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을 넘어 ‘돈많은언니’로, 그리고 나눔으로
📺 ‘돈 많은 언니’가 된 비결과 돈 많은 언니가 된 이유ㅣ염미솔 플리크 대표ㅣ새롭게하소서
안녕하세요, 새롭게하소서 주영훈입니다. 안녕하세요, 안수지입니다. 안녕하세요, 정봉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양한 은사를 주시는데요, 어떤 사람은 박원의 은사, 어떤 분은 또 예언의 은사가 있으신데, 오늘 초대 손님은 아주 특별한 은사를 받으셨다고 합니다. 네, 바로 물질의 은사를 받으신 분입니다. 좋죠? 아, 부럽죠, 부럽죠. 네, 물질의 은사를 받으셔서 자기를 위해서 쓰는 게 아니라 은사가 다른 이들에게 흘러 보내시는 그런 분이십니다. 네, 물질의 은사, 오늘 보시는 분들이 가장 많이 받고 싶어 하실 텐데요, 바로 모셔 보도록 하겠습니다. 유튜브 돈 많은 언니 채널로 활동하고 계시는 플리크 염미솔 대표님이십니다.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요. 와, 많으시네요. 네, 안녕하세요, 갑니다. 반갑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분가납니다. 좀 이게 좀 어때 많은 거죠? 그러니까 돈 많은 언니죠, 이 채널 이름이. 아, 오늘 그 얘기를 한번 천천히 풀어 보려고 하는데요, 네, 끝까지 한번 지켜봐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니, 이제 ‘돈 많은 언니’라는 채널을 어떻게 보면 이제 사업이나 이 채널을 만들게 된 물꼬를 튼 일이 있을 거 아닙니까? 어떻게 하셨어요? 네, 제가 처음 이제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은 저는 사실 온라인을 기반으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저희 아이가 지금 일곱 살인데요, 저희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 제가 임신했을 때, 네, 라이크소리라는 육아 용품 브랜드를 제가 이제 런칭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사실 요즘 많이들 하시는 인스타그램을 기반으로 제 온라인 사업을 한 단계, 한 단계씩 성장시킨 케이스인데요, 어, 되게 고무적인 것은 사실 제가 아이를 키우면서 지금까지 저희 아이를 그 어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저 혼자서 아이를 키우면서 일을 같이 병행해 왔거든요. 그런데 그 라이크소리라는 브랜드를 하면서 제가 이제 아이를 돌보면서 제가 1인 기업으로 뭐 월매출 5천만 원을 달성하고, 이렇게 계속 사업을 키워오면서 사실 지난해에는 이제 한 달에 월 수익으로 이제 1억이 넘는 돈을 하나님께서 네, 네, 허락해 주셨는데요.
돈 많은 언니, 많아요. 와, 한 달에 1억이, 연봉이 아니라요? 네, 원천 떼고 부가세 떼고, 그 되게 중요해요. 통장에 들어온 게 이잖아요. 아, 통장에 수익 잡힌 거, 거기 나중에 정소 내야죠. 세금 잘 내고 있습니다. 48% 이상 구간이. 그래서 하나님은 제가 사실은 되게 돈, 돈 거리면서 살았거든요. 근데 하나님 정말 긍휼의 하나님이라고 제가 느꼈던 게 돈, 돈 거리는 제 삶에 찾아오셔서 “미소아, 근데 돈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라는 것들을 많이 알려 주셨어요, 저한테. 그래서 오늘은 제가 그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왔습니다. 그, 그 좋습니다. 좋습니다. 그러면 말씀 나온 김에 어린 시절 얘기 해 볼게요. 어떤 어린이였어요?
음, 제가 이제 아까처럼 이렇게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하니까, ‘어, 원래 그러면은 조금 부유하게 자랐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텐데’인데요, 어, 제가 지금 제 나이를 좀 오픈할게요. 37살이거든요. 근데 제가 동생이네요, 20년 전에 제가 17살이 되던 해예요. 저희 부모님은 신용불량자가 되셨어요. 네, 근데 뭐 저희 부모님이 어떤 뭐 불성실해, 혹은 뭐 어떤 뭐 나쁜 짓을 해서가 아니라, 아버지가 하는 사업이 이제 크게 휘청거리게 되면서 저희 집이 어려워지게 되었습니다. 어, 17살의 여름을 저는 아직도 너무 정확하게 기억을 하는데요, 제가 이제 교복을 복을 입고 있었어요. 엄마의 손을 잡고 둘이서 대전에 있는 신용회복위원회라는 곳을 찾아갔던 그날이 너무나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 참, 어, 어떻게 보면은 그 안에 있는 직원분들은 직원분들에게 저희가 죄를 진 건 아니잖아요. 근데 뭔가 죄인인 것처럼 엄마와 저는 고개를 푹 숙이고 그 안에 들어가서 뭔가 “저희 개인 회생이 필요합니다. 개인 파산을 해야 될 것 같습니다”라고 이런 것들이 지금 제게도 되게 기억이 많이 남아요. 어, 그래서 그때 어 그 신용회복위원회를 찾아가서 저희 부모님이 진 빚들을 이제 그쪽에서는 하나로 모아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일정 부분은 조금 탕감을 해 주기도 하시고, 그다음에 그 빚을 하나로 모아서 좀 장기로 이렇게 갚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어요. 그래서 저희 부모님은 그 이후로부터 10년간 이제 그 빚을 갚아 내시서 신용불량자의 신분으로 이제 삶을 이제 살아가게 되셨죠.
그러니까 삶이 이렇게 무너지면서 가장 먼저 큰 변화가 뭐였냐면 거주지의 변화였는데요, 그때만 해도 저희 집이 그렇게 부유하진 않았지만 그 가난한 집도 아니었거든요. 그 정말 너무나 평범한 집에 외동딸로 자랐는데, 이제 어느 날 논산으로 이사를 해야 된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야반 도주 하듯이 이제 논산으로 딱 갔는데, 저는 이사 가는 날 그 집을 처음 봤어요. 근데 시골이었다, 시골이었다. 제 앞에 보이는 집이 너무 예쁜 거예요. 잔디밭도 이렇게 좀 깔려 있고 앞에 아름들이 나무도 크게 있고 이렇게 단층으로 된 이렇게 벽돌 집이었는데, 어, 뭐 그게 뭐 좋은 그렇게 막 깨끗한 오래 신식 집은 아니지만 그리 깨끗하고 그냥 예뻐 보이더라고요. 되게 고즈넉하니. 그래서 어, ‘아, 여기가 우리 집이구나. 그래서 우리 집이 망했지만 그래도 시골에서는 요 정도 수준에서는 살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그 집에 이제 들어갔죠. 근데 엄마 아빠가 그 정면으로 보이는 집이 아니라 그 집 옆에 있는 컨테이너 집으로 들어가시는 거예요. 저는 그때 처음 알았어요. ‘아, 내가 살아야 할 곳이 여기가 아니라이 컨테이너구나.’ 구조는 되게 구조가 단순하더라도 그 그냥 칸막이 두 개가 있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끝에는 주방, 가운데 거실, 그다음에 제일 끝에 안방. 그래서 그날부터 저는 거실 공간에 제 싱글 침대와 그다음에 책상 하나를 두고 그때부터 이제 그 안에서 생활을 하게 됐었죠. 아, 그 예민한 시기인데, 그죠? 네, 사실 저도 어렸을 때 생각해 보면 뭐 이런 거 ‘친구들이 혹시나 우리 집에 놀러 오면 어떡하지?’ 뭐 이런 생각을 가지면서 살 나이거. 어, ‘근데 혹시나 친구가 보면 어떡하지?’ 뭐 이런 걱정들 볼까 봐, 우리 볼까 봐. 맞아요, 맞아요. 남 시선을 의식하면 살아야 했었기 때문에 당신 어때요? 그때는 뭐 신앙생활을 하셨던 때인가요?
네, 그때도 신앙생활은 저는 사실 모태 신앙이거든요. 근데 저희 신앙생활에 가장 큰 역할을 해 주셨던 분이 사실은 저희 어머니의 어머니는 정말 신실한 크리스천이세요. 그래서 제가 어머니를 떠올리면 저희 어머니는 항상 교회 주방에 계신 분이었어요. 그러니까 저희 어머니는 배움이 그렇게 깊지 않으시고, 그다음에 뭐 어떤 그런 뭐 재능 같은 것들이 크지 않은데, 저희 어머니가 가장 잘하시는 것 중에 하나가 요리예요. 요리를 정말 잘하시고 뭐 어디에 가서 누가 저희 엄마 요리를 먹어도 “어머, 이거 살 수 있어요? 이거 어디서 팔아요? 이거 이거 저희 쯤 해 주시면 안 돼요?” 막 이런 요청들이 되게 많거든요. 근데 저희 엄마도 이제 본인이 가진 유일한 달란트가 그 요리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계셨던 덕분인지, 어, 이제 개척 교회에서부터 아니면 조금 성도 수가 많은 한 3, 400명 되는 중형 교회에 있을 때까지요, 단 한 주도 빠짐없이 저희 어머니는 항상 식당에서 밥을 하셨어요. 그래서 엄마를 따라다니다 보니 이제 자연스럽게 뭐 이제 어 신앙을 또 엄마의 신앙을 또 배우기도 하고. 근데 저희 집이 가난해졌지만 저 신용불량자가 되고 그렇게 컨테이너 집으로 가고 이럴 때도 단 한 번도 제 앞에서 눈물을 보인 적이 없으셨어요. 정말 강인하신 분이거든요. 근데 엄마가 교회에서 음, 기도를 할 때만 되면 펑펑 우시는 거예요. 음, 근데 이제 저희 엄마는 방언의 은사를 받으셨 예운 껴 그러면서 그때 어 저한테는 그 엄마의 기도가 사실은 조금 불안했어요. 왜냐면 어 평상시엔 너무 강인한 엄마 이렇게 우리 집이 휘청 우리 엄마는 너무 굳건히 우리 가정을 지키고 있는데, 근데 교회에 가서 엄마가 그렇게 무너져서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은 제 마음이 불안한 거예요. ‘아, 엄마도 힘들구나. 어, 이게 엄마도 힘든데 참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되게 까 너무 저한테는 어 그 모습이 조금 마음이 되게 항상 어려웠던 거 같아요. 그러면서 항상 내 마음속에 ‘하나님, 돈 좀 주시면 안 될까요? 이 가난을 조금 벗어나게 해 주시면 안 될까요?’라는 생각들을 그때 이렇게 하게 됐던 거 같아요. 어, 어때요? 바로 응답이 좀 왔어요?
어, 제가 근데요, 혹시 저 같은 경험 있으신 분들 많으실 거예요. 돈 달라는 기도하시는 분들이 대부분 어떻게 하냐면 “하나님, 돈 주시면 제가 그 돈으로 하나님 사역 할게요.” 옵 달 그런 기도 하잖아요. 저도 “하나님, 제발 저희 아빠의 사업의 길을 좀 열어 주세요. 제가 그때는 뭐 돈벌이를 못 하니까 아빠의 사업의 길을 열어 주세요. 저희 가정에 돈의 물꼬를 좀 터 주게 해 주세요. 그러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제 물질 쓸게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 할게요. 하나님 원하시는 곳을 위해서 이 물질 흘려보낼게요.”라는 항상 단서를 다는 기도를 했었어요. 근데 그런 기도를 몇 날 며칠을 막 계속 이렇게 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 이런 기분이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제가 중국에서 20만 원 받는데, 거기서 2만 원 11조 떼는 게 너무 주저되는 거예요. ‘내가 이 2만 원이면 사실은 며칠 뭐 버스비 아니면 그래도 며칠 뭐 먹을 수 있는 비용은 되는데, 아 근데 이게 항상 주저주저 되는 거예요.’ 근데 ‘야, 너는 20만 원에서 2만 원 떼서 10일조 하는 것도 어려운 애가, 네가 하나님 사역한다고 하나님한테 돈 달라 그래? 너 그거 너무 위선 아니야?’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러면서 ‘하나님이 물질이 필요하면 그걸 왜 너를 통해서 써야 돼? 왜 너한테 돈을 주셔야 돼?’라는 생각이 제 안에 강력하게 이렇게 들었어요. 그러면서 어떤 마음이 들었냐면 ‘아, 하나님이 내 모든 사정을 다 아시니까 제발 돈을 주셨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위선적인 마음 있잖아요. ‘내가 원래 진짜는 나 때문에 돈 달라고 하는 건데 마치 이 돈을 주면 내가 이거를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쓸 테니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돈 주세요’라고 하는 그 위선의 마음 있잖아요. 그 위선의 마음을 제가 깨닫게 하면서 너무 하나님한테 부끄럽고 창피한 거예요. 제가 차라리 솔직하게 “하나님, 저 너무 힘드니까 돈 주세요.”라고 했으면 음, 음, 네, 그러면 덜 부끄러웠을 것 같은 거예요, 하나님한테. 음, 근데 그 위선의 감성을 제가 깨닫고 나니까 그때부터는 기도를 못 하겠는 거예요. 하나님한테 이제 돈 달라는 기도도 안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새벽 기도는 가요. 가서 이제 그때부터는 그냥 우는 거예요. “하나님, 저는 어 너무 부끄럽습니다. 하나님한테 제가 돈을 달라고 했던 그 마음이 저의 위선이 하나님한테 너무 부끄럽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그냥 울기만 했어요, 하나님 앞에서. 매일 울고 “저는 하나님한테 어떻게 기도해야 될지도 모르겠어요.” 근데요, 하나님이 그렇게 제가 몇 날 며칠을 울고 그렇게 있는 와중에 저한테 이런 말씀을 해 주시는 거예요. 음, 그때 당시가 비 정권 때였습니다. 하나님이 저한테 “미소아, 이명박보다 높고 이건희보다 부유한 내가, 내가 너의 아빠야. 어, 그러니까 아무 걱정하지 마음.”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너무 기쁘더라고요. ‘아, 그래, 맞아. 내가 이렇게 위대한 하나님을 나는 내 스스로 요만한 그릇 안에 하나님을 가둬 놓고, 아, 내가 이거 주지 않는다고 하나님 나한테 와치 안 계신 것처럼 생각하면서 살았구나’ 생각이 들면서 어, 그 응답을 받는데 제가 너무 기뻤어요. 그러면서 뭔가 그때부터는 뭔가 근거 있는 자신감들이 제 삶에 채워지기 시작했죠. 아휴 참, 그러니까 우리 뭐, 왜냐면 내가 세상의 기준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이 다 돈이 필요한 것들이니까 이제 다 돈, 돈, 한, 돈 하게 되는 거 아니겠어요? 그렇게 하나님께 기도한 이후에 어떤 변화가 생기던 가요?
정말 너무 놀라우신 하나님이었습니다. 어, 제가 이제 어 3개월 기숙사를 이제 등록을 하고, 이제 교회에서 만나게 다 언니랑 같이 기숙사비를 아끼려고 이제 둘이 나와서 원룸 같은 아파트를 하나 얻었어요. 그게 더 비용이 저렴했어요. 근데 이제 중국 아파트 같은 경우에는 가전 가구가 다 들어가 있어요. 그래서 정말 몸만 들어가서 사는 게 가능한데, 그 안에 유일하게 하나가 없었는데 식탁이 없는 거예요. 근데 중국도 입식 생활을 하거든요. 근데 식탁이 없으니까 밥 먹는 게 조금 불편하더라고요. 근데 이제 저는 이제 항상 중국에 있을 때 제가 딱 두 군데를 갔거든요. 한 곳은 스타벅스를 갔어요. 돈 없는데 스타벅스를 왜 가 생각하시잖아요. 근데 스타벅스를 뭐를 커피를 마시려고 한 게 아니라요, 제가 한두 번 스타벅스에 이제 커피를 마시러 갔었는데, 거기에 있는 알바생 친구들이 이제 한국에서 온 여자애가 거기 앉아서 공부를 하니까 신기했나 봐요. 그러니까 그 알바생 친구들이 저한테 말을 걸기 시작했어요. “너 여기 왜 왔어? 너 뭐 무슨 공부해?” 이렇게. 그렇다 보니까 이 한 번, 두 번 얘기를 하다 보니까 그 친구들이 알바 파트타임이 끝나면 저한테 붙어서 중국말 가르쳐 주고, 그다음에 또 다른 친구 가고 또 도와서 저한테 중국말 가르치고 이거를 하게 된 거예요. 근데 중국은 스타벅스가 시식 문화가 되게 잘 발달돼 있어서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요, “야, 이거 신상 합니까 먹어.” “야, 이거 신상 베이커리가 먹어.” 이런 것들을 정말 많이 줘요. 알바생님 맘대로 줘도 돼요? 그 시식이 네, 네, 시식이 따로 있어요, 네, 시식 컵이 따로 있고 시식 접 따로. 진 형들은도 좀 실천했으면 좋겠네요. 그래서 제가 돈 한 푼 없이 거기 앉아 있으면 커피 주죠, 빵 주죠, 그다음에 친구들은 돌아가면서 저한테 중국말 선생님 해 주죠. 그래서 제가 정말 놀랍게도 중국에 간 지 6개월 만에 의사소통을 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을 정도로 중국말을 빨리 배웠어요. 중국말을 그렇게 빨리 배웠던 얘기 처음 들었는데, 조가 있어 가지고 어려워요. 그 전에도 그럼 중국말을 조금이라도 아니요, 그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 했던 단어 우리. 그 한 자리 오래 앉아 있으면 우리 알바생들이 째려보는데, 그죠? 쫓겨나지 오래 있다고. 근데 그 알바생들 전체가 이제 저의 중국말 선생님이 되어 준 거죠. 그래서 스타벅스에서 중국말 배우고 이제 남는 시간에는 이제 교회에 가서 제가 사무실에 간사님들이 같이 앉아서 거기서 항상 놀았어요. 근데 이제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띠리링 전화가 걸려 와요. 제가 “여보세요.” 그러면은 “미소아, 혹시 집사님 식탁 하나가 남는데 식탁 필요한 친구 있니?” 물어봐요. “집사님, 저 엊그저께 이사했는데 식탁이 없어요.” “어, 그래, 집사님 갔다 줄게.” 강정 여섯 명이요, 대리석 식탁을 들고 왔는데요, 그 다이닝 롱에 딱 맞는 거예요, 사이즈가 이거야이거. 칫소, 치약이 똑 떨어진 거예요. ‘아, 내일은 치약 사러 가야겠다.’ 또 교회에 앉아 있으면요, 쓰리링 전화가 와요. “이소아, 집사님 집에 치약이 많이 남아 있는데 치약 필요한 청년 있는지 찾아봐.” “집사님, 저요.” 그럼 또 다음 날 집사님이 치약을 가져다 주세요. 어느 날은 또 뭐 하느라 돈이 똑 떨어진 거예요. ‘아, 이번 달 뭐 먹고 사냐’ 걱정하고 있으면 집사님 또 전화가 와요. “미소아, 집사님 밥 해 놨는데 집사님 집에 밥 먹으러 와.” 가잖아요. 그러면은 밥만 주시는 게 아니라 일주일치 반찬을 다 싸 가지고 저는 주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경험들이 저한테 한 번, 두 번 이렇게 쌓이다 보니까는 제가 어떤 어 생각을 하게 되냐면 ‘아, 하나님이 내 삶에 개입하고 계시는구나’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정말 그 광야 시대에 매출하는 하나님께서 막 떨어뜨려 주시듯이 제 삶에 깊게 개입하셔서 제가 필요한 것들을 그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하나 다 채워 주시는데 너무 놀라운 거예요. 그러다가 또 하루는 이제 청년들이랑 같이 교회에서 이제 1박 2일로 약간 MT 같은 걸 간 적이 있어요. 어, 하루를 자고 그다음 날 아침 일정이 뭐였냐면 그 아침 시간에 각자가 원하는 장소에 가서 큐티를 하고 각자가 느낀 것들을 모여서 우리 나누자는 시간을 가졌어요. 날씨가 너무 좋으니까 이제 각자 뭐 다들 어딘가에 가서 큐티를 하는데 저는 밖에 나가서 큐티를 하고 싶더라고요. 큐티 책을 들고 밖에 나가서 이렇게 앉아서 큐티를 보는데, 어, 바람이 이렇게 살랑거리고 갈대가 흔들리고 나뭇잎이 떨어지고 새들이 지적이는 이 모든 소리들이 갑자기 “미소아, 사랑한다. 미소아, 내가 너를 사랑한다.”라고 하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저는 그때 깨달았어요. ‘아, 하나님이 이 세상의 피조물을 정말 우리를 너무 사랑해서 만드신 게 맞구나.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그 바람의 움직임으로 새들의 지적임 항상 우리에게 사랑을 속삭이고 계셨구나.’ 거를 그날 제가 깨닫게 된 거예요. 그러면서 ‘아, 정말 이 하나 마음대로 우리가 뜯으면 안 되겠다’라는 경험을 또 그때 할 수 있었어요. 아유, 또 그 은 생각이 들었 눈물 좀 다세요. 감독이다 진짜. 아, 연예인에 있었으면 엄청 부럽겠지. 얘기만 나오면 울거든요.
어떻게 보면 어릴 때부터 너무 어렵게 자랐기 때문에 그런 그 경제적인 재물에 대한 강박이 좀 심했나 보네요, 그죠? 어, 맞아요, 그런 것도 있었고요. 그다음에 제가 돈이 없을 때는 제 손에 있는 게 없으니까 붙잡을 게 하나님밖에 없었거든요. 근데 이제 돈을 벌고 나니까 제 손에 쥐어진 그 돈을 제가 이렇게 어느 순간 이렇게 쥐고 이거를 놓치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근데 그러면서 제가 어떻게 했냐면 어 그 당시에 제가 돈을 막 이렇게 벌 때 제 신앙생활은 되게 주입식 생활 신앙이었습니다. 주입식이라는 게 뭐냐면 교회에서 시키는 것만 하는 거예요. 음, 어, 주일 예배 가고 금요일 예배 가고 뭐 성경 공부 있다고 하면 하고, 그다음에 뭐 봉사시 하고. 근데 내가 먼저 스스로 하나님을 찾는 시간들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주입식으로 내 신앙을 채우고 나머지 남는 시간들은 다 ‘어떻게 하면 내가 이 사업 키울 수 있지? 어떻게 하면 내가 이거 놓치지 않고 이거 내가 요 지워 준 요 돈을 잃지 않고 어떻게 하면 이 사업을 계속해서 영의 without 수 있지?’ 하면서 제 힘과 노력으로 뭔가 계속 아둥바둥 살려고 하는 모습을 어느 순간 제가 발견하고 있더라고요. 예음, 아니 근데 기존적으로 라이크소리 잘 듣잖아요. 라이크소리가 잘된 이유를 좀 전 듣고 싶거든요. 라이크소리가 잘된 이유도 있었어요?
네, 뭐냐면요, 제가 이제 어 정말 무모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제가 아이가 태어나고 3개월이 됐을 때 저희 남편한테 제가 쇼룸을 만들고 싶다 그랬어요. 그러니까 온라인 사업은 실체가 없잖아요. 근데 저는 요거를 이렇게 멋지게 멋드러지게 내 공간에 내가 파는 물건들을 이렇게 디스플레이해 놓고 손님들이 이렇게 왔다 갔다 하면서 물건을 샀으면 좋겠는 욕심이 이제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남편한테 “나 쇼룸 하나만 만들어 줘.” 그랬는데 남편이 “너 생각이 있는 애냐, 없는 애냐? 어디다 만들어요, 그거를?” 예, 쇼룸을 이제 가게를 하나 내달 네, 네, 네. 근데 아기가 이제 막 3개월이었다 “아니, 애 키우면서 도대체 그거에 무슨 어 어 못 한다. 그 우리가 누구 애를 키우는 것에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네가 스스로 애를 키우면서 쇼룸을 봐야 되는데 그건 안 된다.” 이렇게 했는데 제가 그때 막 울었어요, 남편한테. “너는 내 꿈을 짓밟고 있다”고 하면서 네, 네, 저기 오셨는데 웃으시네요. 예, 다시 한 얘기니까. 어, 다한 그때는 좀 그 속이 겠죠. 근데 쇼룸을 누가 내 주셨? 저희 시아버지가 도와주셨어요. 음, 예, 시아버지는 어 일하는 여성에 대한 존중감이 있으신 분이셨어요, 네. 그래서 어 “만약에 네가 원한다면 아빠가 들려 주겠다”라고 해가지고 제가 쇼룸을 30평대 쇼룸을 제가 네 열게 돼요. 근데 그때부터 그 쇼룸이 저는 이런 생각을 한 거예요. ‘내가 오프라인 샵을 열면 오프라인에서 얻는 수익, 온라인에서 얻는 수익이 더해져서 내가 돈을 더 많이 벌겠지’라는 게 저의 계산이었다. 근데 오프라인에 에 쇼룸이 생기자마자 고정비는 개념이 없었어요. 매달 나가는 월세, 뭐 관리비, 그다음에 물건 재고 비용 이런 것들이 생기면서 저한테는 이 쇼룸이 저한테 돈을 벌어다 주는 장치가 아니라 돈 잡아먹는 장치가 된 거예요. 게다가 제가 정말 그때는 경제관념이 아예 없을 때라서 유동 인구가 하나도 없는 곳에 쇼룸을 냈어요. 아이고, 그 동네 분위기가 너무 좋다면서. 아, 그런 걸 시작 조서도 안 해보고 “여기 너무 조용하고 고지하다.” 조용 최악이네요, 조용해서 좋아. 아, 그러니까 그때는 이 생각이 아예 없었던 거예요. 그냥 뭔가 내가 물 주만도 정확히 어 여길 들어온다는 사는데 그것도 쇼을 그러니까 예, 뭐 워킹 손님이 아예 없는 곳이다 보니까 이게 정말 매달마다 정말 300만 원씩 여기에 이제 빠져나가는 고정비가 생기는 거예요. 그러면서 어 ‘내가 내 힘으로 이 오프라인 시장을 살릴 수는 없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제가 그때부터 이제 온라인 시장에 대한 공부를 미친 듯이 하기 시작해요. 그러면서 온라인에 마케팅하는 방법, 그다음에 온라인 채널을 더 확장하는 방법, 그다음에 사람들의 어떤 객 단가라 하죠.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내 모래에서 한 번 들어왔을 때 더 많은 물건을 살 수 있을게 할 할 수 있을까?’ 이런 공부들을 하기 시작하면서 사실 이 위기를 저는 사실 여기에 이 300만 원을 우리 남편 월급으로 메꾸지 않으려면 내가 적어도 이 온라인 시장에서 돈을 좀 버는 것들을 더 활성화시켜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사실은 저기 아기 뭐 재워놓고 그음 금요일에는 항상 밤시장 나가서 시장 조사하고, 그다음에 맨날 새벽 3시 시까지 소싱 어떤 제품 팔면 좋을까 막 고민하다 자고 막 그러면서 “저는 하루에 단 10분도 저를 위한 시간이 없어요.”라는 말을 제가 뭔가 뭔가 자랑처럼 하고 다녔어요. ‘나 이렇게 열심히 산다. 나는 내 일을 키우기 위해서 나 이렇게 열심히 해.’ 근데 아, 정말 지금은 이 말을 하는 게 너무 부끄러워요, 네. 그니까 내가 뭔가 그때 중국에서 만난 하나님이 저한테 분명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 “야, 이명박보다 높고 이건희보다 부자인 내가 너의 아빠야.” 근데 그 아빠의 존재를 잊고 ‘어떻게 하면 내가 내 힘으로 이 사업을 조금 키워볼 수 있지? 어떻게 하면 내가 내 힘으로 이 사업을 좀 잘되게 할 수 있지?’ 하면서 정말 아둥바둥 살았다는 표현이 딱 맞는 거 같아요, 네. 신앙적인 강박은 없었어요? 신앙적으로는 어땠어요? 신앙적으로는 아까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그러니까 교회에서 시키는 거는 빼먹지 않고 하는 거예요. 예, 뭔가 교회 모든 예배에 참석하는 거, 그다음에 교회에서 어떤 봉사가 필요하다라고 하면 봉사하는 거, 그다음에 이제 또 뭐 뭐 어떻게 설교하다가 목사님이 “어, 어디 선교지에 뭐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자, 어디 선교지에 돈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하면은 거기에 물질 흘려보내는 거 막 이런 것들을 어떤 숙제처럼 하는 거죠. 아, 그니까 내가 할 건 다 했다 이런 내 마음속에 위안 네, 예. 그 그다 그런 마음들이 어떻게 회복을 좀 찾게 됐어요?
어, 이것도 정말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하심 안에 있었는데요, 제가 그때 20대 중반에 정말 아무것도 없을 때 어 저희가 제가 섬기던 교회에서 청지기 재정 교육을 한다는 거예요. 근데 저는 그게 그때 뭔지도 몰랐어요. 근데 왠지 ‘청지기 재정’이 두 가지 단어를 듣고 ‘아, 내가 저 교육을 들으면 뭔가 하나님이 나한테 물질의 복을 주시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이제 그게 12주짜리 과정인데 제가 거기에 이제 등록을 하고 그 수업을 이제 듣게 되는데, 들으러 간 첫날 ‘뭔가 잘못됐구나’ 느꼈어요. 왜냐면 그 안에는 이미 이렇게 뭐 30대, 40대, 50대 이미 사업하고 계신 분들, 아니면 기업의 임원으로 계신 분들, 이렇게 뭔가 이미 약간 물질적인 풍요가 있으신 집사님들이, 혹은 또 장로님들이 ‘어떻게 하면 이 물질을 하나님의 방식에 맞게 쓸 수 있을까?’를 고민하러 그 자리에 오신 거였는데, 20대의 젊은 여성은 저 하나밖에 없는 거예요. 그리고 돈벌이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그래서 ‘이게 내가 들으면 안 되는 건가?’라는 뭔가 약간 의구심은 들었지만 12주 과정을 잘 맞췄어요. 그 12주 과정을 다 마치고 난 후에 제 삶의 변화가 하나도 없었어요. 있을 리가 없잖아요. 어, 그래서 ‘아, 내가 괜히 들었다. 내가 어 관리할 돈은 커녕 내가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것도 급급한데, 내가 아 이게 내가 들어야 되는 것들이 아니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이제 10년이 지난 거예요. 근데 어 지금 섬기고 있는 교회 목사님께서 어 “집사님, 우리가 청지기 제정 교육이라는 거를 우리 교회에서 이제 할 건데, 이 시작에 집사님이 조금 함께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라고 하고 하시면서 “이 교육을 좀 들어보셨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해 주시는 거예요. 근데 그때 떠오른 거예요. ‘어, 나 10년 전에 이거 들었었는데, 어 근데 그때는 내가 관리할 돈이 없었었다. 어떻게 그거를 청지기적 삶을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내가 적용해 볼 수도 없었는데, 어 내가 청지기 재정 교육을 들어야 한다면 지금이 그 적기 있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왜냐면 제가 막 돈은 벌었는데 그 돈 막 쥐어 잡고 막 아둥바둥 살고 있었잖아요. 그래서 ‘아, 지금이 어쩌면 하나님의 시그널이 있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제 그 청지기 재정 교육을 제가 10년 만에 다시 듣게 됐어요. 근데 그거를 들으면서 가장 놀라웠던 건 뭐였냐면 제 생각에 변화를 주었던 건 저는 그동안 뭔가 물질을 축복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어요. 많은 분들이죠. 그래서 ‘아, 내가 가난한 거는 뭔가 내가 하나님 앞에 신앙적으로 올바르지 않아서 그런 건가? 내가 무언가 열심히 하지 않아서 그런 건가? 하나님 마음에 뭔가 내가 합하지 않은 사람이 건가?’라는 의구심이 자꾸 있었어요. 근데 하나님은 물질은 축복이 아니라는 거예요. 물질은 은사라는 거예요. 그러면 이 은사라고 하는 거는 사실 전제 조건이 붙잖아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네가 이것을 어떻게 쓸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인 거잖아요. 아, 그래 ‘내가 지나온 세월에서 가난하게 살았던 게 내가 하나님 마음에 합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구나. 내 믿음의 열심이 잘못된 방향이 아니었구나. 다만 내가 이 물질을 축복의 개념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구나.’ 것들을 깨닫게 들면서 ‘아, 그럼 내가 이 물질을 정말 하나님의 방식에 맞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이것들을 잘 흘려보내는 것이 이제부터 내가 해야 되는 일이구나’ 것들을 그때 이제 깨닫게 된 거죠. 그럼 이제 그 이후로 모든 가치관의 변화가 생겼겠지. 모든 목표와 삶의 기준이.
맞아요, 어 그러면서 가장 큰 변화는 뭐였냐면 어 또 한 가지 제가 청직 교육을 들으면서 깨달았던 게 뭐냐면요, 일에 대한 관점에 변화했어요. 그니까 예전에는 저는 왜 사람들이 많이 오해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왜 우리가 어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얘기하시죠아요. 창세기에 “너희는 평생에 수고하여야 소산물을 먹으리라.” 그래서 우리가 일을 뭔가 죄악의 결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진짜 많아요. 어, 근데 하나님 나라의 법칙 안에서 일은요, 소명인 거예요. 하나님이 어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고 아담에게 가장 먼저 시켰던 게 뭐냐면요 “너는 이 땅을 경작하고 지키라”고 말씀하셔요. 근데 그거를 NIV 성경으로 보면은 그 경작하라 표현을 ‘to work it’이라고 나오거든요. 하라라고 해요. 근데 왜 하라라고 하면은 2장 16절에 “그 동산 과실의 각종 과실 나무의 열매를 네가 취하기 위해서 일을 하라”고 말씀을 하셔요. 그러니까 이런 제가 그 청지기 재정 교육을 들으면서 ‘아, 일이 죄악의 결과가 아니네. 하나님은 우리가 일을 소명으로 삼고 이것들도 잘해 나가길 원하시는구나’라는 거를 깨달으면서 그러면 ‘나 일을 하는 과정마저도 하나님 마음에 합했으면 좋겠는 거예요.’ 네, 내가 저는 돈에도 꼬리표가 있다라는 생각을 해요. ‘내가 어떻게 번 돈을 어떻게 하나님께 돌려 드리냐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그 받으시는 마음도 다를 거라는 생각을 하거든요.’ 그러면 ‘내가 이 내 돈의 꼬리표에다가 하나님의 이름을 붙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그러면서 ‘근데 나는 내가 왜 그렇게 일을 하고 싶었지?’라는 생각을 해 보니까 저는 가난을 벗어나고 싶었고요, 그다음에 우리 부모를 좀 부양하고 싶었고, 내가 낳은 우리 자식을 좀 잘 키죠 싶었고, 그리고 무엇보다는 나를 좀 되찾고 싶었어요. 근데 이 세상에 이런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3040 여성분들이 정말 너무 많잖아요. 그러면서 ‘아, 내가 하나님 이들을 음, 내가 내가 그렇게 힘들 때 누군가 정말 나를 도와줄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던 그 절박한 마음으로 하나님 내가 그러면 이제 그들을 돕는 일을 하겠습니다’라고 됩니다. 아, 그러니까 많은 엄마들 나와 같은 엄마들을 겠다는 생각이 들었군요. 그래서 시작한 일이 어떤 일이에요?
그래서 지금 저는 플리크라는 성장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어요. 네, 지금 뭐 라이크소리도 하고, 그다음에 제가 뭐 이런저런 다양한 일들을 했는데요, 지금은 다 이제 그것들을 좀 정리를 하고 이 플리크에 사실은 온 에너지를 다 집중하고 있는 상태예요. 그래서 플리크에 지금 시대에 엄마들이 배워 놓으면 좋은 것들을 저희가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서요, 4주짜리 프로그램, 8주기 프로그램을 이제 진행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쉽게 예를 들자면 뭐 글을 쓰는 방법, 그다음에 요즘에는 사진 잘 찍는 것도 기술이요. 사진 촬영하는 방법, 그다음에 인스타그램 플랫폼 잘 활용하는 방법, 스마트 스토어 하는 방법, 이렇게 엄마들이 제가 아이 키우면서 같이 수익화할 수 있었던 그 방법들을 우리 엄마들한테 알려주는 프로그램들을 지금 4주 혹은 8주 과정으로 만들어서 이렇게 하고 있는데요, 네. 근데 제가 이제 저희가 대부분 온라인을 기반으로 프로그램이 진행이 돼요. 근데 한 달에 한 번씩은 이제 오프라인 강의를 제가 하거든요. 근데 제가 강의가 없는 날도 저는 ‘어떤 분들이 우리 플랫폼을 이용하시는 너무 궁금해서’ 제가 항상 강의장을 나가요. 근데 지지난 날쯤 어떤 분이 이제 강의가 다 끝나고 모든 분들이 다 돌아가셨는데 한 분이 이렇게 쭈뼛쭈뼛 계속 서서 남아 계신 거예요. 그 저한테 이렇게 오시더니 “대표님, 저 기억하세요?” 이렇게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워낙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까 “어 누구시죠, 대표님?” 이렇게 여쭤봤더니 “저 3개월 전에 대표님 강의 듣고 대표님 앞에서 울었던 사람인데 기억 안 나세요?” 그때 떠올랐어요. 이제 그날 제가 강의를 했었는데 강의가 다 끝나고 어떤 한 분이 근데 제가 봤을 때 너무 예쁜 분이 이렇게 걸어 오시더니 제 앞에서 막 펑펑 우시는 거예요. 근데 그 울음이 그냥 단순히 이렇게 이렇게 눈물을 추기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 약간 대성통곡하듯이 오셔서 제가 기억에 남아 있었는데 너무 예쁜 분이 저한테 오셔 가지고 이렇게 눈물을 흘리시는데 “표님, 왜 그러세요? 왜 우세요?” 그랬더니 “저 뭐라도 하고 싶은데, 저 뭘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하면서 막 펑펑 우시는 거예요. 근데 제가 그분이 저한테 이제 제가 책을 책이 있어서 책에 사인을 받고 싶다고 해서 오셨는데 제가 저한테 사인을 요청하시는 분들한테 항상 너무 그 마음이 감사해서 짧은 편지를 이렇게 써 드려요. 근데 그분이 이제 그날 제 편지를 이제 가지고 돌아가셔서 힘들 때마다 이제 그 편지를 보시면서 이제 저희 플리크에 있는 프로그램을 참가하셨던 거예요. 그리고 나서 3개월이 지난 후에 그분이 운동하는 엄마라는 컨셉으로 이렇게 인스타그램 플랫폼을 운영을 하시게 된 거예요. 저희 플리크 함께. 근데 3개월 만에 팬분이 만 명이 넘게 생기신 거예요. 그러면서 그분이 “대표님, 그때 3개월 전에 제가 찾아왔을 때 사실 남편과 너무 사이가 좋지 않 이혼을 할까 말까 고민하는 상태였는데, 지금 너무 남편과의 사이도 좋아지고, 그다음에 남편이 ‘너 이제야 살아 있는 사람의 눈 같다’라는 표현을 했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남편과의 관계도 회복되고, 그리고 아이들 앞에서도 제가 자신감 있는 엄마가 되었어요.”라는 얘기를 해주시면서 “플리크가 제 은인이세요.”라는 이야기를 해 주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 얘기를 듣고 제가 그 자리에서 막 방방 춤을 쳤거든요. 근데 제가 그 춤을 추면서 하나님한테 “하나님, 보이시죠? 하나님은 얼마나 실까요?” 이런 얘기를 제가 그때 당시에 막 이렇게 하나님한테 올려 드리고 막 그랬거든요. 음, 그럼요, 얼마나 기쁘시겠어요. 아니, 대체 당장 등록해요. 아니, 플리크 치면 돼요. 아니, 대체 어떤 메시지를 전하시길 사람이 그렇게 바뀌어요, 3개월 만에가. 메시지가 딱 있어요?
어, 제가 사실은 그 라이크소리를 하면서 제가 김미경 강사님 되게 좋아해요. 김미경 강사님이 이런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어, 성장하고 은 사람은 꼭 책을 읽어야 된다.” 고 그래서 제가 그 얘기를 듣자마자 인스타그램에 “저랑 함께 책 읽으실 분 10명을 모집합니다.” 올렸어요. 근데 그때 정말 사람들이 “어, 저도 같이 읽을래요, 읽을래요.” 하면서 제 10명의 멤버가 꾸려졌습니다. 다양한 분야에 계신 분들이 있었는데 어떤 분은 뭐 교수님도 계셨고요, 그리고 지방 아나운서 하시는 분도 계셨고, 직장인 분도 계셨고. 근데 어떤 분이 저한테 “어, 저는 이제까지 책을 제대로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는데, 그런 저도 함께할 수 있나요?” 이렇게 조심스럽게 문의를 해 주셨어요. “아, 그럼요, 당연히 그럴수록 음, 함께 하셔야죠.” 해서 그분이 같이 이렇게 들어오셔서 10명의 멤버들로 이제 북클럽이 운영이 된 거예요. 저희는 일주일에 한 권의 책을 읽고 매주 금요일마다 모여서 이제 그 책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눴어요. 근데 단지 그것만 했을 뿐인데 이분들이 1년간 이 모임에서 안 나가시는 거예요. 근데 그 이유가 뭐냐면 어 책을 읽자고 모였는데 어느 순간 이 사람들의 삶이 책을 통해서 바뀌는 경험들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 “저는 이제까지 책 한 건 읽어본 적이 없어요.”라고 하셨던 분은요, 지금 오늘 할 일을 미루지 말자라는 오미자라고 형성 프로젝트를 만들어서 그거를 이끄시는 분이 되셨고요, 그다음에 아나운서만 하던 친구는 정부 지원 사업을 받아서 본인의 목소리를 가지고 그것을 사업할 수 있는 방향들을 찾아서 지금 또 사업을 같이 하고 있고요, 그다음에 또 온라인으로 그 대학 교수님 영어 교수님이셨던 그분 역시 온라인으로 그 본인의 영어 콘텐츠를 이렇게 옮겨와서 사람들한테 영어를 더 많은 분들한테 알려주는 그 역할을 하면서 사람들의 삶이 이렇게 변화되는 거예요. 예요? 어, 그러면 이거 되게 효과가 좋네. 나 그럼 이걸 좀 더 키워 봐야겠다라고 생각을 해서 제가 그다음에 1년 뒤에 이거 규모를 조금 키워 봤어요. 50명이 스탠드 펌이라는 이름으로 그 전에는 일주일에 한 번만 모였는데요, 이제는 일주일에 제가 세 번을 모이자고 해요. 월수금 밤 11시부터 모이기 시작하는데요. 왜냐면 우리는 네, 왜냐 육퇴를 해야 되거든요. 애들 재우고 온라인으로 모이는 거죠. 네, 네, 맞아요. 그래서 육퇴를 하고 밤 11시부터 우리 엄마들이 모여서 내 얘기를 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족기 하 잖아요. 근데 우리는 모여서 오직 우리 나에 대한 기 내 성장에 관한 얘기 나 어떻게 살고 싶은가에 대한 이야기들을 서로 막 나누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어떤 분들은 심지어 우리가 일주일에 세 번 만났는데 금요일 밤은 다음날이 주말이라는 이유로 11시에 시작하면 2시까지 이야기를 안 끝. 이거 터지는구나, 이거지. 그래서 그런 생활들이 계속계속 이어지다 보니까 저희가 50명을 가지고 시작했는데요, 여기에서 매달 나가는 인원이 한두 명밖에 안 되는 거예요. 사람들이 이 여기에 대한 만족도가 너무 높아서. 근데 어쨌든 한두 명이라도 새로오신 분들이 있으니까 저희는 매달 첫 시간에는 자기 소개를 했거든요. 근데 이 모임이 시작되고 3개월이 지나기 시작하니까요, 사람들이 자기를 소개하는 내용이 바뀌는 거예요. 예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사람인데 “저는 지금 무어를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지금 이렇게 사업을 확장시키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이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어디와 콜라보해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근데 그 변화를 버들이 더 본인들이 깨닫는 거예요. “어, 저 사람 들어왔을 때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지금 저렇게 됐네.” “어, 나도 들어왔을 때 이거밖에 아니었는데 나 지금 이렇게 됐네.” 이러니까요, 이 사람들이 이 모임에서 안 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이 모임이 또 1년간 저희가 50명을 50명과 함께 이 모임을 이끌러 가게 됐어요. 그래서 제가 느낀 거는 제가 클래스원에서 강의를 런칭해서 판매했었는데 제 강의가 1년에 거의 10억 가까이 팔렸어요. 그러니까 저도 강의로 정을 많이 받았겠죠. 근데 제 강의를 그렇게 많은 분들이 어 결제를 해서 들어 주셨는데 완강률 이요, 10% 안 돼요. 음, 근데 이게 코로나로 한창 이게 코로나가 심각하면서 이런 강의 플랫폼들이 되게 많이 성장했어요. 근데 강의 플랫폼들이 성장하는 거 보이고 강사들도 막 돈을 버는 게 보이는데 제 눈에는 그 수강생들이 눈에 보이는 거예요. ‘누군가는 계속 저렇게 잘되고 누군가 강사들은 계속 그걸로 돈을 벌고 있는데 왜 정작 그 강의를 수강하는 수강생들의 삶은 변화하지 않는가?’에 대한 안타까움이 너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막 “아무리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여러분 이거 해보세요, 이거 저거 해 보세요.”라고 강의할 때는 제가 아무리 요청을 해도 그분들이 듣지 않으시는데, 단지 내가 이 판을 하나 깔아 줬을 뿐인데, 내가 같이 성장하고 싶은 사람들을 묶어 놨을 뿐인데 이 사람들이 알아서 변화하는 것들을 보고 ‘어, 그러면 플리크라는 기업을 통해서 이런 것들을 좀 본격적으로 해보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예전에는 저 강의 플랫폼마다 강사님들이 계시잖아요. 근데 저희 플리크에 리더님들이 계세요. 근데 그 리더들이 다 누구냐면요, 저랑 같이 스탠드 펌을 통해서, 인사이트 북클럽을 통해서 성장하셨습니다. 이 중요성을 너무 잘 알잖아요. 그래서 정말 여리와 열성과 정말 그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지금 그이 수강생 분들을 한 분 한 분 다 이렇게 지금 끌고 가고 계신데요, 어 플리크에 다른 점은 뭐냐면요, 단순히 좋은 강의를 제공하고 우리가 좋은 강의를 제공했으니 ‘이것대로 하면 돼’가 아니라요, 저는 그들의 아웃풋까지 좀 책임지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제 저희 리더님들이 다 4주 혹은 8주기 액션 달력을 다 짜요. 그 액션 달력에는 매일매일의 미션이 적혀 있어요. 음, 그래서 어 온라인에서 만나서 강의를 진행하고요, 그리고 강의가 없는 날은 그 액션 달력에 맞춰서 사람들이 그 그걸 하면 되는 거예요. 그 액션을 수행하면 그럼 플리크에서 그 미션을 인증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공을 해요. 그래서 저희가 플리크 첫 달에 200 150명의 사람들과 함께 시작을 했거든요. 근데 프로그램이 끝나는 달를 기준으로요 각 프로그램들 다 이 미션 달성률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60%~90%까지 나오는 거예요. 어, 그러면서 ‘와, 이거 정말 이렇게 하니까 되는구나. 사람들이 이렇게 하니까 행동하는구나. 사람들이 이렇게 하니까 움직이는구나.’ 보면서 ‘아, 이게 어떻게 보면은 어 이 시장에 어떤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 그리고 어쩌면 하나님이 원하시던 그런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지금 저는 플리크를 운영 어 그니까 정말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존재가 아주 쓸 데가 많은 사람이구나’라는 스스로 느끼게끔 만드는. 맞아요, 맞아요. 예, 아주 대단한 일을 하시네요. 사람이 싹 바뀌는데. 근데 결정적인 건 이렇게 좋은 거는 돈이 안 돼요, 그죠? 아 그래요. 야 이거 이거 안 돼요. 아니, 되게 예리한 질문을 해 주셨는데요, 어 사실은 플리크를 하기 전에 저는 돈을 더 많이 벌었어요. 근데 왜냐면 지 예전에는 혼자 벌었든 혼자 벌어서 혼자 가져가는 구조였지만 지금 어쨌든 저희 밑에 이제 리더님들이 다 계시고 어쨌든 인원이 많아진 만큼 그만큼 수익이 다 이제 분배가 돼야 되기 때문에 확실히 네 돈은 아까 말씀드린 것만큼 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근데 그래도 뭐 의미 있는 일이니까 네, 근데 제가 어 하나님한테 순종하는 마음으로 제가 신앙 에세이를 썼는데요, 거기다 제가 뭐라고 썼냐면 “어 나는 플리크가 하나님의 기업이 되기를 원한다. 그런데 플리크가 하나님의 기업이 아니더라도 그래도 괜찮다. 왜냐면 하나님의 온전히 나 어떻게 또 선한 길로 인도하실지 내가 온전히 믿기 때문이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근데 제가 그 책을 이렇게 써 놓고서는 어떤 일이 있었냐면 어떤 한 분이 저를 이제 찾아오셨어요. 그분도 플리크 활동을 하셨거든요. 근데 그분이 이제 아이 셋을 낳고 가정 환경 10년 동안 이제 결혼생활 하셨는데 가정 생활이 그렇게 행복하지 않으셨대요. 신앙생활 하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그분이 이제 스트레스 해소의 일환으로 산 공부를 다니셨다, 산. 네, 강원도에 되게 수만 평의 산을 가지고 신 분 있요. 그 산을 이렇게 쪼개 가지고 뭐 어떤 날은 뭐 버섯 종균 이렇게 키우는 법, 어떤 날은 뭐 명이나물 뭐 재배하는 법, 어디 뭐 캠핑장 뭐 설치하는 법 이런 것들을 가르쳐 주는 수업이 있대요. 그래서 본인은 되게 오랜 시간 그런 산 수업을 다니면서 이렇게 뭐 마음의 힐링도 하고 이렇게 하셨는데, 그래서 그분은 유튜브를 볼 때도 그런 산에 관련된 유튜브를 많이 보신대요. 이런 얘기를 하더라는 거예요. “산에는 다양한 땅에 퇴적물들이 쌓이잖아요. 계절의 변화에 따라서 눈이 녹고 근에서 른 마른 하가에 떨어 있으면 정말 신기한 게도 그 안에서 상추 님이 잘한다는 거예요. 근데 정말 요게 없 데는 안 잘한대요. 근데요 마른 잎사이 하나만 떨어져 있어도 그 안에서 상추 입이 잘한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분이 “대표님, 플리크는 저한테 마른 잎이에요.”라는 이야기를 저한테 해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 얘기를 딱 듣는 순간 뭔가 하나님의 하나님이 말씀 말씀하시는 것 같았어요. “그래, 미소아, 네가 해야 할 일은 이제 앞으로 많은 사람들의 마른 잎사귀가 되어 주는 일이야.” 그래서 저는 지금 사실 이 기업이요 돈이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어요. 세상적으로 이 기업이 뭐 어떤 가치를 지낼지 없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근데 저는 기업가로서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은 있거든요. 근데 우선은 그 모든 것들을 다 하나님한테 맡겨 드리고 그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려고 지금 네 하고 [음악] 있습니다. 음, 그니까 돈 많은 언니 전 돈 필요 없는 남자. 왜냐면 저 하나님의 비법을 알거든요. 우리가 통 그 돈을 지금 사용하나요? 아니요. 돈이 통장에 들어왔다고 숫자를 우리가 눈으로 확인하고 그고 뭐 내가 뭘 하면 카드에서 빠져나가고 실제로 돈을 우린 주고받지 않아요. 은행에서 컴퓨터로 움직이겠지만 실제로 돈을 내가 내 손에 안 쥐는데 내가 그 돈이 들어왔다는 것으로 인해서 내가 누리고 있다는 거죠. 음, 카드 회사에서 지불을 했든 어쨌든 내가 그것을 고 내가 맛있는 식사를 한 것 하나님의 법은 그거거든요.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복을 누리리라. 음, 돈이 두려운 것 돈이 들어온 것과 같은 복을 누리리라는 거거든요. 식탁이 필요해서 내 돈으로 “돈을 주세요, 식탁을 사기”라고 기도했지만 내가 돈을 가지고 식탁을 샀으면 싸구려 플라스틱 식탁을 샀겠지만 하나님은 어느 날 내가 대리석 위에서 식사를 하게끔 그걸 누리게 해 주셨다는 거예요. 한 번도 내 주머니에 돈이 들어온 적은 없지만 그 누리고 있었다는 거죠. 지금 프리크라 기업도 돈이 들어오지 않고 경제적으로 뭐 법인세를 많이 내지 않지만 더 좋은 건 말이죠, 이 세금이 없다는 거예요. 누리는 건 왜 돈이 들어온 적이 없기 때문에. 프리크랑 기업도 하나님께서 그 복을 누리게 해 주실 것이기 때문에 돈이 없어도 돼요. 누리기만 하면 되거든요. 돈이 왜 필요합니까? 그래서 저는 제 천을 만든다면 돈 필요 없는 오빠가 되고 싶어요. 왜냐 누리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그래서 저는 그 비법을 알아버렸어요. 솔직히 우리 출연료가 이게 적거든요, 여기 새롭게서 이거 이거 받고 이럴 사람들이 아니에요. 심해, 심해. 근데 왜하 근데 왜 하는 줄 아세요? 하나님이로 누리게 해주시 여기서 받은 돈을 가지고 내가 무엇을 사서 경제 활동을 하지 않지만 그만큼 누리게 해주는 축복이 있다는 것을 전 알고 있거든요. 그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인 거 그래서 우리는 모두 돈 필요 없는 사람들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라는 것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복의 비밀이라는 것을 우리가 많은 사람들에게 증거해야 됩니다지. 고맙습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음악] j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