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콘텐츠로 건너뛰기

김아람 교수 간증: 인생 역전과 하나님의 은혜로운 축복 이야기

요약

광야는 축복, 김아람 교수의 은혜로운 인생 역전

## 계획대로 되지 않았던 하나님의 은혜

안녕하세요, ‘새롭게 하소서’ 시청자 여러분. 오늘, 놀라운 인생 역전을 이루신 김아람 교수님을 모시고, 그 특별한 이야기를 함께 나눠보려 합니다. 건국대학교 의과대학 비뇨의학과 김아람 교수님은, 2021년 시사저널 ‘차세대 리더 100인’에 선정되셨을 뿐만 아니라, 의사 과학자로서 혁신적인 발명품까지 개발하신 다재다능한 분이십니다. 특히, 난치성 방광 질환 환자들을 위한 연구와 치료에 매진하시며, ‘방광 모니터링 패치’와 같은 획기적인 의료 기기를 개발하고 계신데요, 이는 환자들의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놀라운 발명품입니다.

하지만, 김아람 교수님의 인생 여정은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계획대로 되지 않았던 수많은 순간들이 있었고, 오히려 그 예상치 못한 실패와 좌절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게 되었다고 고백하십니다. 인생의 쓴맛을 처음으로 경험했던 재수 시절, 연이어 찾아온 두 번의 대학 입시 실패는 깊은 절망감을 안겨주었습니다. 서울에서 홀로 재수를 하며 겪었던 외로움과 좌절감은, 김 교수님을 더욱 힘들게 했는데요, 하지만 바로 그 절망의 순간, 역설적으로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귀한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모태신앙이었지만, 이전에는 그저 종교적인 의례만 따랐던 김 교수님은, 재수 생활 중 처음으로 성경 말씀을 통해 깊은 위로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특히,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욥기 23:10) 라는 말씀은, 마치 김 교수님 개인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처럼 느껴졌다고 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김 교수님은 비로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고, 이후의 모든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뿌리를 내릴 수 있었습니다.

재수 실패 후, 김 교수님은 부모님의 권유로 기도회에 참석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김영애 권사님의 간증을 듣게 됩니다. 한동대학교 초대 총장 김영길 장로님의 사모님이신 김영애 권사님은, ‘광야는 축복입니다’라는 제목으로 간증을 하셨는데요, 당시 ‘광야’와 같았던 재수 생활을 보내고 있던 김 교수님에게, 이 간증은 깊은 울림과 도전을 주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바로 이곳, 한동대학교가 네가 가야 할 곳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부모님은 서울에 있는 대학을 권유했지만, 김 교수님은 강렬하게 이끌리는 마음을 따라 한동대학교에 진학하게 됩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는 ‘하향 지원’이었지만, 김 교수님은 오히려 “하나님께서 인도하신다면, 한번 따라가 보겠다” 라는, 어찌 보면 오기 같기도 한 마음으로 한동대학교를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 선택이 인생의 전환점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합니다.

## 하나님의 정확한 타이밍

한동대학교에 입학했지만, 김 교수님의 대학 생활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다는 좌절감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 속에서, 방황하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는데요, 학점은 1점대로 떨어지고, 목표 없이 흘러가는 하루하루가 계속되었습니다. 자포자기 상태로 시간을 보내던 중, 김 교수님은 군 입대를 결심하게 됩니다. 공군 관제 특기를 지원했지만, 헌병으로 차출되었고, 엄격한 군대 문화와 3교대 근무는 김 교수님을 더욱 힘들게 했습니다.

헌병대 생활은, 마치 또 다른 ‘광야’와 같았습니다. 자유로운 종교 활동조차 어려운 환경 속에서, 김 교수님은 절망감을 느꼈고, 화장실에 숨어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힘든 군 생활은, 역설적으로 김 교수님을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게 하는 계기가 되었는데요, 몰래 숨어 읽었던 성경과 신앙 서적들은, 캄캄한 터널 속에서 한 줄기 빛과 같았습니다. 특히, “청년아, 울더라도 씨를 뿌려야 한다” 라는 말씀을 통해,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미래를 준비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군 복무 중, 김 교수님은 내무반에서 몰래 예배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혼자였지만, 점차 동료들이 함께 예배에 참석하기 시작했고, 헌병대 내 작은 예배 공동체가 형성되었습니다. 김 교수님은 직접 말씀을 전하며, 오히려 자신이 더 큰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제대 즈음에는, 헌병대 전체가 교회에서 특송을 할 정도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제대 후, 김 교수님은 25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오랜 방황 끝에, 비로소 ‘생명과학’이라는, 가슴 뛰는 새로운 목표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늦깎이 대학생으로 생물학을 전공하며, 김 교수님은 공부의 재미를 처음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특히, 인체의 신비와 생명의 복잡성에 매료되었고, 의학 분야에 대한 꿈을 다시 꾸게 되었습니다. 더 큰 무대에서 경험을 쌓고 싶었던 김 교수님은, 지도 교수님의 도움으로 하버드 대학교 연구실에 합류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꿈꿔왔던 미국 유학, 그것도 세계 최고 명문 대학인 하버드에서의 연구 생활은, 김 교수님에게 또 다른 ‘광야’이자, 도약의 발판이 되었습니다.

하버드에서의 연구는 쉽지 않았지만, 김 교수님은 좌절하지 않고 묵묵히 연구에 매진했습니다. 주변 동료들은 대부분 뛰어난 재능을 가진 엘리트 학생들이었지만, 김 교수님은 특유의 성실함과 끈기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갔습니다. 매주 열리는 저명한 석학들의 세미나에 참석하며, 학문적 깊이를 더해갔고, 틈틈이 영어 공부에도 매진하며,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웠습니다. 하버드에서의 시간은, 김 교수님을 의사 과학자로서 성장시키는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하버드 연구실에서, 김 교수님은 인생의 멘토를 만나게 됩니다. 임상 연구를 담당하는 의사였던 그는, 환자를 치료하면서 동시에 연구 활동을 병행하는 ‘의사 과학자’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의 삶을 보면서, 20살 때 품었던 의사의 꿈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마침 한국에서 의학전문대학원 제도가 신설된다는 소식을 듣고, 김 교수님은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의사의 꿈에 도전하기로 결심합니다. 26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 쉽지 않은 도전이었지만, 김 교수님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의학전문대학원 입학을 준비했습니다.

의학전문대학원 입학 후, 김 교수님은 끊임없는 노력과 열정으로 학업에 매진했습니다. 하버드에서의 연구 경험은, 의학 공부에도 큰 도움이 되었는데요, 특히, 세계적인 석학들과의 교류를 통해 얻은 학문적 통찰력은, 깊이 있는 의학 연구를 수행하는 데 중요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힘든 의학 공부와 임상 실습 과정 속에서도, 김 교수님은 특유의 긍정적인 성격과 끈기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갔습니다. 의학전문대학원 졸업 후, 김 교수님은 아산병원에서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거치며 전문의로서의 수련을 받았습니다. 고된 수련 과정이었지만, 환자를 치료하며 보람을 느꼈고, 의사로서의 소명을 더욱 확고히 하게 되었습니다.

## 하나님이 주신 만남

아산병원에서의 수련을 마치고 건국대학교 병원에 부임한 김 교수님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됩니다. 교수로서 어떤 연구 분야에 집중해야 할지, 어떤 환자들을 위해 봉사해야 할지 고민하던 중, 우연히 참석한 세미나에서 척수손상 환자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사고로 척수손상을 입고 휠체어 생활을 하게 된 여성 환자는, “일어나 걷는 것보다, 소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간절한 소원”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척수손상 환자들은, 소변을 보고 싶어도 느끼지 못하고, 스스로 배뇨하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이로 인해, 일상생활에 큰 불편함을 겪고, 심각한 합병증으로 고통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환자의 절박한 외침은, 김 교수님의 마음을 깊이 울렸습니다. 하버드에서 의사 과학자의 꿈을 꾸게 했던 순간처럼, 가슴 뛰는 소명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는데요, 척수손상 환자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그들을 위한 치료법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사명임을 깨달았습니다. 이 만남을 계기로, 김 교수님은 ‘신경인성 방광’ 분야에 집중하기로 결심하고, 난치성 방광 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위한 연구와 치료에 헌신하게 됩니다.

김 교수님은, 척수손상 환자들을 위한 ‘신경인성 방광 클리닉’을 개설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병원 내에서는 신경인성 방광 질환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고, 클리닉 개설은 쉽지 않았습니다. 끈질긴 설득 끝에, 병원의 허가를 받아 국내 최초로 신경인성 방광 클리닉을 개설하게 되었지만, 초기에는 환자들이 거의 찾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홍보 부족과 환자들의 낮은 인지도로 인해, 클리닉은 유명무실한 상태였는데요, 하지만 김 교수님은 포기하지 않고, 환자들을 위한 최선의 진료를 제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클리닉 운영 초기, 예상치 못한 고난이 찾아왔습니다. 환자 한 분이 치료 결과에 불만을 품고 김 교수님을 고소한 것입니다. 소변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되었다는 이유였는데요, 난치성 질환의 특성상, 치료 과정이 쉽지 않고, 환자들의 기대와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환자의 고소는 김 교수님에게 큰 상처가 되었고, 의사로서의 회의감마저 느끼게 했습니다. 힘든 시간 속에서, 김 교수님은 오히려 연구에 몰두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방광 모니터링 패치’ 개발의 시작이었습니다.

고소 사건은, 역설적으로 김 교수님에게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다주었습니다. 환자들의 어려움을 더욱 깊이 공감하게 되었고, 환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치료법 개발에 더욱 매진하게 되었습니다. 밤낮으로 연구에 몰두한 결과, 방광 내 소변량을 실시간으로 측정하고, 스마트폰으로 알림을 주는 ‘방광 모니터링 패치’ 개발에 성공하게 됩니다. 이 혁신적인 발명품은, 척수손상 환자들의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획기적인 의료 기기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수많은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도, 김 교수님은 좌절하지 않고 꿋꿋이 자신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학점 1점대의 위기, 군대 헌병대에서의 고된 생활, 의학전문대학원 도전, 척수손상 환자와의 만남, 클리닉 개설의 어려움, 환자의 고소... 돌이켜보면, প্রতিটি 위기의 순간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했고, 그 은혜 덕분에 আজকের এই অবস্থানে আসতে পারলেন। 김 교수님은, “내비게이션 최장 시간”과 같은 인생 여정이었지만, 그 모든 과정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하며 성장할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김아람 교수님은, 현재도 난치성 방광 질환 환자들을 위한 치료와 연구에 매진하고 계십니다. ‘방광 모니터링 패치’ 개발을 넘어, 줄기세포 치료 등 더욱 혁신적인 치료법 개발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계시는데요, 최종 목표는, 환자들에게 단순히 질병 치료를 넘어, 삶의 희망과 행복을 되찾아주는 ‘치료자’가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한동대학교 후배들과 함께 북한 의과대학 설립, 의료 선교 활동 등, 더 큰 비전을 품고 나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김아람 교수님의 간증은, 우리에게plan대로 되지 않는 인생 속에서도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은혜가 함께함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지금까지 건국대학교 의과대학 김아람 교수님의 이야기였습니다. 감사합니다.

1. 한 고대 문서 이야기

2. 너무나도 중요한 소식 (불편한 진실)

3. 당신이 복음을 믿지 못하는 이유

4. 신(하나님)은 과연 존재하는가?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있는가?

5. 신의 증거(연역적 추론)

6. 신의 증거(귀납적 증거)

7. 신의 증거(현실적인 증거)

8. 비상식적이고 초자연적인 기적, 과연 가능한가

9. 성경의 사실성

10. 압도적으로 높은 성경의 고고학적 신뢰성

11.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고고학적 증거

12. 성경의 고고학적 증거들

13. 성경의 예언 성취

14. 성경에 기록된 현재와 미래의 예언

15. 성경에 기록된 인류의 종말

16. 우주의 기원이 증명하는 창조의 증거

17. 창조론 vs 진화론, 무엇이 진실인가?

18. 체험적인 증거들

19.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모순

20. 결정하셨습니까?

21. 구원의 길

ChatGPT, 유튜브 프리미엄, 넷플릭스 구독료 80% 할인 받는 법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