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호 교수 350번 헌혈 감동 이야기와 생명 나눔의 가치
🩸350번 헌혈, 생명을 살리는 기적: 이종호 교수 감동 인터뷰
🩸 350번 헌혈, 생명을 나누는 숭고한 여정: 이종호 교수님의 감동적인 이야기
오늘 우리는 4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무려 350번 이상 헌혈을 실천해 오신, 진정한 헌혈 영웅이신 이종호 교수님을 모시고 헌혈의 깊은 의미와 가치에 대해 심도 있게 알아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단순히 횟수를 채우는 것을 넘어, 삶의 두 번의 결정적인 순간에서 헌혈의 중요성을 몸소 깨달으시고 헌혈을 통해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시는 이 교수님의 이야기는, 듣는 우리 모두에게 깊은 감동과 함께 헌혈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과연 이 교수님께서는 어떠한 특별한 사연을 가지고 44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헌혈을 꾸준히 이어오셨을까요? 지금부터 교수님의 감동적인 헌혈 여정을 함께 따라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놀랍게도 이종호 교수님께서는 헌혈을 무려 350번 이상이나 하셨다고 합니다. 이는 실로 엄청난 횟수인데요, 단순히 숫자를 떠나 4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꾸준히 생명 나눔을 실천해 오셨다는 점이 더욱 존경스럽습니다. 헌혈이라는 것은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닐뿐더러, 꾸준히 지속하기 위해서는 남다른 사명감과 숭고한 마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과연 이 교수님께서는 헌혈을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을까요? 그리고 350번이 넘는 헌혈을 이어오시는 동안 어떤 보람과 어려움을 느끼셨을까요?
이종호 교수님께서는 젊은 시절부터 꾸준한 운동으로 건강을 관리해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교수님께서는 태권도와 유도를 오랫동안 수련하셨다고 하는데요, 특히 유도 유단자임에도 불구하고 흔히 유도인들에게서 볼 수 있는 ‘만두귀’가 아니라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건강 관리는 헌혈의 중요한 기반이 되는데요, 건강한 신체를 유지해야만 꾸준히 헌혈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이 교수님께서는 평소 건강 관리에 힘쓰시는 모습에서부터 헌혈에 대한 깊은 애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이종호 교수님께서는 헌혈 선교사라는 특별한 직함을 가지고 활동하고 계십니다. 헌혈과 선교,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두 단어가 결합된 헌혈 선교사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요? 이 교수님께서는 헌혈을 통해 생명을 살리는 고귀한 행위를 실천하는 동시에, 헌혈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헌혈 참여를 독려하는 선교 활동까지 펼치고 계신 것입니다. 이는 헌혈을 단순히 봉사활동의 차원을 넘어, 숭고한 신앙적 실천으로 승화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최근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으로 인해 헌혈자 수가 급감하면서 혈액 수급에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혈액 보유량은 적정 수준에 훨씬 못 미치고 있으며, 긴급 수술이나 응급 환자 발생 시 혈액 부족으로 인해 생명을 잃는 안타까운 상황까지 발생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종호 교수님의 헌혈 선교 활동은 더욱 빛을 발하고 있으며, 우리 사회에 헌혈 문화 확산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과연 우리 모두는 헌혈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요?
놀랍게도 최근 혈액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 속에서, 신천지라는 특정 종교 단체가 헌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혈액 수급에 숨통을 틔웠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는 다소 아이러니한 상황인데요, 사회적으로 비판받는 종교 단체가 오히려 헌혈을 통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하지만 이종호 교수님께서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며, “신천지가 할 일이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헌혈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과연 이 교수님의 말씀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헌혈을 통해 사회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종호 교수님께서는 헌혈의 종류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헌혈은 크게 전혈 헌혈과 성분 헌혈로 나뉘는데요, 전혈 헌혈은 혈액의 모든 성분(적혈구, 백혈구, 혈장, 혈소판)을 채혈하는 방식이며, 성분 헌혈은 혈액의 특정 성분(혈장 또는 혈소판)만을 채혈하는 방식입니다. 성분 헌혈은 원심분리기를 이용하여 필요한 성분만 분리해 내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헌혈 종류에 따라 헌혈 간격도 다른데요, 전혈 헌혈은 2개월 이후, 성분 헌혈은 2주 이후 다시 헌혈이 가능합니다. 이종호 교수님께서는 성분 헌혈을 통해 한 달에 두 번씩 헌혈에 참여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코로나19 이후 헌혈 참여가 줄어 혈액 부족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종호 교수님의 헌혈 참여는 더욱 값진 의미를 지닙니다. 혈액은 인공적으로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오직 헌혈을 통해서만 수급이 가능합니다. 특히 긴급 수술이나 응급 환자에게 수혈될 혈액이 부족할 경우, 생명을 잃는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의 적극적인 헌혈 참여가 절실히 요구됩니다. 과연 우리 모두는 헌혈을 통해 소중한 생명을 살리는 숭고한 행위에 동참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종호 교수님께서는 헌혈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를 고등학교 시절 RCY(청소년 적십자) 활동을 하면서부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평소 봉사활동에 관심이 많았던 교수님께서는 RCY 활동과 보이스카웃 활동을 통해 헌혈을 처음 접하게 되었고, 이후 적십자 청년 봉사회를 통해 본격적인 봉사활동과 헌혈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교수님께서는 9,363시간이라는 엄청난 시간 동안 봉사활동에 참여하셨다고 합니다. 이는 헌혈 이전부터 봉사 정신이 투철했던 교수님의 삶의 궤적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종호 교수님께서는 고등학교 시절에는 몸이 약했다고 고백하셨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몸이 약해서 운동을 시작했지만, 오히려 운동을 통해 건강을 되찾고 헌혈이라는 숭고한 봉사활동까지 실천하게 된 것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삶의 두 번의 큰 은혜를 입은 순간이 헌혈을 꾸준히 이어오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과연 교수님께서는 어떤 특별한 은혜를 경험하셨을까요? 그리고 그 은혜가 헌혈과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요?
이종호 교수님께서 처음으로 경험하신 은혜는 바로 아버님의 백혈병 투병 과정에서 겪었던 특별한 경험입니다. 교수님의 아버님께서 백혈병으로 투병하시던 중 수혈이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안타깝게도 혈액형이 맞지 않아 직접 수혈을 할 수 없었습니다. AB형인 교수님은 B형인 아버님께 수혈을 해 드릴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교수님께서는 기도하던 중 문득 학생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야겠다는 생각을 떠올렸습니다. 과연 교수님께서는 어떻게 학생들의 도움을 받아 아버님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을까요?
놀랍게도 이종호 교수님의 간절한 요청에, 10명의 학생들이 헌혈에 자발적으로 참여해 주었다고 합니다. 당시 대학교수였던 교수님의 수업을 듣던 학생들은, 교수님의 아버지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헌혈에 흔쾌히 동참했습니다. 특히 일부 학생은 14번이나 헌혈에 참여하는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백혈병 환자에게 수혈되는 혈소판은 새벽 5시에 채혈하여 바로 검사를 거쳐 수혈해야 하는 긴급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2년 동안 꾸준히 헌혈에 참여하며 교수님 아버님께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학생들의 숭고한 헌신은 생명을 살리는 기적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학생들의 헌신적인 헌혈 덕분에, 이종호 교수님의 아버님은 백혈병 투병 중에도 건강을 회복하실 수 있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학생들의 도움으로 아버님께서 건강을 되찾으시는 모습을 보면서, “이는 분명 하나님의 은혜이며, 학생들을 통해 기적을 만들어주셨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께 직접 헌혈해 드릴 수 없었던 죄송한 마음과 학생들의 헌신에 대한 감사함,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교수님께서는, “100번 헌혈을 통해 아버지께 진 빚을 갚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종호 교수님께서 100번 헌혈을 시작하게 된 감동적인 계기입니다.
학생들의 자발적인 헌혈 참여는, 이종호 교수님의 평소 학생들에 대한 훌륭한 인품과 깊은 신뢰 관계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만약 학생들이 교수님을 존경하고 따르지 않았다면, 헌혈이라는 쉽지 않은 봉사에 그토록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교수님의 인품은 학생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숭고한 헌혈 봉사로 이어진 것입니다. 이는 교육자로서 이종호 교수님이 얼마나 훌륭한 분이신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종호 교수님의 아버님은 백혈병을 극복하셨지만, 이후 재발하여 결국 세상을 떠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학생들의 헌혈로 인해 아버님께서 잠시나마 건강을 되찾으시고 가족들과 소중한 시간을 보내실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아버님을 잃은 슬픔 속에서도, 헌혈을 통해 생명을 살리는 고귀한 가치를 깨달으셨고, 100번 헌혈이라는 목표를 향해 꾸준히 나아가셨습니다. 과연 교수님께서는 100번 헌혈 목표를 달성하셨을까요? 그리고 100번 헌혈 이후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놀랍게도 이종호 교수님께서는 아버지와의 약속이었던 100번 헌혈을 달성하셨습니다. 하지만 100번 헌혈을 달성한 이후, 또 다른 은혜로운 사건을 경험하게 되면서 헌혈에 대한 사명감은 더욱 커졌다고 합니다. 바로 2006년 8월 5일, 교수님 가족에게 닥친 교통사고였습니다. 교수님 가족은 지리산 에스라하우스 성경 통독 학교에 참석한 후, 귀가하던 중 음성 IC 부근에서 대형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새벽 3시에 발생한 이 사고는 20년 역사 중 최대 규모의 중부내륙고속도로 교통사고였으며, 총 8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안타까운 사고였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사고 버스에 교수님의 아내와 두 딸, 가족 모두가 타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다행히 이종호 교수님께서는 당시 학교에 출근해야 했기 때문에 사고 버스에 동승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가족 모두가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교수님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참담했을 것입니다. 사고 당시, 운전석 반대쪽에 앉아있던 교수님의 두 딸은 출발 당시에는 뒷자리에 앉았었지만, 중간에 어머니와 자리를 바꾸면서 기적적으로 생명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교수님의 아내는 전신에 심각한 부상을 입고 생사를 넘나드는 위급한 상황에 놓였습니다. 과연 교수님의 아내는 무사히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을까요?
이종호 교수님의 아내는 온몸에 20군데가 넘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고 합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중상을 입었으며, 특히 머리에는 과다 출혈까지 발생하여 생명이 위독한 상황이었습니다. 보험회사 직원은 교수님께 “사망자 명단에 네 번째로 올라왔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전해주었습니다. 이미 사망 판정까지 내려졌던 교수님의 아내는, 영안실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났다고 합니다. 이는 인간의 의학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기적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며, “하나님께서 쓰시려고 살려주신 것 같다”고 간증했습니다.
사고 당시, 이종호 교수님의 가족들은 각각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었다고 합니다. 작은 딸은 진천, 큰 딸은 청주, 아내는 청주의 준종합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특히 아내가 옮겨진 청주 준종합병원의 영안실은 새로 시설을 갖춘 곳이었으며, 사망 판정을 받은 환자들만 안치되는 곳이었다고 합니다. 사망 판정 후 영안실로 옮겨졌던 아내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은, 정말 기적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기적적인 경험은 이종호 교수님 가족에게 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로 각인되었습니다.
사고 당일 아침, 이종호 교수님께서는 소사역으로 가족들을 마중 나가기로 했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가족들이 도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상함을 느낀 교수님께서 뉴스를 통해 교회 수련회 버스 사고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사고 버스에 가족들이 타고 있었다는 사실을 직감하게 되었습니다. 교회 목사님과 처형, 조카에게 연락하여 사고 상황을 확인한 후, 조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음성 IC 부근 사고 현장으로 향했습니다. 사고 현장으로 향하는 동안, 작은 딸 채린이가 입원한 병원에서 연락이 와 딸이 무사하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지만, 아내의 생사는 여전히 불확실한 상황이었습니다. 과연 교수님께서는 아내를 무사히 만날 수 있었을까요?
사고 소식을 접하고 청주로 향하는 동안, 이종호 교수님께서는 아내가 살아있을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가졌다고 합니다. 뉴스에서는 아내가 사망했을 가능성을 보도했지만, 교수님 마음 속에는 왠지 모르게 아내가 살아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청주 병원에 도착했을 때, 간호사가 아내의 핸드폰을 발견했고, 핸드폰에 저장된 ‘엄마’라는 단축번호로 전화를 걸어 교수님께 연락이 닿게 되었습니다. 기적적으로 아내와 연락이 닿은 교수님은, 급히 청주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병원에서 만난 아내의 모습은 처참했습니다. 머리는 피투성이였고, 눈은 뜨지 못했으며,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종호 교수님의 아내는 머리, 턱, 척추, 대퇴골 등 전신에 걸쳐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습니다. 특히 머리에는 심한 출혈이 있었고, 치아도 여러 개가 부러졌으며, 턱뼈도 탈골된 상태였습니다. 요추 골절과 대퇴골 골절, 발목 분쇄 골절 등 20군데가 넘는 부상을 입어, 그야말로 전신이 만신창이가 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종호 교수님께서는 포기하지 않고 아내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평소 인명구조 강사로 활동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의식을 잃은 아내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며 의식을 확인했습니다. 다행히 아내는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생존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종호 교수님께서는 아내의 생존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의사의 말에도 포기하지 않고, 서울의 대형 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받기로 결심했습니다. 청주 병원 의사는 “살 확률이 거의 없다”고 말했지만, 교수님께서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서울 아산병원으로 아내를 옮겨 10시간이 넘는 대수술을 진행했습니다. 수술을 집도한 의사는 “사망자 외에는 다친 사람이 혼자였기 때문에, 감염 방지를 위해 철저하게 소독하고 수술을 진행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여성이기 때문에 흉터가 최소화되도록 세심하게 수술했다”고 덧붙였습니다. 대퇴골두가 골반에서 탈구되는 심각한 부상이었지만,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아내는 기적적으로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사고 소식을 듣고 진천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이종호 교수님께서는 사랑하는 가족 모두를 잃을 수도 있다는 극도의 불안감과 절망감에 휩싸였다고 합니다. 아내와 두 딸의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교수님의 마음은 찢어지는 듯 아팠을 것입니다. 하지만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교수님께서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가족들의 생명을 구원해 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 교수님의 간절한 기도와 의료진의 헌신적인 노력,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로, 가족 모두는 기적적으로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사고 당시, 이종호 교수님의 큰 딸은 중학교 1학년, 작은 딸은 4학년이었다고 합니다. 어린 나이에 겪은 교통사고의 충격은 매우 컸을 것입니다. 두 딸 모두 뇌진탕 증세를 보였고, 작은 딸은 뇌출혈 진단까지 받았지만, 다행히 깨끗하게 치유되었습니다. 딸들의 다리에 남은 흉터는 아픈 기억이지만,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흉터를 안고 살아가기로 했습니다. 교수님 가족에게 닥친 교통사고는 끔찍한 трагедия였지만, 동시에 가족의 소중함과 삶의 가치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준 소중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사고 후, 이종호 교수님의 교회 성도들은 밤낮으로 기도하며 교수님 가족의 회복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고 합니다. 인천의 대형 교회인 주안장로교회 성도들은 목사님을 비롯하여 권사님, 교인들 모두가 한마음으로 기도하며 교수님 가족에게 힘을 보탰습니다. 성도들의 따뜻한 위로와 기도 덕분에, 교수님 가족은 힘든 시간을 잘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교회 공동체의 사랑은 절망에 빠진 교수님 가족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종호 교수님의 아내는 사고 후유증으로 두개골과 뇌 사이에 물이 차는 증상을 겪으며 극심한 통증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진통제도 듣지 않을 정도의 고통은 한 달 동안 지속되었지만, 한 달 후 기적처럼 통증이 사라지고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사고 전에는 다리에 감각이 없었지만, 통증을 느끼면서 오히려 살아있음을 실감했다고 합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온 아내는, 이후 삶에 대한 감사함과 헌신적인 삶을 살아가기로 다짐했습니다.
이종호 교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백혈병 투병을 통해 100번 헌혈을 결심했고, 가족 교통사고를 통해 200번 헌혈을 추가로 결심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번의 큰 은혜를 경험하면서 헌혈은 단순한 봉사활동이 아닌, 삶의 사명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입니다. 교수님께서는 300번 헌혈을 목표로 다시 헌혈에 매진했고, 마침내 2021년 7월 13일, 300번째 헌혈을 달성하는 감격적인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하지만 300번 헌혈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었습니다.
300번 헌혈을 달성한 날, 이종호 교수님께서는 대한적십자사로부터 감사패를 받았지만, 오히려 “왜 지금까지 더 열심히 헌혈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과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합니다. 300번 헌혈은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니지만, 교수님께서는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에게 헌혈을 통해 사랑을 나누지 못했던 자신을 자책하며, 앞으로 더욱 헌혈에 매진하겠다는 의지를 다졌습니다. 현재도 2주에 한 번씩 꾸준히 헌혈에 참여하고 계시며, 350번 헌혈을 넘어 400번 헌혈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교수님의 헌혈 열정은 식을 줄 모르고 더욱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헌혈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나 오해를 가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헌혈하면 건강에 해롭지 않을까?”, “빈혈이 생기거나 기력이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헌혈을 망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종호 교수님께서는 헌혈은 건강에 전혀 해롭지 않다고 단언하며, 오히려 건강에 유익한 측면도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과연 헌혈은 정말 건강에 안전한 것일까요? 그리고 헌혈이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요?
이종호 교수님께서는 우리 몸속에 있는 혈액량과 헌혈량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성인 기준으로 몸무게의 약 7~8%가 혈액이며, 체중 65kg인 남성의 경우 약 5,000cc의 혈액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 몸에서 사용하는 혈액은 전체 혈액량의 85~90% 정도이며, 나머지 10~15%는 비상시를 대비하여 여유분으로 가지고 있는 혈액입니다. 헌혈 시 채혈하는 혈액량은 320~500cc 정도로, 전체 혈액량의 10% 미만에 해당하며, 여유 혈액 범위 내에 있기 때문에 건강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헌혈은 새로운 혈액 생성을 촉진하여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하고, 건강 유지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헌혈은 건강상의 이점뿐만 아니라, 사고로 인해 손실된 혈액을 보충하는 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사고로 인해 혈액을 손실했을 때, 헌혈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혈액 생성 능력이 뛰어나 회복 속도가 빠릅니다. 또한 여성의 경우 생리 기간 중 헌혈을 통해 혈액을 배출하면, 새로운 혈액 생성을 촉진하여 건강 유지에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헌혈은 건강에 해롭다는 오해와 달리, 오히려 건강에 유익한 측면이 많은 숭고한 행위입니다. 과연 우리 모두는 헌혈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적극적으로 헌혈에 참여해야 하지 않을까요?
60대인 이종호 교수님께서는 헌혈을 꾸준히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건강한 모습으로 50대로 오해받을 만큼 젊고 활기찬 삶을 살고 계십니다. 이는 헌혈이 건강에 해롭다는 속설이 근거 없는 낭설임을 입증하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헌혈이 건강에 해롭다면, 350번이 넘는 헌혈을 해온 교수님께서 건강하게 생활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교수님은 오히려 헌혈을 통해 건강을 유지하고 더욱 활기찬 삶을 살아가고 계십니다.
이종호 교수님께서는 헌혈을 해야 하는 세 가지 이유를 명쾌하게 제시해 주셨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애국자가 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헌혈은 단순히 개인의 봉사활동을 넘어, 국가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우리나라 혈액 자급자족률은 아직 100%에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특히 응급 상황 발생 시 혈액 부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헌혈은 이러한 혈액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국민 건강을 지키는 데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과연 헌혈은 어떻게 애국으로 연결될 수 있을까요?
놀랍게도 우리나라는 혈액 자급자족이 어려운 상황이며, 부족한 혈액은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다고 합니다. 혈액은 인공적으로 만들 수 없기 때문에, 헌혈을 통해 수급해야 하지만, 헌혈자 수 부족으로 인해 혈액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혈액 보유량은 최소 5일분을 유지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3일분도 채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혈액 부족은 곧 국민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혈액 자급자족을 위해서는 1분에 3.4명, 1시간에 203명, 한 달에 4,800명, 1년에 300만 명 이상이 헌혈에 참여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헌혈 참여 인구는 연간 260만 명 수준으로, 목표치에 40만 명이나 부족한 상황입니다. 혈액 부족분을 해외에서 수입하는 데 드는 비용은 연간 700억 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만약 우리 모두가 헌혈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면, 혈액 수입 비용 700억 원을 절약하고, 외화 유출을 막을 수 있습니다. 헌혈은 곧 국가 경제에도 기여하는 애국적인 행위인 것입니다. 과연 우리 모두는 헌혈을 통해 애국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이종호 교수님께서는 헌혈을 많이 하면 세제 혜택이나 특별한 보상이 있을 것이라는 질문에, “아쉽게도 금전적인 혜택은 없다”고 답변하셨습니다. 헌혈은 순수한 봉사활동이기 때문에, 금전적인 보상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군 입대 시 헌혈 횟수에 따라 가산점을 받을 수 있으며, 예비군 훈련 면제 혜택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혜택은 헌혈의 숭고한 가치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입니다. 진정한 헌혈의 보상은 물질적인 혜택이 아닌, 생명을 살리는 숭고한 기쁨과 보람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종호 교수님께서 제시하는 헌혈을 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바로 레드커넥트를 통한 건강 관리입니다. 레드커넥트는 대한적십자사에서 운영하는 헌혈 정보 시스템으로, 헌혈자는 레드커넥트를 통해 자신의 헌혈 기록과 건강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헌혈 후 혈액 검사 결과를 레드커넥트 앱이나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자신의 건강 상태를 꾸준히 체크하고 관리할 수 있습니다. 헌혈은 단순한 봉사활동을 넘어, 정기적인 건강 검진 기회를 제공하는 혜택도 누릴 수 있습니다.
레드커넥트를 통해 헌혈자는 혈액 검사 결과를 확인함으로써, 자신의 건강 상태를 수시로 점검할 수 있습니다. 혈액 검사 항목에는 간 기능, 신장 기능, 혈당, 콜레스테롤 등 다양한 건강 지표가 포함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고 예방할 수 있습니다. 특히 50대 이상 성인의 경우, 정기적인 건강 검진이 필수적인데, 헌혈을 통해 건강 검진 효과까지 얻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헌혈은 건강도 지키고 생명도 살리는, 정말 고귀한 행위입니다.
실제로 이종호 교수님께서는 교회 성도들과 함께 단체 헌혈을 진행하면서, 헌혈을 통해 건강 이상을 발견한 사례를 소개해주셨습니다. 교회 권사님 한 분이 단체 헌혈에 참여했는데, 헌혈 전 혈압 측정 결과 고혈압 수치가 높게 나와 헌혈을 할 수 없었습니다. 평소 혈압이 정상이라고 생각했던 권사님은 헌혈을 계기로 고혈압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후 꾸준한 건강 관리를 통해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만약 헌혈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고혈압 사실을 모른 채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었습니다. 헌혈은 건강 이상을 조기에 발견하고 예방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이종호 교수님께서 제시하는 헌혈을 해야 하는 세 번째 이유는 바로 신앙적인 사명입니다. 교수님께서는 기독교 인구가 천만 명이 넘는 상황에서, 40만 명 분의 혈액 부족은 그리스도인들의 헌혈 참여를 통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헌혈은 곧 생명을 살리는 가장 고귀한 사랑의 실천이며, 우리 이웃의 생명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성경의 가르침에 부합하는 행위입니다. 헌혈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고,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과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헌혈을 통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헌혈은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살리는 숭고한 행위입니다. 우리 몸에서 거저 주신 피를 나누어, 생명을 잃어가는 이웃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할 수 있습니다. 헌혈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세상에 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갈 수 있습니다. 이종호 교수님께서는 헌혈을 통해 “믿는 사람들의 피가 온 세상에 퍼져나가, 안민상, 봄에 쇼라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반대로 신천지와 같은 이단 단체의 헌혈 참여가 늘어나는 것은 경계해야 하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헌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헌혈 문화를 주도해야 합니다. 과연 우리 모두는 헌혈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숭고한 사명에 동참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종호 교수님께서는 헌혈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개인적으로 헌혈증서 기증 은행 밴드 어플리케이션을 운영하고 계십니다. 헌혈증서 기증 은행은 헌혈증서를 기증받아, 수혈이 필요한 환자들에게 전달하는 플랫폼입니다. 교수님께서는 헌혈을 통해 모은 헌혈증서를 기증 은행에 기증하여,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수혈을 받지 못하는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헌혈증서 기증은 헌혈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하는 의미 있는 활동입니다.
마지막으로 이종호 교수님께서는 두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헌혈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다시 한번 강조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백혈병 투병과 가족 교통사고라는 두 번의 큰 어려움을 겪으면서, 생명의 소중함과 헌혈의 가치를 몸소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이러한 경험을 통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께서 자신을 헌혈 선교사로 쓰시려고 두 번이나 살려주셨다”고 고백했습니다. 의사마저 포기했던 아내를 살려주시고, 두 딸을 건강하게 지켜주신 것은 분명 하나님의 기적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종호 교수님께서는 아내의 사고 당시, 응급실에서 아내를 치료했던 의사가 과거 학생들에게 헌혈을 받았던 학생이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밝히셨습니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수님과 학생들의 헌신적인 헌혈을 기억하시고, 기적적인 방법으로 생명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또한 사고 이후, 아내는 신앙을 갖게 되었고, 현재는 미국에서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교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의사까지 바꿔가며 아내를 살려주신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확신하며, 헌혈 선교사로서 더욱 헌신적인 삶을 살아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종호 교수님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헌혈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헌혈은 단순히 피를 나누는 행위를 넘어,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고 생명을 살리는 숭고한 봉사입니다. 우리 모두 헌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혈액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이웃의 생명을 살리는 데 동참해야 합니다. 헌혈은 건강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자, 사랑을 실천하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입니다. 오늘부터 헌혈에 동참하여, 생명을 나누는 숭고한 여정에 함께 하시는 것은 어떨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