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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 트라우마 극복 이정훈 사모 300번 배우자 기도 간증

요약

300번 기도, 폭력 트라우마를 딛고 일어선 간증

"우리 엄마를 보고도 내 곁을 떠나지 않을 남자(?),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길래..." 이정훈 사모의 눈물겨운 고백

가정은 안식처여야 하지만, 때로는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기는 곳이 되기도 합니다. 특히 부모로부터 겪는 폭력은 잊을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아 평생을 괴롭힐 수 있습니다. 오늘, 새롭게하소서에서는 어머니로부터 수차례 가정 폭력을 당하며 고통스러운 어린 시절을 보낸 이정훈 사모님의 이야기를 통해, 폭력의 대물림을 끊고 사랑과 기도로 가정을 세워나가는 놀라운 여정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하린의 무릎학교 운영자이시자, 두 자녀를 믿음으로 양육하시는 이정훈 사모님을 모시고, 그녀의 진솔한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과연 그녀에게는 어떤 아픔이 있었고, 어떻게 이겨낼 수 있었을까요? 지금부터 함께 이정훈 사모님의 감동적인 스토리를 통해 깊은 깨달음과 위로를 얻는 시간을 가져보시죠.

300가지 배우자 기도, 기적같은 만남

이정훈 사모님은 밝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주영훈 님은 사전 인터뷰를 통해 이정훈 사모님이 배우자 기도를 300개나 적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는데요. 300개의 기도 제목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목사님과 결혼에 골인하게 된 비결은 무엇일까요? 이정훈 사모님은 쑥스러워하며 남편인 목사님을 만나고 기도 제목을 적은 종이를 찢어 버렸다고 고백했습니다. 놀랍게도 기도 제목 300개는 응답 그 자체가 되었던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배우자 기도 조건이 많으면 포기하기 마련인데, 이정훈 사모님은 어떻게 300개나 되는 조건을 채울 수 있었을까요? 그녀는 어린 시절 가정 형편이 어려웠고, 가정 내 상처가 많아 ‘과연 누가 나 같은 사람과 결혼해 줄까?’라는 불안감이 컸다고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결혼에 대한 불안감이 커져 배우자 기도를 시작했고, 하나씩 적다 보니 300개까지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300개의 기도 제목 중 1번은 무엇이었을까요? 이정훈 사모님은 1번 기도 제목은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믿음의 동역자’였다고 밝혔습니다. 외모적인 조건도 적었냐는 질문에, 당연히 적었다고 털어놓으며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처음에는 외적인 조건을 먼저 적게 되었지만, 점차 내면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흥미롭게도 이정훈 사모님은 키 180cm 이상의 훤칠한 외모보다는 다부지고 남자다운 스타일, 튼튼한 피부, 심지어 여드름 자국이 있는 거친 남자를 선호했다고 합니다. 독특한 취향인데요. 놀랍게도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옆모습의 여드름 자국이 너무 멋있어 보였다고 합니다. 정말 드라마틱한 만남인데요. 이처럼 구체적인 기도 덕분에 완벽한 이상형을 만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300개의 기도 제목 중 특이한 조건도 있었을까요? 이정훈 사모님은 “저를 첫눈에 뿅 하고 반하는 사람” 이라는 조건을 적었다고 합니다. 자신을 온전히 받아주려면 첫눈에 반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소개팅으로 남편을 처음 만났는데, 남편은 이정훈 사모님을 처음 본 순간 천사가 걸어오는 줄 알았다고 합니다. 빛이 후광처럼 느껴졌다는 남편의 고백은, 그녀의 첫인상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짐작하게 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이정훈 사모님은 순진하게 “위생”이라는 조건도 기도 제목에 넣었다고 합니다. 또한 당시 섬겼던 교회 담임 목사님처럼 인격적이고 따뜻한 시아버지를 원했다고 합니다. 놀랍게도 시아버지는 정말 따뜻하고 인격적인 분이셨고, 심지어 머리 스타일까지 담임 목사님과 비슷했다고 하니, 기도 응답의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 모든 조건들이 현실로 이루어진 것을 보면, 이정훈 사모님의 배우자 기도는 정말 특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엄마를 보고도 떠나지 않을 사람", 조건에 담긴 깊은 상처

이정훈 사모님의 300가지 배우자 기도 조건 중에는 남다른 조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우리 엄마를 보고도 떠나지 않을 사람” 이라는 조건이었는데요. 이 조건에는 그녀의 깊은 가정사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가정 환경에서 자랐기에 이런 기도 제목을 적게 된 것일까요? 이정훈 사모님은 조심스럽게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화가 나면 스스로 제어하기 어려워하는, 소위 ‘분노 조절 장애’를 겪는 분이셨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어머니의 폭력적인 행동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지만, 성장하면서 어머니의 분노 조절 어려움이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머니는 분노가 일어나면 폭언과 폭력, 비난을 쏟아냈고, 이는 가정 불화로 이어졌습니다. 밖에서도 사람들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고, 주변 사람들은 그녀의 어머니를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어릴 적부터 “너희 엄마는 왜 그러니?”, “너희 엄마는 정말 이상하다” 라는 말을 자주 들으며 자랐다고 합니다.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조심스러운 듯, 이정훈 사모님은 어머니를 언급하는 것을 힘들어하는 모습이었는데요. 어머니에 대한 아픈 기억이 얼마나 깊은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어머니가 아무에게나 함부로 대하는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하니, 어린 시절 감당해야 했던 마음의 짐이 얼마나 무거웠을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아버지와의 관계는 어떠했을까요? 이정훈 사모님은 아버지와의 관계는 너무 좋았다고 회상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부모님의 관계는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은 돈 문제로 자주 다투셨습니다. 아버지는 장남으로, 집안의 경제적 책임을 짊어지고 있었습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조부모님과 동생들을 챙기느라 늘 돈에 허덕였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상황에 불만을 품고 아버지에게 끊임없이 불평했고, 부부 싸움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남자였지만, 어머니의 폭언과 비난에 속수무책일 때가 많았습니다. 어머니의 감정 기복은 심했고, 분노가 폭발하면 걷잡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어머니의 분노는 고스란히 자녀들에게 향했습니다. 이정훈 사모님은 어머니의 폭력적인 행동으로 인해 어린 시절부터 고통받았습니다. 7살 터울의 남동생도 있었지만, 어머니의 폭력은 주로 이정훈 사모님에게 집중되었습니다. 그녀는 어머니의 화풀이 대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어머니의 폭력은 단순한 체벌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손으로 때리는 것은 기본이고, 주변에 있는 물건을 닥치는 대로 집어 던지거나 휘둘렀습니다. 옷걸이, 파리채, 효자손 등 집안에 있는 물건들은 모두 흉기가 될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은 어머니가 극도로 화가 난 날, 이정훈 사모님과 남동생은 번갈아 가며 폭행을 당했습니다. 어머니는 담배를 피우셨는데, 폭행 중간 담배를 피우는 시간만이 유일한 휴식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상상조차 하기 힘든 끔찍한 상황인데요. 당시 아버지는 가정 폭력을 알고 계셨지만,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IMF 외환 위기 이후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가정 형편은 더욱 악화되었고, 어머니의 폭력성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하루에도 수백 통의 욕설 문자를 보내고, 전화로 폭언을 퍼붓고, 심지어 음성 메시지로까지 욕설을 남겼습니다. 쉴 새 없이 아버지를 괴롭혔습니다. 결국 아버지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심장병을 얻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어머니와 함께 살 수 없다고 판단한 아버지는 집을 나와 사무실에서 생활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자녀들에 대한 사랑은 변치 않았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자녀들의 등하굣길을 챙겼고, 어머니 몰래 따뜻한 도시락을 준비해 주었습니다.

어머니의 폭력적인 행동은 아버지의 건강을 악화시켰고, 가정은 붕괴 직전까지 갔습니다. 이정훈 사모님에게 아버지와 함께했던 시간은 가난했지만 가장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트럭을 타고 등하교하며 아버지와 나눴던 따뜻한 대화, 아버지의 사랑이 담긴 도시락은 힘겨운 어린 시절을 버틸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었습니다. 인격적인 아버지였지만, 폭력적인 어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이정훈 사모님은 깊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사무실에서 쪽잠을 자면서도 자녀들을 위해 샌드위치와 김밥을 손수 챙겨주셨던 아버지의 모습은 감동적입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헌신적인 사랑에도 불구하고, 폭력적인 가정 환경에서 받은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습니다.

트라우마와 정신 질환, 고통의 시간들

폭력적인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릴 수 있습니다. 이정훈 사모님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잠자리에 드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했습니다. 어머니에게 맞고 자는 날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잠들기 전 이불을 뒤집어쓰고 흐느끼는 날들이 이어졌고, 아침이면 눈은 퉁퉁 부어있었습니다. 어두컴컴한 방에 혼자 남겨지는 것이 무서웠고, 밤마다 가위에 눌리는 악몽에 시달렸습니다. 자다가 소리를 지르거나 헛소리를 하는 일도 잦았습니다. 당시에는 이러한 증상들이 정신 질환의 일종인지 알지 못했지만, 성인이 되어서야 어린 시절 겪었던 고통이 트라우마로 남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녀는 수면 장애, 악몽, 가위눌림 등으로 인해 밤마다 극심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결혼 후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이정훈 사모님은 악몽에 시달렸습니다. 꿈속에서 어머니는 흉기를 들고 쫓아왔고, 그녀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면서 매일 밤 악몽을 꾸었고, 공황 장애까지 겪게 되었습니다.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일상생활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가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시면서, 그녀는 깊은 우울증에 빠졌습니다. 1년 동안 죽고 싶다는 생각만 되뇌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텼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두려웠고, 매 순간 고통스러웠습니다. 왜 그녀에게 이런 고통들이 닥쳐온 것일까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는 그녀의 삶 전체를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배우자 기도 조건에 “엄마를 보고도 떠나지 않을 사람”이라는 조건을 적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남편은 폭력적인 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녀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진심으로 위로해 주었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아픔을 공감하고 함께 눈물 흘려주었습니다. 그녀는 남편의 따뜻한 위로와 사랑 덕분에 힘든 시간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시아버지와 시어머니 역시 그녀의 아픔을 이해하고 따뜻하게 감싸주셨습니다. 시댁 식구들의 따뜻한 보살핌은 그녀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정훈 사모님은 오랜 고통의 시간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잃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어떻게 그 힘든 시간을 극복하고 회복할 수 있었을까요? 그녀는 교회를 통해 위로와 안정을 얻었습니다. 교회는 그녀에게 집보다 더 행복하고 좋은 곳이었습니다. 교회 친구들과 교류하고, 예배와 기도에 참여하면서 위안을 받았습니다. 특히 대학부 수련회에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서 삶의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너는 왜 그러니?”, “너 같은 애는 안 돼”라는 부정적인 말을 끊임없이 들으며 자존감이 낮아졌던 그녀에게, 예수님은 “넌 참 귀하다”, “넌 참 소중한 존재야” 라는 따뜻한 위로를 건네주셨습니다. 교회 안에서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시간은 천국과 같았습니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여전히 불안했고, 사람들과의 관계 맺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누군가 다가오면 자신을 때릴 것 같다는 불안감에 휩싸였습니다. 길을 걷다가 남자가 지나가거나, 아주머니가 쳐다보기만 해도 움찔했습니다. 낯선 사람이 흉기를 들고 달려와 해칠 것 같다는 피해망상에 시달렸습니다. 아이를 낳은 후에는 불안 증세가 더욱 심해졌습니다. 특히 첫째 딸을 낳고 나서는 딸을 잃을까 봐, 딸이 자신처럼 고통받을까 봐 늘 불안했습니다. 딸을 품에 안고 다니거나, 손으로 감싸 쥐고 다니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집 앞 마트에 가는 것조차 두려웠습니다.

치유와 회복, 믿음의 힘

이정훈 사모님은 극심한 불안과 공포 속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찬양 예배 시간에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100일도 채 안 된 아기를 안고 찬양 예배에 참석했는데, 갑자기 공황 장애가 찾아온 것입니다. 찬양 인도자가 마이크를 들고 자신을 때리러 올 것 같은 극심한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심장이 멎을 것 같았고, 온몸이 떨렸습니다. 그때 그녀의 귓가에 들려온 찬양은 “주의 손에 나의 손을 포개고”라는 찬양이었습니다. 찬양 가사를 묵상하는 순간,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시는 듯한 강렬한 체험을 했습니다. “정훈아, 네가 아픈 것, 네가 맞았던 모든 상처를 내가 십자가에서 다 짊어졌으니 이제 아파하지 마라. 내가 너를 치유했으니 더 이상 두려워하지 마라” 라는 음성이 들리는 듯했습니다. 그 순간, 그녀를 짓눌렀던 모든 고통과 상처가 눈 녹듯이 사라졌습니다. 오랫동안 곪아있던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녀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고,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나 평안을 되찾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약의 힘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녀는 하나님을 통해 마음의 평안을 얻고, 상처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폭력에 대한 트라우마와 공포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린 시절 폭력적인 환경에서 자란 탓에, 자신도 모르게 폭력성을 내재하게 될까 봐 늘 경계했습니다. 속담에 “욕하면서 닮는다”라는 말이 있듯이, 폭력적인 환경에 노출되면 자신도 모르게 폭력성을 학습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이정훈 사모님은 최근 일곱 살 된 딸아이를 보면서 어린 시절 트라우마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합니다. 옷걸이를 보면 ‘매’라고 인식하고, 파리채나 효자손 역시 ‘매’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 폭력 도구로 사용되었던 물건들을 보면 무의식적으로 공포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하지만 딸아이는 옷걸이를 그냥 옷걸이로, 파리채를 파리채로 인식하는 것을 보면서, 그녀는 자신에게 대물림되지 않음에 감사했습니다. “하나님, 대물림하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기도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이정훈 사모님의 이야기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자아냅니다. 그녀는 힘들 때마다 아버지에게 의지했지만, 이제는 아버지의 빈자리를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녀는 아버지의 휴대전화 번호로 문자를 보내며 그리움을 달랬습니다. 천국에 계신 아버지가 잘 지내시는지 안부를 묻고, 힘든 마음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아버지와의 추억은 그녀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특히 고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와의 가슴 아픈 추억은 잊을 수 없습니다. 사업 실패로 도피 생활을 하던 아버지가 오랜만에 집에 돌아왔을 때, 덥수룩한 머리를 하고 나타나셨습니다. 아버지는 딸과 아들에게 가위를 가져오라고 하더니, 직접 머리를 잘라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서툰 솜씨로 아버지의 머리를 자르면서 눈물을 흘렸던 기억, 며칠 후 말끔하게 머리를 자르고 나타나 용돈을 쥐여주시던 아버지의 따뜻한 모습은 그녀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아버지는 힘들게 막노동을 하면서도 자녀들에게 용돈을 주고 싶어 했습니다.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은 그녀가 힘든 시간을 견디고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탱해준 버팀목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아버지는 결국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어머니는 여전히 생존해 계시지만, 모녀 관계는 순탄치 않습니다. 결혼 후 어머니와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고, 연락을 끊고 지낸 지 오래되었습니다. 동생 역시 누나를 위해 어머니와 연락을 끊고 지내고 있습니다. 첫째 딸을 낳았을 때, 어머니에 대한 원망은 극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둘째를 낳을 때, 극심한 진통을 겪으면서 어머니의 고통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어머니에 대한 원망은 감사함으로 바뀌었습니다. 출산 후 남편에게 곧바로 어머니에게 전화하자고 말했고, 그 후 어머니와의 관계는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로부터 먼저 연락이 오고, 용돈을 보내주시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어머니의 연약함 때문에 관계가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새롭게하소서 녹화 직전, 이정훈 사모님은 어머니와 오랜만에 연락이 닿았습니다. 어머니는 예전과 달리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미안하다, 정훈아. 내가 너를 힘들게 키웠다. 네가 고생이 많았다” 라는 어머니의 진심 어린 사과에, 이정훈 사모님은 비로소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정훈 사모님은 부모와의 관계가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 직접 만나는 것보다 전화를 자주 하는 것이 더 좋을 수 있다고 조언합니다. 오랜만에 만나면 오히려 서먹해지고, 애틋한 감정이 깨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화 통화를 통해 꾸준히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그녀는 자녀를 키우면서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부모님의 모든 행동을 이해하기는 어렵다고 말합니다.

하은이의 무릎 학교, 희망을 전하는 사역

마지막으로 이정훈 사모님은 가정 폭력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가정 폭력은 누구에게도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며, 폭력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폭력 피해 아동들은 부모에게 학대받는 사실을 쉽게 털어놓지 못합니다.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교회는 특히 폭력 피해 아동들을 위한 안전망 역할을 해야 합니다. 교회는 단순히 예배만 드리는 곳이 아니라, 상처 입은 영혼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정훈 사모님은 하은이의 무릎 학교를 통해, 상처 입은 아이들과 가정을 회복시키는 사역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희망을 전하고 있습니다.

최근 이정훈 사모님은 새로운 사역지로 군산 드림교회에 부임했습니다. 목포 사랑의 교회에서 오랫동안 사역하며 어린이 사역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던 그녀는, 군산 드림교회에서도 다음 세대를 위한 사역에 매진할 계획입니다. 군산 드림교회는 다음 세대를 위한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는 교회로, 이정훈 사모님의 사역에 큰 힘이 되어줄 것입니다. 그녀는 앞으로 군산 드림교회에서 하은이의 무릎 학교를 통해, 지역 사회에 희망을 전하고, 상처 입은 영혼들을 치유하는 데 더욱 힘쓸 것입니다. 이정훈 사모님의 사역을 통해, 군산 드림교회가 지역 사회의 빛과 소금 역할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이정훈 사모님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깨달음을 줍니다. 그녀의 용기와 헌신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됩니다. 앞으로도 이정훈 사모님의 사역을 응원하며, 그녀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위로와 희망을 얻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귀한 말씀을 나눠주신 이정훈 사모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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