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김성녀 선교사 이야기: 헌신과 기적의 삶, 복음 사역
기적의 여인, 캄보디아 김성녀 선교사
김성녀 선교사, 캄보디아에서의 헌신: 최선을 다할 뿐, 이루시는 이는 하나님
안녕하세요, 새롭게 하소서 시청자 여러분. 오늘 여러분께는 캄보디아에서 묵묵히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며 헌신하고 계시는 김성녀 선교사님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주영훈 님, 안수현 님, 정몽길 님께서 진행하시는 새롭게 하소서에 출연하신 김성녀 선교사님의 이야기는, 단순히 해외 의료 봉사를 넘어선, 한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킨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보여줍니다. 100여 년 전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을 심었던 선교사님들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선교사님들이 열방 가운데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계십니다. 그 중에서도 캄보디아에서 치과 의료 선교사로 헌신하고 계시는 김성녀 선교사님의 이야기는, 듣는 이로 하여금 깊은 감동과 도전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데요, 과연 김성녀 선교사님께서는 어떻게 캄보디아 땅에서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어가고 계시는 걸까요? 지금부터 함께 김성녀 선교사님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어린 시절과 가족 배경: 특별한 이름, 파란만장한 성장 과정
김성녀 선교사님의 이름은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어머니께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 출석하시던 교회의 한경진 목사님께서 김성녀 선교사님을 보시고 "거룩한 여자"라는 뜻으로 이름을 지어주셨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김성녀 선교사님의 가정 배경인데요, 부모님은 불교 집안이었지만, 김성녀 선교사님은 기독교적인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김성녀 선교사님에게는 "낳아주신 어머니"와 "길러주신 어머니" 두 분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남들은 하나도 가지기 어려운 어머니를 두 분이나 가지게 된 특별한 사연, 과연 무엇일까요?
당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아들을 잇는 것이 중요했던 시대적 배경이 작용했습니다. 김성녀 선교사님의 아버지는 본부인에게서 아들이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중학교 때 사고로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대를 이을 아들이 필요했던 아버지는 젊은 여인을 둘째 부인으로 맞아 김성녀 선교사님을 낳게 되었고, 2년 후 아들을 얻게 되면서 김성녀 선교사님은 동생과 함께 길러주신 어머니의 손에서 자라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친어머니와 떨어져 지내면서 느꼈을 원망이나 아픔은 없었을까요? 김성녀 선교사님은 어린 시절 친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아버지를 미워했던 기억이 있지만, 자신을 낳아주신 어머니와 길러주신 어머니 모두 훌륭하고 존경스러운 분들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두 분 어머니 모두 시대적 아픔 속에서 희생하며 살아오셨지만, 김성녀 선교사님은 오히려 두 분 어머니를 통해 깊은 사랑과 헌신을 배울 수 있었다고 회상합니다.
성인이 되어 친어머니와 재회했지만, 살가운 모녀 관계를 맺지는 못했습니다. 모스크바로 유학을 떠나야 했기에 친어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낼 기회가 많지 않았던 것인데요, 친어머니는 작년에 소천하셨고, 김성녀 선교사님은 안식년으로 한국에 왔을 때 친어머니와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어머니는 김성녀 선교사님을 보자마자 뜨겁게 안아주시고, 카페 안에서도 사람들 시선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잡고 간절히 기도해주셨다고 합니다. 마치 마지막임을 예감하신 듯, 어머니는 있는 힘껏 딸을 안고 기도해주셨습니다. 어머니는 임종 직전, 딸에게 "성녀는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귀한 하나님의 딸"이라는 유언을 남기셨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유언은 김성녀 선교사님께 큰 감동과 도전을 주었을 것입니다. 평범한 자신을 향한 어머니의 믿음, 그리고 하나님의 딸로서 살아가라는 격려, 이 모든 것이 김성녀 선교사님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모스크바 유학 시절: 만남과 갈등, 그리고 변화
대학교 졸업 후 SK에 입사하여 직장 생활을 시작했지만, 김성녀 선교사님은 남들과는 조금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보통은 공부를 먼저 하고 일을 시작하지만, 김성녀 선교사님은 일을 먼저 하면서 돈을 모아 유학을 가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남들이 잘 가지 않는 모스크바로 유학을 결심한 이유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젊은 시절부터 품어왔던 선교사의 꿈 때문이었습니다. 20대 때부터 선교 훈련을 받고, 단기 선교도 다녀오고, 상담 자격증까지 취득하는 등, 선교를 위한 준비를 꾸준히 해왔습니다. 단순히 공부를 위한 유학이 아닌, 하나님의 일을 위한 준비 과정이었던 셈입니다.
모스크바 유학길에서 운명적인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공항에서 남편을 만난 것인데요, 같은 유학원을 통해 러시아로 향하게 되면서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함께 언어 공부를 하고, 서로 의지하면서 자연스럽게 연인으로 발전했습니다. 남편은 키도 크고 똘똘했지만, 당시에는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는 아들이었습니다. 술을 좋아하고 교회도 다니지 않는 남편은, 김성녀 선교사님이 꿈꿔왔던 이상적인 배우자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의 진심 어린 사랑과 끈질긴 구애에 마음이 흔들렸고, 결국 결혼을 결심하게 됩니다.
결혼을 앞두고 김성녀 선교사님은 남편에게 두 가지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첫째는 함께 치과 공부를 할 것, 둘째는 함께 하나님을 믿을 것. 예체능 계열이었던 김성녀 선교님에게 의대 공부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지만, 남편의 격려와 도움으로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남편 역시 아내의 믿음에 동참하기로 약속하면서, 두 사람은 함께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로 결심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던 남편이 아내의 믿음을 받아들이고, 함께 치과 의사의 길을 걷게 된 것은 놀라운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힘이 한 사람을 변화시키고, 미래를 함께 꿈꾸게 하는 놀라운 역사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의대 공부는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습니다. 특히 화학 과목은 도저히 풀리지 않아 외워서 시험을 봐야 할 정도였습니다. 러시아어와 라틴어로 된 의학 용어들은 더욱 낯설고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공부하던 중 첫째 솔빈이가 태어나고, 곧이어 둘째까지 생기면서 육아와 학업을 병행해야 하는 어려움까지 겹쳤습니다. 하지만 김성녀 선교사님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한국 사람으로서 바닥을 칠 수는 없다"는 오기와 끈기로 힘든 의대 과정을 끝까지 마치고 졸업했습니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김성녀 선교사님의 강인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남편은 술을 끊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술을 끊기로 결심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친구들과의 술자리를 피하지 못하고, 추운 날씨 탓에 술을 찾기도 했습니다.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오는 남편에게 화가 난 김성녀 선교사님은 야구방망이를 들고 남편을 맞이하기도 했습니다. 극단적인 방법이었지만, 남편의 술 문제 해결을 위한 간절함이 담겨 있었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강경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술을 완전히 끊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술에 취해 잠든 사이 딸 솔빈이를 깔고 눕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다행히 아이는 다치지 않았지만, 남편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딸에게 술 마시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는 생각에, 남편은 진심으로 술을 끊기로 결심하고 기도에 매달렸습니다.
놀랍게도, 남편은 기도 중에 방언을 체험하고 술을 완전히 끊게 되었습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성격의 남편에게 방언 체험은 큰 충격이었고, 하나님을 더욱 깊이 신뢰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남편은 술 냄새조차 맡기 싫어할 정도로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끊을 수 없었던 술을, 하나님의 은혜로 끊게 된 것입니다. 술 문제로 갈등을 겪었던 부부는, 이 사건을 통해 더욱 굳건한 믿음의 공동체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아내의 사랑보다 딸에 대한 사랑이 더 컸던 것일까요? 어찌 되었든, 남편의 변화는 기적과 같았습니다.
캄보디아 선교의 시작: 의료 봉사에서 헌신으로
모스크바에서 치과 의사 면허를 취득한 후, 안정적인 삶이 보장된 상황에서 김성녀 선교사님 부부는 예상치 못한 결정을 합니다. 바로 캄보디아 선교를 떠나기로 한 것입니다. 애초에 치과 의사가 된 목적 자체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었기에, 부부는 주저 없이 선교의 길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남편은 사회주의 국가였던 베트남으로 먼저 건너가 선교 기반을 다졌고, 이후 김성녀 선교사님과 합류하여 본격적인 선교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베트남에서 의료 봉사 활동을 하던 중, 캄보디아 빈민촌에 의료 지원 요청이 들어왔고, 이를 계기로 캄보디아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두 번의 캄보디아 의료 봉사를 통해, 김성녀 선교사님 부부는 캄보디아 땅에 깊은 사랑과 헌신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캄보디아 선교를 결심하기까지 쉽지 않은 과정이 있었습니다. 한국의 한 병원에서 페이닥터로 일할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지만, 김성녀 선교사님은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젊음과 열정을 쏟고 싶지 않았습니다. 캄보디아를 향한 마음이 간절했던 부부는 40일 작정기도를 시작했고, 기도 중에 하나님으로부터 캄보디아 선교에 대한 확신을 얻게 되었습니다. 마침 캄보디아에 의료 선교사를 보내기를 기도하던 교회가 있었고, 놀랍게도 김성녀 선교사님 부부와 연결되어 캄보디아 선교가 시작되었습니다. 한국인 치과 의사로서 캄보디아 땅을 밟은 것은 김성녀 선교사님 부부가 처음이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하나님의 완벽한 섭리였다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캄보디아에서의 초기 사역은 쉽지 않았습니다. 언어 장벽, 문화 차이, 열악한 환경 등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김성녀 선교사님 부부는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의료 봉사를 통해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다가갔습니다. 특히 치과 진료는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의료 서비스였기에, 의료 봉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한 마을을 꾸준히 방문하며 진료를 해주자, 마을 사람들은 마음을 열고 김성녀 선교사님 부부를 신뢰하기 시작했습니다. 의료 봉사는 복음을 전하는 효과적인 도구였던 것입니다.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는 캄보디아에서, 치과 의료 봉사는 단순한 의료 행위를 넘어,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중요한 사역이 되었습니다.
캄보디아에서의 사역: 복음 전파와 제자 양육
김성녀 선교사님의 사역은 단순한 의료 봉사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의료 봉사를 통해 마음을 연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제자로 양육하는 데 힘썼습니다. 제자 양육을 통해 성도가 생기면 교회를 세우고, 교회 안에서 리더십을 세워 신학 공부를 시키고 목회자로 세우는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교회가 자립할 수 있도록 돕고, 스스로 성장하고 번성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김성녀 선교사님의 중요한 사역 목표였습니다. 선교사는 교회를 개척하고 성장시키는 역할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현지인 스스로 교회를 이끌어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합니다.
목회자와 선교사의 차이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사역했습니다. 목회자는 자신의 교회를 키우고 성장시키는 데 집중하지만, 선교사는 복음의 터전을 닦고 씨앗을 뿌리는 역할을 합니다. 선교사는 현지인들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어느 정도 성장하면 물러나 또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여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반복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18년 동안 10개 정도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지역으로 나아가 복음을 전하고, 현지인 리더십을 세우는 사역은, 김성녀 선교사님의 헌신과 열정을 보여줍니다.
선교 사역에는 남편과의 의견 차이도 있었습니다. 남편은 환자 진료에 집중하는 반면, 김성녀 선교사님은 복음 전파와 제자 양육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남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제대로 살지 못해서 문제"라며 삶으로 섬김을 보여주는 것을 강조했지만, 김성녀 선교사님은 "캄보디아 시골 사람들은 예수님 자체를 모른다"며 복음 전파의 시급성을 강조했습니다. 한국과 캄보디아의 상황 차이를 고려하지 못한 남편의 생각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되었습니다. 수많은 환자를 진료했지만,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지 회의감을 느낀 남편은, 복음 전파와 제자 양육의 중요성을 깨닫고 사역 방향을 수정하게 되었습니다. 부부 선교사로서 겪는 의견 차이는, 서로를 이해하고 맞춰가는 과정을 통해 더욱 성숙한 사역으로 나아가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언어 능력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복음 전파 사역은 놀라운 열매를 맺었습니다. 유치원생 수준의 언어로 복음을 전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입술을 통해 역사하셨습니다. 복음은 언어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수많은 노력과 헌신에도 불구하고,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하는 교회와 사람들을 보면서 낙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를 통해 깨달은 것은, 부흥은 인간의 노력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도구일 뿐, 모든 것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역의 어려움과 깨달음: 하나님의 주권 인정
오랜 시간 캄보디아 선교 사역을 하면서, 김성녀 선교사님은 많은 어려움과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언어 장벽, 문화 차이, 열악한 환경, 재정적인 어려움 등,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사역을 이어가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경험하며, 더욱 굳건한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특히, 사역의 열매가 눈에 보이지 않을 때, 인간적인 한계를 느끼고 좌절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위로와 격려를 주시고, 새로운 힘을 공급해주셨습니다. 선교 사역은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김성녀 선교사님은 어머니의 유언처럼, 캄보디아 땅에서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선교사"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예언은 현실이 되었고, 김성녀 선교사님은 캄보디아의 어머니와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왔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치과 의사가 되었고, 캄보디아 선교사로 헌신하여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귀한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김성녀 선교님은 자신을 "기적의 여인"이라고 칭합니다. 자신의 나 된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합니다. 자신을 통해 나타나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강조합니다.
만약 평범한 치과 의사로 살았다면, 김성녀 선교사님의 세상은 좁은 진료실 안에서 멈췄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김성녀 선교사님을 통해 넓은 세상을 보게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캄보디아 선교는 김성녀 선교사님의 인생을 완전히 변화시킨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돈 버는 치과 의사가 아닌, 영혼을 구원하는 선교사로서, 더욱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미래의 비전: 캄보디아를 향한 지속적인 헌신
앞으로 김성녀 선교사님은 캄보디아를 향한 헌신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늙고 병들어 더 이상 사역을 할 수 없을 때까지, 캄보디아 사람들을 섬기고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계속할 것입니다. 특히, 현지인 스스로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리더십을 세우는 일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치과 의료 학생들을 양성하여, 스스로 봉사하고 섬길 수 있도록 돕고, 치과 의료 센터를 설립하여 지속적인 의료 봉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할 것입니다. 또한, 캄보디아 여성들의 건강과 행복을 위한 사역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나이 들어갈수록 우울증에 취약해지는 여성들을 위해, 행복한 노년을 위한 강의와 상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습니다. 캄보디아 사람들을 향한 깊은 사랑과 헌신은, 김성녀 선교님의 삶의 원동력입니다.
캄보디아는 덥지만, 사람들이 참 좋다고 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헬조선"이라고 자조하지만, 김성녀 선교사님은 한국도 너무 좋다고 이야기합니다. 한국은 캄보디아와 달리 에어컨이 켜진 것처럼 시원하고, 무엇이든 시도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은 곳이라고 칭찬합니다. 캄보디아를 사랑하지만, 한국에 대한 애정도 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은퇴 후 한국에서 살고 싶다는 소망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캄보디아 사역에 집중하고, 캄보디아 땅에 뿌린 복음의 씨앗이 열매 맺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맺음말: 기적의 여인, 김성녀 선교사의 삶
오늘 우리는 김성녀 선교사님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인간의 숭고한 헌신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유언처럼, 김성녀 선교사님은 캄보디아 땅에서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선교사"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파란만장한 어린 시절, 의대 공부의 어려움, 남편의 변화, 캄보디아 선교의 도전 등, 수많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묵묵히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김성녀 선교사님의 삶은,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도전을 줍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김성녀 선교사님의 삶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귀한 본보기입니다.
김성녀 선교사님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의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고 있는가? 김성녀 선교사님의 삶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해줍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이웃을 사랑하며 섬기는 것입니다. 김성녀 선교사님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오늘 김성녀 선교사님의 이야기가, 여러분의 삶에 새로운 도전과 용기를 주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험한 곳에서 묵묵히 사역하시는 김성녀 선교사님과 캄보디아 선교 사역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