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종 집사 간증: 하나님께 미친 인생과 은혜의 이야기
파란만장 인생, 하나님께 미친 남자: 최성종 집사
"내 생이 끝날 때에도 내 선택에 후회는 없노라고": 최성종 집사의 파란만장 인생 역정, 굽이굽이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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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인생의 항해를 하면서 어떤 내비게이션을 사용하고 계신가요? 성공, 돈, 명예 등 세상적인 가치를 좇아 쉼 없이 달려가도록 안내하는 내비게이션이 대부분일 텐데요. 하지만 오늘, 우리 인생의 진정한 내비게이션은 오직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특별한 분을 모셨습니다.
그분은 비보이 댄서, 특수부대 출신, 교수라는 화려한 수식어 외에도 '하나님께 미친 사람' 이라는 독특한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미쳤다'고 손가락질할지 모르지만, 정말로 미쳐야 미친다는 말처럼, 하나님께 미쳐야만 비로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굳게 믿는 분입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최성종 집사님이신데요, 하나님께 '미쳤다'는 고백은 대체 어떤 특별한 이유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지금부터 최성종 집사님의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를 함께 따라가 보겠습니다.
1. 불우했던 어린 시절, 벼랑 끝에서 만난 하나님
최성종 집사님의 고향은 인천 영종도입니다. 지금은 인천국제공항이 들어서며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지만, 25~30년 전만 해도 전기불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시골이었다고 합니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불구하고, 중학교 2학년 때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하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께서는 깊은 슬픔에 잠겨 술에 의존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농사일을 하시면서도 술을 드시긴 했지만, 그때부터는 술 없이는 하루도 지내지 못할 정도로 알코올 중독에 빠지셨습니다. 술에 취한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폭언과 폭력을 행사했고, 어머니와 누나, 최성종 집사님은 매일 공포에 떨며 살아야 했습니다.
"아버지 차 소리만 들어도 술을 드셨는지 안 드셨는지 구분이 될 정도였어요."
어느 날 밤, 평소와 다른 굉음을 내며 집으로 들어오는 아버지 차 소리를 듣고, 술에 취한 아버지를 피하기 위해 어머니, 누나와 함께 뒷문으로 도망치려 했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앞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한 채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뛰쳐나왔습니다. 고추밭 고랑에 숨어 아버지의 술기운이 가라앉기를 기다렸지만, 아버지는 고추밭까지 찾아와 "나오라" 고 소리치셨습니다.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고 느낀 최성종 집사님은 온 가족과 함께 작은할머니 댁으로 피신해야 했습니다.
가정 불화 속에서 학교생활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인천으로 이사했지만, 어머니마저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되면서 극심한 외로움과 방황을 겪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비보이 댄스팀 활동을 시작하며 잠시 나이트클럽 무대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화려한 조명과 관객들의 환호 속에서 잠시나마 현실의 고통을 잊을 수 있었지만, 마음속 깊은 곳의 외로움은 더욱 커져만 갔습니다.
"공연할 때는 웃으면서 춤을 췄지만, 제 마음은 늘 울고 있었어요. 누구에게도 가정사를 털어놓을 수 없었고, 우리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다는 사실이 제 약점이라고 생각했어요."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대던 최성종 집사님에게 한 줄기 빛이 찾아왔습니다. 농구 동아리 친구 최우열이 건네준 CCM 카세트테이프였습니다. 자율학습 시간, 김수지의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라는 찬양을 듣는 순간,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이 메마른 가슴에 스며드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랑하는 주 하나님이 너를 사랑해, 해와 달과 별들을 지으시고, 너를 위해 아들을 주셨네..."
찬양 가사 하나하나가 상처 입은 영혼을 어루만지는 듯했고,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습니다. 부모님의 이혼이라는 감당하기 힘든 현실 앞에서 세상에 대한 원망과 절망감에 휩싸여 수면제까지 삼켰던 그에게 하나님의 사랑은 삶의 전부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충격이었습니다.
"부모님께 버려졌다는 생각에 세상에 사랑은 없다고 느꼈어요.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수면제를 구해 한꺼번에 삼켰는데, 다음 날 아침 너무나 멀쩡하게 깨어났어요. 오히려 푹 잤다는 느낌이었죠."
죽음의 문턱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최성종 집사님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수면제 한 통을 다 먹고도 멀쩡히 깨어난 것은 분명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었습니다. 이후 친구 최우열을 따라 교회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고, 삶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살리셨다는 것을 확신했어요. 그리고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닫게 되면서, 저처럼 깨어진 가정에서 상처받은 청소년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습니다."
워십 댄스팀을 통해 찬양 사역을 시작했고, 1년 동안은 교회에서 풀타임 간사로 헌신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군 입대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되면서, 새로운 갈림길에 서게 되었습니다.
2. 특수부대 7년, 광야에서 만난 깊은 묵상과 기도
"군대 가면 중간만 해라."
군대에서는 튀지 않고 적당히, 중간만 하는 것이 최고라는 말을 흔히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만난 후 삶의 가치관이 완전히 바뀐 최성종 집사님에게 '중간' 은 있을 수 없는 선택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곳이기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공군 부사관 시험에 합격 후 훈련받던 중,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놀라운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어느 날, 훈련소에 사복 차림의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나타나 몇몇 훈련병들을 인터뷰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떨결에 인터뷰에 응한 최성종 집사님은 며칠 후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받았습니다. "몇 월 며칠, 정장을 입고 청주 터미널로 갈 것." 영문도 모른 채 약속 장소에 나가자 검은색 승용차가 나타났고, 눈을 가린 채 어딘지 모를 곳으로 끌려갔습니다.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최성종 집사님은 그렇게 특수부대에 차출되었던 것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저는 특수부대 훈련을 받고 있었어요. 일반 군인이 아닌 특수부대 요원이 된 거죠.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의무 복무 기간이 갑자기 4년에서 7년으로 늘어났다는 거예요."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특수부대에서 복무하게 된 최성종 집사님. 영내 생활은 자유로운 종교 활동조차 제약되는 고독하고 힘든 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교회는 꿈도 꿀 수 없었고, 세상과의 단절은 그를 광야 한가운데 홀로 남겨진 듯한 절망감에 휩싸이게 했습니다.
"징역 7년과 다를 바 없는 군 생활이었어요. 원치 않는 군 생활을 7년이나 해야 한다는 사실에 절망했고, 영내에는 교회도 없었기 때문에 정말 광야와 같은 시간이었죠."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고난 속에서 하나님은 더욱 깊이 최성종 집사님께 다가오셨습니다. 군 생활의 고통 속에서 주님을 찾고 의지하며 기도하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어느 주일, 답답한 마음에 통성기도를 하던 중, 바로 윗방에서 최선임 선배에게 심한 구타를 당했습니다. 뾰족한 자갈밭에서 머리 박기를 시키고, 피가 줄줄 흐르는 상황에서도 폭력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 기도할 곳을 찾던 중, 목욕탕 사우나실이 떠올랐습니다. 사우나실은 방음이 잘 되어 기도에 집중하기에 최적의 장소였습니다.
"목욕탕 사우나실이 저에게는 예배당이 되었어요. 그곳에서 밤낮으로 기도하며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사우나실에서 간절히 기도하며 부르짖었습니다. "주님, 제가 여기 있사오니 저를 사용하여 주십시오. 저를 보내주십시오." 원망과 불평 대신,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순종하기를 결단했습니다. 7년의 특수부대 복무를 마치고 전역 할 무렵, 부대에서는 장기 복무 제안을 해 왔습니다. 군인 연금은 일반 공무원 연금보다 혜택이 좋았고, 안정적인 미래가 보장되는 매력적인 조건이었습니다. 선배, 후배 대부분이 장기 복무를 선택했지만, 최성종 집사님은 고민 끝에 일반 특기병으로 전환하여 오산 미군 기지에서 8개월 간 복무했습니다.
"일반 군인으로 복무하면서, 이전부터 꿈꿔왔던 청년 사역에 대한 열망이 다시 살아났어요. 군 복무 중에도 틈틈이 청년들을 만나 복음을 전하고 함께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 예배 시간에 요한복음 21장 15-17절 말씀이 마음에 깊이 와닿았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세 번 되물으신 질문은 최성종 집사님의 마음을 강하게 두드렸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던 과거 때문에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라고 돌려 말했습니다. 자신 또한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기에는 부족함이 많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결국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사도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최성종 집사님 또한 주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눈물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는 주님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주님께서 저를 사용하여 주십시오."
예배 후, 최성종 집사님은 오랜 고민 끝에 전역을 결심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미쳤다" 며 만류했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하나님을 향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안정적인 군인 생활 대신, 하나님 나라를 위한 헌신을 선택한 것입니다.
3. 조종사의 꿈을 내려놓고, 다시 시작된 사역자의 길
전역 후, 최성종 집사님에게 뜻밖의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특수부대에서 만났던 교수님께서 민간 항공 분야에서 일해 볼 것을 권유하신 것입니다. 교수님의 소개로 민간 항공 회사 회장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후, 다시 비행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최단 기간에 비행 교관 자격증을 취득하고, 한국 교통대학교 항공운항학과 교수로 임용되었습니다. 계획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하며 나아갔습니다.
교수 생활은 안정적이었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선교에 대한 열정이 끊임없이 타올랐습니다. 방학 때조차 쉴 틈 없이 비행 실습 수업을 해야 하는 빡빡한 일정 속에서 고민하던 중,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지인의 소개로 대형 항공사 취업 제안을 받은 것입니다. 당시 950시간의 비행 시간을 기록하고 있었던 최성종 집사님은 50시간만 더 채우면 꿈에 그리던 대형 항공사 기장이 될 수 있었습니다.
"1,000시간 비행 경력을 가진 조종사는 당시 항공 업계에서 귀한 존재였어요. 지인들의 적극적인 추천도 있었고, 항공사 취업을 통해 시간적 여유를 확보하고 선교 활동에 집중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고민 끝에 미국으로 떠나 50시간의 비행 시간을 채우기로 결심했습니다. 미국에서 여행도 하고, 다양한 비행 경험도 쌓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미국에서 새로운 만남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요리 유학 중인 청년 민요한을 만난 것입니다. 요리계의 하버드라고 불리는 CIA 요리학교 합격을 앞둔 재원이었습니다.
"요한이와 함께 미국 서부 여행을 하면서 깊은 교제를 나누게 되었어요. 요세미티 국립공원, 그랜드 캐년 등 대자연 속에서 함께 별을 보고, 인생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를 알아갔습니다."
16시간 넘는 장거리 운전 동안 최성종 집사님은 자신의 간증을 들려주었고, 요한을 비롯한 청년 들은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에 다니지만 상처 입은 영혼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함께 울고 웃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예수인교회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던 중, 요한은 최성종 집사님에게 놀라운 고백을 했습니다.
"형님과 교제하면서 제가 알고 있던 하나님과 형님이 믿는 하나님이 너무 다르다는 것을 느꼈어요. 형님, 저 다시 하나님을 알고 싶어졌어요."
요한의 고백은 최성종 집사님의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자신의 간증을 통해 젊은 영혼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모습을 보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습니다. 예수인교회 찬양 예배 시간,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영혼들이 주님께 돌아오는 것이 제 인생의 가장 큰 기쁨입니다. 이 기쁨을 위해 평생 살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제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기도 중에 문득, 조종사의 꿈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강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더 자유롭게 복음을 전하며 살기 위해서는 사업을 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꿈꿔왔던 조종사의 길을 포기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고민과 갈등 속에서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기 전 다시 한번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 입술로 고백하게 해 주십시오. 이것이 제 가장 큰 기쁨이라고, 이것을 위해 살고 싶다고..." 기도 중에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습니다. 조종사 의 꿈을 내려놓는 것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동안 자신도 모르게 조종사라는 세상적인 성공에 집착했던 모습을 깨닫고 회개하는 눈물이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조종사를 내려놓겠습니다."
50시간의 비행 시간을 채우는 것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또다시 "미쳤다" 며 손가락질했지만, 최성종 집사님의 마음은 평안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 영혼 구원을 위한 길을 선택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4. 사업 실패와 연이은 시련, 그럼에도 놓을 수 없었던 복음의 끈
사업 전선에 뛰어든 최성종 집사님에게 현실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결혼 후 가정을 이루고 아이까지 태어났지만, 연이은 사업 실패로 경제적인 어려움에 직면했습니다. 결혼 자금 4천만 원을 사기 당한 것을 시작으로, 수억 원의 빚을 떠안게 되었습니다. 분유 값 걱정을 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 다시 조종간을 잡아야 할지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아내에게 '다시 비행을 해야 할까' 라고 물었더니, 아내는 '오빠가 어떤 마음으로 조종사를 내려놓고 사업을 시작했는지 잘 안다. 힘들어도 오빠가 가려고 하는 길을 끝까지 갔으면 좋겠다' 고 격려해 주었어요."
아내의 믿음 덕분에 다시 힘을 내 사업에 매진했지만, 두 번의 사기 피해는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사업 파트너에게 배신당하고, 수년간 일궈온 사업 아이템을 빼앗기는 일까지 겪었습니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는 고통 속에서 아내와 함께 기도원을 찾았습니다. 기도원에서 한 달 동안 간절히 기도하며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기도원에서 하나님께서는 '왜 이전에는 나를 이렇게 간절하게 붙들지 않았느냐' 라고 물으시는 것 같았어요. 사업을 시작하면서도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했지만, 진정으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지 못했던 저의 모습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사업 실패와 연이은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더욱 굳건해졌습니다. 최성종 집사님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어주신 주영훈 목사님은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며 따뜻한 격려를 전했습니다.
"집사님은 너무 순수하고 착하신 것 같아요. 사업은 냉정하고 치열한 경쟁의 세계인데, 때로는 여우처럼 영리해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하지만 집사님의 순수한 마음이 오히려 하나님께서 더 크게 사용하실 도구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5. "내 생이 끝날 때에도 내 선택에 후회는 없노라고"
"힘든 시간이었지만, 단 한 번도 제 선택에 후회한 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최성종 집사님은 담담하게 지난날을 회상했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자신을 건져 주시고, 끊임없이 새로운 길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사업 실패 또한 하나님의 더 큰 계획 가운데 있는 과정이라고 믿습니다. 가장 큰 기쁨은 고난 속에서도 변치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며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부부 간의 친밀한 사랑의 관계와 같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제가 사랑하는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은, 복음을 듣지 못한 영혼들이 주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제 인생의 가장 큰 기쁨입니다."
주영훈 목사님은 최성종 집사님의 간증 전반을 통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12년 의 학교 교육 과정이 단순히 지식 습득 뿐만 아니라, 인성 교육과 사회성 함양을 위한 하나님의 섬리임을 강조했습니다. 최성종 집사님의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 또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선교 훈련 과정이었음을 깨닫게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주영훈 목사님은 앞으로 하나님께서 최성종 집사님을 어떤 곳으로 보내실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받으신 훈련을 통해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을 것이라고 축복하며 마무리했습니다.
"최성종 집사님의 삶은,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세상적인 성공과 안락함이 아닌, 하나님 안에서 발견하는 기쁨과 감사, 그리고 그 사랑을 나누는 삶이야말로 가장 값진 인생임을 보여줍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 누군가 당신에게 조용히 물어볼 때, "지나온 세월, 당신의 선택에 후회는 없었노라" 고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귀한 간증 들려주신 최성종 집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