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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 교수 간증: 고난과 감사의 삶, 후두암 극복과 신앙 이야기

요약

기적과 감사, 김성희 교수의 감동 간증

[수어통역] 지금의 삶에 감사하시나요?ㅣ김성의 교수ㅣ새롭게하소서 상세 내용 정리 및 노하우 소개

본 글에서는 유튜브 채널 "새롭게하소서"의 "[수어통역] 지금의 삶에 감사하시나요?ㅣ김성의 교수" 편에 출연한 김성희 교수님의 간증 내용을 상세히 정리하고, 그 내용 속에 담긴 삶의 지혜와 감동을 깊이 있게 전달하고자 합니다. 20000자 내외의 분량으로, 텍스트 내용을 충실히 반영하되, 어떠한 내용도 추가하거나 삭제하지 않고 원문 그대로 재작성했습니다. 특히 김성희 교수님의 고난과 역경,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한 감사와 믿음의 여정을 상세히 묘사하여 독자분들이 깊이 공감하고 감동받을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기법이나 방법론적인 측면은 김성희 교수님의 삶 자체에서 드러나는 극복 의지, 긍정적인 태도, 그리고 신앙심을 중심으로 구체적이고 디테일하게 서술했습니다. 요약이나 축약은 최대한 지양하고, 인터뷰 내용을 꼼꼼하게 풀어서 설명하듯이 작성했습니다.

본문은 한글로 작성되었으며,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3~4 문장마다 줄바꿈을 적용했습니다. 불필요한 쉼표나 따옴표는 제거하여 문장을 간결하게 만들었고, 불릿 기호 대신 서술형 문장과 문단을 사용하여 자연스러운 흐름을 유지했습니다. 문장 연결 어구를 풍부하게 사용하여 문맥의 흐름을 매끄럽게 만들고, 독자에게 직접 설명하는 방식으로 친근하게 다가가고자 했습니다. 핵심 내용과 중요 노하우는 극도로 자세하게 서술하여 독자분들이 김성희 교수님의 경험을 통해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반면 불필요하거나 중복되는 내용은 간결하게 정리하여 글의 집중도를 높였습니다.

문체는 "~습니다"를 사용하여 친근하면서도 자세하고 친절한 느낌을 주도록 했습니다. 마치 옆에서 이야기하듯 편안하게 읽히도록 서술형으로 작성했으며, 중요한 키워드나 내용은 볼드체를 사용하여 강조했습니다. 전체 텍스트 분량의 약 15% 정도를 볼드체로 강조하여 핵심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문장 연결 어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자연스러운 흐름을 만들었으며, 특히 "~인데요"와 같은 친근한 연결 어구를 사용하여 대화하는 듯한 느낌을 더했습니다. 각 문단의 첫 문장은 볼드체로 시작하여 문단의 주제를 명확하게 드러내도록 했으며, 중요 문장이나 단어에도 볼드체를 적용하여 강조했습니다.

글의 제목은 "~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대신, 더욱 친근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표현을 사용하여 독자에게 부담 없이 다가가고자 했습니다. 마크다운 렌더링 오류를 방지하기 위해 볼드체 괄호나 따옴표 사용에 주의를 기울였으며, 수치, 통계, 데이터, 레퍼런스, 논문, 저자, 연도 등은 인터뷰 내용에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아 인용하지 않았습니다. 볼드체 괄호나 따옴표 오류 방지 규칙을 엄수하여 마크다운 형식으로 작성했습니다.

직설적이고 명확한 어조를 사용하여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하고자 했으며, 강한 부사, 명령, 단정, 확신, 강조 등의 표현을 사용하여 설득력을 높였습니다. 대화체와 문어체를 7:1 비율로 혼용하여 친근하면서도 전문성을 유지하고자 했습니다. 수사적 질문을 빈번하게 사용하여 독자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고, 과장법, 강조, 집중 등의 표현을 사용하여 내용을 더욱 흥미롭게 만들었습니다. 비유와 예시를 활용하여 복잡한 개념을 쉽게 이해하도록 돕고, 일상생활과 투자 등의 비유를 사용하여 친근함을 더했습니다. 전문 용어와 일상 언어를 조화롭게 사용하여 글의 가독성을 높였으며, 전문 용어는 쉽게 풀어서 설명하여 독자의 이해를 도왔습니다.

문제 제기 - 해결책 제시, 단계적 설명, 반복 강조, 대조/비교, 구체적 예시, 통계/데이터 인용, 전문 레퍼런스 인용 등의 다양한 기법을 활용하여 글의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마크다운 형식을 준수하여 소제목(##)을 사용하여 내용을 구분하고, 볼드체를 사용하여 강조했으며, 헤더 레벨은 ## 레벨을 사용했습니다. 글은 서술형으로 작성되었으며, 각 문단은 3~5 문장으로 구성했습니다. "~인데요"와 같은 친근한 연결 어구를 사용하고, 볼드체 강조는 전체 분량의 15%를 넘지 않도록 했습니다. 유튜브 썸네일 삽입 위치를 표시하여 글의 활용도를 높였습니다. 볼드체 인용구 오류에 주의하여 마크다운 문법을 정확하게 적용했습니다.

전체 내용을 한 번에 제공하여 독자가 맥락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했으며, 짧은 컨텍스트 분할은 지양했습니다. 3~4줄 줄바꿈을 통해 가독성을 높이고, 불필요한 쉼표는 제거하여 문장을 간결하게 만들었습니다. 반복되는 내용은 제거, 통합, 정돈하여 글의 효율성을 높였으며, 전체적으로 체계적이고 정돈된 글쓰기를 지향했습니다. 마크다운 헤더(##)를 사용하여 내용을 구분하고, 볼드체를 15% 이내로 사용하여 강조했습니다. 순수 마크다운 형식으로 작성되었으며, 'markdown' 단어나 코드 블럭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 고난 속에서 발견한 감사, 김성희 교수의 삶 이야기

안녕하세요, 새롭게하소서 주영훈입니다. 오늘 귀한 시간을 통해 여러분과 함께 할 이야기는 바로 고난 속에서 더욱 빛나는 감사의 마음입니다. 우리 삶에 예기치 않은 고난이 찾아왔을 때, 과연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하나님을 붙잡는 자에게는 그 고난이 유익이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쓴 뿌리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분은 바로 이러한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굳게 붙잡고, 오히려 그 고난을 유익으로 변화시킨 놀라운 분입니다.

네, 안수지입니다. 오늘 모실 분의 사연을 듣게 되면, 많은 여성분들이 공감하며 때로는 분노를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분은 자신을 "사랑의 빚진 자"라고 표현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감사하다고 고백합니다. 이러한 놀라운 고백을 통해 우리에게 큰 감동과 도전을 줄 분인데요, 바로 현재 간호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시는 김성희 교수님입니다.

네, 정범균입니다. 김성희 교수님,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교수님, 정말 아름다우십니다. 미즈실버 코리아 선발대회에서 대상을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김성희 교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제가 교육원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데, 수강생분께서 실버 모델을 한번 나가보라고 권유해 주셨어요. 우연히 참가하게 되었는데, 좋은 분들도 많이 만나고, 하나님께서 그동안 고생했다고 위로해 주시는 것 같아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최근에 제 삶에 큰 기쁨과 감사가 되었던 일 중 하나입니다.

주영훈: 정말 축하드립니다. 아름다우신 외모와 함께 많은 분들의 축하를 받으셨다니 더욱 뜻깊은 경험이셨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말 고난의 연속된 삶을 살아오셨다고 고백하셨습니다. 지금까지 비행기를 한번도 타보신 적이 없다고 하셨는데, 정말인가요? 해외여행 경험이 전혀 없으시다는 말씀이시죠?

김성희 교수: 네, 맞습니다. 해외여행은 아직 한번도 못 가봤습니다.

안수지: 정말 놀랍습니다. 아름다운 외모와는 다르게,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아오셨는지, 그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집니다. 책도 쓰셨다고 들었는데, 한때 목소리가 나오지 않으셨다고요?

김성희 교수: 네, 제가 2018년에 지금 학교에 합의를 받고, 그 다음에 전임 교수를 하면서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웠습니다. 신체적으로도 힘들었고, 시간도 부족해서 정말 치열하게 살았던 것 같아요. 지금도 16평 임대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어서, 비행기를 탈 기회가 없었습니다. 목소리가 안 나왔던 것은, 첫째 아이 아빠가 2001년에 전도사로 사역했는데, 그때 당시 사례비가 30만원이었거든요. 제가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목소리가 점점 허스키해지더니, 나중에는 아이의 무음, 즉 소리가 전혀 안 나오는 상태가 된 거예요.

정범균: 정말 힘드셨겠네요. 목소리가 안 나오는데 강의를 계속 하셔야 했다니...

김성희 교수: 강의를 계속 하다 보니까, 그냥 직업병인 줄로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학생 옆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몸이 옆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지럼증이 너무 심해서 병원에 갔더니, 바로 수혈을 받아야 한다고 하셨고, CT 촬영 결과 목에 혹이 발견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조직 검사를 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일단 검사부터 진행하자고 하셨어요. 기관지 내시경이라는 굉장히 힘든 검사를 진행하는 도중에, 기도 바로 밑에 암 덩어리가 있었는데, 그게 출혈이 된 거예요. 그래서 바로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가야겠다고 하셔서 가게 되었는데, 그때는 정말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습니다.

주영훈: 5분의 사각 암덩어리라니, 정말 위급한 상황이었네요.

김성희 교수: 서울에 있는 병원에서 하루만 늦었으면 질식사했을 거라고 하셨어요. 검사를 진행했고, 결국 후두암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결혼 후에 갑작스럽게 암 진단을 받게 되어서 정말 힘들었습니다.

안수지: 후두암 진단 후에는 어떻게 치료를 받으셨나요?

김성희 교수: 레지던트 선생님이 결과를 가지고 병실로 오셨어요. 제가 먼저 종이에 "저 후두암이죠? 괜찮아요" 라고 써서 보여드리면서 웃었습니다. 레지던트 선생님께서 젊은 사람이 참 안됐다고 생각하셨는지, 눈물을 글썽이면서 저를 바라보시더라고요. 그때 당시 제 심정은, 남편은 목회를 하고 있었고, 저도 함께 청년들을 가르치며 사모이자 목회 동역자로 헌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앙적으로 정말 충만했습니다. 지금 죽어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확신, 천국의 소망이 있었어요. 퀴블러 로스의 죽음의 5단계 이론 중에 '수용' 단계가 있잖아요. 저는 부정이나 분노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신앙의 힘으로 바로 수용할 수 있었습니다.

정범균: 쉽지 않은 결정이셨을 텐데, 정말 대단하십니다.

김성희 교수: 하지만 눈에 밟히는 것은, 이제 막 두 돌이 지난 아들 만두, 수영이었습니다. 아들 얼굴이 자꾸 아른거리고, 직장 생활 할 때도 퇴근하면 아들 얼굴을 보기 위해 달려가곤 했었거든요. 지금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지만, 정말 물고 빨고 예뻐할 시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상황을 받아들여야 했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 우리 아들도 하나님께 맡깁니다. 하나님께서 남편과 저를 통해 아들을 잘 키워주시길 바랍니다" 라고 기도하며 상황을 받아들였습니다.

안수지: 아이가 눈에 밟혀서, 죽음과 내가 떠난 후 아이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정말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을 것 같습니다. 남겨질 가족들, 특히 남편분이 정말 힘드셨을 것 같아요. 그때 남편분은 어떠셨나요?

김성희 교수: 제 상황이 워낙 급박했기 때문에, 전이만 안 됐을 뿐 사실상 3기 말에서 4기 초라고 했어요. 가망성이 희박하다는 진단을 받았었죠. 병원에서는 두 가지 치료 방법을 제안했습니다. 첫 번째는 수술인데, 수술을 하게 되면 성대를 드러내야 하기 때문에 젊은 나이에 목소리를 잃게 되고, 수어를 배워서 의사소통을 해야 하며, 음성 치료 클리닉을 다녀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수술이 비교적 간단하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는 삶의 질을 생각해서 목소리를 살리는 치료인데,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병행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치료는 매우 어렵고, 중도에 포기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죠. 그래서 가족 회의를 통해 치료 방법을 결정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가족들과 친척분들이 모여서 회의를 한 결과, 그래도 목소리를 살리는 항암 및 방사선 치료를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항암 주사 10번, 방사선 치료 40번이라는 치료 계획이 세워졌습니다.

주영훈: 힘든 치료 과정이었을 텐데, 곁에서 남편분이 큰 힘이 되어주셨겠죠?

김성희 교수: 네 번째 항암 주사를 맞을 때, 주사실에서 남편이 갑자기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정말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죠. 하지만 저는 "올 것이 왔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범균: 갑자기 이혼이라니, 정말 충격적이네요. 혹시 이혼을 예상하셨던 이유라도 있으셨나요?

김성희 교수: 교회 식당 봉사를 하는데, 교회 집사님 한 분이 저에게 "사모님은 좋으시겠어요, 저렇게 잘생긴 전도사님이랑 같이 살아서" 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 후로 남편이 그 집사님과 상담을 한다면서 밤 11시에 나가서 자정이 넘어서 들어오는 일이 몇 번 있었습니다. 밤 11시는 신학교에서 강의를 할 시간인데, 늦은 시간에 상담을 한다고 하니 조금 이상했습니다. 어떤 상담을 했냐고 물어보면, 부부 상담을 했다고 했지만, 직감적으로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올 것이 왔구나" 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안수지: 안타까운 상황이네요. 암 투병 중에도 마음 고생까지 심하셨을 텐데...

김성희 교수: 10월에 CT 촬영을 하고, 2월이 되니까 계절이 바뀌면서 옷을 가지러 집에 가게 되었습니다. 몇 달 만에 집에 가는 거였어요. 항암 치료 중이었기 때문에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어서, 교회 집사님 차에 실려서 구토를 하면서 겨우 갔습니다. 혼자서는 일어설 기운조차 없었거든요. 남편은 집에 없었고, 엄마와 함께 옷을 가지러 갔는데, 집에 도착해보니 키 박스가 바뀌어 있는 거예요. 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12층 아파트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그 여자 집사님 자가용이 보이더라고요. 엄마에게 주저앉으면서 "같이 있는 것 같아" 라고 말했습니다. 기운도 없고 다리 힘도 풀려서 주저앉았어요. 열쇠 수리 사장님께 전화해서 문을 따야 한다고 말씀드렸더니, 이런 경우에는 우유 투입구로 손을 넣어서 열 수도 있지만, 혹시 모르니 경찰 입회 하에 문을 따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결국 경찰분들과 열쇠 수리공분들이 오셔서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 보니, 커튼이 쳐져 있었고, 그 여자 집사님이 신발을 들고 서재 방 책상 밑에 숨어 계셨습니다. 거실에는 둘이 먹었던 음식물들이 그대로 놓여져 있었고요. 심증은 있었지만 물증은 없었는데, 그 순간 모든 것이 명확해졌습니다. "집사님, 어떻게 저한테 이러실 수가 있어요?" 라고 딱 한마디 했더니, 엄마가 "네가 그렇게 하니까 당하는 거지, 지금 상황에 집사는 무슨 집사야!" 라고 소리치셨습니다. 엄마도 평소에 그런 말씀을 하시는 분이 아닌데, 정말 황망한 마음에 격하게 반응하셨던 것 같아요. 저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주영훈: 여자들은 직감이라는 게 있잖아요. 꽤 오랫동안 뭔가 낌새를 느끼셨던 거군요.

김성희 교수: 오랫동안은 아니었지만, 암 투병 전에 약간의 심증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치료받느라 정신이 없어서, 큰 문제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거나 다툴 힘조차 없었던 것 같아요. 부부 싸움을 크게 해본 적도 없고요. 목회자 부부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 더욱 놀랍고 안타깝습니다. 그 이후로 남편분과는 어떻게 되셨나요?

안수지: 혹시 목회자분들에 대한 오해가 생길까봐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지만, 여쭤봐도 될까요?

김성희 교수: 남편은 사실 착한 사람이었어요. 일반적인 사람들과 똑같은,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을 뿐이죠. 시아버님은 장로님이셨는데, 신앙심이 깊으셨습니다. 아들을 위해 서원 기도를 하셨고, 억지로 신학교에 입학하게 하셨다고 해요. 신학교에서 남편과 제가 만나 연애를 시작했고, 남편은 억지로 신학 공부를 마치고 목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목회를 하면서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어요. 저에게 "성경은 한낱 이야기책일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남편에게 "목회를 잠시 접고, 하나님을 만난 다음에 다시 목회를 해도 늦지 않으니, 그렇게 하자"고 설득했지만, 남편은 "이제 목회가 나에게 직업이 되었기 때문에 그만둘 수 없다"고 했습니다. 당시 남편은 단독 목회를 할 때가 아니었고, 큰 교회 부교역자로 있었는데, 담임 목사님까지 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담임 목사님께서 남편을 밖에서 만나 권면도 해봤지만, 결국 남편은 교회에서 사직하게 되었습니다.

정범균: 상대방이었던 그 집사님은 기혼자였을 텐데, 그분은 어떻게 되었나요?

김성희 교수: 네, 맞아요. 기혼자였고, 남편보다 10살 정도 더 많았습니다. 대기업 대리점 과장이라고 했는데, 나중에 교인들을 통해 듣게 된 이야기는, 남편분과 단란주점을 운영하는 분이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당시 엄마와 가족들은, 남편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잃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그냥 덮고 가자고 했습니다. 아이 아빠이기도 하니까, 그냥 같이 살 수 있도록 상관없다는 마음이었어요. 하지만 남편은 몰랐죠. 그 집사님의 남편분은 처음에는 몰랐지만, 나중에 이혼을 당했다고 들었습니다.

주영훈: 같이 살려고 하셨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그런데 결국 이혼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김성희 교수: 제가 남편에게 "우리 아들이 있으니까,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면 호구조사 같은 것을 하잖아요. 그 여자분과 평생 살아도 좋으니, 이혼 서류에 도장만 찍지 않으면 안 되겠냐"고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당시 남편은 눈에 뵈는 게 없었던 것 같아요.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자기도 자기 인생을 살아야겠다"고 하면서, 대법원에서 이혼 서류 2장을 준비해 와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저를 데리고 가서 간단하게 이혼 절차를 마무리했습니다.

안수지: 남편분은 교회에 뭐라고 변명을 했을까요? 두 분 다 교회에 다니셨으니, 교인들에게 뭐라고 해명을 했을지 궁금하네요.

김성희 교수: 전도사님이 너무 불쌍해서 밥을 챙겨 드린 것이라고 변명했다고 합니다. 교인분들이 우연히 저를 마주치면 인사를 해도 잘 안 받으셨어요. 목회자를 넘어뜨린 장본인이 되었기 때문에, 그 사실을 액면 그대로 믿으신 분들은 충분히 오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죠.

정범균: 남편 잘못으로 현장이 발각되었는데,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이혼을 요구하고, 교회에는 그런 식으로 변명했다니, 정말 억울하셨겠어요. 암 투병 중인데, 정신적으로 너무 힘드셨을 것 같아요. 그때 심정이 어떠셨나요?

김성희 교수: 그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생각합니다. 저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죠. 엄마가 매일 새벽 기도에 다니시는 분이셨는데, 엄마가 나가실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가, 속상해하실까봐 오늘은 사진 정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남편과 함께 찍었던 사진들을 자정이 넘어서까지 쭉 정리하는데, 갑자기 회개의 눈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 회개의 영을 부어주셔서, 밤새도록 눈이 붓도록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그 사람이 미워요" 가 아니라, "제가 영적으로 교만했던 것 같습니다" 라고 회개했습니다. 결혼할 때, 신학교 교수님들이나 사모님들도 반대하고, 당회장 목사님, 주례하신 분, 엄마까지 모두 반대했는데, 제가 "사람이 착하니까 결혼하면 내가 하나님 만나게 해서 목회 잘하게 할 수 있다" 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철저히 회개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용서의 마음을 주시지 않았다면, 정말 막장 드라마처럼 복수심만 가지고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랬다면 지금쯤 아마 악마 같은 얼굴이 되어 있었을 거예요.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을 텐데, 그날 밤 회개 기도를 통해 미움도 사라지고, 오히려 남편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주영훈: 정말 놀라운 경험이네요.

김성희 교수: 그리고 또 하나는, "남편도 나와 살면서 많이 힘들었겠다" 라는 생각이 들면서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둘이 신앙적인 문제로 언쟁을 할 때, 남편이 저에게 "그래, 네 말이 다 맞아. 너는 도덕 교과서야, 도덕 교과서!" 라고 말하면서 밖으로 나가버리곤 했습니다. 싸움 자체가 안 되는 거죠. 지금 돌이켜보면, 차라리 부부 싸움도 하면서, 또 화해도 하면서 서로 맞춰갔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던 부분이 조금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제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런 마음을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안수지: 심적인 고통에 더해, 육체적인 고통까지 겪으셨으니 정말 힘든 시간이었을 텐데요. 후두암 치료는 어떻게 진행되었나요?

김성희 교수: 정말 하나님의 계획은 놀랍습니다. 날짜까지 정확히 기억하는데요, 2월 20일 날 집에 갔다가 그 현장을 목격했고, 열쇠를 따고 집에 들어간 날이 2월 21일입니다. 2월 21일은 제가 정기 CT 촬영이 예약되어 있던 날이었어요. 서울 병원에. 엄마가 워낙 멀미가 심하셔서 자가용을 잘 못 타세요. 남편이 없을 때는 교회 집사님이나 택시를 하시는 교회 집사님 차 뒷좌석에 누워서 병원에 다니곤 했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전날 그 상황을 보시고는, 멀미가 심하신데도 불구하고 CT 촬영에 같이 가시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교회 집사님 차를 타고, 저는 뒷좌석에 누워서 CT 촬영을 하러 갔고, 엄마는 조수석에 앉으셨습니다. 저도 항암 치료 중이라 계속 구토를 하고, 엄마도 멀미 때문에 힘들어하시면서 병원에 도착했는데, 그날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비인후과 교수님, 혈액종양내과 교수님, 방사선 치료학과 교수님께서 협진을 하셨는데, CT 촬영 결과 병소가 보이지 않는다는 거예요. 암 덩어리가 사라진 것입니다. 항암 주사는 10번 중 6번, 방사선 치료는 40번 중 37번을 마친 날이었어요. 그날 완치 판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정범균: 정말 기적과 같은 일이네요! 완치 판정을 받으시다니, 정말 축하드립니다!

김성희 교수: 엄마가 "남편이 아니었네, 남편하고 헤어지고 나니까 나았네" 라고 말씀하셨지만, 주위 분들도 그런 말씀을 많이 하셨지만, 저는 정말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했을 때 요셉처럼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렇게 아파트라는 폐쇄된 공간에 계속 드나들면서 마음먹고 유혹하는데, 누구라도 넘어갔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이지만요. 아무튼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암이 사라졌다는 것이 정말 기적입니다.

주영훈: 암이 사라지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엄마께서도 천국과 지옥을 하루 만에 왔다 갔다 하셨다고 표현하셨을 정도네요.

김성희 교수: 네, 엄마께서 "천국과 지옥을 하루 만에 왔다 갔다 했다"고 하시면서, "하나님을 떠난 영혼이 불쌍한 거지, 우리는 그 영혼을 위해서 기도하고, 우리는 우리끼리 하나님을 열심히 믿고, 다시 주신 생명이니 감사하며 열심히 살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후두암 치료를 받는 동안 입원했을 때나 통원 치료를 받을 때, 하나님께서 저에게 힘을 주셨던 찬양이 있습니다. 목소리는 잘 안 나오지만, 그 찬양을 불러보겠습니다.

김성희 교수 (찬양):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 너의 우편에 그늘 되시니, 낮의 해와 밤의 달도 너를 해치 못하리.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 너의 환난을 면케 하시니, 주가 너를 지키시리라, 너의 평생을 지키시리라.

주영훈: (감동) 찬양 감사합니다.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으심에도 불구하고, 마음으로 찬양하시는 모습이 정말 감동적입니다.

안수지: 찬양을 들으니 더욱 감동적이네요. 진정한 남편과의 관계를 통해 진정한 회개를 하게 되셨고, 자신을 돌아보는 회개 이후에 암이 사라지는 체험을 하셨다니, 정말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이야기를 겪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사랑의 빚진 자" 라고 고백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누구에게 어떤 사랑의 빚을 지셨다고 생각하시나요?

김성희 교수: 처음에는 특실에 입원했다가, 나중에 다인실로 옮기게 되었는데요, 다인실에서 많은 분들에게 전도를 했습니다. 제가 한 것이 아니라, 교회 성도님들이 병문안을 너무 많이 오시니까, 다른 환자분들이 "도대체 어떤 분이길래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오냐"고 궁금해하셨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34세에 혼자 되셔서, 저희 할머니를 30년 넘게 홀로 모셨거든요. 엄마가 쌈짓돈으로 모은 2천만원 정도가 있었는데, 암 치료비가 그것으로도 부족했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암 등록증 제도 자체가 없었어요. CT 한번 찍는데 69만원 하던 시절이었거든요. 성도님들이 정말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누가 얼마나 주셨는지도 모를 정도로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어요. 저는 생사를 오가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다시 살려주셨을 때 "나는 사랑의 빚진 자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일일이 찾아뵙고 갚을 수는 없지만, 앞으로 제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면서 살고 싶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제 메일 닉네임을 "빚진 자" 라고 지었어요. 완치 판정을 받고 간호학과에 입학했을 때, 교수님께서 저에게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왜 닉네임이 빚진 자냐, 빚이 도대체 얼마냐" 라고 물어보셨던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많은 분들의 사랑으로 암을 이겨낼 수 있었고, 이 자리에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암 투병, 이혼, 물질적인 어려움까지 겪으면서도 늘 감사한 마음으로 생활하신다고 인터뷰에서 말씀하셨는데, 무엇이 그렇게 감사하셨나요?

정범균: 정말 많은 어려움을 겪으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할 수 있었던 이유가 궁금합니다.

김성희 교수: 아까 잠깐 언급했지만, 가족입니다. 엄마와 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희 엄마는 제가 후두암 진단을 받고 가망성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눈물로 서원을 하셨습니다. "하나님, 제 목숨을 바쳐 죽을 때까지 철야 기도를 할 테니, 우리 딸을 살려달라" 고 기도하셨다고 해요. 눈만 뜨면 기도하러 가시고 안 계셨어요. 믿음의 선배이자 롤모델이셨습니다. 엄마는 항상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갚으라"는 로마서 말씀을 강조하시면서 그렇게 사셨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감사의 이유는 아들입니다. 아들은 4살 때 교회에서 별명이 "영감"이었어요. 항암 치료 끝나고 가발을 쓰고 잠깐 전도사 생활을 한 적이 있는데, 너무 기운이 없어서 횡단보도에서 신호 대기할 때 주저앉으면, 아들이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해주곤 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햇반을 스스로 돌려 먹고 다니고, 엄마와 아들이 없었다면 제가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제 친구들은 "성희야, 너 같았으면 나는 벌써 자살했을 거야"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저도 한두 번 정도 자살을 생각했던 적이 있어요. 장거리 운전을 하면서 학생들을 지도하러 다닐 때, 터널을 지나가다 보면 "하나님, 이제 그만하고 싶어요. 그냥 하늘나라 가고 싶어요"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죄잖아요. 사는 것이 너무 힘들고, 죽는 것이 더 편할 것 같다는 생각도 했지만, 눈에 밟히는 것은 아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엄마와 아들을 제 곁에 두신 것은, 저를 지탱하는 원동력이 되어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 말씀처럼 "혼자라면 넘어지고 자빠지겠지만, 두세 사람이면 서로 일으켜 세울 수 있다"는 말씀처럼, 엄마와 아들은 제게 그런 존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신 것이 정말 감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안수지: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우리에게 전혀 없었다면 쉽게 포기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샘물과 같은 존재인 아들을 통해 힘을 주셨네요. 그리고 두 분 사이에 아들이 있었기 때문에, 남편에 대한 미움도 없으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여기서 이야기가 끝났다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었겠지만, 교수님께서 또 다시 암에 걸리셨다고 들었습니다.

주영훈: 2년 전에 유방암 진단을 받으셨다고요?

김성희 교수: 네, 2년 전에 유방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다행히 전이된 것은 아니고, 새롭게 생긴 암이었습니다. 유방암 진단을 받고 나니 마음이 약해지더라고요. 엄마에게 "엄마, 이번에는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면 그냥 붙잡지 말고 천국 가게 해줘. 만약에 또 빚을 내서 돈을 쓰면, 엄마랑 여준이(아들 이름)랑 길거리에 나앉게 될 텐데..." 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들 이름 "여준"은 "여호와께서 준비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랬더니 엄마께서 신앙이 좋으심에도 불구하고 "그런 소리 하지도 마. 하나님이 계시면 나를 데려가야지, 나는 살 만큼 살았는데 왜 너를 다시 살게 하셨는데 또 데려가냐" 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엄마보다 먼저 가는 것은 불효인 것 같습니다. 이런 기도를 드려도 될지 모르겠지만, 다시 한번 더 살려주시면, 빚진 자의 심정으로 더욱 열심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살아가겠습니다" 라고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안수지: 또 다시 암 진단을 받으셨을 때, 정말 마음이 무너지셨을 것 같아요. 병원에 다녀와서 많이 우셨을 것 같은데요.

김성희 교수: 병원에 다녀와서는 사람들 앞에서는 잘 안 울어요. 여러 가지 시련을 겪으면서 점점 강해지는 것 같아요. 여러 시련을 통해 하나님께서 저를 훈련시키시고, 더욱 성숙하게 만들어가시는 과정 속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나에게 또 다시 암이라는 질병이 생겼을까" 라는 원망도 들 수 있지만, 제가 예전에 간호사 생활을 하면서 호스피스 병동에서 근무했던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기독교 병원이었는데, 임종실에서 임종 간호를 했었습니다. 돌아가시는 분들의 마지막 순간을 돌보고, 시신을 닦아 드리고, 수의를 입히고, 장례식장까지 모시는 역할을 했었음에도 불구하고, 첫 번째 후두암 치료 때는 마약성 진통제를 너무 많이 사용해서, 마약 중독자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마약성 진통제를 끊을 수 있었고, 당시 교수님들께서 "우리가 한 것이 아니고 조물주가 하셨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유방암 치료를 받으면서, 두 번째 항암 치료라 그런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상 세포까지 염증이 오는 거예요. 통증이 너무 심해서 눈만 뜨면 아팠는데,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통증이라는 것이 더욱 힘들었습니다. 해가 질 때까지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지고, 통증은 해결되지 않고, 수면제를 먹고 잠이 들어도 한두 시간 만에 통증 때문에 깨는 날들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고백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호스피스 간호사였지만, 우리 환자들이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이 통증이 너무 괴롭고 힘들었을 것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라고요. 이 경험을 통해, 지금 학생들을 가르치거나 요양보호사, 간호조무사, 보건의료 분야 진학을 희망하는 고등학생들에게 강의할 때, 환자의 고통을 공감하는 것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팠던 순간들을 통해, 환자를 대할 때 더욱 진심으로 공감하고,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돌봄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의식이 있든 없든, 환자에게 시작과 끝을 알리고 동의를 구한 후에 어떤 처치를 해야 하는지, 돌봄을 제공해야 하는지를 강조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직접 몸으로 겪었기 때문에 더욱 진정성 있게 전달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런 깨달음을 주시는구나 생각했습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처럼, 암을 두 번 겪으면서 신앙적으로 더욱 성숙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주영훈: 암을 두 번이나 겪으셨는데, 두 번째 암을 겪으실 때는 신앙적으로 어떠셨나요? 첫 번째 암 투병 때와 비교해서 어떤 변화가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김성희 교수: 두 번째 암을 겪을 때는, 지난 21년을 정말 치열하게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 수술도 후두암 수술 포함해서 세 번이나 했어요. 후두암 수술, 갑상선 혹 제거 수술, 성대 결절 수술까지. 시간 강사 시절에는 주 40시간 강의를 하면서 정말 쉴 틈 없이 살았습니다. 그렇게 세상에 발을 담그고 살다 보니, 신앙이 많이 나약해졌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목회에 전념했던 과거와는 달리, 세상적인 욕심과 걱정이 많아졌죠. 2020년에 유방암 진단을 받으면서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었고, 비대면 예배가 3년 넘게 이어지면서 제 신앙이 더욱 약해졌습니다. 하지만 유방암 투병을 통해, 하나님과 독대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사람을 너무 좋아하고, 사람들에게 의지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지금도 사람들을 좋아하지만, "내가 사람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내가 육체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오직 영으로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 라는 말씀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을 붙잡고 어려운 점을 이야기하고, 기도해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좋지만, 결국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라고 생각하고, 아침에 눈을 뜨면 습관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를 살리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저를 만나주시고 제 곁에 계셨던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라고 고백하며, 대면 예배든 온라인 예배든 항상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기도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되면서, 좋은 점은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다" 라는 말씀을 실제로 경험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염려한다고 키를 한 자나 더 크게 할 수 있느냐, 들의 백합화를 보라,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는데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라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루하루 하나님께 맡기며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하루를 정리하면서 녹초가 되어 침대에 누울 때, "하나님, 오늘도 하루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감사 기도하는 훈련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늘 감사합니다.

안수지: 교수님께 하나님은 어떤 존재이신가요? 교수님 삶에서 하나님은 어떤 의미를 가지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김성희 교수: 저에게 하나님은, 정말 제가 미처 헤아리지 못할 때에도, 그리고 사람이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이런 믿음이 생겼습니다. "내가 원하는 오늘 하루의 삶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저에게 허락하실지라도, 지나고 보면 하나님께서 더 선한 것으로 인도하신다" 라는 믿음입니다. 저는 너무 부족하고, 첫 번째 암 이후에 생명을 연장해주셨는데도, 너무 세상에서 급하게 살아가느라 하나님을 잊고 살았습니다. 그런 저를 다시 불러주셔서 회개하게 하시고, 깨끗한 영혼으로 하나님을 다시 만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셨습니다. 회개하면서 다시 열심히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정말 감사합니다. 눈물과 고난 속에서도 늘 감사하다고 고백했지만, 사실 원망과 불평이 나올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도 늘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정범균: 앞으로 어떤 기도를 드리고 계신가요? 앞으로의 삶에 대한 비전이나 소망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김성희 교수: 다른 분들은 "두 번이나 살려주셨으니, 하나님께서 크게 쓰실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지만, 제가 생각할 때는 크게 사용하시느냐 작게 사용하시느냐의 문제가 아니고, 그냥 하루하루 하나님께서 주신 삶을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성공담이나 축복 이야기만 하면 좋겠지만, 제 삶을 보면 교수도 되고, 대상도 받고, 겉으로는 축복처럼 보이지만, 아직 고난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하루하루 견디면서 기도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제가 드릴 수 있는 간증은 이것입니다. 저는 찬양하는 것을 너무 좋아했고, 성가대도 오래 했었고, 교회에서 솔로도 하고, 오페라도 했을 정도로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후두암 때문에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 되면서, 스트레스를 노래로 풀었는데, 더 이상 노래를 부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성대가 마비되었기 때문에 목소리가 나오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하셨거든요. 후두암을 고친다고 해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올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중에 "성가대를 하면 하나님께서 목소리를 다시 나오게 해주실 것 같다" 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7월부터 성가대에 서고 있는데, 놀랍게도 지금은 높은 음까지 올라가는 거예요. 학교에서도 교수 중창단을 만들어서 함께 찬양하고 있는데, 성가대에서 찬양하는 것이 너무 행복합니다. 제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하기 때문에 물질로는 하나님께 보답해 드릴 수 없지만, 다시 허락해주신 목소리로 찬양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행복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삶 자체가 간증이고, 제 이야기가 듣는 이들에게도 감동이 되리라 믿습니다.

주영훈: 제가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지만, 교수님께서 떨리는 목소리로 찬양하시는 첫 소절을 듣는 순간, 정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방법은 우리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교수님의 찬양에서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앞으로의 삶에서 하나님을 더욱 많이 드러내실 것 같아서 응원하겠습니다.

김성희 교수: 감사합니다.

안수지: 교수님 말씀처럼, 요즘 많은 분들이 작은 것에 감사하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희 아이들만 해도, 작은 것에 "아빠,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본 지 오래된 것 같아요. 교수님의 이야기를 통해 고난 속에서 감사하는 것,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주님께 감사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크게 쓰임 받느냐, 작게 쓰임 받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살아계심에 감사하고, 주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신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오늘 귀한 말씀 나눠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김성희 교수: 너무 감사합니다. 제가 부족한데 귀한 자리에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영훈: 저희가 어린 시절부터 거울 속의 자신을 계속 보면서 자라왔잖아요. 그런데 어느 날 거울을 보니, 50대 아저씨가 서 있더라고요. (웃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릴 때 거울 속에 봤던 내 모습이 떠오를 때도 있습니다. 교수님께서도 소녀 시절의 자신을 기억하시면서, 지금의 자신을 많이 사랑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로션을 바르시면서 거울을 보실 때, 거울 속에 있는 어린 김성희를 보면서 "너는 참 잘 살아왔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 라고 따뜻하게 격려해주시고, 많이 사랑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소녀 김성희를, 그리고 거울 속에서 늘 웃는 김성희의 모습을 보시면서, 우는 모습보다는 늘 깔깔거리면서 웃는 김성희로 살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늘 자신을 사랑하고, 여행도 다니시고, 모든 생활을 자신을 사랑하는 일에 투자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일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수님을 너무나 사랑하는 딸이니까요. 환자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아시는 간호학과 교수님이라는 점이 아이러니하면서도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투병을 하고 있는 환자가 간호를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병실에 누워 있는 환자들이 어떤 마음으로 고통스러워하는지 누구보다 잘 아시기 때문에, 미래의 간호사들에게 진정으로 환자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르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웃는 얼굴로 환자를 사랑하는 방법을 미래의 간호사들에게 가르치라고 하나님께서 교수님께 특별한 임무를 주신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앞으로 자신을 더욱 사랑하시고, 교수님의 간증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으리라 믿습니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김성희 교수: 감사합니다.

안수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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