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경 전도사 간증: 중학교 자퇴 결심과 거리 복음 전도의 삶
교회 밖에도 하나님 눈물이: 거리 복음 전하는 김성경 전도사
"하나님을 지키기 위해 중학교 자퇴?!" 김성경 전도사 간증 상세 정리: 2만 자 내외, 친절하고 자세한 노하우 소개
오늘, 여러분은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과 굳건한 믿음으로 가득 찬 한 젊은 전도사님의 놀라운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될 것입니다. 그는 바로 김성경 전도사님인데요, 김성경 전도사님은 우리에게 "새롭게하소서" 채널을 통해 감동과 도전을 선사할 예정입니다. 과연 어떤 이야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지금부터 김성경 전도사님의 파란만장한 인생 여정을 함께 따라가 보겠습니다.
1. 새로운 시작을 꿈꾸며: 촌놈의 도심 중학교 입성
김성경 전도사님은 충북 청원군 남일면 가산 3구 살구쟁이 마을, 정겨운 시골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곳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화투로 수학을 배우는 촌놈으로 자랐는데요, 목회자 부모님 밑에서 모태신앙으로 자라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 꿈은 촌놈의 로망, 도심 중학교에 진학하는 것이었습니다. 학교 앞 떡볶이집과 편의점은 상상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도심의 상징이었죠. 드디어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김성경 전도사님은 하나님과의 특별한 만남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 저 중학교 정말 멋지게 다닐게요! 도심에 가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멋진 아들이 될게요!"
입학식 날, 자전거를 힘차게 밟으며 학교로 향하는 그의 마음은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기대는 곧 충격과 절망으로 바뀌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2. 입학식 날의 충격: 과학 선생님의 믿음 조롱
입학식 날, 담임 선생님으로 과학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셨습니다. 선생님의 첫 마디는 김성경 전도사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충격적인 발언이었습니다.
"내 반에서 교회 다니는 놈들, 다 일어나 봐!"
중학교 입학식, 그것도 첫 날부터 믿음을 드러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김성경 전도사님은 당황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첫날부터 믿음을 증명할 기회를 주시는구나!' 라는 긍정적인 마음이 들었습니다. 반 아이들 중 다섯 명이 교회에 다녔고, 그들과 눈빛을 주고받으며 함께 일어서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교실에는 김성경 전도사님 혼자 우뚝 서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그를 향해 더욱 강도 높은 비난을 쏟아냈습니다. "저놈 같은 애들이 머리에 든 게 없으니까 허무한 미신이나 의지한다! 신이 흙에 공기를 넣어 인간을 만들었다는 허무맹랑한 미신을 믿는 꼴통이 있다면, 저놈과 함께 나가도 좋다!"
과학 선생님으로서, 그것도 입학식 날 학생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노골적인 조롱이었습니다. 꿈에 그리던 중학교 입학식은 씻을 수 없는 상처로 얼룩지고 말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김성경 전도사님은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습니다. 혼났다는 감정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것보다 더 컸던 감정은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주님을, 그 어떤 변론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무력감과 죄책감이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세상 앞에서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가? 교회 안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외치지만, 세상의 강력한 조롱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 하는 나약한 신앙인인가?' 스스로에 대한 깊은 실망감과 괴로움에 김성경 전도사님은 자전거를 논바닥에 내팽개치고 엉엉 울었습니다.
3. 절망 속에서 찾은 소명: 중학교 자퇴와 주의 종의 길
놀랍게도, 인생의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로 기억될 뻔한 그 날은, 김성경 전도사님 인생의 잊을 수 없는 소명이 시작된 날이 되었습니다. 꽁꽁 얼어붙은 논바닥에 주저앉아 하늘을 보며 울던 그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교회 다니는 사람은 세상에 나가면 아무 말도 못 해요? 교회에서만 잘난 척하는 건가요? 세상에서 조금만 큰 소리를 내면, 하나님을 위해 해드릴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게 우리의 믿음인가요? 너무 비참합니다..."
비참함 속에서 그는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 6년 동안 중고등학교 대신 하나님만 공부해보자! 세상 그 누가 하나님을 조롱해도,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풀 수 있는, 그런 '하나님의 사람' 이 되어보자!' 그 순간, 그의 마음속에 주의 종으로서의 소명이 강렬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중학교 자퇴라는, 어쩌면 무모해 보이는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중학교 1학년, 겨우 14살 어린 나이에, 그것도 입학식 날 바로 자퇴를 결심하다니! 하늘에 대고 소명을 외치는 아들을 보며 부모님은 어떤 반응을 보이셨을까요? 예상대로, 부모님은 "난리가 났다" 고 표현할 만큼 격렬하게 반대하셨습니다. 특히, 아버지는 목사님이었기에 아들의 갑작스러운 결정에 더욱 당황하셨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을 더 놀라게 했던 것은 자퇴 선언보다, "엄마, 아빠, 저 주의 종이 되고 싶어요!" 라는 아들의 외침이었습니다.
부모님은 주의 종의 길이 얼마나 험난한 길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아들이 이 길을 걷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반대의 이유는 단순히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아들을 내가 알지만, 넌 너무 이기적이어서 안 된다! 너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놈이 주의 종이 되면, 삯꾼이 될 게 뻔하다!" 아들에 대한 냉철한 평가와 함께, 잘못된 주의 종이 될까 봐 걱정하는 부모님의 진심 어린 반대였습니다.
하지만 김성경 전도사님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을 5일 밤낮으로 설득했고, 결국 "안 되면 돌아오는 걸로 하고, 일단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봐라" 라는 허락을 받아냈습니다. 마침내 금요일, 그는 자퇴서를 들고 학교를 찾아갔습니다. 결전의 날이 밝은 것입니다.
4. 자퇴서 제출, 그리고 선생님과의 마지막 대화
교무실에서 담임 선생님은 자퇴서를 보자 깊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리고 김성경 전도사님에게 걱정스러운 듯 말했습니다. "성경아, 네가 사랑한다는 주님은 사랑하는 자녀를 자퇴시키는 분이 아니란다. 제발 적당히 믿었으면 좋겠다. 선생님은 네가 너무 걱정돼서 그래." 선생님의 마지막 조롱에도 김성경 전도사님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선생님께 "선생님, 제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꼭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라고 당당하게 외치고 교무실 문을 나섰습니다. 그 순간, 그는 마치 드라마 주인공처럼 슬로우 모션으로 휘파람을 불며 학교를 나서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드라마와 달랐습니다. 친구들은 자퇴를 걱정하기는커녕, "야, 너 내일부터 학교 안 나오는 거야? 정말 부럽다!" 며 오히려 부러워했습니다. 그의 마음은 그들의 철없는 반응과는 달리 무겁기만 했습니다.
5. 자퇴 후의 현실: 두려움과 고독 속에서 찾은 위로
자퇴 후, 김성경 전도사님에게는 현실이라는 벽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매일 규칙적인 학교생활 대신, 불안과 두려움이 그의 일상을 잠식해갔습니다. "하나님 이 날 교무실을 보셨다면, 기특하다고 칭찬해주셨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왜 나를 지켜주시지 않는 거죠?" 믿음을 선포한 날부터, 하나님은 그에게서 점점 멀어지는 듯했습니다. 기도해도 느껴지지 않고, 체험되지도 않는 하나님. 그는 극심한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경제적 형편이 넉넉지 않았기에, 그는 시골 서점에서 EBS 교재를 잔뜩 사서 독학을 시작했습니다. 자퇴생 신분은 또 다른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학생 타이틀을 잃은 자퇴생에게 세상은 차가웠습니다. "자퇴는 내 손으로 내 인생을 망치는 짓" 이라는 사회적 편견과 싸워야 했고, 그 비난은 고스란히 부모님에게 향했습니다. "대체 아들 교육을 어떻게 시키려고 멀쩡한 놈을 자퇴시키냐!" 두려움과 불안함 속에서 그는 부모님과 함께 매일 새벽기도를 드리며 힘든 시간을 버텨냈습니다.
텅 빈 강당, 홀로 무릎 꿇고 기도하며 그는 매일같이 눈물로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하나님, 죄송해요... 제가 이 길 못 가요... 제가 꼴통이에요... 제가 감당할 수 있는 길이 아닌 것 같아요... 그날 상처가 너무 깊어서 소명을 잘못 받은 것 같아요... 제 상상력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잘못 들었나 봐요... 제 길이 아닌 것 같아요... 하나님, 저 너무 무서워요..." 매일 밤, 그는 두려움에 떨며 울었지만, 놀랍게도 하나님은 그런 그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따뜻한 위로의 음성으로 그를 격려하셨습니다.
"네가 나를 포기하지 않았기에, 내가 너를 포기하지 않는다. 네가 내 길을 지켜주었기에, 내가 너의 길을 반드시 지켜줄 것이다. 연약한 너를 놓치지 않기 위해, 나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주었다." 그리고 그에게 마가복음 5장 36절 말씀을 통해 용기를 북돋아 주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또한, 여호수아 1장 9절 말씀을 통해 끊임없이 그를 다독이셨습니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와 함께하느니라."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 속에서 그는 다시 힘을 내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6. 검정고시 합격, 15세 최연소 신학생이 되다
기도하며 힘든 시간을 버텨낸 결과,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는 15살 겨울, 중고등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마치고 한국 침례신학대학교 최연소 신입생이 되어 있었습니다. 자퇴 후, 두려움과 불안함에 떨던 15살 소년은, 불과 2년 만에 어엿한 대학생이 되어 캠퍼스를 걷게 된 것입니다. 그것도 겸임교수로 섬기고 있는 바로 그 신학대학교에 말입니다. 정말 놀라운 반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학교 합격증을 손에 든 순간, 김성경 전도사님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중학교 입학식 날, 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던 과학 선생님이었습니다. 합격증을 출력하자마자, 그는 곧장 중학교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학교에 놀러 가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중학생들의 소문은 빛처럼 빠르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순식간에 학교 전체에 소문이 퍼져나갔고, 선생님 귀에도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학교 정문 앞에 도착했을 때,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교문 앞에 누가 서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다름 아닌 담임 선생님이셨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선생님께서 그를 보자마자 달려오셔서 손을 덥석 잡으셨다는 것입니다. '혹시 "할렐루야!" 라도 외치시려나?' 라고 생각하는 찰나, 선생님은 전혀 예상 밖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성경아! 네가 이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는 놈인 줄 알았으면, 선생님한테 말을 했어야지! 그랬으면 선생님이 널 키워줬을 텐데!" 선생님은 오히려 화를 내시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의 뜻밖의 반응에 김성경 전도사님은 왈칵 눈물을 쏟았습니다. 복수심 때문도, 역전했다는 쾌감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선생님의 따뜻한 (어쩌면 츤데레 같은) 격려 속에서, 자퇴 후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하나님의 사랑 (아버지의 사랑) 이 그날 다시 보였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의 따뜻한 손길에서, 그는 마치 "거봐, 결국 내가 널 책임진다. 내가 널 두고 절대 실수하지 않아." 라고 속삭이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듯했습니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늘 들어왔던 "내가 책임진다" 는 하나님의 약속이, 그 순간 가슴 벅찬 감동으로 밀려왔습니다.
7. 15세 대학생의 캠퍼스 생활: 시련과 어머니의 지혜
15세 어린 나이에 대학생이 된 김성경 전도사님. 또래 친구들은 중학교 3학년, 입시 준비에 한창일 나이에 그는 벌써 대학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캠퍼스 생활은 결코 순탄치 않았습니다. 나이 많은 형, 누나들과 함께 수업을 듣는 것은 쉽지 않았고, 어린 나이에 대한 시기와 질투도 감당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형, 누나들이 그를 귀여워하고 챙겨주는 듯했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습니다.
첫 학기 중간고사 무렵, 기숙사 동기 형이 그에게 진지하게 경고했습니다. "야, 김성경, 너 요즘 사람들 입에 많이 오르내리는 거 알아? 너 엄청 욕먹고 있어. 개념 좀 챙겨." "네? 형, 제가 뭘 잘못했나요?" "솔직히 말해서, 네 나이에 대학 온 거 보면 신기하긴 한데, 너무 나대는 것 같다는 말들이 많아. 겸손하게 행동하는 게 좋을 거야." 그 형은 진심으로 걱정해서 해준 말이었겠지만, 15세 소년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충격이었습니다.
그 이후, 김성경 전도사님은 사람들을 피하기 시작했습니다. 드라마에서만 보던 화장실에서 도시락 먹는 장면을 실제로 연출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과 마주치는 것조차 두려웠고, '저 사람도 나를 싫어하겠지?' 라는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결국 그는 중간고사가 끝나자마자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울면서 하소연했습니다. "엄마, 나 미움받고 있대... 왕따래... 학교 그만둘까? 4년 뒤에 친구들이랑 같이 대학 다녀도 되지 않을까?"
뜻밖에도, 어머니는 아들의 말에 "그래, 때려쳐!" 라고 단호하게 대답했습니다. "엄마, 위로해줄 줄 알았는데... 너무 하시네..." "성경아, 정신 차려! 네가 주의 종 되겠다고 선택한 길은, 지금 네가 만나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심하게 너를 쑤셔댈 사람들을 만나는 길이야. 신학대학교에서 못 견딜 거면, 네 길이 아닌 거야!" 어머니의 일침에 정신이 번쩍 든 김성경 전도사님은 "안 때려쳐!" 라고 외치며 전화를 끊고, 그날부터 도서관에 파묻혀 살았습니다. 어머니의 현명한 조언은,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시련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8. 미국 유학, 그리고 새로운 소명: 캠퍼스를 넘어 거리로
대학교 졸업 후, 김성경 전도사님은 미국 유학길에 오릅니다. 낯선 땅에서 홀로 유학 생활을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재정적인 어려움은 큰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힘든 유학 생활 속에서 그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힘든 유학 생활, 반드시 보상받아야 해요! 저는 꼭 교수가 될 거예요!" 그는 박사 학위 취득을 목표로 석사 과정을 마쳤습니다. 하지만 박사 과정 지원서를 눈앞에 두고,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방학 때 잠시 한국에 들렀을 때, 오랜 만에 만난 교회 친구 자매의 눈물이 그의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주일학교 때부터 열심히 교회를 다녔던 자매는, 청년이 되어 교회를 떠나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전도사님, 저는 하나님이 너무 보고 싶어요. 매주 주일마다 교회 벽 앞까지 갔었지만, 교회 벽이 너무 무서워서 돌아왔어요. 교회는 죄인으로 낙인찍힌 사고뭉치들을 사랑해주지 않아요. 교회 밖으로 나온 아이들을 찾으러 나와주지도 않아요." 자매의 절망적인 고백은, 김성경 전도사님의 마음을 deeply 뒤흔들었습니다.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곧장 기숙사 기도실로 달려가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건 아니에요! 저 교수 되어야 해요! 힘든 유학 생활 보상받아야 한다고요! 박사 학위 받고 교수 되어서 편하게 사역할 거라고요! 이런 마음 주시면 안 돼요! 한국에 청소년, 청년 사역 잘하는 사람 얼마나 많은데요! 제 길이 아니에요! 제발 이 마음 거둬가 주세요!" 그는 가슴을 치며 하나님께 매달렸지만, 하나님의 마음은 단호했습니다.
"야! 내가 너보다 잘해! 내가 너보다 너를 훨씬 더 잘 알아! 그러니까 네가 가줘야 돼!" 하나님은 그에게 예레미야 5장 1절 말씀을 통해 분명한 소명을 주셨습니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진리를 구하는 한 영혼을 찾아 거리로 나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그 순간, 김성경 전도사님은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눈물은 교회 벽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벽 밖에도 있구나!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 벽 안과 밖을 넘나들며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이구나!' 결국, 그는 박사 학위의 꿈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와 거리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시작합니다.
9. 거리에서 외치는 복음: 원디사이플 워십 사역 시작
한국으로 돌아온 김성경 전도사님은 "원디사이플(One Disciple)" 워십 팀을 만들어 거리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교회가 아닌 거리, 카페, 라이브 클럽 등 다양한 장소에서 사람들을 만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가 처음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 곳은 고향인 청주였습니다. 서울 대형교회에서 화려하게 사역하는 대신, 그는 하나님이 가장 필요로 하는 곳, 자신이 태어난 고향 청주에서 맨땅에 헤딩하듯 사역을 시작한 것입니다.
사역 초창기, 그는 청주대교 위에서 통기타 하나와 마이크, 버스킹 스피커 하나만 가지고 홀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성경책 하나 들고 나가 찬양하고 설교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그의 진심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청주대교 노숙자들은 그의 예배에 함께 참여했고, 지나가던 청년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렇게 대교 위에서 만난 몇몇 청년들은 현재 원디사이플 워십 팀 멤버로 함께 사역하고 있습니다. 정말 놀라운 열매가 아닐 수 없습니다.
김성경 전도사님은 한 영혼을 위한 설교에도 열정을 쏟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설교하는 것보다, 예수님처럼 한 영혼을 위해 마음을 쏟는 설교를 통해 더 큰 감동과 변화를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교회친구다모여라 채널에서는 아버지, 김성경 목사님을 앞에 앉혀놓고 설교하는 특별한 영상도 제작했습니다. 목사 아버지 앞에서 설교하는 것은 그에게 엄청난 부담감과 긴장감을 안겨주었지만, 그 과정을 통해 그는 또 한 번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한 영혼을 위한 설교를 준비하면서, 화려한 성경 해석이나 기가 막힌 설교 기술보다, 그 영혼의 삶의 궤적과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버지 설교를 준비하면서 그는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도망치던 아버지 다윗의 등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위기 속에서 언약궤를 붙잡는 대신, 하나님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언약궤를 돌려보냈습니다. 김성경 전도사님은 아버지 다윗의 등을 통해,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던 아버지의 깊은 믿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아들 솔로몬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아버지의 등, 바로 십자가 앞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던 아버지의 등을 설교했습니다. 설교 후, 아버지 목사님은 펑펑 눈물을 쏟으셨고, 그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10. 다음 세대를 위한 희망: 새로운 사역 패러다임 제시
김성경 전도사님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도전을 줍니다. 그는 입학식 날 선생님의 조롱이라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딛고, 오히려 그 상처를 통해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과 굳건한 믿음을 키워나갔습니다. 중학교 자퇴, 신학대학 최연소 입학, 미국 유학 포기, 거리 사역 시작 등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 속에서 하나님은 늘 그와 함께하셨고, 그를 놀라운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김성경 전도사님의 사역은, 교회 중심의 전통적인 사역 방식에서 벗어나, 미디어 사역, 5분 설교, 거리 예배 등 다양한 방식으로 다음 세대에게 복음을 전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합니다. 특히, 짧고 재미있고 진리가 담긴 5분 설교 영상은, 빠르게 변화하는 미디어 시대에 맞춰 다음 세대를 효과적으로 공략하는 새로운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교회 벽을 넘어 거리, 카페, 클럽 등 다양한 장소에서 사람들을 만나 복음을 전하는 사역은, 교회 밖 세상 속에서 고통받는 영혼들에게 다가가는 획기적인 접근 방식입니다.
어린 시절 채소를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채소를 억지로 먹이는 대신, 채소를 갈아서 주먹밥에 넣어 맛있게 먹게 하는 것처럼, 다음 세대에게 맞는 복음 전파 방식이 필요합니다. 김성경 전도사님의 사역은, 바로 그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는 다음 세대가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고, 무엇 때문에 울고 있는지, 무엇 때문에 교회를 멀리하는지, 현장에서 직접 듣고, 함께 울고, 함께 기도하며 그들에게 맞는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 시대가 필요로 하는 진정한 사역자의 모습이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김성경 전도사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있습니까? 혹시 교회라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만 머무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제 교회 문을 열고 세상 속으로 나아가, 고통받는 이웃들의 손을 잡아주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어떨까요? 김성경 전도사님의 용기 있는 발걸음이,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도전과 희망을 선사하길 기대합니다.
오늘 귀한 간증 나눠주신 김성경 전도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원디사이플 워십 사역을 통해 더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고, 다음 세대를 위한 희망을 만들어가는 귀한 사역자가 되시기를 응원합니다.
(유튜브 썸네일 삽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