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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에서 목사로 변화한 박에녹 목사의 30년 귀신 쫓는 간증

요약

귀신 쫓고 예수님 만나 새 삶: 무당에서 목사로, 30년 간의 드라마틱 간증

수어통역 경험 상세 정리: 귀신을 쫓아내고 새로운 삶을 찾기까지

만남은 인생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인데요, 오늘 특별한 손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바로 귀신을 먼저 만나 십수 년간 고생했지만, 예수님을 만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된 박에녹 목사님이십니다. 흔히 사탄, 마귀, 귀신 이야기는 섬뜩하면서도 흥미로운 호기심을 자극하는데요, 박에녹 목사님을 직접 만나 그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목사님께서는 귀신을 만났다고 소개되었는데, 어떤 귀신을 어떻게 만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꽤 긴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저 또한 평범하게 자랐습니다. 착실하게 공부하고 명문대학에 진학했으며, 대한민국 육군 장교로 복무하고 대기업에도 근무했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어머니께서 갑자기 피를 토하시며 위암 말기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수술을 위해 병원에 입원했지만, 이미 암이 너무 많이 퍼져 수술 포기 후 퇴원하셨고, 한 달에서 한 달 반밖에 살 수 없다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당시 저는 군인이었기에 어머니 곁을 지킬 수도, 임종을 뵐 수도 없었습니다. 이 한이 너무 깊어 장례 후 부대로 복귀했지만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했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에 매일 술을 마셨고, 심지어 죽어서 어머니를 만나겠다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인데요, 맨정신으로는 감히 시도할 수 없었습니다. 술에 취해 철길에 앉아 트럭에 뛰어들려 했지만, 술이 과했던 탓인지 출발이 늦어 트럭은 급정거했고, 저는 차에 치이지 못하고 오히려 크게 다쳤습니다. 자살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이후 신경안정제, 기침약, 감기약 등을 과다 복용하려 했지만, 막내 여동생의 얼굴이 떠올라 차마 실행하지 못했습니다. "죽는 건 아무 때나 할 수 있어, 스무 살까지만 참자"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자살을 포기하고 군 생활을 마쳤습니다. 제대 후에는 코롱에 입사하여 4주간의 연수 훈련을 받던 중, 피곤에 지쳐 잠시 쉬고 있는데 돌아가신 어머니가 걸어 들어오시는 환영을 보게 되었습니다. 깜짝 놀라 "엄마!"라고 외쳤지만, 어머니는 울면서 "먹고 싶은 것 아껴가며, 입고 싶은 것 참아가며 자식 키워봤자 무슨 소용 있냐, 내가 죽은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내 생일을 잊어버리냐"라고 원망하셨습니다. 어머니의 말에 달력을 확인해보니, 놀랍게도 그날은 어머니의 생신이었습니다. 큰 충격을 받고 효자인 줄 알았던 자신이 불효자였다는 생각에 눈물을 쏟으며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음식점에서 음식을 시켜놓고 숟가락을 거꾸로 꽂아두고 젓가락으로 반찬을 휘젓는 등 이상한 행동을 하자, 음식점 주인은 미친 사람 취급하며 쫓아냈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머니 생신을 챙겨드렸다는 생각에 만족하며 연수 훈련을 마치고 본사로 배치받았습니다.

당시에는 그 환영이 어머니라고 철석같이 믿었지만, 사실은 귀신이었습니다. 사탄, 마귀, 귀신은 사람의 가장 약한 부분을 파고들어 속이는 존재라는 것을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본사 근무 중에도 어머니 생각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착하셨던 어머니가 왜 그렇게 끔찍한 병에 걸려야 했는지 억울하고 원통했습니다. 어머니가 하늘나라에서 편안히 계시길 바랐지만 확인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이었기에 점을 보러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당시 미아리, 정릉, 신촌, 연세대학교 근처에는 유명한 무당들이 많았습니다. 그중 연세대학교 근처 무당이 조금 더 똑똑할 것이라는 생각에 연세대학교 앞으로 향했습니다. 아프리카 토인처럼 머리를 부풀리고 주먹만 한 귀걸이를 한 무당은 저를 보자마자 "다 알면서 뭘 물어보러 왔냐, 죽은 네 엄마한테 물어봐라"라고 했습니다. 황당했지만 아줌마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어머니가 원한과 한이 많아 구천을 떠돌다 제 몸에 붙어있다고 했습니다. 세 곳의 무당집을 더 방문했지만 모두 같은 말을 했습니다. 귀신이 들렸다는 말을 인정할 수 없었지만, 계속해서 같은 말을 들으니 불안감이 엄습해왔습니다. 마지막으로 국무총리 공관 앞에 파란 부를 든 여자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갔습니다. 그곳에서도 역시 귀신 들렸다는 말을 들었고, 신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신병에 걸려 죽을 것이며, 심지어 저 대신 가족들이 신을 받아야 한다는 섬뜩한 예언까지 들었습니다.

가족에게 해가 갈 수 있다는 말에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밤마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괴로워하다가 결국 내림굿을 받기로 결심했습니다. 가족 중 누구라도 무당이 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제가 희생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나쁜 무당에게 걸려 큰 피해를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돈만 뜯기고 굿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두 번째 찾아간 무당은 산기도를 강요했습니다. 명산대천을 다니며 산신령에게 기도하면 영빨이 생겨 귀신과 대화할 수 있게 된다고 속였습니다. 하지만 산기도는 또 다른 사기였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림굿은 그런 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산을 헤매는 동안 혼란만 가중되었습니다. 귀신 소리가 들리는 듯했지만, 때로는 맞고 때로는 틀리는 엉터리 예언만 반복되었습니다. 귀신 소리는 사람 목소리와 똑같았고, 산에서 여자아이 목소리가 들려 "나 춥고 배고파, 쌀 줘"라고 떼쓰기도 했습니다. 무서움보다는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더 컸습니다. 산에서 기도할 때 강도나 험악한 사람을 만날까 봐 두려웠습니다. 어느 날부터 강아지를 데리고 산에 갔습니다. 강아지를 옆에 묶어두고 기도하면, 사람이 나타나면 짖어서 방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식으로 내림굿을 받기 위해 유명한 무당들을 찾아다녔습니다.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초청 강연까지 했다는 우옥주 보살, 아들을 하버드 대학에 보냈다는 창신동 탁 보살 등 소위 '엘리트 무당'들을 만났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말문이 터졌습니다. 영적으로 귀신과 소통이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때부터 새로운 고통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입에서 막말이 튀어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회사 동료에게 "오늘 오른쪽 눈 조심해"라고 무심코 던진 말이 실제로 현실이 되었습니다. 동료는 지우개를 줍다가 책상 모서리에 눈을 부딪혀 멍이 들었습니다. 또 다른 여직원에게는 "임신했죠?"라고 묻지도 않았는데 불쑥 말을 건네기도 했습니다. 말이 툭툭 튀어나오는 통에 회사에서 정신병자 취급을 받을까 두려워 입을 굳게 다물었습니다. 하지만 저를 이렇게 만든 무당들에게 화가 났습니다. 분명히 이 상황을 막을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전국 유명한 무당들을 찾아다녔습니다.

스님 출신으로 유명한 정법사를 만났을 때, 그는 뜻밖의 해결책을 제시했습니다. "곱게 자란 사람이 험한 신의 길을 갈 필요 없다. 사회생활 하면서 귀신을 막는 방법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방법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첫째, 귀신들을 달래주는 진적굿을 1년에 한두 번 지내고, 둘째, 명산대천을 찾아 기도하며, 셋째, 밤마다 귀신에게 기도하고, 넷째, 귀신이 좋아하는 새소리나 신명나는 음악을 듣고, 다섯째, 굿을 할 돈이 없을 때는 다른 무당 굿판에 가서 신복을 입고 덩실덩실 뛰며 신을 눌러주는 것입니다. 이 다섯 가지 방법을 병행하면 귀신을 몸에 지니고도 직업 무당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직장 생활과 무당의 삶을 병행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봉급과 퇴직금 담보 대출까지 받아 굿 비용을 마련하고, 회사 산악회에 가입해 몰래 산기도를 다녔습니다. 사물놀이 동호회에 가입하여 악기를 배우고, 새소리를 들으며 귀신을 달래려 애썼습니다.

정식으로 내림굿을 다시 받았습니다. 나라 무당, 큰 무당 등 여러 무당을 찾아다니며 내림굿을 받고, 마침내 영적인 소통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때부터 새로운 고통이 시작되었습니다. 굿을 받는 과정은 험난했습니다. 징, 꽹과리, 장구, 대금, 피리, 해금 등 악기 연주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신장대라는 도구를 들고 덩실덩실 춤을 춰야 했습니다. 다섯 시간, 여섯 시간 춤을 춰도 신이 내려오지 않아 새벽 3시에 찬물로 목욕재계까지 해야 했습니다. 혹독한 추위 속에 찬물로 샤워하는 것은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경험이었습니다. 다시 굿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드디어 입에서 귀신의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불쌍한 내 자손아, 내가 왔다, 내가 네 애비다"라는 둥, 어린 나이에 죽은 누나, 6.25 때 북한에 끌려간 외삼촌, 조부모 등 수많은 귀신들이 번갈아 가며 제 입을 통해 말을 쏟아냈습니다. 내림굿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신내림을 받고 무당 생활을 하는 동안, 가족들에게는 비밀로 했습니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었기에, 가족들에게 사실을 알릴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장모님은 권사님이고, 처형은 신학대학을 졸업했으며, 처제들도 교회 성가대원으로 활동하는 등 온 가족이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내 또한 중학교 때부터 교회를 다녔습니다. 가족들에게 사실을 털어놓는 것은 곧 정신병원에 갇히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귀신을 떼어내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는 여러 가지가 있었습니다. 귀신 세계는 겉으로 보기와는 달리 매우 더럽고 추악했습니다. 무당들은 서로 겉으로는 칭찬하지만, 뒤돌아서면 비방하고 헐뜯기 바빴습니다. 또한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질투심이 강하며, 돈을 벌기 위해 굿을 강요하는 등 부정적인 모습들을 끊임없이 목격했습니다. 특히 대수대명굿이라는 끔찍한 굿을 강요하는 모습에 환멸을 느꼈습니다.

저를 더욱 힘들게 했던 것은 주변에서 일어난 연쇄적인 불행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누나 집에 110억 원의 부도가 났고, 남편은 도망가고 누나는 야반도주하여 저희 집으로 들이닥쳤습니다. 귀신은 누나를 내쫓으라고 난리쳤지만, 오갈 데 없는 누나를 내쫓을 수는 없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누나는 40일 작정 철야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귀신은 철야기도를 막으라고 더욱 맹렬하게 날뛰었습니다. 저는 누나에게 "부도 하나 막지 못하는 예수가 무슨 소용이냐"며 비난했지만, 누나는 그저 "주여"라고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누나의 끈질긴 기도에 마음이 움직여 어느 날부터 누나를 교회에 데려다주기 시작했습니다. 교회 앞에서 누나를 내려주고 차 안에서 가세다라니경을 외우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누나는 교회에서 은혜를 받고 돌아올 때마다 얼굴이 밝아졌습니다. 어느 날 누나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나의 모든 어려움을 아시고 해결해 주실 거야"라고 고백했습니다. 누나의 믿음에 감동을 받았지만, 속으로는 '망한 주제에'라고 비웃었습니다.

두 번째 사건은 스님 출신 정법사의 죽음이었습니다. 병원에 입원한 정법사를 찾아갔을 때, 그는 이미 최장암 말기로 온몸이 검게 변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는 제게 "내가 평생 귀신을 섬겼지만 결국 이렇게 죽게 되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돈도 바라지 않고 헌신적으로 봉사하더라. 나도 이제부터라도 예수 믿기로 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정법사는 며칠 후 세상을 떠났지만, 죽기 전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천국에 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마지막 결정적인 사건은 유치원에 다니던 아들의 말 한마디였습니다. 아들은 유치원 친구 집에 무당이 산다며 "아빠, 무당이 뭐야?"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무당은 귀신과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라고 설명했고, 아들은 "아빠, 그럼 무당은 나쁜 사람들이네. 아빠는 무당이랑 친하게 지내면 안 돼"라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아들의 말에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내 아이에게 무당의 자식이라는 꼬리표를 물려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죽기 살기로 귀신을 떼어내기로 결심했습니다. 귀신이 가장 싫어하는 예수님을 믿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992년 5월 6일, 두려움과 떨림 속에 교회 문턱을 넘었습니다. 맨 앞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렸지만, 목사님의 설교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에 용기를 얻어 다음 날 또 교회에 갔습니다. 귀신은 여전히 괴롭혔지만, 죽이지는 못했습니다. 3일째 되던 날부터 누나를 따라 새벽기도에 참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신앙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귀신이 완전히 떠나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잠잠하다가도 교회 문만 나서면 다시 나타났고, 심지어 예배 중에도 귀신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저 목사 설교 별로야, 성경도 안 읽어, 나가, 나가"라는 속삭임에 시달렸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이름으로 쫓아낼 줄 몰랐기에, 그냥 "안 가, 안 가"라고 소리치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세례를 받고 싶었습니다. 하늘나라 백성이 되고 싶었습니다. 세례 교육을 받고, 우수한 성적으로 세례 문답을 통과하고, 드디어 세례를 받던 날,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몸에 엄청난 힘이 솟아오르는 듯한 느낌과 함께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 같은 죄인도 구원해주시다니, 하나님은 참으로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제가 바로 탕자입니다"라고 울먹이며 감격적인 세례를 받았습니다. 하용조 목사님을 통해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세례 후에도 시련은 계속되었습니다. 교회 성도들의 편견과 차가운 시선에 상처를 받았습니다. 계량한복을 입었다고, 가방에 작은 방울을 달았다고 무당 취급을 받고, 악수를 청하면 손도 대려 하지 않았습니다. 안수기도를 부탁해도 목사님들은 냉담하게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좌절하지 않고 제 나름의 방법으로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매주 5부 예배를 모두 드리고, 새벽기도, 수요예배, 금요 구역예배, 철야기도 등 모든 예배에 참석하고, 교회 성경 공부 프로그램에도 빠짐없이 참여했습니다. 귀신을 쫓아내려 애쓴 것이 아니라, 예배와 말씀과 기도로 제 영혼을 채우는 데 집중했습니다. 어느 순간, 신기하게도 귀신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았습니다. 귀신이 완전히 떠나간 것입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사탄, 마귀, 귀신은 말씀과 예수님으로 채워야 쫓아낼 수 있다는 진리를. 웅덩이에 더러운 물을 퍼내는 대신, 깨끗한 물을 끊임없이 채워 넣으면 더러운 물은 저절로 밀려나듯, 우리 영혼도 말씀과 기도로 채우면 귀신은 발붙일 곳 없이 떠나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귀신은 떠났지만, 협박과 저주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무당들이 "네가 감히 신령님을 버려? 3년 안에 피똥 싸고 죽을 것이다"라고 저주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마음속으로 "반사!"를 외쳤습니다. 예수님을 믿은 지 30년이 넘었지만, 그들의 저주는 헛소리에 불과했습니다. 60대 중반이 된 지금까지 건강하게 목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수많은 무당들의 협박과 저주 속에서 어떻게 버텼는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상담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저주와 협박에 굴복하지 말고, 예수님 이름으로 "반사!"라고 외치라고 가르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보다 "예수님 이름으로 반사!"가 더 효과적일 때도 있습니다. 물론 농담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강력한 믿음의 표현이라는 뜻입니다.

귀신을 쫓아낸 후, 신학 공부를 시작하고 목사가 되기로 결심하신 건가요? 처음부터 목사가 될 생각은 없었습니다. 평신도로서 1대1 양육과 성경 공부 사역에 헌신했습니다. 축구 선수들을 대상으로 7년간 1대1 양육을 하고, 전북 현대 선수들을 3년간 예배 인도를 했습니다. 프로 선수 80여 명을 교제했지만, 혹시 잘못된 성경 지식을 가르칠까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신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단독 목회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무당 출신 목사라는 선입견 때문에 교인들에게 상처를 줄까 걱정했습니다. 또한 저처럼 다른 종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단독 목회로는 그 사역에 집중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단독 목회 대신 교도소, 섬, 작은 교회 등을 다니며 말씀을 전하고 영적 상담을 하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늦은 나이에 목사 안수를 받았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것이 행복합니다.

지방을 다니시면서 무속인들을 많이 만나실 텐데, 그들을 보면 어떤 마음이 드시나요? 안타까움과 연민이 느껴집니다. 무당들도 결국 돈 때문에, 혹은 어쩔 수 없는 환경 때문에 그 길을 걷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속인들을 비난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을 전도하고 사랑으로 품어야 합니다. 그들도 천하보다 귀한 영혼이기 때문입니다. 무속을 그만두고 싶어도 돈 때문에, 혹은 신령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 자녀에게 해가 갈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가장 큽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으면 귀신의 속박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무속인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귀신들은 왜 그렇게 사람 몸에 들어오려고 하는 걸까요?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사람을 조종하고 괴롭히며 쾌락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흠향이라는 것도 결국 귀신들의 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례식장이나 제사 때 음식을 차려놓는 것도 귀신들을 위한 것입니다. 크리스천 중에도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행동입니다. 제사는 귀신을 불러들이는 행위이며, 성경적으로도 금지되어 있습니다. 차례나 제사는 반드시 없어져야 할 악습입니다.

크리스천들도 무속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교회 안에도 부적처럼 생각하는 행동들이 많습니다. 꿈자리가 사나울 때 성경책을 머리맡에 두거나, 자동차 안에 성경책을 놓는 것은 성경책을 부적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안수기도를 부적처럼 생각하고 매일같이 안수기도를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헌금을 복권처럼 생각하고 특정한 목적을 위해 헌금을 하는 것도 잘못된 신앙입니다. 새벽기도나 철야기도를 금메달처럼 여기고, 시험이나 중요한 일을 앞두고 새벽기도를 하는 것도 기복적인 신앙입니다. 연말에 성경 말씀 뽑기를 하고, 뽑은 말씀을 부적처럼 여기는 것도 무속적인 행위입니다. 이사할 때 손 없는 날을 택하거나, 집터를 탓하는 것도 미신적인 행동입니다. 장명 또한 무속적인 요소가 강합니다. 이러한 무속적인 잔재들은 한국 교회가 극복해야 할 과제입니다.

마지막으로, 귀신으로부터 보호받고 영적으로 깨어있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귀신을 쫓아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예수님을 믿고 예배, 말씀, 기도로 영혼을 채우는 것입니다. 귀신이 나타났을 때 예수님 이름으로 쫓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귀신이 얼씬도 못하도록 영적으로 무장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비행기와 같습니다. 예배는 몸통이고, 말씀과 기도는 양 날개입니다. 예배를 소홀히 하거나, 말씀과 기도를 게을리하면 영적으로 병들고 귀신에게 틈을 보이게 됩니다. 예배, 말씀,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면 귀신은 저절로 떠나갑니다. 굳이 축사 사역자나 신유 집회를 찾아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곳에서 상업적인 헌금을 강요하거나, 잘못된 가르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은사는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 것이 성경적인 가르침입니다. 은사를 사모하는 것은 좋지만, 은사주의에 빠져 맹목적으로 은사 사역자를 쫓아다니는 것은 위험합니다. 진실된 마음으로 예배드리고 말씀 읽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귀신으로부터 보호해주시고 영적인 평안을 주실 것입니다.

1. 한 고대 문서 이야기

2. 너무나도 중요한 소식 (불편한 진실)

3. 당신이 복음을 믿지 못하는 이유

4. 신(하나님)은 과연 존재하는가?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있는가?

5. 신의 증거(연역적 추론)

6. 신의 증거(귀납적 증거)

7. 신의 증거(현실적인 증거)

8. 비상식적이고 초자연적인 기적, 과연 가능한가

9. 성경의 사실성

10. 압도적으로 높은 성경의 고고학적 신뢰성

11.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고고학적 증거

12. 성경의 고고학적 증거들

13. 성경의 예언 성취

14. 성경에 기록된 현재와 미래의 예언

15. 성경에 기록된 인류의 종말

16. 우주의 기원이 증명하는 창조의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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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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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구원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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