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서점 감동 실화 이명구 집사 빚으로 세운 생명의 공간
감동 실화: 빚으로 세운 생명 서점, 이명구 집사
봄이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왔습니다! 봄나들이, 어디로 떠나볼까 고민이신가요?🌸🏵🌸🏵🍃 이명구 집사님의 특별한 장소를 소개해 드릴게요!ㅣ새롭게하소서
안녕하세요, 새롭게하소서의 주영훈입니다. 옆에는 연 자매님, 그리고 이정수 님도 함께 자리해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서점' 하면 어떤 추억이 떠오르시나요? 오늘, 특별한 손님을 모셨습니다. 바로 서점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실 분인데요. 단순히 서점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숭고한 사명 때문에 소중한 가족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안타까운 후회도 함께 묻어나는, 깊고 진한 인생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사연, 정말 감동적이면서도 슬프고, 마음 한켠이 찡해지는 그런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자, 기독교 서점을 운영하시는 이명구 집사님을 이 자리에 모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집사님!
이명구 집사: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주영훈: 반갑습니다, 집사님. 왠지 첫인상이... 학교 교장 선생님 같기도 하고, 참 인자하신 선생님 같은 느낌이 드네요.
이정수: 맞아요, 정말 인자하신 인상이세요. 책을 많이 읽으셔서 그런가 봐요.
이명구 집사: (웃음) 그럴 수도 있겠네요.
주영훈: 집사님, 요즘 젊은 세대는 이해 못 할 수도 있지만, 저희 어릴 적만 해도 종로서적이라든지, 각 동네마다 랜드마크처럼 자리 잡은 서점들이 있었잖아요.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요. 집사님께서는 기독교 백화점을 운영하신다고 들었는데요, 기독교 백화점 하면 종로 5가, 고속터미널 건너편... 예전에 그쪽에 기독교 서적, 용품 가게들이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요즘은 교회에서도 성경책을 잘 안 읽고, PPT 화면이나 휴대폰으로 성경을 보는 경우가 많아졌잖아요. 이런 시대에 기독교 서점 운영은 괜찮으신가요?
이명구 집사: 기독교 서점뿐만 아니라, 모든 서점이 다 어렵습니다. 특히 기독교 서점은 정말 어려운 상황이죠. 제가 어릴 적에 결핍이 참 많았는데요, 저는 그 결핍을 책을 통해 해소했습니다. 거의 중독 수준으로 책을 읽었어요. 1999년도에 처음 기독교 서점을 열고, 3년쯤 지났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서점을 만들어 봐야겠다'고요. 그 후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 생각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운영이 힘들 때도 많지만, 생명을 살리는 사역이라고 생각하며 묵묵히 이 길을 걷고 있습니다. 어려움은 예나 지금이나 늘 똑같지만요.
주영훈: 집사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궁금해지는데요. 여섯 살 때 큰 교통사고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이명구 집사: 네, 제가 여섯 살 때 택시에 머리를 부딪히는 큰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응급 상황이었죠. 꽤 많이 다쳤는데, 수술해야 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이 수술을 거부했습니다. 응급 환자인데도 말이죠. 그때 아버지가 의사들에게 "수술 안 하면 여기 있는 의사들 다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하셨어요. 계속 실랑이를 벌이다가 의사들이 결국 제안했습니다. "수술하다 잘못돼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 달라"고요. 그렇게 각서를 쓰고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때 흉터가 지금도 여기, 이렇게 남아있는데요. 급하게 수술하느라 흙 같은 이물질을 제대로 긁어내지 못하고 바로 봉합했다고 해요. 그래서 어릴 때는 흉터가 굉장히 선명하고 파랗게 보였습니다. 버스를 타면 항상 왼손으로 흉터를 가리고, 누가 볼까 봐 고개를 숙이고 다녔어요. 완전히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아이였죠. 자신감도 없고, 위축되어 있었고요.
이정수: 어린 나이에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이명구 집사: 설상가상으로, 그때 아버지가 하시던 사업마저 망했습니다. 그냥 망한 게 아니라, 쫄딱 망한 데다가 사기까지 당하신 거예요. 그 충격으로 화병이 생기셨죠. 매일 술을 엄청나게 드시고, 술만 드시면 폭력적으로 변하셨습니다. 온 가족이 아버지 폭력에 시달렸어요. 저희 가족 중에 아버지한테 안 맞아본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중에서도 어머니가 가장 많이 맞으셨죠. 어린 시절 기억은 아버지의 고함 소리, 어머니의 흐느낌, 멍든 어머니 얼굴... 이런 것들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너무 많이 맞으시니까, 어느 날은 "얼굴은 왜 때려! 일도 못 나가게! 차라리 죽여!"라고 절규하시기도 했어요. 어린 시절의 끔찍한 기억 때문에, 저는 어릴 적 이야기를 잘 안 하려고 합니다.
주영훈: 어머니께서는 무슨 일을 하셨나요?
이명구 집사: 어머니는 공사 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셨습니다. 건물 3층, 5층 바닥을 광내는 작업을 하셨는데, 기계가 닿지 않는 곳은 직접 손으로 해야 했어요. 돌을 깨서 마모 가루와 함께 작대기에 붙여, 기계가 닿지 않는 곳을 손으로 일일이 닦아 광을 내는, 정말 힘든 일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고생을 하시면서 집안 생계를 책임지셨죠. 형제들도 다 일터로 나가고...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워서 형제들이 하나둘씩 집을 떠났어요. 제가 11살 때, 누나는 이미 집을 나가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집에 와서 빵을 사다 주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아마 월급날 빵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어느 날부터 누나는 집에 오지 않았습니다. 그대로 소식이 끊겼죠.
주영훈: 실종되신 건가요?
이명구 집사: 네, 실종 상태로 지금까지 연락이 닿지 않고 있습니다. 실종된 지 50년이 다 되어가네요. 처음에는 누나를 찾아야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워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어머니, 아버지 모두 누나와 형을 다시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셨어요.
주영훈: 정말 슬픈 이야기네요. 집사님은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셨지만, 밝게 웃으시는 모습이 참 인상적입니다. 과거 이야기를 웃으면서 말씀하시는 모습이... 마음이 더 아프네요.
이명구 집사: 그때는 정말 희망이 없었습니다. 살고 싶다는 생각조차 없었던 것 같아요. 너무 힘든 상황이라,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조차 못 했던 것 같습니다. 그냥... 되는 대로 흘러갔죠.
주영훈: 집사님은 집을 떠나지 않고 집에 계셨네요. 형, 누나처럼 집을 떠나고 싶다는 충동은 없으셨나요?
이명구 집사: 집을 나가고 싶은 마음뿐만 아니라, 죽고 싶은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당시에는 혼자 죽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약이 있었어요. 청산... 뭐 그런 거였는데... 그런 극단적인 생각도 했었죠. 얼굴 흉터 때문에 자존감도 낮고, 자신감도 늘 위축되어 있었고요. 청소년 시기에는 삶 자체가 고통스러웠습니다. 어느 날은 길을 걷다가 어떤 아주머니가 저를 붙잡고 "얼굴에 뭐가 묻었다"며 침을 묻혀 닦아주려고 하셨어요. 그때 정말 비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주영훈: 그런 아픔 속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만나게 되셨나요?
이명구 집사: 정말 감사하게도, 제가 초등학교 졸업 후 공장 생활을 하면서 친구가 거의 없었는데, 딱 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가 교회에 다니고 있었는데, 어느 날 교회 고등부 부흥회에 같이 가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친구 따라 부흥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3일 동안 진행되는 부흥회였는데, 이틀째 되던 날 제가 성령을 받았습니다.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나중에 다른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죄가 영화 필름처럼 스쳐 지나간다고 하던데, 저도 그랬습니다. 갑자기 과거에 잘못했던 일들이 영화처럼 쭉 펼쳐지는 거예요. 아버지 폭력, 어머니 고생... 남겨진 동생들을 제가 연필로 머리를 찍고, 수건으로 목을 졸랐던 끔찍한 기억들이 떠올랐습니다. 동네 사람이 그걸 보고 어머니께 "명구가 동생들 다 죽이겠다"고 말했던 일까지... 과거의 잘못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6개월 동안 매일 울면서 회개했습니다. 성령을 받고 마음이 정말 부드러워졌어요. 동생들 앞에 무릎 꿇고 "형, 오빠가 너무 못된 짓을 했다. 정말 미안하다"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때 동생들도 함께 울면서, 서로 부둥켜안고 용서하고 화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정수: 집사님, 가정 환경이 여전히 힘들었을 텐데요. 특히 어머니를 볼 때 마음이 많이 아프셨을 것 같아요.
이명구 집사: 어머니를 보면 늘 슬프고 힘들었습니다. 워낙 고생을 많이 하셨으니까요. 반평생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신 거잖아요. 아직도 어머니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초등학교 때, 어머니가 아침에 학교 가는 저를 부르시더니 "오늘은 집 근처에서 일하니까, 학교 끝나고 3시 반쯤에 일하는 곳으로 오라"고 하셨어요. 학교 갔다가 시간에 맞춰 공사 현장에 갔더니, 어머니께서 빵과 우유를 주셨습니다. 아마 새참이었던 것 같아요. 그걸 먹으면서, 세월이 흘러 제가 어머니 나이가 되어보니, 그때 어머니의 마음이 느껴지는 거예요. 본인은 아침 식사도 못 하셨을 텐데, 그 새참을 저에게 주셨다는 생각에... 며칠 전에 이 대목을 읽다가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어머니는 정말 고생만 하셨는데... 효도도 제대로 못 한 것 같아 늘 죄송한 마음입니다.
주영훈: 어머니는 언제 돌아가셨나요?
이명구 집사: 2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주영훈: 평생 고생만 하시다가... 아버님은 언제 돌아가셨나요?
이명구 집사: 아버지는 5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주영훈: 어머니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되셔서, 어머니 생각이 더 많이 나시겠네요.
이명구 집사: 어머니... 어머니라는 단어만 들어도, 어머니의 고생했던 삶이 떠올라서 마음이 슬픕니다.
주영훈: 저희 모두 어머니 하면 마음이 찡하죠. 집사님께서 기독교 서점을 운영하신다고 하셨는데, 서점 영상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어떤 모습의 서점인지 함께 보실까요? 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네요! 앞에 카페도 있고요. 정확히 어디에 위치하고 있나요?
이명구 집사: 김포 양촌읍, 숭모리에 있습니다. 김포에 있는 서점입니다.
주영훈: 이야, 정말 크네요. 기독교 백화점이라고 불러도 되겠어요. 카페도 있고, 차도 마실 수 있는 공간도 있네요. 무인 카페로 운영되고 있군요. 젊은이들이 모여서 성경 공부나 기도 모임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명구 집사: 네, 구역 예배도 드리고, 다양한 모임 장소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숭모리 지역 주민들을 위한 체험 강연 공간으로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주영훈: 서두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요즘 책 시장이 많이 어렵고, 특히 기독교 서적 판매량이 줄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서점 운영에 어려움은 없으신가요? 어떻게 운영하고 계신가요?
이명구 집사: 서점 운영은 26년 전이나 지금이나 늘 어렵습니다. 하지만 정말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45년 전에 배우지도 못하고 희망도 없던 저를 택하셔서, 소망을 주는 서점을 만들게 하셨습니다. 서두에 말씀드렸듯이, 저는 '생명을 살리는 서점'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얼마 전에도 전도사님 한 분이 목사님과의 관계 때문에 힘들어하며 저에게 찾아왔어요. 마침 그때 제가 세형 이야기 책을 감명 깊게 읽고 난 후라, 그 책을 추천해 드렸습니다. 2주 후에 전도사님이 밝은 얼굴로 빵을 사 오셔서 "집사님, 책 읽고 고민이 해결됐어요!"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운영은 어렵지만, 이런 경험을 통해 서점을 운영하는 원동력을 얻습니다. 요즘은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많이 구매하잖아요. 직접 서점에 오는 발길이 줄고 있는 상황에서, 좋은 역할을 하시지만, 서점 운영을 위해서는 수익이 있어야 할 텐데요.
주영훈: 맞습니다. 수익 구조가 궁금합니다.
이명구 집사: 서점 규모가 크다 보니, 많은 분들이 "돈 많은 장로님이 헌금해서 운영하는 서점 아니냐"고 생각하시더라고요. 저도 그렇게 생각할 것 같아요. (웃음) 큰 장로님이 자기 땅에 건물 올려서 봉사하는 줄 아시는데, 사실 이 건물, 전부 대출입니다. 농협, 새마을금고 등에서 대출받아 운영하고 있어요. 운영하면서 감사한 건, 매달 나가는 이자만큼 하나님께서 채워주신다는 거예요. 아내가 저녁에 "돈 벌어서 이자만 내고, 우리 가져가는 건 없네"라고 투덜거리기도 하지만, 감사하게도 이자를 밀려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이건 정말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설명할 길이 없어요. 누가 빚내서 서점을 하겠어요? 다 빚인데... (웃음)
주영훈: 농협 빚, 새마을금고 빚... 빚으로 운영되는 서점이군요. 그래도 집사님도 생활은 하셔야 할 텐데요.
이명구 집사: 저는 돈 계산에 약합니다. 재정 관리는 전부 아내가 맡아서 합니다. 아내가 자세히 말은 안 하지만, 그래도 운영하면서 부족함 없이 생활하고 있는 걸 보면, 정말 기적이고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서점 운영이 정말 어렵고, 특히 기독교 서점은 코로나 이후 더 어려워졌다고 합니다. 인터넷 서점은 24시간 만에 책을 배송해 주고, 판매하는 품목도 다양하잖아요. 경쟁이 안 되는 거죠. 저희 서점도 어려움이 있지만,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는 사명감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거짓말처럼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셔서, 감사하게 운영하고 있습니다.
주영훈: 기독교 백화점이라 크리스천 손님들이 많이 찾아오시나요?
이명구 집사: 크리스천뿐만 아니라, 일반 손님들도 오십니다. 크리스천 손님이 비크리스천 친구를 데려오는 경우도 많고요. 서점 환경이 좋다 보니, 전도 목적으로 서점을 찾는 분들도 계십니다. 예전 서점들은 좀 열악했잖아요. 이 건물을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고백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기도했어요. "하나님, 왜 기독교 서점은 늘 구석에 있고, 낡고, 높은 곳에 있나요? 밝고, 힐링 되는 공간에 서점을 둘 수는 없을까요?" 주님께서 제 기도에 응답해주셨다고 믿습니다. 이 공간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정수: 정말 멋진 공간입니다. 김포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 이런 서점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커피 한잔 마실 시간 있다면, 이런 기독교 서점에 와서 책도 읽고, 좋은 사람들과 교제하고 싶네요.
주영훈: 기독교 서점 운영하시는 분들, 정말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묵묵히 사역을 감당하고 계시죠. 교회를 돕고, 미자립 교회를 돕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고 계시고요. 기독교 서점 운영 환경이 워낙 열악하다 보니, 이런 공간을 만들기가 쉽지 않습니다. 크리스천들이 지역 서점을 방문하고, 응원하고, 지원하는 문화가 필요합니다. 서점 운영자들도 교회에 필요한 물품을 지원하거나, 다양한 협력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함께 노력하면 이런 아름다운 공간들을 더 많이 만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정수: 기독교 서점이 미자립 교회, 개척 교회를 돕는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돕고 계신가요?
이명구 집사: 저희 서점에서는 지금도 미자립 교회 세 곳이 주중에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저희 서점 공간을 예배 장소로 제공하고 있는 것이죠. 목사님들이 정말 고마워하시고, 서로에게 은혜가 되는 귀한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1999년 서점을 처음 열고, 홍보를 위해 교회를 방문했을 때, 교회들의 열악한 환경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특히 미자립 교회들은 정말 어려움에 처해 있더라고요. 교회를 방문하면 방문할수록, 물건을 팔아야겠다는 생각보다 도와드려야겠다는 마음이 더 커졌습니다. 미자립 교회에는 아이들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캠프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어도, 아이들 수가 적어서 참여하기 어렵죠. 이 문제를 하나님께서 알게 하셨습니다. 미자립 교회 아이들을 위한 캠프를 열어야겠다는 마음이 간절해졌습니다. 그때 '만원 캠프'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했던 것 같아요. 만 원으로 3일 동안 진행되는 캠프를 기획했습니다.
주영훈: 만 원으로 캠프를 운영하는 게 가능한가요?
이명구 집사: 쉽지 않죠. 처음에는 걱정도 많았습니다. 미자립 교회 목사님들을 설득하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싼 게 비지떡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진심을 다해 설득했습니다. "제가 미자립 교회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저를 믿고 아이들을 맡겨주십시오." 캠프를 시작하기 두 달 전부터, 캠프 현장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캠프 장소가 김포 강화 쪽이라, 멀지 않아서 매일 저녁 퇴근 후에 캠프 장소에 가서 2~3시간씩 기도했습니다. 캠프장을 빌려주신 목사님께서 놀라시더라고요. 캠프 때문에 두 달 전부터 와서 기도하는 팀은 처음 봤다고요. 이런 헌신적인 모습을 목사님들이 좋게 봐주시고, 후원도 해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캠프 사역이 시작되었고, 집회 강사 섭외, 목사님들과의 네트워크 형성 등 다양한 사역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처음에는 50명 정도로 시작했던 캠프가, 입소문이 나면서 250명 규모까지 성장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캠프 소식을 들은 강사님들이 강사비를 받지 않고, 오히려 헌금하고 가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캠프에 참여했던 교회에서도 후원을 해주셨고요. 어느 해에는 교회 청년부에서 60만 원을 헌금하고, 3일 동안 캠프 봉사를 하겠다고 자원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감사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저희 큰사랑기독교백화점은, 사역을 빼고는 설명이 안 되는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영훈: 서점 운영도, 캠프 운영도 정말 기적입니다. 만 원 캠프는 인건비, 식비도 안 나올 텐데, 어떻게 운영이 되는지 신기하네요. 하나님께서 사람도 보내주시고, 필요한 물질도 채워주시는군요.
이명구 집사: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후원이 들어오긴 하지만, 늘 부족합니다. 후원이 넘치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어요. 항상 부족했습니다.
주영훈: 부족할 때는 어떻게 하시나요?
이명구 집사: 부족할 때마다, 아내가 해결했습니다.
주영훈: 아, 사모님께서 헌신적으로...
이명구 집사: 네, 아내가 부족한 부분을 채웠습니다. 아내의 헌신이 없었다면 캠프 운영이 불가능했을 거예요. 하지만 아내도 처음부터 캠프 사역을 좋아했던 건 아닙니다. 캠프 때문에 다툼도 많았죠. 제가 일을 벌이는 스타일이라, 아내가 수습하느라 고생이 많았습니다. 목사님들이 저희 부부를 보면서 "둘만 몰라, 천생연분인데. 한 사람은 벌고, 한 사람은 쓰고."라고 농담하시기도 합니다. (웃음)
주영훈: 오늘 사모님도 함께 오셨는데, 이 자리를 빌려 사모님께 미안한 마음을 전해보시는 건 어떠세요?
이명구 집사: 네, 아내에게 정말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뿐입니다. 아내가 정말 고생을 많이 했어요. 짧게 편지를 써 왔는데, 읽어봐도 될까요?
주영훈: 네, 좋습니다. 사모님께 전하는 진심 어린 편지, 기대됩니다.
이명구 집사: (편지를 읽으며) 여보, 우리가 서점을 시작한 지 벌써 26년째가 되었네요. 오늘은 당신에게 용서를 구하는 글을 써야 하는데, 그때 끔찍했던 일들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아려옵니다. 서점을 오픈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미자립 교회와 다음 세대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선교단을 만들고, 매장 일보다 교단 일에 더 몰두했습니다. 당신은 아무것도 모른 채, 그 고통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죠. 손님은 없고, 계속되는 재정난에 두려움과 우울한 날들을 보냈을 텐데, 그때는 몰랐습니다. 가장으로서 책임감 없이, 철없는 행동만 했던 제 모습이 얼마나 당신을 힘들게 했는지, 그때는 몰랐습니다. 선교단 운영비가 부족하다고, 30% 고금리로 캐피탈 대출을 받을 때도, 그게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그때는 몰랐습니다. 카드 돌려막기가 사람을 얼마나 비참하게 만드는지, 그때는 몰랐습니다. 대출받으러 은행을 드나들 때, 당신이 얼마나 큰 수치심을 느꼈는지, 그때는 몰랐습니다. 지금 와서 용서를 구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모진 고통을 참고, 바보 같은 남편을 믿고 살아온 당신은 천사입니다. 이렇게 부족하고 용서받기 어려운 남편이지만, 그래도 고백할 것은, 진정으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주영훈: (눈물 글썽이며) 아이고... 정말 감동적인 편지네요. 사모님, 편지 들으시니 어떠신가요? 자녀분들은 잘 성장했으니, 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이명구 집사: 네, 자녀들 잘 키운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저희 아이들은 학원 한 번 안 다니고, 아픈 곳 없이 건강하게 잘 자랐습니다. 교육비, 병원비 걱정 없이 아이들을 키울 수 있었던 것도 큰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저희 아이들 보면서 부러워하세요.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그렇게 잘 키울 수 있냐고 물으시는데, 저는 '하나님께 맡기면 된다'고 대답합니다.
주영훈: 편지 내용 중에 '캐피탈 대출' 이야기가 가슴 아팠습니다. 대출받아본 사람들은 알 거예요. 은행 문턱이 얼마나 높고, 대출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특히 캐피탈 대출은 더 힘들잖아요. 높은 이자에, 복잡한 서류, 은행의 갑질까지... 사업하시는 분들, 집 사신 분들은 다 공감하실 겁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묵묵히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시는 집사님, 사모님,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하나님께서 르호봇의 은혜를 주셨네요. 남의 아이들 챙겼더니, 하나님께서 집사님 자녀들을 챙겨주셨다는 말씀이 와닿습니다. 오늘 귀한 가정 이야기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방송을 들으시는 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명구 집사: 네, 저는 이 말씀을 선포하고 싶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아멘! 아까 말씀드렸듯이, 무슨 일을 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지, 기뻐하시지 않는지를 기준으로 삼으라고 하셨잖아요. 우리가 살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생명을 살리는 선교적인 일을 한다면, 하나님께서 결코 외면하지 않으실 겁니다. 지금부터는 하나님께서 쓰고도 남을 정도로, 모든 것을 풍성하게 채워주시리라 믿습니다. 아멘!
주영훈: 아멘! 저도 요즘 다음 세대 사역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집사님 말씀처럼, 남의 아이들을 잘 키워주면, 하나님께서 제 아이들도 알아서 잘 키워주시리라 믿습니다. 만 원 캠프처럼,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다음 세대를 위해 헌신하는 사역, 정말 귀합니다. 교회가 이런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대형 교회는 많지만, 함께 말씀 나누고 기도할 공간, 편안하게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은 부족합니다. 교회 문턱을 낮춰서, 누구든지 와서 차 마시고, 이야기 나누고, 기도할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공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집사님 서점처럼, 교회들이 지역 사회를 섬기는 공간으로 변화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집사님!
이정수: 감사합니다!
(박수)
(음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