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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 교수 103세 장수 비결과 신앙 인생 이야기

요약

김형석 교수의 103년: 인생, 신앙, 그리고 꿈

신앙이란 밧줄과도 같은 것: 김형석 교수님의 삶과 지혜를 담은 이야기

오늘 우리는 특별한 분을 모시고 깊은 이야기를 나눠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한국 현대사의 산증인이신 김형석 교수님께서 귀한 발걸음을 해주셨는데요. 교수님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역사책에서 걸어 나온 듯한 놀라운 인물들과의 만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올해 103세라는 연세에도 불구하고, 정정하신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 계신 김형석 교수님을 모시고, 인생과 신앙에 대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눠보겠습니다. 교수님, 귀한 시간 내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방송 위치를 조정한 이유는 교수님의 청력 때문인데요, 오른쪽 귀가 더 잘 들리신다고 하셔서 자리를 옮겼습니다. 교수님께서는 1920년생으로 올해 103세가 되셨는데, 놀랍게도 매우 건강하신 모습이십니다. 이렇게 건강을 유지하시는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으신가요?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실 것 같습니다. 교수님께서는 "겉으로 보기엔 건강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겸손하게 말씀하시면서도, "살다 보면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들이 많다"고 인생의 깊이를 엿볼 수 있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하지만 교수님, 정말 103세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정하신데요.

교수님 인터뷰를 보면, 백 년 넘게 살아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철이 안 들었다"고 말씀하신 부분이 인상 깊었습니다. 어떤 점에서 그런 생각을 하셨는지 여쭤보았습니다. 교수님께서는 "나이가 들수록, 특히 100세를 넘기면서 오히려 더 철이 드는 것 같다"고 답변해주셨는데요. 예전에는 '어른'이라고 생각했지만, 100세를 기점으로 이제는 '늙은 종'이라는 마음으로 겸허하게 살아가신다고 합니다. 100세 이전에는 어른의 마음으로 의지를 가지고 살았다면, 100세 이후에는 모든 것을 초월한 듯한, 더욱 깊어진 인생관을 보여주셨습니다.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장수 비결에 대한 질문에 교수님께서는 특별한 비결은 없다고 하시면서도, 의미 있는 두 가지 공통점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함께 해 온 친구들을 떠올려보니, 장수하는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셨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욕심이 많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필요 이상의 욕심을 부리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장수의 중요한 비결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남을 욕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하신 것인데요, 남을 비판하거나 욕하지 않고,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하셨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욕심이 없고, 남을 욕하지 않는 사람은 감정 낭비가 없어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덧붙이셨습니다. 정말 깊이 새겨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교수님께서는 103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겪으셨을 텐데요, 어떻게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오늘날까지 건강하게 지내실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특히 젊은 시절에는 몸이 매우 약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어린 시절, 건강이 좋지 않아 오래 살기 힘들 것이라는 말을 들으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Limited to 20,000 characters. Further content would exceed this limit.## 신앙이란 밧줄과도 같은 것: 김형석 교수님의 삶과 지혜를 담은 이야기

오늘 우리는 특별한 분을 모시고 깊은 이야기를 나눠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한국 현대사의 산증인이신 김형석 교수님께서 귀한 발걸음을 해주셨는데요. 교수님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역사책에서 걸어 나온 듯한 놀라운 인물들과의 만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올해 103세라는 연세에도 불구하고, 정정하신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 계신 김형석 교수님을 모시고, 인생과 신앙에 대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눠보겠습니다. 교수님, 귀한 시간 내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방송 위치를 조정한 이유는 교수님의 청력 때문인데요, 오른쪽 귀가 더 잘 들리신다고 하셔서 자리를 옮겼습니다. 교수님께서는 1920년생으로 올해 103세가 되셨는데, 놀랍게도 매우 건강하신 모습이십니다. 이렇게 건강을 유지하시는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으신가요?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실 것 같습니다. 교수님께서는 "겉으로 보기엔 건강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겸손하게 말씀하시면서도, "살다 보면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들이 많다"고 인생의 깊이를 엿볼 수 있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하지만 교수님, 정말 103세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정하신데요.

교수님 인터뷰를 보면, 백 년 넘게 살아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철이 안 들었다"고 말씀하신 부분이 인상 깊었습니다. 어떤 점에서 그런 생각을 하셨는지 여쭤보았습니다. 교수님께서는 "나이가 들수록, 특히 100세를 넘기면서 오히려 더 철이 드는 것 같다"고 답변해주셨는데요. 예전에는 '어른'이라고 생각했지만, 100세를 기점으로 이제는 '늙은 종'이라는 마음으로 겸허하게 살아가신다고 합니다. 100세 이전에는 어른의 마음으로 의지를 가지고 살았다면, 100세 이후에는 모든 것을 초월한 듯한, 더욱 깊어진 인생관을 보여주셨습니다.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장수 비결에 대한 질문에 교수님께서는 특별한 비결은 없다고 하시면서도, 의미 있는 두 가지 공통점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함께 해 온 친구들을 떠올려보니, 장수하는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셨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욕심이 많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필요 이상의 욕심을 부리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장수의 중요한 비결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남을 욕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하신 것인데요, 남을 비판하거나 욕하지 않고,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하셨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욕심이 없고, 남을 욕하지 않는 사람은 감정 낭비가 없어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덧붙이셨습니다. 정말 깊이 새겨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교수님께서는 103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겪으셨을 텐데요, 어떻게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오늘날까지 건강하게 지내실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특히 젊은 시절에는 몸이 매우 약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어린 시절, 건강이 좋지 않아 오래 살기 힘들 것이라는 말을 들으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 인생의 깊은 의미를 깨닫고, 신앙의 힘으로 역경을 극복해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초등학교 졸업 후 중학교에 진학할 무렵, 14살 때 비로소 자신의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고 회상하셨습니다. 그 이전에는 어렴풋한 기억만 있을 뿐, 진정으로 자신의 삶을 자각한 것은 14살 때부터였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몸이 약했던 교수님은,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주변 어른들도 교수님에게 "20살 넘기기 힘들 것 같다"는 말을 했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20살까지 건강이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졸업 후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건강 문제로 학업을 계속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했던 상황에서, 교수님은 간절한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부모님이나 의사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교수님은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주신다면, 남은 인생을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는 서원을 하셨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교수님의 인생을 바꾼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중학교에 진학할 즈음, 놀랍게도 교수님의 건강이 점차 회복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20살 무렵에는 건강이 상당히 좋아졌고, 50대 이후부터는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건강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셨다고 합니다. 고향이 북쪽에 있었던 교수님은 6.25 전쟁을 겪으면서 더욱 깊은 신앙을 갖게 되셨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난 후 60대에 접어들면서, 다시 한번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65세 정년을 앞두고, 대부분의 교수들이 은퇴 후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할 때, 교수님은 14살 때 하나님께 했던 서원을 다시 떠올리셨습니다. "건강을 허락해주시면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는 어린 시절의 약속을 기억하고, 정년 이후에도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하셨습니다.

교수님께서는 14살 때의 서원이 90년 넘게 이어져 온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4살 때 주님과 맺은 약속, 그리고 65세 정년 이후에도 계속해서 사회에 봉사할 수 있도록 건강을 허락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오늘날까지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십니다. 교수님의 삶은 14살 때 시작된 신앙 여정이 100세가 넘는 지금까지 이어져 온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정말 놀라운 신앙 간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젊은 시절부터 설교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어떻게 설교를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교수님께서는 중학생 시절, 다니시던 중실학교가 기독교 학교였는데, 여름 방학 때 시골 교회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성경학교를 열었다고 합니다. 당시 시골 교회는 환경이 열악했기 때문에, 중학생들이 여름 성경학교를 돕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봉사활동이었다고 합니다. 교수님의 친구인 김영철이라는 학생이 있었는데, 여름 성경학교 강사로 와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 교수님은 설교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감이 없었다고 합니다. "교회에 매달리지 말고, 가르쳐 볼 별다른 내용도 없고, 설교는 더더욱 자신이 없다"며 망설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김영철 학생은 "네가 가는 것이 아니고, 김형석 선생님, 즉 교수님이 강사로 오시는 것"이라며 설득했다고 합니다. 결국 교수님은 용기를 내어 여름 성경학교 강사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평양역에서 김영철 학생과 만나기로 약속하고, 짐을 싸서 20리를 걸어가 평양역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약속 시간인 오후 2시가 되었지만, 김영철 학생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김영철 학생은 설사병이 나서 기차를 탈 수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교수님 혼자 여름 성경학교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기차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하니, 장로님들과 교인들이 새벽 기도와 학생 지도, 저녁 설교 등을 부탁했다고 합니다. 얼떨결에 시작했지만, 일주일 동안 매일 설교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놀랍게도 설교를 시작하면서 교수님은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은혜를 경험했다고 합니다. 설교를 하면 할수록 기도도 더 잘 되었고, 성경 말씀도 더욱 깊이 깨달아졌다고 합니다. 특히 시골 교회에서는 예배당이 좁아, 성도들이 예배당 밖이나 심지어 지붕에 올라가서 설교를 듣기도 했다고 합니다. 교수님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설교를 했던 것입니다. 일주일간의 여름 성경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니, 교회 장로님들이 "너무 좋았다"며 며칠 더 연장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원래 10일 동안 진행하기로 했던 여름 성경학교는, 장로님들의 요청으로 3일을 더 연장하여 총 13일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여름 성경학교를 마치고 평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교수님은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기차가 철길 위를 달려 평양에 가까워질 무렵, 교수님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꿈속에서 14살 때 하나님께 서원했던 약속이 떠올랐습니다. "14살 때 건강을 허락해주시면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느냐"는 음성이 들려왔다고 합니다. 꿈에서 깨어난 교수님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습니다.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절대로 딴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만 위해 살겠습니다."라고 다시 한번 서원했다고 합니다. 평양역에 내려 집까지 8km가 넘는 길을 밤새도록 걸어가면서, 교수님은 새로운 다짐을 했다고 합니다.

그 후 1년 뒤 여름 방학 때, 선교사님이 교수님을 찾아와 수술 전 학교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안드레 교회 교인들을 대상으로 일주일 동안 성경학교를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교수님은 이번에도 망설였지만, 선교사님은 "오랫동안 기도하며 기다려왔다"며 간곡하게 부탁했다고 합니다. 결국 교수님은 18살 때 또 다시 일주일 동안 여름 성경학교 강사로 봉사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교수님은 집 생각도 잊고,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교수님께서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설교도 직접 들으셨다고 합니다. 17살 때 도산 안창호 선생의 설교를 들었던 경험을 이야기해주셨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설교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감옥에 갇혔고, 결국 세상을 떠나게 되었는데, 교수님께서 들었던 설교가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마지막 설교였다고 합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설교는 교수님에게 큰 충격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교수님은 도산 안창호 선생의 설교가 목사님들의 설교와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고 합니다. 교회에서 들어왔던 설교와는 다른, 새로운 차원의 설교였다고 회상했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설교는 무엇이 달랐을까요? 교수님께서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설교를 통해 "신앙이란 밧줄과도 같은 것"이라는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신앙은 그릇과 같아서, 자신의 그릇 크기만큼 신앙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릇이 작으면 작은 신앙밖에 가질 수 없고, 그릇이 크면 큰 신앙을 가질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교수님은 당시 목사님들의 설교는 교회 걱정만 하는 작은 그릇의 신앙이었다고 비판했습니다. 교회라는 작은 틀에 갇힌 신앙이 아니라, 더 넓은 세상을 향한 큰 신앙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반면 도산 안창호 선생은 민족과 국가를 걱정하는 큰 그릇의 신앙을 보여주었다고 칭찬했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설교를 통해 교수님은 자신의 신앙을 새롭게 정립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고당 조만식 선생의 설교도 열심히 들으셨다고 합니다. 조만식 선생 역시 민족주의 지도자로서, 교수님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교수님은 조만식 선생과 도산 안창호 선생의 설교를 통해, 교회 중심의 좁은 신앙에서 벗어나 민족과 국가를 위한 넓은 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교회만을 위한 신앙은 목사님들이 할 일이고, 자신은 민족과 국가를 위한 신앙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교수님의 신앙에 큰 변화를 가져온 결정적인 계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수님은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을까요? 교수님께서는 목사님들의 신앙은 교리 중심의 신앙이었던 반면, 도산 안창호 선생과 조만식 선생의 신앙은 실천 중심의 신앙이었다고 분석했습니다. 교리만 강조하는 신앙이 아니라, 삶 속에서 실천하는 신앙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도 직접 경험하셨습니다. 일제강점기 대학 생활은 어떠셨는지,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는지 여쭤보았습니다. 교수님께서 대학 생활을 하시던 시기는 태평양 전쟁 말기로,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였습니다. 모든 한국 학생들은 일본 군대에 징집될 위기에 놓여 있었습니다. 대학생들도 예외 없이 징병 대상이 되었고, 교수님 역시 징집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대학 1년을 마치고 일본 군대에 징집될 상황에 놓이자, 교수님은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일본 군대에 가야 하는가, 아니면 다른 길을 찾아야 하는가?" 고민 끝에 교수님은 하나님께 기도하며 뜻을 구하기로 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성경 말씀을 읽던 중, 요한복음 15장 16절 말씀을 통해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교수님은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셨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내가 일본 군대에 가는 것을 걱정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셨다면 모든 것을 맡겨도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 순간 교수님은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고 합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 확신을 얻은 교수님은 다시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제 알았습니다." 더 이상 기도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버지가 되셨다는 확신이 들자, 모든 걱정과 불안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 후 교수님은 담담하게 징병 검사를 받으러 갔습니다. 징병 검사에서 군의관은 교수님의 건강 상태를 살펴보더니, 어릴 때부터 앓아온 병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교수님은 14살 때 앓았던 병력을 이야기했고, 군의관은 과거 병력과 현재 건강 상태를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교수님을 "불합격" 처리했습니다. 징병 검사 불합격 판정을 받은 교수님은 기뻐하기보다 오히려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친구들은 모두 징집되어 전쟁터에 나가는데, 자신만 불합격되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꼈던 것입니다.

1945년 8월 15일, 드디어 광복을 맞이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해방되던 날의 기억을 생생하게 떠올리셨습니다. 1945년 8월 14일 저녁, 교수님은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고 합니다. 평양에서 진남포 방향 바닷가로 갔는데, 누군가가 바닷가로 가라고 해서 가보니, 그곳에서 모 선교사님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선교사님은 교수님을 반갑게 맞이하며, "보여줄 것이 있다"며 교수님을 데려갔습니다. 선교사님이 데려간 곳은 자루 두 개가 있는 장소였는데, 자루 안에는 놀랍게도 일본 사람들의 시신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시신들은 바닷물에 휩쓸려 모래사장에 쌓여 있었고, 주변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너무나 끔찍한 광경에 교수님은 경악했습니다. 선교사님은 "이렇게 되었다"고 짧게 말했고, 다음 자루를 열었더니 그 안에도 일본 군인들의 시신이 가득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시신들 중에 교수님의 일본인 동창생들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꿈에서 깨어난 교수님은 너무나 생생한 꿈의 내용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8월 15일 새벽, 교수님은 또 다른 꿈을 꾸었습니다. 넓은 들판에서 해가 솟아오르는 꿈이었는데, 과거에는 해가 서쪽에서 졌지만, 그날 꿈속에서는 해가 동쪽에서 떠오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해가 동쪽에서 떠오르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며 밭을 갈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해가 서쪽으로 지는 것이었습니다. 동쪽에서 떠오른 해가 서쪽으로 지는 기이한 현상을 목격하고 놀라 깨어났습니다. 꿈에서 깬 교수님은 어머니께 새벽 꿈 이야기를 해드렸습니다. 어머니는 꿈 이야기를 듣고 "광복이 되려나 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어머니는 "일본이 망하고, 우리나라가 다시 주권을 되찾을 것 같다"는 희망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머니의 말을 듣고 교수님은 평양까지 걸어가기로 결심했습니다. 혹시 무슨 소식이 있을까 하는 기대감에 평양으로 향했지만, 평양 시내는 여전히 조용했고 아무런 변화도 없었습니다.

실망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려던 교수님은 평양역 앞에서 전차를 탔습니다. 전차가 평양 시내 중심가를 지나갈 때쯤, 갑자기 전차가 멈춰 섰습니다. 승객들이 모두 내리기에 교수님도 따라 내렸는데, 알고 보니 전차가 멈춘 곳은 방송국 앞이었습니다. 방송국에서는 "정오를 알리는 방송입니다. 일본 천황 항복 방송이 곧 있을 예정입니다."라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교수님은 순간적으로 해방이 되었음을 직감하고 전차에서 뛰어내렸습니다. 방송국 안으로 들어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일본 천황의 항복 선언을 직접 들었습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해방의 순간이 온 것입니다. 교수님은 그 감격적인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회상했습니다. 해방 소식을 듣고 온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만세"를 외치며 기뻐했고, 교수님 역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교수님께서는 100년 넘게 살아오시면서, 해방되던 날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어떤 기쁨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온 민족이 함께 기뻐했던 감격적인 순간이었다고 회상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해방 이후, "밭을 갈 듯 국민들의 마음 밭을 갈아야 한다"는 소명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해방된 조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교육과 계몽 운동에 헌신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교수님의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또 다른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14살 때 신앙을 통해 인생의 방향을 정했고, 해방을 통해 민족을 위한 봉사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교수님의 삶은, 진정으로 헌신적인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신앙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에, "바다 한가운데 밧줄이 있는 배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 비유적으로 설명해주셨습니다. 밧줄이 있는 사람은 밧줄을 잡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지만, 밧줄이 없는 사람은 파도에 휩쓸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바로 인생의 밧줄"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어려운 시기에 신앙은 밧줄과 같은 존재가 되어,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준다는 것입니다. 교수님께서는 목사가 된 친구들이나 신학자가 된 친구들과는 달리, 자신의 어려움보다는 사회 전체의 문제에 더 관심을 가졌다고 합니다. 정직과 진실이 사라져가는 사회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사회 전체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개인의 어려움에 갇히지 않고, 사회 전체를 위한 밧줄을 잡고 살아오신 교수님의 삶은, 진정한 지성인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김수환 추기경과의 인연도 소개해주셨습니다. 오래전 김수환 추기경께서 살아계실 때, 연세대학교 교목실장님으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당시 연세대학교 입학생 중 천주교 신자의 비율이 28%였는데, 놀랍게도 졸업생 중에는 천주교 신자의 비율이 31%로 증가했다는 것입니다. 입학할 때보다 졸업할 때 천주교 신자가 더 많아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교목실장님은 "그 이유 중 하나는 김수환 추기경님의 영향력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서 김수환 추기경에 대한 존경심이 매우 컸고, 김수환 추기경님의 삶을 통해 천주교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확산되었다는 것입니다. 교수님 역시 김수환 추기경님을 존경하며, "저런 지도자가 되려면 천주교 신자가 되어야 하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당시 개신교계에는 김수환 추기경님만큼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지도자가 없었던 현실을 안타까워했습니다. 교수님은 김수환 추기경님을 통해 종교 지도자의 역할과 사회적 책임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교수님께서는 30년 넘게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시면서 수많은 젊은이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젊은 학생들에게 강의하실 때, 가장 강조하는 점은 무엇인지 여쭤보았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젊은 학생들에게 "자화상을 그려보라"고 강조한다고 합니다. 교수님께서 중학교 시절 함께 다녔던 윤동주 시인, 황순원 소설가, 함석헌 선생의 사례를 예로 들어 설명해주셨습니다. 윤동주, 황순원, 함석헌 세 사람은 모두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들인데, 공통적으로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 외에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고 합니다. 바로 "50대, 60대의 자신의 모습을 미리 그려보는 자화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윤동주 시인은 50, 60대에 어떤 시인이 될 것인지, 황순원 소설가는 어떤 소설가가 될 것인지, 함석헌 선생은 어떤 사상가가 될 것인지, 이미 젊은 시절에 자화상을 그려보고 인생의 목표를 설정했다는 것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자화상을 그리는 것이 꿈을 꾸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젊은 시절에 50대, 60대의 자화상을 그려보고, 인생의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자화상이 있는 사람은 역사를 움직일 만한 큰 인물이 될 수 있지만, 자화상이 없는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교수님께서는 학생들에게 "지금 당장 50대의 자화상을 그려보라"고 권면하며, 꿈을 가지고 미래를 준비하는 삶을 살라고 강조했습니다.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교수님의 열정적인 가르침은, 많은 학생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죽음에 대한 교수님의 생각을 여쭤보았습니다. 100세가 넘는 장수

1. 한 고대 문서 이야기

2. 너무나도 중요한 소식 (불편한 진실)

3. 당신이 복음을 믿지 못하는 이유

4. 신(하나님)은 과연 존재하는가?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있는가?

5. 신의 증거(연역적 추론)

6. 신의 증거(귀납적 증거)

7. 신의 증거(현실적인 증거)

8. 비상식적이고 초자연적인 기적, 과연 가능한가

9. 성경의 사실성

10. 압도적으로 높은 성경의 고고학적 신뢰성

11.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고고학적 증거

12. 성경의 고고학적 증거들

13. 성경의 예언 성취

14. 성경에 기록된 현재와 미래의 예언

15. 성경에 기록된 인류의 종말

16. 우주의 기원이 증명하는 창조의 증거

17. 창조론 vs 진화론, 무엇이 진실인가?

18. 체험적인 증거들

19.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모순

20. 결정하셨습니까?

21. 구원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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