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다위 목사 간증: 권위 내려놓음과 회복의 목회 이야기
권위 내려놓자 회복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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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과 내려놓음에서 시작된 회복: 선한목자교회 김다위 목사의 이야기
오늘, 우리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진정한 회복과 성장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 특히, 선한목자교회의 김다위 목사님의 삶과 목회 여정을 통해, 우리 안에 깊숙이 자리한 권위와 욕망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시작되는 놀라운 회복의 역사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새롭게하소서 채널에 출연하신 김다위 목사님의 진솔한 간증을 바탕으로, 그의 삶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섬세한 인도하심과 놀라운 은혜를 상세히 정리하여 여러분께 전달해 드리고자 합니다.
김다위 목사님은 유기성 목사님의 후임이라는 무거운 책임감과 기대 속에서 선한목자교회를 이끌고 계십니다. 전임자의 높은 명성은 때로는 부담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김 목사님은 오히려 영광으로 받아들이고, 끊임없는 기도와 준비로 그 자리를 채워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깊이 있는 영성과 따뜻한 품성을 지닌 김 목사님은, 마치 라디오 DJ처럼 편안하고 친근한 인상으로 성도들에게 다가가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아픔과 가족의 비극: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피어난 믿음
김다위 목사님의 인생 여정은 태어나기 전부터 가족의 비극적인 사건과 함께 시작됩니다. 목회자였던 부모님은 개척교회를 섬기며 헌신적인 목양에 힘썼지만, 1978년 4월 22일, 토요일에 예기치 못한 슬픔이 찾아왔습니다. 당시 세 명의 누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던 중, 셋째 누님이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딸의 죽음 앞에서, 부모님은 깊은 슬픔에 잠겼지만, 오히려 믿음으로 이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셨다고 합니다.
특히, 둘째 누님은 막내 누님과 함께 사고 장소에 있었기에, 더 큰 충격과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막내 누님을 챙기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사고 당시의 끔찍한 기억은 오랜 시간 동안 그녀를 괴롭혔습니다. 하지만, 가족은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이 슬픔을 함께 이겨냈고, 1년 후, 김다위 목사님이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면서 가정에 다시 희망의 빛이 드리우게 되었습니다.
김 목사님의 탄생은 단순한 기쁨을 넘어, 잃어버린 막내 누님이 다시 돌아온 것과 같은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둘째 누님은 태몽 꿈에서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난 막내 누님을 보았고, 그 꿈은 김 목사님의 탄생을 예고하는 놀라운 징조로 여겨졌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주시면 주님의 종으로 키우겠다는 서원기도를 드렸고, 김 목사님은 이러한 간절한 기도와 축복 속에서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것입니다.
세 번의 결정적인 하나님과의 만남: 인생의 방향을 제시하다
김다위 목사님은 목회자 가정에서 자랐지만, 어린 시절에는 신앙적인 열심보다는 평범한 아이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중학교 3학년에서 고등학교로 올라가는 시기에 일탈을 경험하며 방황하게 됩니다. 소위 '잘 나가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잘못된 길에 발을 들일 뻔했지만, 고등학교 1학년 여름 수련회에서 결정적인 하나님과의 첫 번째 만남을 경험하게 됩니다.
첫 번째 만남: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다
수련회에서 듣게 된 평범한 설교였지만, 그날따라 십자가의 의미가 마음 깊이 와닿았습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고, 지난 방황의 시간 동안 마음속에 쌓였던 죄책감이 눈물로 터져 나왔습니다. 십자가는 단순한 종교적 상징이 아닌, 자신의 죄를 대신 짊어지신 예수님의 사랑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순간, "내가 너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했다"는 주님의 음성이 마음속에 들려오는 듯 했습니다.
수련회 이후, 김 목사님의 삶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입술에서 거친 말이 사라지고 온화한 언어를 사용하게 되었으며,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복음을 전하는 자로 변화되었습니다. 원래 말더듬는 습관이 있었고 소극적인 성격이었지만, 성령의 임재를 경험한 후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하는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이것은 김 목사님에게 주어진 첫 번째 놀라운 은혜이자, 목회자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신호탄과 같았습니다.
두 번째 만남: 성령의 강력한 임재를 경험하다
신학교 입학 후, 김 목사님은 잠시 방황하며 게임 중독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군 입대 후 군종 목사님과의 만남을 통해 성령 체험에 대한 갈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특히, 방언을 받아야 한다는 목사님의 권유에 따라 6개월 동안 금요 기도회에 참석하여 간절히 기도했지만, 쉽게 방언이 터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군 교회 학생들과 함께 떠난 수련회에서 예상치 못한 두 번째 하나님과의 만남을 경험하게 됩니다.
수련회에서 학생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던 중, 갑자기 입에서 꼬이는 듯한 말이 터져 나오며 방언을 받게 된 것입니다. 자신을 위한 기도가 아닌, 타인을 위한 간절한 중보기도 중에 성령의 강력한 임재를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이 경험을 통해 김 목사님은 성령의 역사를 더욱 깊이 신뢰하게 되었고, 이후에도 꾸준히 방언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자신을 위한 갈망을 내려놓고 타인을 위해 헌신할 때, 하나님은 더 큰 은혜로 응답하신 것입니다.
세 번째 만남: 헛된 야망을 내려놓고 겸손을 배우다
선한목자교회에서 다양한 사역을 감당하며 열정적으로 목회하던 김 목사님은, 2006년 초 김용의 선교사님의 복음학교에 참석하여 자신의 내면에 숨겨진 야망과 성공에 대한 욕심을 발견하게 됩니다. 겉으로는 헌신적인 목회자의 모습이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성공 지향적인 욕망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복음학교에서 자신의 야망을 십자가에 못 박고, 인도네시아 선교사로 헌신하겠다고 결심했지만, 유기성 목사님은 선교사보다는 유학을 권유하며 다른 길을 제시했습니다.
두 번의 거절 끝에 미국 유학길에 오른 김 목사님은, 미국 교회에서 목회하며 새로운 도전과 갈등에 직면하게 됩니다. 미국에서도 여전히 성공적인 목회를 갈망하며 열심히 사역했지만, 가족과의 관계는 점점 소원해지고, 아내는 외로움에 지쳐갔습니다. 일 중독에 빠져 가족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자신을 돌아보며 깊은 회개에 잠겼습니다. 그러던 중, 셋째 아이 임신이라는 예상치 못한 사건과 함께 꿈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꿈속에서 세 명의 아픈 아이를 보여주시며 "이 아이들을 키울 수 있겠느냐"고 물으시는 하나님의 질문은, 김 목사님에게 큰 충격과 도전으로 다가왔습니다. 실제로, 셋째 아이는 다운증후군 확률이 높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낙태 대신 어떤 아이든 사랑으로 키우겠다는 결심을 굳혔습니다. 이와 동시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한인 이민교회로부터 청빙 제안을 받게 되었고, 가장 어려운 길을 선택하라는 유기성 목사님의 조언을 떠올리며 이민교회 부임을 결심하게 됩니다.
이민교회 부임 후, 출산 한 달 만에 아내가 심각한 하혈로 생사의 고비를 넘나드는 위기를 겪게 됩니다. 아내는 천국을 경험하는 꿈을 꾸었고, 삶의 마지막 순간에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했습니다. 수술실 앞에서 간절히 기도하던 김 목사님은, 아내가 살아 돌아온 것에 감사하며, 가족의 소중함과 목회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이 사건을 통해 목회의 우선순위를 가족으로 바꾸고, 헛된 야망을 내려놓고 겸손하게 주님만을 의지하는 목회를 시작하게 됩니다. 세 번째 만남은 개인적인 야망을 내려놓고 진정한 섬김의 자세를 배우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이민 교회 목회: 내려놓음과 섬김으로 세워가는 공동체
미국 이민교회에 부임했을 당시, 교회는 분열과 갈등으로 심각하게 쇠퇴해 있었습니다. 출석 교인은 10여 명에 불과했고, 교인들은 목회자에 대한 불신과 상처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목회자 무덤이라고 불릴 정도로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김 목사님은 오히려 이곳에서 진정한 목회의 의미를 발견하고 실천하게 됩니다.
성육신적 사역: 삶으로 보여주는 섬김의 리더십
김 목사님은 권위적인 목회 방식을 버리고, 성도들과 함께 삶의 현장에서 부딪히며 소통하는 성육신적인 사역을 펼쳐나갔습니다. 새벽기도 후 교회 화단의 잡초를 함께 뽑고, 교인들의 이삿짐을 함께 나르고, 공항 라이드를 자처하며 성도들의 필요를 채워주었습니다. 자전거 동호회를 만들어 지역 주민들과 교류하고, 커피를 마시며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등, 일상 속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데 힘썼습니다.
특히, 잡초 뽑기는 단순한 노동을 넘어, 교인들과 함께 영적인 잡초를 뽑아내는 상징적인 행위가 되었습니다. 교회 일을 목회자 혼자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과 함께 땀 흘리고 고민하며 교회를 세워나가는 과정을 통해, 서로 신뢰하고 협력하는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섬김의 리더십은 이민교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고, 성도들의 마음을 점차 열기 시작했습니다.
성도들과의 관계 회복: 신뢰를 바탕으로 한 목회
이민교회에서 목회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성도들과의 신뢰 관계 회복이었습니다. 과거 목회자들에게 상처받은 교인들은 목회자에 대한 깊은 불신을 가지고 있었지만, 김 목사님은 진솔한 모습으로 다가가 진심을 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저도 제 자신을 신뢰하지 않습니다"라는 솔직한 고백은, 오히려 교인들에게 신뢰를 얻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함께 어려움을 나누는 모습은, 성도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또한, 예배를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시간으로 만들기 위해 정성을 다해 준비했습니다. 설교학 전공 지식을 바탕으로, 교인들의 삶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특히, 예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며 공감대를 형성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강조하는 설교는 상처 입은 성도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사모님 역시 헌신적인 섬김으로 교회를 든든히 세워나갔습니다. 음식으로 교인들을 섬기고, 정서적인 어려움을 겪는 성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위로하는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사모님의 따뜻한 섬김은 교인들의 마음을 더욱 가깝게 만들고, 교회 전체에 사랑과 나눔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성도들은 김 목사님 부부를 통해 진정한 목회자의 모습을 보았고, 점차 마음 문을 열고 교회 공동체에 헌신하기 시작했습니다.
선한목자교회 담임목사 청빙 과정: 하나님의 섬세한 인도하심
이민교회에서 8년간 헌신적인 목회를 이어가던 김 목사님에게, 2015년 가을 유기성 목사님으로부터 갑작스러운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선한목자교회 부교역자 자리가 비어 함께 사역하고 싶다는 제의였습니다. 하지만, 교회가 아직 안정되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사를 전달했지만, 즉시 합류를 원하는 목사님의 강한 요청에 부득이하게 거절하게 됩니다.
이후, 유기성 목사님과의 연락이 끊기고, 모든 길이 막힌 듯한 상황 속에서 김 목사님은 광야와 같은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하지만, 2018년 시카고에서 열린 목회자 세미나에서 유기성 목사님과 재회하며 오해를 풀고 다시 관계를 회복하게 됩니다. 자신의 상황과 교회가 회복된 이야기를 전해들은 유기성 목사님은 오히려 기뻐하며 돌아와서 함께 사역할 것을 제의했지만, 이미 이민교회에 헌신하기로 마음을 굳힌 김 목사님은 두 번째 제의 역시 정중히 거절합니다.
유기성 목사님과의 재회와 세 번째 청빙
두 번의 거절 이후, 2019년 두 명의 청년 결혼식 주례를 위해 한국을 방문하게 된 김 목사님은, 다시 한번 유기성 목사님께 연락을 시도합니다. 페이스북 메신저를 통해 소심하게 인사를 드렸지만, 답장은 쉽게 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열흘 후, 유기성 목사님으로부터 주일 설교를 부탁하는 뜻밖의 연락을 받게 됩니다. 본당에서 설교할 기회를 얻게 된 김 목사님은, 감사한 마음으로 설교를 준비했고, 성도들에게 큰 은혜를 끼치게 됩니다.
2021년 1월 1일, 아버지는 유기성 목사님이 나타나 12과목을 자신에게 맡기는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꿈의 의미를 알지 못했지만, 2023년 4월 16일 담임목사 이취임식에서 12돌을 쌓는 세리머니를 통해 꿈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12돌은 교회의 12개 부서를 상징하며, 교회 전체를 김 목사님께 맡긴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던 것입니다.
2021년 5월 2일, 선한목자교회 청빙위원회로부터 담임목사 1순위로 청빙되었다는 연락을 받게 됩니다. 오랜 시간 동안 하나님은 섬세하게 김 목사님을 선한목자교회 담임목사로 인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세 번의 꿈, 두 번의 거절, 그리고 세 번째 청빙까지, 모든 과정은 하나님의 완벽한 섭리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12돌의 의미: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다
2023년 4월 16일, 김다위 목사님은 선한목자교회 담임목사로 공식 취임했습니다. 이취임식에서 진행된 12돌 세리머니는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넌 후 12지파를 대표하는 돌 12개를 길갈에 세워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했던 것처럼, 선한목자교회 역시 12돌을 통해 지난 역사 속에서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새로운 시작을 다짐했습니다.
유기성 목사님은 후임 선정 과정에 전혀 개입하지 않고, 오직 공정성을 확보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3단계로 나뉜 청빙 과정은 모든 세대의 의견을 수렴하고, 투명성과 객관성을 최대한 확보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선한목자교회는 후임 목사 청빙에 있어서 모범적인 사례를 남길 수 있었습니다. 김다위 목사님은 이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고백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목회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목회 철학과 비전: 예수 동행, 이웃 사랑, 그리고 북한 선교
김다위 목사님의 목회 철학은 예수 동행을 핵심으로 합니다. 유기성 목사님으로부터 이어받은 예수 동행 목회 철학을 바탕으로, 개인의 영성뿐 아니라 사회적 책임까지 아우르는 균형 잡힌 목회를 지향합니다. We Jesus-following 이라는 표어 아래, 네 가지 핵심 가치를 강조합니다. 첫째,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 (With Jesus), 둘째, 소외된 이웃을 향한 사랑 (Welfare for Neighbors), 셋째, 북한 선교 (Woes of North Korea), 넷째, 다음 세대를 위한 헌신 (Next Generation). 이 네 가지 가치는 모두 W로 시작하여 통일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김 목사님은 예수 동행이 개인의 영적 성장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열방을 향한 헌신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공동체로서,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특히, 북한 선교와 다음 세대 양육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교회가 이 사명을 감당하도록 이끌어갈 비전을 품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김다위 목사님은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았던 부모님의 믿음을 강조하며, 어려움 속에서 고통받는 이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은 독생자를 아끼지 않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방법으로 역사하시는 분이심을 기억하고, 그 사랑 안에서 살아가기를 권면했습니다. 겸손과 섬김으로 교회를 이끌어가는 김다위 목사님의 앞으로의 목회 여정을 응원하며, 선한목자교회가 예수님을 따르는 교회로서 더욱 성장하고 발전해 나가기를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