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 DJ에서 목회자로, 예람워십 전혁 목사의 인생 역전 기적 간증
DJ 출신 목사의 기적 간증: 절망 끝에서 예람워십을 일으키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기적은 시작됩니다: 예람워십 전혁 목사의 파란만장 인생 이야기
삶의 벼랑 끝에서 만난 하나님의 은혜, 그리고 다시 시작된 기적 같은 이야기. 오늘, 예배팀 ‘예람워십’의 대표이자, 파란만장한 인생 스토리를 가진 전혁 목사님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함께 경험해보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예람워십은 유튜브 조회수 500만 뷰를 기록한 '주님의 시선'을 비롯해, '모든 상황 속에서', '예수님만이' 등 수많은 예배곡으로 젊은 세대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팀인데요. 특히 전혁 목사님은 클럽 DJ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목사님으로, 그의 드라마틱한 인생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과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모두가 끝났다고 생각했던 절망의 순간, 어떻게 기적은 시작될 수 있었을까요? 지금부터 전혁 목사님의 놀라운 인생 이야기를 자세히 살펴보면서, 우리 삶에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함께 경험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꿈 많던 청년, 나이트클럽 DJ의 삶에 빠지다
어린 시절, 전혁 목사님은 교회 권사님들과 집사님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목사가 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저는 목사만 아니면 다 괜찮습니다" 라고 기도할 정도였다는데요. 목회자의 삶이 힘들고 제약이 많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거짓말도 안 되고, 눈치도 봐야 하고, 심지어 물건값도 제대로 받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까지 했었다고 하니, 어린 마음에 목사의 길은 너무나 멀고 험난하게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교회 어른들은 끊임없이 전혁 목사님에게 "목사가 되면 참 잘 할 것 같다" 며 목사의 길을 권유했습니다. 끊임없는 권유는 오히려 반항심을 불러일으켰고, '어떻게든 목사만은 되지 않겠다' 는 굳은 마음을 먹게 만들었습니다. 급기야,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나이트클럽을 드나들기 시작했고, 화려한 조명과 음악, 자유로운 분위기에 매료되어 DJ의 꿈을 키우게 됩니다. 술과 담배, 춤과 노래가 있는 나이트클럽은 그에게 새로운 세상이었고, 점점 더 깊숙이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경험한 첫 번째 기적: 교통사고와 어머니의 눈물
그렇게 나이트클럽 DJ의 꿈을 키워가던 고등학교 3학년 수능 40일 전, 전혁 목사님은 오토바이 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빗길에 미끄러져 차 세 대를 들이받는 큰 사고였는데요. 사고 후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없이 묵묵히 그의 곁을 지켰습니다. 하지만 집에 돌아온 후, 어머니는 방에서 흐느끼며 기도하기 시작했고,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전혁 목사님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신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처음으로 제대로 마주하게 된 것입니다. 죄송함과 후회, 그리고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밀려왔습니다. 그 밤, 전혁 목사님은 생전 처음으로 진심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도 어머니의 기쁨이 될 수 있다면, 평범하게 대학에 갈 수 있게 해 주시면 안 될까요?" 놀랍게도, 다음 날 담임 선생님은 그를 불러 대학 진학을 권유했고, 반 에서 48등을 하던 그에게 기적같은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수능 40일 전, 기적처럼 공부에 매달린 결과, 4년제 대학교 법학과에 합격하는 놀라운 결과를 얻게 된 것입니다. 본인 스스로도 믿을 수 없는 기적이었지만, 그는 분명히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음을 직감했습니다. 기도하면 응답받을 수 있다는 확신과 함께, 하나님을 향한 감사함이 마음 속에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그는 다시 나이트클럽의 화려함을 잊지 못하고 DJ의 길로 돌아가게 됩니다. 과연 그는 나이트클럽의 유혹을 이겨내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을까요?
멈출 수 없었던 질주, 두 번의 죽음의 고비 그리고 어머니의 기도
대학교 시절, 전혁 목사님은 낮에는 법학도, 밤에는 나이트클럽 DJ로 이중생활을 했습니다. 화려한 밤의 유혹은 달콤했지만,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마음 속에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이대로 계속 DJ를 하는 것이 맞는 길일까?', '하나님께서 나를 다른 길로 부르시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애써 외면하며 DJ의 삶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던 중, 두 번째 터닝 포인트가 찾아왔습니다.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지신 것입니다. 혈압이 터져 응급실에 실려 가셨고, 수술을 받으셔야 했습니다. 눈 덮인 응급실 앞에서 전혁 목사님은 절박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만약 어머니를 살려주신다면 유학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길을 가겠습니다." 놀랍게도, 어머니는 기적처럼 회복하셨고, 전혁 목사님은 유학 준비를 모두 정리하고 신학대학원에 진학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질주는 쉽사리 멈춰지지 않았습니다. 신학대학원에 입학했지만, 여전히 마음 속에는 세상적인 욕망과 미련이 남아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또 다시 쓰러지셨습니다. 이번에는 급성 신우신염이었습니다. 두 번의 어머니의 죽음과 같은 고비를 넘기면서 전혁 목사님은 더 이상 하나님의 부르심을 외면할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그는 마지막 저항을 내려놓고 신학대학원에 진학, 목회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합니다.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와 두 번의 죽음의 고비를 통해 그는 마침내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두 손 두 발을 다 든 것입니다. 그렇다면, 화려한 DJ의 삶을 버리고 목회자의 길을 선택한 그의 앞날은 과연 평탄했을까요?
예상치 못한 시련, 예람워십 탄생 비하인드 스토리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았지만, 전혁 목사님의 목회 생활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부임한 교회의 청년 부흥을 위해 열심히 사역했지만, 갑작스럽게 청년 성도 수가 줄어드는 시련을 겪게 된 것입니다. 수련회 직후, 청년부 성도 수가 급감했고, 찬양팀마저 해체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절망감에 휩싸인 전혁 목사님은 목회를 포기할 생각까지 했습니다. '나는 목회자로서 자질이 부족한 것일까?', '이제 내 사역은 여기까지인가?' 끊임없이 자신을 자책하며 괴로워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절망의 순간, 기적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찬양팀에 남은 두 명의 청년이 그에게 뜻밖의 제안을 해온 것입니다. "목사님, 우리에게 남아있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우리 두 명이라도 한번 해보겠습니다." 그들의 순수한 믿음과 용기에 큰 감동을 받은 전혁 목사님은 다시 힘을 내어 찬양팀을 재건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렇게 시작된 작은 움직임이 바로 오늘날 예람워십의 시작이었습니다. 두 명의 청년과 함께 악기를 구하고, 연습하고, 예배를 준비하면서 예람워십은 점점 모습을 갖춰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전혁 목사님의 DJ 경력은 예람워십만의 독특한 음악 스타일을 만드는데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신디사이저와 샘플링 기법을 활용한 예람워십의 찬양은 젊은 세대의 취향을 저격하며 큰 인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예람워십을 지금의 자리까지 이끈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