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스 배 선교사 북한 감옥 735일 간증과 기적의 믿음 이야기
735일 북한 감옥, 절망 속에서 피어난 믿음: 케네스 배 선교사의 기적 증언
735일간의 북한 감옥 억류: 케네스 배 선교사의 생생한 증언과 그 속에 담긴 놀라운 이야기
상상조차 하기 힘든 북한 감옥에 735일이나 억류되었던 케네스 배 선교사님의 이야기는, 단순한 억류 경험을 넘어 인간의 나약함과 믿음의 강인함, 그리고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증언입니다. 오늘 우리는 케네스 배 선교사님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그 735일간의 북한 감옥 생활이 어떠했는지,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 경험이 그의 삶과 신앙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자세히 알아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본 내용은 오직 텍스트 내용을 상세히 정리한 것이며, 어떠한 개인적인 의견이나 추가적인 해석은 배제되었음을 먼저 밝힙니다.
1. 북한 억류의 시작: 평범한 여행, 예상치 못한 위기
케네스 배 선교사님은 1985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 이후 미국 시민권을 얻게 되었습니다. 중국 단동에서 ‘조선사랑여행사’를 설립, 북한 문화, 자연,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북한 관광 사업을 시작하게 됩니다. 18차례 북한 방문, 약 300명의 관광객을 안전하게 인솔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2012년 11월 3일, 18번째 방문에서 예기치 못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컴퓨터 외장 하드에 담긴 자료가 문제가 되어 북한 당국에 억류된 것입니다.
당시 케네스 배 선교사님은 컴퓨터를 새로 구입하면서 외장 하드에 있던 자료를 옮기는 과정이었고, 실수로 외장 하드를 소지한 채 북한에 입국하게 되었습니다. 외장 하드 안에는 미국 다큐멘터리 영화, 특히 북한 꽃제비 아이들의 어려움을 담은 영상들이 있었고, 북한 당국은 이를 문제 삼았습니다. “불순한 목적”으로 영상을 반입했다는 이유였는데요, 더욱 심각했던 것은 외장 하드에 선교 편지, 보고서 등 선교 활동 관련 자료들이 함께 들어있었다는 점입니다. 이로 인해 케네스 배 선교사님의 선교사로서의 신분이 노출되었고, 억류 사태는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2. 억압과 공포의 시간: 보위부 안가에서의 조사
억류 직후, 케네스 배 선교사님은 라진선봉 보위부 안가로 이송, 약 한 달 동안 집중적인 조사를 받게 됩니다. 새벽부터 시작되는 강도 높은 조사, 수면 부족, 심리적 압박은 상상 이상이었을 것입니다. “벽 보고 서있어라” 와 같은 정신적인 고통은 물론,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안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습니다. 3일째 되는 날, 방 한가운데 세워 차렷 자세로 미동도 없이 서 있어야 하는 고문이 시작되었습니다.
몇 시간을 꼼짝없이 서 있었지만, 놀랍게도 허리, 다리 통증, 피곤함, 졸음, 배고픔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고 합니다. 육체적으로는 견딜 만했지만, 정신적으로는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습니다. 함께 여행 왔던 사람들의 안전, 자신의 실수로 인해 발생한 상황에 대한 자책감, 앞으로의 상황에 대한 불안감이 그를 짓눌렀습니다. “주님 어디 계십니까” 라는 탄식이 절로 나올 만큼 절망적인 순간이었는데요, 바로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3. 절망 속에서 만난 하나님의 은혜: 기적적인 체험과 위로
케네스 배 선교사님의 왼손이 갑자기 따뜻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손바닥에서 금가루 같은 것이 반짝이더니, 따뜻한 온기가 왼팔 전체로 퍼져나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영문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 성령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내가 너의 손을 붙들고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베드로전서 5장 7절 말씀,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는 구절도 떠올랐습니다. 순간, 걱정, 근심, 불안, 초조함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임재가 방 안에 가득 찬 것을 느꼈습니다. 마음에는 평안을 넘어 기쁨이 솟아났고,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그 누가 나를 대적하리요” 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후, 조사관에게 솔직하게 선교 목적을 밝혔습니다. “사람들을 데려온 목적은 기도하고 예배하기 위함이었다” 고 말하자, 조사관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렇게 엄청난 일을 당신 혼자 했을 리 없다, 누가 보냈느냐” 고 질문했고, 케네스 배 선교사님은 “하나님이 보냈다” 고 대답했습니다. 조사관들은 “미국이 배후에 있다” 고 의심했지만, 케네스 배 선교사님은 “하나님 말고 누가 있겠느냐” 며 믿음을 굳건히 드러냈습니다. 결국, ‘공화국 전복 음모죄’ 라는 터무니없는 죄목이 씌워졌고, 사형, 무기징역 다음으로 무거운 형벌인 15년형을 선고받게 됩니다.
4. 나홀로 교화소 생활: 육체적, 정신적 고통과의 싸움
15년형을 선고받고 외국인 특별 교화소로 이감, 간수 4, 50명, 재소자는 자신 혼자인 ‘나홀로 교화소’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침 6시 기상, 7시 식사, 8시부터 노동, 저녁 6시 식사, 밤 10시까지 의자에 앉아 있어야 하는 규칙적인 생활이 이어졌습니다. 여름에는 37, 8도까지 올라가는 무더위 속에서 중노동, 겨울에는 영하 17, 8도의 추위 속에서 손발이 얼어붙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저녁 식사 후에는 꼼짝없이 의자에 앉아 있어야 했고, 밤 10시 취침 후에도 환한 불빛 아래 온갖 벌레들과 싸워야 했습니다. 하루 200마리 이상의 벌레를 잡아야 잠을 잘 수 있었고, 손발 저림으로 인해 한 시간에 한 번씩 일어나 20분간 털어야 했습니다.
식사는 하루 세 끼 죽과 국, 짠지가 전부, 영양실조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일에는 노동은 면제되었지만,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북한 방송을 시청해야 하는 고문이 이어졌습니다. 졸지도 못하고, 프로그램은 5번이나 반복 방영되었습니다. 극심한 육체적 고통, 외로움, 절망감 속에서 “주님, 언제 이 고난을 멈추시겠습니까” 라는 기도가 절로 나왔습니다. “빨리 집에 보내달라” 는 간절한 기도에, 주님은 “고난도 너에게 유익이라” 는 뜻밖의 응답을 주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가 너와 함께한다”, “나를 바라보라, 나를 신뢰하라” 는 말씀을 통해 위로와 힘을 얻었습니다. 가져갔던 성경책을 탐독하며 말씀을 묵상, “내가 너의 피난처”, “내가 너의 힘” 이라는 말씀을 통해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5. 기적적인 만남과 채우심: 어머니와의 재회, 그리고 뜻밖의 선물
영양실조로 27kg이나 체중이 감소, 병원에 실려 가는 상황까지 발생했습니다. 두 달간 영양실조 치료를 받는 동안, 미국에서 어머니가 면회를 왔습니다. 북한 역사상 외국인 교화소 수감자를 가족이 면회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중국을 거쳐 북한에 도착한 어머니는, 아들을 보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준비해 온 물건들을 꺼냈는데, 놀랍게도 케네스 배 선교사님이 교화소에서 먹고 싶다고 생각했던 다섯 가지 음식이었습니다. 하와이 초콜릿, 키캣, 코스트코 육포, 견과류, 에너지 바. 기도조차 하지 않았던, 혼자 마음속으로만 생각했던 음식들을 어머니가 정확히 가져온 것입니다.
케네스 배 선교사님은 하와이 초콜릿을 먹는 것보다, 자신의 작은 생각까지도 잊지 않고 기억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했습니다. “내가 너를 보살피고 있다, 내가 너와 함께한다” 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분명히 느꼈습니다. “주님이 이렇게 좋으신 분이라면, 북한에서 돌아가지 못한다 해도 만족할 수 있겠다” 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재판 전 예심 과정에서도 평양냉면, 김치볶음밥 등 먹고 싶은 음식을 생각하면 신기하게도 다음 날 식탁에 차려지는 경험을 40번 넘게 했다고 합니다. 마음의 소원, 뱃속의 굶주림까지 아시는 하나님의 섬세한 사랑을 체험하며, “무엇을 걱정하랴, 강하고 담대하라, 이 일을 통해 할 일이 있다” 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6. 고난 속에서 발견한 사명: 죄수에서 목자로
병원에서 건강을 회복하고 다시 교화소로 돌아왔을 때, 이전과는 전혀 다른 마음이 되었습니다. “집에 가고 싶다” 는 기도 대신, “주님 뜻대로 하옵소서, 저를 사용해 주시옵소서” 라는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는 주님의 질문에, “주님 사랑합니다” 고백하자, “내 양을 먹이라, 내 어린 양을 치라” 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교화소 간수, 외무성 직원, 검찰 관계자 등 자신을 감시하고 억압하는 사람들을, 주님께서 찾으시는 잃어버린 어린 양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을 죄수가 아닌, 그들의 목자로 보내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수인 번호 ‘103번’ 으로 불리던 죄수 케네스 배는, 어느덧 ‘목사님’ 으로 불리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상담자, 친구가 되어갔습니다. 가족 문제, 결혼 문제 등 다양한 고민을 털어놓는 간수들에게 상담을 해주고, 예비부부 상담까지 진행했습니다. 간수 중에는 “목사님처럼 하나님을 믿으면 좋은 점이 있느냐”, “교회에 헌금을 얼마나 해야 하느냐” 며 질문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혜택과 대가를 먼저 묻는 질문에, 케네스 배 선교사님은 “하나님께 자신을 드려야 한다” 고 진심으로 답했습니다. 2년 동안 억류되어 있는 상황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청년에게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 당신도 포함되어 있을 것” 이라는 위로와 소망을 전했습니다. 조사관 중에는 “예수님 이름을 당신을 통해 처음 들었다” 고 고백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동방의 예루살렘이라 불렸던 평양에서 예수의 이름이 사라진 북한의 현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7. 석방과 새로운 시작: 고난을 통해 얻은 값진 교훈
억류 2년째 되던 해 11월 1일, 담당 검사는 “아무도 너를 데리러 오지 않을 것이다, 잊혀졌다, 미국 정부가 너를 버렸다” 며 절망적인 이야기를 반복했습니다. 1년 동안 52주 토요일마다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담당 검사에게, 케네스 배 선교사님은 ‘미스터 디스어포인트먼트(실망 씨)’ 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실망 씨의 말을 들으면 낙심될 수밖에 없었지만, 그는 실망 씨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로 결단했습니다. 70가지 이상의 성경 구절, 전 세계에서 보내온 450통 이상의 편지를 통해 위로와 격려를 받았습니다. 화장실 거울을 보며 “나는 케네스 배 선교사다, 이곳에 있는 목적이 있다” 고 수백 번 되뇌며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월요일 새벽, 스바냐 3장 20절 “내가 너희를 고토로 돌아오게 할 때에… 너희 앞에서 너희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라는 말씀을 영어 성경에서 발견했습니다. “I will bring you home (내가 너를 집으로 데려갈 것이다)” 라는 구절은, 마치 주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듯했습니다. 그 주 금요일, 미국 특사가 도착했고, 토요일, 케네스 배 선교사님은 735일간의 억류 생활을 마치고 기적적으로 석방되었습니다. 미국 국가정보국장이 직접 왔고, 20여 명이 큰 비행기를 타고 그를 데리러 왔습니다. 귀국 비행기 안에서 “월요일 하나님께서 집으로 데려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고 말하자, 특사단은 “우리가 월요일 백악관을 출발했다” 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그 말씀에 따른 정확한 응답에 모두 감탄했습니다.
케네스 배 선교사님은 고난을 통해 주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고, 신뢰하고, 사랑하고, 순종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고난은 더 이상 장애물이 아닌, 하나님께로, 주님의 심장으로 가는 지름길임을 깨달았습니다. 통일 후 북한 땅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만날 것을 기대하며, 북한의 영적 재건을 위해 헌신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북한 감옥에서 환상으로 보았던 남북, 해외 동포, 외국인들이 김일성 광장에 모여 손잡고 찬양하는 모습이 속히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며, ‘에미야 기도 서명 운동’ 을 통해 전 세계 6천여 명의 기도 용사들과 함께 북한을 위한 기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케네스 배 선교사님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도전을 줍니다. 예상치 못한 고난 속에서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가 처한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 왜 나에게 이런 고난을 주십니까” 라고 질문하기보다, “하나님, 이 고난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주님 뜻을 이루어 드릴까요” 라고 질문해야 함을 깨닫게 합니다. 또한, 북한 땅과 북한 주민들을 향한 우리의 기도와 관심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