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일 장로 인터뷰: 연극 인생, 신앙, 암 극복과 감사 이야기
강신일 장로의 삶과 신앙 고백: 연극, 암 투병, 그리고 감사
배우 강신일 장로, 연극과 신앙, 그리고 삶의 깊이를 이야기하다
오늘 우리는 깊은 울림과 감동을 선사하는 배우 강신일 장로님을 모시고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강 장로님은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연극 무대와 스크린,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묵직한 존재감과 뛰어난 연기력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명품 배우인데요, 스크린 밖에서는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가진 장로로서, 또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 진솔하고 따뜻한 삶의 행보를 보여주고 계십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강 장로님의 연기 인생과 신앙, 그리고 인간 강신일로서 살아온 삶의 궤적을 따라가며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목소리, 연기, 그리고 첫 만남
강신일 장로님의 목소리는 듣는 이로 하여금 깊은 몰입감을 선사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첫인사를 나누자마자 진행자는 강 장로님의 목소리에 감탄하며, 목소리만 듣고도 누구인지 맞출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을 내비쳤는데요, 강 장로님 특유의 중후하면서도 따뜻한 목소리는 듣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이끄는 힘이 있습니다. 진행자는 강 장로님의 대표작들을 언급하며 성대모사를 요청했고, 강 장로님은 흔쾌히 응하며 즉석에서 명대사들을 재연했습니다. 특히 영화 "강철중"의 "공무원 전화 안 받아?" 대사는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현장 분위기를 뜨겁게 달궜습니다.
강 장로님은 최근에도 영화 "검은 뱀"에서 형사 역할을 맡았다고 밝히며, 형사 전문 배우로서의 면모를 다시 한번 각인시켰습니다. 재치 있는 입담과 유머 감각 또한 돋보였는데요, 10년째 진급 못한 형사 역할이라는 설정에 대해 "계급 정년 이상 가능성이 없다"며 유머러스하게 자평하여 좌중을 폭소케 했습니다. 이처럼 강 장로님은 진지함과 유쾌함을 넘나드는 다채로운 매력으로 인터뷰를 풍성하게 만들었습니다.
딸 결혼식 축가, 아버지의 사랑과 축복
강신일 장로님은 슬하에 딸을 두고 계시며, 특히 큰딸 결혼식에서 축가를 불러 화제가 된 적이 있다고 합니다. 흔치 않은 친정아버지의 축가에 대한 질문에 강 장로님은 딸에 대한 깊은 사랑과 애정을 드러냈는데요, 딸이 결혼을 앞두고 축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며,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쑥스러워하는 딸이 아빠의 축가로 결혼의 첫 출발을 축하받고 싶어 했다는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딸의 진심 어린 부탁에 아버지로서 거절할 수 없었다는 강 장로님은, "아빠가 좀 지나간 옛날 사람이지만 네가 원한다면 재미없는 노래라도 하마" 라며 딸을 향한 따뜻한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결혼식 당일, 강 장로님은 진심을 담아 축가를 불렀고, 딸은 웃으며, 사위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축가를 부르는 아버지의 모습은 딸에게 큰 감동과 기쁨을 선사했으며, 사위에게는 잊지 못할 감동적인 순간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강 장로님은 딸들에게 어려서부터 "인간은 누구나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었다고 합니다. 결혼은 부모를 떠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것이기에 슬픔이나 아픔보다는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습니다. 딸의 결혼식에서 웃었던 모습은 이러한 아버지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자신의 인생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성숙한 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위의 눈물은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는 기쁨과 감격, 그리고 장인어른의 따뜻한 축복에 대한 감사함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일 것입니다.
축가 후반부, 강 장로님은 노래를 멈추고 딸과 사위에게 손을 잡으라고 지시하려 했지만, 이미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 모습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향한 깊은 사랑과 신뢰를 보여주는 장면이었으며,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서로를 마주봤다" 라는 표현은 당시의 감동적인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마지막 엔딩 부분을 부르며 강 장로님은 이적의 '당연한 것들' 가사처럼 앞으로 두 사람이 함께 헤쳐나가야 할 인생 여정을 축복하며 노래를 마무리했습니다. 축가는 하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으며, 특히 사위는 아버지의 진심 어린 축복에 감동하여 눈물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주례 거절, 짧고 명쾌한 아버지의 축복
강 장로님은 자신의 결혼식 당시 아버지께서 주례를 봐주시려 했지만, 단칼에 거절했던 일화를 소개하며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아버지는 결혼을 축복하기 위해 주례를 하고 싶어 하셨지만, 강 장로님은 긴 설교 대신 짧고 명쾌한 축복을 원했던 것입니다. "단칼에 '안 된다, 너무 길다, 짧게 해달라'고 했다" 라는 강 장로님의 솔직한 발언은 솔직하고 유쾌한 성격을 드러냅니다. 결국 아버지는 축가로 대신 축복을 해주셨고, 강 장로님은 아버지의 선곡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불러주신 노래는 '눈물 젖은 두만강' 이었는데, 20세기 초, 일제강점기와 동족상잔의 비극 속에서 고통받았던 한국 여인들의 삶을 그린 가사에 깊이 공감했기 때문입니다. 노래를 부를 때마다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졌다는 강 장로님은, "사회의 가장 매창 공부도 하고 공연 때도 해봤다" 며 이 노래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방송국 섭외가 왔을 때도 이 노래를 불러도 괜찮겠냐고 문의했을 정도로 '눈물 젖은 두만강'은 강 장로님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노래입니다. "괜찮다, 그럼 한번 해보자" 라는 답변을 듣고 방송에서 이 노래를 불렀다는 일화는 그의 소탈하고 진솔한 면모를 엿볼 수 있게 합니다. 강 장로님은 즉석에서 '눈물 젖은 두만강'의 한 소절을 구성지게 불렀고, "오늘 듣는 걸로 되어 있습니다" 라는 재치 있는 멘트로 마무리하며 다시 한번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습니다.
행복의 의미, 소박함 속에서 찾다
강신일 장로님은 '행복'의 의미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나누었습니다. '눈물 젖은 두만강' 가사처럼 험난했던 시절을 살아온 사람들의 애환을 담담하게 읊조리며, "행복은 뜻이고, 10억 억씩 줘도 슬픔 속에 갇히더라" 라는 가사를 인용해 진정한 행복은 물질적인 풍요로움에 있지 않음을 강조했습니다. 소박한 삶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메시지는 듣는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강 장로님은 과거 '새롭게 하소서' 방송 출연 당시 '집에 가는 길'을 불렀던 아쉬움을 토로하며 즉석에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집에 가는 길'은 소박하고 따뜻한 가사가 돋보이는 곡으로, 강 장로님의 따뜻한 음색과 어우러져 깊은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이 곡이 몰입하게 한다, 정의에 몰입하게 한다" 라는 표현은 노래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냅니다. 진행자는 강 장로님의 노래 실력에 감탄하며, 연기뿐만 아니라 노래에도 뛰어난 재능을 가졌음을 칭찬했습니다. 강 장로님은 겸손하게 "작곡가 선생님 생각을 같이 하니까" 라며 공을 작곡가에게 돌리는 겸손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전자공학 전공, 배우의 길을 걷게 된 사연
강신일 장로님은 전자공학을 전공했지만, 연극 배우의 길을 걷게 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행자는 이러한 이력에 대해 질문했고, 강 장로님은 예상 밖의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굉장히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사람" 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어려워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전자공학을 전공하게 된 것은 본인의 의지가 아닌 시대적 상황 때문이었다고 밝혔습니다. 1970년대 말, 경제 성장이 최우선 과제였던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전자공학은 유망한 분야였고, "대기업에 들어가 가정을 일으켜야 한다" 는 주변의 기대에 따라 전자공학과를 선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강 장로님은 대학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했다고 합니다. 경쟁 사회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며, "성공 지상주의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는 아니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최고의 위치에 오르거나 돈을 많이 버는 것만이 성공이 아니며, 더불어 사는 사회, 서로 존중하고 화합하는 사회가 더 아름다운 사회라고 믿었습니다. 청년 시절, 이러한 고민 속에서 강 장로님은 교회를 찾게 되었고, 연극을 접하면서 배우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대학 졸업 후 군대를 다녀와 20대 중후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먹고사는 문제에 직면했고, "할 줄 아는 건 연극이니까 연극을 하자" 라는 생각으로 본격적인 배우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청년 시절, 교회와 연극에 빠지다
강신일 장로님은 청년 시절 교회에 심취했던 이유에 대해 털어놓았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뜨거웠던 시기" 였다고 회상하며, 청년의 열정과 사회에 대한 울분,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깊은 신앙심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던 시기라고 설명했습니다. 예수님의 33년 짧은 생애에 깊은 감명을 받아, "나도 33살까지만 살아야지" 라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기도 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어설프게나마 따라 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으며, 경쟁 사회와는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살고자 했습니다.
경쟁 사회 속에서 성공을 쫓는 대신, 예수님의 삶을 통해 진정한 가치를 찾고자 했던 강 장로님의 청년 시절은 그의 인생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예수님이 가장 천한 말구유에 태어나셨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유세 부리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하며, 청년 시절 예수님 또한 인간으로서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30세에 공생애를 시작하기까지 예수님은 인생과 신앙에 대한 깊은 고민과 깨달음을 얻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며,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의 삶을 배우고 따라야 한다" 고 강조했습니다.
대학 시절, 강 장로님은 학업보다는 교회 활동에 더욱 열심이었다고 합니다. "대학 4년을 덜 바빴다" 고 회상하며, 교회에서 조명 담당 봉사를 했던 경험을 이야기했습니다. 80년대 초, 열악한 환경 속에서 직접 조명 장비를 만들고 설치하며 연극 봉사를 다녔다고 합니다. 교도소, 나환자촌, 오지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연극 공연을 펼쳤으며, "소외된 지역을 주로 찾아다니면서 공연을 했다" 고 밝혔습니다. 연극 작품들은 대부분 주님을 알리는 내용이었으며, "연극으로 접할 수 없는 분들을 찾아가 무대를 들고 다니면서 공연을 했다" 는 설명은 그의 헌신적인 봉사 정신을 보여줍니다.
대학로 연극, 그리고 영화 "강철중"
강신일 장로님은 대학로에서 김윤석, 송강호 등 유명 배우들과 함께 연극 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이후 김윤석, 송강호 배우는 영화와 드라마로 활동 영역을 넓혔지만, 강 장로님은 연극 무대를 지켰습니다. 당시 심경에 대한 질문에 강 장로님은 문성근, 이기영 등 먼저 영화계로 진출한 동료 배우들의 이름을 언급하며, "그분들과 정말 행복했다, 인생의 가장 행복한 시절" 이라고 회상했습니다. 작품에 대한 열정과 동료 배우들과의 끈끈한 유대감 속에서 행복한 연극 생활을 했다는 강 장로님은, "작품을 정말 잘 만들어서 관객에게 선보이기까지 숱하게 연습하면서 같이 고민하고 열정을 쏟았던 과정들이 너무나 행복했다" 고 덧붙였습니다.
80년대 후반, 문성근, 이기영 배우가 영화계로 진출한 후, 손강호, 김윤석 배우 등이 합류하며 새로운 팀워크를 구축했습니다. 강 장로님은 당시 대학로에 '학전'이라는 소극장을 만들기 위해 스태프 일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손강호, 김윤석 배우가 연극계에 발을 들인 시기와 강 장로님이 학전으로 옮긴 시기가 겹치면서 함께 공연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이후 설경구 배우가 등장했고, 설경구 배우는 강 장로님이 출연한 연극 '칠수와 만수'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86년 '칠수와 만수'는 대한민국 최고의 히트 공연이었으며, 연극계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설경구 배우는 학전에서 스태프 일을 하고 있는 강 장로님을 보고 "형님이 왜 여기서 이러고 있습니까, 무대에 계셔야지" 라는 말을 건넸다고 합니다. 당시 강 장로님은 연극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아내 또한 다른 일을 하며 생계를 보탰지만, 최소한의 문화생활을 유지하기에도 빠듯했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 영화계에서 러브콜이 왔습니다. 그 영화가 바로 강우석 감독의 "꿈속의 귀신" 이었고, 이후 "강철중" 에 캐스팅되면서 영화 배우로서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꿈속의 귀신" 은 흥행에 실패했지만, "강철중" 은 강 장로님에게 배우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어준 작품입니다.
강우석 감독은 "강철중"의 '반장' 역할에 적합한 배우를 찾지 못해 고심하던 중, 강 장로님의 연극 '반장' 역할을 담은 영상을 보고 그를 캐스팅했다고 합니다. 강 장로님은 주인공만 했던 연극 무대와 달리, 영화에서는 조연 역할을 맡게 되었지만, "제목 9살 때부터 꿈꿔왔던 영화배우가 된 것" 에 만족하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강철중" 은 흥행에 성공했고, 강 장로님은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었습니다. 특히 무대 인사 당시, 형사들이 강 장로님을 실제 형사로 착각할 정도로 실감나는 연기를 선보였다고 합니다. "진짜 형사 아니냐, 어디 소속이냐" 라는 질문을 받을 정도로 리얼한 연기는 관객들에게 깊은 몰입감을 선사했습니다.
영화 "강철중" 흥행, 그리고 달라진 일상
영화 "강철중"의 흥행 이후, 강신일 장로님의 일상에도 큰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과거 대학로에서 지하철을 타고 다닐 때는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지만, 영화 흥행 이후에는 지하철 안에서 알아보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서울 외곽에서 대학로까지 지하철을 타고 이동할 때, 점점 사람들이 알아보는 빈도가 늘어나는 것을 체감하며 인기를 실감했다고 합니다. "구토 갈현부터는 사람들이 힐끗힐끗 쳐다보다가 용기를 내서 '아저씨, 강철중 형사님 맞죠?'라고 물어봤다" 라는 에피소드는 당시 인기를 실감하게 합니다. "연신내, 불광, 녹번" 등 지하철역 이름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했습니다. 50분이면 갈 거리를 1시간 넘게 걸려 대학로에 도착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고 합니다.
배우 강신일, 끊임없는 질문과 성찰
강신일 장로님은 연극 배우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왔다고 합니다. "배우는 작품마다 다른 캐릭터를 연기해야 하기에, 외부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진정한 나인가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했다" 고 털어놓았습니다. 사회적 규범과 역할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스스로를 억압하고 정죄하며 살아가지만, 그것이 진정한 자신의 모습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의식 속에 잠재된 다양한 모습들을 작품 속 캐릭터를 통해 표출시키는 것이 배우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라는 존재를 알아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창세기 천지창조 이야기를 언급하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했다는 구절에 큰 감명을 받았다" 고 고백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다는 깨달음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습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자신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나'를 찾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찾아가는 일이며, 하나님의 형상을 어떻게 찾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예수님의 행적을 통해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작품 활동을 하면서 상대 배우, 스태프 등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있음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예수님의 가르침처럼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려고 노력한다고 합니다.
암 투병, 그리고 삶의 감사
강신일 장로님은 과거 암 투병 사실을 고백하며 당시 심경을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암 진단 후 아내는 흔들림 없이 3~4년간 헌신적으로 간호했다고 합니다. 아내의 헌신적인 간호 덕분에 건강을 회복했지만, 3~4년 후 아내에게 병이 찾아왔다고 합니다. "못난 남편 살려보겠다고 겉으로는 웃고 씩씩하게 다 했지만, 속으로는 이미 많이 망가져 있었을 것" 이라며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현했습니다. 자녀들에게 암 투병 사실을 알렸을 때, 아이들은 울었지만 이후 오히려 더욱 씩씩하게 생활했다고 합니다.
가장으로서 암 선고를 받았을 때 죽음에 대한 공포와 함께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졌다고 합니다.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 당시 심정을 표현했습니다. 48세라는 젊은 나이에 암 진단을 받았을 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후회와 아쉬움이 밀려왔다고 합니다. 연극 배우로서 행복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결혼 후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제대로 해준 것이 없다는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갚아야 할 것이 많은데,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는 절박함에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나는 아직 아닙니다. 연극도 더 해야 할 게 남았다" 며 간절한 마음을 전했지만, 어느 순간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제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 같았다" 며 당시 경험을 설명했습니다. 암 진단 후 오히려 평안함을 느꼈다는 강 장로님의 고백은 역설적이지만, 그의 깊은 신앙심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투병 소식을 듣고 많은 후배, 선배들이 위로와 격려를 보내주었고, 이러한 기도와 응원 덕분에 힘든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감사함과 함께 걱정은 없었다" 며 긍정적인 마음으로 투병 생활을 이겨냈음을 밝혔습니다.
인생의 의미, 그리고 감사의 노래
강신일 장로님은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인생의 의미에 대한 깊이 있는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인생은 평생 암담한 나날을 울며 애통하고 병을 앓으며 분노하는 일로 괴로워하며 사는 것이 아니다. 내가 깨달은 것은 바로 이것이다. 멋지게 잘 사는 것은 하늘 아래서 수고한 보람으로 먹고 마시며 즐기는 일이다. 인생은 비록 짧아도 하나님께 허락받은 것이니 그렇게 살 일이다. 이것이 인생인 우리의 몫이다." 라는 구절은 험난한 세상 속에서도 긍정적인 마음으로 삶을 즐기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먹고 살 돈과 재산을 하나님께 몫으로 받은 사람은 누구나 그것을 하나님의 선물로 알아 수고한 보람으로 즐길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행복하게 살기만을 바라신다. 인생은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라." 라는 구절은 인생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그의 가치관을 드러냅니다.
마지막으로 강 장로님은 찬송가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를 진심을 담아 불렀습니다. 찬송가 가사처럼 하나님의 친절한 팔에 안겨 평화를 누리고, 지난 삶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는 듯했습니다. 힘든 시간을 겪었지만, 긍정적인 마음과 신앙심으로 이겨낸 강 장로님의 삶의 태도는 듣는 이들에게 깊은 감동과 울림을 선사했습니다. 찬송을 마치고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강 장로님은 특유의 따뜻하고 진솔한 미소로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수어 통역, 그리고 새로운 소통
이번 인터뷰에는 서희주 수어 통역사가 함께하여 청각 장애인을 위한 배려를 더했습니다. 강 장로님의 진솔한 이야기는 수어 통역을 통해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 중간중간 수어 통역 화면이 삽입되어 청각 장애인 시청자들의 이해를 도왔으며, 방송의 사회적 책임감을 높였습니다. 강신일 장로님의 따뜻한 마음과 진솔한 이야기는 언어와 문화를 넘어 모든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과 위로를 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