는데,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남편과는 대학교 동아리에서 선배, 후배로 처음 만났습니다. 남편은 적극적으로 저에게 구애했고, 저는 당시 가정 환경이 너무 힘들어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어머니의 폭언과 폭력에 지쳐있었고, 집을 탈출하는 것이 저의 가장 큰 소망이었어요. 남편은 저에게 헌신적이었고, 저는 ‘이 정도 남자라면 결혼해도 괜찮겠다’는 생각, 어쩌면 도피처를 찾고 싶었던 절박한 심정으로 결혼을 결심했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남편은 자신이 베체트병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베체트병은 만성 염증 질환으로, 심할 경우 실명까지 이를 수 있는 병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남편의 지병이 저에게는 안도감을 주었습니다. 어머니의 폭력에 시달렸던 저는 ‘아픈 사람이면 나를 때리지는 않겠지’라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었지만, 그 당시 저는 그만큼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있었습니다.
결혼 생활은 어떠셨나요? 남편분의 알코올 의존증과 잦은 외박, 그리고 시어머니와의 갈등까지, 결혼 생활이 순탄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힘든 결혼 생활 속에서 하나님께 의지하며 기도하셨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어려움들이 있었고, 어떻게 기도로 이겨내셨는지 궁금합니다.
결혼 생활은 처음부터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남편은 결혼 전부터 술을 좋아했지만, 결혼 후에는 알코올 의존증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밤늦게 술에 취해 들어오는 것은 일상이었고, 심지어 술에 취해 쓰러져 길에서 잠들거나, 술에 취한 친구들을 집에 데려오는 일도 잦았습니다. 직장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사업을 시작했지만, 술 때문에 실패하기 일쑤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시어머니와의 갈등까지 더해져, 정신적으로 너무나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는 이러한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금식 기도도 하고, 새벽 기도도 다니고, 아이들을 데리고 교회에 가서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찬송가를 부르며 위로를 받기도 하고, 성경 말씀을 읽으며 힘을 얻기도 했습니다. 특히 시편 18편 29절 말씀,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정진하여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는 말씀은 저에게 큰 용기를 주었습니다. 저는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절망의 담을 하나님을 의지하여 넘을 수 있었습니다.
남편분의 알코올 의존증은 치료를 받으려고 노력하셨나요? 상담 치료도 받으셨다고 들었는데, 본인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결국 남편분은 사업 실패와 사기 사건으로 교도소까지 가게 되셨다고 하는데요, 교도소에서 오히려 건강을 회복하셨다는 점이 아이러니합니다. 이혼과 재결합, 그리고 다시 이혼까지, 파란만장한 결혼 생활을 겪으셨는데요, 재결합을 결심하게 된 이유와 다시 이혼을 선택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남편의 알코올 의존증을 치료하기 위해 상담 치료를 권유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남편 본인의 의지가 부족해서 치료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술에 취해 사기를 당하는 일이 발생했고, 결국 사기 사건에 휘말려 교도소에 수감되기까지 했습니다. 교도소에서는 술을 마실 수 없으니 오히려 건강이 회복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출소 후 남편은 술을 끊고 새사람이 된 듯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우울증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저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이혼을 결심했습니다. 이혼 후 남편은 정말 술을 끊고 살도 많이 빼는 등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였습니다. 저는 남편의 변화된 모습에 마음이 흔들렸고, 아이들을 생각해서 재결합을 결심했습니다. 특히 셋째, 넷째 딸들이 어렸기 때문에, 딸들에게 아빠의 사랑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재결합은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이었습니다. 남편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다시 절망했고, 결국 두 번째 이혼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 번째 이혼 후, 남편분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셨습니다. 이혼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남편분이 힘들어하셨다고 들었는데요, 혹시 극단적인 선택을 암시하는言语나 행동은 없었나요? 남편분이 마지막으로 작가님께 어떤 말을 남겼는지, 그리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당시 상황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두 번째 이혼을 결정하고 이혼 절차를 밟기 시작했을 때, 남편은 극심한 불안과 초조함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이혼을 막기 위해 손목을 긋고 피를 흘리는 사진을 보내기도 하고, 매달리고 애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미 남편에게서 완전히 마음이 떠난 상태였고, 이혼을 강행했습니다. 남편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날 밤, 저에게 전화를 해서 마지막으로 애원했지만, 저는 매몰차게 거절했습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날 아침, 남편은 멀쩡한 모습으로 집을 나섰다고 합니다. 저는 그날 늦은 나이에 시작한 대학원 공부 때문에 정신없이 바빴고, 남편의 전화를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친구로부터 남편이 하루 종일 보이지 않는다는 연락을 받고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로부터 남편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집 근처 산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남편분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심정이 어떠셨나요? 아이들에게는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어떻게 전했는지, 그리고 아이들의 반응은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특히 경찰 조사까지 받으셨다고 하니, 정신적으로 மிகவும் 힘든 시간을 보내셨을 것 같습니다.
남편의 사망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습니다. 설마 아니겠지, 오보일 거야, 라고 부정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응급실에서 남편의 사망을 확인했을 때, 현실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차마 아버지의 자살 소식을 전할 수 없어서,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아이들은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비명을 지르며 울었고, 저는 그 모습을 보며 정신을 잃었습니다. 경찰 조사 과정은 더욱 힘들었습니다. 경찰은 형식적인 절차라고 했지만, 남편의 휴대폰 통화 기록과 문자 메시지 내용을 조사하고, 저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습니다. 마치 제가 남편을 죽인 것처럼 느껴졌고, 모멸감과 절망감에 휩싸였습니다. 아이들은 집에서 울고불고 난리가 났을 텐데, 저는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끔찍했습니다.
자살 유가족들은 죄책감, 수치심, 분노, 슬픔 등 복잡하고 강렬한 감정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작가님께서도 죄책감 때문에 정신과 상담까지 받으셨다고 들었는데요, 당시 어떤 감정들이 가장 힘드셨고, 상담 치료는 어떻게 도움이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특히 의사 선생님의 "한 방 먹었다"는 말씀이 인상적인데요, 그 말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남편의 자살 후, 가장 힘들었던 감정은 죄책감이었습니다. ‘내가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내가 이혼만 하지 않았더라면’ 남편이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자책감이 끊임없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아이들에게 아버지의 죽음을 자살이라고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상황도 저를 더욱 힘들게 했습니다. 죄책감과 슬픔에 짓눌려 더 이상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정신과 상담을 받았습니다. 상담 과정에서 의사 선생님은 저에게 “그 사람은 그 사람의 운명대로 살다 간 것입니다. 당신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또한, 제가 죄책감에 힘들어하며 남편에게 모질게 대했던 과거를 고백했을 때, 의사 선생님은 “한 방 먹었네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남편에게 복수심을 느꼈던 저의 감정을 꿰뚫어본 것이었고, 오히려 저를 위로하는 말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순간 저는 죄책감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살한 사람보다 남겨진 사람들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고, 유가족들을 비난하거나 손가락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은 저의 편에 서서 저를 이해해주셨고, 그것이 저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
네 명의 자녀를 홀로 키우셔야 했기 때문에 경제적인 어려움도 컸을 것 같습니다. 간호사로 다시 3교대 근무를 시작하셨지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খুবই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는 죄책감과 경제적인 압박감까지, 어떻게 এই 어려운 시기를 견뎌내셨나요? 파산 신고까지 고려하셨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남편의 사망 후, 가장 큰 걱정은 경제적인 문제였습니다. 남편 생전에는 직장 생활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장 생활비를 마련하는 것이 막막했습니다. 아이들을 굶길 수는 없었기에, 오랜만에 간호사 3교대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3교대 근무는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었고, 밤 근무를 할 때는 어린 아이들만 집에 남겨두어야 한다는 불안감에 시달렸습니다. 어느 날, 밤 근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아이들은 엄마가 밤새도록 일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차마 깨우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는 죄책감과 경제적인 압박감, 그리고 남편이 남긴 빚까지, 정말 벼랑 끝에 서 있는 심정이었습니다. 파산 신고까지 고려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저는 하나님께 매달리며 기도했습니다. 이사야 45장 2절, 3절 말씀, “내가 너보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하게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 네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알게 하리라”는 말씀을 굳게 믿고, 더 이상 절망하지 않고 일어서기로 결심했습니다. 대출을 받아서 당장의 빚을 갚고,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사주면서 힘든 시기를 견뎌냈습니다.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도 아이들을 위해 용기를 내신 작가님이 정말 대단하십니다. 집을 팔고 작은 집으로 이사하면서까지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신 모습이 감동적인데요, 힘든 상황 속에서도 아이들이 작가님께 큰 힘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어머니로서, 또 아버지로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아이들에게 아버지의 부재를 어떻게 설명하고 위로했는지 궁금합니다.
아이들은 저에게 삶의 이유이자 희망이었습니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아이들을 보며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집을 팔고 작은 집으로 이사하면서 경제적으로는 어려워졌지만, 오히려 마음은 풍요로워졌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 소소한 일상 속에서 행복을 느꼈고, 아이들의 웃음소리 덕분에 힘든 시간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아버지의 부재를 솔직하게 설명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아버지가 알코올 의존증으로 고통받았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이야기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충격을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엄마를 위로해주었습니다. 아이들은 저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고, 함께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과정에서 더욱 끈끈한 가족애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늘 “엄마는 너희들을 정말 사랑하고, 너희들이 있기에 엄마는 힘을 낼 수 있다”라고 말해주었고, 아이들은 엄마의 사랑을 느끼며 건강하게 자라주었습니다.
작가님께서는 상담학 공부를 통해 자신과 같은 자살 유가족들을 돕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상담학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와, 자살 유가족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작가님의 경험과 지식이 다른 유가족들에게 큰 희망과 위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자살 유가족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메시지를 부탁드립니다.
상담학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은, 저와 같은 고통을 겪는 자살 유가족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저 또한 자살 유가족으로서 겪었던 고통과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죄책감, 수치심, 슬픔, 분노, 외로움… 자살 유가족들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복잡하고 강렬한 감정들을 경험합니다. 이러한 감정들을 혼자서 감당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저는 상담학 공부를 통해 자살 유가족들의 심리적 어려움을 이해하고, 전문적인 상담 기법을 익혀서 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자살 유가족 상담 센터에서 상담 봉사를 하고 있고, 강연과 집필 활동을 통해 자살 유가족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자살 유가족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은 “당신 탓이 아닙니다.”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자살은 절대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죄책감과 자책감에서 벗어나, 자신을 돌보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세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고, 용기를 내어 다시 일어서세요. 당신은 충분히 행복해질 자격이 있습니다.
오늘 귀한 시간 내어주시고, 용기 있는 이야기 나눠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작가님의 이야기가 자살 유가족들에게 큰 위로와 희망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희는 앞으로도 자살 예방과 자살 유가족 지원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시청자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자살은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자살 유가족들은 우리 사회의 따뜻한 관심과 지지가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보내주시고, 함께 슬픔을 나누고, 희망을 이야기해주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혼자서 끙끙 앓지 말고,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세요.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힘내세요.
오늘 곽경희 작가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살 유가족의 삶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작가님의 용기와 치유의 이야기가 많은 분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으리라 믿습니다. 저희는 앞으로도 자살 예방과 자살 유가족 지원을 위해 더욱 노력하고, 더 많은 분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오늘 인터뷰에 응해주신 곽경희 작가님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 영상이 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와 구독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