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과 아픔 속에서 피어난 말씀의 힘과 인생 변화 간증
화장실 냄새나는 성경, 역경 속에서 피어난 말씀의 향기
✨ 너의 약함이 강함이 되리라 ✨ㅣ박길호 목사ㅣ새롭게하소서
안녕하세요, 새롭게 하소서 주영훈입니다. 오늘 귀한 손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눌 텐데요, 이 자리는 모든 출연자분들이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야 하는 자리인 만큼, 깊은 기도와 묵상으로 준비하신다고 합니다. 오늘 모신 손님 역시, 자신의 아픈 과거를 드러내는 것에 대해 망설임이 많으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기도 끝에 이곳이 은혜의 자리임을 깨닫고 용기를 내어주셨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송탄중앙침례교회의 박길호 목사님이십니다. 목사님, 귀한 걸음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주영훈: 목사님, 안녕하세요.
박길호: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송진: 반갑습니다, 목사님.
박길호: 네, 안녕하세요. 이렇게 유튜브에서만 보던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니, 감회가 새롭고 조금은 낯설기도 합니다. 사실, 출연을 망설였던 것도 사실입니다. 과거의 간증들이 당시 상황에는 맞았지만, 지금은 송탄중앙침례교회의 담임목사로서, 그것이 어떻게 비춰질까 하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도하는 가운데, 이 또한 은혜의 자리가 될 수 있음을 깨닫고 용기를 내었습니다.
주영훈: 성도님들이 정말 좋아하실 겁니다. TV에서, 유튜브에서 뵙던 목사님을 직접 뵈니 더욱 반가워하실 것 같습니다.
송진: 제가 목사님 인터뷰 내용을 미리 봤는데요, 하나님 말씀의 능력을 아주 진하게 체험하셨다고 해서 정말 놀라웠습니다. 어떤 향기였나요?
박길호: 아, 그때는 제가 신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사역과 가정적인 어려움이 겹쳐서 너무 힘든 시기였죠. 그래서 금요기도회 때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군대에 보내주십시오. 이 힘든 상황에서 벗어나 연단받게 해주십시오. 특공대 다음으로 힘든 곳으로 보내주십시오" 라고 구체적으로 기도했습니다. 놀랍게도 한 달 반 만에 영장이 나왔고, 제가 가게 된 곳은 22사단, 그 유명한 '마' 자가 들어가는 부대였습니다.
송진: '마' 자 부대요?
박길호: 네, '마' 자가 '말' 마(馬) 자입니다. 안질, 동내리... 산이 높고 바람이 세서 말도 주저앉는다는 곳이었죠. 군 생활 자체가 힘들었지만, 특히 주일 예배를 드리는 것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선임들이 소각장으로 데려가 예배를 방해하고, 심지어는 머리를 땅에 박고 치약 뚜껑을 머리에 박는 고통까지 겪었습니다. 저녁에는 교회 가는 것을 막으려고 일찍 깨우는 등, 예배를 방해하는 행위가 계속되었습니다.
박길호: 점점 마음이 무너져 내리고 우울증까지 올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군종병에게 부탁해 손바닥만 한 작은 신구약 성경책을 몰래 구했습니다. 그리고 야간 근무 때마다 푸세식 화장실에 가서 30~40분씩 성경을 읽었습니다. 놀랍게도 매일 성경을 읽으니 말씀이 살아 움직이는 듯했고, 마음속에 큰 불이 붙는 것 같았습니다. 그 말씀 덕분에 군 생활의 어려움을 담대하게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박길호: 그런데 어느 날, 소대에서 병장이 갑자기 냄새를 맡더니 "야, 무슨 냄새야? 똥 냄새 같은 거 안 나?" 하면서 냄새를 쫓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제 허벅지를 잡더니 "여기네!" 하는 겁니다. 알고 보니 제가 화장실에서 몰래 보던 성경책을 허벅지 건빵 주머니에 넣어놨는데, 그 성경책에서 푸세식 화장실 냄새가 진동했던 겁니다! 냄새나는 성경책 때문에 엄청나게 혼났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기뻤습니다. 말씀의 향기가 제 몸에 뱄다는 사실이, 마치 말씀이 제 삶에 깊이 스며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제대 후에는 말씀으로 모든 사역을 감당하리라 다짐했습니다. 그 성경책은 30년 가까이 되었지만 아직도 가지고 있습니다. 가끔 냄새가 나는 듯도 합니다. (웃음)
송진: 정말 말씀의 향기가 진하게 밴 성경책이네요. 그 냄새나는 화장실에서 말씀을 읽으셨다니, 얼마나 말씀이 간절하셨으면...
주영훈: 그야말로 꿀송이처럼 달게 말씀을 드신 거네요.
박길호: 신학교 때는 말씀의 소중함을 몰랐습니다. 군 생활의 절박한 상황 속에서야 비로소 말씀의 능력을 깨달았습니다. 푸세식 화장실 냄새는 정말 심합니다. 독한 암모니아 냄새... 그런데 그 안에서 계속 성경을 읽다 보니, 성경책에 냄새가 뱄는지도 몰랐습니다.
주영훈: (웃음) 혹시... 변비 있으셨던 건 아니시죠?
박길호: 아, 아닙니다. (웃음)
송진: 그렇게 말씀으로 뿌리내린 30년, 목회자의 길을 걸어오셨습니다. 지구촌교회에서도 사역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박길호: 네, 이동원 목사님께서 시무하시던 지구촌교회에서 18년, 거의 20년간 사역했습니다. 은혜로운 시간이었죠. 이후 구리 지구촌교회에서 8년간 담임목사로 사역했습니다. 그리고 작년 7월, 송탄중앙침례교회에 부임하여 현재까지 사역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군 생활 중 경험했던 말씀의 뜨거움과 능력이, 제 선택의 기준이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신하는 능력이 되었습니다.
주영훈: 목사님은 마치 하나님 나라의 공무원 같으시네요. 구리에서 송탄으로 발령받으신 것처럼. (웃음) 지구촌교회는 20년 가까이 사역하시면서 정이 많이 드셨을 텐데, 떠나기 쉽지 않으셨겠습니다.
박길호: 네, 맞습니다. 지구촌교회는 정말 사랑을 많이 받았고, 저 또한 아끼는 곳이었습니다.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쉽지 않았습니다.
주영훈: 목사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 또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끌어주셨는지 좀 더 자세히 나눠볼까요? 어린 시절, 아버지 때문에 힘드셨다고 들었습니다.
박길호: 네... 아버지 이야기는 방송에서 하기가 조심스럽습니다. 하지만 제 삶의 아픔이기도 하기에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좋았던 추억도 많지만, 아픔 또한 깊습니다. 어느 휴일, 아버지가 갑자기 유명한 산에 가자고 하셨습니다. 계곡에 도착하니, 낯선 아주머니와 딸이 저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저에게 그 아주머니를 '이모'라고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곧 아버지의 외도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되었습니다.
박길호: 더욱 충격적이었던 것은, 아버지께서 어머니에게 비밀로 하라고 강요하셨다는 것입니다. "절대 어머니에게 말하지 마라" 라는 아버지의 단호한 말씀에, 어린 저는 큰 혼란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어머니를 보호해야겠다는 책임감도 느꼈습니다. 큰 아들이었으니까요.
송진: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비밀이었을 텐데요.
박길호: 결국 비밀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어머니께서 아버지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되셨습니다. 아버지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오랫동안 일하시다가 귀국 후 사업을 시작하셨지만, 사업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힘든 상황 속에서 술에 의존하게 되셨고, 술에 취해 집에 와서 어머니께 폭언과 폭행을 하셨습니다. 어린 저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낯설고 두려웠습니다.
송진: 부모님의 불화는 자녀들에게 큰 상처가 되죠. 당시 상황이 어떠셨나요?
박길호: 저녁마다 부모님의 싸우는 소리가 들리면 너무 무서웠습니다. 아버지 발자국 소리만 들려도 이불을 뒤집어쓰고 동생들과 숨죽여 잠든 척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의 폭력이 너무 심하다고 느껴졌을 때, 저도 모르게 용기가 났습니다.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아버지께 "아버지는 우리 집에 해준 게 뭐 있어요!" 라고 소리쳤습니다. 아버지는 화가 나셨는지 저를 때리셨고, 저는 잠시 정신을 잃었습니다.
박길호: 정신을 차려보니, 어둠 속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빗물인가 했는데, 어머니께서 제 얼굴에 연고를 발라주시며 울고 계셨습니다. 어머니는 혼잣말로 "기호야, 엄마가 너 때문에 참으려고 했는데, 너무 힘들어서 안 되겠다. 너하고 여동생은 아빠랑 살고, 남동생은 내가 데려가야겠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린 마음에 너무 무서웠습니다. 어머니 손을 잡고 "엄마, 가지 마세요" 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큰 아들이었기에 차마 그럴 수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잠이 들었고, 다음 날 아침, 어머니는 남동생을 데리고 집을 나가셨습니다.
송진: 당시 목사님 나이가...
박길호: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입학을 앞둔 시기였습니다.
송진: 막냇동생은 몇 살이었나요?
박길호: 네 살 정도였습니다. 어머니는 어린 남동생을 데리고 떠나셨고, 저와 여동생은 아버지와 남겨졌습니다. 아버지는 이후에도 여러 번 재혼하셨습니다.
송진: 사춘기에 어머니까지 떠나셨으니, 정말 힘든 시기였겠습니다.
박길호: 가장 힘들었던 것은, 집에 엄마가 없다는 사실과, 학교에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에는 학교에서 보충수업비와 적금을 내야 했는데, 저희 집은 형편이 어려워 돈을 낼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중학교 담임 선생님이 조회 시간에 돈을 못 낸 학생 4명을 앞으로 불러내시더니, 출석부로 머리와 뺨을 때리셨습니다. "돈 없는 놈들은 맞아야 돼. 학교도 다니지 말아야 돼!" 라고 소리치셨습니다. 저는 너무나 큰 수치심을 느꼈습니다.
박길호: 교실 밖으로 쫓겨나면서, 저는 두 가지를 결심했습니다. 첫째, 선생님이 되어, 저처럼 어려운 환경에 있는 아이들을 돕겠다고. 둘째, 돈을 벌어, 다시는 돈 때문에 수치심을 느끼지 않겠다고.
송진: 요즘 세상에 그런 일이 있었다면 뉴스에 나왔겠죠.
주영훈: 사회적으로 매장당했을 겁니다.
송진: 돈을 벌기 위해 곧바로 일을 시작하신 건가요?
박길호: 당시에는 청소년 아르바이트 자리가 흔치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신문 배달 광고를 보고 조선일보 신문사에 찾아가 신문 배달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250부, 나중에는 340부까지 배달했습니다.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신문을 배달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습니다. 잠이 많을 나이인데, 알람 소리를 못 듣고 늦잠을 자는 날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신문사 총무 아저씨에게 부탁해, 집 담벼락에 끈을 묶어 제 방까지 연결했습니다. 아저씨가 새벽에 끈을 잡아당겨 깨워주셨습니다.
주영훈: 거의 6.25 때 이야기네요. 목사님, 정말 젊어 보이시는데...
송진: 정말 대단하시네요.
박길호: (웃음)
송진: 그 이후 어머니와 연락은...
박길호: 어머니와 연락이 끊긴 것은 아닙니다. 어머니는 1년에 한 번, 제가 보충수업을 하는 시기에 학교로 찾아오셨습니다. 학교 앞에서 만나 식사를 하고, 용돈을 주시곤 했습니다. 헤어질 때면 어머니는 항상 먼저 가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먼저 가는 모습을 확인하고, 뒤돌아 주저앉아 우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어머니의 마음속에는 항상 자식에 대한 사랑이 가득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송진: 어머니께서 얼마나 마음 아파하셨을까요. 아버지는 계셨지만, 의지하기는 힘드셨을 것 같고... 주변에 의지할 어른은 없었나요?
박길호: 오히려 의지할 곳 없는 상황이, 저를 예수님께로 이끄는 준비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께 의지할 수 없고, 신문 배달은 힘들고... 마음이 가난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친구들과의 관계는 좋았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 김태민이라는 친구를 짝꿍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정말 잘생긴 친구였죠. (웃음) 점심시간에 도시락 뚜껑에 손을 얹고 기도하는 친구의 모습이 신기했습니다. 교회 다니는 친구를 처음 봤거든요.
박길호: 5월 체육대회 때, 친구가 교회에 가자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교회에 가면 예쁜 여자 친구들이 많다는 말에 솔깃했습니다. (웃음) 남녀공학이 아니었던 시절이라... 친구의 꼬임에 넘어가 교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가보니, 소문과는 달리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봐줄 수 없는 얼굴들' 이 많았습니다. (웃음) 실망해서 바로 도망치듯 나왔습니다. 하지만 친구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12월 24일, 크리스마스 행사가 있다며 또 저를 교회로 이끌었습니다. 쇼처럼 재미있을 거라면서요.
박길호: 크리스마스 '쇼' 에 또 솔깃해서, 이번에는 맥주를 일곱, 여덟 병 마시고 교회에 갔습니다. (웃음) 중창단 공연을 보는데,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이 가진 건강 없으나" 라는 가사가 제 마음을 울렸습니다. 가진 것 없고, 건강도 안 좋고, 공부도 못하는 저의 모습과 똑같았습니다. 그런데 후렴 가사가 "공평하신 하나님" 이었습니다. 순간 화가 났습니다. '이런 비참한 삶이 공평이란 말인가!' 성경책을 던질 뻔했습니다. 겨우 참고 밖으로 뛰쳐나왔습니다.
박길호: 교회 문을 나서려는데, 덩치 큰 문지기 누나가 저를 막아섰습니다. 덩치 큰 여자만 보면 힘이 빠지는 묘한 징크스가 있는데... (웃음) 누나를 노려보며 "건들지 마세요!" 라고 외치려는데, 누나가 제 손목을 덥석 잡았습니다. 순간 힘이 쭉 빠져버렸죠. 누나는 힘없는 저를 2층 본당에서 1층 교육관으로 끌고 갔습니다. 어두컴컴한 교육관에 덩그러니 앉혀놓고 불을 켜더니, 팔짱을 낀 채 저를 빤히 쳐다보는 겁니다. 무서웠습니다. 욕이라도 퍼부으려는데, 누나가 제게 "얘가 얼마나 힘들면 술 취해서 교회까지 왔을까. 예수님은 이런 너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고 기대하신다"** 라고 말했습니다.
박길호: 사랑, 기대... 평생 처음 들어보는 단어였습니다. 누나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얼어붙었던 제 마음이 녹아내리는 듯했습니다.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누나를 뿌리치고 뛰쳐나왔지만, 그날 누나에게 들었던 위로의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결국 친구 태민이를 따라 다시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2년 정도 교회 친구들과 어울리며 지냈습니다.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수련회에서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고, 제 죄를 고백하며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송진: 덩치 큰 누님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목사님의 인생을 바꾼 셈이네요.
박길호: 정말 그렇습니다. 삶의 변화는 거창한 설교나 프로그램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만나는 평범한 사람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 진심 어린 사랑과 격려를 통해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송진: 이후 상처 입은 마음은 좀 치유되었나요?
박길호: 예수님을 만났지만, 여전히 마음속에는 열등감이 남아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열등감인지도 몰랐죠. 군 제대 후, 말씀의 은혜를 갈망하며 대학부에 등록했습니다. 명문대생들이 가득한 대학부에서, 체계적인 말씀 훈련을 받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대학부에 신학생은 저 혼자였습니다. 대부분 서울대, 연고대... 명문대생들이었습니다. 분당, 천당 밑에 분당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웃음)
박길호: 처음에는 은혜롭고 도전이 되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열등감이 느껴졌습니다. 학력 콤플렉스... 나는 비록 학벌은 부족하지만, 거룩하고 구별된 삶으로 승부해야겠다고 다짐하며 더욱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하지만 열심을 낼수록 지쳐갔습니다. 어느 날, 지친 마음으로 기도하는데, 문득 중학교 3학년 때 문지기 누나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예수님은 너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고 기대하신다." 그 위로의 말씀이 다시금 제게 힘을 주었고, 열등감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송진: 연약함까지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셨군요.
박길호: 그렇습니다. 과거의 아픔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오히려 그 아픔이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송진: 어린 시절 선생님이 되겠다는 꿈을 가지셨는데, 결국 하나님께서 그 꿈을 목회자의 길로 이끄셨네요.
박길호: 그렇습니다. 원래는 선생님이 꿈이었지만, 고등학교 3학년 때 친구들의 꼬임에 넘어가 신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웃음) 친구 따라 강남이 아니라, 친구 따라 신학교에 간 셈이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함께 신학교에 가자고 했던 친구들은 모두 떨어지고, 저만 합격했습니다. (웃음) 개척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했는데, 어린 학생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 제가 겪었던 아픔과 솔직한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위로를 받고, 변화되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약함이 강함이 될 수 있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송진: 지구촌교회에서도 청소년 사역을 하셨죠?
박길호: 네, 지구촌교회 청소년 사역을 하면서 또 한 번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지구촌교회는 중산층, 상류층 자녀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과연 내가 이 아이들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까?'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저의 착각이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부족함 없어 보이는 아이들도, 마음속 깊은 곳에는 상처와 아픔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설교 시간에 제 삶의 고백과 진솔한 말씀을 전하자, 아이들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300명이 넘는 청소년들이 예배를 드리면서, 처음에는 딴 짓 하던 아이들이 점점 설교에 집중하고, 변화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다시 한번 '나의 약함이 오히려 강함이 될 수 있구나' 라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송진: 특별히 기억에 남는 학생이 있나요?
박길호: 많죠. (웃음) 정말 많은 학생들이 변화되었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학생이 있습니다. 어느 날, 예배 시간에 옷을 야하게 입은 여학생이 눈에 띄었습니다. 중학생답지 않은 노출 심한 옷차림... 시선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죠. 예배 후, 한 안수집사님께서 화가 나셔서 그 학생을 끌고 나가려고 했습니다. 저는 안수집사님께 학생을 데려와, 소그룹실에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학생은 다리를 꼬고 앉아, 샤론 스톤처럼 도도한 자세를 취했습니다.
박길호: 당황스러웠지만, 저는 학생에게 먼저 "너 정말 예쁘다" 라고 칭찬했습니다. 그랬더니 학생이 피식 웃으며 "목사님, 보는 눈은 있으시네요?" 라고 말했습니다. (웃음) "그렇지, 목사님은 하나님 눈으로 보니까, 네가 얼마나 고귀하고 아름다운지 알 수 있지. 너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정말 예쁜 아이야." 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자주 보자고, 따뜻하게 환대해주었습니다. 신기하게도, 그 학생은 다음 주부터 교회에 열심히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옷차림은 여전히 야했지만... (웃음)
박길호: 여름 수련회 때, 그 학생이 은혜를 받고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며칠 후, 깁스를 하고 나타났길래 물어보니, 분당에서 유명한 여자 일진이었다는 겁니다. 지구촌교회 청소년부에 '잘생긴 남자애들이 많다'는 소문을 듣고 교회에 왔는데, 예수님을 만나 변화되면서 일진 생활을 청산하려 하자, 일진 친구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해 팔이 부러졌다는 것입니다. 팔이 부러진 상황에서도, 밝게 웃으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학생의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송진: 그 학생은 지금 어떻게 지내나요?
박길호: 가끔 연락이 옵니다. 지금은 집사가 되어, 두 아이를 낳고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송진: 일진도 함부로 나갈 수 없는 무서운 세계군요. (웃음) 목사님 이야기는 정말 영화 같습니다. 청소년 사역을 하시면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는 경험도 하셨나요?
박길호: 물론입니다. 어린 시절 상처가 십자가 은혜로 치유되었지만, 여전히 성화의 과정은 진행 중입니다. 아이들에게 '약함이 강함'이 된다고 설교하지만, 저 또한 여전히 연약하고 부족한 인간입니다. 특히 5월 가정의 달, 어버이 주일 설교를 준비할 때면 괴로웠습니다. 저는 아버지께 효도하지 못했는데, 효도를 설교해야 하다니... 내 안에 없는 것을 설교하려니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솔직하게 제 연약함을 드러내기로 했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공경하지 못하는 불효자입니다' 라고 고백하며 설교했습니다. 그랬더니 오히려 청중들이 큰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박길호: 제 솔직한 고백에 공감하고 위로를 받는 성도님들을 보면서, 오히려 제가 위로를 받았습니다. 설교 후, 덩치 큰 청년이 어깨를 툭 치며 "목사님, 걱정 마세요. 저희도 다 똑같아요." 라고 위로해주더군요. (웃음)
송진: 목사님 주변에는 덩치 큰 분들이 많으시네요. (웃음) 아버지와의 관계는 지금 어떠신가요?
박길호: 결혼 후에도 아버지와의 관계는 여전히 어려웠습니다. 예수님을 믿었지만, 인간적인 노력만으로는 관계가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잊을 수 없는 경험이 있습니다. 전주 신흥고등학교에서 3일간 부흥회를 인도했을 때였습니다. 마지막 날 아침, 큐티 본문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장면이었습니다.
박길호: 본문을 묵상하면서, '오늘 학생들을 말씀으로 섬겨야겠다'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나님께서 아버지 얼굴을 떠올리게 하셨습니다. '집회 끝나고 광주 계신 아버지를 찾아가 등산화를 선물하라' 는 마음의 부담을 주셨습니다. 처음에는 외면하고 싶었습니다. 피곤한데... 아버지께 뭘... 하지만 하나님께서 강하게 마음을 주셔서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집회 후, 광주로 가서 아버지께 등산화를 사드렸습니다. 아버지는 깜짝 놀라셨습니다. 등산화를 사주겠다는 아들의 말에... 아버지는 평소 등산을 즐겨 하셨는데, 등산화가 낡았다고 하시더군요. 새 등산화를 선물 받고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박길호: 아버지께 등산화를 신겨드리고 함께 산에 오르는데, 문득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산에 갔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낯선 아주머니와 딸... 순간 울컥했습니다. 아버지께 조심스럽게 여쭤봤습니다. "아버지, 저한테 미안하다는 말씀, 왜 한 번도 안 하셨어요?" 아버지는 하늘을 멍하니 쳐다보시더니, "미안하다... 마음속으로는 항상 미안하게 생각했는데, 말이 안 나왔다. 네가 자랑스럽다" 하시며 눈물을 글썽이셨습니다. 아버지의 눈물을 처음 보았습니다.
박길호: 저 또한 아버지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버지의 진심을 몰라드린 것 같아서... 그 자리에서 아버지께 복음을 전했고, 아버지는 예수님을 영접하셨습니다. 이후 아버지는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셨고, 술도 끊으셨습니다. 아버지의 삶에 조금씩 변화가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감사했습니다.
송진: 청소년 사역도 하셨고, 아버지와의 관계도 회복하셨고... 이제 자녀들과의 관계는 어떠신가요?
박길호: 어린 시절 부모님과의 불화 때문에, 결혼 후 자녀들에게는 좋은 아빠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화를 잘 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훈계의 필요성을 강조하지 않습니까. 아내는 성경적 양육관을 가지고 아이들을 엄하게 훈육했습니다. 아내가 아이들을 혼내는 모습을 보면, 혼나는 아이에게서 어린 시절 제 모습이 투영되어 보였습니다. 아버지께 혼나 울고 있는 어린 박길호... 저도 모르게 아내에게 "그만 하라" 며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박길호: 그러면 아내와 다투게 되고, 또 제 자신을 자책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습니다. 하지만 감사한 것은, 아이들에게 제 연약함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빠가 화내서 미안하다. 아빠를 위해 기도해줄래?" 라고 말하면, 딸들은 작은 손으로 아빠를 위해 기도해주었습니다. 믿음 안에서 가정을 이루어갈 수 있었던 것은 아내의 지혜로운 양육 덕분입니다.
송진: 두 따님이 목사님을 정말 좋아하겠네요. 야단치는 엄마와, 허당 아빠. (웃음)
박길호: (웃음) 아내에게 엄마의 빈자리를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무조건적인 사랑과 지지를 갈망했던 것이죠. 아내가 제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면, '나를 무시하는 건가, 외면하는 건가' 하는 서운함이 밀려왔습니다. 처음에는 아내 탓이라고 생각했지만, 복음 안에서 제 자신을 직면하면서, 문제는 아내가 아니라, 제 안에 해결되지 않은 상처 때문임을 깨달았습니다.
송진: 원래 엄마들이 야단을 많이 치죠. 아빠들은 허허실실... (웃음)
박길호: 아내가 현명하게 중심을 잡아주어서, 두 딸이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습니다.
송진: 목사님은 냄새나는 화장실에서 말씀을 통해 목회자의 꿈을 키우셨는데, 처음 사역도 쉽지 않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박길호: 개척교회에서 처음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개척교회 사역 후, 지구촌교회로 옮겨 사역했습니다. 지구촌교회에서 18년간 사역하면서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행복한 사역이었죠. 그런데 어느 날, 구리 지구촌교회 담임목사 자리가 공석이라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어려움에 처했다는 소식에, 하나님께서 저를 그곳으로 보내시는 것 같다는 마음의 부담을 느꼈습니다. 지구촌교회에 구리 지구촌교회 담임목사로 가겠다고 말씀드렸더니, 당시 진재혁 담임목사님께서 3개월 동안 사인을 안 해주셨습니다.
박길호: 고민 끝에, 100일 새벽 금식기도를 시작했습니다. 100일째 되는 날, 담임목사님께 제 결심을 말씀드리고 구리 지구촌교회로 가게 되었습니다. 구리 지구촌교회는 담임목사님 부재로 인해 교인들이 분열되고, 분위기가 침체되어 있었습니다.
송진: 백일 새벽기도까지 하시다니, 거의 노조 파업 수준이네요. (웃음)
주영훈: 안 보내주면 계속 기도할 거다, 뭐 이런... (웃음)
박길호: (웃음) 부족한 저를 귀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송진: 어려운 상황의 교회에 왜 가려고 하셨나요?
박길호: 군대에서 말씀의 능력을 체험한 후, 말씀이 제 삶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고민하던 중, 고린도전서 10장 13절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10:13).
박길호: 하나님께서는 감당할 시험만 주시고, 피할 길 또한 열어주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오히려 힘들고 어려운 길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피할 길임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살아온 고난과 아픔이, 구리 지구촌교회 성도들에게 위로와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습니다.
송진: 막상 가보니 어떻던가요?
박길호: 담임목사님 부재로 인해, 교인들이 분열되어 있었고, 영적으로도 많이 지쳐 있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아픔을 공감해주는 것뿐이었습니다. 억압하거나 가르치려 하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고 사랑으로 품어주었습니다. 예배 시간에 제 연약함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함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교회가 점차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박길호: 어쩌면, 교인들은 이미 마음이 열려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랜 고통과 아픔 속에서, 말씀을 통해 위로받고 치유받기를 갈망하고 있었던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제게 귀한 기회를 주셨습니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8년간의 구리 지구촌교회 사역은 제게 큰 행복이었습니다.
송진: 교회 분열, 갈등 이야기가 많이 들리는데, 목사님 보시기에 교회 분열의 원인과 극복 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박길호: 교회 분열의 중심에는 목회자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목회자가 먼저 자신을 내려놓고, 죽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었다면, 교만도, 자랑도, 내세울 것도 없을 것입니다. 구리 지구촌교회에서 분열된 교회를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교인들을 훈계하거나 가르치려 하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고, 사랑으로 연합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송진: 교회 리더십으로서 목사님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주영훈: 목사님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께서 목사님께 강한 마음을 주실 때, 인간적인 마음으로는 거부하고 싶을 때가 많을 것 같습니다. 목회도 마찬가지일 텐데, 인간적인 생각과 하나님의 뜻이 충돌할 때,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있을까요?
박길호: 갈등이 있을 때마다 즉각적으로 순종한다고 말하면 거짓말일 겁니다. 저 또한 갈등하고 고민합니다. '갈까 말까, 보일까 숨길까...' 하지만 갈등 속에서 순종을 선택했을 때,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셨던 과거의 경험들을 떠올립니다. 과거의 순종이 또 다른 순종을 낳는다는 것을 믿습니다.
박길호: 승리가 승리를 낳는다는 말처럼, 과거의 순종 경험이, 현재의 갈등을 극복하고 순종하도록 이끌어줍니다.
주영훈: 오늘 목사님 뵈니, 야고보서에 나오는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라는 말씀이 떠오릅니다. 목사님도 연약한 인간적인 모습이 있으시군요.
박길호: 물론입니다. 저 또한 연약한 인간입니다. 제가 보여드린 순종은, 완벽한 순종이 아닙니다. 연약함과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새롭게하소서 출연을 망설였던 것도, 제 연약함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연약함은 얼마든지 드러낼 수 있지 않습니까. 없는 것을 있는 척하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웃음)
주영훈: 목사님, 8년간 구리 지구촌교회에서 은혜롭게 사역하시고, 송탄중앙침례교회로 옮기시는 과정이 쉽지 않으셨을 텐데요.
박길호: 구리 지구촌교회는 제게 '어머니 품' 같은 곳이었습니다. 8년간 함께 울고 웃었던 성도들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새로운 길을 열어주시리라는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 송탄중앙침례교회는 44년 전통의, 훌륭한 목사님께서 시무하시던 교회입니다. 44년 목회하신 원로 목사님의 뒤를 잇는다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순종했습니다. 세 번이나 고사했지만, 결국 하나님의 뜻임을 깨닫고 송탄중앙침례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주영훈: 지구촌교회 성도님들 반응은 어떠셨나요?
박길호: 떠나기로 결정하기까지, 마음고생이 심했습니다. 몸무게도 5-6kg 빠졌습니다. (웃음) 성도들에게 이임 사실을 알리기 전까지, 마음을 졸였습니다. 이임 소식을 전했을 때, 성도님들께서 서운해하시고 눈물 흘리시는 모습을 보면서, 죄송하고 감사했습니다.
박길호: 제가 뭐라고, 이렇게 과분한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나 싶었습니다. 떠나는 저를 축복해주시는 성도님들의 사랑에 감동했습니다.
송진: 교회를 옮기시면서 감동적인 경험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박길호: 작년 12월, 송탄중앙침례교회 담임목사 취임식 때, 구리 지구촌교회 성도님들이 버스 8대에 나눠 타고 오셔서, 취임식을 축하해주셨습니다. 100명이 넘는 성도님들이 오셔서, 눈물로 저를 축복해주시는 모습에, 정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구리 지구촌교회 사역자 모임인 '구사모' 에서도 떡을 준비해 오셔서, 송탄중앙침례교회 교역자들에게 돌리며 "우리 목사님 잘 부탁드립니다" 라고 인사를 하셨다고 합니다.
박길호: 취임식 후, 침신대 원로 교수님께서 전화하셔서 "박 목사, 당신 떠나도 교회는 요동하지 않네. 사역 정말 잘하고 갔어" 라고 칭찬해주셨습니다. 제가 떠나도 교회가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더욱 굳건하게 세워져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8년간 구리 지구촌교회를 통해 이루실 사역을 이미 다 이루셨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떠나면 교회가 어찌 될까 걱정했지만, 그것은 저의 교만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섭리하신다는 것을 다시 한번 경험했습니다.
박길호: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자리에 나올 수 있었던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송진: 현재 부모님 건강은 어떠신가요?
박길호: 아버지께서는 대장암 3기 진단을 받으시고, 요양병원에서 치료 중이십니다. 어머니께서는 파킨슨병으로 투병 중이십니다. 두 분은 따로 거주하고 계십니다.
송진: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시네요. 손녀들을 보시면 기뻐하시겠어요.
박길호: 손녀들을 보시면 정말 좋아하십니다. 특히 어머니께서는, 아들이 목회자가 된 것을 매우 자랑스러워하십니다. 파킨슨병으로 몸이 불편하신데도, 기독교 방송을 통해 예배드리시며 천국 소망을 키워가고 계십니다. 아버지께서도 요양병원에서 치료받으시면서, 신앙생활을 시작하셨습니다.
박길호: 그런데, 아버지가 암 투병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또 한 번 제 연약함을 깨달았습니다. 젊은 시절 아버지께 받은 상처 때문에, 아버지께 쌀쌀맞게 대했던 제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아버지를 잘 섬겨야 하는데... 오히려 '이제 와서 또 아버지를 돌봐야 하나' 라는 못된 마음이 드는 제 자신을 보면서, 얼마나 죄송했는지 모릅니다. 십자가 은혜 앞에 다시 나아가 회개하고, 아버지께 진심으로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송진: 어머니께서 평생 고생만 하셨는데, 노년에도 건강이 안 좋으셔서 마음이 아프네요.
박길호: 네... 어머니께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송진: 오늘 새롭게하소서 출연하신 것, 고민 많으셨다고 들었는데, 그래도 나오시길 잘하신 것 같죠?
박길호: 물론입니다. 나오기 전까지는 고민이 많았습니다. 새 교회 담임목사로서, 과거의 아픔을 드러내는 것이 과연 성도들에게 유익할까, 동정심을 유발하는 것은 아닐까, 목회자로서 연약한 모습만 보이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습니다.
박길호: 그런데, 기도하는 중에 놀라운 메일을 받았습니다. 미국 대학 교수님이, 과거 초등학교 시절 제 설교를 듣고 은혜받았던 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메일을 보내온 것입니다.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방황하던 어린 학생에게, 제가 전했던 복음이 큰 위로와 힘이 되었고, 미국 유학 가서 어려움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며 마침내 대학교수가 되었다는 감동적인 이야기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너의 약함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드러내라. 연약함이 오히려 강함이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주영훈: 기도하고 결정하겠다는 분들은 다 출연하시더라고요. (웃음) 혹시 기도했는데 '나가지 마라' 는 응답받은 분은 없겠죠? (웃음)
송진: 하나님께서 '거길 왜 나가?' 라고 하시진 않으실 것 같아요. (웃음) 송탄중앙침례교회에서 새로운 비전을 품고 사역하시게 되었는데, 앞으로 어떤 교회를 만들어가고 싶으신가요?
박길호: 제 비전은, 한 영혼을 소중히 여기는 교회, 한 영혼 한 영혼을 주님의 마음으로 사랑하는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중학교 3학년 때,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저를, 덩치 큰 누나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변화시켰듯이, 한 사람의 작은 사랑과 관심이, 한 영혼의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송탄중앙침례교회가 내년이면 50주년을 맞이합니다. 지난 50년의 역사 위에, 다음 세대를 위한 비전을 품고, 지역 사회에 봉사하는 교회,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교회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주영훈: 앞으로 송탄중앙침례교회가 더욱 훌륭한 교회로 성장하길 기대하겠습니다. 송진 자매님은 오늘 어떠셨나요?
송진: 하나님께서는 상한 심령을 기뻐하신다고 하셨는데, 머리로는 알지만, 연약한 제 모습 때문에 절망할 때가 많습니다. 오늘 목사님 간증을 들으면서, '그래, 하나님은 연약한 자를, 상한 심령을 받으시는 분이지. 더 하나님을 붙잡아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또한 푸세식 화장실에서 말씀의 향기가 밴 성경책처럼, 제 마음에도 말씀의 향기가 짙게 배어, 그 향기를 세상에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주영훈: 말씀이 향기롭다는 표현이 참 와닿네요. 박 목사님, 오늘 귀한 간증 감사합니다. 목사님처럼, 어릴 적 부모님의 신앙 유산을 받지 못한 분들도 많은데, 목사님을 통해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느꼈습니다. 앞으로 목사님께서 영적인 아비로서, 많은 영혼들을 품고, 귀한 열매 맺으시길 기도하겠습니다.
박길호: 감사합니다. 제가 서두에 '발령' 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생각해보니 맞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한 곳에 머무르게 하지 않으시고, 끊임없이 새로운 곳으로 보내십니다. 목회자뿐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이 '발령' 받아 떠나는 여정과 같습니다. 우리는 잠시 이 세상에 '파견' 된 존재입니다. 언젠가 본향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오늘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곳에서, 죽기까지 복음을 전하는 목사님 되도록, 기도해주십시오.
주영훈: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오늘 귀한 간증 들려주신 박길호 목사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박수] 감사합니다.
[음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