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 정상권 장로 간증: 한센병 극복과 신앙, 희망의 삶
고난 속에서 피어난 희망: 소록도 정상권 장로의 삶과 신앙
나의 영적인 고향, 소록도: 정상권 장로의 삶과 신앙 간증 상세 정리
이번 글에서는 유튜브 채널 "새롭게하소서"에 출연하신 정상권 장로님의 간증 영상을 텍스트로 상세히 정리하고, 그분의 파란만장한 삶과 소록도에서의 특별한 경험, 그리고 깊은 신앙적 깨달음을 자세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특히, 장로님의 이야기는 한센병이라는 질병과 사회적 편견 속에서 겪으셨던 고통, 절망,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마침내 찾으신 희망과 사랑, 헌신에 대한 감동적인 기록인데요, 함께 장로님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보시죠.
고통과 절망의 시작: 한센병 진단과 사회적 편견
정상권 장로님은 중학교 2학년 때, 지금은 나병이라고도 불리는 한센병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당시 사회적으로 한센병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극심한 편견이 팽배했던 시절이었는데요, 장로님은 질병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사회적 낙인과 차별로 인해 깊은 절망감에 휩싸이셨다고 합니다. 심지어 여러 차례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할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내셨고, 결국 노숙 생활까지 경험하시다 소록도에 들어가게 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장로님은 고백하시기를, 돌이켜보면 한센병이라는 고난이 오히려 예수님을 만나는 계기가 되었고, 당신의 삶에 깊은 의미를 부여하는 흔적이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장로님께서는 과거에는 자신의 한센병 이력을 숨기고 싶어 하셨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으셨습니다. 좋은 기회가 와도, 카메라 앞에 나서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하는 것을 꺼리셨다고 하는데요, 이는 사회적 편견과 차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선교 사업을 하시면서 많은 간증 집회를 다니시게 되었고, 점점 더 이상 자신의 과거를 숨기는 것이 양심에 가책을 느끼게 되었다고 합니다. 간증을 통해 한센병 이력을 드러내야 하는데, 마치 자신이 아닌 척, 숨기는 듯한 모습에 괴로움을 느끼셨던 것이죠. 결국 2009년, 장로님은 세상에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기로 결심하셨고, 책을 출간하며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셨습니다. 이러한 용기 있는 결단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과 울림을 주었습니다.
한센병, 젊은 세대에게는 다소 낯선 질병일 수 있습니다. 장로님께서는 한센병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설명해주셨는데요, 성경에서는 '문둥병'으로 표현되기도 했으며, 과거에는 전염병으로 오해받아 격리 대상 질병으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대 의학의 발전으로 한센병은 완치가 가능한 질병이며, 전염성 또한 매우 낮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장로님 역시 한센병으로 인해 오른쪽 신경이 손상되어 손에 약간의 장애를 가지고 계시지만, 건강하게 생활하고 계십니다. 질병으로 인한 외형적인 변화 때문에 과거에는 사회적 편견이 심했지만, 지금은 많은 인식이 개선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소록도와의 운명적인 만남: 절망 끝에서 찾은 희망
장로님께서 소록도에 발을 들이게 된 과정은 드라마틱합니다. 청주 시골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셨던 장로님은 6.25 전쟁 직후 혼란스러운 시대에 한센병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당시에는 한센병에 대한 정보도 부족했고,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도 어려웠다고 합니다. 장로님은 여러 한의원을 전전하며 치료를 받으셨지만, 병세는 점점 악화되었고, 사회적 편견과 냉대 속에서 고립감을 느끼셨습니다. 가족들에게 짐이 될까봐, 누나의 결혼에 피해를 줄까봐 16살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나 서울로 향하셨다고 합니다.
서울에서의 생활은 더욱 고통스러웠습니다. 갈 곳 없는 장로님은 서울역과 한강 모래사장을 전전하며 노숙 생활을 하셨습니다.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겨우 끼니를 이어갔지만, 건강은 점점 악화되었고, 외로움과 절망감은 깊어져만 갔습니다. 심지어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기도 하셨다고 하는데요, 어머니께서 몰래 준비해주신 독약을 모르고 마셨지만, 다행히 목숨을 건지셨다고 합니다. 이후에도 서울역에서 노숙 생활을 이어가던 중, 서울시 방역 당국에 의해 강제로 소록도로 이송되셨다고 합니다. 당시 사회 분위기 속에서 한센병 환자들은 격리 수용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던 시대였습니다.
소록도에 처음 도착했을 때, 장로님은 17살의 어린 나이였습니다. 절망과 고통 속에서 삶의 끈을 놓을 뻔했던 장로님에게 소록도는 새로운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섬에 도착하자 빨간 벽돌 양옥 건물들과 푸른 숲, 아름다운 바다가 눈에 들어왔고, 비로소 '이제 살 수 있는 곳이 생겼다'는 희망을 품게 되셨다고 합니다. 소록도는 한센병 환자들을 위한 격리 시설이었지만, 동시에 치료와 공동체 생활을 위한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장로님은 소록도에서 비로소 안정을 찾고, 치료를 받으며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소록도에서의 삶과 신앙: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만나다
소록도에서의 생활은 장로님에게 육체적, 정신적 치유를 가져다주었습니다. 특히, 소록도에는 장로교와 천주교 교회가 일찍부터 세워져 있었고, 신앙생활은 소록도 주민들의 삶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장로님은 소록도 중앙교회를 다니면서 처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교회 공동체는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힘든 시간을 함께 이겨나가는 따뜻한 보금자리였습니다.
장로님은 소록도 교회 성도들의 헌신적인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당시 소록도에는 4,300여 명의 한센병 환자들이 살고 있었고, 중앙교회 성도만 1,300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5.16 혁명 이후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예배당 건물이 환수될 위기에 처했을 때, 소록도 성도들은 자발적으로 헌금을 모아 7개의 교회를 자력으로 세웠다고 합니다. 가난하고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성도들의 모습은 장로님에게 큰 감동과 도전이 되었습니다.
소록도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장로님은 삶의 의미와 목적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유년 주일학교 부장 목사님의 질문을 통해 깊은 깨달음을 얻으셨다고 합니다. 목사님은 누가복음 8장에 나오는 거라사 광인의 이야기를 예로 들면서, 예수님께서 귀신 들린 사람을 치유하기 위해 2천 마리 돼지 떼를 희생시킨 이유에 대해 질문하셨습니다. 장로님은 "2천 마리 돼지의 재산보다 귀신 들린 한 사람의 생명을 더 귀하게 여기셨기 때문"이라고 대답했고, 목사님께 칭찬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이 경험을 통해 장로님은 "비록 한센병에 걸렸지만, 귀신 들린 돼지보다 더 존귀한 존재이며,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귀한 일을 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소록도에서의 신앙생활은 장로님의 삶을 180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절망과 고통 속에 방황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는 희망과 감사를 품게 되었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삶의 태도를 갖게 되었습니다. 소록도 교회 공동체의 따뜻한 사랑과 헌신, 그리고 성경 말씀을 통해 얻은 지혜와 용기는 장로님이 앞으로 닥쳐올 어려움들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되었습니다. 장로님은 소록도를 '영적인 고향'이라고 부르시며, 소록도에서의 경험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고백하십니다.
소록도를 떠나 세상으로: 헌신과 섬김의 삶
소록도에서 5년간의 치료를 마치고 사회로 나선 장로님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셨습니다. 소록도에서 경제 활동 기반이 없었던 장로님은 양계업을 시작하여 경제적 자립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셨습니다. 병아리 100마리로 시작한 작은 양계장은 점차 확장되었고, 마침내 소록도 주민들의 경제적 자립에 기여하는 성공적인 사업으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사업 초기에는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병아리 사료 값도 부족했고, 인근 마을과의 교류도 쉽지 않았습니다. 장로님은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방황하기도 하셨지만, 신앙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어려움을 이겨내셨습니다.
장로님은 33세에 맹장염으로 인한 복막염으로 생사의 고비를 넘기기도 하셨습니다. 수술 후 회복이 더뎌 재수술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위기 상황에서, 장로님은 다시 한번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렸습니다. 침상에서 다시 예수님을 깊이 만나게 되었고, 이후 삶을 하나님께 헌신하기로 결심하셨다고 합니다. 1981년 4월 28일, 42세의 나이에 장로 장립을 받으시고 본격적인 헌신과 섬김의 삶을 시작하셨습니다.
장로님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 선교에도 힘쓰셨습니다. 특히, 전 세계 1,600만 명의 한센병 환자들을 돕기 위해 28년 동안 28개국을 다니며 선교 활동을 펼치셨습니다. 후원 교회와 성도들의 도움으로 200개의 교회를 건축하는 놀라운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장로님은 "과거에는 어렵고 힘든 삶을 살았지만, 지금은 하나님의 은혜로 넘치는 삶을 살고 있다"고 고백하시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강조하셨습니다.
장로님은 마지막으로 한센병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져줄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목회자들에게는 더 이상 한센병 환자를 '환자'나 '문둥병자'로 부르지 않고, '한센인'이라는 존칭을 사용해 줄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또한, 사회적으로 아직 남아있는 한센병 환자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해소하고, 그들의 인권과 복지를 위해 함께 노력해 줄 것을 호소하셨습니다. 장로님의 간증은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함께 사회적 책임감을 일깨워주는 소중한 메시지를 전달해줍니다.
정상권 장로님의 삶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굳건한 믿음으로 삶을 개척해나간 한 인간의 위대한 승리를 보여줍니다. 장로님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사랑과 헌신으로 세상을 변화시켜나갈 수 있다는 용기와 희망을 선사합니다. 이 글을 통해 많은 분들이 정상권 장로님의 삶과 신앙을 통해 깊은 감동과 도전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