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아들의 극적인 회심과 복음으로 변화된 연광규 목사 이야기
간첩 아들, 죽음의 수용소에서 복음으로 새 삶을
파란만장한 삶, 간첩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복음의 빛을 따라: 연광규 목사의 드라마틱한 인생 여정
오늘 우리는 평범하지 않은 인생을 살아온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은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가에 대한 깊은 고찰을 해볼까 합니다. 바로 간첩 아버지의 삶에서 벗어나, 극적인 회심을 거쳐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된 연광규 목사님의 이야기인데요.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 스토리는 단순한 개인의 서사를 넘어, 인간 존재의 변화 가능성과 믿음의 힘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지금부터 연광규 목사님의 충격적이고 감동적인 삶의 여정을 세밀하게 따라가 보겠습니다.
간첩 아버지, 불안과 고난으로 점철된 어린 시절
연광규 목사님의 어린 시절은 남한 간첩이었던 아버지의 존재로 인해 늘 불안과 고난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1970년대 후반, 그의 아버지는 북한의 지령을 받고 세 차례나 남한에 침투하는 위험천만한 작전을 수행했는데요. 영화에서나 볼 법한 간첩 활동이 현실에서 벌어졌다는 사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합니다. 더욱이 아버지의 임무는 단순 침투가 아닌, 무장 군인 그룹을 안내하고 무기와 자료를 전달하며, 심지어 사람을 북한으로 데려오는 극도로 위험한 임무였습니다.
세 번째 침투 작전 중, 아버지와 그의 대원들은 국군에 발각되어 총격전을 벌이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아버지는 복부에 관통상을 입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장기가 쏟아져 나오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아버지는 혀를 고정시키고, 장기를 쓸어 담아 기어서 월북하는 강인한 생존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공로로 북한에서 국기훈장 1급이라는 훈장을 받았지만, 조원들을 모두 잃었다는 죄책감에 영웅 칭호는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부상 후유증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동부 철도 관리국 당 조직 비서라는 높은 직책에 임명되었고, 김일성에게서 사슴 고기, 꿩, 귤, 심지어 100년 된 산삼까지 선물로 받는 등 비교적 윤택한 생활을 누렸습니다. 하지만 전쟁 중 입은 총상의 후유증은 서서히 아버지의 건강을 악화시켰고, 결국 연광규 목사님이 12살 되던 해, 간경화, 복수, 기관지 천식, 폐결핵, 신장염 등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어린 연광규 목사님은 더욱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학교에서는 "간첩 새끼"라고 놀림을 받고, 순하다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어느 날, 울면서 집에 돌아온 아들을 본 어머니는 "너를 때린 녀석을 때리기 전에는 집에 들어오지 마라"라며 강하게 훈육했습니다. 어머니의 강경한 태도에 연광규 목사님은 벽돌을 들고 자신을 괴롭히던 친구를 찾아가 돌로 머리를 내리치는 극단적인 행동을 감행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들을 혼내는 대신, 오히려 싸움 기술을 가르쳐주었습니다. 특수부대 출신이었던 어머니는 멱살 잡혔을 때, 근접 거리, 원거리에서의 제압 기술을 아들에게 자세하게 전수해 주었습니다. 어머니에게 싸움 기술을 배우면서, 연광규 목사님은 맞고 다니던 아이에서 학교를 주름잡는 불량 학생으로 변모하게 되었습니다. 13살, 14살 무렵부터 패싸움을 일삼고, 북한 경찰인 안전부를 두려워하지 않고 거리를 활보하며 나쁜 짓을 일삼는 문제아가 되었던 것입니다.
고난의 행군, 굶주림과 범죄, 그리고 감옥
1990년대 중후반, 북한은 고난의 행군이라는 극심한 경제난을 겪게 되면서 사회 전체가 혼란에 빠졌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남의 것을 빼앗고, 강탈하는 범죄가 만연했고, 연광규 목사님 역시 싸움으로 점철된 폭력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심지어 지나가는 사람의 물건을 강탈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고 하니, 당시 사회 분위기가 얼마나 극악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불량 학생 시절도 잠시, 김정일의 명령으로 사회 불량배 소탕 작전이 시작되면서 연광규 목사님의 친구들은 대부분 총살당하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군 복무 중 휴가를 나왔을 때 이모부가 고난의 행군 중 중국에서 식량을 구해오다 붙잡혀 고문 치사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분노에 휩싸인 연광규 목사님은 술을 마시고 대낮에 상관의 집에 쳐들어가 폭행했고, 결국 상관 폭행치사죄로 10년 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수감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회령 정치범 수용소에서의 감옥 생활은 상상 이상으로 끔찍했습니다. 800명 수용 시설에 3,000명이 넘는 재소자들이 수용되었고, 영양실조와 질병으로 매년 1,500명이 죽어 나가는 생지옥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쥐를 잡아먹고, 뱀을 뺏기지 않으려고 허겁지겁 먹는 처참한 상황 속에서 연광규 목사님 역시 영양실조 3도 진단을 받고 죽음의 문턱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절망적인 순간, 감옥 당국은 연광규 목사님을 병보석으로 석방합니다. 아버지의 공로 덕분에 "죽여서는 안 된다"는 당의 배려였다고 하는데요. 뼈만 앙상하게 남고, 근육이 모두 녹아내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상태로 감옥 문을 나섰지만, 집에는 감옥보다 더 처참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먹을 것이라고는 전혀 없는 상황에서, 연광규 목사님은 감옥에서 들었던 "중국에는 흰쌀밥을 개에게 줄 정도로 풍족하다"는 복음과 같은 이야기를 떠올리며 탈북을 결심하게 됩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만난 복음, 그리고 새로운 인생
한겨울,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 탈북을 시도하던 연광규 목사님은 중국 군인에게 발각되어 총까지 맞닥뜨리는 위험천만한 상황에 놓입니다. 필사적으로 도망쳐 겨우 강을 건넜지만, 추위와 exhaustion에 지쳐 쓰러지고 맙니다. 죽음을 직감하던 순간, 개 짖는 소리를 따라 발견한 외딴 집에서 연광규 목사님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중국 조선족 선교사 부부의 집에서 따뜻한 환대를 받은 연광규 목사님은 생전 처음 콜라를 맛보고, 따뜻한 쌀밥과 풍성한 음식을 배불리 먹으며 인간다운 삶을 되찾았습니다. 특히 선교사의 진심 어린 기도는 연광규 목사님의 닫힌 마음을 서서히 녹이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라고 자신을 소개한 선교사는 "내가 너를 위해 기도해 줘도 되겠느냐"고 친절하게 물었고, 진심이 담긴 그의 기도에 연광규 목사님은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콜라와 풍족한 음식으로 육신의 허기를 채웠다면, 선교사의 사랑과 헌신은 영혼의 갈증을 해소시켜 주었습니다. 도둑으로 오해받아 결박당한 탈북민들에게 무릎 꿇고 용서를 구하는 선교사의 놀라운 모습은 연광규 목사님에게 큰 충격과 감동을 안겨주었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선하고 착한 사람이 있을까? 예수님이 이 사람이 믿는다는 그 하나님, 나도 한번 믿어보고 싶다." 연광규 목사님은 그 순간,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후, 연광규 목사님은 성경을 탐독하기 시작했지만, 창세기부터 막히는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습니다. "가인은 어디서 아내를 얻었을까?", "노아의 홍수 이후 거인 족속은 어떻게 나타난 것일까?" 등 끊임없이 질문이 꼬리를 물었지만, 선교사는 "그냥 믿으라"는 원론적인 답변만 되풀이했습니다. 하지만 선교사의 인도로 선교사 훈련 학교에 가게 되면서 연광규 목사님은 체계적인 성경 공부와 신학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신학교에서 빡빡한 훈련을 받던 중, 새벽 기도 시간에 하나님은 연광규 목사님에게 환상을 통해 찾아오셨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출애굽하는 장면을 보여주시며 "내가 이제 너를 바로에게 보내리니 너는 바로에게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 민족을 내 앞에서 인도해 내라"는 출애굽기 3장 10절 말씀을 음성으로 들려주셨습니다. 그 순간, 연광규 목사님은 성령 체험을 하고 뜨겁게 회개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히 경험하게 됩니다. 오랜 시간 흉터로 남아있던 머리의 상처가 20일 금식 기도 끝에 기적적으로 새살이 돋아나는 놀라운 경험도 하게 됩니다.
북한 선교사, 그리고 탈북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신한 연광규 목사님은 북한 선교사로 헌신하기로 결심합니다. 보위부 출신이었던 그는 북한에서 성경을 가지고 선교 활동을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만, 성령의 강권적인 인도에 순종하여 성경 26권, 반도체 라디오, 십자가, 제자 양육 지침서, 설교 CD 등 엄청난 양의 선교 물품을 가지고 두만강을 건너 북한으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보위부 초소를 통과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 하나님은 또다시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분명히 초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순간적으로 잊어버리게 하셨고, 텅 비어있는 초소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도록 완벽하게 보호해주셨습니다. "하나님 살려주세요"라는 절박한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북한에서의 선교 활동은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체포와 감옥살이를 반복하는 고난 속에서도 지하 교회를 설립하고 사역을 이어갔지만, 결국 발각되어 쫓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바다에서 3년간 도피 생활을 하는 동안 풍랑을 만나 죽음의 고비를 넘기기도 하고, 표류하며 오줌으로 목숨을 연명하는 극한 상황까지 경험했습니다.
더 이상 북한에서의 사역이 어렵다고 판단한 연광규 목사님은 탈북을 결심하게 됩니다. 선교지를 이탈한다는 죄책감에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한국에 와서 탈북민과 다음 세대를 위한 사역을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더 큰 계획이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의 새로운 사역, 그리고 통일의 비전
한국에 온 연광규 목사님은 탈북민들을 위로하고 통일을 준비하는 새로운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탈북민 축제를 개최하고, "비전 유니피케이션"이라는 선교 단체를 설립하여 남북 청년들이 서로 이해하고 화합하도록 돕는 의미 있는 활동들을 펼쳐나가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에서 유학하며 목회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연광규 목사님은 "오늘이라도 통일의 문이 열린다면 당장 북한으로 들어가 복음 전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드러냈습니다. 고향에 두고 온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마음과 북한 선교에 대한 변함없는 헌신은 듣는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합니다.
연광규 목사님의 인생 여정은 우리에게 인간의 변화 가능성과 믿음의 힘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간첩의 아들로 태어나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범죄와 감옥을 전전했던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은 기적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어둠 속에서 방황하던 한 영혼을 건져내 빛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는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우리는 연광규 목사님의 이야기를 통해 어떤 험난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을 변화시키는 복음의 능력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그의 삶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몸소 증명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연광규 목사님의 사역을 통해 더 많은 탈북민들이 위로받고, 남북이 화해하며 통일을 향해 나아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