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령 교수의 치매 아버지와의 동행 이야기: 가족과 신앙의 힘
기억을 잃어가는 아버지와의 아름다운 동행: 김혜령 교수의 따뜻한 이야기
기억을 잃어가는 아버지와의 아름다운 동행: 이화여대 김혜령 교수님의 따뜻한 이야기
안녕하세요, 새롭기소서의 주영훈입니다. 오늘은 송진 님과 함께, 그리고 특별히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으신 아버지와 5년째 동행하고 계시는 이화여대 김혜령 교수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가족과의 이별 중 가장 슬픈 이별은 바로 치매가 아닐까 싶은데요, 오늘 교수님의 이야기가 병환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신 많은 분들에게 위로와 공감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김혜령 교수님은 '죽을 때까지 유쾌하게'의 저자이시자,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교수님으로 교목으로도 활동하고 계십니다. 교수님의 아버님께서는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으신 지 5년 정도 되셨다고 하는데요, 현재 아버님의 상황은 어떠신지 여쭤보겠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아버님께서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으신 후 5년 차에 접어들었고, 현재 치매 등급 3등급으로 중증 환자에 해당한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숫자가 작을수록 증상이 심각한 것을 의미하는데요, 5등급에서 3등급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은 병세가 악화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아버님께서는 평생 목회자의 길을 걸어오셨다고 합니다. 전임 전도사의 딸로 태어나 목사 안수를 받으시고, 초등학교 때부터 담임 목회를 하셨다고 하는데요, 목회자의 삶이 얼마나 헌신적이고 심적으로 고된 일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주영훈 님께서는 본인의 아버님 또한 좋지 않은 상황에 계신다며, 교수님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목회자로서 겪으셨을 심적인 어려움과, 목회자의 딸로서 지켜본 아버지의 인생을 생각하며 더욱 마음이 아팠을 것 같습니다. 아버님의 발병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교수님께서는 프랑스 유학 시절, 아버지로부터 평소와 다른 이상한 전화를 받으셨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아빠가 중풍이 왔다"고 말씀하셨는데, 말투가 어눌하고 내용 또한 평소와 달랐다고 합니다. 멀리 유학 간 딸에게 걱정거리를 만들지 않으셨던 아버지가 그런 말씀을 하신 것 자체가 인지 능력에 문제가 생겼음을 직감적으로 느끼셨다고 합니다. 알아보니 실제로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하셨고, 방학을 맞아 귀국하여 아버지를 뵙게 되었을 때 뇌경색 진단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뇌경색으로 입원하셨지만, 다행히 빠른 조치와 좋은 치료 덕분에 회복되셨고, 1년간 안식년을 가지신 후 다시 목회 현장에 복귀하셔서 10여 년간 목회를 이어가셨다고 합니다. 은퇴 후 여러 증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당시에는 치매 초기 증상이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치매라고 하면 드라마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갑자기 사람을 못 알아보거나 길을 헤매는, 대소변을 못 가리는 등의 중증 증상만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치매 초기에는 성격 변화나 우울증과 같은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기 쉽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아버님의 성격 변화와 우울증 증세를 초기에는 치매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은퇴 후 아버지의 변화를 단순히 '갱년기'나 '우울증'으로 치부하기 쉬운데요, 실제로는 치매의 초기 증상일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은퇴 후 어머니와의 잦은 부부싸움, 이해하기 어려운 고집 등 이상한 모습들을 보였지만, 당시에는 은퇴 후유증이나 노년의 어려움으로만 생각했다고 합니다.
주영훈 님께서는 "원래 아버님들이 다 우기지 않으시냐"며 공감을 표현했지만, 교수님의 아버님은 원래 다정다감하고 가정적인 분이셨다고 합니다. 성도들에게도 인기가 많으셨고, 아내를 매우 사랑하는 로맨티스트셨다고 하는데요, 은퇴 후 전형적인 가부장적인 모습이 나타나면서 가족들은 당황스러웠다고 합니다. 이러한 성격 변화 또한 치매의 초기 증상 중 하나일 수 있습니다.
인지 능력 저하는 타인에 대한 이해력 부족, 판단력 저하, 기억력 감퇴로 이어져 주변 사람들과의 갈등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은퇴 후 새로운 취미나 활동을 통해 보람 있는 노후 생활을 보내시길 바라는 마음에 여러 가지를 시도했지만, 오히려 무기력증만 심해졌다고 합니다. 서예 학원에 모시고 갔지만 적응하지 못하는 등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셨다고 하는데요, 이러한 무기력증 또한 치매의 초기 증상일 수 있습니다. 결국 종합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고 치매 진단을 받게 되셨다고 합니다.
교수님께서는 아버님의 우울 증세가 은퇴 후 변화된 환경에 대한 적응 어려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평생 목회만 하셨던 아버님께 은퇴는 갑작스러운 변화였고, 상실감과 무력감을 느끼셨을 수 있습니다. 한국 교회의 부흥기를 이끌었던 목회자들은 새벽 기도부터 주일 3부 예배 설교, 여름·겨울 수련회 등 쉴 틈 없이 헌신적인 삶을 살아왔습니다. 자신의 시간을 갖기 어려웠고, 취미 생활이나 사회 활동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은퇴 후의 삶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수님께서는 다양한 취미 활동이나 소일거리를 찾아드리려 했지만, 아버지의 무기력증과 겹치면서 오히려 '목사의 은퇴 노년이 허망하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는 아버지의 병 초기 증상이었음을 나중에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주영훈 님 또한 아버님들의 공통점으로 '취미가 없음'을 언급하며 공감했습니다. 평생 말씀과 성도, 신방이 전부였던 목회자들은 은퇴 후 사회적 관계망이 단절되고, 소외감을 느끼기 쉽습니다.
원로 목사의 경우, 은퇴 후에도 교회를 떠나지 못하고 남아있는 경우가 많지만, 새로운 담임 목사를 위해 자리를 비켜줘야 하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원래 섬기던 교회에 출석하는 것도, 다른 교회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아 가정 예배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외부 활동이 더욱 줄어들게 됩니다. 교회는 노년에 좋은 지지 공동체가 되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원로 목사들에게는 어려움이 많다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사모님들 또한 마찬가지로 교회 중심적인 삶을 살아왔기에 은퇴 후 외로움을 느끼기 쉽습니다.
최근 젊은 목회자들은 은퇴 후 삶을 대비하는 경우가 많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못했던 점이 아쉽습니다. 아버님께서 치매 초기 증상을 보이셨을 때, 병원 검사를 꺼려 하셨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치매 검사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는데요, 아버님은 어떠셨을까요?
교수님께서는 아버님 또한 치매 검사를 꺼려 하셨지만, '효도 상품'이라는 명목으로 학교 병원에서 검사를 받도록 설득했다고 합니다. 치매 검사는 MRI, PET 등 고가의 장비와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므로, 어르신들이 부담을 느낄 수 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학교 병원의 '교직원 효도 상품'을 이용하여 비교적 쉽게 검사를 받도록 하셨다고 합니다. 정보 과잉 시대에 사는 우리는 건강 검진에 적극적이지만, 어르신들은 여전히 병원 검사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거부감을 가지고 계신 경우가 많습니다.
치매 판정 후, 합가를 결정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요? 진단 후 몇 개월 동안 부모님 두 분만 생활하셨지만, 초기 인지 장애 상태였기에 일상생활에는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성격 변화, 감정 기복, 의처증 증세 등이 나타나면서 어머니와의 갈등이 잦아졌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은퇴 후 비로소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며 사회생활을 즐기고 계셨지만, 아버지의 병환으로 인해 다시 집안에 갇히게 되면서 힘든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부모님 사이에 갈등이 심화되면서 교수님과 남동생이 자주 중재에 나서야 했고, 서울과 김포를 오가며 하루를 다 쓰는 일이 잦아지면서 합가를 결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 명의 환자를 한 사람이 '독박 돌봄'하는 것은 매우 벅찬 일이며, 사고라도 발생하면 부모님의 노년이 비참해질 수 있다는 두려움도 느끼셨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합가는 짐이 더 늘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교수님은 눈앞에서 부모님을 지켜봐야겠다는 생각에 합가를 결정하셨다고 합니다.
교수님 가족은 남편(목사), 딸과 함께 다섯 식구가 합가하게 되었습니다. 딸은 중학생이었는데,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을까요?
딸은 갑작스러운 합가 소식에 처음에는 울면서 반대했다고 합니다. 핵가족으로 단란하게 살던 딸에게 아픈 조부모와의 동거는 받아들이기 힘든 변화였을 것입니다. 교수님께서는 합가 과정에서 부모님, 남편, 남동생과는 충분히 상의했지만, 딸과는 충분한 대화 없이 통보하듯 결정한 점이 후회스럽다고 합니다. 딸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던 점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시간이 흘러 딸은 고등학생이 되었는데요, 현재는 합가 생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딸은 사춘기를 평범하게 보냈지만, 약해진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것에 대한 수용력을 배우고 있는 것 같다고 합니다. 최근 딸이 "엄마는 참 좋은 사람들과 많이 사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고 하는데요, 이 말을 통해 딸이 가족의 사랑과 책임감을 느끼며 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합가 생활을 통해 딸은 사랑의 가치와 의미를 배우고,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것 같습니다.
합가 후, 가족 간의 불화는 없었을까요? 합가 후 불편함과 갈등이 많았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으셨습니다. 특히 어머니와의 갈등이 심했는데, 기질 차이에서 오는 어려움이 컸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부지런하고 꼼꼼한 성격인 반면, 교수님은 즉흥적인 성격이라 생활 방식이나 가치관에서 충돌이 잦았습니다. 돈 문제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보다는 사소한 일상생활에서의 차이, 오래된 감정들이 쌓여 갈등이 심화되기도 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어머니의 심리 속에 '미안함'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합가로 인해 자식들에게 짐이 되는 것은 아닐까, 불편함을 주는 것은 아닐까 끊임없이 걱정하고 계셨습니다. 오히려 어머니는 분가를 생각하고 계셨다고 하는데요, 교수님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는 대신 오히려 짜증을 내거나 툴툴대는 방식으로 표현하셨고, 교수님은 처음에는 어머니의 속마음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갈등은 어머니가 교수님의 진심을 확인한 후에야 점차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서로에게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고 이해하면서 갈등을 극복하고, 함께 살아가는 기술을 배우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랜 시간 함께 살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깊어진 것 같습니다. 요즘은 어머니와 편안하게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자녀가 어릴 때는 부모가 보호자이지만, 부모가 노쇠하면 자녀가 보호자가 되는 역할 역전 현상이 나타납니다. 어릴 때 부모에게 혼났던 행동들을 이제는 부모가 하는 것을 보면서 묘한 감정을 느끼기도 합니다. 보호자의 위치가 바뀌면서 새로운 갈등이 생겨나기도 하지만, 가족 간의 사랑과 이해를 통해 극복해나갈 수 있습니다. 어머니는 분가를 생각하기도 하셨지만, 실제로는 자녀들과 함께 사는 것을 더 좋아하셨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모든 짐을 짊어지려 하셨지만, 교수님은 어머니가 자녀들과 함께 살면서 심리적, 물리적, 시간적 여유를 찾기를 바라셨습니다. 합가는 어머니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교수님의 합가 목적은 잘 달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합가를 통해 어려움도 있었지만, 긍정적인 측면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합가를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교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신 것 같다'고 고백하셨습니다. 본인을 '믿음이 좋은 신앙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기도해왔다고 합니다. 대학교에서 '나눔 리더십'이라는 인성 교육 과목을 가르치면서 '더불어 사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는데, 스스로 가르친 내용을 실천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셨다고 합니다.
교수님께서는 '유익한 삶'을 신앙 안에서 추구해왔고, 그러한 신앙적 가치관이 합가를 결정하고 유지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합가 생활이 쉽지만은 않지만, 비극적인 결말이 아니라 감사한 삶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은 삶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됩니다.
아버님은 평생 다른 사람들을 섬기며 살아오셨는데, 알츠하이머 진단 후에도 사회성이 남아있는지, 집에서는 어떤 모습이신지 궁금합니다. 치매 환자에게도 사회성이 남아있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문화적 욕망,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인지 기능, 욕망 등이 마지막까지 남아있다고 하는데요, 아버님에게도 이러한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아버님께서는 가부장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셨다고 합니다. 초기에는 신발장에 신발을 여러 켤레 놓거나, 밤에 문을 과도하게 잠그는 행동을 보이셨는데, 이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표현하려는 행동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남편에게 가장의 자리를 넘기고 편안해지면서 이러한 행동은 사라졌다고 합니다. 데이케어센터에 다니시면서는 '월급'을 받는 것을 좋아하셨고, 번 돈을 아내에게 주는 것을 기뻐하셨다고 합니다. 목회자로서 사례비를 받으면 아내에게 전부 드렸던 과거의 행동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인지 능력이 저하된 상태에서도 과거의 역할과 습관이 유지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전화 통화는 아직 가능하실까요? 현재는 전화 통화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과거에는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셨지만,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목회자로서 많은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었는데, 카톡으로 이상한 메시지(스팸, 가짜 뉴스 등)를 받고, 잘못 눌러서 다른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내거나 전화를 거는 일이 잦았습니다. 장로님께 이상한 메시지를 보내거나, 특정인에게 반복적으로 전화를 거는 등 원치 않는 소통이 발생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셨습니다.
결국 교수님께서는 아버지의 핸드폰에서 전화번호를 삭제하고, 앱을 숨기는 조치를 취하셨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아버지를 보호한다는 생각에 과감하게 행동했지만, 나중에는 아버지의 사회생활을 단절시킨 것은 아닌지 후회했다고 합니다. 치매 환자도 사회적 관계와 역할 유지가 중요하지만,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단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치매가 심해지면 가족을 못 알아보는 상황까지 갈 수 있는데, 현재 아버님은 가족들을 알아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아버님은 현재 중증 치매 단계로 언어 능력과 기억력을 많이 상실하셨지만, 어머니와 교수님은 여전히 인식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어머니를 '아내'로 인지하시고, 사랑 표현도 하시지만, 어머니 이름은 잊으셨다고 합니다. 교수님은 딸이라는 것을 인지하시고, "아이고 예뻐"라는 칭찬을 자주 해주신다고 합니다. 과거에 딸에게 자주 했던 칭찬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들은 인지 못하는 경우가 있지만, 딸은 비교적 잘 알아보시는 것 같습니다. 가족 구성원에 따라 인지 정도에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가족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지만, 교수님께서는 신학적 성찰을 통해 슬픔을 극복하고 긍정적인 의미를 찾으셨다고 합니다. 딸을 키우면서 딸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지 못해도 딸은 여전히 자신의 딸이라는 것을 강조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아버지를 기억하지 못해도 아버지는 여전히 아버지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기억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유전되고, 다른 사람들에 의해 기억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셨습니다. 아버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슬픔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를 살아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은 삶의 고통을 해석하고 극복하는 힘을 줍니다. 부정적인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삶의 긍정적인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수님께서는 신학자이자 목회자로서 신앙의 힘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하고,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유지하고 계십니다.
주영훈 님께서는 교수님의 이야기에 감동하며, 어머니의 노쇠한 모습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교수님께 아버지께 영상 편지를 보내달라는 부탁을 드렸습니다.
교수님께서는 눈물을 글썽이며 아버지께 진심을 담은 영상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사랑하는 김정용 목사님, 아버지. 많은 어려움 중에도 하나님이 부르시는 날까지 존엄하게 자신을 지키시면서 저희 곁에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날까지 아버지의 손 붙잡고 함께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다, 옌다 된 딸 여전히 아이고 예뻐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딸로서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존경심,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며 영상 편지를 마무리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영상 편지를 보내면서 눈물을 흘리셨지만, 따뜻하고 감동적인 메시지는 듣는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우리 모두 늙어가고, 언젠가 부모님과의 이별을 마주하게 됩니다. 교수님의 이야기는 이러한 슬픈 이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혜와 용기를 줍니다.
주영훈 님께서는 교수님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며, '가정은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터전'이라는 메시지를 강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고, 존엄성을 존중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가족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한국 교회가 늙어가는 세대에게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마무리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어머니께서 자주 하시는 말씀, "하나님은 왜 인간의 끝을 이렇게 추하게 만들었을까"에 대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모습이 왜 이래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누구나 한 번쯤 던져봤을 것입니다. 하지만 교수님께서는 자녀들에게 마지막까지 섬기는 모습, 섬김의 의미를 가르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 수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부모를 섬기는 모습을 자녀들이 보면서 배우고,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웰다잉에 대한 기도를 통해 삶의 마지막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나누었습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영화를 언급하며, 인간은 아기로 태어나 다시 아기로 돌아가는 과정을 겪는다는 점을 비유적으로 설명했습니다. 누가복음 말씀처럼 '어린아이와 같이' 천국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구절을 인용하며, 치매 환자를 돌보는 과정이 하나님 나라를 준비하는 과정일 수 있다는 신앙적인 해석을 제시했습니다. 왔던 모습 그대로 다시 돌아가 하늘나라에 가게 되는 과정을 통해 진정한 섬김의 의미를 깨닫고, 자녀들에게 교육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영훈 님께서는 교수님의 이야기에 감사를 표하며, 아버님의 유쾌함을 잃지 않으시길 응원했습니다. 교수님의 이야기는 슬픔과 고통 속에서도 긍정적인 의미를 찾고, 가족 간의 사랑과 믿음으로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는 감동적인 여정을 보여주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