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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종 집사 간증: 특수부대·사업 실패 속 하나님의 사랑과 믿음

요약

나를 향한 멈추지 않는 사랑, 후회 없는 인생 여정

내 생이 끝날 때에도 내 선택에 후회는 없노라고: 최성종 집사 간증 상세 정리

오늘, 성공과 명예를 좇는 인생 내비게이션 대신 하나님을 인생의 내비게이션으로 삼은 특별한 간증의 주인공, 최성종 집사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비보이 출신, 특수부대 강인한 이력에 '하나님께 미친 사람'이라는 수식어까지, 최성종 집사님의 파란만장 인생 이야기는 과연 어떤 깊이와 울림을 줄까요? 궁금하시죠? 지금부터 최성종 집사님의 진솔한 인생 여정 속으로 함께 떠나보시겠습니다.

최성종 집사님은 인천 영종도, 지금은 인천공항으로 발전한 시골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25~30년 전, 전기조차 제대로 들어오지 않던 낙후된 환경이었는데요. 대가족 제도로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어린 시절, 중학교 2학년 때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가정에 큰 변화가 찾아옵니다. 할머니와의 깊은 유대감을 잃은 아버지는 슬픔을 술로 달래기 시작했고, 잦은 음주와 함께 가정 폭력이 시작되면서 최성종 집사님의 어린 시절은 어둠으로 물들었습니다.

술에 취한 아버지는 어머니, 누나, 그리고 최성종 집사님에게 폭언과 폭력을 일삼았습니다. 아버지 차 소리만 들어도 술 취한 아버지인지 구분이 될 정도였는데요. 어느 비 오는 날, 술 취한 아버지를 피해 어머니, 누나와 함께 뒷문으로 도망치던 중, 갑자기 앞문이 열리는 소리에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 고추밭 고랑에 숨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걸리면 끔찍한 폭력이 닥쳐올 것을 알기에 숨 막히는 공포 속에서 작은 할머니 댁까지 도망쳐야 했습니다.

폭력과 불안으로 가득 찬 가정 환경은 학교생활에도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고등학교 진학 후 인천으로 이사했지만, 아버지의 폭력은 끊이지 않았는데요. 어머니는 자녀들을 보호하기 위해 아버지와 떨어져 살기로 결심했지만, 아버지의 폭력은 어머니의 부재를 핑계 삼아 더욱 심해졌습니다. 가정 불화와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 최성종 집사님은 방황하기 시작했고, 비보이 댄스팀 활동을 통해 나이트클럽 무대에 오르며 어두운 세상에 발을 들였습니다.

화려한 조명과 환호 속에서 잠시 외로움을 잊었지만, 마음속 깊은 곳의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가면을 쓴 듯 웃어야 하는 현실 속에서 더욱 깊은 외로움을 느꼈는데요. 가정 문제와 방황하는 현실을 숨긴 채 겉으로 밝은 척해야 했던 고등학생 시절, 최성종 집사님은 누구에게도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하는 고립감 속에 갇혀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농구 친구 최우열이 건넨 CCM 카세트테이프는 최성종 집사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습니다. 자율학습 시간에 우연히 듣게 된 김수지 씨의 CCM 찬양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속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 날 사랑하심" 이라는 가사는 깊은 슬픔과 외로움에 잠겨 있던 최성종 집사님의 마음을 강렬하게 두드렸습니다. 부모님의 이혼, 세상에 버려진 듯한 절망감 속에서 수면제 한 통을 삼켰던 그에게 찬양 가사는 "세상이 당신을 버려도 나는 너를 버리지 않노라" 라는 하나님의 따뜻한 위로와 사랑으로 다가왔습니다.

찬양을 듣는 동안 눈물은 멈추지 않았고, 그 길로 친구를 따라 교회 문턱을 넘게 되었습니다. 수면제 과다 복용에도 멀쩡히 깨어난 것은 분명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자신을 살리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그는 깨어진 가정을 가진 청소년들에게 "당신은 소중한 존재" 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는 열망을 품게 되었고, 춤이라는 달란트를 활용해 워십 댄스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1년간 풀타임 간사로 헌신하며 워십 댄스를 통해 복음을 전하는 사역에 매진했습니다.

군 입대를 앞두고 '군대 가면 중간만 하라'는 조언 대신,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으로 공군 부사관 시험에 응시했습니다. "나대지 말고 중간만 하라" 는 세상의 조언과는 달리, 하나님을 만난 후 가치관이 변화된 그는 "하나님이 보내신 곳에서 '나대는' 열심을 내겠다" 고 다짐했습니다. 훈련소에서 겪은 특별한 경험은 그의 인생을 또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습니다. 어느 날, 사복 차림의 사람들이 찾아와 몇몇 훈련병들을 인터뷰했고, 최성종 집사님 또한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며칠 후, 그는 정장을 입고 청주 터미널에서 검은 승용차를 기다리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처럼 안대를 쓰고 첩보 작전 연상케 하는 경험 끝에 도착한 곳은 특수부대였습니다. 일반 부사관을 꿈꿨던 그는 예상치 못한 특수부대 차출에 당황했지만, 4년의 의무 복무는 7년으로 늘어났고, 원치 않던 군 생활을 7년간 해야 했습니다. 종교 활동조차 자유롭지 못한 격오지 부대에서 그는 광야와 같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징역 7년과 다름없는 군 생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갇힌 듯한 시간 속에서 그는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특수부대 생활은 고통의 연속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하나님을 더욱 깊이 만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교회조차 없는 부대에서 그는 절망했지만, 절망 끝에서 하나님을 더욱 간절히 찾았습니다. 부대 내 목욕탕 사우나실을 기도 장소로 삼아 "주님, 제가 여기 있사오니 저를 사용하여 주십시오"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한 번은 주일 예배 중 뜨겁게 기도하다가 최선임에게 발각되어 끔찍한 구타와 가혹행위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그는 더욱 간절하게 기도했고, 사우나실은 그에게 은밀한 예배 처소가 되었습니다.

7년의 특수부대 복무를 마치고 일반 부사관으로 전향하여 오산 미군 기지에서 정보 특기 부사관으로 8개월간 복무했습니다. 미군 기지 내 교회에서 청년들과 교류하며 복음을 전하던 중, 요한복음 21장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는 말씀을 통해 다시 한번 깊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던지신 질문은 최성종 집사님의 마음을 깊숙이 파고들었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십니다" 베드로의 고백은 바로 그의 고백이었습니다.

배신자라는 죄책감에 "사랑한다" 고 선뜻 말하지 못하는 베드로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그는, 주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임을 고백하며 다시 한번 십자가 사랑을 가슴 깊이 새겼습니다. "내 양을 먹이라" 는 예수님의 명령은 그에게 깨어진 가정을 가진 청년들을 향한 사명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습니다. 평생 안정적인 군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는 장기 복무 기회를 포기하고 전역을 결심한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주변 사람들은 "미쳤다" 고 했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전역 후, 특수부대 교수였던 지인의 연락으로 민간 항공 분야에 발을 들였습니다. 비행 교관 자격증을 단기간에 취득하고, 한국교통대학교 항공운항학과 교수로 임용되는 등 탄탄대로를 걷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선교" 라는 가슴속 깊은 열망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교수 생활은 안정적이었지만, 영혼 구원을 향한 갈망은 더욱 커져갔습니다. 방학조차 없이 바쁜 일상 속에서 그는 "어떻게 하면 영혼들을 더 많이 구원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950시간의 비행 경력, 눈앞에 다가온 대형 항공사 취업 기회를 뒤로하고 미국행을 결심했습니다. 미국에서 50시간 비행 시간을 채우며 여행과 휴식을 계획했지만, 하나님은 그곳에서도 만남을 예비하고 계셨습니다. 요리 유학을 온 청년 민요한을 비롯한 청년들과 함께 미국 서부를 여행하며 복음을 전하게 된 것입니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밤하늘 아래에서, 그랜드캐년의 웅장한 자연 속에서, 삶의 고민과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그는 청년들의 영혼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따뜻하게 보듬었습니다.

특히 민요한 청년은 최성종 집사님과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신앙의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교회 찬양 예배 중, "영혼이 살아나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기쁨" 임을 깨달은 그는 조종사의 꿈을 내려놓고 영혼 구원을 위한 삶을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세상적인 성공과 안정을 보장하는 조종사의 길을 포기하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영혼 구원의 기쁨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50시간 비행 시간 채우는 것조차 미련 없이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결혼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결혼 후, 사업가의 길을 걷게 된 최성종 집사님에게는 또 다른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결혼 자금 4천만 원 사기, 수억 원에 달하는 사업 실패,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내는 임신 중이었고, 당장 갓 태어난 아기의 분유 값조차 걱정해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에 놓였습니다. "다시 조종간을 잡아야 하나" 수없이 고민했지만, 아내는 "오빠가 가고자 하는 길을 끝까지 갔으면 좋겠다" 며 굳건한 믿음과 지지를 보내주었습니다. 아내의 격려에 힘입어 다시 사업에 매진했지만, 연이은 실패와 배신은 그를 더욱 힘들게 했습니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온몸에 두드러기가 돋고, 통장과 카드가 정지되는 고통스러운 시간 속에서 그는 "왜 이전에는 이렇게 간절하게 하나님을 찾지 않았을까" 자책하며 기도원에self로 향했습니다. 아내와 함께 한 달간 간절히 기도하며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의 순수한 열정을 되찾았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자" 결심했을 때, 놀랍게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돌이켜보면, 인생의 প্রতিটি 고비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생명을 건지시고, 특수부대라는 광야에서 연단하시고, 교수, 조종사라는 안정된 길을 내려놓고 영혼 구원의 사명을 향해 나아가게 하신 분도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사업 실패와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았기에, 오늘 이 자리에서 "내 생이 끝날 때에도 내 선택에 후회는 없노라" 고 담대히 고백할 수 있습니다.

최성종 집사님의 이야기는 단순한 성공 스토리가 아닙니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변치 않는 믿음으로 인생의 প্রতিটি 순간을 선택하고, 영혼 구원이라는 숭고한 가치를 향해 묵묵히 걸어가는 한 사람의 아름다운 여정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어리석어 보일 수 있는 선택이었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가장 지혜로운 선택이었음을 그의 삶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인생 내비게이션은 무엇입니까? 최성종 집사님의 간증을 통해 진정한 인생의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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